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병실에 들어선 시연은 침대 옆에 앉았다. 고상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시연아,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 짐은 다 챙긴 게야?” ‘준비? 짐을 챙긴다는 건 또 무슨 말씀이시지?’ 시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대답할 수 없었다.곧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고상훈이 말했다.“설마 유건이가 너한테 말을 하지 않은 게야? 이 자식이! 이럴 줄 알았어, 성의 없이 한 대답일 줄 알았다고!” 사실, 조만간 고상훈의 오랜 친구가 생일을 쇨 예정이었는데, 그는 직접 갈 수 없어서 고유건에게 지시연과 함께 가라고 한 것이었다. 이는 고상훈이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었다.이 나이까지 살아온 그가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유건과 시연을 붙여 놓으려 했다. “시연아, 이 할아비의 말을 좀 듣거라.” 고상훈은 두 젊은이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유건이가 다른 사람한테 지시를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 감정을 잘 가다듬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네.”지시연은 반박할 수 없어서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착한 아이구나.”고상훈이 흐뭇하게 웃었다.“시연아, 유건이는 너한테 맡기마.” 병실에서 나온 지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습이 중단된 일을 겪은 그녀는 유건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상훈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시연은 어려서부터 그 누구의 귀여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상훈은 늘 시연에게 잘해주었고, 그녀는 이를 감사하고 소중히 여겼다.‘그래, 다녀오자. 다 어르신을 위한 일이잖아.’ ‘어차피 이미 실습을 정지당했기 때문에 휴가를 낼 필요도 없어. 하지만...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면 선물은 준비해야겠지?’ ‘돈이 없어서 비싼 걸 살 수는 없으니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자.’ 마침 시간이 있었던 시연은 천음사로 향하는데... 그녀는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싸고 유건에게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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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지시연을 놔줘.”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유건은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지한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넘쳐흘렀다. “예, 형님.”지한이 황급히 손을 놓았다.하지만 이런 소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연은 깨어나지 않았다. 순간,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이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어쨌든 지시연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여기 온 거잖아. 나중에 할아버지께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는 건 내가 될 거라고.’ ‘정말 귀찮은 여자 같으니라고!’ 표정이 굳은 유건은 허리를 굽혀 시연을 가로로 안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가 시연을 옮기던 찰나, 그녀의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무릎에 있는 두 개의 멍이 드러났다. ‘이게 뭐야?’ 유건은 멍해졌다.‘이래서 어젯밤에 아프다고 한 건가? 근데 이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지?’ 그의 포근한 가슴에 기댄 시연이 놓지 못하겠다는 듯 유건의 목덜미를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은이야...” 유건은 또 한 번 멍해졌다.‘은이? 사람 이름이잖아?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지시연이 왜 잠결에 여자애 이름을 부르는 거지?’ 유건은 그제야 시연의 길고 볼륨감 있는 속눈썹, 모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얼굴, 그리고 분홍빛 도는 입술이 살짝 내밀어진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유건은 잠시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깨어난 시연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고... 유건 씨?” 유건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손을 풀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채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일부러 무섭게 말했다.“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내 방문 앞에서 죽지 말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두 걸음 세 걸음 멀어져갔다. 시연은 의아했다.‘목숨을 저주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지한 또한 그녀에게 말했다.“밤새 많이 추웠을 텐데, 샤워로 추위를 좀 몰아내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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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건이 가문?’‘정말 재미있는 아가씨군.’한강우는 웃겨서 고유건을 힐끗 바라보았다. “오, 그럼 오늘 유건이랑 뭐 하러 온 거지?” ‘상훈이의 손자인 유건이는 다 좋은데, 인간미가 별로 없다니까? 그런 사람이 모처럼 나를 웃겼군.’ 시연이 솔직하게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저도 유건 씨와 함께 한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내가 아가씨한테 고마워할 일이 다 생기는군.”한강우가 말했다.“좋아,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왔다면, 준비한 선물은 있는 건가?” 이 말을 들은 유건은 흠칫 놀랐다.‘큰일이다, 지시연이 무슨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어?’‘가뜩이나 저 노친네는 흥미도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야!’ 그러나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있습니다.” ‘정말 준비했다고?’