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이서는 서둘러 황정아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을 뿐이다.강태윤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건 정말 큰 일이었다. 여도준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그는 들고 있던 염주를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그것으로 옆에 놓인 장식품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2층 침실. 조서희는 도우미들 도움으로 샤워를 마쳤고 여도준은 책을 두 권 들고 와서 침대맡 서랍에 놓았다.조서희는 코를 찡그렸다.“난 책 읽는 거 안 좋아해.”“너 심심해할까 봐. 시간 때우라고 가져온 거야.”“도준 씨, 얼굴에 뭐가 있어.”“어디?”조서희는 팔에 힘을 주어 일어나 앉았다.“이리 와봐.”여도준이 앞으로 몸을 숙이자 조서희는 두 손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의 뺨을 가까이했다.“혼자 자는 거 무서워. 오늘 밤엔 나랑 같이 자주면 안 돼?”여도준은 그녀의 허리를 쥐었다.“내가 바로 옆 방에 있는데 뭐가 두렵다고.”“안돼. 눈만 감으면 우리 엄마, 아빠가 뛰어내리던 장면이 떠올라. 나 요즘 계속 악몽을 꿨어.”조서희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여도준의 손을 이불 안, 자신의 다리 위로 끌어왔다.여도준은 뼈의 감각을 느꼈다. 살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조서희가 그의 입가에 입을 맞출 때 여도준은 왠지 모르게 허이서의 보드랍고 따뜻하던 다리가 떠올랐다.그는 조서희의 한쪽 팔을 풀었다.“서희야, 움직이지 마.”“싫어...”조서희는 그의 얼굴에 힘껏 입을 맞췄지만 여도준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여도준은 조서희의 양쪽 팔을 전부 풀었다.“움직이지 말라니까.”조서희는 당황한 얼굴로 여도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싫은 거야?”“너 아직 다 안 나았어. 이런 거 하면 안 돼.”“안 된다니. 도준 씨가 원한다면...”여도준은 그녀의 어깨를 쥐며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몸이 다 나은 뒤에 하면 되잖아.”“내가 혼수상태였던 지난 1년간 어떻게 버틴 거야?”여도준은 이불을 잡아당겨서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그냥 이렇게 버텼지.”“진짜 다른 여자랑 잔 적 없어?”여도준은 다정하
허이서는 속으로 여도준의 험담을 했다.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허이서는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저 가슴 안 예뻐요.]여도준에게서 한동안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1이 계속 지워지지 않았다.자세히 보니 그녀를 차단한 듯했다.여도준은 회의를 하는 와중에 심심해서 잠깐 장난을 친 것뿐이었다. 회의가 끝난 지금은 그녀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허이서는 기사를 내보내야 했다. 여도준이 도와주든 도와주지 않든 오정식이 저지른 악행을 까발리는 사람은 꼭 있어야 했다.다음날, 오원동 강제 철거 사건에 관한 기사가 나갔고 황정아는 긴장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 이제 어떡할 거야?”“조금 더 화제를 끌어모아야 해. 공유량도 많아야 하고 댓글도 많아야 해.”허이서는 처리 작업이 된 녹음을 들었다. 그녀는 여도준의 목소리를 지우고 오정식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부분만 남겨두었다.황정아는 여러 SNS 계정에 바이럴을 돌렸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퇴근할 때가 되어서 황정아는 허이서를 데려다주려고 했다.“저녁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너 병원 들러서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냐? 난 신경 쓰지 마. 난 백화점에 갔다 올 거야.”“백화점은 왜?”허이서는 책상 위에 놓인 가방을 들었다.“동생 옷 좀 사주려고.”허승아는 약을 먹은 덕에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래서 허이서는 주말에 그녀를 데리고 외출할 생각이었다.젊은이들은 예쁜 옷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외출할 일이 없어서 입을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허이서는 백화점을 쭉 둘러보았는데 괜찮은 옷을 찾기도 전에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그녀는 기자였기에 그런 면에서 촉이 좋았다.허이서는 다른 매장으로 들어갔는데 그 젊은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뒤따랐다.백화점은 사람이 많아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지만, 잠시 뒤에 어떤 일어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도준 씨는 다른 남자와 다르잖아요. 당연히 약속을 지키겠죠.”여도준은 허이서가 일부러 아부하는 거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침대 위에서 그런 얘기를 한 남자들이 많았나 봐.”“없어요.”