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죽기 전엔 못 놔줘 / 챕터 931 - 챕터 940

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931 - 챕터 940

1166 챕터

제931화

문적 박대를 당한 추경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에 귀를 기울였다.뭐라도 듣고 싶어서 이내 안달 난 모습으로 말이다.다행히도 방음 효과가 꽤 뛰어났고 베란다에서 얘기하고 있었으므로 추경은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어? 꽉 막힌 공간에 남녀 단둘이 들어가다니!”일그러진 얼굴로 추경은이 내내 중얼거렸다.옆에 박윤우가 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한참 박민정을 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다리 쪽이 젖어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긴가민가하면서 고개를 숙인 추경은은 액체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박윤우를 보게 되었다.박윤우는 추경은의 다리에 그 액체를 붓고 있었고 그 냄새는 유난히 지독했다.“아! 박윤우! 뭐 하는 짓이야!”세상 순수한 눈빛으로 박윤우가 대답했다.“경은 이모, 이건 제가 아줌마한테서 가지고 온 거예요. 꽃에 주는 비료라고 하던데, 이거 이렇게 많이 뿌리면 꽃이 빠르게 자란다고 했었어요.”“경은 이모 다리가 하도 낫지를 않아서 이렇게라도 하면 좀 빨리 낫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비료 주고 있는 거예요.”그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바로 사색이 되어버렸다.이윽고 비명과 함께 미친 듯이 욕실로 뛰어갔다.허겁지겁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고서 박윤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뼉까지 쳤다.“흥! 감히 우리 엄마를 욕하다니!”같은 시각, 방안에서.베란다에서 한창 얘기를 하고 있던 박민정과 정민기는 밖의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민정 씨, 제가 알아본 것에 따르면 그때 이지원은 진주시를 떠나지 않고 권진하를 찾아가서 그와 사적으로 만남을 유지했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권진하가 이지원에게 특별히 집까지 마련해줬다고 해요.”정민기의 말을 듣고 난 박민정은 조금 믿어지지 않았다.“네? 제 기억으로는 권진하에게 따로 약혼녀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지원의 친한 친구인 하예솔이 권진하의 약혼녀였던 것 같은데요?”정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하예솔도 지금까지 속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알게 된다면 권진하와 결
더 보기

제932화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예솔을 비롯한 10명 이상의 동창생이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박민정은 자기만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하면 하예솔도 반드시 참가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였다.내일이면 휴가철 마지막 날이다.과 반장은 내일 저녁 8시에 만나자면서 레스토랑 위치를 채팅방에 올렸다.하예솔은 더욱더 정확한 소식을 얻고자 바로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원아, 너 대학교 채팅방 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는 이지원이다.내내 박민정으로부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지원은 지난번 일이 자기한테 파급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박민정의 답장을 따로 받지 못했다.모임에 참가하겠다고 올린 답장 외에는...“봤어. 근데 왜?”이지원은 애써 덤덤한 척을 했다.“같이 가자. 박민정 걔가 지금 어떤 꼴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하예솔 역시 박민정이 유명한 작곡가 민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지가 아무리 잘나 봤자 박민정이지!’하지만 이지원은 살짝 망설였다.“그냥 안 갈래. 나 지금 걔 때문에 숨어 살고 있어. 모임에 갔다가 도려 당하게 될지도 몰라.”그 말을 듣고서 하예솔이 오히려 발끈했다.“안 돼! 너 꼭 와! 걔가 아무리 잘나가는 작곡가라고 하더라도 제삼자인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아. 제삼자는 이유가 어찌 됐든 세상 제일 나쁜 년이고 욕을 아무리 먹어도 싸!”그렇다, 하예솔은 아직도 박민정이 이지원과 유남준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그만하고 너도 간다고 반장한테 말할게.”하예솔은 이지원의 동의도 없이 바로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우리 이지원 스타님도 가실 거야. 그러니 끼지 말아야 할 사람은 알아서 끼지 않은 게 좋을 거야.]채팅방을 확인한 이지원은 바로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먼저 하예솔이 박민정에게 미움을 사게 하고 자기가 나서서 두 사람 사이를 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이내 마음이 약한 박민정이므로 하예솔과의 ‘싸움’에서 박
더 보기

