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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류한나
민시후의 차는 큰 시멘트 더미와 충돌해서 차 뒷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겉보기엔 곽승재의 차보다 상태가 훨씬 더 심각했다.

이때 구급차가 도착했고 곧 의사가 도착해 민시후를 차 안에서 들어냈다.

“뚜렷한 외상은 없고 골절 현상도 없습니다. 일단은 에어백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을 잃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의사의 말에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동시에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민시후와 곽승재 두 사람의 원한이 얼마나 크기에 겨우 비즈니스적인 대립 관계로 인해 이렇게 목숨까지 걸면서 충돌한단 말인가?

...

고은서와 곽승재가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저물었다.

그들은 민시후가 이미 정신을 차렸고 큰 문제는 없지만 머리를 핸들에 박는 바람에 약간의 뇌진탕 증상이 있어 병원에 며칠 입원해서 쉬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사고가 발생한 곳은 길이 넓고 차가 적어서 다른 차량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경찰서에서도 크게 추궁하지는 않았다.

고은서는 곽승재와 민시후 사이의 갈등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곽승재가 계속 표정을 굳히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거두어야 했다.

주민기가 차를 타고 도착했다.

고은서가 말했다.

“두 사람 회사로 돌아가는 거 방해하지 않게 나는 내가 알아서 차 타고 갈게요.”

곽승재는 워낙 바빠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늘 시간을 이렇게 많이 지체했으니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려한다고 한 말에 곽승재는 오히려 차가운 표정을 해 보였다.

“요 이틀 있었던 사건들로는 모자라서 계속 사고 치려고?”

고은서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곽승재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코웃음쳤다.

고은서는 뒤늦게 반응했다.

“이혼 얘기는 진심이었어. 민시후 씨 차를 들이받은 건 순전히 사고였고.”

“민시후가 왜 널 알고 있는 건데? 민시후 만나자마자 자기소개라도 했어?”

그 일을 설명하기는 번거로웠고 설명한다고 해도 곽승재가 믿지 않을 것 같았기에 고은서는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

“오늘 오빠에게 폐를 끼친 건 내 탓이야. 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나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곽승재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또 다음이 있다고?”

“대표님, 사모님,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실 텐데 제가 일찍 별장으로 모셔다드릴 테니 일찍 쉬는 건 어떻습니까?”

주민기가 적당한 때 입을 열면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

고은서는 곽승재를 무시하고 곧장 조수석을 향해 걸어갔고 곽승재는 꼼짝하지 않았다.

주민기는 안색이 어두운 곽승재를 보았지만 그냥 아무것도 못 본척했다.

그는 평범한 비서일 뿐이니 이런 고난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곽승재는 결국 차에 올랐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 때문에 차 안의 온도가 훅 내려갔다.

주민기는 운전하면서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얼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은서에게 말을 건넸다.

“사모님, 저번에 제게 선물로 주신 에센셜 오일, 저희 어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세요. 잠이 잘 온다고 하더라고요.”

고은서는 곽승재에 관한 일을 알기 위해 자주 그의 비서들에게 선물을 했다.

주민기는 보통 받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녀가 제조한 향긋한 에센셜 오일을 받았다.

고은서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더 많이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곽승재는 코웃음쳤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한사코 애를 쓰면서, 이혼이 진심이라고?”

“믿든 말든 상관없어. 오빠는 걱정하지 마. 모든 사람에 오빠는 제외니까.”

곽승재는 울컥했다.

“누가 신경이나 쓴대?”

예원 별장에 도착한 뒤 고은서는 먼저 차에서 내려 곽승재를 따돌리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련님, 돌아오셨어요.”

고은서가 물을 따라서 마시려는데 곽승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이미숙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돌린 고은서는 곽승재가 소매를 접어 올리자 팔에 긁힌 자국이 몇 개 있는 것을 보았다. 붉게 부어오르고 살짝 검게 변한 모습이 조금 섬뜩했다.

“왜 다쳤다고 얘기하지 않은 거야? 많이 아팠어?”

