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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Penulis: 류한나
“고은서 씨, 질문 하나 있는데 제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네요.”

민시후가 사악하게 말했다.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무슨 질문인데요?”

민시후는 일부러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고은서 씨는 저랑 곽 대표님의 내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

민시후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는 순간, 고은서는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

전에 고은서는 먼저 민시후에게 연락처를 물어서 그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았다. 이건 고은서가 곽승재보다 민시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민시후가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듦과 동시에 곽승재를 도발하는 것이었다.

고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얼버무렸다.

“내기 같은 건 실력을 제외하고도 운이 필요한 일이죠.”

“고은서 씨는 제 운이 좋은 것 같나요?”

“글쎄요, 일단은 민시후 씨가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랄게요.”

민시후는 뭔가 더 할 얘기가 있는 듯했는데 곽승재가 창문을 올려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언제부터 민시후랑 그렇게 친해진 거야?”

고은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곽승재가 다소 짜증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고은서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넘겼다.

“지금은 안 친한데.”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민시후의 미래 투자은행은 전망이 밝고 돈을 벌기에 적합할 듯했다.

그러나 민시후 쪽에서는 곽승재와 대결하려고 했다.

고은서는 전생에 곽승재가 그녀를 냉대하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낸 일로 그를 무척이나 원망했다. 그때 곽승재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가 억지로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곽승재는 고은서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작게 냉소했다.

곧 초록불이 들어오자 민시후는 액셀을 밟아 곽승재의 앞에 서더니 곽승재의 차를 막고 천천히 운전했다.

곽승재가 왼쪽으로 가면 그도 왼쪽으로 가고 곽승재가 오른쪽으로 가면 그도 오른쪽으로 가서 절대 곽승재에게 먼저 앞서나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비록 고은서가 직접 운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민시후 때문에 화가 났다.

“꽉 잡아.”

결국 민시후의 도발을 참지 못한 곽승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곽승재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그윽한 눈빛이 차갑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고은서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 아!”

고은서가 한 글자를 내뱉자마자 곽승재는 액셀을 꽉 밟았고 차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고은서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차 앞쪽에서 쾅 소리가 났다. 곽승재가 민시후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칙.

바퀴와 바닥이 마찰하면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고은서의 몸은 앞으로 확 쏠렸다가 다시 뒤로 넘어갔다.

고은서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민시후의 차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몇 미터 나아갔다.

곧이어 민시후의 차에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뒤쪽에 있는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곽승재가 제때 반응해서 방향을 틀었지만 민시후의 차에 부딪혀서 몸이 옆으로 쏠리며 차가 미끄러져서 길가의 큰 나무에 부딪혔다.

두 차례의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고은서는 하마터면 시트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뻔했다.

이때 차창이 깨지고 파편이 자신에게 튀기 전, 고은서는 놀라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러나 상상했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가 단단한 가슴으로 감싸진 것이다.

귓가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자 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전생에 그녀는 곽승재가 인사불성으로 취했을 때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몰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때처럼 급하게 뛰지 않았었다.

곽승재가 그녀를 걱정한 걸까?

“괜찮으면 일어나.”

곽승재의 낮은 목소리에서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 놓였던 곽승재의 손은 이미 떠나간 상태였다. 고은서는 서둘러 꼿꼿이 앉았다.

조금 전 일을 떠올린 고은서는 화를 냈다.

“미친 거야? 차를 박으면 어떡...”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곽승재가 문을 박차고 차에서 내렸다.

“내려와. 차 안에 있지 말고.”

곽승재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명령했다.

“...”

곽승재가 갑자기 열 받아서 차를 박은 것인데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잘못한 것 같았다.

고은서는 화가 났다.

고은서 쪽의 차 문은 나무에 부딪혀서 열 수가 없었기에 운전석 쪽으로 나가야 했다.

목숨이 중요했기에 고은서는 곽승재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곽승재의 손을 못본 척하고 힘겹게 기어레버를 넘어 스스로 나왔다.

그러나 차에서 내릴 때 실수로 차 문에 머리를 부딪혀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곽승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바닥 온기에 고은서는 불편한 듯 몸을 비틀며 앞으로 몇 걸음 나갔다.

마이바흐의 차 머리는 완전히 박살 난 상태였다. 창문은 박살 났고 차체도 움푹 들어가서 흰 연기가 나고 있었다.

