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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승재가 다쳤다고 해서 한 번 와봤어. 오해하지 마, 은서 씨.”

백유미는 뭔가 떠오른 것처럼 황급히 설명했다.

“승재가 사인해야 할 서류가 있는데 승재 사무실에 갔다가 주 비서에게서 승재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승재가 먼저 얘기해준 건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건지.’

고은서는 입꼬리를 당겼다.

“백유미 씨, 건의 하나 할게. 오해받고 싶지 않으면 오해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아. 예를 들면, 이 남자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의 아내가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렇게 집에 찾아오지 마. 집에 오게 됐다고 해도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야지. 다른 사람의 남편이랑 같이 앉아있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어?”

백유미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더니 서둘러 소파 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서 씨, 난...”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고은서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나랑 고은서 씨는 성 떼고 이름만 부를 정도로 친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날 사모님이라고 부를 생각이 없다면 고은서 씨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고은서, 적당히 해.”

곽승재가 경고했다.

‘벌써 편을 들어준다고?’

고은서는 피식 웃었다.

“내가 뭐 틀린 얘기 했어? 왜 적당히 하라는 건데?”

“승재야, 은서 씨... 고은서 씨 말이 맞아. 내가 그런 것까지는 신경을 못 썼어.”

백유미는 무안함을 느끼면서도 부드럽게 화를 내려는 곽승재를 달랬다.

“고은서 씨, 언짢게 했다면 미안해. 나 지금 당장 갈게.”

백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럴 필요 없어.”

고은서가 그녀를 말렸다.

“가야 할 사람은 나니까.”

“고은서!”

곽승재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고은서는 그를 무시하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틀 전 있었던 교통사고 때문에 고은서는 택시를 탔다.

외할아버지 고준석은 교외 쪽에서 살고 있어서 차로 한 시간 반은 가야 했다.

마당에서 정정한 모습으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외할아버지를 보았을 때 고은서는 코끝이 찡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외할아버지...”

고은서는 울먹거리면서 감격에 겨워 외쳤다.

“은서야, 왜 울어?”

고준석은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귀한 외손녀에게 다가갔다.

그리움과 후회에 휩싸인 고은서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외할아버지의 널따란 품에서 엉엉 울었다.

다시 외할아버지를 보다니, 너무 행복했다.

고은서는 아빠가 없었고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라며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랐다.

외할아버지는 고은서를 애지중지했고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줬다.

그러나 전생에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의 속을 많이 태웠다.

심지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은서야, 대체 왜 그러는 거니? 설마 곽승재 그놈이 널 힘들게 했어?”

고준석은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다.

고은서는 항상 오만하고 자부심 넘쳐서 쉽게 울지 않는다.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고은서는 천천히 울음을 그치고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외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너도 참.”

고준석은 헛웃음이 났다.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돌아오면 되지. 뭘 이렇게 울어? 정말 곽승재 그놈 때문이 아니야?”

“아니에요. 제 삶에 곽승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

여전히 우기기 좋아하는 외손녀의 모습에 고준석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알겠다. 내가 보고 싶었다니 그러면 오늘은 외할아버지랑 같이 있자꾸나.”

“네!”

그렇게 고은서는 하루 종일 고준석과 같이 있었다.

그와 함께 꽃에 물을 주고, 운동을 하고, 붓글씨를 썼다.

고준석은 외손녀와 함께하는 것이 무척 기뻤지만 고은서와 곽승재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고은서가 하루 종일 곽승재의 이름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은서야, 외할아버지한테 얘기해 봐. 곽승재랑 무슨 일 있었니?”

고은서는 먹을 갈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물었다.

“외할아버지, 제가 곽승재랑 이혼하면 저 응원해 주실 거예요?”

“이혼?”

고준석은 깜짝 놀랐다.

그의 외손녀는 외할아버지인 그조차도 질투할 정도로 곽승재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혼 생각을 한다니?

“곽승재가 널 괴롭혔니? 내가 그놈 혼내주마!”

“아뇨, 아뇨.”

고준석이 보기에 고은서와 곽승재는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였기에 이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고은서가 시험 삼아 물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화를 내는 모습에 고은서는 서둘러 그를 달랬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별일 없으면 이런 장난은 하지 말거라.”

“알겠어요.”

...

저녁때, 고은서는 식탁 위 음식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와, 맛있는 게 엄청 많네요? 저 오늘 폭식하고 갈래요!”