허이서는 그를 따라서 가장 안쪽에 있는 룸에 도착했고 그제야 사람이 있음을 눈치챘다.허이서는 곁눈질로 여자가 한 명 있는 걸 보고는 제때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허이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이서 씨, 들어오세요.”허이서는 옆에 있는 여도준을 바라보았다. 여도준은 조금 전까지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온해 보였다.“도준 씨, 허이서 씨 아직 저녁 안 먹었을 텐데 우리 같이 먹어요.”여도준은 이미 조서희의 곁으로 다가갔고 허이서는 서둘러 손을 저었다.“아뇨. 전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허이서 씨를 곤란하게 한 사람이 떠난 건가요?”조서희는 여도준이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그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아까 강태윤 씨가 그러던데. 허이서 씨가 미행을 당하고 있는데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요. 그래서 제가 도준 씨에게 나가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준 씨가 귀찮아하더라고요.”조서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도준의 다리를 꼬집었다.“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왜 하기 싫어해?”“난 오지랖 부리는 거 싫어.”여도준은 덤덤한 얼굴이었다.허이서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도준은 원래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 여도준이 그저 말 몇 마디만 해줘도 사람들은 알아서 도망갔지만, 그의 말처럼 그에게 있어 허이서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었다.“이리 와서 앉아요.”조서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허이서를 데려오려고 했다.결국 여도준이 서둘러 그녀의 팔을 잡았다.“움직이지 마.”허이서를 향한 여도준의 말투가 사나워졌다.“널 여기까지 모셔 와야 해?”허이서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감사합니다, 조서희 씨.”“앞으로는
둘이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왜 자꾸 그녀를 끌어들이는 걸까?허이서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여도준이 계속 따라가려고 했다.“이젠 괜찮으니 이만 돌아가요.”남자는 그녀의 말에 대꾸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복도는 아주 좁았고 여도준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허이서는 빨리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2층에 도착했을 때 전등이 고장 나서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허이서는 그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주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여도준은 발이 걸렸고 허이서는 등에 뭔가 무거운 걸 업은 느낌이 들면서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여도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허이서는 후다닥 일어났다.“여도준 씨, 괜찮아요?”약을 주는 소중한 사람이니 떠받들어야 했다. 혹시라도 넘어져서 상처라도 난다면 큰일이었다.여도준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이딴 곳에 사람이 살 수가 있는 거야?”허이서는 손바닥이 화끈거렸고 두 무릎도 아팠다.“남회시에는 별장과 화려하게 꾸며진 오피스텔만 있는 게 아니에요.”허이서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다.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서 아픈 탓이었다.집 문 앞에 도착해서 열쇠를 꺼내는데 여도준은 여전히 뒤에 서 있었다.“저 도착했어요.”“문 열어.”허이서는 순간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설마 집 안까지 들어오려는 걸까?“엄마랑 동생 다 있어요.”여도준의 커다란 몸이 뒤에 있어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가 손을 들어 벨을 누르려고 하자 허이서는 허둥지둥 열쇠를 꽂았다.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허승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왔어?”힘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 약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했다. 몇 걸음 다가온 허승아는 안으로 들어온 여도준을 보고 잠깐 당황하더니 곧이어 흥분한 얼굴로 주방을 향해 외쳤다.“엄마, 언니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어.”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방에서 나온 배윤주는 허이서가 허승아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런 거 아니야...