이때 적지 않은 차들의 차주가 멈춰 서서 구경했고 어떤 이들은 혀를 차면서 한숨을 쉬었다.

“차 폐기해야겠네. 좋은 차인데 참 아쉬워.”

“그러게. 저쪽 차는 더 심하게 찌그러졌는데. 에어백까지 나온 것 봐. 역시 돈 많은 사람들은 스케일도 크다니까.”

민시후의 차 상태가 심각한 듯했다.

고은서는 앞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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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18화

    저택에 도착해서도 세상모르고 단잠에 빠진 곽승연은 도우미가 데리고 올라갔고 고은서는 일행들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저번에 곽승재와 함께 호원 저택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호원 저택은 더 북적이는 것 같았다.집안에 적지 않게 놓인 귀여운 장식품들은 집안의 활기를 북돋아 주었다.“승연이 거야.”서연정은 정신과 의사가 다양한 사람과 물건들을 접촉하는 것이 곽승연의 심신 건강에 좋다고 알려준 사실을 고은서에게 말해주었다.“오늘 승연이랑 함께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승연이가 많이 지친 것 같긴 한데 분명 그만큼 즐겁게 지냈을 거야.”그 후에도 서연정은 도우미에게 그들에게 차와 과일을 대접하라고 부탁했고 저녁도 먹고 갈 것을 제안했다.“괜찮아요, 어머니. 저희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앉아 있다가 가는 거로 충분해요.”고은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그래요, 저희는 어머님을 뵈러 온 것뿐이니까 저녁은 괜찮아요.”육현석도 웃으며 고은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아버님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육현석의 말에 서연정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아까보다 살짝 옅어졌다.“승재 아버지는 바쁘셔. 매일 퇴근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육현석은 서연정과 곽현수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곽승연이 키우는 강아지가 뛰어나왔고 육현석은 박지연과 함께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밖으로 나갔다.고은서는 서연정과 함께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서연정은 고은서에게 해성의 부녀 자선 단체에서 자신을 초대해 그곳에 갔다 온 일을 말해주었다.“Y국에도 가지 않게 됐고 승연이 상태도 점점 안정되고 있어서 뭐라도 해서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너무 좋죠.”고은서는 서연정이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종일 집안 남자들 옆에 머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그 후에도 고은서는 서연정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고은서는 손문호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으나 적절한 대화 주제를 생각해내지 못

  • 어게인, 비긴   제1017화

    사실 육현석도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고은서와 곽승연을 데려다주는 일이 아니라면 육현석도 충분히 박지연과 함께 차를 타고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하지만 육현석은 고은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고은서가 말해주길 송민준이 자신에게 푹 빠져 어딜 가나 따라다닌다고 그랬었다.게다가 육현석이 보기에도 송민준은 고은서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육현석은 곽승재를 위해서라도 그 두 사람을 사이를 가로막는 게 응당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육현석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박지연도 이번만큼은 육현석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민준 씨, 피곤하실 텐데 은서와 승연이는 현석이가 데려다주게 내버려 두세요.”박지연은 아예 한술 더 떠서 육현석을 도와 말을 해주기도 했다.송민준은 작게 미소를 지었고 굳이 본인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차에 앉자 박지연은 그제야 육현석의 정곡을 찔렀다.“왜, 민준 씨가 은서 마음을 얻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나 보지?”육현석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난 단지 어머님을 뵌 지도 오래됐고 오늘 마침 시간이 있으니까 어머님을 뵈러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박지연은 일부러 육현석의 속셈을 모르는 척했다.“그래,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어. 어쨌든 난 은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민준 씨도 꽤 괜찮은 사람이고.”하지만 육현석의 생각은 달랐다.“송민준 그 사람은 곧 서른이잖아. 은서랑 나이 차이도 크게 나니까 분명 세대 차이가 있을 거야.”박지연이 다시 반박했다.“세대 차이 같은 소리 좋아하네. 성숙한 남자야말로 진정으로 자기 사람한테 잘한다고!”육현석은 급히 말을 바꿨다.“승재 형도 스물일곱 살이니까 형도 자기 사람한테 잘할 거야. 게다가 송민준보다 세대 차이도 덜 나잖아.”“얼씨구, 육현석 씨 계산이 빠르시네요?’박지연은 비아냥댔다.“근데 곽승재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까먹었고?”육현석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지연아, 승재 형은 절대 그

