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요, 이 손 놓으라고요!”시연은 손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유건의 손은 집게처럼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왜 자꾸 움직여!”유건은 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늘 밤 일은 확실히 자신의 잘못이었지만, 자신이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그도 분명히 시연에게 무척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그녀가 마세라티에서 내리며 낯선 남자를 향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는...”유건이 입을 열어 사과하려고 했다.“지금은 고유건 씨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시연은 유건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까는 나를 버려두고 가놓고, 이제 다시 돌아와서 도리어 화를 내는 건 무슨 경우야?’시연은 팔을 빼서 유건의 손에서 겨우 벗어났고, 균형을 잃고 계속 뒷걸음질 치다가 발바닥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통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녀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아아...”시연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 유건도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또 무슨 수작이야?”시연은 분노하며 말했다.“고유건 씨는 어차피 안 보이잖아요, 제가 어떻든 당신과 상관없어요!”‘이 여자, 내가 쓸데없이 신경 썼군!유건이 떠나려고 몸을 돌릴 때, 시연의 스커트 자락 아래로 붉은 핏물이 묻은 것을 보았다.‘피? 다친 건가?“왜요?”유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쳤어?”그는 손을 내밀어 확인하려 했다.“내가 볼게...”찰싹!시연은 유건이 내민 손을 쳐냈다.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유건은 눈을 가늘게 떴다.“지시연, 나를 때린 거야?”“아니에요, 그게 아니라...”시연은 당황하여 머리를 가로저으며 순간적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그냥 손을 쳐냈을 뿐인데 어떻게 때렸다는 거지?’시연은 유건을 장소미의 남자 친구로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었다.유건은 곧장 그녀의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지금의 시연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인 왼발에 감긴 천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
시연은 유건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컵라면이에요, 익기를 기다리고 있고요.”‘도대체 무슨 말이지?’‘이 여자, 일부러 내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가?’유건은 불쾌함을 참았다. ‘우리 둘의 사이는 비록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여자도 전에 날 크게 도왔으니까.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먹는 이 여자를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는데...’‘내가 이 여자한테 분명히 카드를 주었는데도, 왜 일자리를 찾고, 심지어 여기에서 컵라면을 먹을까?’‘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자.’“그만 먹어! 라면이 뭐가 맛있어? 내가 다른 거 사 줄게.”“됐어요, 저...”그러나 유건은 곧장 시연을 끌고 식품코너로 갔다.“뭐 먹고 싶어?”시연은 냉담하게 쳐다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말 안 해?” 유건은 잘 생긴 짙은 눈썹을 비틀며 말했다.“그럼 내가 정하지.”유건은 진열대에서 연어초밥, 생우유, 그리고 계란찜을 가져왔다.그는 곧장 계산을 하고 돌아서서 시연에게 먹으라고 건네주었다.“먹어 봐.”시연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도 하지 않고 음식을 받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녀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길 건너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이 순간, 시연은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비록 뒷모습, 뒤통수만 보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은범이었어!’그렇다. 이때 노은범의 곁에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있는데, 서로 웃고 떠들며 걸어가면서 점점 멀어졌다.‘그 사람이 돌아왔네!’시연은 갑자기 유건을 밀치며 외쳤다.“좀 비켜주세요!”유건이 산 그 음식들이 갑자기 온 바닥에 흩어졌다.유건의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마치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이런 배은망덕한 계집애!’“지시연!”시연은 그를 무시하고 편의점을 뛰쳐나와 다급히 그를 쫓아갔다. “은이야, 은이야...”‘은이야?'시연이 곧바로 뛰어나갔지만 노은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어디 갔지?’그녀
