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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류한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3-12 11:03:27
“고은서 씨, 질문 하나 있는데 제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네요.”

민시후가 사악하게 말했다.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무슨 질문인데요?”

민시후는 일부러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고은서 씨는 저랑 곽 대표님의 내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

민시후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는 순간, 고은서는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

전에 고은서는 먼저 민시후에게 연락처를 물어서 그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았다. 이건 고은서가 곽승재보다 민시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민시후가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듦과 동시에 곽승재를 도발하는 것이었다.

고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얼버무렸다.

“내기 같은 건 실력을 제외하고도 운이 필요한 일이죠.”

“고은서 씨는 제 운이 좋은 것 같나요?”

“글쎄요, 일단은 민시후 씨가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랄게요.”

민시후는 뭔가 더 할 얘기가 있는 듯했는데 곽승재가 창문을 올려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언제부터 민시후랑 그렇게 친해진 거야?”

고은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곽승재가 다소 짜증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고은서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넘겼다.

“지금은 안 친한데.”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민시후의 미래 투자은행은 전망이 밝고 돈을 벌기에 적합할 듯했다.

그러나 민시후 쪽에서는 곽승재와 대결하려고 했다.

고은서는 전생에 곽승재가 그녀를 냉대하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낸 일로 그를 무척이나 원망했다. 그때 곽승재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가 억지로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곽승재는 고은서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작게 냉소했다.

곧 초록불이 들어오자 민시후는 액셀을 밟아 곽승재의 앞에 서더니 곽승재의 차를 막고 천천히 운전했다.

곽승재가 왼쪽으로 가면 그도 왼쪽으로 가고 곽승재가 오른쪽으로 가면 그도 오른쪽으로 가서 절대 곽승재에게 먼저 앞서나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비록 고은서가 직접 운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민시후 때문에 화가 났다.

“꽉 잡아.”

결국 민시후의 도발을 참지 못한 곽승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곽승재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그윽한 눈빛이 차갑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고은서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 아!”

고은서가 한 글자를 내뱉자마자 곽승재는 액셀을 꽉 밟았고 차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고은서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차 앞쪽에서 쾅 소리가 났다. 곽승재가 민시후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칙.

바퀴와 바닥이 마찰하면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고은서의 몸은 앞으로 확 쏠렸다가 다시 뒤로 넘어갔다.

고은서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민시후의 차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몇 미터 나아갔다.

곧이어 민시후의 차에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뒤쪽에 있는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곽승재가 제때 반응해서 방향을 틀었지만 민시후의 차에 부딪혀서 몸이 옆으로 쏠리며 차가 미끄러져서 길가의 큰 나무에 부딪혔다.

두 차례의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고은서는 하마터면 시트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뻔했다.

이때 차창이 깨지고 파편이 자신에게 튀기 전, 고은서는 놀라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러나 상상했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가 단단한 가슴으로 감싸진 것이다.

귓가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자 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전생에 그녀는 곽승재가 인사불성으로 취했을 때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몰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때처럼 급하게 뛰지 않았었다.

곽승재가 그녀를 걱정한 걸까?

“괜찮으면 일어나.”

곽승재의 낮은 목소리에서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 놓였던 곽승재의 손은 이미 떠나간 상태였다. 고은서는 서둘러 꼿꼿이 앉았다.

조금 전 일을 떠올린 고은서는 화를 냈다.

“미친 거야? 차를 박으면 어떡...”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곽승재가 문을 박차고 차에서 내렸다.

“내려와. 차 안에 있지 말고.”

곽승재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명령했다.

“...”

곽승재가 갑자기 열 받아서 차를 박은 것인데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잘못한 것 같았다.

고은서는 화가 났다.

고은서 쪽의 차 문은 나무에 부딪혀서 열 수가 없었기에 운전석 쪽으로 나가야 했다.

목숨이 중요했기에 고은서는 곽승재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곽승재의 손을 못본 척하고 힘겹게 기어레버를 넘어 스스로 나왔다.

그러나 차에서 내릴 때 실수로 차 문에 머리를 부딪혀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곽승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바닥 온기에 고은서는 불편한 듯 몸을 비틀며 앞으로 몇 걸음 나갔다.

마이바흐의 차 머리는 완전히 박살 난 상태였다. 창문은 박살 났고 차체도 움푹 들어가서 흰 연기가 나고 있었다.

