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524 챕터

제301화 원맨쇼가 아니야

한편 송재이는 그날 밤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남도로 돌아갔다.그녀는 설영준에게도 안 알렸고 다른 그 누구에게도 안 알렸다.이번에 경주에 돌아와서 발생한 일들은 마음을 차분하게 식힌 다음 다시 되새겨보면 그리 무서울 일도 아니다.설영준은 낯선 사람 대하듯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꽤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었다.수년간의 고달픈 짝사랑인 줄 알았는데 결코 그녀만의 원맨쇼가 아니었다. 송재이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한편 배후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사람은 바로 주현아였다.주현하는 늘 위험한 캐릭터였다. 심지어 송재이의 아이를 떼어내려는 잔인하고 섬뜩한 짓도 벌였었다.그런 그녀가 다시 돌아왔는데 송재이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지만은 않았다.지난번에 주현아를 법의 제재를 받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엔 과연 다시 벗어날 수 있을까?경찰 진술 과정에서도 그녀는 이미 말했다시피 무조건 고소하고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다.별다른 예외가 없다면 주현아는 이번에 썩 그리 행운스럽지는 못할 것이다....경주에서 남도까지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정도 걸린다.송재이는 좌석에 허리를 기대고 두 눈을 감은 채 편히 잠을 잤다.그녀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속에서 설영준이 딴 여자랑 꼭 껴안고 있었다.그는 한없이 애틋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그 여자를 바라봤다.두 사람의 실루엣은 송재이와 그리 멀지 않았다.근데 왜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송재이가 한참 몸부림친 끝에 그 둘도 마침내 그녀의 외침을 듣고 머리를 돌렸다.설영준의 눈가에 짜증과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한편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몸매가 가녀린 것 말고는 얼굴이 좀처럼 잘 안 보였다.정아현일 수도 있고 또 혹은...송재이는 심장을 후벼 파듯 아프고 괴로웠다.그녀는 드디어 벌떡 눈을 떴다.이때 마침 비행기가 착륙했다.송재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다만 머릿속엔 온통 좀전의 꿈으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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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접촉 사고

주말, 두 사람은 카센터를 종일 돌아보다 나중에 송재이는 천만을 주고 산타나 한 대를 사서 오후에 바로 운전해 돌아왔다.기분이 좋은지 송재이는 운전하면서 카 오디오로 음악도 틀었다.경주에 있을 때 복잡하던 기분이 어느새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밥 먹으려고 장소를 정하는 도중에 이원희가 윤수아의 전화를 받았다.학교에 일이 있어 이원희보고 학교 “학부모” 역을 해달라고 요청했다.윤수아는 여전히 이원희에게 많이 의지했고 무슨 일만 생기면 맨 처음으로 이원희에게 연락했다.이원희가 송재이에게 말했다.“유턴.”두 사람이 통화할 때 차 안이 조용해 송재이는 통화 내용을 대충 알아들었다.이원희가 말을 꺼내기 전에 송재이는 이미 윤수아 학교 방향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이원희를 학교 맞은편 길옆에 내려 주고 송재이는 집으로 출발했다.그때 문뜩 하늘을 보니 언제 생겼는지 먹장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불현듯 며칠 전에 봤던 최근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는 뉴스가 생각났다.설마...송재이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송재이는 발에 힘을 줘 액셀을 밟으며 속도를 올려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그런데 중도에서 도로 정체가 발생했다. 차창을 반 내리고 머리를 내밀어 보니 전방에 차량이 물 샐 틈 없이 꽉 막혀있었다.머리 위에서 번개가 번쩍이던 바로 그때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다.이럴 때 울려오는 벨 소리는 사람을 초조하게 했다.송재이는 아예 전화벨을 무시해 버리고 온몸의 신경을 집중해 운전했다.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길옆의 나무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날리면서 차창으로 떨어졌다.송재이가 코너를 돌려고 할 때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너무 갑작스레 발생한 일이라 송재이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송재이의 차가 앞 차에 부딪혔다. 오늘 새로 산 차인데...접촉 사고는 큰일이 아니지만 송재이의 이마가 핸들에 부딪히면서 지끈거렸다.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머릿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손을 내밀어 이마를 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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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운수가 사나워

