허이서는 누군가에게 밀쳐져 찬물에 빠진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조서희 씨랑 사이좋으시면서...”여도준은 허이서의 허리 위에 올린 손을 움직이며 물었다.“여기 오래 있으면 어머님이 올라오실까?”“당연하죠.”“우리 처음 할 때 얼마나 걸렸는지 세봤어?”변태도 아니고 그걸 세볼 리가 없었던 허이서는 허리를 짓누르던 여도준의 손이 사라지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여도준은 듣고자 하는 말이 있는 사람처럼 물었다.“어차피 금방 끝날 건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누가 금방이래요, 굳이 자기비하는 하지 마세요.”뒤끝이 길었던 여도준은 그날 허이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같은 말을 반복해보았지만 허이서는 그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허이서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라온 여도준 같은 사람은 이런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말은 절대 못 참는 걸 알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주었다.“감히 여도준 씨한테 그런 말 할 사람 없는 거 알잖아요, 물론 나도 포함이고요.”그 말에 여도준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그때 기다리다 못한 조서희가 여도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조서희는 불이 켜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허이서의 방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아직도 안 내려와?”“갈게 금방.”“나 허리 아파, 빨리 와.”조서희의 전화를 받은 여도준은 곧바로 방에서 나왔고 배윤주는 가려는 여도준을 보고 다급히 무언가를 챙기기 시작했다.“벌써 가게요? 좀 더 있다 가시지.”하지만 여도준은 배윤주에게 인사도 없이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허이서가 방에서 나올 때 배윤주는 이미 검은 비닐봉지를 여도준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친척이 준 유정란인데 여기에선 사기 힘들 거니까 들고 가요.”하지만 여도준이 그걸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허이서는 엄마가 그 앞에서 고개 숙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성치도 않은 다리를 끌고 가서 말했다.“됐어, 엄마. 이런 거 안 챙겨도 돼.”하지만 배윤주는 허이서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다른 걸 드
“며칠 전에 금방 약속하셨어. 나한테 계속 이런 식이면 도련님이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이 년이!”오정식은 허이서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더니 그녀를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더러운 년이 꿈은 크네.”허이서의 가방을 벗겨낸 오정식은 그 안의 물건들을 쏟아내더니 기자사원증을 허이서의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그날은 화장 그렇게 진하게 하고 있더니, 오늘은 뭐 청순한 컨셉이야?”립스틱 하나를 집어 들고 허이서의 입술에 칠하던 오정식은 입꼬리까지 다 발랐음에도 손을 멈추지 않고 빨간 립스틱을 눈가까지 칠해버렸다.언뜻 보면 허이서 입이 째진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너 술 따르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오늘 원 없이 따르게 해줄게.”“뭐 하는 거야!”오정식은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던 허이서를 일으켜 끌고 나가더니 갑자기 옆방 문을 열어젖히고 말했다.“실례합니다, 여기 이 여자가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서요, 내가 얘 대신 술 좀 받아줄까 하는데 어떻게 따라주실 분 계신가요?”한창 여자들과 신나게 놀고 있던 그들은 오정식이 데려온 여자를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그러던 중 한 남자가 일어서더니 술잔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당연히 따라드려야죠.”오정식은 흔쾌히 술잔을 받아들려 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손을 빼더니 알약 하나를 부셔 넣었다.“조금 더 기분 좋아지시라고 좋은 거 하나 넣어봤어요.”입이 귀에 걸려서 그 술을 자신에게 먹이려 하는 오정식에 허이서는 바로 발로 그를 걷어차며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오정식에게 잡혀버렸고 오정식은 팔을 허이서의 목에 감은 채 그녀의 입을 벌려 술을 쏟아 넣으려 했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허이서에 오정식은 팔에 힘을 주며 그녀가 질식할 때까지 몰아붙였다.“안돼...”그에 허이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렸고 술은 그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레 웃던 오정식은 또 다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술을 요구했다.허이서를 제대로 괴롭히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한 번