이때 적지 않은 차들의 차주가 멈춰 서서 구경했고 어떤 이들은 혀를 차면서 한숨을 쉬었다.

“차 폐기해야겠네. 좋은 차인데 참 아쉬워.”

“그러게. 저쪽 차는 더 심하게 찌그러졌는데. 에어백까지 나온 것 봐. 역시 돈 많은 사람들은 스케일도 크다니까.”

민시후의 차 상태가 심각한 듯했다.

고은서는 앞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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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민시후와 곽승재가 건넨 음식을 먹는 대신 야채를 집으며 입을 열었다.“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민시후는 살짝 불만을 표했다.“고은서, 처음으로 여자한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하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향해 눈을 흘겼다.그러자 민시후는 금방 태도를 바꿨다.“알았어. 알았어. 그만할 테니까 많이 먹어.”곽승재는 입술을 짓씹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민시현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무표정하게 식사를 이어 나갔다.식사가 끝날 때까지 민시현은 민시후와 그녀의 사이를 묻지 않았다.고은서는 민시현이 이미 그녀의 상황을 알아보고 민시후와의 관계도 얼마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늘 이 자리는 커플이라고 생각되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우회적으로 민시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자리네.’어차피 정말 민시후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민시현이 어떤 행동을 하던 고은서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식사가 끝나자 고은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일어섰는데 종업원이 따뜻한 차를 내왔다.민시현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은서 씨, 시간도 아직 이른데 차 한 잔 하시면서 입가심하시죠.”“됐어! 그만 해! 저녁 내내 가면 쓰고 있는 거 답답하지도 않아?”고은서가 뭐라 하기도 전에 민시후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민시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그냥 고은서랑 곽승재 사이를 나한테 다시 상기시켜 주고 싶었던 거잖아. 미리 얘기하는데 난 그런 것들 신경 안 써. 나는 고은서가 좋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나랑은 상관없어.”“너!”하지만 민시후는 민시현이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고은서의 가방을 들고 입을 열었다.“가자.”건물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맡으니 고은서는 숨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이번 식사는 정말 숨 막힐 뻔했다.“배 안 불렀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다시 먹으러 갈까?” 민시후가 차 문을 열며 물었다.“배불러!”고은서가 차에

  • 어게인, 비긴   제624화

    직원이 떠나자 그들은 그제야 테이블에 착석했다.테이블은 고급 실목 원탁으로 고풍스러웠으며 과일과 견과류가 놓여있었고 꽃병에 생화도 꽂혀 있고 디퓨저도 놓여 있었는데 매우 우아했다.고은서가 옆자리에 앉자 민시후는 그녀의 오른쪽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과일 한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과일이라도 먹어. 기절하지 말고.”고은서는 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민시후는 손을 내리지 않고 과일을 들고 있었다.민시현과 곽승재가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계속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기는 싫어 고은서는 어쩔 수 없이 과일을 건네받아 한입 물었다.“달아?”‘나쁜 놈! 나를 부끄럽게 만들려고 작정한 거야!’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테이블 아래에서 그에게 발길질했다.아픔을 느낀 민시후가 이를 악물었다.고은서가 정말 화났다는 것을 깨달은 민시후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그리고 그 장면을 본 민시현과 곽승재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민시현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곽승재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곽 대표님, 앉으세요.”민시현이 말했다.“편하게 대해주세요.”곽승재는 시선을 돌리며 고은서의 왼쪽에 앉았다.“자리도 많은데 좀 떨어져서 앉지?”민시후가 바로 말했다.곽승재는 묘한 표정으로 민시후를 쳐다보며 말했다.“여기 앉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시후야, 예의 좀 지켜.”민시현이 엄한 목소리를 내었다.민시후는 반박하려 했지만 고은서가 그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민시후, 과일 더 줘.”고은서의 말에 곽승재의 기운은 한층 더 무겁게 변했다.고은서는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아니었다.그녀는 단지 민시후와 민시현이 더 이상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미 말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이제 곽승재는 남편도 아니니 그의 기분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고은서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민시현과 곽승재와 실랑이하지 않고 과일을 그녀 앞에 놓으며 말했다.“다 먹어.”“고마워.”고은서는 자두 한 알을 골랐다.“밥 먹기