고은서가 빠른 걸음으로 곽승재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그의 팔을 잡아 확인했다.

그것은 아마 그녀를 대신해 창문 유리를 막을 때 생긴 생채기일 것이다.

곽승재는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쁜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순간 자신이 뭘 하는 건지 깨달은 고은서는 서둘러 곽승재의 팔을 내려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동시에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곽승재를 8년 동안 깊이 사랑했다 보니 그를 걱정하는 건 그녀의 뼛속 깊이 새겨진 습관이 되었다.

그가 다쳤다는 말에 고은서는 조건반사처럼 움직였다.

따뜻하던 작은 손이 팔에서 떨어지자마자 곽승재는 왠지 모르게 언짢아졌다.

“이게 안 아프겠어?”

“아프면 약이라도 바르든지.”

고은서는 말을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곽승재가 그녀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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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며칠 동안 고은서는 매우 바빴다. 유일 투자은행의 공식 연회가 송민아의 기획으로 예정대로 열렸다. 연회 당일, 주인혁은 자발적으로 현장에 도착해 개막 게스트로 두 곡을 불렀다. 고은서는 그 장면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인혁의 현재 명성에 비해 그가 공연하는 것은 다소 과한 일이었지만 그는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무대를 도와준다고 했다. “누나, 개업식 때 제가 가려고 했었는데 그때 계약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었어요. 이번에는 절대 거절하지 마세요.” 주인혁이 간절하게 말했고 송민아도 부추기자 고은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챔피언인 주인혁의 목소리는 흠잡을 데가 없었고 현장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송민아는 리허설에서 이미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전에 왜 팬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조금 알겠어. 진짜 매력적인 점이 있네.” “발라드 왕자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야.” 고은서가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좋아하면 인혁 씨를 남자친구로 만들어서 노래 듣고 싶을 때마다 현장에서 불러 달라고 해.” 송민아가 고은서의 농담에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너한테 관심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게스트로 온 이유도 결국 너 때문이잖아.” 고은서는 주인혁을 도와준 일을 송민아에게 털어놓았다. “사람은 힘든 순간에 받는 따뜻함에 특별히 감동을 받게 돼. 인혁 씨도 결국 언젠가는 깨달을 거야.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송민아가 고은서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나이 든 사람처럼 말해? 마치 많은 걸 겪은 사람처럼...” 고은서는 그냥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확실히 많은 일을 겪었다.곽승재가 그 괴상한 남자를 쫓아내 준 순간, 고은서는 마치 천사가 내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만약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만난 게 아니었다면 곽승재는 단지 잘생긴 남자

  • 어게인, 비긴   제996화

    고은서는 고은혜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고은혜도 알아챘을 정도로 여시은은 자신의 의도를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은서야, 너랑 여시은 씨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방금 네 말에서 다른 의도가 느껴졌어.”유성준도 의아해하며 물었다. “한두 마디로는 설명이 안 돼.” 고은서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오빠, 여시은이 만약 오빠한테 비즈니스를 소개해 준다면 조심하는 게 좋아. 차라리 거절하는 게 나을 거야.” 유성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방금 여시은 씨에게 향수를 개인적으로 선물한다고 한 거야? 그걸 MQ의 기획에 쓸까 봐?” 고은서는 확실이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여시은은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왔고 그녀가 자신에게 향수를 맡기려는 목적이 무엇이든 MQ를 떠나서 그건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였다. “문제 생기지 않을까?” 고은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사람을 걱정할 줄도 아네?” 고은서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다 계획이 있어.” 복이 아니면 화가 될 테니, 고은서는 여시은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보려 했다. 그때,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고은혜는 고은서에게 해산물을 사달라고 했다. “최근 인턴 생활 너무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해.” “성준 오빠가 너를 소홀히 한 거야?” 고은서가 일부러 물었다. 유성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냥 내가 더 배우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 공부보다 더 힘들어.” 고은혜는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고은서는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유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고은혜까 유성준을 초대했다. 유성준은 한동안 고은서를 못 봤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대접할게.”고은혜가 고른 곳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해산물 레스토랑이었다. 주문을 받을 때 웨이터가 하나의 디저트를 추천했다. 그 디저트에는 견과류가 들어 있었

