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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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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뭐라고?” “네가 직접 손으로 만든 거라고?” 유건은 깜짝 놀라 다시 셔츠를 보았다. 갑자기 셔츠가 눈에 쏙 들어왔다. “네가 한 땀 한 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거야?” “네.” 시연은 입술을 꼭 다물고 약간 부끄러워했다. 부명주는 생전에 패션 디자이너였고, 집에는 작업실도 갖고 있었다. 시연은 걷기도 전부터 바늘을 잡았고,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옷을 만드는 시연의 기본기는 탄탄했다. 어쩌면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셔츠 하나쯤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유건은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시연의 뜻밖의 실력에 깜짝 놀라고 감탄했다. ‘진짜로 지시연이 직접 만든 거야! 한 땀 한 땀, 모든 바느질 자국이!’ 시연은 유건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지난번에는 미안했어요.” 그녀는 유건이 준 카드에서 또 돈을 인출해서 썼기 때문에 화낸 거라는 말은 못 하고 그냥 핑계를 댔다. 시연의 이 말은 유건에게 물러날 구실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상대방이 한 걸음 물러서면 자신도 상대를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남자다.“됐어.” 유건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범한 척 말했다. “나는 상남자라 여자한테 그런 걸 일일이 따지지 않아” “그럼...” 시연은 셔츠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셔츠, 입을 거예요?” “그냥 둬.” 유건은 자존심을 부리며 셔츠를 보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옷장에 널리고 널린 게 셔츠야.” “아...” 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그렇지, 고유건이 내가 만든 셔츠를 입을 리 없겠지. 아마도 옷장 깊숙이 넣어두겠지... 하지만 더 비싼 옷을 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일정이 좀 빠듯해서요.” 시연이 나가자 바로 주지한이 들어왔다. “형님, 이건 방금 받은 프로젝트 서류인데요...” “어, 웬 셔츠가 있네요?” 지한은 셔츠를 치우려 손을 뻗었다. “손대지 마!” 낮게 깔린 경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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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그림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던 중, 소미는 유건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유건은 그림들을 대충 훑어보았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시연은 내 데이트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유건 씨.”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소미가 손을 살짝 움직이자, 유건은 정신을 차렸다. 소미는 약간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니면 상처가 불편한 거예요?” “아니야, 일도 아니고 상처도 괜찮아.” 유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지금 대체 뭘 이렇게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지시연이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 여자는 단지 명목상 아내일 뿐, 진짜는 아니니까.’ ‘게다가, 이 명분도 오래가지 않을 거야. 지금 내 옆에 있는 장소미가 진짜로 나와 함께할 사람인데...’ “그냥 그림에 몰입한 것뿐이야.” 유건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넘기고, 다정하게 물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라도 있어? 마음에 들면 사 줄게.” “음...” 소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목을 긁적였다. “조금 더 둘러볼게요. 아직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안 보이네요.” 사실, 그녀는 그림에 관심이 없었다. ‘그림을 사서 뭘 하겠어?’소미에게는 그림보다 보석이나 명품 가방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유건은 어두운 눈빛으로 잠시 소미를 응시했다. “그래, 조금 더 보자.” 유건은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소미가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당연히 금세 알아챘다. 왜냐하면 둘이 전시회장에 들어온 이후 소미의 시선은 그림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유건은 소미의 취향이 그림이 아니라는 것에 크게 상관없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유건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림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소미의 의도였다. 기분이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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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저에게 밥을 사주신다고요?” 시연은 의아했지만, 유건의 의도를 굳이 묻지는 않았고, 대신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고유건 씨는 공식적으로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잖아요. 여자 친구랑 몰래 데이트하는 건 못 본 척할 수 있었지만, 저는 당신의 주치의예요. 환자랑 장난칠 순 없어요.” “말이 참 많네.” 유건은 날카로운 턱선을 더욱 단단히 조이며 목젖이 위아래로 꿀렁거렸다. “밥 먹을 건지, 말 건지만 말해.” “먹어... 야겠죠?” 무표정한 유건의 얼굴을 보고 시연은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은 그가 왜 밥을 사주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유건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따 병실에서 보자.” ... 유건의 VIP 병실은 호텔의 로얄 스위트룸과 다를 바 없었다. 거실, 다이닝 룸, 심지어 주방까지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주방은 사용하지 않고, 그는 직접 외식 서비스를 주문했다. 시연이 도착하자, 음식 배달차 온 셰프가 직접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두 분, 맛있게 드세요.” 