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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고은서 씨, 질문 하나 있는데 제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네요.”민시후가 사악하게 말했다.‘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무슨 질문인데요?”민시후는 일부러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고은서 씨는 저랑 곽 대표님의 내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민시후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는 순간, 고은서는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고은서는 먼저 민시후에게 연락처를 물어서 그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았다. 이건 고은서가 곽승재보다 민시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걸 의미했다.그런데 민시후가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듦과 동시에 곽승재를 도발하는 것이었다.고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얼버무렸다.“내기 같은 건 실력을 제외하고도 운이 필요한 일이죠.”“고은서 씨는 제 운이 좋은 것 같나요?”“글쎄요, 일단은 민시후 씨가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랄게요.”민시후는 뭔가 더 할 얘기가 있는 듯했는데 곽승재가 창문을 올려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언제부터 민시후랑 그렇게 친해진 거야?”고은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곽승재가 다소 짜증스러운 어투로 물었다.고은서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넘겼다.“지금은 안 친한데.”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민시후의 미래 투자은행은 전망이 밝고 돈을 벌기에 적합할 듯했다.그러나 민시후 쪽에서는 곽승재와 대결하려고 했다.고은서는 전생에 곽승재가 그녀를 냉대하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낸 일로 그를 무척이나 원망했다. 그때 곽승재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가 억지로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었다.그래서 그녀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작게 냉소했다.곧 초록불이 들어오자 민시후는 액셀을 밟아 곽승재의 앞에 서더니 곽승재의 차를 막고 천천히 운전했다.곽승재가 왼쪽으로 가면 그도 왼쪽으로 가고 곽승재가 오른쪽으로 가면 그도 오른쪽으로 가서 절대 곽승재에게 먼저 앞서나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비록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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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민시후의 차는 큰 시멘트 더미와 충돌해서 차 뒷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겉보기엔 곽승재의 차보다 상태가 훨씬 더 심각했다.이때 구급차가 도착했고 곧 의사가 도착해 민시후를 차 안에서 들어냈다.“뚜렷한 외상은 없고 골절 현상도 없습니다. 일단은 에어백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을 잃은 것으로 판단됩니다...”의사의 말에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동시에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민시후와 곽승재 두 사람의 원한이 얼마나 크기에 겨우 비즈니스적인 대립 관계로 인해 이렇게 목숨까지 걸면서 충돌한단 말인가?...고은서와 곽승재가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저물었다.그들은 민시후가 이미 정신을 차렸고 큰 문제는 없지만 머리를 핸들에 박는 바람에 약간의 뇌진탕 증상이 있어 병원에 며칠 입원해서 쉬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오늘 사고가 발생한 곳은 길이 넓고 차가 적어서 다른 차량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경찰서에서도 크게 추궁하지는 않았다.고은서는 곽승재와 민시후 사이의 갈등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곽승재가 계속 표정을 굳히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거두어야 했다.주민기가 차를 타고 도착했다.고은서가 말했다.“두 사람 회사로 돌아가는 거 방해하지 않게 나는 내가 알아서 차 타고 갈게요.”곽승재는 워낙 바빠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늘 시간을 이렇게 많이 지체했으니 틈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배려한다고 한 말에 곽승재는 오히려 차가운 표정을 해 보였다.“요 이틀 있었던 사건들로는 모자라서 계속 사고 치려고?”고은서는 어리둥절했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곽승재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코웃음쳤다.고은서는 뒤늦게 반응했다.“이혼 얘기는 진심이었어. 민시후 씨 차를 들이받은 건 순전히 사고였고.”“민시후가 왜 널 알고 있는 건데? 