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이서는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병상 옆에는 여러 장치가 있었고 조서희의 모습을 보니 잠든 것 같지도 않았다.송은호가 말한 산송장은 아마도 식물인간일 것이다.여도준은 허이서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입을 열었다.“밖에서 기다려.”“네.”병상은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마치 공주님의 방 같아 보였다. 여도준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는 듯했다.“가라니까?”허이서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간 뒤 그녀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복도는 아주 썰렁하고 추웠다. 허이서는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여도준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허이서는 굳게 닫힌 병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는 여도준에게서 부드러운 눈빛을 보았다.차갑고 냉담한 여도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이 드리워지니 아주 잘생겨 보였다.허이서는 왠지 모르게 조서희가 부러웠다. 조씨 일가는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서희가 정신을 차리고 별을 따달라고 한다면 여도준은 아마 그녀의 말대로 별을 따다 줄 것이다.허이서는 너무 추워서 눈이 뻑뻑해지기 시작했고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다음 날 아침, 여도준은 일어났을 때도 조서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을 쓸었지만 조서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병실 안에 여도준의 세면도구가 갖춰져 있었기에 여도준은 그것으로 씻고 난 뒤 병실에서 나왔다.허이서는 어젯밤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여도준은 그녀의 곁을 지나칠 때 잠깐 걸음을 멈췄다.그는 허이서를 발로 툭 찼고 허이서는 하마터면 의자 위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이제 가도 돼요?”허이서는 자신이 그곳에서 밤새워 기다렸다는 걸 알지 못했다.“누가 여기 남아있으라고 했어?”허이서는 정신만큼은 멀쩡했다.“여도준 씨가요. 밖에서 기다리라면서요.”여도준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추위 때문에 창백하게 질린 허이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가봐.”허이서는 여도준을 따라서 병원 식
허이서는 감히 여도준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아무리 화장을 짙게 했다고 한들, 여도준이 그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오정식은 마치 상품을 고르듯 여자들을 쭉 훑어보더니 마지막에 허이서의 앞에 섰다.그는 허이서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이 아이 괜찮네요. 딱 봐도 아주 사람을 홀릴 아이예요.”여도준은 진지하게 카드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대꾸했다.“오정식, 여자에게 환장했어?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가 생각나?”“대표님, 이게 유흥이라는 거예요.”“그중에 기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허이서는 흠칫 놀랐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오정식 같은 사람들은 기자를 가장 혐오했다. 만약 여기서 정체가 까발려진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뻔했다.오정식은 여도준의 말을 듣더니 빛이 번쩍이는 머리를 만지면서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대표님 말씀이 맞네요. 이 애들 몸에 카메라라도 숨겨져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다들 지금 당장 옷 벗어! 당장!”허이서는 만짐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게 될 줄은 몰랐다.옆에 있던 여자들은 아주 태연했다. 그들은 원래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다들 가녀린 허리를 움직이면서 짧은 치마를 바닥에 툭 던졌다. 허이서는 그들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여도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허이서는 아마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얼마나 자극적인가?허이서는 가슴이 컸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짧은 원피스의 가슴 쪽에 브로치가 하나 달려 있었다.오정식의 부하들이 다가와서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 룸 밖으로 던졌고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은 허이서에게로 향했다. 오정식은 음흉한 눈빛으로 허이서를 바라보았다.“너도 벗어.”허이서는 치맛자락을 손에 꼭 쥐었다.“오빠, 제가 기자일 리가 없잖아요.”“벗으라니까!”오정식에게는 먹히지 않았다.여도준은 테이블 위에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시선 한 번 들지 않았다. 허이서는 바짝 긴장한 채 깊이 숨을 들이마셨