시연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유건은 그녀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그만해, 이런 거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지 마.” “전 정말 이런 세상을 처음 보거든요.” 시연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맞받아쳤다. “밥 먹게 해줄 거예요, 말 거예요? 더 뭐라 하시면 저 정말 그냥 갈 거예요.”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앉아서 먹자.” 유건은 콧소리를 내며 킬킬 웃었지만, 시연에게 앉으라며 의자를 직접 빼주었다. “이쪽 자리로 모셔도 될까요?” “네, 좋아요!” 시연은 의자에 앉으며 음식들을 살펴보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전부 맛있어 보이네요.” 두 사람은 마주 앉았고, 시연은 천천히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근데, 왜 이러는 거예요? 이유라도 알아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죠.” 유건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헛기침하더니 일어나 벽 쪽으로 걸어갔다. 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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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어?” 소미는 차려진 식탁을 보며 두 개의 식기 세트가 마주 보고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거... 혹시 지금 유건 씨의 병실에 누구 와 있어요?” 유건은 소미가 올 줄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소미를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유건은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마음 깊숙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늘 아무에게나 당당했던 자신이 소미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아 말투도 조금 퉁명스러워졌다. “지한이랑 같이 밥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온다네.” “아...” 소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혹시 다른 여자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그래, 그럴 리가 없지. 주지한 때문이구나.’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혼자 먹으면 재미없잖아요. 제가 같이 먹을게요.” 유건이 가만히 서 있자 소미는 다정하게 말했다. “빨리 앉아요.” “그래.” 유건은 대답했지만,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가 앉자, 소미는 벽 쪽에 기대어 있는 그림을 보았다. ‘저건 오늘 고유건이 미술 전시회에서 산 그림이 아닌가?’ ‘고유건은 이 그림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거라고 했었는데, 여기에 놓아두다니. 대체 누구에게 주려고 했던 걸까?’ 의심이 들었지만, 소미도 더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근데, 정말 뭔가 수상하네...’ ... 화장실 안에서 시연은 지루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실습생 단톡방에서는 야근을 앞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녁 식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현진: 저녁 뭐 먹지?] [주하은: 구내식당 어때? 내가 사 올게, 몇 개나 가져올까?] [인턴A: 야근인데 구내식당 말고, 좀 더 제대로 된 거 먹어야지.][인턴B: 그러면 새콤한 생선찜이나 먹을까? 그리고 꼬치구이도 추가!] [인턴C: 좋아, 어디가 맛있어?]시연은 몰래 대화를 엿보다가 한마디 남겼다. [지시연: 문창길에 있는 집 맛있더라.] 시연이 임진아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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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시연은 손목을 살짝 비틀며 유건에게 손을 놓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가도 돼요?” “어디로?” 유건의 목소리는 여전히 싸늘했다. 이제 시연도 화가 나기 시작해서, 입을 꾹 다문 채 말했다. “고유건 씨, 대체 저한테 왜 화내는 건데요? 밥 먹자고 해놓고 날 화장실에 두 시간이나 가둬놨잖아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화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닐까요?” 유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시연의 말이 너무 당연해서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유건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유건 스스로도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왜 시연을 화장실에 밀어 넣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그 순간,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었다. 이후로 후회와 자책,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현재의 감정 상태를 만든 것이었다. “하...” 시연은 한숨을 쉬며 유건에게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에요. 저 화 안 났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저도 유건 씨의 입장를 이해해요. 당연히 여자 친구가 더 중요하죠.” ‘지시연의 말은 맞지만, 따지고 보면, 지시연이 내 아내인데!’ 얽히고설킨 이 상황 속에서 유건은 여전히 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너 아직 밥도 안 먹었잖아.” “맞네요.” 시연은 눈을 살짝 굴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손 좀 놔줄래요?” 그녀는 유건을 가리키며 그가 여자 친구와 함께 먹던 식탁을 가리켰다. “설마 제가 고유건 씨와 여자 친구가 남긴 음식 먹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저도 사람이에요, 키우는 개가 아니라고요.” 말하며 시연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고 대표님, 대표님 집에서 키우는 개도 이런 음식 안 먹을걸요?” ‘웃긴가?’ 유건의 잘생긴 얼굴에는 차가운 표정이 떠올랐다. “농담은 여기까지예요.” 시연은 손목을 돌리며 부탁하듯 말했다. “저 정말 배고파요, 제발 밥 먹게 해줘요.” 유건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새로 한 상 더 차리게 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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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기나긴 죽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시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 모습을 본 유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멍청한 자신에게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왜 화만 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지시연...” 