복도를 걸어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허이서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오정식은 그런 허이서의 손을 빠르게 낚아채며 말했다.“나 지금 너 충분히 봐주고 있으니까 그만 까불어.”그때 허이서가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발로 차자 그 사람은 바로 그녀를 밀치며 소리쳤다.“왜 이래, 미쳤어?”그에 오정식도 허이서의 머리채를 잡으며 말했다.“꼭 내가 여기서 손을 대야 말을 듣지?”하지만 허이서는 어디서 난 힘인지 오정식을 대뜸 밀어버리더니 갑자기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손님, 직원 가리지 않고 공격하던 허이서는 다시 오정식에게 잡혀버린 건지 여도준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오정식이 그녀를 향해 손을 휘두르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벽에 등을 댄 채 우리에 갇힌 짐승마냥 눈을 번뜩이던 허이서는 여도준의 모습을 보자마자 상상도 못 한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아빠...”그에 강태윤도 깜짝 놀랐고 여도준도 어이가 없는지 한마디 했다.“쟤 지금 누구 부르는 거야?”“아빠.”허이서의 말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여도준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여도준과 허이서 잔 적이 있는 걸 아는 오정식은 그들이 침대에서 주고받았던 호칭이 아빠인 줄 알고 좀 있다 자신도 허이서에게 그렇게 불리는 걸 상상하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는 손을 뻗어 허이서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허이서는 바로 여도준에게로 달려가더니 팔로 그의 얇은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빠, 나 여깄는데 어디 가요?”여도준은 손을 들어 허이서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주던 허이서가 여도준을 올려다보며 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채 말했다.“아빠가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체 확인 전화나 받게 될까 봐...”눈이 빨개진 채 울먹이며 말하는 허이서는 전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허이서가 연신 아빠라고 부르며 울고 있을 때 오정식이 헤실거리며 여도준에게로 다가갔다.“도련님, 얘는 제가 바로 데
“어디가 아픈데?”여도준의 말에 허이서가 꺾여버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답했다.“너무 아파요.”그 고통을 참다가 “아빠”랑 둘만 있을 때가 돼서야 말하는 허이서에 여도준은 입술을 말아 물며 그녀를 다독였다.“금방 괜찮아질 거야.”여도준이 허이서를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인혁이 도착했고 그는 허이서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 원인을 바로 알아챘다.“스티몰 먹였어?”“그게 뭔데?”“환각을 만들어내는 약으로 쓰이는 건데 그거 할 때 흥분하게 만들어서 요즘 인기가 많아. 그런데 적정량을 넘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는 약이야.”박인혁은 여도준을 아빠라고 부르는 허이서를 보며 흥미로운 듯 웃었다.“환상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설마 너 잘 때 이런 롤 플레이 하는 성격이야?”“얘 아빠 실종됐어.”담담히 대꾸하는 여도준에 박인혁은 빠르게 웃음을 거두고는 대꾸했다.“아, 불쌍한 아가씨네.”“그럼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중독만 안 되면 큰 문제는 없어, 오늘 밤만 넘기면 내일이면 괜찮아져.”여도준은 박인혁더러 허이서의 손부터 봐달라고 했지만 허이서는 박인혁이 다가오기도 전에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아파요, 만지지 마세요.”“그럼 손 계속 그 상태로 둘 거에요?”허이서에게 가까이 다가간 박인혁은 그제야 예쁘장하게 생긴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하지만 아픈 걸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허이서는 손을 뒤로 숨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자 박인혁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여도준을 보며 말했다.“대표가 좀 나서봐.”“나 의사 아니야.”“너한테 “아빠”라고 부르잖아, 네 말은 좀 잘 듣겠지.”박인혁의 말에 허이서에게 다가가긴 했지만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던 여도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얘 의사니까 믿어도 돼.”“아니에요,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안 믿을 거예요!”하지만 여도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다 오정식으로 여기고 있던 허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고 여도준은 그런 허이서를 달래듯
