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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허이서는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병상 옆에는 여러 장치가 있었고 조서희의 모습을 보니 잠든 것 같지도 않았다.

송은호가 말한 산송장은 아마도 식물인간일 것이다.

여도준은 허이서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입을 열었다.

“밖에서 기다려.”

“네.”

병상은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마치 공주님의 방 같아 보였다. 여도준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는 듯했다.

“가라니까?”

허이서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간 뒤 그녀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복도는 아주 썰렁하고 추웠다. 허이서는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여도준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이서는 굳게 닫힌 병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는 여도준에게서 부드러운 눈빛을 보았다.

차갑고 냉담한 여도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이 드리워지니 아주 잘생겨 보였다.

허이서는 왠지 모르게 조서희가 부러웠다. 조씨 일가는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서희가 정신을 차리고 별을 따달라고 한다면 여도준은 아마 그녀의 말대로 별을 따다 줄 것이다.

허이서는 너무 추워서 눈이 뻑뻑해지기 시작했고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여도준은 일어났을 때도 조서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을 쓸었지만 조서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병실 안에 여도준의 세면도구가 갖춰져 있었기에 여도준은 그것으로 씻고 난 뒤 병실에서 나왔다.

허이서는 어젯밤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여도준은 그녀의 곁을 지나칠 때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는 허이서를 발로 툭 찼고 허이서는 하마터면 의자 위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이제 가도 돼요?”

허이서는 자신이 그곳에서 밤새워 기다렸다는 걸 알지 못했다.

“누가 여기 남아있으라고 했어?”

허이서는 정신만큼은 멀쩡했다.

“여도준 씨가요. 밖에서 기다리라면서요.”

여도준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추위 때문에 창백하게 질린 허이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가봐.”

허이서는 여도준을 따라서 병원 식당에 도착했다.

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았고 식당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도준은 창구 앞으로 걸어가서 허이서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거야?”

허이서는 춥고 배고팠기에 곧바로 다가가서 말했다.

“죽 한 그릇이랑 국수 한 그릇이요. 그리고 만두도요.”

식당 아주머니는 허이서를 힐끔 보았다.

“다 못 먹을 것 같은데요? 우리 여기는 양이 많거든요.”

“그냥 주세요.”

여도준은 자신도 주문을 한 뒤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했다.

허이서는 그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휴대전화로 계좌 이체를 해주려고 했지만 배터리가 다 나가서 켜지지 않았다.

허이서는 식당 아주머니가 자기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자 서둘러 여도준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돈 내야죠.”

“무슨 돈?”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까 시킨 거 돈 안 냈잖아요. 제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없어서 꺼졌어요.”

여도준은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안 내도 돼.”

아침은 아주 빨리 준비되었다. 국수는 허이서의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아주 큰 그릇에 담겨서 나왔다.

여도준은 엄청 배고픈지 국수를 먹으면서 만두도 먹는 허이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조용히 먹더니 마지막에 가서야 죽을 먹기 시작했다.

여도준은 그녀에게 호떡을 집어 주며 말했다.

“더 시킬래?”

“아뇨, 이거면 돼요.”

허이서가 말을 마치자마자 여도준이 말했다.

“갑자기 병원에는 왜 온 거야? 누굴 찾으러 왔어?”

허이서는 그릇 안의 죽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척이 여기 입원해 있거든요.”

“어떤 친척이길래 그렇게 늦은 시간에 병문안을 온 거야?”

허이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

“병상 위에 누워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여도준이 또 물었다. 그의 말투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허이서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여도준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하지 마. 기사도 쓰면 안 돼. 앞으로 찾아오지도 말고.”

그중 한 가지라도 어긴다면 절대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거의 반년 가까이 조사하던 사건인데 이렇게 끝을 보게 되었으니 허이서는 내키지 않았다.

“그러면 약은요? 앞으로 계속 줄 거예요?”

여도준의 마음속에는 조서희뿐일 것이다. 게다가 허이서의 잠자리 스킬이 좋지 않다고 나무란 적도 있으니 어쩌면 그녀를 버리려고 할지도 몰랐다.

여도준은 그녀의 몸을 쭉 훑어보았다.

“네가 하는 거 봐서.”

남자들은 역시 다 쓰레기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랑 몸을 섞는 걸 보면 말이다.

허이서는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준비한 뒤 회사로 향했다.

허이서의 파트너는 그녀의 대학 동기로 멀끔하게 생긴 남자였는데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허이서를 보더니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교하게 화장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립스틱은 발라야 하는 거 아냐?”

“조용히 해.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황정아는 허이서의 팔을 툭 쳤다.

“내가 알려준 사이트 괜찮았지? 그거 보고 매일 몸에 열 오른 거 아냐?”

허이서는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목소리 좀 낮추면 안 돼?”

“한 마디 조언해 주자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안 돼.”

황정아는 그런 말을 하면서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쥐더니 그것을 허이서의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아도 돼. 내 거 사는 김에 네 것도 산 거거든.”

“뭔데?”

허이서는 봉투 안을 바라보더니 기겁하며 그것을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누가 이런 거 달래? 가져가.”

황정아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남자들이 순진하고 귀엽고 도도한 걸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건 침대 아래서 얘기고, 침대 위에서는 달라. 침대 위에서 제대로 유혹하지 못한다면 금방 흥미를 잃고 다른 여자를 찾아서 떠날걸?”

여도준을 붙잡지 못한다면 허이서는 앞으로 약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젯밤 조서희 씨 사진 찍었어?”

황정아는 그 기사에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허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정식 쪽만 주시하자. 지난 1년 동안 조서희 씨 행방을 알아내려고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그런데 조서희 씨는 진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잖아.”

조서희는 사라진 게 아니라 한 남자에게서 보호를 받는 중이라고, 허이서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저녁에도 평소랑 똑같이 하자고. 나랑 같이 오정식 감시하러 가자.”

황정아는 가슴을 툭툭 쳤다.

“좋아.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너 접대부처럼 꾸미고 그런 곳에 가는 거 진짜 조심해야 해. 그곳은 인간이 아닌 것들이 드나드는 곳이니까.”

“응.”

연이어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룸살롱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기삿거리를 찾는 건 원래 조급해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며 다시 밤이 되었다. 남회시의 바람 속에 사치와 욕망이 가득했다.

허이서는 룸살롱에 들어가기 전에 황정아에게 전화를 건넸다.

“오늘은 운이 좀 좋았으면 좋겠네.”

화장을 너무 짙게 해서 그녀조차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여자들 뒤를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갔다.

허이서는 고개를 들었고 동그랗게 둘려져 있는 소파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는 포커를 하고 있었다.

여도준은 시끌벅적한 주변의 웃음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정장이 그의 고귀함과 차가움을 돋보이게 했다.

허이서는 급히 주변을 쭉 둘러보다가 자신의 목표물 오정식을 발견했다.

머리는 벗겨졌고 배는 나온 데다가 160cm도 되지 않는 짤막한 몸의 그는 아주 음흉해 보였다.

허이서는 오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자, 자. 여도준 씨, 얘들은 우리 세인 룸살롱에서 가장 잘나가는 애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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