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오서희가 함께 온 것은 설영준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어.설영준은 눈을 들지 않고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있었다.보기에는 업무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얼굴과 두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엄마인 오서희도 저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졌다.오서희는 설영준이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동년배 아이들한테는 볼 수 없는 노련함과 진중함이 보였다.특히 이 몇 년 동안 상업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칼 같은 성격과 기백이 더해졌다.“영준아...”“알았어요. 갈 거니까 병원 주소와 병실 번호를 저한테 보내줘요.”설영준이 저번에 병원으로 주승아를 만나러 갔던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주승아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설영준이 승낙하자 민효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영준아, 네가 전에 있었던 일을 개의치 않고 승아 봐주러 와줘서 내가 아주 고마워...”“전에 뭐가 있었어요?”오서희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그러자 민효연이 말했다.“현아가 철이 못들어서 사고를 쳤지 뭐예요. 그것도 납치를 했어요.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영준이가 사랑하는...”오서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놀란 표정으로 설영준에게 물었다.“송재이? 이번에 남도 다녀온 게 출장 때문이야 아니면 송재이 만나러 간 거야?”...두 사람이 한참 사무실에서 꾸물거리다가 민효연과 오서희가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러자 등뒤에서 문이 쾅 하고 굉음을 내며 닫혔다. 오서희가 깜짝 놀라더니 화가 나 돌아가서 문을 발로 차려는 것을 민효연이 말렸다.“됐어요. 설 대표가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하는가 보죠. 경주에서 남도까지 쫓아갔잖아요. 주위에 그렇게 많은 재벌 집 아가씨도 마다하고 그 여자만 좋아하잖아요.”“쳇.”오서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송재이가 경주를 떠나면 두 사람이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 여자의 역량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무슨 재주가 있는지 설영준을 한 번 또 한 번 남도로 달려가게 만들었다.오서희가
송재이는 이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고 이내 알아차렸다.‘주현아의 언니?’“이미...”“이미 죽은 줄 알았지?”오서희가 웃기만 하면서 가타부타 말을 안 하다가 이어서 말했다.“어쨌든 주승아가 깨어났어. 만일 그때 사고 나지 않았더라면 벌써 영준이와 결혼했을 거야. 어떤 면에서든 영준의 아내감으로는 네 차례가 없어.”오서희는 수시로 송재이를 탄압했다.전에는 송재이가 오서희의 말에 신경 쓰이고 속상해하고 했지만 이젠 많이 성장했다.오서희의 말을 듣고도 전혀 감흥이 없었고 심지어 오서희가 전에 윤수아가 설영준의 전 여자 친구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렇다면 윤수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서희가 날조한 것이란 말인가?송재이는 자신이 다른 여자의 대역이란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슬펐다.그 슬픔은 다시 끝없는 절망으로 변하면서 송재이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그런데 지금 오서희가 또 다른 변명을 꺼내놓았다.송재이를 한번 속이면 두번 속일 수 있었다. 하여 오서희의 말에 대해 송재의는 반신반의했다.송재이의 답도 듣기 전에 오서희가 서둘러 말했다.“좀 늦게 돈 보내놓을 테니까 돈 받으면 약속 지켜.”무슨 약속? 다름아닌 설영준을 떠나는 것이다.휴대폰 저 편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소리를 들으며 송재이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퇴근할 무렵에 이원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저녁에 약속 있어? 같이 저녁 먹을까?”순조롭게 이혼 수속을 마친 이원희의 생활은 점점 풍부해졌다.송재이는 그러자고 했다.차 정비소에 맡겼던 차도 이젠 멀쩡해졌다.퇴근해서 송재이는 산타나를 운전해 상업가 부근에 있는 노점을 향했다.사실 운전하고 갈 때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서 몸이 불편했다.이때에야 곧 있으면 생리 기간이란 걸 알아차렸다.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나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뜨거운 것이 확 쏟아져나왔다.전에는 생리 기간이 규칙적이던 것이 처음 유산하고 나서부터 그렇지 못했다.산부인과를 찾아가 봤더니 의사가 약을 처방해
부름소리에는 구조요청을 하는 긴박함이 묻어있었다.송재이가 전에는 예의를 지켜 박윤찬을 “박 변호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불러보긴 처음이다.이런 호칭에 박윤찬도 깜짝 놀랐다.송재이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해서 재빨리 박윤찬의 몸 뒤로 숨어 두 손으로 박윤찬의 셔츠 자락을 잡고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때 설영준이 느릿느릿 걸어왔다.설영준은 박윤찬과 함께 이곳으로 식사하러 온 것이다.박윤찬뿐만 아니라 설영준도 송재이가 위급한 상황이 닥치니 이런 친근한 말투로 박윤찬을 부를 줄 몰랐다.송재이의 부름 소리를 들었을 때 설영준은 걸음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그이 얼굴은 무섭게 굳어있었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으며 온몸에서 찬 기운이 뿜어져나왔다.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두 남자를 보더니 슬금슬금 도망쳤다.설영준이 냉소를 지으며 박윤찬과 송재이를 번갈아 보았다. 송재이는 그때까지 박윤찬의 셔츠 자락을 잡고 있었고 그런 모습으로 박윤찬의 옆에 서 있으니 왠지 더욱 가냘파 보여 보는 사람의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설영준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차가운 얼굴로 홱 돌아서더니 그대로 가버렸다.송재이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설영준이 화 난 것을 알아차렸다.설영준과 설명하고 싶었지만 몇 걸음 못가 멈췄다.“송 선생님 괜찮죠?”박윤찬이 물었다.박윤찬은 송재이가 난처할까 봐 재빨리 다른 화제로 넘겼다.“영준 씨는 자회사에 일 보러 오고 저는 출장을 왔어요. 같이 식사하려고 맞은 편 식당을 예약했는데 같이 가실래요?”박윤찬이 말할 때 이원희의 시선이 박윤찬의 몸에 고정되었고 같이 식사를 하자는 말에 송재이의 소매를 잡으며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송재이는 이원희의 그런 모습에 의아했다.이원희가 박윤찬에 대해 생각이 있을 줄 몰랐다. 송재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세 사람은 맞은편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통창을 통해 설영준의 모습을 보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 남자의 얼굴은 안 보였
