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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는 움찔하더니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날 노려봤다.

“잔소리 좀 그만해. 걷는 것도 트집, 앉는 것도 트집, 옷 안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 것도 트집이잖아.”

그는 담배를 탁 끄더니 성질을 부렸다.

“다희야, 너 나가서 한번 봐. 나처럼 마누라 옆에 붙어사는 남자가 몇이나 되는지. 전 세계를 뒤져도 없을걸? 복에 겨워도 너무 겨운 줄 알아.”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마누라 옆에 붙어산다고? 뻔뻔하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나는 그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젊은 시절, 자유분방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그의 모습에 반했었다.

그는 항상 음악에 대한 꿈이 있다고 말했지만, 음악 꿈은 꿈만 꾼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에서 탈락한 후, 그는 좌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집에서 기타를 치거나 잠만 자면서 살이 엄청나게 쪘다.

부모님이 체면 불고하고 제자들에게 부탁해 일자리를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는 아직도 침대와 한 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다희야, 나리처럼 이해심 좀 가져 봐.”

그러고는 억울하다는 듯 덧붙였다.

“나도 사람답게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 순간, 나는 그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내 얼굴이 굳어지자, 그도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투덜거리며 신발을 갈아 신었다.

“너랑 결혼해서 좋을 게 뭐야? 집에 와도 따뜻한 밥 한 끼 못 먹는데.”

그는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다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나 출근한다. 다희야, 너도 잘 생각해봐. 맨날 나랑 시비 걸지 말고.”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숨을 헐떡이며 밖으로 나가는 꼴이 한심했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가방이 제대로 걸쳐지지도 않았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이미 중년의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 우리 집 앞에서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소년은 온데간데없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내 손을 잡고 맹세하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다희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거고 힘든 일은 다 내가 할 거예요.”

홀어머니 임미숙 앞에서도 그는 나를 감쌌다.

“다희는 제가 평생 함께할 사람이에요. 엄마, 나를 사랑한다면 다희도 사랑해주세요.”

내가 아파서 앓아누웠을 때 눈물까지 글썽이며 간호해 주던 그 다정한 남자는 이제 완전히 변했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고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진동했다.

진철운, 임미숙, 그리고 모르는 번호의 전화였다.

문자를 열어보니 문나리가 도발적인 문자를 여러 개 보내왔다.

[다희 씨, 철운 오빠가 제 죽은 남편을 너무 부러워하네요. 저 같은 여자랑 결혼했으면 행복했을 거라는데요.]

허 참. 나는 문자를 두 번이나 곱씹어 읽어 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슬픔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여자는 처음 봤다.

문나리는 반년 전쯤 이곳으로 이사 와서 근처에 분식집을 열었다.

남편은 일 년 전에 병으로 죽었고 시댁에서 쫓겨났다고 들었다.

그녀는 몸매도 좋았고 갸름한 턱에 치켜 올라간 눈매가 남자를 꾀기에 딱 좋았다.

그때부터 아침잠 많던 진철운은 아침마다 분식집에 들락거렸고 문나리 이야기도 자주 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문나리가 만들어 준 아침이 특별하다고 자랑도 했었다.

“나리는 내 입맛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 너무 담담하게 먹으면 기운이 안 나거든.”

이제야 나는 그 특별한 아침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가 요즘 아이 갖자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갔다.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진철운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그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다희야, 너 미쳤어? 네가 뭔데 내 회사에 사표를 내!”

하지만 바닥에 놓인 몇 개의 상자를 보자 그의 분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꺼졌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너... 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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