고준석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처럼 먹성이 좋네. 이젠 다이어트 안 하니?”

고은서는 갈비 하나를 입 안에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해요. 다이어트는 절대 안 할 거예요. 그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죠!”

“그렇지. 널 좀 봐, 이렇게 말랐으면서 매일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잖아!”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고은서는 문가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고개를 돌린 순간, 고은서의 안색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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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461화

    고은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도련님. 안 그래도 짧고 귀한 밤, 어서 기다리고 있는 미녀한테 가. 여기서 괜히 애먼 사람 붙잡고 있지 말고.”“붙잡긴 누가 붙잡는다고 그래?”여자는 고은서의 말을 듣자마자 반말하며 말했다.“네가 일부러 승재 씨 유혹했으니 이쪽으로 온 거겠지. 순진한 척하지 마. 여우 같은 것.”고은서는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거기 아가씨. 눈은 장식이 아니에요. 제발 눈 똑바로 떠서 보세요. 지금 누가 힘으로 제압하고 있는지.”“네 수작일 뿐이잖아! 신경 안 쓰는 척, 무관심한 척하면서 승재 씨 소유욕을 자극하는 거지. 변변치 않은 수준은 아니네.”“꺼져!”고은서가 다시 받아치려는 순간, 곽승재가 싸늘하게 내뱉었다.“승재 씨…”곽승재의 싸늘한 말투에 여자는 금방 눈물을 글썽였다.“네 물건 챙겨서 이 호텔에서 꺼져. 다시 내 눈에 띄지 마.”곽승재는 싸늘하게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피처 피하지 못한 여자는 어디엔가 부딪혀 고통에 찬 신음을 냈다.곽승재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 고은서는 재빨리 무릎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아쉽게도 곽승재를 맞히지는 못했다.빠르게 반응한 그는 얼른 뒤로 물러나 고은서의 기습을 피했다.하지만 그 순간 곽승재가 그녀의 손목을 잡은 힘이 느슨해졌다.고은서는 얼른 힘주어 간신히 손을 뿌리쳤다.어깨를 돌볼 겨를도 없이 고은서는 곽승재를 밀치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곽승재의 스피드를 과소평가한 그녀는 두 발자국도 도망치지 못해 다시 곽승재의 품에 잡혔다.“이거 놔!”화가 난 고은서가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쳤다.곽승재는 낮게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녀를 놓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고은서,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따뜻한 곽승재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자 고은서는 오싹함을 느끼며 거칠게 몸부림쳤다.“움직이지 마. 내가 무슨 짓 할지 장담 못 해.”곽승재가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고은서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저항하려 했지만 뭔

  • 어게인, 비긴   제460화

    “며칠 전에 금방 낯선 사이로 지내자고 한 사람은 당신이야. 내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던 사람도 당신이고. 그런데 지금 대체 뭐하려는 거야?”고은서는 화난 표정을 하고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곽승재를 바라보았다.“낯선 사이? 결혼하고 같이 자고 심지어 제일 친밀한 일까지 함께해온 사이인데 낯선 사이로 지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곽승재가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너!”똑똑.고은서가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열려고 할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웨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주문하신 과일 가져왔습니다.”“잠시만요.”고은서는 간단히 답하고 곽승재를 째려보면서 약간 누그러든 말투로 말했다.“이거 놔. 나 아파.”곽승재는 고은서가 일부러 누그러든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경각심을 낮추고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는 계속 고은서는 제압한 채 벽에 밀어붙인 동작을 유지한 상태로 문을 열었다.“손님...”말을 하려던 웨이터는 이 장면에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잘 생기고 기품이 심상치 않은 남자가 여자의 두 손을 제압한 채 다정한 모습으로 벽에 붙어있다고? 요즘 사람들 제대로 노네.’웨이터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손님, 요구하신 과일 가져왔습니다.”고은서는 웨이터의 반응을 보자마자 점점 더 어색해졌다.“스테이크는 룸 안에 놔주세요. 그리고 와인은 준비되었나요?”그녀가 웨이터에게 과일을 놓고 가보라고 말하려고 할 때 맞은 켠 방에서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 돌려보니 다름 아닌 곽승재가 데리고 온 그 여자였다.그녀는 음식을 가져다준 웨이터와 대화 중이었다. 고은서의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그들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야릇한 동작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얼굴빛이 변하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이미언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일부러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건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머리를 헤치고 있었는데 아주 성숙된

