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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건이 가문?’

‘정말 재미있는 아가씨군.’

한강우는 웃겨서 고유건을 힐끗 바라보았다.

“오, 그럼 오늘 유건이랑 뭐 하러 온 거지?”

‘상훈이의 손자인 유건이는 다 좋은데, 인간미가 별로 없다니까? 그런 사람이 모처럼 나를 웃겼군.’

시연이 솔직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저도 유건 씨와 함께 한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내가 아가씨한테 고마워할 일이 다 생기는군.”

한강우가 말했다.

“좋아,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왔다면, 준비한 선물은 있는 건가?”

이 말을 들은 유건은 흠칫 놀랐다.

‘큰일이다, 지시연이 무슨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어?’

‘가뜩이나 저 노친네는 흥미도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야!’

그러나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있습니다.”

‘정말 준비했다고?’

유건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시연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한테 민폐되는 짓은 하지 마!”

그의 손을 뿌리친 시연은 가방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고, 몸을 굽히며 한강우의 앞에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그날 천음사에 다녀온 이유였다.

“조그마한 제 성의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늘 오늘처럼 행복한 날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덕담 고맙네.”

비단 상자를 열어본 한강우는 정신이 멍해졌다.

“이건...”

한강우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노여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가 한 회장님의 미움을 산 건 아닐까?’

특히 유건은 더욱 불안해했다.

시연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음사의 평안줄인데,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 말을 마치자, 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눈빛은 모두 시연에게 쏠렸다.

“좋군, 좋아.”

한강우의 말과 표정에서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유건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강우를 바라보았다.

“천음사의 평안줄은 외부에서 판매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행여 평안줄을 원한다면 사찰에서 출발해 한 걸음마다 절을 하며 대웅전까지 가야 한다지? 그래야만 주지 스님의 손에서 얻을 수 있는 게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한 회장님의 장수와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한강우가 시연을 가리키며 칭찬했다.

“젊은 아가씨, 유건이보다 훨씬 정이 많은 사람이군.”

그제야 유건도 알게 되었다,

시연의 무릎에 있던 그 멍이 절을 하면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허, 노인의 비위를 잘 맞추는 여자였구나. 할아버지에 이어 한 회장님까지...’

연회가 끝난 후, 한강우의 비서는 유건을 찾았다.

“고 대표님, 한 회장님께서 오늘 저녁에 지시연 씨와 함께 사랑채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건은 잠시 멍해졌다가 나중에야 감사를 표했다.

“한 회장님께 꼭 제시간에 맞춰서 가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비서가 자리를 떠난 후, 유건의 얼굴에 희색이 드러났다.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지한만큼은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형님, 한 회장님의 지시입니까?”

“응.”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용히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연을 바라보았다.

싫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반년 동안 기울인 노력이 지시연이 몇 번 절을 한 것보다 못할 줄은 몰랐군.”

‘하지만 지시연은 이번에 확실히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어.’

...

유건은 시연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그녀를 남겨 두어도 아직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유건은 시연을 상대하지 않았지만, 또 한 번 그녀를 쫓아내지도 않았다.

방에 들어선 시연이 그를 불렀다.

“고유건 씨.”

유건은 몸을 돌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그게...”

시연이 주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방을 좀 써도 될까요?”

유건이 눈썹을 찌푸렸다.

“밥을 하려는 거야? 방금 배불리 먹지 않았나?”

‘분명 연회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여자는 계속 먹고 있었는데...’

“아니요.”

시연은 손을 내저었다.

“코가 좀 막힌 걸 보니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요... 생강차를 좀 끓여 마시고 싶어요.”

어젯밤에 밤새 추위에 떤 그녀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병으로 쓰러질까 봐 두려웠다.

이 말을 들은 유건이 다소 황당해했다.

“그런 게 쓸모가 있다는 거야? 약은 필요 없고?”

‘오늘 날 도와준 걸 생각해서라도, 지금 이 여자가 나한테 부탁한다면, 지한이에게 약을 사 달라고 할 의향도 있어.’

“약은 필요 없어요.”

시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감기에 걸리면 생강차를 마셨어요. 그러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장미리는 시연을 모질게 학대했는데, 병이 나면 시연을 데리고 의사에게 가서 진찰받기는커녕 약도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연은 매번 스스로 생강차를 끓여 마셔야만 했다.

“주방을 좀 써도 될까요?”