  • 어게인, 비긴   제1016화

    고은서는 민망하긴 했지만 곽승재가 이미 이렇게나 높게 들어 올렸겠다, 기회를 틈타 더 망설이지 않고 소원패를 제일 높은 나뭇가지에 걸었다.“언니 소원패는 엄청 높은 곳에 걸었으니까 소원이 꼭 이뤄질 거야!”곽승연은 꺄르르 웃으며 손뼉까지 쳤다.때마침 송민아와 송민준도 안에서 나와 그 둘을 향해 다가왔다.고은서는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어 곽승재한테 어서 내려달라고 사인을 보냈다.멀지 않은 곳에서 박지연과 육현석도 둘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본 육현석은 당연하게도 기뻤지만 박지연은 불쾌하다는 듯 곽승재의 손을 내치고는 고은서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그리고는 곽승재에게 그 인플루언서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고은서에게 찝쩍대서야 되겠냐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박지연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전 그냥 은서가 키가 작아 높은 곳까지 닿지 않는 것 같아서 도와준 것뿐이지 찝쩍거린 게 아니에요.”박지연은 곽승재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시구나, 참 마음씨도 좋네요? 그러면 여기서 인간 사다리나 하시면 되겠어요. 높은 곳에 닿지 않는 사람은 다 도와주시지 그래요?”숨도 안 쉬고 몰아붙이는 박지연에 곽승재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지만 육현석도 그를 달리 도와줄 수 없었다.육현석은 몰래 곽승재를 부른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모험을 한 격인데 박지연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송민준이 와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곽 대표님도 도와주려고 그런 거잖아요.”“곽 대표님, 여시은 씨는 함께 오지 않은 건가요?”송민준이 무심결에 곽승재에게 물었다.이에 곽승재가 고은서를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시은 씨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곽승재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본능적으로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곽승재를 따라 굳이 이곳까지 함께 온 여시은이 얼마 있지도 않고 바로 이렇게

  • 어게인, 비긴   제1015화

    여시은은 솔직하고도 재치있게 곽승재의 말을 받아쳤다. 그런 여시은의 태도에 곽승재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시은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분간은 결혼 생각이 없고 시은 씨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은 씨도 저한테 너무 많은 감정을 기대하지 말아요.”곽승재의 말에 여시은의 얼굴에 드물게 상실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여시은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입술을 삐죽이고는 투덜거릴 뿐이었다.“곽 대표님, 이렇게나 무뚝뚝해서야 되겠어요? 저도 제가 잠깐 뭐에 홀린 건 아닌지 반성 좀 해봐야겠어요!”곽승재는 여시은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승연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른 가봐야겠어요.”여시은은 굳이 곽승재를 따라가지 않았다.“곽 대표님, 은서도 절 반기지 않는 것 같고 대표님도 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 전 먼저 돌아갈게요.”곽승재는 여시은을 말리지 않았다.“기사님은 밖에 있어요. 제가 기사님한테 시은 씨 모셔다드리라고 말해둘게요.”여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곽 대표님, 나중에 은서한테 제가 은서 향수 완성품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고 좀 전해주실래요?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도 말이에요!”여시은은 가려다 말고 상냥한 목소리로 곽승재에게 말했다.곽승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은행나무 잎이 여시은의 팔에 떨어졌다. 팔에 붙은 나뭇잎을 떼서 본 여시은은 웃으며 나뭇잎을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리고는 털어버렸다.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이른바 소원 나무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나무 기둥은 여러 사람이 둘러싸야만 안아지는 정도였고 나무뿌리는 화단에 둘러싸여 있었다.나무에는 목재로 된 소원패가 가득 걸려 있었고 바람이 불면 딸랑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곽승재가 도착했을 때, 송민아는 송민준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고 고은서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일찌감치 다 쓴 곽승연이 있었다.곽승연은