유건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시연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한테 민폐되는 짓은 하지 마!” 그의 손을 뿌리친 시연은 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고, 몸을 굽히며 한강우의 앞에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그날 천음사에 다녀온 이유였다. “조그마한 제 성의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늘 오늘처럼 행복한 날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덕담 고맙네.” 비단 상자를 열어본 한강우는 정신이 멍해졌다.“이건...” 한강우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노여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저 여자가 한 회장님의 미움을 산 건 아닐까?’ 특히 유건은 더욱 불안해했다. 시연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천음사의 평안줄인데,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 말을 마치자, 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눈빛은 모두 시연에게 쏠렸다. “좋군, 좋아.”한강우의 말과 표정에서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유건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강우를 바라보았다. “천음사의 평안줄은 외부에서 판매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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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시간이 생명이야!’ ‘3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1초라도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한 회장님은 여기서 돌아가시고 말 거야!’ 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지금 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겠어요? 저한테 2분만 주세요! 한 회장님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게요!” 1초, 그리고 2초...시연이 다급해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서요! 시간이 없다고요!” 일촉즉발의 순간, 유건은 시연을 믿기로 결정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는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래.”유건이 손을 놓았다.시연이 기뻐하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칼이요! 책상 위에 있어요!” “알겠어.”유건은 즉각적으로 시연의 조수가 되어 테이블 위의 과일 쟁반에 있던 칼을 챙겨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 대표님, 제 정신입니까?” 두려움을 느낀 학운의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했고, 유건을 붙잡으며 말했다.“한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고작 이런 여자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요! 혹시라도 한 회장님께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생기면...” “비켜요!”유건은 학운의 쓸데없는 말을 들을 겨를이 없어서 팔을 뿌리치며 그를 따돌렸고, 바로 시연에게 칼을 건넸다.“자.” “만년필도 주세요!” 시연은 유건이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건은 두말없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시연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만년필을 받아 든 시연은 신속하게 그것을 분해했고, 펜 뚜껑을 꺼내어 다른 한쪽을 막고 있던 부분도 제거했다. 그래서 만년필은 이내 양쪽이 뚫린 튜브가 되었다.시연은 한강우의 목덜미를 만지며 빠르게 위치를 잡았고, 손에 들고 있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베인 상처에 만년필을 꽂아 넣었다. 학운과 이 자리에 있던 고용인들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등을 돌릴 뿐이었다. “구급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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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고유건 씨.”시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유건의 품에 기댄 그녀는 그의 가슴과 너무 가깝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심장박동까지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녀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내려주세요, 전 괜찮아요.” “괜찮다고?”유건의 눈동자에는 온통 그윽하고 차가운 기운만이 감돌았다.“곧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서?” 시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가 성질이 나쁘고 입이 거친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달았다.‘잘생긴 얼굴이 아깝단 말이지.’ “정말 괜찮아요, 저는 그냥... 배가 고플 뿐이에요. 저혈당이라서 다리에 힘이 없네요.” “그럼 밥 먹으러 가자!”병원은 명리산 부근에 있었는데, 산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유건은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외진 곳에 있던 식당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요리도 별로인 것처럼 보였다. 유건이 은근히 짜증스러운 기색을 표했다.“맛있는 게 없네, 이러다가는 대충 한 끼를 때우게 되겠어.” “저는 괜찮아요.”시연은 방금 종업원이 준 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다. “배만 채우면 되니까요.” “음식을 안 가리는구나?”유건이 물을 두 잔 따랐고,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직 젊은데 왜 그렇게 몸이 약해?”이 말에는 조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익숙해져 버린 시연이 설명했다.“건강은 괜찮은데, 저혈당이 있어서 배고픔을 잘 못 견뎌요...” 노크 소리가 들리고, 룸으로 들어온 지한의 손에는 연고가 들려 있었다. “형님, 여기 있습니다.”유건이 연고를 받으며 지한에게 지시했다.“따뜻한 물이랑 수건도 준비해 줘.”“네.”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곧 웨이터가 뜨거운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대표님, 제가 뭘 하면 되나요?”“아무것도요.” 