박윤찬이 걸어온 전화인 것을 보고 송재이는 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재이 씨 혹시 이원희 씨와 연락되나요? 방금 이원희 씨 이혼 사건에 관한 서류를 보다 사인을 안 한 게 있어서요. 전화해도 연락이 안 돼요.”“지금 수아네 학교에 있어요. 애들 때문에 바쁜가 봐요. 나중에 제가 알려줄게요.”송재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 중 간호사가 링거병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간호사는 문을 여는 동시에 송재이에게 물으며 들어오다 송재이가 통화 중인 걸 보았다.간호사의 목소리가 높지는 않았지만 박윤찬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박윤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어디예요? 어디 아파요?”송재이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가벼운 찰과상이고 뇌진탕도 그리 엄중하지 않기에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었다.“네. 작은 접촉 사고가 났어요.”송재이는 이마를 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설한 그룹 사무실.설영준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 자세로 앉아 넋을 잃은 지 한 시간이 되었다.전에 설영준은 근무 시간에 땡땡이치는 직원이 제일 보기 싫었지만 요즘 들어 자신도 정신이 분산된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손끝에 쥔 담배가 타들어 가면서 손가락이 뜨거워지자 설영준은 화들짝 놀라면서 분산된 정신을 끌어모았다.박윤찬의 전화가 그때 걸려 왔다.“송재이 씨가 접촉 사고가 났어요...”설영준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더니 물었다.“어쩌다가?”“그렇게 긴장할 건 없고. 오늘 남도에 폭우가 내렸고 그때 마침 도로 위에 있다 사고가 났대요. 말로는 심하지 않다고 하던데...”박윤찬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했다.“제일병원에 있어요.”박윤찬은 마지막에 특별히 주소를 알려주었다.설영준이 만일 가 볼 생각이 있다면 직접 가면 그만이다....전화를 끊고 설영준은 여진에게 제일 가까운 시간대에 있는 항공권을 예약하라고 지시했다.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공항에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설영준은 시간이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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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고소 취하하길 바라는 거?