“맞습니다.”안색이 아주 어두워진 유건의 얼굴을 보고 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다만, 아직 임신 초기입니다. 3주밖에 안 됐어요. 산모가 저혈당으로 쓰러져서 임신이 확인된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확인이 어려웠을 겁니다.”“허.”유건은 냉담한 눈빛으로 음험하고 차갑게 웃었고, 갑자기 몸을 돌려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지시연, 다 들었어?”시연은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유건은 침을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물었다.“저는...”시연은 자신의 옷깃을 움켜잡고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사실, 지금 시연이 스스로도 매우 놀랐다. ‘임신이라니!’‘로얄호텔에서 그날 밤!’‘그날 밤, 내가 너무 긴장해서 전혀 그 남자가 피임 조치를 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돌이켜 보면, 아무 준비도 없었던 것 같아...’‘내가 그래도 의사인데 이런 초보적이고,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다니!’시연이 오랫동안 말이 없자, 유건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고, 소리 없는 조롱이 눈가에 번졌다.“이 아이를 낳겠다고 말할 건 아니지?”‘설령 나와 지시연이 계약 결혼 관계이고 아무리 명목상의 부부일 뿐이지만... 설령 지시연 어머니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더라도... 지시연이 내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어!’‘우리 둘이 이혼하지 않는 한 지시연의 출산은 절대 불가능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유건은 시연이 당장 자신과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그리하여 자기 할아버지 고상훈의 체면을 봐서도, 시연이 전에 도와준 것을 봐서, 시연이 원하는 대로 이혼 얘기를 나중에 다시 상의하자고 동의했다. 그러나 이번에 만약에 시연이 감히 뱃속에 그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유건은 즉시 시연을 끌고 이혼 수속을 할 생각이었다!한편, 시연의 머릿속도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이 아이를
시연은 요즘 임신으로 인한 걱정이 많아서 무엇을 해도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도 찾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자꾸 잡념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에 지시연은 대부분의 시간을 임진아의 곁에서 보냈다. 진아가 돌아오자, 시연이 중얼거렸다.“드디어 왔네! 배고파 죽을 뻔했잖아.”“보자.”진아가 빙그레 웃으며 시연의 가슴을 어루만졌다.“야, 큰일이네, 배가 엄청 고파서 여기도 작아졌잖아!” “하하...”시연이 웃으며 뒹굴었다.“임진아, 너 자꾸 장난칠래?”“빨리 일어나, 나가서 밥 먹자!”“좋아.”두 사람은 강울대 뒤편의 거리로 향했는데, 이곳은 밤이 되면 시끌벅적해졌으며, 작은 것부터 길거리 통닭, 포장마차 음식, 그리고 미슐랭급 식당까지 있는 곳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두 사람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임진아, 지시연, 이런 우연도 있네?”그 사람은 두 사람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창인 우찬이었다. 시연은 미소를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아가 우찬을 힐끗 보았다.“우연? 강울대 학생 중에 여기에 와서 밥을 안 먹는 사람도 있던가?” 진아가 또 우찬을 부추겼다.“이렇게 수준 낮은 대화를 걸다니... 왜, 우리한테 밥이라도 사려는 거야?” 상대방이 놀라서 물러날 거라는 진아의 예상과 달리, 우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살게! 가자!”진아와 시연이 서로를 마주 봤다.‘이게 웬 횡재야?’ “분명히 너한테 반한 거야!” 진아가 작은 소리로 시연에게 말했다.“물론 나한테 반한 걸 수도 있지. 됐어, 그건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공짜로 먹는 밥이잖아? 내가 공짜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우찬이가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일단 가보자!” 진아에게 끌려가던 시연은 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우찬은 두 사람을 데리고 새로 개업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래층은 홀이고 위층은 룸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시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진아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뚫린 입이면 다인 줄 알아?!”우찬이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와, 이게 뚫린 입이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일이야? 사실일 뿐이잖아. 그때 전교생이 두 사람을 질투할 정도였는데?”“닥쳐! 그만하지 못해?”“싫은데?”우찬이 일부러 또 물었다.“두 사람, 왜 헤어진 거야? 우리는 너희 사이가 너무 좋아서 너희가 끝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연애에서 결혼까지!” “그건 시연한테 물어봐야지.” 줄곧 말하지 않던 은범이 입을 열며 시연을 바라보았다. “시연이가 결정한 거지, 뭐. 쟤가 먼저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거든.” 툭!갈비 한 조각을 뜯고 있던 시연이 그대로 탁자 위에 갈비를 떨어뜨렸다. ‘너무 방심했어.’ ‘노은범, 대체 뭐라는 거야?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니... 허, 말은 그럴싸하네.’“그래?”우찬은 시연을 잡고 꼬치꼬치 물었다.“시연아, 왜 그랬어? 우리 은범이 어디가 부족해서?” 시연의 마음속에는 떫은 슬픔이 만연했다. 시연이 나른하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도 안 나네. 내 아침밥을 사주지 않아서 그랬나?” 결국, 대답을 얼버무린 셈이었다. 진아도 조차도 이 대답을 듣고 멍해졌다.“하긴.”우찬이 은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여자는 원래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법이잖아. 은범아, 시연이 말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어. 지금 여자 친구한테는 더 세심하고 자상하게 해주란 말이지.” 국물을 먹던 시연이 또 한 번 멈칫했다. ‘여, 여자 친구가 생긴 건가?’“은범 씨!”그녀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의 여자가 은범의 이름을 외치며 이쪽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왔어?”은범이 의자를 끌어 그 여자를 앉혔다.“네.”웃으며 은범에게 기대어 앉는 여자의 모습은 작은 새의 모습과 같았다. 그녀가 은범에게 애교를 부렸다.“나 저거 먹을래요! 그리고 국도요! 아 국부터 한