  • 어게인, 비긴   제623화

    오후에 고은서와 송민아가 클라이언트를 만난 후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민시후는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밥 꼭 먹어야겠어?”고은서가 묻자 민시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먹어야 해.”두 사람은 차를 타고 해성에서 이름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이곳은 무조건 예약해야 하고 회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종업원은 그들을 2층의 별실로 안내했고 민시후의 형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곧 맞이하게 될 청문회를 떠올리자 고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민시후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꼭 집안의 반대로 헤어져야 하는 커플 같지?’민시후는 고은서의 무력함과 긴장감을 알아차리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방어용 스프레이는 미리 준비했으니 상황이 좋지 않으면 바로 사용해.”말을 마친 민시후는 그녀에게 펜처럼 생긴 물건을 건넸다.고은서는 잠시 멈칫했다.“형이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며? 왜 방어용 스프레이가 필요한 거야?”민시후는 드물게 표정을 찡그린 채 진지하게 말했다.“형이 겉으로는 공직에 있지만 사실은 뒤 세계에 있는 조직이랑 결탁해서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야. 평소에도 세 명 이상을 데리고 다니는데 다들 싸움을 잘해. 만약 여기서 얘기가 잘 안 풀려서 난장판이 되면 너도 방어할 만한 물건 하나는 있어야지.”“농담이지?”“푸하하!”민시후는 고은서의 경계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고은서, 너 정말 순진하다. 내가 말하는 대로 믿는 거야? 하하하.”“민시후, 정말 돌았어?”고은서는 화가 나서 그의 다리를 차려고 했다.민시후는 민첩하게 한발 물러서며 공격을 피했다.고은서는 화가 나서 샌드백을 치는 자세로 다시 한번 그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하지만 민시후는 빠르게 그녀의 팔을 잡고 자신 쪽으로 당기며 농담을 던졌다.“고은서, 그 정도 실력으로 나랑 싸우려고?”“너...”화가 난 고은서가 민시후를 밀어내려 했지만 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며 정중한 목소리가 들렸다.“두 분 안으로 드시죠.”고은서가 고개를 돌렸다.문 앞에

  • 어게인, 비긴   제622화

    다행히 이 사건이 폭로된 후 보복이 두려웠던 그 여자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해성을 떠났기에 백유미는 그들에게 닿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 여자가 퇴사하고 해성을 떠났다고 해서 내가 못 찾을 거로 생각하지 마. 네가 이 일과 연관된 걸 내가 알게 되면 너랑 네 엄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백유미는 협박을 마치고는 원지훈의 가슴을 걷어차고 그제야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이미 심하게 맞아 정신이 없던 원지훈은 백유미의 이어진 발길질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범가온은 계속 몸부림치며 신음하다 백유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백유미는 물티슈로 손가락을 닦으며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원지훈은 피를 토하고 나서 애원하기 시작했다.“누나, 제가 잠시 돈에 눈이 멀었어요. 돈 없는 가난한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고은서 말을 들었던 거예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누나한테 충성하며 살 테니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범가온도 원지훈과 함께 울며 애원했다.백유미는 그들 모자가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도록 내버려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백유미는 사무실에 있던 덩치 큰 남자들에게 나가라고 했다.“고은서와 손잡고 있었다면 고은혜 일도 거짓이었던 거야?”백유미가 물었다.원지훈은 더 이상 숨길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녀에게 건넨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합성된 것이었으며 고은서가 그날 밤 모든 영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만약 고은혜의 부적절한 영상이 유출되면 고은서는 이를 증거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백유미의 얼굴은 분노로 차갑게 굳어졌다.그녀는 자신이 길들인 개가 고은서가 던진 유혹에 넘어가 자신을 물어뜯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은서 대단하네. 원지훈을 이용해서 나를 함정에 빠트리다니.’며칠 전 그녀는 전자 프로젝트가 민시후의 함정이었음을 알아냈다.민시후와 고은서의 관계를 떠올리자 백유미는 이 모든 것이 고은서가 자신을 위해 꾸민 함정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 어게인, 비긴   제621화