오정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대표님, 천천히 즐기세요.”허이서는 답답해서 괴로웠지만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도준을 바라보다가 그가 손을 정장 안으로 뻗어서 바지 안에 넣었던 셔츠를 빼내는 걸 보았다.그의 허리 쪽 복근이 확연하게 보이자 허이서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허이서의 머리가 정장 아래서 계속 움직이다 보니 머릿속에 화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여도준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허이서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머리를 빼고 싶었다.여도준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경고했다.“이빨 다 뽑히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조롱 어린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려 퍼지자 허이서는 그의 다리에 엎드린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한참 뒤, 여도준은 떠날 때쯤이 되어서야 허이서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정장을 치워줬다.오정식은 굽신굽신거리면서 여도준을 배웅했지만 그의 시선을 줄곧 허이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대표님, 오늘 밤은 제가 기쁘게 해드릴게요.”여도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이며 차 안으로 들어갔고 허이서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오정식은 어쩔 수 없이 차 문을 닫아준 뒤 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허이서는 창문에 기대어 있었는데 손바닥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직업을 바꾸기라도 한 거야?”여도준이 갑자기 물었다.허이서는 옆에 여도준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깜빡할 뻔했다. 여도준은 그녀의 가슴 앞에 달린 브로치를 바라보며 말했다.“예쁜 브로치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려고 했고, 허이서는 서둘러 손으로 그것을 가렸다. 여도준이 눈썹을 치켜올리자 허이서는 브로치를 더욱 꼭 쥐었다.“여도준 씨, 약 거의 다 먹었어요.”“그러면 나랑 같이 가서 가져가.”“고마워요.”허이서는 룸살롱에 가방을 두고 왔다는 걸 떠올렸다.“기사님에게 얘기해서 다시 룸살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왜?”“아주 중요한 물건을 두고 왔거든요.”여도준은 별로
허이서는 누군가 여도준의 휴대전화에 손을 댈 줄은 몰랐다.“여도준 씨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그래요? 그쪽이 누군데요?”허이서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허이서라고 해요.”전화 너머에서 대화 소리가 잠깐 들렸다. 여도준이 온 듯했다.여자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도준 씨를 찾는다는데? 급한 일인가 봐.”여도준은 전화를 받은 뒤 화면을 보았다. 허이서의 번호를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아서 그냥 숫자로 떴다.“잘못 건 전화일 거야.”“아냐. 도준 씨를 찾는댔어.”허이서는 거리를 두려는 듯한 여도준의 말투를 들었다.“신경 쓰지 마. 약을 구하려는 사람일 테니까.”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약을 구하려는 사람이라니,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그녀는 옆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황정아를 바라보았다.“남자들은 다 이래? 손에 넣기 전까지는 흥미가 가득하다가 손에 넣으면 바로 질려?”황정아는 입에 음식을 한가득 물고 있었기에 말하기가 힘들었다.“일반적으로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 그렇지. 쓰레기 중에서도 진짜 쓰레기 말이야.”그는 허이서를 힐긋 보더니 먹고 있던 걸 삼켰다.“아니면 상대가 정말로 매력 없는 여자일 수도 있어. 매력 없는 여자에게 체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허이서는 여도준이 쓰레기라는 것에 동의했다.잠시 뒤 여도준에게서 문자가 왔다.[저녁에 앰버카운티로 와.]다행히 여도준은 그녀에게 약을 줘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허이서는 퇴근한 뒤 앰버카운티로 향했다. 경호원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밤을 보냈던 여자라서 경호원은 허이서를 바로 들여보냈다.그러나 허이서는 곧 차우차우 두 마리에 의해 가로막혔다. 개들은 우렁차게 짖어댔고 허이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문이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안에서 휠체어를 탄 여자가 나왔다.“진저야, 모카야. 손님에게 짖어대면 안 되지!”차우차우는 아주 얌전히 바닥에 엎드렸다.허이서는 그 여자가 눈에 익었다. 자세히 살펴본