강울대 뒷거리의 포장마차는 밤에 가장 시끌벅적했다.“사장님, 김치볶음밥 2인분 주세요!” 진아가 한 손으로 시연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비비며 불평했다. “다 우찬이 때문이야. 그 녀석 때문에 내가 밥을 먹는 시간이 지체된 거라고!” 시연도 배가 고파서 침을 삼켰다.“진아야, 나는 호두과자가 먹고 싶어.” “그래! 조금 있다가 가서 먹자.”입에서 나오는 대로 승낙한 진아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의심스럽다는 듯 시연을 훑어보았다. “요즘 먹는 양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한밤중에도 많이 먹는 것 같던데... 살찔까 봐 무섭지는 않아?”시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란함을 느꼈다. ‘그래, 내가 많이 먹기 시작했다는 걸 나도 느끼던 참이었어. 아마... 배 속에 있는 작은 녀석 때문이겠지?’ “볶음밥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진아가 핸드폰을 꺼내 결제하려 했다. 시연이 급히 말했다.“얼마예요? 제가 입금해 드릴게요.” “됐어...”“내가 입금할 거야!”겨우 1초도 티격태격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끼어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제가 계산할게요.” “누구지?”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마주한 두 사람은 즉각 멍해졌다.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은범의 출중한 옆태는 마치 신처럼 보였다. 시연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안 돼! 하지 마...” 하지만 결제 완료 알림은 은범이 이미 지불에 성공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은범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마주했고, 핸드폰을 보이며 말했다.“이미 했어.”하지만 인상을 찌푸린 시연은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밥 한 끼일 뿐이잖아?” 은범은 마음속의 두근거림과 불안을 억지로 눌렀다.“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작은 호의를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또 거절하면 본인을 지나치게 신경 쓴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 고마워.”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조금 풀
실시간 검색어 1위, 가장 끝에 적힌 붉은색의‘화제’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두드러져 있었다. 서버가 아주 느린 탓에, 지시연은 한참 기다리고서야 그 기사를 클릭할 수 있었다. 한 단락의 문장 뒤에는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다.그것은 한식당‘맛나리’의 입구에서 찍힌 것이었는데, CCTV 카메라 각도는 정확하지 않았다. 고유건이 입구를 나오자, ‘맛나리’의 발렛 파킹 직원이 그를 대신하여 문을 열어주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2초 동안 멍하니 있던 고유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는데, 이윽고 순식간에 그 발렛 파킹 직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영상은 이렇게 끝이 났는데, 시연의 마음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엄청 가볍게 찔렀어!”“역시 재벌 집안은 복잡하다니까?!”“고유건이 어느 병원으로 옮겨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아주 멋있다고 들었는데...” 수간호사가 갑자기 문 앞에 서서 손뼉을 쳤다.“자, 다 먹었어요? 다 먹었으면 어서 움직입시다!” 모두 바삐 가십을 멈추었다. 시연도 일어나서 도시락을 치웠다. “지 선생님.”수간호사가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119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칼에 찔린 환자를 보낼 테니까 진찰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칼에 찔린 환자?’‘설마, 고유건?’“하지만...”시연이 머뭇거렸다.“양석현 교수님께서는 아직 수술실에 계세요. 교통사고로 다친 환자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알아요.”수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내가 이미 수술실에 연락해 봤는데, 양 교수님께서 지 선생님께 진료를 부탁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수간호사가 시연을 향해 격려가 서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너무 긴장할 거 없어요. 양 교수님이 진찰하라고 하신 건, 지 선생님을 믿는다는 거니까요.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요.”‘말은 그렇지만...’“알겠습니다.”시연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재빨리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지시연이 응급
유건이 시연을 힐끗 보았다.“상관없어! 나는 너여야만 한다고!” 손을 놓지 않는 유건은 약간의 억울함이 있는 것 같았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리는 거지?’ 시연은 그를 지우주라고 여기며 어르고 달랬다.“양 교수님은 저의 선생님이세요. 그분은 전국적인 의학계의 권위자이시고요...” “그 사람이 누구든! 나는 그 사람 못 믿어.”무표정한 유건은 대단히 매서워 보였다. ‘말이 안 통하잖아?’ 시연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찰나, 지한이 들어왔다. 지한이 그녀에게 말했다.“지시연 씨, 부탁 좀 드릴게요. 요즘 형님께서는 계속 기괴한 일에 시달리셔서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그런데...”시연은 이해하지 못했다.“왜 저는 믿으시려는 거예요?” ‘나를 아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흥.”