민시후 만나자마자 자기소개라도 했어?”그 일을 설명하기는 번거로웠고 설명한다고 해도 곽승재가 믿지 않을 것 같았기에 고은서는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오늘 오빠에게 폐를 끼친 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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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어딜 가? 네가 약 발라줘!”“미안하지만 난 의사가 아니라서 그럴 의무가 없는데.”고은서가 차갑게 거절했다.곽승재는 더욱더 언짢아졌다. 조금 전까지는 초조해하면서 걱정해 주고는 곧바로 태도를 달리하다니.“의무가 없다니? 내가 누구 때문에 다쳤는지 잘 생각해 봐.”고은서는 괜히 네가 화를 내서 차를 들이받지 않았더라면 다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곽승재는 끝까지 그녀와 따지고 들 태세였고 고은서는 그를 상대할 기분이 아니었다.겨우 약을 바르는 것이니 시간도 얼마 들지 않을 것이다.이미숙이 약상자를 들고 왔고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면봉과 알코올을 꺼냈다.“도련님, 사모님. 전 먼저 일 보러 가보겠습니다. 분부하실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이미숙이 떠나고 고은서는 곽승재의 상처를 처리해 주기 시작했다.그의 상처는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긁힌 곳이 꽤 많아 피가 많이 흘렀다.알코올을 상처에 바르니 쓰라렸다. 곽승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가만히 있었고 고은서는 살살 움직였다.“됐어.”그의 팔에 약을 다 바른 뒤 고은서는 대충 정리하고 손을 씻을 생각이었다.“이마도 해줘.”곽승재는 고은서의 불성실한 태도가 조금 불쾌했다.예전이었다면 손톱 끝이 조금 상한 거로도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오늘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도 고은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이마를 힐끗 보았다. 확실히 관자놀이와 구레나룻 쪽에 상처가 있었다.유리 조각이 튀어서 난 상처인 듯했는데 이미 딱지가 앉아있었다.고은서는 말없이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곽승재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고은서는 그의 상처를 처리하기 쉽도록 그의 옆에 서 있었다.고은서는 그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고 그녀의 향기가 곽승재의 코를 간질였다.곽승재는 순간 답답함이 느껴져서 손을 뻗어 목 언저리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움직이지 마.”고은서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고정했다.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이마에 닿자 곽승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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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승재가 다쳤다고 해서 한 번 와봤어. 오해하지 마, 은서 씨.”백유미는 뭔가 떠오른 것처럼 황급히 설명했다.“승재가 사인해야 할 서류가 있는데 승재 사무실에 갔다가 주 비서에게서 승재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승재가 먼저 얘기해준 건 아니야!”‘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건지.’고은서는 입꼬리를 당겼다.“백유미 씨, 건의 하나 할게. 오해받고 싶지 않으면 오해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아. 예를 들면, 이 남자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의 아내가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렇게 집에 찾아오지 마. 집에 오게 됐다고 해도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야지. 다른 사람의 남편이랑 같이 앉아있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어?”백유미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더니 서둘러 소파 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은서 씨, 난...”“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네.”고은서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나랑 고은서 씨는 성 떼고 이름만 부를 정도로 친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날 사모님이라고 부를 생각이 없다면 고은서 씨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고은서, 적당히 해.”곽승재가 경고했다.‘벌써 편을 들어준다고?’고은서는 피식 웃었다.“내가 뭐 틀린 얘기 했어? 왜 적당히 하라는 건데?”“승재야, 은서 씨... 고은서 씨 말이 맞아. 내가 그런 것까지는 신경을 못 썼어.”백유미는 무안함을 느끼면서도 부드럽게 화를 내려는 곽승재를 달랬다.“고은서 씨, 언짢게 했다면 미안해. 나 지금 당장 갈게.”백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고은서가 그녀를 말렸다.“가야 할 사람은 나니까.”“고은서!”곽승재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그러나 고은서는 그를 무시하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이틀 전 있었던 교통사고 때문에 고은서는 택시를 탔다.