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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마지막 옷가지까지 상자에 담고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전화를 걸었다.

아래층에는 내가 불러온 이삿짐센터가 대기 중이었다.

“이제 올라와서 옮기셔도 됩니다.”

진철운은 허둥지둥 달려와 내 팔을 붙잡았다.

“뭘 옮겨? 너 뭐 하는 거야?”

나는 차갑게 손을 뿌리쳤다.

“아침 배 터지게 먹었지? 나 다 봤어.”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여전히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나는 웃으며 100킬로에 가까운 그의 육중한 몸을 쳐다보았다.

“시간 나면 살 좀 빼. 나리 씨의 가녀린 팔다리 다 부러지겠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난 더 이상 말 섞기도 싫었다.

“나리 씨 죽은 남편을 부러워한다며. 네 소원 들어줄게. 이혼 서류는 탁자 위에 있으니까 얼른 서명해.”

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은 두 달 뒤 계약 만료야.”

나눌 재산도 거의 없었다.

결혼 3년, 나는 그저 그가 깔끔한 소년에서 절제력 없는 뚱뚱한 중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이다.

후회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진철운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애써 괜찮은 척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없으면 못 살 줄 알아? 이젠 네 잔소리도 질렸어. 이혼? 좋지.”

그는 성큼성큼 탁자로 가서 펜을 집어 들었지만, 선뜻 서명하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리가 너보다 백배는 나아. 나랑 이혼하면 너 분명 후회할 거야.”

나는 그가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순간 속이 시원했다.

...

부모님 집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임미숙은 그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매번 거짓 소문이었고 그제야 비로소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고 주민들 모두 보상 계획서를 받았다.

내가 이혼했다는 소식에 우리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하지만 진철운이 젊은 과부와 바람피웠다는 얘기를 듣고 난 엄마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

“그놈은 체면도 없어? 남들은 숨기려고 애를 쓰던데 그놈은 숨길 마음도 없었나 보네.”

나는 씁쓸한 기분을 억눌렀다. 진철운도 처음에는 숨기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우리는 돈을 아끼려고 낡고 허름한 집에 살았다.

이웃들은 대부분 나이 든 분들이라 시간이 많았고, 남의 일에 관심도 많았다.

내가 평소에 그 할머니들이랑 말 안 섞고 지낸 게 천만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그놈의 추잡한 짓거리를 알았을 것이다.

임미숙에게서 제일 먼저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젊은 시절 고생하며 아들을 키웠고 아들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여자였다.

전화기 너머로 폭풍 같은 욕설이 쏟아졌다.

“몇 년 동안 아들도 못 낳은 주제에 이혼한다고? 네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이라도 차려줬으면 철운이가 딴 데 가서 밥을 먹었겠니?”

이런 험한 말들은 진철운과 결혼했을 때도 여러 번 비꼬며 해왔다.

그때는 한창 진철운이 나랑 깨가 쏟아질 때라 유난히 감싸주었다.

“다희는 직장에 다니니까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게 당연한 거죠. 아래에 내려가면 뭐가 없어요?”

임미숙은 비꼬듯 말했다.

“못 일어난다고? 날마다 일찍 일어나봐. 못 일어나나.”

그때 일을 떠올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항상 아들이 굶어 죽을까 봐 걱정했는데 이젠 그 과부랑 살게 됐으니 굶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예상대로 내가 이사 나가자마자 문나리가 그 집으로 들어왔다.

진철운은 아직 떠벌리고 다니지 못했지만, 문나리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영상을 보내왔다.

집은 그대로였지만, 내 짐을 뺀 텅 빈 방에는 큰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침대 시트는 내가 미처 갈아 끼우지 못한 것으로 진철운이 자면서 흘린 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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