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운은 아래 분식집 과부 문나리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그녀는 특별한 아침을 만들어 주었고 그의 구부정한 걸음걸이나 쩝쩝거리는 추잡한 식습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불만이 많았다. “우리 집사람은 NPC 같아. 가까이 가면 퀘스트만 줘.” “근데 나리는 달라. 나를 이해해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 주거든.” 심지어는 문나리의 죽은 남편이 그녀와 결혼할 수 있었던 걸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곧바로 그의 한심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까 봐 나는 서둘렀다.
View More2년 후, 우리 부모님이 재개발 보상으로 받은 집들이 모두 확정되었다. 가치는 20억을 넘었다.나는 출산으로 입원한 동료를 병문안 갔다가, 수납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임미숙을 보았다.그녀는 더 늙어 보였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고 아들처럼 구부정한 자세였다.틈만 나면 새치기를 시도하다가 거절당하자,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임미숙은 앞에 서 있던 임산부를 가리키며 손을 떨며 말했다.“넌 배가 불렀다고 다냐? 나이 든 사람을 좀 봐주면 안 돼?”그러면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나처럼 늙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임산부는 그녀의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임미숙을 비난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큰소리로 맞섰다.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은 예전에 내가 수도 없이 들었던 것들이었다.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녀를 감싸주지 않았다. 곧 병원 경비원들이 달려왔다.경비원들은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로 그들 몸에 들이받았다.“못 살아! 못 살아! 나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나는 멀리서 그녀가 점점 노년을 비극적인 소란 극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곁에서 누군가 혀를 차며 말했다.“저 할머니 참 힘들게 산다. 곧 죽을 거라는 걸 아는 모양이야.”내가 놀라는 눈길로 그쪽을 쳐다보자 구경하던 사람이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저 할머니랑 아들 둘 다 이 병원 환자예요, 아들은 더 심각해요. 요독증이라던데.”나는 진철운이 그렇게 엉망으로 살다 결국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동료 병문안을 마치고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멀리서 대나무처럼 바싹 마른 진철운이 임미숙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헐렁한 병원복이 몸에 들쑥날쑥 걸쳐졌고 눈가는 움푹 패어있었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휘청휘청 흔들렸다.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는 서로 잠깐 눈이 마주쳤고 그는 당황스
나는 식당을 나섰다. 진철운은 흥분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일어나 나를 쫓으려 했지만, 식당 주인이 그의 옷깃을 잡아챘다.“계산 안 해요?”그는 얼굴이 빨개진 채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마누라더러 계산하라고 해요. 난 돈 없어요.”나는 뒤돌아보며 말했다.“시킨 사람이 계산하는 거지. 그리고 난 이혼 소송 중이니 네 마누라가 아니야.”길가에서 택시를 잡는 동안 진철운은 여전히 식당 주인에게 붙잡혀 있었다.집 아래에 도착해 보니 이삿짐센터 차는 이미 가고 없었다.모든 게 순조로웠다. 텅 빈 집에 들어서니 마음이 후련했다.나오는 길에 나는 구석에 놓인 그의 짐 보따리를 발로 걷어찼다.무거운 짐 하나를 벗어 던진 기분이었다.이혼 소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든 증거가 확실했으니까.진철운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혼 신고를 마친 날, 그는 풀이 죽은 채 내 뒤를 따라왔다. 그는 몇 걸음 걷고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다희야, 정말 날 버릴 거야?”나는 걸음을 멈췄다.“예전에 내가 널 챙긴 건 널 사랑했고 내 눈에 너밖에 없었기 때문이야.”그래서 건강에 안 좋은 자세며 사람들 앞에서의 버릇없는 행동까지 다 참견했던 것이다.“하지만 이젠 널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왜 널 챙기겠어?”그가 죽든 살든 나와는 상관없었다.사랑이 사라지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백여 킬로나 되는 짐, 지고 싶은 사람이 지고 가라지.그는 눈가가 붉어지더니 입술을 달싹였다.“네가 좀 더 부드럽고 상냥하게 그리고 좀 더 요령 있게 나를 챙겼다면 내가 널 그렇게 귀찮아했겠어?”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는 출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네게 더 다정하길 바라는 건데?”결혼 전이나 후나, 발목 잡힌 건 나 혼자뿐이었다.그는 주저하며 나를 보며 말했다.“내가 성공해서 차도 있고 집도 있으면 네가 이렇게 하진 않았겠지.”그는 이미 색이 바랜 반소매 끝자락을 움켜쥐고 말했다.“그 여자가 날 떠난 것도 결국 내가 가진 게 없어서 그런 거