외할아버지 고준석은 교외 쪽에서 살고 있어서 차로 한 시간 반은 가야 했다.마당에서 정정한 모습으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외할아버지를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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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검은색 정장에 훤칠한 키를 가진 곽승재가 안으로 들어왔다.‘곽승재가 여긴 웬일이지?’고은서를 본 곽승재의 눈빛이 살짝 차가웠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이 말이다.‘왜 저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까? 설마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건가?’“외할아버님.”고은서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곽승재가 예의 바르게 고준석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승재 왔니? 배고프지? 얼른 앉아서 밥 먹거라. 안 그래도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준석은 너그럽게 그를 불렀다.“넌 은서 옆에 앉거라. 네가 좋아하는 갈치찜이 마침 거기에 있네.”그 말에 고은서는 갈치찜을 식탁 중앙에 놓으며 말했다.“맞은편에 앉아.”“은서야, 뭐 하는 거야? 예의 없게.”고준석은 고은서를 나무란 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곽승재에게 말했다.“승재야, 내가 은서를 오냐오냐 키워서 조금 제멋대로다. 평소에는 네가 많이 봐주거라. 따지지 말고. 은서가 그래도 마음씨는 착하니까.”곽승재는 고준석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고은서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도 알고 있습니다, 외할아버님.”곽승재는 어릴 때부터 예의범절 교육을 엄격히 받고 자란 사람이기에 고은서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녀의 외할아버지 앞에서 선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물론 예외도 있었다.전생에 그는 백유미를 위해 고은서를 억지로 정신병원에 보냈고, 고은서의 외할아버지가 사정할 때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었다.“외할아버님께서 제대로 가르치시지 못했으니 제가 가르치겠습니다.”전생의 일을 떠올린 고은서는 순간 입맛이 떨어졌다.그녀는 입맛이 없는 것처럼 음식을 뒤적였다.고준석과 곽승재는 시사에 관해 이야기했다.“참, 은서야.”고준석은 문득 뭔가 떠올랐다.“저번에 네가 만들었던 그 향수 샘플, 많은 고객들이 좋아했어. 나한테 언제부터 양산하냐고 묻더라니까!”“외할아버지, 저 그거 그냥 심심해서 만든 거예요. 그리고 재료도 꽤 보기 드문 것들이잖아요. 어떻게 양산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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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네가 봐!”곽승재가 그녀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그것을 건네받아 보니 CCTV 영상이었다.장소를 보니 차고였는데 두 명의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구석 쪽에서 수상쩍게 기웃거리고 있었다.잠시 뒤, 정장 차림의 백유미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녀가 차 키를 누르자마자 두 남자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한 명은 백유미의 입을 막고 끌고 갔고 다른 한 명은 차 문을 열고 백유미를 차에 태운 뒤 떠났다.“백유미 씨 어디로 끌려갔는데? 뭘 찾았어?”고은서의 진지한 표정에 곽승재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그들은 백유미를 잡아서 차에 태웠어. CCTV를 보고 있던 경비원이 마침 이상함을 발견하고 그들을 막았어.”고은서는 웃었다.“웃기네. 두 사람이 백유미 씨를 잡으러 갔는데 하필 CCTV가 있는 곳을 골라서 기다리다가 꼬리를 잡혔다고?”“고은서, 너 그게 무슨 태도야?”곽승재는 화를 냈다.“경비원이 백유미를 차에서 구출했을 때 백유미는 입이 테이프로 막아졌고 두 손발이 묶인 상태였어. 제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곽승재는 말하면서 사진 몇 개를 던졌다.“두 범인은 한 여자가 그들에게 돈과 사진을 건네며 사주했다고 했어. 네가 외할아버지 집에 가던 길에 운전기사는 주유하러 갔고 넌 편의점에 들렀어. 그리고 그 두 남자가 마침 그곳에 나타났어. 이게 다 우연이라고?”사진 속 두 명의 모자를 쓴, CCTV 속 남자들과 비슷한 몸매의 남자들은 그녀와 같은 편의점에 있었다.고은서는 아침을 먹지 않아서 먹을 걸 사러 편의점에 들른 거였기에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백유미가 이런 짓을 하면서 그녀를 모함할 줄은 몰랐다.“아침에 백유미를 모욕한 거로는 부족해서 점심에 사람을 시켜 납치한 거야? 이거 해명해야 하지 않겠어?”곽승재가 차갑게 물었다.고은서는 우스웠다.“내가 점쟁이야? 아니면 예지 능력이라도 있어? 이 두 남자가 거기에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고 그들에게 백유미를 납치하라고 사주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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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그러나 고은서는 웃으면서 곧 눈물을 흘렸다.