허이서는 누군가에게 밀쳐져 찬물에 빠진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조서희 씨랑 사이좋으시면서...”여도준은 허이서의 허리 위에 올린 손을 움직이며 물었다.“여기 오래 있으면 어머님이 올라오실까?”“당연하죠.”“우리 처음 할 때 얼마나 걸렸는지 세봤어?”변태도 아니고 그걸 세볼 리가 없었던 허이서는 허리를 짓누르던 여도준의 손이 사라지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여도준은 듣고자 하는 말이 있는 사람처럼 물었다.“어차피 금방 끝날 건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누가 금방이래요, 굳이 자기비하는 하지 마세요.”뒤끝이 길었던 여도준은 그날 허이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같은 말을 반복해보았지만 허이서는 그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허이서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라온 여도준 같은 사람은 이런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말은 절대 못 참는 걸 알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주었다.“감히 여도준 씨한테 그런 말 할 사람 없는 거 알잖아요, 물론 나도 포함이고요.”그 말에 여도준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그때 기다리다 못한 조서희가 여도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조서희는 불이 켜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허이서의 방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아직도 안 내려와?”“갈게 금방.”“나 허리 아파, 빨리 와.”조서희의 전화를 받은 여도준은 곧바로 방에서 나왔고 배윤주는 가려는 여도준을 보고 다급히 무언가를 챙기기 시작했다.“벌써 가게요? 좀 더 있다 가시지.”하지만 여도준은 배윤주에게 인사도 없이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허이서가 방에서 나올 때 배윤주는 이미 검은 비닐봉지를 여도준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친척이 준 유정란인데 여기에선 사기 힘들 거니까 들고 가요.”하지만 여도준이 그걸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허이서는 엄마가 그 앞에서 고개 숙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성치도 않은 다리를 끌고 가서 말했다.“됐어, 엄마. 이런 거 안 챙겨도 돼.”하지만 배윤주는 허이서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다른 걸 드
“며칠 전에 금방 약속하셨어. 나한테 계속 이런 식이면 도련님이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이 년이!”오정식은 허이서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더니 그녀를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더러운 년이 꿈은 크네.”허이서의 가방을 벗겨낸 오정식은 그 안의 물건들을 쏟아내더니 기자사원증을 허이서의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그날은 화장 그렇게 진하게 하고 있더니, 오늘은 뭐 청순한 컨셉이야?”립스틱 하나를 집어 들고 허이서의 입술에 칠하던 오정식은 입꼬리까지 다 발랐음에도 손을 멈추지 않고 빨간 립스틱을 눈가까지 칠해버렸다.언뜻 보면 허이서 입이 째진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너 술 따르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오늘 원 없이 따르게 해줄게.”“뭐 하는 거야!”오정식은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던 허이서를 일으켜 끌고 나가더니 갑자기 옆방 문을 열어젖히고 말했다.“실례합니다, 여기 이 여자가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서요, 내가 얘 대신 술 좀 받아줄까 하는데 어떻게 따라주실 분 계신가요?”한창 여자들과 신나게 놀고 있던 그들은 오정식이 데려온 여자를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그러던 중 한 남자가 일어서더니 술잔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당연히 따라드려야죠.”오정식은 흔쾌히 술잔을 받아들려 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손을 빼더니 알약 하나를 부셔 넣었다.“조금 더 기분 좋아지시라고 좋은 거 하나 넣어봤어요.”입이 귀에 걸려서 그 술을 자신에게 먹이려 하는 오정식에 허이서는 바로 발로 그를 걷어차며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오정식에게 잡혀버렸고 오정식은 팔을 허이서의 목에 감은 채 그녀의 입을 벌려 술을 쏟아 넣으려 했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허이서에 오정식은 팔에 힘을 주며 그녀가 질식할 때까지 몰아붙였다.“안돼...”그에 허이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렸고 술은 그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레 웃던 오정식은 또 다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술을 요구했다.허이서를 제대로 괴롭히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한 번
