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은 요즘 임신으로 인한 걱정이 많아서 무엇을 해도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도 찾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자꾸 잡념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에 지시연은 대부분의 시간을 임진아의 곁에서 보냈다. 진아가 돌아오자, 시연이 중얼거렸다.“드디어 왔네! 배고파 죽을 뻔했잖아.”“보자.”진아가 빙그레 웃으며 시연의 가슴을 어루만졌다.“야, 큰일이네, 배가 엄청 고파서 여기도 작아졌잖아!” “하하...”시연이 웃으며 뒹굴었다.“임진아, 너 자꾸 장난칠래?”“빨리 일어나, 나가서 밥 먹자!”“좋아.”두 사람은 강울대 뒤편의 거리로 향했는데, 이곳은 밤이 되면 시끌벅적해졌으며, 작은 것부터 길거리 통닭, 포장마차 음식, 그리고 미슐랭급 식당까지 있는 곳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두 사람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임진아, 지시연, 이런 우연도 있네?”그 사람은 두 사람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창인 우찬이었다. 시연은 미소를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아가 우찬을 힐끗 보았다.“우연? 강울대 학생 중에 여기에 와서 밥을 안 먹는 사람도 있던가?” 진아가 또 우찬을 부추겼다.“이렇게 수준 낮은 대화를 걸다니... 왜, 우리한테 밥이라도 사려는 거야?” 상대방이 놀라서 물러날 거라는 진아의 예상과 달리, 우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살게! 가자!”진아와 시연이 서로를 마주 봤다.‘이게 웬 횡재야?’ “분명히 너한테 반한 거야!” 진아가 작은 소리로 시연에게 말했다.“물론 나한테 반한 걸 수도 있지. 됐어, 그건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공짜로 먹는 밥이잖아? 내가 공짜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우찬이가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일단 가보자!” 진아에게 끌려가던 시연은 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우찬은 두 사람을 데리고 새로 개업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래층은 홀이고 위층은 룸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시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진아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뚫린 입이면 다인 줄 알아?!”우찬이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와, 이게 뚫린 입이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일이야? 사실일 뿐이잖아. 그때 전교생이 두 사람을 질투할 정도였는데?”“닥쳐! 그만하지 못해?”“싫은데?”우찬이 일부러 또 물었다.“두 사람, 왜 헤어진 거야? 우리는 너희 사이가 너무 좋아서 너희가 끝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연애에서 결혼까지!” “그건 시연한테 물어봐야지.” 줄곧 말하지 않던 은범이 입을 열며 시연을 바라보았다. “시연이가 결정한 거지, 뭐. 쟤가 먼저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거든.” 툭!갈비 한 조각을 뜯고 있던 시연이 그대로 탁자 위에 갈비를 떨어뜨렸다. ‘너무 방심했어.’ ‘노은범, 대체 뭐라는 거야?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니... 허, 말은 그럴싸하네.’“그래?”우찬은 시연을 잡고 꼬치꼬치 물었다.“시연아, 왜 그랬어? 우리 은범이 어디가 부족해서?” 시연의 마음속에는 떫은 슬픔이 만연했다. 시연이 나른하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도 안 나네. 내 아침밥을 사주지 않아서 그랬나?” 결국, 대답을 얼버무린 셈이었다. 진아도 조차도 이 대답을 듣고 멍해졌다.“하긴.”우찬이 은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여자는 원래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법이잖아. 은범아, 시연이 말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어. 지금 여자 친구한테는 더 세심하고 자상하게 해주란 말이지.” 국물을 먹던 시연이 또 한 번 멈칫했다. ‘여, 여자 친구가 생긴 건가?’“은범 씨!”그녀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의 여자가 은범의 이름을 외치며 이쪽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왔어?”은범이 의자를 끌어 그 여자를 앉혔다.“네.”웃으며 은범에게 기대어 앉는 여자의 모습은 작은 새의 모습과 같았다. 그녀가 은범에게 애교를 부렸다.“나 저거 먹을래요! 그리고 국도요! 아 국부터 한
강울대 뒷거리의 포장마차는 밤에 가장 시끌벅적했다.“사장님, 김치볶음밥 2인분 주세요!” 진아가 한 손으로 시연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비비며 불평했다. “다 우찬이 때문이야. 그 녀석 때문에 내가 밥을 먹는 시간이 지체된 거라고!” 시연도 배가 고파서 침을 삼켰다.“진아야, 나는 호두과자가 먹고 싶어.” “그래! 조금 있다가 가서 먹자.”입에서 나오는 대로 승낙한 진아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의심스럽다는 듯 시연을 훑어보았다. “요즘 먹는 양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한밤중에도 많이 먹는 것 같던데... 살찔까 봐 무섭지는 않아?”시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란함을 느꼈다. ‘그래, 내가 많이 먹기 시작했다는 걸 나도 느끼던 참이었어. 아마... 배 속에 있는 작은 녀석 때문이겠지?’ “볶음밥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진아가 핸드폰을 꺼내 결제하려 했다. 시연이 급히 말했다.“얼마예요? 제가 입금해 드릴게요.” “됐어...”“내가 입금할 거야!”겨우 1초도 티격태격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끼어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제가 계산할게요.” “누구지?”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마주한 두 사람은 즉각 멍해졌다.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은범의 출중한 옆태는 마치 신처럼 보였다. 시연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안 돼! 하지 마...” 하지만 결제 완료 알림은 은범이 이미 지불에 성공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은범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마주했고, 핸드폰을 보이며 말했다.“이미 했어.”하지만 인상을 찌푸린 시연은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밥 한 끼일 뿐이잖아?” 은범은 마음속의 두근거림과 불안을 억지로 눌렀다.“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작은 호의를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또 거절하면 본인을 지나치게 신경 쓴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 고마워.”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조금 풀