유건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으나, 여전히 높고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 “너를 믿는다는 게 아니야!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개미를 죽이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싶어.’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였기에 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수술실 안.유건은 이미 마취제를 맞고 깊은 잠에 빠졌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시연이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간호사에게 물었다.“양 교수님의 수술은 끝났나요?”“아직이요.”“양 교수님께서 지금 긴급한 상황이라고 하시면서 지 선생님의 실력을 믿는다고 하셨어요. 제게는 선생님께서 안심하고 수술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하셨고요. 양 교수님은 지 선생님의 선생님이시잖아요.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양 교수님께서 책임지실 거예요.”간호사가 말했다. 마음이 따뜻해진 시연은 걱정이 놓이는 듯했다. 유건의 창백하고 잘생긴 얼굴을 마주한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수술, 잘 끝날 거예요.” ...날이 밝자, 시연은 회진하러 왔다. “지시연 씨.”지한이
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무의식적으로 발코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주저하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소미 씨, 미안해. 난 못 갈 것 같아.”[네?]소미는 당황했는데, 유건이 거절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탁한 건, 거의 다 들어줬던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세월 쌓인 정’까지 있었는데...[왜요?]“미안해.”유건은 차분하게 말했다.“우주가 이제 막 퇴원했어. 아직 회복 중이라 시연이도 신경이 예민한 상태야. 난 두 사람 곁을 지켜야 해.”[아...]소미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지시연 곁을 지켜야 한다고? 하루 24시간 내내?’‘둘은 이미 부부가 됐는데, 매일 함께 있는 걸로는 부족해서, 단 몇 시간조차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거야?’ 소미는 손을 꼭 쥐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이해해요. 그래야죠.]“그날엔 지한을 보낼게.”유건은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소미 씨가 그 바닥에서 가볍게 보이는 일은 없을 거야.”[그래요. 고마워요.]전화를 끊자마자, 소미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힘껏 던졌다.핸드폰이 벽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신경이 예민하다고?”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그럼 내 마음은...?’‘지시연 곁을 지켜주겠다고? 그럼 나는?’ ...조용한 나날이 흐르던 어느 날.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시연은 양석현 교수에게 호출받았다.“교수님.”“오, 시연이 왔구나!”양석현 교수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아니, 오히려 들뜬 기색이었다.“어서 앉아! 임신 중인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고 대표님이 나를 탓할 거 아니야!” “무슨 일이신데요?”시연은 피식 웃으며 앉았다.“제가 그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에요? 저, 그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네 나이 또래라면 누구든 놀랄 만한 소식이야.”양석현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돌렸다.“솔직히 말하면, 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유건이 본 것은 시연이 가져온 꽃과 묘비 위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젊었고, 눈매와 이목구비가 시연과 닮아 있었다.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 후, 묘비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하... 이제 모든 게 명확해졌네”유건은 냉소하며 발끝에서부터 냉기가 스며들었다.그리고 단숨에 시연이 오늘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바로 ‘부명주’라는 사람이었으며, 그녀는 시연의 친어머니였다.그는 천천히 시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이 네가 말한 ‘어르신’이야?”남자의 눈빛이 차가웠다.“지금, 내 앞에서 한번 불러보지 그래? ‘이모’라고.” 시연은 눈을 감았다가 뜬 후,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엄마예요. 오늘은 엄마의 기일이고요.”“이제야 말하네?”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얼굴이 굳어지고, 감정이 격해져 제어할 수 없었다.그리고 짜증스럽게 발을 구르더니, 마지막엔 참지 못하고 욕설까지 터져 나왔다.“씨X, 난 완전 바보였네! 지시연, 넌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시연은 고개를 숙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시연, 난 네 남편이야!”법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부부였다.결혼식도 했고, 부부로서 관계도 맺었다.그런데 장모 기일에, 묘지까지 왔으면서도 유건은 제지당하고 말았다.“설명해. 왜 거짓말했어? 왜 날 못 오게 했어?”시연은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천천히 말했다.“당신을 오게 하면... 우리 엄마한테 어떻게 소개해야 하죠?”“뭐...?”유건은 어이없어졌고, 시연은 이어서 말했다.“엄마한테 ‘이 사람이 내 남편이에요, 엄마의 사위예요’라고 해야 하나요?”“아니, 당연한 거잖아.”유건이 답했다.“하지만...”시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난 일 년에 최소 다섯 번은 여기에 와요. 설, 한식, 추석, 그리고 생일이랑 기일...”그러다 목소리가 서늘해졌다.“그런데 다음번에 올 때, 내가 혼자라면요...?”“여보...”유건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그러나 시연은