그의 눈이 번쩍 빛나더니, 재빨리 일어나 조심스럽게 내 뒤를 따라왔다.나는 그를 데리고 예전에 우리가 자주 외식하던 식당으로 갔다.그는 능숙하게 메뉴판을 꺼내 주문하기 시작했다.전부 기름지고 짠 음식뿐이었다. 그러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나 요즘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했어. 여보, 우리 이혼하지 말자.”나는 냉소가 나왔다. 복도에 누워서도 코를 천둥 같이 골면서 잘 자던 사람이었으니까.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나 일자리도 찾을게, 이젠 진짜 달라졌어.”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지켜봤다.조금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그는 더워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내가 간섭하는 거 싫어했잖아?”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웅얼거리듯 말했다.“그땐 내가 복에 겨워서 그랬어. 네가 잔소리하는 것도 다 날 위한 거였는데.”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문나리를 언급하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는 분명 일부러 그런 거야. 우리 집안에 당뇨랑 고혈압 유전인 거 알면서도.”그녀는 그가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운동도 안 하는 걸 내버려 뒀다.그는 땀을 닦으며 넌지시 나를 살폈다.“그 여잔 뭘 해도 날 싫어하지 않았어.”나는 냉소했다.“철운아, 너 그냥 편한 대로 살아. 우리 억지로 이러지 말고.”나는 아예 솔직하게 그의 속셈을 폭로했다.“네가 이렇게 찾아온 건 우리 부모님 집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지? 그래도 그건 부모님 거지 나랑은 상관없어. 헛물켜지 마.”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가슴과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다희야, 무슨 소리야.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난 이 일조차 몰랐어.”진지한 표정으로 그는 이렇게 해명했다.그는 문나리와 잠시 지내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그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그녀는...너무 강해서 나 완전히 탈진할 지경이야.”마침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주다가 그의 말을 듣고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임미숙은 평생 써 본 욕을 다 퍼부었다.“넌 그 영감탱이를 홀리더니 이젠 내 아들까지 홀리냐?”문나리는 냉소했다.“할망구가 손 영감 자식들을 다 불러들이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럴 필요가 있었겠어요?”손 영감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젊은 과부와 결혼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그들은 문나리가 계속 들러붙을까 봐 아예 손 영감을 모시고 가버렸다.그래서 돈도 사람도 다 잃은 문나리는 분이 풀리지 않아 이제 그 화풀이를 임미숙에게 한 것이다.이때 옆에서 정신을 차린 진철운이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너 나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였어?”문나리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사실 너랑 그냥저냥 살려고 했는데, 솔직히...”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너랑 그렇게 여러 번 했는데, 느낌이... 별로였어.”그녀는 아쉬운 듯 말했다. “오히려 그 영감이 너보다 나았어. 게다가 그 영감은 연금도 있고 집도 있는데, 넌 뭐가 있어?”진철운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문나리는 눈에 혐오감을 가득 담고 말했다.“너한테 있는 거라곤 고작 백여 킬로의 살덩이뿐이지. 솔직히 네가 쩝쩝거릴 때마다 정말 한 대 치고 싶더라.”그녀는 진철운과 임미숙을 번갈아 보았다.“너희 모자는 진짜 똑같은 인간들이야. 누가 너희 집에 시집가면 팔자 망치는 거지.”문나리는 또 진철운을 향해 쓴소리를 이어갔다.“기타 말고는 하는 게 뭐야? 기름병이 넘어져도 쳐다도 안 보는 인간이. 너랑 같이 다니면 창피해 죽겠어. 뚱뚱한 몸에 등은 구부정하고.”나와 부모님은 웃음을 꾹 참았다.진철운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꼭 끓는 물에 덴 수탉 같았다.그는 한참 후에야 겨우 한마디 욕을 내뱉었다.“이 더러운 년!”“쳇, 잘난 척은.”문나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철운은 욕만 바가지로 먹고 대꾸도 못 한 채 분을 못 이겨 몸을 떨었다.임미숙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사돈,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요?”그러자 부모님은 즉시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사돈이라니, 우
순간 모든 게 다 이해가 됐다.아니나 다를까, 전과 달리 목소리만 높던 임미숙이 갑자기 전화며 문자를 보내 마치 친엄마처럼 다정하게 굴었다.전화에서 그녀는 진철운을 엄청나게 꾸짖더니 갑자기 말을 돌렸다.“다희야, 부부의 연은 소중한 거야. 철운이가 잘못했으면 야단치면 되지. 이혼은 절대 안 돼. 우리 집에 어떻게 과부를 들이겠니?”나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엄마가 보다 못해 내 핸드폰을 낚아채서 단호하게 말했다.“그쪽 집 아들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이혼은 무조건할 거니까 그리 알아요.”그러자 임미숙도 본색을 드러냈다.“다희야, 난 네가 이렇게 간사한 줄 몰랐구나. 너 우리 아들을 버리고 좋은 데 시집갈 궁리만 했지?”사람이 뻔뻔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혼 당일, 진철운은 나타나지 않았다.대신 그 모자는 하준수의 회사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며 그가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용해 우리 부부를 이간질했다고 떠들어댔다.