여도준은 허이서가 이번에는 또 무슨 기막힌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젓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안 먹어요.”“달달한 거야.”“그래도 싫어요.”허이서는 촉촉한 눈동자를 하고 말했다.“사탕 하나로 달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요, 아빠도 이제 나 어린애 취급하지 마요.”그때 입구에 서 있는 강태윤을 본 여도준이 그쪽으로 가려 했지만 허이서에게 팔이 잡혀버렸다.“또 어디 가게요?”말투에는 원망이 다분했다.“금방 올 거야.”여도준이 밖으로 나오자 강태윤이 핸드폰을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서희 씨가 아까부터 계속 연락하셨습니다.”“좀 있다 갈 거야.”“아까 오정식한테 들어보니까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적어도 도련님께서 허이서 씨 일에는 신경 안 쓴다는 걸 알고 이런 짓들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강태윤의 말에 여도준은 차갑게 되물었다.“이 일이 서희와 관련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조서희 일이라면 한없이 물러지고 그녀가 불을 지른다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무조건 감싸는 여도준을 알기에 강태윤은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여도준은 평온한 눈으로 강태윤을 보며 말했다.“서희 의심하지마, 병원에서 1년 만에 나온 애가 그런데 신경을 쓸 리가 없잖아.”“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아빠.”그때 방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도준은 차오르던 화를 억누르며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강태윤을 향해 말했다.“서희한테 나 내일 아침에 바로 소명시 가야 해서 오늘은 앰버카운티에 안 돌아간다고 전해.”“네?”이 말을 자신더러 전하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아 강태윤이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여도준은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침대에 누워있는 허이서는 박인혁의 말처럼 흥분해있지는 않았고 그냥 정신이 몽롱한 듯 보였다.“왜 자꾸 불러.”여도준이 침대에 걸터앉아 허이서는 반려견마냥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무릎을 베고 누우며 말했다.“아빠, 안 가면 안 돼요?”
“진짜요?”“응.”여도준은 오정식의 일에 허이서의 잘못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잘못은 아니었다.한편 앰버카운티에서는 강태윤에게 여도준이 오늘 안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은 조서희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리치려 하는데 아주머니 하나가 달려오더니 그런 조서희의 팔을 잡았다.“아가씨,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일단 진정하세요.”“아주머니, 여도준이 허이서 데리고 갔으면서 나한테는 거짓말을 해요...”“그래도 지금 아가씨가 믿을 건 도련님뿐인데 그런 분과 싸우는 건 아니죠.”아주머니의 말에 조서희가 이를 악문 채 답했다.“그렇다고 그 여우 같은 년이 도준 씨를 채가게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요!”“당연하죠, 아가씨와 도련님 사이에 그런 년이 끼어들게 둘 수는 없죠.”김숙희는 조씨 집안에서부터 조서희를 보살펴주던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사고가 있은 뒤에도 계속 옆에서 조서희를 지켜주고 있었다.김숙희는 조서희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도련님만 아가씨 편이면 그 년은 아무런 위협도 안 돼요.”“하지만 내 사진이 유출될 뻔했는데도 도준 씨는 그 애한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어요.”“물었죠, 사진이 유출 안 됐는데도 그 여자는 아가씨한테 뺨 맞았잖아요, 동료는 다치기까지 하고. 만약 도련님이 정말 그 여자를 아꼈다면 그렇게 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을까요?”김숙희의 말을 듣던 조서희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다시 마음을 편안하게 먹었다.한편 이튿날 아침, 술에 거나하게 취했던 허이서는 눈을 떴지만 어제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진 않았다.그렇게 옆을 더듬어대던 그녀의 손에 사람의 피부가 닿았다.그게 오정식이라고 생각한 허이서는 구역질이 올라와 그 얼굴을 볼 엄두도 못 내고 이불을 들춰보며 자신의 몸부터 확인했다.다행히도 허이서는 옷을 잘 갖춰 입고 있었고 옆에 누워있는 남자는 속옷 차림이었는데 다리가 길고 복근까지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오정식 같지는 않아 허이서는 천천히