    민시후는 다시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자세로 앉으며 말했다.“십중팔구 알고 있을 거야. 알면 어때. 자기 눈이 삐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지. 투자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건 본인이 알아서 책임져야지.”고은서는 잠시 침묵했다.“네가 백씨 가문에 보낸 그 원지훈이라는 사람, 최근에 큰 거래를 성사했던데 네 계획이야?”민시후가 태연히 물었다.고은서는 굳이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나는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야.”“받은 대로 돌려주는 고은서라니. 정말 내 맘에 쏙 들어.”민시후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확실히 도와줄 테니까.”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고은서는 원지훈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백씨 가문 산업에 이상이 없는지 물었다.백유미가 민시후까지 조사했다면 분명 고은서가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원지훈까지 의심할 가능성도 있었다.이전에 원지훈과 가깝게 지내고 거래 내역까지 있으니 백유미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았다.백유미와 원지훈이 서로 물고 뜯는 상황을 고은서는 즐기고 있었다.어차피 원지훈과의 협력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백유미가 원지훈의 배신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그를 처단하려 할 것이고 원지훈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여기에 아들 바보인 원지훈의 어머니 범가온까지 가세하면 백유미의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그들끼리 내분이 일어나면 고은서는 그 틈을 타서 그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세 사람 중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이전 고은서가 원지훈에게 약속했던 건 단지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미끼였을 뿐 그녀는 원지훈과 범가온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질문에 원지훈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고 있었다.“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어요. 새로운 거라도 발견한 거예요?”‘전생의 원지훈은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는데 왜 갑자기 겁먹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뭘 두려워하고 있지?’고은서는 의아했지만 민시후가 알아낸 사실은 말하

  • 어게인, 비긴   제620화

    고은서는 단호히 거절했다.“됐어.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아.”“고은서, 이번에는 가야 할 걸?”민시후가 말을 이었다.“송민아가 얘기했을 텐데, 지금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아. 그래서 형을 보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확인해 보라고 했어.”“내가 안 가면?”“민씨 가문 남자는 고집이 세다는 단점이 있지.”민시후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너한테 집착하는 것처럼 네가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널 만나러 오겠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이상 널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민시후가 위로했지만 고은서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네 연극에 어울려줄 생각 없어. 네 형이 물어보면 나는 너한테 관심 없다고 바로 얘기할 거야.”민시후가 웃으며 답했다.“네가 원하는 대로 해.”“그럼 먼저 임철원 쪽에서 알아낸 정보를 얘기해 봐.”민시후가 혀를 차며 답했다.“듣고 싶지 않다며?”고은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그럼 밥 먹는 거 포기해! 네 가족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농담 한 번 못 하겠네.”민시후가 다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임철원이 해외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게 누구 도움인지 알아?”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맞혀 봐.”민시후는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리고 일부러 뜸을 들였다.고은서는 참다못해 그의 다리를 발로 찼다.“말할 거면 한 번에 제대로 말해.”“고은서, 애정이 있어야 욕하고 화낸다던데 혹시 나 좋아해? 곽현수야.”고은서가 다시 차기 전에 민시후가 먼저 말했다.그 말을 듣고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곽현수가 왜 임철원이랑 엮인 거지? 왜 도와준 거야?”고은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민시후가 답했다.“이 일에서 백유미를 빼놓을 수는 없지. 백유미를 해성으로 돌려보낸 사람도 곽현수야.”고은서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백유미의 배후가 곽현수라고? 그때 민시후와의 스캔들도 곽현수가 백유미를 도와 퍼뜨렸던 거네! 임

  • 어게인, 비긴   제619화

    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곽승재의 낮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10살 때 원한을 품은 도우미가 내게 약을 먹인 후 물속에 밀어 넣은 일이 있었어. 그때 백유미가 나를 구해줬어.”“알아. 널 이렇게 오래 좋아했는데 그런 일도 몰랐겠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무슨 일이든 이유와 근거가 확실하니까 굳이 상관없는 사람한테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고은서가 비웃듯 말했다.“넌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잖아.”“그만해. 곽승재. 네가 이러는 거 정말 역겨워.”고은서는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끊었다.고은서의 입에서 역겹다는 말이 나오자 곽승재는 상처받은 듯 해 보였고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분노가 드러났다.고은서는 곽승재가 늘 우월한 위치에서 칭송받는 데 익숙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누구도 대놓고 역겹다는 말을 한 적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의 이런 행동이 너무나 싫었다.곽승재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며 자신이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되찾아주겠다고 장담했다.하지만 뒤에서 그는 백승엽에게 의사를 찾아주고 백유미가 판주 투자은행으로 복귀하는 것을 용인했다.모든 과정에 곽현수가 개입했다는 걸 알지만 곽승재가 묵인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손을 피하며 단호히 걸음을 옮겼다....월요일 아침 고은서가 미래 투자은행에 도착했다.송민아는 그녀에게 두 집안 부모님에게 약혼을 깨겠다고 알린 일을 전했다.“부모님들도 동의하신대?”“우리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지. 그런데 내가 울고 떼쓰며 애교부리니까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어. 하지만 아저씨는 반대하시며 오빠를 불러 혼내셨어. 심하게 꾸짖으며 나한테 다시는 속상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사과하라고 하셨지. 하지만 오빠는 굴하지 않고 처음부터 약혼을 받아들인 적도 없고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말하며 씁쓸함을 드러낸 송민아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나도 아저씨한테 더 이상 오빠