책상 위에 놓였던 휴대폰이 울리자 송재이는 바로 힐긋 쳐다봤다.그녀는 설영준이 이렇게 총명할 줄 몰랐다. 송재이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속마음을 알아냈고 전혀 오차 없이 예상해 냈다.맞은편에 앉아 쉴 새 없이 땀을 훔치는 남자는 설영준과 만나기 전에는 줄곧 이메일과 전화로 연락했기에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가 밖에서 여자를 희롱하는 모습을 설영준에게 들킬 줄 몰랐다.예약한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와 설영준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했다.설영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실은 가만히 있어도 위엄이 있었다.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남자는 가슴이 떨려 저절로 땀이 줄줄 흘렀다.이것이 극한인 줄 알았더니 좀 지나니 세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이 테이블에 지금 다섯 명이 앉아 있었고 네 명의 시선이 전부 그 남자의 얼굴에 집중되었다.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자 그 남자는 아부하는 듯 떨리는 손으로 메뉴판을 설영준의 앞으로 밀었다.양해를 구하는 뜻이 분명하다.메뉴판이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설영준은 손으로 막으면서 차갑게 말했다.“돌아가세요.”정말 어렵게 설영준이라는 큰 바이어를 알게 되었고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수 없이 소통해 겨우 계약하기 일보 직전까지 왔는데 이 한마디 말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남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했다.“설 대표님, 무슨 뜻이에요?”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설영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인품에 문제가 있어요. 이젠 기회없어요.”...올 때까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남자는 설영준만 만나게 되면 순리롭게 계약이 성사될 줄 알았지만 계약이란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남자는 몸을 일으키더니 식당 밖으로 나갔다.테이블에 남은 몇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이원희와 박윤찬의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송재이와 설영준에게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박윤찬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분위를 깨더니 종업원
송재이가 이 말을 이원희와 박윤찬이 있는 앞에서 하는 바람에 설영준의 자존심에 상당히 큰 상처를 주었다.마치 설영준이 맨날 송재이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들렸다.송재이가 설영준을 피해 남도로 이사까지 왔는데 자꾸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났을뿐더러 이곳에 자회사도 성립했다.설영준이 제일 사랑하는 사업을 남도로 옮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수 있었다.밥을 먹는 송재이의 모습은 여유로우면서도 강해 보였다.설영준은 끝까지 음침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어쩔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식사가 끝나자 송재이는 집에 가겠다고 하면서 이원희를 힐끗 쳐다보았다.지금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으니 함께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이원희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설영준이 갑자기 일어서면서 송재이에게 말했다.“나랑 잠깐 어디 다녀와야겠어.”“미안해. 피곤해서 들어가 쉴래.”생리 때문에 몸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설영준이 아랑곳하지 않고 송재이의 손목을 잡아끌자 이원희가 깜짝 놀라면서 옆에 비켜섰다.박윤찬이 앞으로 다가가며 설영준에게 말했다.“영준 씨, 진정해요.”설영준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어 박윤찬을 바라보았다.아까 전 긴급한 시각에 송재이가 말한 첫마디가 ‘윤찬 씨’였다.비록 사정이 있긴 했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호칭에 설영준은 온몸이 불편했다.사실 그는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감정에 있어서는 쪼잔하기까지 했다.“갈 거야 말 거야?”설영준이 낮은 소리로 말하며 차갑게 송재이를 노려보았다.평소 같으면 송재이는 겁이 나서 못 따라갔을 텐데 생리 기간이니 설영준이 아무리 화가 나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송재이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송재이의 표정이 풀어진 것을 본 설영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재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송재이가 하이힐을 신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면서 허둥대는 모습은 초라해 보였고 설영준의 손에 잡힌 손목도 아팠다.“왜 이렇게 난폭해?”식당밖으로 나와 송재
“나쁜 자식? 난폭? 너한테 내가 그리 형편없는 남자였어?”설영준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지라 저도 모르게 유치한 말을 내뱉었다.송재이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아예 외면했다.“내가 싫어?”설영준이 문득 물었다.순간 송재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행히 얼굴이 창문을 향하고 있는지라 설영준은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느릿느릿 대답했다.“그걸 몰라서 물어?”새침한 목소리는 억울함 때문인지 화가 묻어났다.그녀는 설영준이 단지 떠보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때, 등 뒤로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설영준은 담배를 물고 힘껏 빨아들였고, 마치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싶었다.