유건은 후회했지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랐다. “그게 아니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그냥...”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고유건 씨의 말이 맞아요. 제 배 속에 있는 애는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예요. 저 같은 사람은 고유건 씨가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앞으로는 저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시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지시연!” 유건은 손을 뻗어 시연을 잡으려고 했지만, 시연이 이미 빠르게 뛰어나가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순간 유건이 주먹을 꽉 쥐고, 엘리베이터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분노와 불편함이 그를 짓눌러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 시연이 회진하러 왔을 때, 주지한은 유건이 퇴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연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유건의 상태로는 며칠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말했다. 특히 봉합한 복부의 실이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만, 그때까지 쉬기에 유건은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입원 중에도 일 처리를 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시연은 그의 퇴원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지한이 퇴원 수속을 밟으러 나갔다. “퇴원 후에도 당분간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시연과 유건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한 사람은 의사로서 사무적으로 말만 하고, 한 사람은 환자로서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대화는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어색했다.시연이 주의 사항을 전달하던 도중, 지한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형님!” 지한의 표정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큰일 났어요! 고 어르신께서 형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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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고상훈은 이미 의식을 회복한 상태였고, 그의 주름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는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시연은 고상훈이 어떤 심정인지 금방 눈치챘다. “할아버지, 유건 씨는 괜찮아요. 유건 씨의 부상은 제가 다 확인했고, 제가 계속 돌보고 있어요. 저를 믿으셔야죠.” 고상훈은 알겠다는 의미로 눈을 몇 번 깜박였고,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유건은 시연의 말을 듣고 옆으로 다가와, 고상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보세요, 저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고상훈은 힘겹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할아버지, 말씀해 보세요” 고상훈은 천천히 시연의 손과 유건의 손을 잡아 함께 포개어 놓았고, 그 뜻은 분명했다. 그는 두 사람이 부부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유건은 목이 메며 목구멍에 돌이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고상훈은 너무나도 기력이 약해져 있었던 터라, 유건의 말을 들은 후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 좀 더 쉬셔야 해요.” ... 병실을 나서며 문을 닫자, 시연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상태는 위험해 보였지만, 사실...” 유건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거 말고, 나한테 더 할 말 없어?” “무슨?” 시연은 어리둥절했다. 순간, 유건의 그림자가 그녀 위로 드리워졌다. 유건은 강한 힘으로 두 팔 벌려 시연을 꽉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 시연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손은 등을 받치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유건의 품은 단단하고 따뜻했으며, 희미한 페퍼민트 향의 향수가 배어 있었다. 시연은 두 손을 아래로 내리고 온몸이 굳어버린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유건 씨?”“응.” 유건은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 마치 어른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잠깐만,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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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시연은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휘저었다. 유건의 손에 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빨리!” 유건은 다급해졌다. 결국, 시연은 참지 못하고 결국 그의 손 위에 토하고 말았다. 그의 외투에도 제법 많은 토사물이 묻었다. “죄송... 죄송해요.” 시연은 가쁜 숨을 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괜찮아.”유건은 외투를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는 자리를 떠났고, 돌아왔을 때 셔츠에 물이 조금 묻어 있었다. 시연은 그가 자신이 만든 셔츠를 입지 않은 것을 보았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때, 좀 괜찮아졌어?” 유건은 시연 앞에 다시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긴 속눈썹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원래 배가 고팠는데, 토하고 나니 더 배 속이 더 허전해졌겠어. 아까 나왔던 음식은 못 먹겠고, 뭐 먹고 싶은 게 있어?” 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음... 저는 그냥 수제비가 먹고 싶어요.” 