  • 어게인, 비긴   제459화

    그러나 뜻밖으로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웨이터가 아닌 곽승재였다.방금전과 달리 그는 정장 외투를 벗고 흰 셔츠 차림이었다.수공으로 만들어진 셔츠는 그의 우월한 몸매를 두드러지게 했다. 머리 위에 있는 불빛 때문에 문에 기대고 서 있는 그는 여느 때와 달리 남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왜 또 온 거야?”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왜 맨발로 다녀?”곽승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고은서는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 없으면 문 닫게 좀 비켜!”곽승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언이가 미용 기기를 안 가져와서 그러는데, 지금 이 시간에 상가들도 다 문 닫았고 마침 너한테 안 쓴 새 미용 기기가 있다는 게 떠올라서 빌리러 왔어.”‘빌리긴 개뿔. 하다 하다 미언이라고 부르면서 내 기분 망치려고 작정했네.’“꺼져.”고은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하면서 문을 닫으려고 할 때 곽승재가 문틈을 비집고 방으로 들어왔다.“고은서, 물건 하나 빌려주는 게 뭐가 어때서 화를 내고 그래. 그냥 빌리지 않을게. 내일 새로운 미용 기기 한 박스 보내주면 될 거 아니야.”곽승재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일부러 이러는 거 맞네.’고은서는 더는 곽승재랑 대화하고 싶지 않은 탓에 방 안으로 들어가 전에 그가 줬던 미용 기기를 가져와 그에게 던져주면서 말했다.“됐지. 얼른 내 방에서 나가!”그러나 곽승재는 나가기는커녕 미용 기기를 손에 쥐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화내는지 아직 안 답해줬는데.”“당신 볼 때마다 기분 잡쳐서 그래.”“기분이 왜 잡치는 건데. 전에는 날 보는 거 좋아했잖아. 밥 먹을 때마저도 날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로.”“...”고은서는 너무 어이없는 탓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혼하기 전에 곽승재는 집으로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왔다고 해도 서재에서 회사 일을 처리할 뿐 유일하게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는 밥 먹는 시간밖에 없었다.

  • 어게인, 비긴   제458화

    “지연아, 너 임신하진 않았지?”고은서가 갑자기 물었다.전생에는 이맘때쯤 박지연이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간호사 일도 그만두고 몸조리를 했는데 많은 일들이 발생했었다.온 닥터가 비록 바람을 피운 건 아니었지만 유혜린과 시어머니한테 각종 시달림을 받으면서 끝내는 부부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박지연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임신했는지 안 했는지만 답해.”고은서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박지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안 했어. 요즘같이 있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임신할 리가 없어.”‘하긴 매일 바쁘게 보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수도 적은데 설마 임신하겠어? 전생처럼 흘러가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야.’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연아, 너 요즘 수간호사 선거 때문에 바쁘잖아. 임신할 좋은 시기는 아닌 거 같아. 꼭 피임조치 해. 알았지?”고은서가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비록 전생과 스토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박지연이 전생처럼 상처투성이가 될까 봐 걱정되었다.그녀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만으로도 충족하다고 생각한 고은서는 적어도 그녀가 임신하면서 몸에까지 상처가 되는 일은 겪지 않았으면 했다.박지연은 개인적인 일에 참여한다고 비아냥거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서가 예전처럼 별로 좋지는 않은 듯했다.“응, 알겠어.”고은서는 박지연이 이혼하기는 싫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여러 아재 개그로 박지연의 꿀꿀한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한 덕분에 그나마 기분이 괜찮아진 듯했다.“내가 알아봤는데 곽승재가 병원으로 온 게 임시 결정한 거래. 아마 너 때문에 온 것 같은데.”박지연이 화제를 돌렸다.고은서는 곽승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졌다.“곽승재 얘기하지마. 들을 때마다 기분 잡쳐.”“왜?