  • 어게인, 비긴   제618화

    박지연이 답했다.“그런 셈이지. 부장님이 무심코 흘린 말이긴 한데 특별한 일 없으면 승진할 것 같아.”“정말 축하해! 이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겹경사네! 정말 부러워.”박지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부러워할 필요 없어. 너도 원하기만 하면 누구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잖아. 미래 투자은행 대표 사모님으로 말이야.”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라이트문 아파트에 도착했다.주차한 고은서는 아파트 아래에 서 있는 곽승재를 발견했다.그는 현관 입구 쪽 가로등 아래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의심할 필요도 없이 곽승재 절친한 친구 육현석이 우리 일정을 알려줬을 거야.”박지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아까 나한테 온승준을 마주친 소감을 물었지? 이제는 네 소감을 얘기해줄 차례네.”고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나도 너랑 같아. 다시 진흙탕에 내 발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그럼 난 먼저 올라갈게. 얘기하고 와.”박지연은 곽승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하고 집으로 향했다.곽승재를 전화를 끊고 긴 다리로 고은서를 향해 걸어갔다.“무슨 일이야?”고은서가 물었다.“아버지가 귀국하시고 백유미도 경찰서에서 나왔어.”고은서가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래.”곽승재는 고은서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그녀가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그녀를 만나러 오기 전 곽승재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그는 고은서에게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슬픔과 아픔을 알게 되었다고 그에 응하는 보상을 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다.또한 백승엽에게 의사를 붙여준 건 백유미에게 진 은혜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 아무런 동요도 없는 고은서를 바라보자 곽승재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은서야, 미안해.”고은서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백유미를 다시 그룹에 돌아오게 하고 백승엽에게 의사를 붙여준

  • 어게인, 비긴   제617화

    박지연이 고개를 들어 온승준을 바라보았다“아직 용건 있나?”박지연의 표정은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담담했다.예전 그를 볼 때의 설렘과 기대의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온승준은 가슴이 답답했다.“며칠 전에 손을 다쳐서 휴가 중인데 시간 괜찮으면 같이 도성에 있는 극장에 가서 오페라 볼래?”박지연은 다친 이유는 묻지도 않고 곧장 답했다.“바빠서 안 될 것 같아.”온승준은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박지연이 그냥 가버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말을 덧붙였다.“네가 좋아하는 라 트라비아타인데. 배우도 유명한 국가급 아티스트고...”“온 선생님.”박지연이 그의 말을 끊었다.“사실 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아. 같이 오페라를 보며 관심 있는 척했던 건 당신에게 맞춰주기 위해서였어. 극장에서 몇 시간 앉아 있는 것보다 등산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게 더 좋아. 그러니 당신 어머님이 하신 말씀도 맞아. 나는 취미도 거칠고 천박한 사람이니 당신은 당신과 격이 잘 맞는 공주님을 찾아서 함께 오페라를 즐겨.”말을 마친 박지연은 더 이상 온승준을 신경 쓰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병원 배구팀 쪽으로 걸어갔다.온승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은서는 멍하니 서 있는 온승준의 모습을 보고 속이 다 시원했다.‘평소면 관심도 없을 배구 경기를 보러 온 걸 보니 이혼을 후회하기 시작했나 보네. 흥! 쭉 후회하라지! 전에 지연이 얼마나 아껴주고 잘해줬는데. 자기가 화나도 먼저 온승준을 생각해 줬던 사람인데 있을 때 잘했어야지. 이제 지연이의 가치를 깨닫다니 늦었어! 근데 남자들은 다 그런가? 잃고 나서야 소중한 걸 알지. 곽승재도, 온승준도 다 똑같아.’친선 경기는 반나절이나 이어졌고 박지연이 속한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병원은 명예와 상을 받았고 박지연과 다른 참가자들을 병원에서부터 상금을 받았다.그날 저녁 고은서는 박지연과 육현석 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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