전생에 정신병원에서 맞고, 욕을 먹고, 시달렸던 화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녀를 책임졌던 간병인은 아주 건장해서 단번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그녀를 끌고 갈 수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식사인 묽은 죽도 단번에 엎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약을 먹기를 거부할 때는 그녀의 입을 틀어쥐고 억지로 약을 먹였다.고은서는 정신병원에서 곽승재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간병인을 시켜 괴롭힌 건 줄로 알았다.그런데 전생의 그 악마 같은 여자는 다름 아닌 백유미의 친척이었다.그러니 그녀가 전생에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살아갔던 건 전부 백유미의 짓이었다.자신이 받았던 학대와 위암으로 인한 고통을 떠올린 고은서는 지금 당장 백유미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백유미는 어떻게 그렇게 악랄할 수 있었던 걸까?곽승재의 사랑을 그렇게 듬뿍 받았으면서 말이다.곽승재는 백유미를 위해 고은서를 정신병원에 보내기까지 했는데 백유미는 왜 그녀를 가만두지 못하고 괴롭힌 걸까?곽승재는 바닥에 쓰러진 고은서를 바라봤다.비록 고은서가 먼저 음성통화를 할 거라고 했지만 곽승재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그녀를 따라왔다.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고은서가 백유미의 목을 조르는 게 보였다.엉망으로 흩어진 과일 사이에 누워있는 고은서는 공허한 눈빛으로 마치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나른하게 바닥에 누워있었다.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마치 아주 괴롭고 비참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그녀의 작은 얼굴에서 끝없는 증오와 원망이 보였다.이상하게도 곽승재는 그녀의 미친 짓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승재...”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려고 할 때 백유미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고은서 때문에 목이 빨개진 백유미를 본 곽승재는 넋이 나가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얼른 가서 약상자 가져오세요.”여자는 서둘러 약상자를 찾으러 갔다.곽승재는 백유미를 부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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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곽승재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고은서는 이미 떠난 뒤였다.“곽 대표님, 사모님께서는 택시를 타고 먼저 가셨습니다.”기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곽승재는 얇은 입술을 깨물다가 기사에게 예원 별장으로 돌아가자고 했다.현관에서 고은서의 신발을 본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은서의 방문은 꽉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곽승재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다음 날, 곽승재는 헬스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이미숙은 아침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그는 식탁 앞에 가서 앉아 위층을 힐끗 보며 말했다.“깨워서 아침 먹으라고 해요.”이미숙이 깍듯이 대답했다.“도련님, 사모님은 이미 외출하셨습니다.”외출했다고?그는 어제 일부러 고은서에게 냉정해질 시간을 주었고 오늘 아침 그녀에게 무슨 상황인지 물을 생각이었다.그런데 아침 일찍 외출했다니.“어디로 간 거예요?”이미숙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아침도 드시지 않고 나가셨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미숙이 말을 보탰다.곽승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알겠어요. 볼일 보세요.”이미숙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곽승재는 주민기에게 연락했다.“어제 백유미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 조사해 봐요.”어젯밤 고은서의 반응은 너무 이상했다.비록 사과하라고 했을 때 내키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긴 했었다.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백유미를 보자 원수라도 본 듯이 군 걸까?곽승재는 자신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고은서가 백유미를 목 졸라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반응한 걸까?...고은서는 차를 타고 민시후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고은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화 속에서 그가 알려준 병실에 도착했다.민시후가 있는 곳은 VIP 병실이라 침실, 간호실뿐만 아니라 응접실도 있었고 응접실 안에는 초대형 TV, 정수기, 가죽 소파가 있었다.