유건은 손을 흔들며 웨이터에게 나가라고 표시한 뒤, 의자를 가리키며 지시연을 향해 말했다.“올려.”‘직접 발라주려는 건가?’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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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시연은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유건이 쓰러진 여자친구에게 달려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지금 고유건은 장소미를 만나러 갔고, 내 전화까지 끊었으니 내가 어찌 됐건 상관없다는 말이잖아...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가야겠네.’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떠났다.식당을 나서자 그녀는 어리둥절했다.명리산 일대에 시연은 온 것이 처음이었다. 조금 전 그녀가 혼란스러운 상태로 차를 타고 온지라 이곳이 이렇게 외진 곳인 줄은 알지 못했다.근처에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차로 오기 때문에 택시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시연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를 생각이었다.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택시 기사들도 시연의 콜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그냥 좀 더 걸어가 보자.’다른 방법이 없어서 시연은 두 다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큰길로 가면 차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계속 걸었다.그러나 식당에서 점차 멀어지자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게다가 요 며칠 줄곧 비가 와서 도로 상태는 매우 걷기 힘들 정도로 나빴다.시연은 어둠을 더듬어 걷다가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무슨 일이지?” 시연은 허리를 굽혀 확인해 보았는데 마치 진흙탕에 빠진 것 같았다.그녀는 발을 빼려고 힘껏 다리를 당겼다. 발이 쑥 빠졌지만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보이지 않았다.잇따른 불운에 시연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큰 길목에 다다랐을 때 시연이 갑자기 발바닥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아...”시연은 비명을 질렀다.잘 보이지 않지만 실습 경험을 통해서 시연은 유리조각이 발바닥을 찌른 것이라고 판단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유리조각을 뽑아냈다. 피가 손을 물들였다....병원, 병실 안.고유건은 장소미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감기로 인한 미열이었다.소미는 창백한 얼굴로 미안해하며 말했다.“유건 씨, 미안해요. 이런 일로 귀찮게 했네요.”“다 내 잘못이에요.”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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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놔요, 이 손 놓으라고요!”시연은 손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유건의 손은 집게처럼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왜 자꾸 움직여!”유건은 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늘 밤 일은 확실히 자신의 잘못이었지만, 자신이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그도 분명히 시연에게 무척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그녀가 마세라티에서 내리며 낯선 남자를 향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는...”유건이 입을 열어 사과하려고 했다.“지금은 고유건 씨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시연은 유건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까는 나를 버려두고 가놓고, 이제 다시 돌아와서 도리어 화를 내는 건 무슨 경우야?’시연은 팔을 빼서 유건의 손에서 겨우 벗어났고, 균형을 잃고 계속 뒷걸음질 치다가 발바닥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통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녀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아아...”시연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 유건도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또 무슨 수작이야?”시연은 분노하며 말했다.“고유건 씨는 어차피 안 보이잖아요, 제가 어떻든 당신과 상관없어요!”‘이 여자, 내가 쓸데없이 신경 썼군!유건이 떠나려고 몸을 돌릴 때, 시연의 스커트 자락 아래로 붉은 핏물이 묻은 것을 보았다.‘피? 다친 건가?“왜요?”유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쳤어?”그는 손을 내밀어 확인하려 했다.“내가 볼게...”찰싹!시연은 유건이 내민 손을 쳐냈다.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유건은 눈을 가늘게 떴다.“지시연, 나를 때린 거야?”“아니에요, 그게 아니라...”시연은 당황하여 머리를 가로저으며 순간적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그냥 손을 쳐냈을 뿐인데 어떻게 때렸다는 거지?’시연은 유건을 장소미의 남자 친구로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었다.유건은 곧장 그녀의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지금의 시연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인 왼발에 감긴 천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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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시연은 유건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컵라면이에요, 익기를 기다리고 있고요.”‘도대체 무슨 말이지?’‘이 여자, 일부러 내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가?’유건은 불쾌함을 참았다. ‘우리 둘의 사이는 비록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여자도 전에 날 크게 도왔으니까.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먹는 이 여자를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는데...’‘내가 이 여자한테 분명히 카드를 주었는데도, 왜 일자리를 찾고, 심지어 여기에서 컵라면을 먹을까?’‘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자.’“그만 먹어! 라면이 뭐가 맛있어? 내가 다른 거 사 줄게.”