“...미안하다.”지동성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아빠가 잘못했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됐어요.”시연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과한다고 우주가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나요?”“시연아... 아, 맞다.”지동성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지갑을 꺼내어 카드를 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지난번에 주려던 거야. 받아.”시연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다시 설득했다.“필요할 거야.”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중요한 날에 너 혼자 왔구나. 고 대표는 네 곁을 지키지 않았어, 그 말인즉슨, 그 사람은 널 충분히 아끼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갈 것 같니? 고씨 가문을 떠나게 되면, 너는 돈이 필요할 거야.” 시연은 잠시 흔들렸다.왜냐하면 지동성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사실 따지고 보면, 지동성 집안의 재산 중에는 시연과 우주의 몫도 있는 게 맞았다.“시연아, 받아. 거절하지 말고.”그때, 뒤에서 깊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럴 필요 없습니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연은 긴장했다.뒤를 돌아보자, 유건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유건의 앞을 가로막았다.즉, 묘비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왜 왔어요? 기다리라고 했잖아요.”유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왜 오면 안 되는데?”‘안 왔으면, 내 와이프 딴 남자한테 뺏겼을지도 몰라.’그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멀리서도 지동성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처음에는 시연과 지동성이 친척과 같은 관계라고 하니, 지동성이 두 마디 정도하고 간다면 유건도 이해할 참이었다. ‘가족 같은 사이니까, 그냥 몇 마디 하는 거겠지.’하지만, 지동성은 계속 떠날 기미가 없었다.‘뭐야, 카드까지 내밀고 있잖아?’유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는 시연의 손목을 잡아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그리고 지동성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 사장님, 아내도 따
‘이 꽃, 누구한테 주려는 거지?’“다 준비됐습니다.”가게 주인이 꽃다발을 건넸다.“감사합니다.”“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여기요, 고객님.”유건은 핸드폰을 꺼내 QR코드를 스캔해 결제했다....꽃집을 나서며, 유건이 손을 내밀었다.“내가 들게.”“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저었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다른 일 없어요? 나는 기환 씨랑 가도 돼요.”“응?”유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기환이랑 나랑 같아?”“아니요.”시연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냥, 당신이 지루할까 봐요.”그는 꽃을 받아 들었다.“성묘 가는 거야?”“짐작했어요?”“하.”유건은 코웃음을 쳤다.“국화에 카네이션까지 샀는데, 너무 티 나잖아. 근데 누구 성묘야? 오늘은 무슨 날도 아니잖아.”“아는 어르신이에요.”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날 많이 아껴 주셨던 분이죠.”“그럼 가자.”유건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같이 갈게.”시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차는 도시 서쪽에 있는 주선교의 하늘길 묘원에 멈췄다.도착하자마자, 시연이 입을 열었다.“혼자 올라갈게요. 당신이랑 기환 씨는 여기서 기다려줘요.”“안 돼.”유건은 단칼에 거절했다.“당신, 정말 정신 안 차릴 거야? 납치, 교통사고, 그것도 모자라 흉기 상해까지... 그동안 몇 번이나 당했는데, 정말 안 무서워?”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오늘은 나 혼자 가야 해요.”그녀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유건은 타이르고 싶었지만, 시연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 흔들었다.“딱 이번 한 번만...”그는 한숨을 쉬었다. 시연이 이렇게 나올 때면, 그는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다.“좋아, 대신 우리 눈에 보이는 곳까지만 가. 알겠지?”“그래요.”...차에서 내린 시연이 앞장서 걸었다.유건과 기환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를 지켜봤다.점점 언덕을 오르자, 시연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고요?”시연은 이를 꽉 물었다. 입을 떼자마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그럼 알 필요 없어요! 하지만 지 사장님께 딱 하나만 부탁할게요. 죽을 거면 빨리 죽으세요.” “지 사장님께서 저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지 사장님의 제사상은 차려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단번에 전화를 끊었다.시연은 바로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지로 억눌렀다. ‘우주 말고는, 지동성이든 고유건이든, 누구도 내 눈물을 볼 자격이 없어. 단 한 방울이라도!’...그렇게 이틀이 흘렀다.시연은 계속 병원에서 동생을 지켰다.다행히 우주의 머리 상처는 크지 않았고, 매일 약을 바르고 항생제만 맞으면 됐다.유건이 불러온 정신과 교수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우주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나아지고 있었다.