실시간 검색어 1위, 가장 끝에 적힌 붉은색의‘화제’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두드러져 있었다. 서버가 아주 느린 탓에, 지시연은 한참 기다리고서야 그 기사를 클릭할 수 있었다. 한 단락의 문장 뒤에는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다.그것은 한식당‘맛나리’의 입구에서 찍힌 것이었는데, CCTV 카메라 각도는 정확하지 않았다. 고유건이 입구를 나오자, ‘맛나리’의 발렛 파킹 직원이 그를 대신하여 문을 열어주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2초 동안 멍하니 있던 고유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는데, 이윽고 순식간에 그 발렛 파킹 직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영상은 이렇게 끝이 났는데, 시연의 마음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엄청 가볍게 찔렀어!”“역시 재벌 집안은 복잡하다니까?!”“고유건이 어느 병원으로 옮겨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아주 멋있다고 들었는데...” 수간호사가 갑자기 문 앞에 서서 손뼉을 쳤다.“자, 다 먹었어요? 다 먹었으면 어서 움직입시다!” 모두 바삐 가십을 멈추었다. 시연도 일어나서 도시락을 치웠다. “지 선생님.”수간호사가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119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칼에 찔린 환자를 보낼 테니까 진찰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칼에 찔린 환자?’‘설마, 고유건?’“하지만...”시연이 머뭇거렸다.“양석현 교수님께서는 아직 수술실에 계세요. 교통사고로 다친 환자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알아요.”수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내가 이미 수술실에 연락해 봤는데, 양 교수님께서 지 선생님께 진료를 부탁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수간호사가 시연을 향해 격려가 서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너무 긴장할 거 없어요. 양 교수님이 진찰하라고 하신 건, 지 선생님을 믿는다는 거니까요.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요.”‘말은 그렇지만...’“알겠습니다.”시연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재빨리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지시연이 응급
유건이 시연을 힐끗 보았다.“상관없어! 나는 너여야만 한다고!” 손을 놓지 않는 유건은 약간의 억울함이 있는 것 같았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리는 거지?’ 시연은 그를 지우주라고 여기며 어르고 달랬다.“양 교수님은 저의 선생님이세요. 그분은 전국적인 의학계의 권위자이시고요...” “그 사람이 누구든! 나는 그 사람 못 믿어.”무표정한 유건은 대단히 매서워 보였다. ‘말이 안 통하잖아?’ 시연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찰나, 지한이 들어왔다. 지한이 그녀에게 말했다.“지시연 씨, 부탁 좀 드릴게요. 요즘 형님께서는 계속 기괴한 일에 시달리셔서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그런데...”시연은 이해하지 못했다.“왜 저는 믿으시려는 거예요?” ‘나를 아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흥.”유건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으나, 여전히 높고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 “너를 믿는다는 게 아니야!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개미를 죽이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싶어.’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였기에 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수술실 안.유건은 이미 마취제를 맞고 깊은 잠에 빠졌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시연이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간호사에게 물었다.“양 교수님의 수술은 끝났나요?”“아직이요.”“양 교수님께서 지금 긴급한 상황이라고 하시면서 지 선생님의 실력을 믿는다고 하셨어요. 제게는 선생님께서 안심하고 수술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하셨고요. 양 교수님은 지 선생님의 선생님이시잖아요.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양 교수님께서 책임지실 거예요.”간호사가 말했다. 마음이 따뜻해진 시연은 걱정이 놓이는 듯했다. 유건의 창백하고 잘생긴 얼굴을 마주한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수술, 잘 끝날 거예요.” ...날이 밝자, 시연은 회진하러 왔다. “지시연 씨.”지한이