  • 어게인, 비긴   제457화

    곽승재의 행동을 보고 오해를 한 듯 엘리베이터 밖에 서 있던 커플이 그를 향해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여자친구분을 미처 보지 못하는 바람에...”“여자친구 아니에요.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이에요.”곽승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상대방의 말을 끊었다.커플은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고은서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는 이내 자신의 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고은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곽승재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대표님, 화내지 마세요. 아까 그 여자...”여자가 말하면서 다정하게 그의 팔짱을 끼려고 할 때, 곽승재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여자가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몇 마디 더 보태려고 할 때 곽승재는 이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룸으로 향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예약한 룸은 다름 아닌 고은서의 맞은편 룸이었다.이를 발견한 여자는 또다시 멈칫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하지만 그녀가 곽승재한테 빌붙으려 하는 데는 별 상관이 없었다.여자는 연회에서 곽승재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여러 업계를 오가면서 사람 보는 눈이 꽤 높았는데 대부분 남자들은 잘난 체를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로 맘에 안 드는 일이 일쑤였다. 그러나 곽승재처럼 뼛속으로부터 우러져 나오는 고귀한 기품을 가진 남자는 어디 가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그녀 또한 그에게 푹 빠진 것이다.처음에는 자신을 냉대하는 곽승재를 보면서 낙심하긴 했으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다. 끝내 연회가 끝나기 전에 곽승재는 무언갈 떠올렸는지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수많은 남자를 만나본 그녀는 이내 그의 뜻을 깨닫고 그에게 대신 운전해서 데려다주겠다고 먼저 건의했다.아니나 다를까, 곽승재는 그녀에게 호텔 이름을 댔다.여자는 애써 흥분을 억누르고 곽승재와 함께 호텔로 향했다.하지만 곽승재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룸만 예약하고 로비에 앉아 부하들과 온라인미팅을 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여자가 농락을 당했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

  • 어게인, 비긴   제456화

    곽승재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의외네. 내 이름을 다 기억하다니.”‘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면서 왜 비아냥거리며 난리야?’엘리베이터는 문이 너무 오래 열려있은 탓에 경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곽승재가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고은서도 더는 그와 다투기 싫어 엘리베이터 버튼이 있는 구석에 서 있었다.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데 일이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그저 참을 생각이었다.이내 곽승재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서 경보 소리가 멈추고 문이 닫히면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몇 층으로 가세요?”고은서가 곽승재랑 함께 온 여자에게 물었다.여자는 그녀를 아래 우로 훑어보더니 자랑이라도 하는 듯 턱을 받쳐 들고 말했다.“그쪽이랑 같은 층이에요.”‘나랑 같은 층이라고? 진짜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야?’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엘리베이터 각 면에 거울이 있었기에 그녀는 곽승재와 여자의 행동을 엿볼 수 있었다.여자는 곽승재 곁에 꼭 붙어서 물었다.“대표님, 저분과 아는 사이세요?”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고은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못 들은 척했다.곽승재는 콧방귀를 뀌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자도 눈치 있게 더는 캐묻지 않고 그에게 애교부리기 시작했다.“대표님, 이 호텔 레스토랑 음식이 엄청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오늘 저녁에 아무것도 드시지 않은 것 같으신데 웨이터한테 우리 룸으로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곽승재는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하고 싶은 대로 해.”“그럼 저 와인도 같이 주문해도 될까요?”여자는 곽승재의 대답에 점점 더 담이 커졌다.“오늘 대표님 대신 운전하느라고 연회 때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단 말이에요. 보상은 해줄 거죠?”곽승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응.”그의 대답을 얻은 여자의 목소리가 방금전보다 더 애교스러워졌다.“고마워요, 대표님.”‘우웩, 토할 것 같아.’고은서는 그녀의 목소리에 속이 울렁거린 탓에 저도 모르게 그녀를 힐끗 쏘아보았다.“왜, 의견이라도 있

  • 어게인, 비긴   제455화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그녀를 째려보면서 말했다.“자기애가 너무 넘치는 거 아니야? 내가 이혼까지 했던 너를 왜 좋아해?”고은서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와 함께 연기하면서 이미 귀찮은 일들을 많이 겪었는데 진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면 성가신 일이 지금보다 더 많을 것이다.게다가 고은서는 더는 사랑이란 단어에 속박당하고 싶지 않았다.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고은서는 민시후한테 내리지 말라고 말했다.“나 혼자 들어가면 돼.”“확실해?”“응.”민시후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떠났다.고은서는 호텔 로비로 들어가면서 박지연에게 연락했다.그러나 전화가 통하기도 전에 프런트 데스크 앞에 서 있는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곽승재였다.그의 옆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이십 대 좌우로 보였는데 손에는 명품백을 들고 있었고 아주 화려한 옷차림에 몸매도 우월했다.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은 마치 선남선녀 같았다.이를 본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자는 거지? 내가 이 호텔에 있는 걸 알면서도 굳이 여자를 데리고 여기로 온다고? 해성에 다른 호텔이 없는 것도 아닌데.’“은서야, 괜찮아?”전화 너머로 박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이내 시선을 돌리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으며 답했다.“응. 너 온 닥터랑 얘기 나눠봤어? 왜 그 여자랑 함께 카페로 갔는지는 물어봤고?”“물어봤지. 다른 친구가 유혜린이 귀국한 거 알고 같이 밥 먹자고 했대. 그런데 종일 수술하면서 피곤해서 그저 같이 커피 사러 간 거라고 했어.”“그게 다야?”고은서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말했다.“응.”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고은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물었다.“다친 손이 괜찮은지는 안 물어보고?”“연고 가져다줬어. 병원으로 새로 개발한 건데 흉터 없애는 데 좋다면서 주던데.”“그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어?”고은서가 닫힘 버튼을 누르면서 캐물었다.“잠시만요.”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할 때