조서희는 여도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도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냉담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그런 적 없어.”조서희는 그제야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래야 할 거야. 도준 씨, 절대 여자랑 괜히 엮이지 마. 나 그런 거 못 견뎌.”“그럴 일 없어.”허이서는 앰버카운티 밖에서 기다리다가 다리가 저려서 쭈그려 앉았다.한참 뒤 강태윤이 약 몇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허이서가 손을 뻗어 약을 받으려는데 강태윤은 갑자기 손을 내려뜨렸다.“허이서 씨...”“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요. 절 믿어주세요. 전 그렇게 주제 파악 못 하는 사람 아니에요. 여도준 씨가 약만 준다면 전 꼭 비밀을 엄수할 거예요. 저와 여도준 씨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강태윤은 허이서에게 약을 건넸다. 허이서는 상황 파악이 빨랐기에 그가 뭐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허이서는 이제부터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확실히 그러했다. 그 뒤로 보름 동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그날 쉬고 있던 허이서는 저녁을 다 만든 뒤 황정아의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이서야. 얼른 소원 카페로 와.”“왜?”“오라면 얼른 와! 내가 얼마나 어렵게 대단한 분의 인터뷰를 땄는데!”허이서는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서 옷장 문을 열었다.그녀에게는 괜찮은 옷이 별로 없었기에 그녀의 시선은 곧 가장 구석 자리에 있는 원피스로 향했다. 그것은 여도준이 입혀 보낸 옷이었다.허이서는 조심스럽게 먼지 커버를 벗기고 옷을 꺼낸 뒤 그 원피스를 입었다.허이서는 소원 카페의 룸에 도착한 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황정아가 문을 연 순간까지도 그녀는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녀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고 병풍을 지나친 순간 걸음을 멈췄다.룸 안에는 짙은 향의 디퓨저가 놓여 있었고, 한 남자가 눈에 띄지 않는 의자에 앉아서 염주를 들고 긴 손가락으로 한 알 한 알 굴리고 있었다.그는 비록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기세가 위압적이었다.그리고
“저 옷은 원래 내 거야.”조서희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허이서가 입은 옷은 팔이 짧고 허리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녀의 몸매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허리가 너무 얇아서 두 손으로 완전히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다.조서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러는 거 괴롭히는 거는 아니지?”그것이 여도준의 말에 달린 일일까?“이쪽으로 와요.”조서희가 허이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황정아는 머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손이 피범벅이었다.허이서가 눈치 없게 행동한다면 두 사람 모두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조서희의 앞에 섰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조서희는 허이서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조서희는 그 때문에 더욱더 불만스러워졌다.조서희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강태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다.“비켜.”조서희의 목소리에서 언짢음이 느껴졌다.“내가 진짜 다리를 못 쓰는 것도 아니고!”그녀는 제대로 서지 못해서 손을 놓자 비틀거렸다.조서희는 넘어지려고 하는 순간, 허이서의 옷깃을 잡았다.그 순간 허이서의 어깨가 옷 안으로 삐져나오면서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속옷의 어깨끈도 나왔고 그로 인해 쇄골이 더욱 잘 보였다. 여도준은 눈에 뭔가가 들어간 것처럼 눈이 불편해졌다.두 사람 모두 중심을 잡지 못했고 조서희가 넘어질 것 같자 여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안았다.그러나 조서희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녀는 허이서를 의자 옆으로 끌고 왔다.“고집부리지 마. 아직은 일어나기엔 무리야.”여도준의 말투에서 언짢음이 느껴졌다.자극을 받은 조서희는 두 손을 마구 움직이다가 허이서의 귀를 때렸다.허이서는 귀가 머는 줄 알았다.“도준 씨, 난 춤을 추고 싶어. 난 도준 씨 앞에 서 있고 싶어. 난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조서희는 울기 시작했고 여도준은 그런 그녀를 껴안으면서 참을성 있게 그녀를 달랬다.“그럴 수 있을 거야. 의사 선생님이 그랬잖아. 침 맞으면 된다