호텔 스위트룸에 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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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민시후는 일부러 뜸을 들다가 말했다.“당신과 협력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겨우 한 번 본 여자가 갑자기 그와 협력하자고 한다. 그것도 라이벌의 아내가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고은서 역시 그를 이해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만약 저희 목표가 일치한다고 하면요?”“네? 고은서 씨 목표도 곽승재를 무너뜨리는 건가요?”민시후는 또 흥미가 생겼다.“곽승재의 다른 사업은 모르겠지만 판주 투자은행은 철저히 쓰러뜨릴 거예요.”판주 투자은행은 백유미가 책임졌었다.전생에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로 고은서는 자신이 백유미와 싸우지 않는다고 해도 백유미가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백유미와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그녀가 전생에 겪었던 모든 것들을 되갚아줄 것이다.“제가 듣기로 고은서 씨는 곽승재 씨를 몹시 사랑한다면서요? 몇 년이나 짝사랑한 끝에 겨우 결혼했는데 왜 갑자기 그와 척을 진다는 거죠?”민시후가 물었다.고은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확실히 그녀는 곽승재와 정말 대립해야 할지 망설였었다.그러나 어젯밤 곽승재에게 이혼 후 백유미와 만날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그래서 고은서 또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전생에 백유미가 정신병원에까지 손을 써서 고은서를 괴롭히게 놔둔 곽승재는 공범이었다.“민시후 씨, 전 오늘 성의를 가지고 찾아온 겁니다.”고은서가 말했다.“200억이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대로 민시후 씨 손에 들어갈 거예요. 전 그 뒤로 투자은행 업무만 책임지고 민시후 씨의 영업 기밀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봐도 민시후 씨가 손해볼 일은 없죠. 혹시 민시후 씨는 이게 곽승재가 파놓은 함정일까 봐 저랑 협력할 배짱이 없는 겁니까?”“제 승부욕을 자극하시네요. 재밌군요!”민시후는 흥미를 느꼈다.“고은서 씨, 전 우리의 협력에 관심이 매우 많아요. 그러면 고은서 씨가 명운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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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고은서가 이메일을 열었을 때 안에는 전에 그녀가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서 답장이 와 있었다.그녀는 대학 시절 금융 투자분석사 자격증을 땄었고 그로 인해 투자회사에서는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다.두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다른 두 회사는 그녀를 채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력이 없었기에 월급이 다른 투자자들보다는 조금 낮았다.고은서는 그 회사들에 간단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전에 그녀는 회사에 다니며 자신의 전공을 살려볼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민시후와 협력하기로 했으니 당분간은 다른 회사로 갈 수 없었다.답장을 보낸 뒤 고은서는 명운 자료를 열었다.명운은 최근 몇 년 동안 비교적 빠르게 발전한 고량주 양조장으로 오랜 역사와 무형 문화 유산이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명성을 얻었다.고은서가 기억하기론 전생에 명운은 PE를 통해 상장한 뒤 시가총액이 빠르게 상승하여 이로 인해 판주 투자은행이 큰돈을 벌었었다.좋은 프로젝트를 따고 싶은 회사는 많았다.민시후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자금이 많고 통도 큰 GS 그룹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전생에 민시후도 아마 경쟁에 참여했지만 패배했을 것이다.고은서는 당시 곽승재에게만 정신이 팔렸었기에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신경 써 본 적은 없다.지금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얻으려면 판주보다 더 유리한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 동시에 그 이상의 가치를 넘으면 안 되었다.전생에 명운이 상장한 사실은 많은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론 기사에 판주의 투자 금액과 지분 비율이 적혀 있었다.그러나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단지 참고용으로만 써야 했고 구체적인 것은 실제 상황에 따라 분석하고 작성해야 했다.고은서는 열심히 자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저녁 무렵, 곽승재가 예원 별장으로 돌아왔다.이미숙은 그를 보고 살짝 놀랐다.“도련님, 돌아오셨어요? 저녁을 드시려면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이미숙은 최근 곽승재가 집으로 돌아오는 횟수가 좀 잦아졌다고 생각했다.전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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