복도를 걸어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허이서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오정식은 그런 허이서의 손을 빠르게 낚아채며 말했다.“나 지금 너 충분히 봐주고 있으니까 그만 까불어.”그때 허이서가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발로 차자 그 사람은 바로 그녀를 밀치며 소리쳤다.“왜 이래, 미쳤어?”그에 오정식도 허이서의 머리채를 잡으며 말했다.“꼭 내가 여기서 손을 대야 말을 듣지?”하지만 허이서는 어디서 난 힘인지 오정식을 대뜸 밀어버리더니 갑자기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손님, 직원 가리지 않고 공격하던 허이서는 다시 오정식에게 잡혀버린 건지 여도준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오정식이 그녀를 향해 손을 휘두르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벽에 등을 댄 채 우리에 갇힌 짐승마냥 눈을 번뜩이던 허이서는 여도준의 모습을 보자마자 상상도 못 한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아빠...”그에 강태윤도 깜짝 놀랐고 여도준도 어이가 없는지 한마디 했다.“쟤 지금 누구 부르는 거야?”“아빠.”허이서의 말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여도준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여도준과 허이서 잔 적이 있는 걸 아는 오정식은 그들이 침대에서 주고받았던 호칭이 아빠인 줄 알고 좀 있다 자신도 허이서에게 그렇게 불리는 걸 상상하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는 손을 뻗어 허이서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허이서는 바로 여도준에게로 달려가더니 팔로 그의 얇은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빠, 나 여깄는데 어디 가요?”여도준은 손을 들어 허이서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주던 허이서가 여도준을 올려다보며 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채 말했다.“아빠가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체 확인 전화나 받게 될까 봐...”눈이 빨개진 채 울먹이며 말하는 허이서는 전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허이서가 연신 아빠라고 부르며 울고 있을 때 오정식이 헤실거리며 여도준에게로 다가갔다.“도련님, 얘는 제가 바로 데
“어디가 아픈데?”여도준의 말에 허이서가 꺾여버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답했다.“너무 아파요.”그 고통을 참다가 “아빠”랑 둘만 있을 때가 돼서야 말하는 허이서에 여도준은 입술을 말아 물며 그녀를 다독였다.“금방 괜찮아질 거야.”여도준이 허이서를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인혁이 도착했고 그는 허이서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 원인을 바로 알아챘다.“스티몰 먹였어?”“그게 뭔데?”“환각을 만들어내는 약으로 쓰이는 건데 그거 할 때 흥분하게 만들어서 요즘 인기가 많아. 그런데 적정량을 넘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는 약이야.”박인혁은 여도준을 아빠라고 부르는 허이서를 보며 흥미로운 듯 웃었다.“환상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설마 너 잘 때 이런 롤 플레이 하는 성격이야?”“얘 아빠 실종됐어.”담담히 대꾸하는 여도준에 박인혁은 빠르게 웃음을 거두고는 대꾸했다.“아, 불쌍한 아가씨네.”“그럼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중독만 안 되면 큰 문제는 없어, 오늘 밤만 넘기면 내일이면 괜찮아져.”여도준은 박인혁더러 허이서의 손부터 봐달라고 했지만 허이서는 박인혁이 다가오기도 전에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아파요, 만지지 마세요.”“그럼 손 계속 그 상태로 둘 거에요?”허이서에게 가까이 다가간 박인혁은 그제야 예쁘장하게 생긴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하지만 아픈 걸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허이서는 손을 뒤로 숨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자 박인혁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여도준을 보며 말했다.“대표가 좀 나서봐.”“나 의사 아니야.”“너한테 “아빠”라고 부르잖아, 네 말은 좀 잘 듣겠지.”박인혁의 말에 허이서에게 다가가긴 했지만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던 여도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얘 의사니까 믿어도 돼.”“아니에요,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안 믿을 거예요!”하지만 여도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다 오정식으로 여기고 있던 허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고 여도준은 그런 허이서를 달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