평소 강직한 하준수는 어이없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비록 아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명예는 실추되었다.진철운이 보낸 영상을 보고 나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너만 이혼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 줄게.”아무 잘못 없는 사람까지 휘말리게 하다니, 나는 화가 나고 미안하기도 했다.하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역시 난감해했다.“경찰에 신고했어. 이 일로 선생님 일은 더 이상 챙기기 힘들 것 같아.”나는 거듭 사과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분노가 치밀어올라 곧바로 변호사에게 이혼 소송을 의뢰하고 증거 자료들을 넘겼다.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하준수에게 사과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멀리서 진철운과 임미숙이 우리 집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는 걸 보았다.문 앞에는 선물 상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보아하니 방금 그들은 부모님과 이미 한바탕했던 모양이었다.나를 보자
[손빨래하면 쓸 만할 거예요. 방음 잘 안 되니까 소리 좀 작게 내고.]...진철운은 이혼 서류에 서명한 지 사흘 만에 회사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우리 부모님 이름을 팔아 바로 아빠 제자를 찾아간 것이다.그는 이제 중간 관리자였는데, 예전에 아빠 부탁으로 진철운을 회사에 넣어준 사람이었다.진철운은 이혼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했다.그 제자의 이름은 하준수였다. 성격이 온화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심지어 나에게 과외도 해 준 적이 있었다.하준수는 진철운을 타일러 보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결국, 하준수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했다.“진철운이 회사에 와서 보상해 달라고 난리야. 근데 전에 무단결근도 여러 번 했잖아.”나는 담담하게 말했다.“진철운은 저와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회사 규정대로 처리하면 돼요.”하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그래. 알았어.”진철운은 회사에 다시 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경비원이 차가운 얼굴로 그를 막아선 것이다.그는 체념한 듯 집에서 다시 빈둥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SNS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진을 꾸준히 올렸다.사진 각도로 보아 문나리가 찍어준 듯했다.다만 땀으로 범벅된 모습은 기타까지 기름져 보였다.그는 나를 약 올리려는 듯 60초짜리 음성 문자까지 보냈다.문자에서 그는 내가 자신을 너무 억압했다고 비난했다.“다희야, 난 이제야 남자답게 사는 것 같아. 가장 노릇 하는 게 뭔지 이제 알겠어.”나는 헛웃음이 나왔다.가장?땡전 한 푼 없는 주제에 가장 노릇을 한다니, 얼마 못 가 거덜 날 게 뻔했다.월말도 안 됐는데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신들... 요즘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하던데.”그는 이웃들이 모두 노인들인데 참다못해 자신에게 항의했다고 했다.“모두 나이 드신 분들이라 잠귀가 밝으셔서 맨날 벽 너머 엿듣는다니까.”나는 소름이 돋는 걸 애써 참으며 억지로 웃으면서 이혼해서 이사 나왔다고 했다.“그래.”집주인은 잠시
나는 마지막 옷가지까지 상자에 담고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전화를 걸었다.아래층에는 내가 불러온 이삿짐센터가 대기 중이었다.“이제 올라와서 옮기셔도 됩니다.”진철운은 허둥지둥 달려와 내 팔을 붙잡았다.“뭘 옮겨? 너 뭐 하는 거야?”나는 차갑게 손을 뿌리쳤다.“아침 배 터지게 먹었지? 나 다 봤어.”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여전히 시치미를 뗐다.“무슨 소린지 모르겠네.”나는 웃으며 100킬로에 가까운 그의 육중한 몸을 쳐다보았다.“시간 나면 살 좀 빼. 나리 씨의 가녀린 팔다리 다 부러지겠다.”그제야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난 더 이상 말 섞기도 싫었다.“나리 씨 죽은 남편을 부러워한다며. 네 소원 들어줄게. 이혼 서류는 탁자 위에 있으니까 얼른 서명해.”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집은 두 달 뒤 계약 만료야.”나눌 재산도 거의 없었다.결혼 3년, 나는 그저 그가 깔끔한 소년에서 절제력 없는 뚱뚱한 중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이다.후회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진철운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애써 괜찮은 척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없으면 못 살 줄 알아? 이젠 네 잔소리도 질렸어. 이혼? 좋지.”그는 성큼성큼 탁자로 가서 펜을 집어 들었지만, 선뜻 서명하지 못했다.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리가 너보다 백배는 나아. 나랑 이혼하면 너 분명 후회할 거야.”나는 그가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순간 속이 시원했다....부모님 집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이 소식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임미숙은 그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했었다.하지만 매번 거짓 소문이었고 그제야 비로소 포기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고 주민들 모두 보상 계획서를 받았다.내가 이혼했다는 소식에 우리 부모님은 기뻐하셨다.하지만 진철운이 젊은 과부와 바람피웠다는 얘기를 듣고 난 엄마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그놈은 체면도 없어? 남들은 숨기려