시연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장소미를 응시하며 말없이 있었다. ‘장소미는 고유건의 여자 친구야. 조만간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시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소미 역시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어젯밤, 소미도 실시간 검색어를 보았는데, 그때 곧바로 병원에 오려고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지한은 상황이 여의찮다며 기다리라고 할 뿐이었다. 결국 소미는 밤새워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아침부터 그녀 홀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러나 고유건이 아닌 지시연을 먼저 만나고 말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던가. 소미는 크게 겁을 먹었다.그녀가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병실 입구의 환자 명패를 훑어보았다.‘유건 씨의 병실이 맞잖아!’ ‘그런데 지시연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소미가 조금은 허무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 눈을 가늘게 뜬 시연은 잠이 부족해 나른해 보였다. “의사가 병원에 있는 게 뭐 어때서? 너야말로, 앓고 있는 정신병을 진찰받으러 온 거야?” “지시연, 말이면 다인 줄 알아?!” 눈살을 찌푸린 소미는 눈 밑의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다. 소미는 어려서부터 시연의 뼛속 깊은 곳까지 배어 있는 그 도도함을 싫어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집이랑 아버지까지 모두 나한테 빼앗긴 주제에, 뭐가 저렇게 기세등등한 거야?’ 그러나 오히려 지금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한 것은 바로 소미였다. “남자 친구를 보러 온 거야.”“아.”시연이 문득 뒤를 가리켰다.“고유건 대표님? 저 사람이 네 남자 친구구나.”시연이 길을 터주며 말했다.“그럼 들어가 봐.”이 말을 마친 그녀는 걸음을 내디뎠다.소미는 시연의 뒷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지시연이 이미 유건 씨를 만난 거 같지? 하긴,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지.’ ‘하지만... 두 사람
지금 유건은 상의가 반쯤 벗겨져 있는 상태로 여인을 품에 안고 있었다. 정말 아찔한 장면이었다.다만, 유건의 신분 때문에 누구도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모두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행동하며 각자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시연은 특히 침착하게, 교대할 의사에게 유건의 상태를 설명했다.“칼에 찔려 부상을 당한 환자입니다. 복부 3.2센티미터 깊이로 칼이 들어갔지만, 장기 손상은 없습니다...”시연이 무슨 말을 하든 유건은 신경 쓰지 않았다.소미를 부축하면서 그는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것 같았고, 심지어 약간의 죄책감까지 느끼면서 시연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비록 그가 처음부터 결혼 상대가 있다고 말했지만, 시연에게 소미를 들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기분이 뭔가 묘했다.마치 바람피우다 아내에게 딱 걸린 찌질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고유건 님, 푹 쉬세요.”교대가 끝나자 의료진은 하나둘씩 바뀌었다.유건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시연이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유건 씨.”그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입구를 주시하는 것을 보고 소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디 불편해요? 다친 데가 많이 아파요? 의사 부를까요?”유건의 신경이 다시 곤두섰고, 안색이 변했다.“아니, 괜찮아요.”유건은 단지 스스로에게 놀랐을 뿐만 아니라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양심에 찔리지?’‘허울뿐인 부부 사이인데, 누구를 만나든 외도는 아니지.’소미는 오전에 촬영 일정이 있었다. 어렵게 캐스팅된 유명한 감독 양호천의 영화라 빠질 수 없었다.주지한이 오고 나서야 소미는 아쉬워하며 떠났다.“그럼 푹 쉬어요, 시간 날 때 다시 올게요.”“그래요, 가봐요.”이와 동시에 지한을 따라온 두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둘은 매우 닮았고, 모두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었다.“형님.”지한이 설명했다.“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 민환과 기환을 불러들였습니다. 이들이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시연은 치료에만 집중하고 유건을 전혀 보지 않았다.유건이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너 지금 나한테 화났어?”“예?”시연은 치료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화났느냐고요? 제가요? 고유건 씨에게? 그럴 게 있나요?”유건은 목소리가 담담하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면 다행이고.”“아.”시연은 여전히 유건이 질문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허리를 굽혀 상처에 삽입한 튜브를 짰다.유건이 물었다.“이 튜브는 언제 빼나? 매우 불편한데.”“그렇게 금방은 안돼요.”“쉽게 말하면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다 배출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복막염으로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이 말을 끝으로 시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이 여자가 왜 이렇게 조용해?’유건은 반쯤 눈을 감고 말했다.“나에게 할 말 없나?”“네?”시연이 당황해서 대답하려는 순간 유건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치료 이야기는 그만 해.”유건의 말에 지시연은 깜짝 놀라서, 긴 속눈썹을 떨며 웃기 시작했다.“한마디 하자면, 여자 친구가 아주 예쁘더라고요.”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건은 지시연을 조롱했다.“위선적이네.”“그래요.”시연은 손을 들며 유건의 말을 인정했다.“진심은 아니었어요. 사실, 제가 더 예쁘잖아요.”유건은 눈빛이 미묘하게 변하며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이었다.“참 뻔뻔한 사람이네, 이렇게 자신을 칭찬하는 법도 있나?”이 말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지만 시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제가 뻔뻔스러운 거, 벌써 알고 있었잖아요?”시연의 답답한 태도에 유건은 화낼 기분도 사라져버렸다.“그렇게 쳐다보지 마요.”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약을 갈아주면서 마스크 너머로 말했다.“우리 결혼이 계약 결혼인 거 나도 알아요. 고유건 씨가 누구와 만나는지 간섭할 권리도 없고요. 사랑하고 싶은 사람 계속 사랑하시고, 만나고 싶은 사람 계속 만나세요.”그녀는 원래 고유건과의 결혼을 간절히 원하던 장소미를 혼내주고 싶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