이내 차 안에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순간 남자의 손이 턱을 움켜쥐었고, 고개를 천천히 돌려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빨개진 눈시울은 억울한 듯 보호 본능을 자극했고,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유리처럼 손대면 깨질 듯 위태위태했다.“엄마가 준 10억을 진짜 받은 거야? 고작 돈 때문에 평생 날 외면하겠다고?”“그래, 나 원래 돈에 환장하잖아.”“괜한 객기 부리지 마.”설영준은 그녀가 홧김에 일부러 오서희의 돈을 받은 걸 알고 있었다.그제야 송재이는 어떤 사람인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왜냐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니까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었던 것이다.하지만 박윤찬과 다정한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질투심을 감추지 못했다.물론 이런 기분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박윤찬과 같은 책을 읽고, 두 사람이 찍은 셀카, 그리고 친구의 소송 때문에 박윤찬을 찾아간 걸 알게 되는 순간에도...그러나 둘은 단지 친한 친구에 불과했고, 박윤찬도 송재이에게 관심이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따라서 꼬투리를 잡을 거리가 없어 왠지 모르게 더욱 화가 났다.용암처럼 부글거리는 감정은 오로지 혼자서 삭여야만 했다.이내 그는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출발했다.내부는 유난히 조용했고 송재이가
다음날 송재이는 교장실에 불려갔고, 교장은 그녀에게 해외 공연에 다녀오라고 추천해줬다.학교에서 총 5명의 음악 선생님이 뽑혔는데 그중에 그녀가 있었다.지난번에 교환 학생으로 유학 보내더니 이번에는 오케스트라 공연하러 다시 출국하게 되었다.학교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기회가 벌써 몇 번째인가?사실 교직원 사이에서 이미 그녀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물론 송재이도 알고 있었다. 만약 눈총받기 싫으면 너무 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다만 워낙 관심이 많았던 해외 공연인지라 설령 동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결국 오후에 교장이 건네준 신청서를 작성했다.공연 일정이 보름 가까이 되기에 과연 설영준한테 얘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어젯밤만 해도 차 안의 분위기가 미묘했고, 새집 키까지 건네주었다는 건 다시 동거하자는 뜻과 다름없었다.그 뒤로 연락을 못 받았기에 아마도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싶었다.저녁이 되자 설영준의 문자가 도착했다.[이사는 좀 생각해봤어?]송재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답장했다.[학교에서 해외 공연 다녀오라고 해서 보름 정도 나가 있을 것 같아. 나중에 다시 알려줄게.]설영준은 샤워하고 나와서 그녀의 카톡을 확인했다.그리고 휴대폰을 쥔 채 화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또다시 떠난다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사실 이런 기분은 그녀가 출국한다고 했을 때 이미 경험해 본 바가 있었다.가끔은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어긋나냐는 말이다.결국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답장했다.[공연 잘해.]물론 [기다릴게]라는 말은 끝내 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경주 오케스트라에서 송재이는 항상 수석이었다.그 당시에도 늘 오케스트라를 따라 공연하러 다니고는 했었다.나중에 남도에 와서는 이런 대형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는 않았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문예슬도 이번에 송재이가 공연 때문에 출국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따라서 리허설에 매진해야 하기에 굳이 방까지 찾아가서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물론 가끔 밤에 야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설령 매번 냉대를 당해도 송재이의 기분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셰프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챙겨왔다.“요즘 고생하고 있는 걸 아니까 체력 보충해. 이거 먹어 봐,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거든.”문예슬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녀의 앞접시에 덜어주었다.사실 오늘 송재이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온종일 계속된 리허설로 인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앞접시에 놓인 깐 새우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더니 정말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문예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 가는 송재이를 빤히 쳐다보았다.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화장실에 다가갔다.한편, 양치를 마친 송재이는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고,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을 발견했다.“너 혹시 임신했어?”문예슬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송재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송재이가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며칠 전에 생리가 왔는데...”이내 멈칫했다. 물론 이틀 만에 끝나기는 했지만...그러다가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댓글이 문득 생각났다. 어떤 여자가 생리가 온 줄 알았는데 이틀 만에 끝나고 나중에 하혈까지 동반해서 병원에 검사를 받았더니 그제야 자연 유산되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댓글을 떠올리는 순간 송재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그녀도...?갑자기 돌변한 송재이의 안색을 보고 문예슬이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행여나 문예슬이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챌까 봐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숙여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 손을 닦았다.“아니야.”‘이상한데?’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송재이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