그는 움찔하더니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날 노려봤다.“잔소리 좀 그만해. 걷는 것도 트집, 앉는 것도 트집, 옷 안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 것도 트집이잖아.”그는 담배를 탁 끄더니 성질을 부렸다.“다희야, 너 나가서 한번 봐. 나처럼 마누라 옆에 붙어사는 남자가 몇이나 되는지. 전 세계를 뒤져도 없을걸? 복에 겨워도 너무 겨운 줄 알아.”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마누라 옆에 붙어산다고? 뻔뻔하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나는 그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젊은 시절, 자유분방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그의 모습에 반했었다.그는 항상 음악에 대한 꿈이 있다고 말했지만, 음악 꿈은 꿈만 꾼 게 아니었다.몇 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에서 탈락한 후, 그는 좌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는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그 후로 그는 집에서 기타를 치거나 잠만 자면서 살이 엄청나게 쪘다.부모님이 체면 불고하고 제자들에게 부탁해 일자리를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는 아직도 침대와 한 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그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다희야, 나리처럼 이해심 좀 가져 봐.”그러고는 억울하다는 듯 덧붙였다.“나도 사람답게 살아야 할 거 아니야?”그 순간, 나는 그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내 얼굴이 굳어지자, 그도 입을 다물었다.한참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투덜거리며 신발을 갈아 신었다.“너랑 결혼해서 좋을 게 뭐야? 집에 와도 따뜻한 밥 한 끼 못 먹는데.”그는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다가 뒤돌아보며 말했다.“나 출근한다. 다희야, 너도 잘 생각해봐. 맨날 나랑 시비 걸지 말고.”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숨을 헐떡이며 밖으로 나가는 꼴이 한심했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가방이 제대로 걸쳐지지도 않았다.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이미 중년의 모습이었다.젊은 시절 우리 집 앞에서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소년은 온데간데없었다.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회사 전화를 받고서야 나는 진철운이 무단결근한 걸 알았다.아침 일찍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아침 먹으러 간다며 나간 사람이었다.전화도 안 받자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마당에서 햇볕을 쬐던 할머니들은 나를 보자마자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할머니들의 시선은 나와 분식집을 번갈아 훑었고 평소 북적이던 분식집 문은 닫혀 있었다.이때 박 할머니가 머뭇거리다 나에게 손짓하고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뒤쪽으로 돌아가서 봐봐.”이미 예감하고 있었지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분식집 뒤편으로 돌아가 열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람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창문에 등을 돌리고 있는 하얀 등짝, 진철운 그 인간이 분명했다.문을 부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 두 장을 찍었다.이때 헝클어진 머리의 문나리가 눈을 뜨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하지만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진철운의 목을 끌어안았다.너무 뻔뻔한 모습이었다.나는 손발이 저려와 간신히 발길을 돌려 계단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거실에 멍하니 앉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노와 함께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진철운 같은 인간마저 바람을 피우다니.이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사람의 친구 추가 요청이었다.수락하자 상대방은 보기에도 민망한 짧은 동영상 두 개를 보내왔다.집 CCTV로 찍힌 영상인 듯했다.영상 속 진철운은 문나리를 끌어안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그가 말했다.“우리 집사람은 NPC 같아. 가까이 가면 퀘스트만 줘.”문나리는 그의 품에 안겨 웃으며 맞장구쳤다.“남자가 다 하면 아내가 왜 필요해요?”“그래, 맞아. 밥 먹는 것 가지고도 잔소리야. 쩝쩝거리지 말라고.”문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나는 오빠가 쩝쩝거리는 게 더 좋은데.”“맛있으니까 쩝쩝거리는 거지. 우리 마누라는 잔소리만 해.”나는 휴대폰을 부술 듯이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화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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