제933화

유남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다시 박민정을 끌어안았다.그러자 박민정은 손을 뿌리치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옆으로 몸을 옮겼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나지막한 소리로 ‘경고’까지 하면서 말이다.박민정의 말과 행동에 지금 몹시나 답답한 유남준이다.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다친 유남준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던 박민정이기 때문이다.유남준이 괜찮아진 것을 보고 난 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그럼, 네가 내 몸에 손대.”박민정의 손을 덥석 잡고서 유남준은 자기 가슴 위에 놓았다.졸음이 밀려온 박민정은 이내 귀찮아하면서 그 손을 뿌리쳐버렸다.유남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오기라도 발동한 듯이 또 손을 덥석 잡아 가슴에 놓았다.임신한 박민정은 지금 호르몬 분비 변화로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그만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린 채 소리까지 치고 말았다.“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짜증 난다고요!”말을 마치고 이불을 돌돌 말고서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멍해진 유남준만 침대 중간에 덩그러니 남겨 둔 채 박민정은 바로 꿀잠에 들었다.유남준에게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큰 소리로 말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는 사람은 오직 박민정 한 명뿐일 것이다.그렇게 유남준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이튿날 아침, 유남준은 어두운 얼굴로 차에 올랐다.주위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것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다.숨 막히는 듯한 상황에 서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도저히 보고를 올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유남준의 이성을 잃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박민정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다희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대표님, 윤석후 회사에 관한 사안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모님께 말씀해 드릴까요?”박민정에게 알려주면 반드시 기뻐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은 무려 시장 최저 가격으로 윤석후의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하지만 어젯밤 박민정에게 하대를 당한 것을
더 보기

제934화

오늘 이지원은 예전과 달리 메이크업에도 옷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얼굴도 약간 창백한 것이 수심에 잔뜩 녹아내린 모습이었다.박민정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도 예를 갖춘 채 먼저 눈웃음을 건넸다.며칠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기고만장함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자리를 찾아 앉은 박민정은 따뜻한 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거의 다 모이게 되자, 과 반장이 나서서 바삐 돌기 시작했다.“자, 다들 얼른 자리 찾아 앉아. 이렇게 다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더욱 즐겁게 지내도록 하자.”박민정 곁에 앉은 누군가가 그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민정아, 얼마 전에 기사에서 그러던데,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작곡가 민 선생이라면서? 그게 사실이야?”“맞아. 그게 나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소리를 듣고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박민정에게 시선을 쏠리게 되었다.저마다 다양한 시선과 표정으로 말이다.“민정아, 너 진짜 성공했구나!”“너 난청 환자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서 배워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민정이 네가 작곡가로 성공하다니 너무 놀랍고 대단한 것 같아!”“...”다들 한마디씩 주고받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재수 없어.’계속 듣기에 거북했던 하예솔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그딴 곡 몇 개 쓴 거 가지고 유난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러는 거야 다들? 완전히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하예솔의 말에 조금 전까지 박민정에게 칭찬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절대로 말려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그러나 오히려 예상치 못한 사람인 이지원이 박민정의 손을 잡고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민정아, 마음에 담아주지 마. 예솔이 여기로 오기 전에 술 좀 마셨거든 아마 취한 김에 하는 소리일 거야.”“지원아!”하예솔은 이지원을 부를 때 음을 길게 뺐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나 술 마시고 온 거 아니야. 취할
더 보기

제935화

“그럴 리가.”박민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 웃음 한 번에 이지원은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우리 계속 예전처럼 친한 사이로 지내는 건 어때?”이지원이 말하면서 천천히 다가가 박민정의 팔짱을 꼈다.그러나 박민정은 바로 이지원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그 이유가 뭔지 알아? 너한테 화낼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야.”“나 죽이려고 했었지? 나라고 너 가만히 둘 것 같아? 앞으로 넌 생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린 이지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하지만 박민정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이지원은 곧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박민정, 나한테 얼마든지 복수해도 좋아. 근데 유남준도 연지석에게도 도움 청하지 마. 그건 좀 불공평하잖아.”이지원은 지금껏 박민정을 자기 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다.박민정이 자기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지원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박민정은 권해신에게 납치를 당하고 나서 이지원도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유남준에게 알리지 않았다.이지원의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비아냥거리면서 웃었다.“걱정하지 마. 절대 그럴 리 없어.”머지않아 곧 그 보복을 당하게 될 이지원이니 말이다.남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고 확답을 듣게 되자 이지원은 박민정이 그리 무섭지 않았다.곧바로 가식적인 모습을 거두어들이고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앞장서서 테이블로 돌아갔다.어느 정도 분위기 무르익자, 사람들은 서서히 오락을 즐기려고 했다.본격적으로 2차를 시작하기 전에 과 반장이 운을 떼기 시작했다.“자, 다들 5년 전에 우리가 했었던 약속 기억나? 5년 후의 만남에서 그때 학교에서 찍었던 사진이랑 동영상 풀기로 했었잖아.”사람들은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동영상과 사진을 얼른 보여달라면서 다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이윽고 과 반장은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동영상을 틀기 시작했다.순간 대학교 시
더 보기