  • 어게인, 비긴   제454화

    고은서가 되물었다.“왜 그렇게 묻는 거야?”민시후는 콧방귀를 뀌면서 답했다.“백씨 집안 프로젝트를 산통 깨는 거 왜 나한테 부탁하지 않고 송민준한테 부탁한 거야? 목적이 분명하잖아.”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그냥 너한테 빚지기 싫어서 그런 건데.”“우리 둘 사이에 무슨 빚 같은 소리를 하고 그래. 나한테 널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유지하라고 한 사람은 너잖아.”민시후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그럼 송민준도 내 속셈을 알아차렸다는 거네.”“알아차리라지 뭐. 게다가 송민준 집안 도우미가 그런 짓을 했는데 네가 의심하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지 않아? 걔도 자신이 무고하다는 걸 증명할 의무가 있잖아.”민시후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을 이 정도로 지지할 줄은 전혀 생각 못 했다.“그런데 그 도우미가 수상하긴 해. 처음부터 모든 걸 혼자 안고 갈 생각이었으면 숨을 필요가 없잖아. 게다가 왜 송민아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송민준한테는 저렇게 쉽게 걸려든 거지?”민시후는 그녀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대신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이번에는 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 줄 거야. 그런데 다시는 송민준 앞에서 꼼수 부릴 생각하지 마.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도 감히 못 건드리는 존재라고.”고은서는 민시후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마지막 한마디를 듣자마자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제발 총명한 척 그만해줄래?”민시후는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너보다는 총명하지. 게다가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으면 날 찾아와서 협력을 제안하지 않았을 거잖아.”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 도련님, 겸손한 것도 일종 미덕이에요.”“이미 충분히 우수해서 그 어떤 미덕도 나에겐 금상첨화일 뿐이야. 딱히 너무 중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드네.”...두 사람은 곧장 ZY 그룹으로 돌아갔다.고은서도 정식으로 회사 직원들에게 인사했다.전에 입사 활동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데다가 그

  • 어게인, 비긴   제453화

    투약한 간호사도 전에 이미 곽승재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그녀의 증언에도 진희숙만 언급되었다.고은서는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백유미의 신중함을 탄복했다. 그녀가 경각심을 낮추지 않고 제때 녹음하면서 증거를 남겼더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당사자로서 고은서는 경찰 조사에 협조한 후 나머지 일을 변호사에게 맡겼다.“걱정하지 마세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송민준이 말했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사람은 백유미이지 대신 누명을 쓴 진희숙과 간호사가 아니었다.“우리 민아도 잘못한 곳이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송민준이 말을 이어갔다.“보상은 필요 없어요. 괜찮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고은서가 말했다.“무슨 부탁이요?”“백씨 집안에서 요즘 여러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던데, 그 프로젝트들을 저 대신 산통 깨주세요.”고은서도 민시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곽수혁이 GS그룹 일에 끼어들면서 백씨 집안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그녀의 말을 들은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민아 보고 나한테도 그만 집적거리고 해. 나도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어.”옆에 있던 민시후가 갑자기 말을 보태었다.송민준은 민시후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시후야, 민아가 어릴 적부터 널 좋아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민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곁에서 어쩔 수 없어.”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어릴 적부터 송민아가 싫었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진짜 짝이 없다니까.”송민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고은서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이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후랑 함께 있을 생각이신가요?”‘소식이 빠르네.’이혼한 지 며칠 되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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