  • 어게인, 비긴   제1014화

    “...”그제야 고은서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승연이가 아까까지 여기 있었는데 아마 민아랑 다른 곳에 갔나 봐. 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일이야!”말을 마친 고은서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곽승재가 조롱하듯 말했다.“민시후가 가니까 이젠 송민준이야?”그 말에 고은서는 행동을 멈추고 곽승재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는 넌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걸 묻는 거지?”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곽승재는 차분하게 대꾸했다.“고은서, 넌 정말 독한 사람이야. 사람을 다루는데 무서우리만치 인정사정없을 뿐만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게 누구의 감정이든지 참 쉽게 휘둘러. 네가 놓고 싶을 때 놔버리면 그만이지.”“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고은서가 바로 반박했다.“너야말로 어제는 마재경을 옆에 끼고 다니더니 오늘은 시은이랑 보란 듯이 이곳에 찾아왔잖아. 네가 그러고도 나한테 뭐라 할 자격이 있냐고!”“은서야 넌 지금 곽 대표님을 오해하고 있어.”곽승재가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여시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여시은이 고은서에게 설명했다.“오늘 곽 회장님께서도 판주 투자은행에 가셨는데 곽 대표님께서 나갔다 올 거라는 걸 알게 되셨고 내가 심심해할까 봐 나랑 같이 나갔다 오라고 하신 거였어. 절대 은서 네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게 아니야!”고은서는 원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여시은을 보니 기분이 더할 나위 잡쳤다.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시은아, 마침 곽승재도 함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고 넘어갈게. 난 곽승재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까 날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그 말을 들은 여시은은 단 한 번도 둘 사이에 본인이 껴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은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구나. 그럼 시은이 너도 곽승재와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어. 나랑 곽승

  • 어게인, 비긴   제1013화

    고개를 들어 곽승재의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동자를 확인한 고은서는 그의 알 수 없는 어색함과 조금은 강압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고은서는 굳이 곽승재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민준 씨가 말한 그대로야. 승연이가 민아랑 노는 걸 좋아해서 내가 내내 승연이 옆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뿐이야.”곽승재는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고은서의 말에 트집을 잡았다.“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지.”갑작스러운 곽승재의 태도에 고은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그가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은서는 곽승재를 상대해주기도 귀찮아 퉁명스럽게 말했다.“미안, 내 잘못이야. 지금 당장 승연이를 찾으러 갈게.”말을 마친 고은서는 곧장 옆에 있는 사찰로 들어갔다.여시은은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곽승재에게 물었다.“곽 대표님, 왜 은서 화를 돋우고 그러세요!”곽승재는 고은서가 향한 곳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승연이를 보러 가야겠어요.”곽승재까지 자리를 뜨자 사찰 앞에는 여시은과 송민준 둘만 남게 되었다.여시은은 송민준을 향해 웃어 보이며 물었다.“송 대표님, 아까 은서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은서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이라고 봐도 되는 부분인가요?”송민준은 여전히 온화한 태도로 여시은의 말에 대답했다.“마침 눈에 보여서 도와준 것뿐이에요.”“듣자 하니 며칠 전에 송 대표님한테 작은 사고가 생겼다고 그러던데요, 게다가 상처도 입으셨다고요?”여시은이 계속해서 물었다.“제 부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큰일이라면 저한테 무작정 시비를 걸다가 경찰에게 잡혀간 사람들에게나 생겼겠네요.”여시은은 작게 웃었다.“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라면 골치가 아파도 싸죠.”여시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송민아와 곽승연이 둘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승연아, 오빠가 지금 승연이 찾고 있는데 나랑 같이 오빠 찾으러 갈래?”여시은은 산뜻한 미

  • 어게인, 비긴   제1012화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마 그럴 일 없을 거야. 곽승재 말로는 회사에 급히 볼 일이 있다고 그랬거든.”박지연은 흥하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제일 좋기는 오지 말았으면 해. 최근에 그 인플루언서랑은 아직도 안 헤어졌지? 오기만 해, 뭐가 됐든 내가 그 사람을 보고도 욕을 참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고은서는 작게 웃고 대답했다.“가자, 현석 씨가 표를 샀대.”육현석은 표를 손에 쥐고 다가왔고 송민준은 일행들에게 줄 물과 기도할 때 사용하게 될 향을 사 들고 다가왔다.“송민준 씨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귀한 쉬는 날에 우리랑 같이 절에 오는 고생을 찾아서 한다는 게 말이 돼?”박지연은 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한번 흘기고는 대답했다.“그래, 네 말대로 지금 나한테 눈이 멀어서 다른 건 다 안중에도 없어서 내가 어딜 가든 다 따라오나 봐. 어떻게 좀 만족스러운 대답인가, 박지연 씨?”“...”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때마침 육현석이 다가온 덕분에 둘의 대화는 그쯤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절은 엄숙하고 고요했으며 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서니 거대한 고목 몇 그루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때부터 존재해왔다고 한다. 몇 번의 격변을 겪으며 예전만큼 성대하지는 못하나 여전히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박지연과 육현석이 앞장섰다.송민아와 곽승연은 생각보다도 더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심지어는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둘이 딱 붙어 관찰하고 다시 걸어가곤 했다.그리고 고은서와 송민준이 제일 뒤에서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고은서는 가장 영험하고 중생을 두루 보살핀다는 X신전에 도착해서 평안등 하나를 띄웠다.그러면서 타국에 있는 민시후가 무탈하게 수술을 마치고 얼른 몸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신전에서 나왔을 때 송민준이 고은