제936화

과연 말을 뱉자마자 이지원은 후회하고 말았다.많은 사람에게 미움을 산 이지원은 하예솔마저 잃을 수 없었다.하예솔이 또다시 뺨을 후려치려고 하자 이지원은 단번에 그 손을 막아버렸다.“예솔아, 이러지 마. 보는 눈도 많은데...”하예솔은 그제야 그동안 박민정이 느꼈던 그 감정을 알 것만 같았다.단 한 번도 후회라는 것을 한 적이 없는 하예솔인데, 지금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다.“이지원, 앞으로 나 그렇게 부르지 마. 우린 더 이상 친구도 뭐도 아니야. 난 평생을 널 원수로 생각하면서 살 거야!”역시나 당사자가 되어야만 당사자의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법인 듯싶다.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박민정에게 온갖 심한 말을 퍼부었던 하예솔의 언행을 옆에서 지켜봤었으니 말이다.유남준과 혼인 신고까지 마친 박민정에게 제삼자라고 했던 하예솔.이유를 불문하고 사랑받지 않는 쪽이 제삼자라고 주장했던 하예솔.그릇된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하예솔을 사람들은 도와줄 리가 없었다.이지원은 지금 하예솔과 사적으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은 심정뿐이다.“예솔아, 우리 다른 데로 가서 천천히 얘기하자. 제발 여기서 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자.”“꺼져!”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하예솔은 이를 악물고 덧붙였다.“지금 당장 진주시에서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생지옥이 뭔지 똑똑히 보여주고 말 거야!”홧김에 하는 말도 과장된 말도 아니다.하씨 가문에서 나서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니 말이다.애지중지 키운 자기 딸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하예솔의 부모님이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제법 진지해 보이는 하예솔의 반응에 이지원은 주위를 훑어보았다.이윽고 이지원의 시선은 박민정에게 떨어졌다.“네가 꾸민 짓이지?”조금 전 화장실 앞에서 박민정이 했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이지원은 확신할 수 있었다.필경 과 반장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과 반장이 그럴 일은 전혀 없었다.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내
더 보기

제937화

박민정 역시 자기도 모르게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어디서 많이 본 듯한 차인 것 같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자기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먼저 떠나려고 할 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차 문이 열리고 서다희가 차에서 내려왔다.“사모님.”서다희는 성큼성큼 박민정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서다희가 바로 유남준의 비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의외라는 듯 눈이 동그래진 박민정이다.“서 비서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대표님도 함께 오셨습니다.”서다희는 눈으로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차창이 내려오자 깎아 놓은 듯한 완벽한 콧날과 남자다운 턱선이 시야로 들어왔다.“대표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귀가하자고 하셨습니다.”서다희의 말을 듣고 난 뒤 사람들의 시선은 롤스로이스에 앉아 있는 유남준에게 쏠리게 되었다.다들 자기도 모르게 부러운 눈길로 박민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눈멀었다고 하지 않았어?’‘근데 왜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하물며 지금 유남준이 타고 온 롤스로이스는 실거래가 없는 한정판이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자기를 직접 데리러 올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네.”입꼬리를 올리면서 박민정은 동창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롤스로이스에 오른 박민정을 보고서 하예솔과 이지원은 마음이 꽤 복잡했다.그때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남준이 박민정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지원이라고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어? 이지원과 유남준이야말로 찐사랑이라고 박민정이 제삼자라고 그러지 않았어?”그 말을 이지원과 하예솔이 했었다.지금 하예솔은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무척이나 수치스럽고 비할 데 없이 후회하고 있다.‘이지원 저 미친년의 말에 넘어가다니! 하예솔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이지원이 어디로 가든 유남준은 단 한 번도 직접 데리러 온 적이 없다.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덧붙였다.“앞으로 헛소리하는 거 듣지도 말고 대꾸도
더 보기

제938화

두원 별장에 도착하자 유남준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목이 빠지게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추경은은 그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갔다.“남준 오빠, 많이 늦었네? 어디서 오는 길이야?”활짝 웃으면서 말을 거는 그 순간 잇달아 내리는 박민정을 보고서 금세 입꼬리가 내려갔다.“새언니도 같이 오셨네요. 동창 모임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유남준이 이에 대해 모르고 있을까 봐 추경은은 일부러 ‘동창 모임’에 어세를 높여 말했다.‘난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박윤우에게만 말해줬던 일을 추경은 역시 알고 있어서 마냥 궁금하기만 했다.‘윤우가 말했나?’하지만 박윤우는 대놓고 추경은을 싫어하고 있다.그 말인즉슨, 절대 추경은에게 알려줄 리가 없다는 뜻이다.그 당시 동창 모임에 간다고 박윤우에게 말했을 때, 가정부도 옆에 함께 있었다.요즘 가정부는 추경은과 유난히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지난번 추경은한테 차 사고가 났을 때도 가정부는 추경은의 편을 들어 준 적이 있다.가정부와 함께 보내온 세월이 있는 박민정은 상대가 아주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종종 상황에 따라서 본다면 가정부는 지금 추경은의 말에 넘어가고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조만간 기회를 찾아 가정부 앞에서 추경은의 가면을 벗기겠다면서 박민정은 속으로 다짐했다.“네, 동창 모임 끝나고 오는 길이에요. 남준 씨가 직접 모임 장소까지 데리러 온 거 있죠.”추경은의 기분을 망치려고 박민정은 일부러 약을 올렸다.역시나 추경은은 단번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남준 오빠 새언니한테 참 지극정성이네요. 저도 남준 오빠처럼 와이프만 바라보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좋겠는데...”박민정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날카로운 모습으로 말했다.“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남준 씨는 딱 한 명이잖아요.”소리 없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유남준은 서서히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자기를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한 박민정의
더 보기