좀 지나 설영준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설영준과 함께 있는 동안 이런 대우를 받아보긴 처음이다.설영준은 송재이를 밀고 1층으로 내려갔다.두 사람은 병원 마당에 있는 공원에서 천천히 산책했다.햇살이 따스했고 버드나무가지가 늘어져 있었으며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왔다.어제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사납게 불어치던 도시 같지 않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이 와서 갑자기 날씨가 개이고 폭풍우가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천진난만한 생각이 들었다.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리면서 자신의 로맨틱한 생각을 비웃었다.이때 송재이는 휠체어가 멈춘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어보니 설영준이 길옆의 벤치에 앉아 얼굴에 웃음기가 아직 남아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왜 웃어?”이 말을 하는 설영준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었지만 자신은 느끼지 못했다.햇살이 좋아 주변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다.어떤 사람은 송재이처럼 환자복을 입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송재이가 시선을 돌리니 어떤 여자아이가 공을 차며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양 갈래 머리를 한 얼굴이 아주 귀여운 아이였다.공이 설영준의 발밑으로 굴러오자 그는 공을 힐끗 보고 달려오는 여자아이를 보더니 공을 주워 아이에게 건네줬다.“아저씨 고마워요.”여자아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여자아이의 등 뒤에는 환자복을 입은 여인과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천천히 가.”여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자는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다정해 보였다.세 식구는 평범했지만 행복해 보였다.세 사람이 지나 간 뒤에도 송재이는 세 식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얼굴을 들고 남자와 이야기하는 여인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넘쳐흘렀다.설영준은 송재이의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좀 지나 설영준이 말했다.“민 대표님이 나를 찾아와서 주현아를 봐달라고 했어. 하지만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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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만나고 와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송재이는 설영준이 이미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그 아기는 송재이가 임신한 첫 번째 아이였다.만일 태어났으면 아마 여자아이였을 것이고 방금 그 여자아이와 비슷했을 것이다.“만약에... 만약이라고 했어. 만약에 그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나보고 애 지우라고 할 거야?”송재이가 물었다.“... 모르겠어.”설영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설영준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송재이와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만일 그때 송재이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했을지 설영준 자신도 잘 모른다.송재이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영준이 이번에 남도를 온 이유는 송재이를 만나기 위해서이다.지금 송재이를 마주하고 있지만 별다른 특별한 느낌이 없었고 도리어 말 못 할 공허감이 가슴속을 차지하고 있었다.설영준이 눈을 끔벅이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호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이 울렸다.여 비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이다.전화를 받으면서 설영준은 송재이를 피하지 않았다.대충 짐작해도 회사 일 때문에 전화했을 것이다.설영준은 회사 대표이기에 날마다 정신없이 바빴고 계약했다하면 몇천억짜리였다.비록 송재이는 이런 설영준에게 습관이 됐지만 가끔 자기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송재이는 씁쓸하게 웃었다.설영준이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송재이를 밀고 병실로 돌아왔다.이날 밤 설영준은 경주로 돌아가지 않고 병실에서 송재이와 함께 있었다.설영준이 옆에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송재이는 이날 밤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설영준은 자기 전에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았다.벨 소리에 자기가 깨는 건 괜찮지만 송재이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아침에 일어나보니 휴대폰을 보니 십여 개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고 전부 민효연이 걸어온 것이다.그리고 몇 개는 엄마 오서희의 번호였다.설영준이 눈살을 찌푸렸고 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송재이가 몸을 뒤척였다.설영준은 휴대폰을 호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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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영준을 미치게 하다

오호, 오서희가 함께 온 것은 설영준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어.설영준은 눈을 들지 않고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있었다.보기에는 업무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얼굴과 두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엄마인 오서희도 저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졌다.오서희는 설영준이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동년배 아이들한테는 볼 수 없는 노련함과 진중함이 보였다.특히 이 몇 년 동안 상업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칼 같은 성격과 기백이 더해졌다.“영준아...”“알았어요. 갈 거니까 병원 주소와 병실 번호를 저한테 보내줘요.”설영준이 저번에 병원으로 주승아를 만나러 갔던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주승아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설영준이 승낙하자 민효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영준아, 네가 전에 있었던 일을 개의치 않고 승아 봐주러 와줘서 내가 아주 고마워...”“전에 뭐가 있었어요?”오서희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그러자 민효연이 말했다.“현아가 철이 못들어서 사고를 쳤지 뭐예요. 그것도 납치를 했어요.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영준이가 사랑하는...”오서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놀란 표정으로 설영준에게 물었다.“송재이? 이번에 남도 다녀온 게 출장 때문이야 아니면 송재이 만나러 간 거야?”...두 사람이 한참 사무실에서 꾸물거리다가 민효연과 오서희가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러자 등뒤에서 문이 쾅 하고 굉음을 내며 닫혔다. 오서희가 깜짝 놀라더니 화가 나 돌아가서 문을 발로 차려는 것을 민효연이 말렸다.“됐어요. 설 대표가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하는가 보죠. 경주에서 남도까지 쫓아갔잖아요. 주위에 그렇게 많은 재벌 집 아가씨도 마다하고 그 여자만 좋아하잖아요.”“쳇.”오서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송재이가 경주를 떠나면 두 사람이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 여자의 역량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무슨 재주가 있는지 설영준을 한 번 또 한 번 남도로 달려가게 만들었다.오서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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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물고기와 용이 한데 섞여 있다