잠시 침묵하던 유건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대로 해.”

그는 곧장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고, 시연은 한숨을 돌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유건이 위층에서 내려와 물을 따라 마실 때, 1층 전체는 짙은 생강차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부엌을 힐끗 둘러보니, 시연은 두 손으로 잔을 받치고 생강차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면 그 물을 마셨다고?’

‘왜? 왜 약은 안 먹은 거지?’

그는 고상훈이 시연의 어머니가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고 한 것을 떠올렸다.

‘그동안 아주 어렵게 지냈겠구나.’

‘쯧쯧.’

저녁이 되자, 유건은 시연을 데리고 사랑채로 향했다.

유리로 된 지붕이 드리워진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배목으로 만든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침향이 타고 있었으며, 한강우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신학그룹의 심학운이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은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유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심학운도 온 거야?’

은수 프로젝트에서 심씨 가문은 유건의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하지만 유건은 특별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 몸을 살짝 굽혔다.

“한 회장님.”

“왔구나, 유건아.”

한강우는 눈을 구부리며 웃더니 시연에게 말했다.

“아가씨도 왔군.”

시연이 어수룩하게 웃으며 말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회장님.”

“하하, 그래.”

한강우는 손을 흔들며 유건과 시연을 불렀다.

“마침 잘 왔다. 학운이가 무대에서 나한테 노래를 두 곡 불러주겠다고 하더군. 보기 드문 기회니까 유건이 너도 들어보거라.”

학운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럼 저는 이만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유건을 훑어보는 학운의 눈에는 도발이 가득했다.

하지만 학운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던 유건은 먼저 자리에 앉았고, 시연도 그의 바로 옆에 앉았다.

이윽고 홀의 불빛이 어두워졌고, 조명이 앞에 있는 공터를 비췄다.

희곡의 북소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무대화장을 한 학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이어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아.

가자 가자, 저 달빛 기운 뒤에

숨어서 보자꾸나, 사랑아.”

전문적인 실력은 아니었으나, 그럴싸한 실력이었다.

“잘한다!”

한강우가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유건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좋지 않은 상황이야.’

‘한 회장은 판소리를 아주 좋아하는데, 심학운은 이 노친네를 위해서 자신을 광대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이대로라면 은수 프로젝트는… 위험하겠어.’

무대에서 한참이나 떠들썩하게 노래하던 학운이 드디어 노래를 끝냈다.

“잘 부르는구먼!”

“한 회장님, 아직은 부족한 실력입니다.”

“대체 어디가 부족하다는 게야?”

한강우의 웃음기는 끊이지 않았다.

“고생했네. 요즘 젊은 사람 중에는 판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 학운아, 정말 수고했다, 많이 연습했지?”

학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연습하지는 못했지만, 한 회장님의 웃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착한 사람이군.”

한강우가 한숨을 쉬었다.

“어서 가서 화장부터 지우게. 나중에 둘이 한잔 하자고.”

“네, 한 회장님.”

한강우가 먼저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자리에 남은 학운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 지시연 씨가 몇 번이고 절을 한 게 쓸모가 있을지, 아니면 내가 부른 판소리가 더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는 유건이 입을 열기도 전에 화장을 지우러 갔다.

유건의 표정은 아주 담담했지만, 시연은 그가 상당히 불쾌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망설이던 시연이 말했다.

“식사하러... 가실 거예요?”

“먹어야지, 왜 안 먹어?”

즉시 몸을 돌리는 유건의 뒷모습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

다이닝 룸.

한강우가 식사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자, 학운아.”

한강우가 잔을 들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먼저 한 잔 줄게.”

“영광입니다...”

이것은 유건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한강우는 술잔을 내려놓았는데, 여전히 판소리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고향의 노래를 듣지 못했는데...”

바로 이때, 한강우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목을 움켜쥐었다.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한 그는 호흡을 어려워했다.

“한 회장님?”

“한 회장님!”

순식간에 한강우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 불러요, 어서!”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던 찰나, 시연이 갑자기 소리쳤다.

“모두 비켜주세요! 저는 의사입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녀가 여러 사람을 몰아내며 말했다.

“한 회장님을 에워싸지 말고 물러나 주세요! 산소를 확보해야 합니다!”

시연은 이 말을 하면서 절박하게 한강우의 셔츠를 풀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건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시연, 뭐 하는 짓이야?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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