  • 어게인, 비긴   제1011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챘지만 그에게 더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고은서는 곽승연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곽승재도 고은서에게 있어서 곽승연이 본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아마 누가 곽승연을 데리러 올지 물어도 고은서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곽승재는 그저 퀸을 품에 안은 채 우두커니 서서 고은서와 곽승연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언니, 오빠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곽승연이 소곤대며 말했다.“아니야, 너희 오빠는 일이 바빠서 안 가고 싶을 거야.”이윽고 곽승연이 또 물었다.“언니랑 오빠는 다시 화해할 거예요?”곽승연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작게 웃고는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승연아, 언니가 말했지? 언니랑 승연이 오빠의 관계가 어떻든지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말이야.”곽승연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고은서는 곽승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고은서는 데리러 온다던 박지연이 도착했는지 몰라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꺼낸 찰나에 마침 검은색 차 한 대가 천천히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송민준이었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송민아였다.“짜잔! 놀랐지?”송민아는 냉큼 조수석에서 내려 고은서를 놀래줬고 덕분에 고은서는 어리둥절한 채 송민아에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야?”“어떻게 오긴, 당연히 너 데리러 왔지!”송민아가 해석을 덧붙였다.“지연 언니가 같이 참배하러 가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오빠도 시간이 빈다길래 같이 왔어!”알고 보니 박지연이 송민아도 함께 부른 것이었다. 고은서에게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박지연이 남자친구를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봐 송민아를 부른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여긴 누구야?”송민아는 얌전하고 순한 곽승연을 보고 물었다.고은서는 웃으며 곽승연을 그들에게 소개해주었다.“승연이라고 해. 곽승재 여동생이야.”

  • 어게인, 비긴   제1010화

    고은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정말 절에 가는 거야?”“당연하지. 마침 육현석도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절에 가서 간절하게 빌고 주변에서 놀다 돌아오자. 일도 쉬면서 해야지.”박지연이 답했다.‘육현석도 같이 가는 거구나. 쉬는 게 아니라 그냥 데이트하러 가는 거겠지.’“난 굳이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괜찮아. 너도 이젠 습관 될 때가 되지 않았니?”박지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박지연과 시간을 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그러나 뜻밖으로 곽승연과 마주치게 되었다.품에 퀸을 안고 있는 걸 봐서는 아마 곽승재 집에서 나온 듯했다.“언니! 언니도 여기 살아요?”곽승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무척 기뻐했다.‘따지고 보면 승연이를 못 만나지도 꽤 됐네.’곽승연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좋아하며 총총 달려왔다.“응. 승연이는 여기에 왜 온 거야?”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엄마가 오늘 바빠서 같이 못 있어 준다고 나갔는데 마침 오빠를 너무 오래 못 본 것 같아서 기사님 차에 오빠 찾으러 온 거예요.”곽승연의 말하는 속도도 전과 달리 많이 빨라졌다.마침 곽승재가 집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고은서를 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틀 전의 키스를 떠올린 고은서도 그한테 별로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승연아, 언니는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러자 곽승연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언니, 어디 가는 거예요?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고은서는 전에 편한 시간에 그녀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아무튼 박지연이랑 육현석 두 사람과 나가는데 승연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지?’“승연이 데리고 어디 갈 생각이었어?”고은서가 곽승재를 향해 물었다.“판주에 처리할 일이 생겨서 사무실에 데려가려고.”곽승재가 덤덤하게 답했다.‘굳이 휴식일에 동생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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