“됐어요, 저...”그러나 유건은 곧장 시연을 끌고 식품코너로 갔다.“뭐 먹고 싶어?”시연은 냉담하게 쳐다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말 안 해?” 유건은 잘 생긴 짙은 눈썹을 비틀며 말했다.“그럼 내가 정하지.”유건은 진열대에서 연어초밥, 생우유, 그리고 계란찜을 가져왔다.그는 곧장 계산을 하고 돌아서서 시연에게 먹으라고 건네주었다.“먹어 봐.”시연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도 하지 않고 음식을 받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녀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길 건너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이 순간, 시연은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비록 뒷모습, 뒤통수만 보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은범이었어!’그렇다. 이때 노은범의 곁에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있는데, 서로 웃고 떠들며 걸어가면서 점점 멀어졌다.‘그 사람이 돌아왔네!’시연은 갑자기 유건을 밀치며 외쳤다.“좀 비켜주세요!”유건이 산 그 음식들이 갑자기 온 바닥에 흩어졌다.유건의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마치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이런 배은망덕한 계집애!’“지시연!”시연은 그를 무시하고 편의점을 뛰쳐나와 다급히 그를 쫓아갔다. “은이야, 은이야...”‘은이야?'시연이 곧바로 뛰어나갔지만 노은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어디 갔지?’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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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맞습니다.”안색이 아주 어두워진 유건의 얼굴을 보고 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다만, 아직 임신 초기입니다. 3주밖에 안 됐어요. 산모가 저혈당으로 쓰러져서 임신이 확인된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확인이 어려웠을 겁니다.”“허.”유건은 냉담한 눈빛으로 음험하고 차갑게 웃었고, 갑자기 몸을 돌려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지시연, 다 들었어?”시연은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유건은 침을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물었다.“저는...”시연은 자신의 옷깃을 움켜잡고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사실, 지금 시연이 스스로도 매우 놀랐다. ‘임신이라니!’‘로얄호텔에서 그날 밤!’‘그날 밤, 내가 너무 긴장해서 전혀 그 남자가 피임 조치를 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돌이켜 보면, 아무 준비도 없었던 것 같아...’‘내가 그래도 의사인데 이런 초보적이고,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다니!’시연이 오랫동안 말이 없자, 유건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고, 소리 없는 조롱이 눈가에 번졌다.“이 아이를 낳겠다고 말할 건 아니지?”‘설령 나와 지시연이 계약 결혼 관계이고 아무리 명목상의 부부일 뿐이지만... 설령 지시연 어머니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더라도... 지시연이 내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어!’‘우리 둘이 이혼하지 않는 한 지시연의 출산은 절대 불가능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유건은 시연이 당장 자신과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그리하여 자기 할아버지 고상훈의 체면을 봐서도, 시연이 전에 도와준 것을 봐서, 시연이 원하는 대로 이혼 얘기를 나중에 다시 상의하자고 동의했다. 그러나 이번에 만약에 시연이 감히 뱃속에 그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유건은 즉시 시연을 끌고 이혼 수속을 할 생각이었다!한편, 시연의 머릿속도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이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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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시연은 요즘 임신으로 인한 걱정이 많아서 무엇을 해도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도 찾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자꾸 잡념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에 지시연은 대부분의 시간을 임진아의 곁에서 보냈다. 진아가 돌아오자, 시연이 중얼거렸다.“드디어 왔네! 배고파 죽을 뻔했잖아.”“보자.”진아가 빙그레 웃으며 시연의 가슴을 어루만졌다.“야, 큰일이네, 배가 엄청 고파서 여기도 작아졌잖아!” “하하...”시연이 웃으며 뒹굴었다.“임진아, 너 자꾸 장난칠래?”“빨리 일어나, 나가서 밥 먹자!”“좋아.”두 사람은 강울대 뒤편의 거리로 향했는데, 이곳은 밤이 되면 시끌벅적해졌으며, 작은 것부터 길거리 통닭, 포장마차 음식, 그리고 미슐랭급 식당까지 있는 곳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두 사람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임진아, 지시연, 이런 우연도 있네?”그 사람은 두 사람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창인 우찬이었다. 시연은 미소를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아가 우찬을 힐끗 보았다.“우연? 강울대 학생 중에 여기에 와서 밥을 안 먹는 사람도 있던가?” 진아가 또 우찬을 부추겼다.“이렇게 수준 낮은 대화를 걸다니... 왜, 우리한테 밥이라도 사려는 거야?” 상대방이 놀라서 물러날 거라는 진아의 예상과 달리, 우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살게! 가자!”진아와 시연이 서로를 마주 봤다.‘이게 웬 횡재야?’ “분명히 너한테 반한 거야!” 진아가 작은 소리로 시연에게 말했다.“물론 나한테 반한 걸 수도 있지. 됐어, 그건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공짜로 먹는 밥이잖아? 내가 공짜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우찬이가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일단 가보자!” 진아에게 끌려가던 시연은 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우찬은 두 사람을 데리고 새로 개업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래층은 홀이고 위층은 룸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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