  • 어게인, 비긴   제995화

    여시은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약간의 난처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마치 고은서가 오해할까 봐 몹시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은서는 이미 여시은의 본색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노련한 연기에 속을 일은 없었다. 고은서는 그냥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네가 뭘 했길래 내가 오해할 거라고 생각해?” 여시은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다들 내가 아는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다 같이 몰려와서 환불을 요구했으니 네가 괜히 나랑 연관 지어 오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럼 정말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고은서가 다시 묻자 여시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오늘 난 향수 맞추러 온 거라니까. 마침 여기서 다들 만날 줄은 진짜 몰랐어.” 고은서는 처음부터 여시은이 무언가를 인정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얼마나 뻔뻔하게 모르는 척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굳이 더 캐물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고은서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MQ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서 고마워. 시은아.”여시은도 환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야. 난 그냥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두 사람의 대화가 마무리되자 분위기를 살피던 여성들이 슬쩍 눈치를 보며 고은서와 MQ 측에 사과하기 시작했다. 특히 잘못된 향수를 가져와 문제를 일으킨 여성은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유성준과 고은서에게 거듭 사과했다. 유성준은 더 이상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았고 고은서 역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도록 형식적인 말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자 고은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오해도 풀렸으니 이제 본론을 얘기해도 되겠죠?”여시은이 아름다운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은서야, 그날 목장에서 풀향기가 정말 상쾌하고 좋았어. 그런 향기랑 비슷한 향수 만들 수 있어?” 여시은이 이렇게 연기를 하는 데는 당연한 이유가

  • 어게인, 비긴   제994화

    유성준과 A/S 책임자는 이미 여러 차례 설명을 마친 상태였다. “고객님들께서는 제품을 수령하신 후 검품까지 마치셨습니다. 별다른 하자가 없는 이상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받을 때는 미처 확인을 못 했어. 그런데 최근에 써보니까 향이 너무 저급하더라. 우리 이미지에 치명적이니까 반드시 반품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MQ의 실체를 폭로할 수밖에 없겠네?”그때, 고은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준 오빠.” 그녀가 자연스럽게 인사하자 응접실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며칠 전 여시은의 저택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상냥하고 공손하던 여자들은 이제 거만한 표정으로 고은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 명 한 명 성을 부르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여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눈빛에 조소까지 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순진하게 굴다니. 정말 어리석네.’ 한편, 유성준도 그들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었다. 그는 눈짓으로 고은서에게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자신과 직원들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MQ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법적으로 따져도 MQ가 이길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저 여자들의 목적은 단순히 환불이 아니었다. 그들은 논란을 일으켜 MQ의 명성을 깎아내리고 싶어 했다. 불만을 부풀려 가십으로 만들기만 하면 결국 MQ를 향한 대중의 의심이 생겨날 것이고 진실이 어떻든 간에 MQ는 여론의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 순간 고은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가 오는 길에 이미 몇몇 언론사에 연락해 두었어요.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지금 바로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게 어떨까요?” 그녀의 말에 상류층 여성들이 순간 움찔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 일이 MQ의 잘못이 아니라면 MQ는 법적으