시연이 뜻밖의 음식을 말하자 유건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연은 그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기에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왜 하필 그게 먹고 싶어?” 유건은 당황스러웠다. 시연이 6성급 호텔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모든 고급 음식을 다 마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일어나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시연은 유건이 화가 난 줄 알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또 화가 났구나!’ “가자.” 유건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여기에는 네가 원하는 수제비가 없어.” “아...” 시연은 갑자기 속이 상해서 아무 말 없이 유건을 따라나섰다. 차에 올라타자, 그녀는 그저 병원 구내식당에서 라면이나 먹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가 한참을 달리자, 창밖을 바라보던 시연은 차가 진행하는 방향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 방향은 강울대학교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다. 유건은 운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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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시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자일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 아니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연의 이 대답에 유건은 충격을 받아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난 걸까?’ 유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그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그렇게 임신한 아이를 낳겠다는 거야?”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시연은 조심스럽게 배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그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단지, 그 아이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유건의 눈에는 그녀가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당한 순진한 여자로 보였다. “대답하지 마!” 갑자기 유건은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또 화가 난 걸까?’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정말 화를 잘 내는 사람이네. 기분이 왔다 갔다 하니 본인도 참 피곤하겠네...’ ‘도대체 장소미는 어떻게 고유건의 성격을 견디고 있는 걸까?’ 하지만 시연도 곧 생각을 바꿨다. ‘아마도 고유건이 장소미와 함께 있을 때는 다를 거야.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와 다른 사람을 분명 다른 방식으로 대할 테니까.’ 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수제비를 먹었다. 자신이 억지로 유건의 아내 자리를 차지한 이상,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여자와 자신을 비교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식사를 마친 유건은 시연을 다시 병원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병원으로 가? 아니면 기숙사로?” “기숙사로요.” 유건은 그녀를 기숙사 앞에 데려다주며 한마디 내뱉었다. “여기 기숙사, 건물 정말 낡았네.” “맞아요.” 시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강울대학교는 역사가 깊잖아요. 기숙사 건물이 오래된 건 당연해요.”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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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건 분명 기쁜 일이야. 하지만, 현진아,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 직설적이면서도 여지를 남기지 않는 단호한 말이었다. 그녀가 현진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사실 현진을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왜... 뭐가 시간 낭비야?” 시연은 차마 현진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현진은 그저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라고.그녀는 현진을 거절할 수는 있어도, 상처까지 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뒤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유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입가에 미소까지 번졌다. ‘역시 지시연은 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바로 그때, 시연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뭐라고?” 현진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한 번도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는데... 그 사람이 대체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우리 학교 학생인가?”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우리 학교 사람도 아니고.” “그, 그런데...” 현진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왜 한 번도 너를 만나러 오지 않아? 그리고 진아도 너에게 남자 친구가 없다고 하던데. 너, 나 떼어내려고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시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진아가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아니야. 다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야. 진아도 그 사람을 만나본 적 없어.” 시연이 이 말까지 하고 나니, 현진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 그런데, 너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해?” 이 질문이 나오자, 유건도 무심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응, 좋아해.” 시연은 잠시 주저하다가 덧붙였다. “정말 좋아해, 아주 많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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