비록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주의 심리적 치유는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고,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오전 10시.우주의 항생제 투여를 확인한 후, 시연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우주야, 누나는 잠깐 나갔다 올 거야. 오늘은 같이 있을 수 없어.”“누나가 어디 가는지 궁금하지 않아?”그녀는 혼잣말하듯 말했지만, 우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엄마를 보러 가.”그 순간, 시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우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우주는 저항하지 않았다.이건 무의식적으로 누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엄마...’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우주야, 엄마 기억나?”우주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그렇구나. 기억이 안 나는구나.”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럴 만도 해. 엄마가 떠났을 때, 우주는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였으니까.”시연이 손을 거두려는 순간, 우주가 갑자기 누나의 손을 붙잡으며 누나를 바라봤다.소년의 눈빛은 간절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누나, 가지 말까?”시연은 깜짝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우주는 즉시 입을 떼지 않았다.유건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우주는 서서히 힘을 풀었다.그제야 소년의 이가 천천히 팔에서 떨어졌다.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다가왔고, 시연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 우주를 안았다.“우주야, 괜찮아. 누나가 있어. 누나가 여기 있어.”우주는 아까보다 한층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적어도 더 이상 저항하지는 않았다.“사모님, 우주 군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상담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네, 그렇게 해주세요.”시연은 우주를 천천히 놓아주며 의사와 간호사에게 맡겼다.그런데 돌아서자마자, 유건이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피가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이쪽으로 와요.”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건의 팔을 붙잡고 소파로 데려갔다.“기다려요.”다행히도 병원이었기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시연은 간호사에게 소독 키트를 받아왔다.그녀가 상처를 살펴보니, 우주가 제대로 힘을 준 게 확실했다.살갗이 깊게 파이고, 양쪽으로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조금만 더 오래 물었더라면, 살점이 뜯겨 나갔을지도 모른다.이것이 두 번째였다.우주 때문에 유건이 다친 것이.유건의 팔에는 아직 다 낫지 않은 화상 자국이 있었다.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녀는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소독솜을 들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닦아냈다.“좀 아플 거예요. 너무 아프면 말해요. 살살할게요.”“괜찮아, 안 아파.”유건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러나 이내 시연의 눈가가 붉어진 걸 보고,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 여자... 지금 나 때문에 우는 거야?’“여보.”유건은 목이 메어 시연을 불렀다.그리고 다치지 않은 팔로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시연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왜 그래요?”“나 아파.”시연은 당황했다. “아까 안 아프다고...?”“아파, 엄청 아파.”“그 정도예요?”시연은
기환은 깜짝 놀라며 급히 말했다.“오늘, 장소미 씨가 형수님한테 말하는 걸 들었어요. 형님이랑 오늘 만나서 점심 약속을 하셨다고...”유건은 순간 굳어졌다.‘뭐라고?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시연이 자신에게 차갑게 대했는지.그녀가 왜 그렇게 거리감을 두었는지.유건의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작에 말했어야지!’“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기환은 억울한 얼굴로 변명했다.“기회가 없었어요...”‘형님은 형수님 곁을 지키거나, 장소미 씨와 대화하고 계셨으니...’‘내가 감히 앞에 끼어들 수가 없었던 거지...’유건은 깊은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이 사실을 기환이 말해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 헤맬 뻔했다....“아악!”병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곧이어 쏟아지는 물건 소리, 난장판이 된 소리가 들려왔다.“우주야!”이어지는 건 시연의 다급한 목소리와 억눌린 울음.“누나야! 우주야, 누나 좀 봐! 제발...!!”유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마침 넘어지려는 시연을 붙잡았다.“괜찮아? 얼른 앉아!”“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그럼 어떻게 해야 안 괜찮은 건데?”병실 안에서는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방금 도착한 정신과 교수가 우주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무도 소년을 막을 수 없었다.우주는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누나를 밀쳐낼 리 없을 테니까. 유건은 단호하게 말했다.“여보, 날 믿어. 우주는 내가 맡을게.”