  • 어게인, 비긴   제993화

    유일 투자은행은 최근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며 그녀가 맡은 명운의 상장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투자 요청을 해왔다. 하지만 고은서는 너무 두각을 나타내면 경쟁자들의 질투를 사기 쉽다고 우려했다. 반면 송민아의 생각은 달랐다. “질투할 사람들은 우리가 작은 축하 파티를 열든, 공식적인 술자리를 마련하든 어차피 질투할 거야.” 그녀는 유일 투자은행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실력을 널리 알리는 게 더 많은 신뢰를 얻고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는 길 아니겠어?” 송민아는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가 ‘world 게임’ 프로젝트 하나만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맡은 프로젝트도 많잖아. 회사 명성이 커지면 우리 일도 더 수월해질 거야.”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술자리를 한 번 덜 연다고 해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결국 고은서는 송민아의 의견에 설득당했고 그녀를 칭찬했다. “민아야, 대단하네. 갈수록 더 능숙해지는 것 같아.”송민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직접 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빠가 옛날 무용담을 워낙 자주 들려주셔서 자연스럽게 배웠거든.” 결국 연회는 송민아가 전적으로 맡기로 했다. 한편, KK 측에서 WOR 게임 회사의 핵심 창작진 자료를 고은서에게 전달해왔다. 책임자가 말했던 대로 주요 제작진들은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으며 사회적 배경도 복잡하지 않았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허 씨 성을 가진 한 핵심 멤버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몇 년 동안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그는 집을 나와 독립했다. 하지만 이제 ‘WOR 게임’의 내부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정식 출시만 된다면 그들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치솟을 터였다. 드디어 오랜 시간 버텨온 보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고은서는 자료를 덮고 데이터를 확인하려던 찰나 핸드폰 벨

  • 어게인, 비긴   제992화

    온승준이 말을 하려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맑고 가벼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서야, 스테이크 몇 분 익힐까?” “왜 지연이한테 안 물어봐요?” “지연이꺼는 내가 다 알아. 지연이의 모든 취향과 금기 사항은 남자친구로서 당근 다 알아야지.”“네. 잘 들었습니다. 제껀 7분 정도 익혀 주세요. 자꾸 그런 눈빛으로 지연이를 쳐다보면 밥을 안 먹어도 당신들의 애정폭탄에 배부를 것 같아요.” “고은서, 제발 입 다물어.” 장난스러운 대화 뒤로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방금 뭐라고 하려던 거야?] 박지연은 비로소 아직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 [별일 아니야.] 온승준은 전화를 끊으면서 ‘요즘 잘 지내?’라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박지연은 잘 지내고 있었고 그 행복한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육현석이라는 남자는 박지연에게 정말 잘해주고 있었다. 그는 박지연의 모든 습관을 알고 심지어 박지연과 친구들을 위해 직접 요리까지 해주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온승준의 얼굴이 간지러워졌다. 그는 손을 대어보았고 손에 물이 묻어 있음을 느꼈다....잠시 후, 육현석이 준비한 음식이 완성됐다. 풍성한 서양 요리와 간단한 한식도 함께였다. 도아름 외에도 송민아가 함께 와서 자리를 빛냈다. “현석 씨, 이렇게 많은 요리를 할 줄 알다니 정말 대단해요.” 송민아가 진심 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육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서양 요리는 간단해서 잘하는 편이고 한식은 이 정도만 할 수 있어요. 더 많이 배워서 지연이가 매번 새로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해줄 거예요.” “지연 언니, 이런 남자친구는 어디서 구해요?” 송민아는 부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육현석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민아 씨, 그 말은 틀렸어요. 제가 운이 좋은 거예요. 지연이 같은 좋은 여자를 만났으니까요.” “맞

  • 어게인, 비긴   제991화

    온승준의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박지연은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다. [난처하게 안 했어. 그런데 당신은 사과 말고 어머니에게 뭐 더 할 수 있겠어?] 박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온 선생님,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많이 약속했는지 기억 안 나? 당신 어머니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조 여사님은 날 볼 때마다 비아냥거리기만 했어.][미... 미안...] 온승준이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자 박지연은 그 말을 가로막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해. 원래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유혜린 씨가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이번 한 번만 봐준 거야.] 박지연은 잠시 멈춘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정말 법적 절차를 밟을 거야. 당신 아이가 나중에 죄를 지은 할머니를 두게 될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니까.] 온승준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혜린의 악행을 고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박지연을 한 번 언급했다. 그 뒤로 조수연은 잘못된 걸 느끼고 대화를 얼버무리며 다른 이야기로 돌렸다. 온승준은 자신이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들어줬으면 어머니가 약속을 지킬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박지연의 말 속에서 유혜린이 뱃속의 아이를 이용해 박지연에게 신고를 취소하도록 부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온승준은 부모님의 강한 요청에 따라 유혜린과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식은 할 마음도 없었고 마침 국경 없는 의료팀에서 그를 초대해 X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은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고 온승준은 그곳에서 점점 더 조국이 그리워졌고 특히 박지연이 몹시 그리워졌다. 수없이 많은 밤을 보내며 그는 박지연을 꿈에서 만났다. 꿈 속에서 박지연은 예전처럼 그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고 병원의 이야기들을 기쁨 가득한 얼굴로 나누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