제939화

그 말을 듣고서 유남준은 오기가 발동했다.“네가 배우고 싶은 거 나 역시 가르쳐줄 수 있어.”유남우보다 못난 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유남준이다.안타깝게도 박민정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이불을 꼭 덮으면서 중얼거렸다.“알았어요. 앞으로 남준 씨한테 물어보도록 할 게요.”눈까지 감고서 성의 없이 대답하는 박민정의 태도에 유남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또다시 ‘짜증 난다고요’라고 했었던 박민정의 말을 듣게 될까 봐 입을 다물었다.‘그래... 민정이 하고 싶은 대로 해.’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어도 유남우가 내내 신경 쓰였다.출근 시간에 맞추어 박민정은 일부러 알람까지 맞추어 놓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알람 소리가 울렸고 박민정은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자기보다 훨씬 더 일찍 준비를 마친 유남준이 보였다.“남준 씨, 출근 안 해요?”박민정은 의문이 가득한 두 눈으로 물었다.“앞으로 너랑 출퇴근 같이할 생각이야.”유남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내를 직장까지 바래다주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가는 건 남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하물며 유남우에게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하고 깊은지 보여주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유남준의 마음도 모르고 박민정은 바로 거절해 버렸다.운전기사도 따로 있고 시간 낭비에 너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유남준은 박민정과 같은 생각이 아니었다.“일단 아침부터 먹어. 다 먹고 바래다줄게.”상대가 거절을 하든 말든 유남준은 자기 뜻대로 밀어붙였다.그 모습을 보고서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납치 사건으로 트라우마라도 생겼나? 내가 걱정되나?’“알았어요. 아침 먹고 올게요.”추경은은 오늘 유남준이 자기와 박민정을 회사까지 바래다준다는 것을 알고 아침부터 흥얼거렸다.박민정이 아침을 다 먹고 나오자마자 바로 달려 나와 가식을 떨었다.“새언니, 가방 저 주세요.”오늘따라 유난히 예쁘고 과하게 꾸민 추경은
더 보기

제940화

차 안에서 유남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향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순간 박민정은 의문이 더 깊어져 갔다.“그게 아니라면 뭔데요?”“난 너랑 같이 출퇴근하고 싶은 거지 걔랑 하고 싶은 게 아니야.”유남준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다시 덧붙였다.“그리고 향수는... 네가 뿌린 거라고 한다면 참을 수 있어.”불과 30분밖에 안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박민정이라면 참을 수 있었다.흠 하나 잡을 데가 없이 완벽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 향수 뿌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두 사람은 30분 동안 이런저런 말을 가끔가다 주고받았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호산 그룹 문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이윽고 박민정이 차에서 내려왔다.오늘 유남준은 마이바흐를 몰고 나왔다.비록 어제 한정판인 롤스로이스만큼 비싼 차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마이바흐였다.사람들은 마이바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다음번에는 좀 저렴한 차를 몰고 왔으면 좋겠어...’회사 안으로 걸어가는 내내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이 느껴졌다.“너 저 사람 본 적 있어? 회사에 새로 온 고위직 아니야?”“고위직은 좀 그렇고... 바이어 아닐까?”“바이어라고 하기엔 얼굴이 너무 반칙이잖아. 내 직감으로는 어느 고위직의 아내거나 첩 같은 그런 ‘분’일 것 같아.”화장을 하지 않은 박민정이지만 오른쪽 얼굴에 흉터만 빼고 본다면 여전히 눈 부시는 존재였다.“예쁘긴... 오른쪽 얼굴 못 봤어? 흉터가 어마어마해.”“그러고 보니 흉터가 있었네.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미처 보지 못했어.”아래층으로 자료를 가지러 온 여직원들이 속닥속닥했다.보청기를 낀 박민정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서 잠시 보청기를 빼버렸다.듣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굳이 그러한 말에 자기 기분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고 정신력이 강한 박민정이다.여직원 중 한 명은 호산 그룹 꼭대기 층 대표이사실의 비서다.비서는 바로
더 보기
이전
1
...
9293949596
...
117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