시연은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러나 결국, 유건이 우주를 맡겠다고 하자, 한 발짝 물러났다.“그래.”유건은 시연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런 뒤, 곧장 우주에게 다가가 소년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아악...!!!”우주는 더욱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유건은 흔들리지 않았다.“우주야, 나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그냥 내 말 들어.”유건은 단호했다.“민환이 데려다줄 거야. 이미 충분히 복잡해졌어. 더 걱정하게 만들지 마, 응?”“알겠어요.”소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를 보내고 나서도, 유건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소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장 여사가 혼자 있는 우주를 발견했다? 우주는 왜 혼자 있었던 거지?” ‘그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병실은 고요했다.우주는 약물로 인해 깊이 잠들어 있었고, 시연도 침대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유건은 조용히 다가가 시연을 안아 올려 옆에 있는 보호자 침대에 눕혔다.“으음.”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흐느적거렸다.순간, 유건은 긴장했다. 시연을 깨운 줄 알고 멈칫했지만, 다행히도 다시 조용해졌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여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그때, 시연이 희미하게 신음했다.“엄마...”유건의 손길이 멈췄다.그녀는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으흑...”끝내 억누른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눈을 감은 채, 시연의 눈가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우리 와이프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구나.’사람은 가장 약해지고, 슬프고, 무력할 때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는다.유건은 여자의 깨끗한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렸다.그는 결국 시연 곁에 누워,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그리고 한 손으로 시연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아주 부드럽고도 인내심 있는 손길이었다.점차 시연의 떨림이 잦아들었고, 마침내 조용히 눈을 떴다.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그녀는 그 불편함에 손을 올려 닦으려 했다.“손으로 닦지 마.”유건이 시연의 손을 붙잡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내가 닦아줄게.”남자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시연은 훨씬 편안해졌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해지자,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
시연의 손목이 단단히 잡혔다.유건이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앉아.”시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그는 애타고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까지 날 몰아붙여야 해? 내가 우주를 신경 안 쓴다고? 당신,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날 화나게 하려는 거야?”시연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유건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우주 상태는 깨어나야 정확히 알 수 있어. 나도 함께할 거야. 당신 곁에서 우주를 지킬게, 응?”“당신...?”시연이 비웃듯 눈썹을 올렸다.“그럴 시간이나 있어요? 고 대표님은 아주 바쁘신 분이잖아요.”그런 냉소적인 태도에, 유건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이해하고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있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낼 거야.”그는 시연을 부드럽게 눌러 앉혔다.“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밥 좀 먹어. 응?”“싫어요!”유건은 미간을 좁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는 분명 잘못한 게 없었고, 도착했을 때 소미와 말을 섞지도 않았다.그런데도 시연은 마치 자신에게 큰 원한이라도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대체 뭐가 문제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먹을래?”“간단해요.”시연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내 앞에서 사라져 줘요. 당신 얼굴만 안 보면, 나도 식욕이 생길 거예요.”유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눌렀다.두 손을 꼭 쥐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갈 테니까 꼭 먹어.”그는 돌아서서 나갔다.그 순간, 시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식기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유건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그러나 동시에 서운함이 밀려왔다.‘내가 그렇게까지 역겨운 존재야?’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그리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우주가 왜 지 사장 집에서 다친 채 발견된 거지?’이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시연의 눈빛을 떠올렸다.‘시연이의 그 눈빛... 단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