  • 어게인, 비긴   제990화

    “너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박지연이 고개를 저으며 태연한 척 말했다. 하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집에서까지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어?” 그러다 박지연의 옷깃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붉은 흔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고은서의 눈빛이 번뜩였다. “설마... 현석 씨 어젯밤 여기서 잤어? 너희 둘...”“쉿! 조용히 좀 해.” 박지연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고은서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더니 부엌 쪽에서 육현석이 고개를 내밀었다. “은서 왔네. 지연이랑 얘기하고 있어. 아름 누나랑 애들 도착하면 밥 먹자.” 고은서는 여전히 입을 틀어막힌 채 억울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나 지금 입도 못 연다고...’하지만 육현석의 시선에는 오직 박지연만 보이는 듯했다. 그는 박지연을 향해 다정하게 웃어 보이더니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혹시... 나 지금 투명인간이 된 거야?’ 고은서는 천천히 박지연을 흘끗 쳐다보았다. 박지연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은서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거실 옆 서재로 데려갔다. “물 마실래? 주스도 있는데.” 박지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고은서는 소파에 털썩 앉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공기 자체가 달달하거든.” 그러곤 곧바로 한마디 더 던졌다. “어쩐지 어젯밤 갑자기 연락 두절되더라니. 역시 달콤한 밤은 천금보다 귀하다 이거지?”고은서의 농담을 듣는 순간, 박지연의 머릿속에 어젯밤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민망한 순간을 육현석에게 들킨 것도 모자라 아침까지도 그에게 휘둘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이제 와서 아닌 척할 필요가 있을까?’박지연은 단번에 체념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고은서의 목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다 너 때문

  • 어게인, 비긴   제989화

    박지연은 육현석의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며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왜 거기서 나오는 거야?’게다가 그의 표정은 박지연의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도대체 왜 은서랑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지?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한 거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지?’박지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베란다에 땅굴을 파서 당장이라고 숨어버리고 싶었다.육현석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박지연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헛기침을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척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배고프지? 주방에 먹을 거 뭐 있는지 볼까?”그러면서 도망치려는데 육현석이 그녀의 길을 막아섰다.별처럼 반짝이는 육현석의 눈을 바라보자 박지연은 심장이 쿵쾅거렸다.“현, 현석아... 뭐 하려고...”육현석이 손을 뻗어 박지연의 머리카락 한 오리를 휘감으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한밤에 일곱 번이라니. 내가 지연이 마음속에서 아주 용맹한가 봐.”이미 당황한 상태에서 이런 톤과 눈빛으로 말하는 육현석을 보자 박지연은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세상이 지금 당장이라도 멸망했으면 좋겠어.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박지연은 육현석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며 방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육현석이 힘껏 밀착하며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박지연은 육현석의 뜨거운 체온과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느꼈다.“현... 음.”박지연이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육현석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갑작스럽고도 열정적인 이 키스에 박지연은 처음에는 몸을 비틀거리며 저항하려 했다. 어찌 됐든 베란다에서 키스하는 건 너무 쑥스러운 일이었다.하지만 육현석은 그녀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박지연의 얼굴을 감싸 쥐고 숨을 훔치듯 격렬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박지연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의 리듬에 휩쓸려갔다.육현석의 키스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박지연은 숨이 차올라 예전처럼 그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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