송재이는 이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고 이내 알아차렸다.‘주현아의 언니?’“이미...”“이미 죽은 줄 알았지?”오서희가 웃기만 하면서 가타부타 말을 안 하다가 이어서 말했다.“어쨌든 주승아가 깨어났어. 만일 그때 사고 나지 않았더라면 벌써 영준이와 결혼했을 거야. 어떤 면에서든 영준의 아내감으로는 네 차례가 없어.”오서희는 수시로 송재이를 탄압했다.전에는 송재이가 오서희의 말에 신경 쓰이고 속상해하고 했지만 이젠 많이 성장했다.오서희의 말을 듣고도 전혀 감흥이 없었고 심지어 오서희가 전에 윤수아가 설영준의 전 여자 친구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렇다면 윤수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서희가 날조한 것이란 말인가?송재이는 자신이 다른 여자의 대역이란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슬펐다.그 슬픔은 다시 끝없는 절망으로 변하면서 송재이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그런데 지금 오서희가 또 다른 변명을 꺼내놓았다.송재이를 한번 속이면 두번 속일 수 있었다. 하여 오서희의 말에 대해 송재의는 반신반의했다.송재이의 답도 듣기 전에 오서희가 서둘러 말했다.“좀 늦게 돈 보내놓을 테니까 돈 받으면 약속 지켜.”무슨 약속? 다름아닌 설영준을 떠나는 것이다.휴대폰 저 편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소리를 들으며 송재이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퇴근할 무렵에 이원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저녁에 약속 있어? 같이 저녁 먹을까?”순조롭게 이혼 수속을 마친 이원희의 생활은 점점 풍부해졌다.송재이는 그러자고 했다.차 정비소에 맡겼던 차도 이젠 멀쩡해졌다.퇴근해서 송재이는 산타나를 운전해 상업가 부근에 있는 노점을 향했다.사실 운전하고 갈 때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서 몸이 불편했다.이때에야 곧 있으면 생리 기간이란 걸 알아차렸다.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나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뜨거운 것이 확 쏟아져나왔다.전에는 생리 기간이 규칙적이던 것이 처음 유산하고 나서부터 그렇지 못했다.산부인과를 찾아가 봤더니 의사가 약을 처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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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박윤찬과 친해지다

부름소리에는 구조요청을 하는 긴박함이 묻어있었다.송재이가 전에는 예의를 지켜 박윤찬을 “박 변호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불러보긴 처음이다.이런 호칭에 박윤찬도 깜짝 놀랐다.송재이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해서 재빨리 박윤찬의 몸 뒤로 숨어 두 손으로 박윤찬의 셔츠 자락을 잡고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때 설영준이 느릿느릿 걸어왔다.설영준은 박윤찬과 함께 이곳으로 식사하러 온 것이다.박윤찬뿐만 아니라 설영준도 송재이가 위급한 상황이 닥치니 이런 친근한 말투로 박윤찬을 부를 줄 몰랐다.송재이의 부름 소리를 들었을 때 설영준은 걸음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그이 얼굴은 무섭게 굳어있었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으며 온몸에서 찬 기운이 뿜어져나왔다.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두 남자를 보더니 슬금슬금 도망쳤다.설영준이 냉소를 지으며 박윤찬과 송재이를 번갈아 보았다. 송재이는 그때까지 박윤찬의 셔츠 자락을 잡고 있었고 그런 모습으로 박윤찬의 옆에 서 있으니 왠지 더욱 가냘파 보여 보는 사람의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설영준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차가운 얼굴로 홱 돌아서더니 그대로 가버렸다.송재이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설영준이 화 난 것을 알아차렸다.설영준과 설명하고 싶었지만 몇 걸음 못가 멈췄다.“송 선생님 괜찮죠?”박윤찬이 물었다.박윤찬은 송재이가 난처할까 봐 재빨리 다른 화제로 넘겼다.“영준 씨는 자회사에 일 보러 오고 저는 출장을 왔어요. 같이 식사하려고 맞은 편 식당을 예약했는데 같이 가실래요?”박윤찬이 말할 때 이원희의 시선이 박윤찬의 몸에 고정되었고 같이 식사를 하자는 말에 송재이의 소매를 잡으며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송재이는 이원희의 그런 모습에 의아했다.이원희가 박윤찬에 대해 생각이 있을 줄 몰랐다. 송재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세 사람은 맞은편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통창을 통해 설영준의 모습을 보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 남자의 얼굴은 안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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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돈 받고 떨어져