허이서는 서둘러 황정아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을 뿐이다.강태윤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건 정말 큰 일이었다. 여도준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그는 들고 있던 염주를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그것으로 옆에 놓인 장식품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2층 침실. 조서희는 도우미들 도움으로 샤워를 마쳤고 여도준은 책을 두 권 들고 와서 침대맡 서랍에 놓았다.조서희는 코를 찡그렸다.“난 책 읽는 거 안 좋아해.”“너 심심해할까 봐. 시간 때우라고 가져온 거야.”“도준 씨, 얼굴에 뭐가 있어.”“어디?”조서희는 팔에 힘을 주어 일어나 앉았다.“이리 와봐.”여도준이 앞으로 몸을 숙이자 조서희는 두 손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의 뺨을 가까이했다.“혼자 자는 거 무서워. 오늘 밤엔 나랑 같이 자주면 안 돼?”여도준은 그녀의 허리를 쥐었다.“내가 바로 옆 방에 있는데 뭐가 두렵다고.”“안돼. 눈만 감으면 우리 엄마, 아빠가 뛰어내리던 장면이 떠올라. 나 요즘 계속 악몽을 꿨어.”조서희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여도준의 손을 이불 안, 자신의 다리 위로 끌어왔다.여도준은 뼈의 감각을 느꼈다. 살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조서희가 그의 입가에 입을 맞출 때 여도준은 왠지 모르게 허이서의 보드랍고 따뜻하던 다리가 떠올랐다.그는 조서희의 한쪽 팔을 풀었다.“서희야, 움직이지 마.”“싫어...”조서희는 그의 얼굴에 힘껏 입을 맞췄지만 여도준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여도준은 조서희의 양쪽 팔을 전부 풀었다.“움직이지 말라니까.”조서희는 당황한 얼굴로 여도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싫은 거야?”“너 아직 다 안 나았어. 이런 거 하면 안 돼.”“안 된다니. 도준 씨가 원한다면...”여도준은 그녀의 어깨를 쥐며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몸이 다 나은 뒤에 하면 되잖아.”“내가 혼수상태였던 지난 1년간 어떻게 버틴 거야?”여도준은 이불을 잡아당겨서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그냥 이렇게 버텼지.”“진짜 다른 여자랑 잔 적 없어?”여도준은 다정하
허이서는 속으로 여도준의 험담을 했다.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허이서는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저 가슴 안 예뻐요.]여도준에게서 한동안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1이 계속 지워지지 않았다.자세히 보니 그녀를 차단한 듯했다.여도준은 회의를 하는 와중에 심심해서 잠깐 장난을 친 것뿐이었다. 회의가 끝난 지금은 그녀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허이서는 기사를 내보내야 했다. 여도준이 도와주든 도와주지 않든 오정식이 저지른 악행을 까발리는 사람은 꼭 있어야 했다.다음날, 오원동 강제 철거 사건에 관한 기사가 나갔고 황정아는 긴장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 이제 어떡할 거야?”“조금 더 화제를 끌어모아야 해. 공유량도 많아야 하고 댓글도 많아야 해.”허이서는 처리 작업이 된 녹음을 들었다. 그녀는 여도준의 목소리를 지우고 오정식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부분만 남겨두었다.황정아는 여러 SNS 계정에 바이럴을 돌렸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퇴근할 때가 되어서 황정아는 허이서를 데려다주려고 했다.“저녁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너 병원 들러서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냐? 난 신경 쓰지 마. 난 백화점에 갔다 올 거야.”“백화점은 왜?”허이서는 책상 위에 놓인 가방을 들었다.“동생 옷 좀 사주려고.”허승아는 약을 먹은 덕에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래서 허이서는 주말에 그녀를 데리고 외출할 생각이었다.젊은이들은 예쁜 옷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외출할 일이 없어서 입을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허이서는 백화점을 쭉 둘러보았는데 괜찮은 옷을 찾기도 전에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그녀는 기자였기에 그런 면에서 촉이 좋았다.허이서는 다른 매장으로 들어갔는데 그 젊은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뒤따랐다.백화점은 사람이 많아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지만, 잠시 뒤에 어떤 일어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