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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두 사람은 비록 친구라고 하지만 여도준은 여러모로 송은호를 완전히 압도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점 찍어둔 여자랑 잤다고 여도준에게 따지기라도 해야 할까?

허이서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먼저 자자고 했을 것이다.

송은호는 기가 죽은 얼굴로 말했다.

“두고 봐. 넌 결코 꼴을 못 볼 거야.”

송은호는 여도준과 대치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룸에서 나갔다.

그가 조금 전 언급했던 것은 여도준의 금기어였기에 송은호는 더는 여도준의 심기를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도준은 담배를 하나 다 태운 뒤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더니 말 한마디 없이 허이서를 지나쳐 나갔다.

허이서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갔고, 주차장에 도착해서 여도준은 그녀에게 차에 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허이서가 차 문을 열어 보았지만 문은 잠겨있었다.

차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이서는 어쩔 수 없이 차의 옆에서 걸어야 했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때 여도준이 창문을 내렸다.

“송은호 말이 맞아. 넌 확실히 뻔뻔해.”

허이서는 지금 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지금 절 탓하는 거예요?”

“네 잠자리 스킬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널 향한 내 흥미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아?”

어쩌면 한두 번 더 자고 나면 질릴지도 몰랐다. 반대로 허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였다.

강태윤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는 허이서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누구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허이서는 여도준을 통해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의기양양했던 적이 없었다.

“전 송은호와 확실히 연을 끊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송은호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날 괴롭히려고 하겠죠. 그래서 그냥 다 얘기한 거예요. 송은호는 여도준 씨를 감히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요. 앞으로 절 찾아오지 않겠죠.”

허이서는 그렇게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거리에 길게 늘어졌다.

적적하고 쓸쓸해 보였다.

여도준은 절대 자기 감정을 쉽게 내비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지금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허이서는 여도준이 화난 이유가 자기가 한 말 때문인지, 아니면 송은호가 언급한 사람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여도준 씨, 차에 태워줘요. 더는 못 걷겠어요.”

여도준은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는 오늘 밤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기에 그녀를 괴롭히고 싶었다.

“차에 탈 수는 있어. 하지만 다른 곳은 가지 않고 차에서 할 거야.”

허이서는 걸음을 멈췄다.

차는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허이서가 도망치는 것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 바로 눈앞에 있는 사냥감이라 당장 물어뜯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허이서는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곧 그녀는 달려서 차 옆에 도착했고 차는 멈췄다. 그리고 곧 잠금장치가 열리는 철컥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차 문을 연 뒤 허리를 숙이며 차에 앉으려고 했다.

널찍한 공간이지만 공기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고 허이서는 자신이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여도준의 얼굴은 빛을 등지고 있었는데 놀랍울 정도로 준수했다. 허이서는 손으로 옷을 잡더니 바로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비서와 운전기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감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여도준은 그녀의 몸을 쭉 훑어보았지만 별로 흥미가 없는 건지 눈빛이 아주 덤덤했다.

허이서는 난처해하면서 다시 옷을 들어 몸을 가렸다.

여도준은 그녀에게 옷을 내리라는 말도, 지금부터 뭘 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 드러난 그녀의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이서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죽음을 각오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여도준은 허이서가 갑자기 다짜고짜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녀의 이마가 여도준의 가슴팍에 부딪혔고, 곧 통증이 느껴졌다.

허이서는 허리를 숙였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매끈한 등을 덮고 있는 모습에 여도준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치웠다.

“내려.”

앞좌석에 앉아 있던 비서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었고 운전기사도 곧바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여도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허이서의 등을 매만졌고 허이서는 그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여도준은 한 손으로 허이서의 목을 잡더니 곧 몸을 숙였다.

차 문에 기대어 있던 운전기사는 잠시 뒤 차가 흔들리는 게 느껴지자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강태윤을 힐끗 보았고, 강태윤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운전기사를 다른 쪽으로 잡아당겼다.

허이서는 여도준의 손길에 이끌려 옆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여도준의 힘이 너무 센 탓에 머리를 부딪혔다.

운전기사는 밖에서 하품을 했고 강태윤은 담배 두 대를 피웠다. 그는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다가 차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는 거의 끝났을 거로 생각했다.

허이서는 정리를 마친 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도준은 단추를 채운 뒤 흰 셔츠의 옷깃을 단정히 정리했다.

“재미없네.”

허이서는 그를 힐끔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재미를 봤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여도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다음번에는 배우기라도 해. 계속 이렇게 무미건조할 거면 다음번에는 오지 마.”

여도준은 창문을 두드렸고 비서와 운전기사는 차 안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다른 데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앞만 봤다.

“내려.”

허이서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여도준은 이제야 막 바지를 입었으면서 태연했다.

그렇게 허이서는 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여자가 잠자리 스킬이 좋지 않아서 중도에 쫓겨났다고 한다면 아마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돌아간 뒤 허이서는 여도준의 말대로 이상한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늦은 밤 혼자 이어폰을 끼고 몰래 공부했다.

기자는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이었기에 거의 매일 같이 외근해야 했고, 가장 먼저 기사를 내기 위해 위험한 일이라고 해도 뭐든 해야 했다.

허이서는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병원 밖에서 기다리다가 입원 병동에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모자를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버튼을 눌렀다.

1년 전, 남회시 조씨 일가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조씨 일가 남성이 아내에게 수갑을 채운 뒤 아내와 함께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그들의 딸은 그날부터 실종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단서를 알아내려고 했고 허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 사건을 위해 몇 달간 준비를 했고 가짜 정보도 많이 접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와보긴 해야 했다.

병실 앞에 선 허이서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아주 어두웠고 또 아주 넓었다. 허이서는 아주 느리게 걸었고 가까스로 침대 옆까지 다가갔다.

허이서는 커튼을 잡게 되었다. 그녀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려는 순간, 한 줄기 약한 빛이 그녀를 비췄다.

누군가 스탠드를 켠 것이다. 허이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먼저 서로 얽힌 손이 보였다. 남자의 새끼손가락에는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시선을 위로 옮기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여도준이었다.

허이서가 손에 힘을 풀자 커튼이 가볍게 휘날렸고 곧 병상 위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여자가 바로 허이서가 찾고 있던 조씨 일가의 딸 조서희였다.

여도준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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