하지만 허이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그럼 오정식을 다시 너희 집으로 보내서 네 동생 제대로 놀라게 해줄까? 그래야 내 말을 믿겠어?”여도준의 말에 주먹을 꽉 쥔 탓에 허이서는 손가락이 아닌 손등이 아파왔다.“죄송해요 도련님, 저 대신 제 가족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침대에서 내려온 여도준은 차가운 밤바람이 창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만들어낸 습한 공기를 가로 지나 허이서에게로 다가갔다.“성격은 언제 이렇게 변한 거야? 전에는 나한테 달라붙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더니, 이젠 그런 가식 떨 필요도 없어진 거야?”“사람이면 누구나 존엄이라는 게 있어요. 내가 도련님한테 빌었던 건 살기 위해서였어요. 그런 날 모른 척한 건 도련님이시고요, 날 돕지 않겠다는 사람한테 더 애원할 필요는 없죠.”여도준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허이서를 보며 말했다.“양심이란 건 없나 봐? 어제 오정식한테서 널 구해준 게 난데.”여도준의 말에도 허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어차피 도와줄 거면서 왜 그 수모를 다 당한 뒤에야 손을 내민 것인지, 자신이 절망하는 꼴을 보며 즐거웠던 건지 어이가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여도준은 그런 허이서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우며 그녀가 완전히 자신을 등지게 한 뒤 팔로 그녀를 목을 끌어안았다.그렇게 여도준의 품에 안긴 허이서는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여도준은 더욱더 힘을 주어 그녀를 안았다.“녹음만으로는 오정식 벌 받게 할 수 없어.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해.”“알아요, 그건 경찰들이 조사할 거예요.”여도준은 엄지손가락으로 도드라진 허이서의 쇄골을 짓누르며 말했다.“오정식이 밖에 있는 한 너와 네 가족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지금 바로 감옥에 보내줄게.”“그 조건은 뭐에요?”“어제 나한테 아빠라고 부른 걸로 값은 이미 다 치렀어.”그 말에 깜짝 놀란 허이서가 고개를 돌리자 워낙 가까웠던 거리 탓에 둘의 입술이 부딪혀버렸고 이
앰버카운티.밖에서 밤을 보내고 오는 여도준 때문에 심란해서 잠을 설친 조서희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창밖을 보고 있던 김숙희가 다급히 말했다.“도련님 오십니다.”김숙희는 조서희의 축 처진 얼굴을 보며 말했다.“아가씨, 이런 모습 보고 좋아할 남자 없어요, 얼른 좀 웃으세요.”2층까지 올라오는 소리가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조서희는 방안에서 여도준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렸다.“벌써 일어났어? 좀 더 잘 줄 알았는데.”하지만 그래도 어제 일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조서희는 토라진 얼굴로 물었다.“소명시에 가야 한다며?”“갑자기 취소돼서 너 보러 온 거야.”여도준 휠체어 옆으로 가 앉으며 허리를 숙여 조서희를 보며 물었다.“아침은 뭐 먹을래?”하지만 조서희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나랑 한 약속 지켰어?”“무슨 약속?”김숙희가 눈짓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계속 불편할 것 같아 조서희는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허이서 상관 안 하겠다는 약속.”“또 누구한테서 들은 건데.”“어제 라운지에 간 내 친구가 백마 탄 왕자가 공주님을 구하는 모습을 봤대.”여도준은 셔츠 단추를 살짝 풀어헤치고는 휠체어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어제 내가 안 구했으면 허이서는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뭐 인류애 같은 마음에서 도와준 거야?”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사람은 처음이라 여도준도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오정식은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낸 사람이야, 난 허이서가 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조서희는 손톱을 괴롭히며 계속해서 물었다.“어제 둘이 같이 잔 거야?”“허이서가 약을 잘못 먹어서 의사 불러서 치료해 준 게 다야.”그 말에 분노가 더욱더 치밀어오른 조서희는 마지막 이성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사포로 뱉어냈다.“무슨 약을 먹었는데? 그래서 둘이 같이 침대에서 뒹굴었니?”조서희의 행동에 여도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자 지켜보던 김숙희가 다급히 조서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