책상 위에 놓였던 휴대폰이 울리자 송재이는 바로 힐긋 쳐다봤다.그녀는 설영준이 이렇게 총명할 줄 몰랐다. 송재이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속마음을 알아냈고 전혀 오차 없이 예상해 냈다.맞은편에 앉아 쉴 새 없이 땀을 훔치는 남자는 설영준과 만나기 전에는 줄곧 이메일과 전화로 연락했기에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가 밖에서 여자를 희롱하는 모습을 설영준에게 들킬 줄 몰랐다.예약한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와 설영준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했다.설영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실은 가만히 있어도 위엄이 있었다.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남자는 가슴이 떨려 저절로 땀이 줄줄 흘렀다.이것이 극한인 줄 알았더니 좀 지나니 세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이 테이블에 지금 다섯 명이 앉아 있었고 네 명의 시선이 전부 그 남자의 얼굴에 집중되었다.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자 그 남자는 아부하는 듯 떨리는 손으로 메뉴판을 설영준의 앞으로 밀었다.양해를 구하는 뜻이 분명하다.메뉴판이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설영준은 손으로 막으면서 차갑게 말했다.“돌아가세요.”정말 어렵게 설영준이라는 큰 바이어를 알게 되었고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수 없이 소통해 겨우 계약하기 일보 직전까지 왔는데 이 한마디 말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남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했다.“설 대표님, 무슨 뜻이에요?”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설영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인품에 문제가 있어요. 이젠 기회없어요.”...올 때까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남자는 설영준만 만나게 되면 순리롭게 계약이 성사될 줄 알았지만 계약이란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남자는 몸을 일으키더니 식당 밖으로 나갔다.테이블에 남은 몇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이원희와 박윤찬의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송재이와 설영준에게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박윤찬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분위를 깨더니 종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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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내가 난폭하면 누가 다정해?

송재이가 이 말을 이원희와 박윤찬이 있는 앞에서 하는 바람에 설영준의 자존심에 상당히 큰 상처를 주었다.마치 설영준이 맨날 송재이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들렸다.송재이가 설영준을 피해 남도로 이사까지 왔는데 자꾸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났을뿐더러 이곳에 자회사도 성립했다.설영준이 제일 사랑하는 사업을 남도로 옮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수 있었다.밥을 먹는 송재이의 모습은 여유로우면서도 강해 보였다.설영준은 끝까지 음침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어쩔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식사가 끝나자 송재이는 집에 가겠다고 하면서 이원희를 힐끗 쳐다보았다.지금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으니 함께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이원희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설영준이 갑자기 일어서면서 송재이에게 말했다.“나랑 잠깐 어디 다녀와야겠어.”“미안해. 피곤해서 들어가 쉴래.”생리 때문에 몸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설영준이 아랑곳하지 않고 송재이의 손목을 잡아끌자 이원희가 깜짝 놀라면서 옆에 비켜섰다.박윤찬이 앞으로 다가가며 설영준에게 말했다.“영준 씨, 진정해요.”설영준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어 박윤찬을 바라보았다.아까 전 긴급한 시각에 송재이가 말한 첫마디가 ‘윤찬 씨’였다.비록 사정이 있긴 했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호칭에 설영준은 온몸이 불편했다.사실 그는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감정에 있어서는 쪼잔하기까지 했다.“갈 거야 말 거야?”설영준이 낮은 소리로 말하며 차갑게 송재이를 노려보았다.평소 같으면 송재이는 겁이 나서 못 따라갔을 텐데 생리 기간이니 설영준이 아무리 화가 나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송재이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송재이의 표정이 풀어진 것을 본 설영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재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송재이가 하이힐을 신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면서 허둥대는 모습은 초라해 보였고 설영준의 손에 잡힌 손목도 아팠다.“왜 이렇게 난폭해?”식당밖으로 나와 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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