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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작가: 류한나
준수한 외모의 남자는 살짝 건방진 느낌마저 들었고, 흰색 캐쥬얼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만약 보통 사람이 이런 옷차림이라면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들겠지만, 그는 되레 귀티와 여유가 흘러넘쳐 이미지와 찰떡이었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에 열심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도련님.”

기사가 잔뜩 긴장한 채 그를 불렀다.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고은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간 지체해서 미안해요. 제가 100% 보상해드릴게요.”

고은서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에 남자는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차량 수리비를 제외하고 정신적 보상 그리고 손실비도 있죠. 지금 몇조가 넘는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거 알아요? 당신 때문에 지체되었으니까 모두 책임지세요.”

상대방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 고은서는 피식 웃기만 했다.

“저기요, 외모도 멀쩡하고 돈도 좀 있어 보이는데 사기로 먹고사는 거였어요?”

어쩐지 사진 찍고 증거를 남기는 기사의 모습이 절대로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싶었다.

남자는 화내기는커녕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내가 뭐로 먹고사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만약 그쪽이 배상할 능력이 없다면 차주한테 하라고 해요.”

그제야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타깃이 곽승재라는 것을 눈치챘다.

한편, 머릿속으로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비로소 떠올랐다.

그는 바로 곽승재의 최대 라이벌인 민시후였다.

전생에 민시후와 직접 만난 적은 없었고, 정신병원에 있을 때 경제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자주 접했다.

당시 그는 곽승재에 버금가는 몸값을 자랑했고, 그가 설립한 투자회사는 GS 그룹을 바짝 추격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곽 대표 와이프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당신 차를 끌고 나와 내 차를 박았는데 어떻게 할 건가?”

고은서가 전생을 회상하고 있을 때 민시후는 이미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랑 한마디 해요.”

민시후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비록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혼자 차 끌고 나갔어?”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목소리였으나 말투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응.”

“다친 사람 있어?”

“아니.”

“거기서 기다려.”

말을 마치고 나서 곽승재는 전화를 뚝 끊었다.

“곽 대표에게 꽃 미모를 자랑하는 와이프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오늘 뵈니 명불허전이네요.”

민시후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소문이 날 리가 있겠는가? 친지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고은서도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시후 씨가 돈 버는데 도가 텄다는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는데 오늘 직접 경험해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오네요.”

그리고 흥미진진한 민시후의 눈빛을 외면하고 그의 휴대폰으로 자기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시후 씨에게 경험을 좀 전수 받고 싶네요. 부디 허락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민시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잘생긴 눈썹을 까딱했다.

“당연하죠.”

곧이어 경찰과 민시후의 변호사가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가 애용하는 마이바흐도 멀리서 다가왔다.

뒷좌석에 내린 곽승재를 보자 고은서는 약간 의아했다.

고작 이런 사소한 일에 주민기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직접 나설 줄이야?

주민기는 변호사랑 경찰과 정리하는 중이고, 곽승재는 그녀와 민시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덕분인지 외모가 한층 더 돋보였고, 딱 떨어지는 정장 바지는 훤칠한 몸매를 더욱 부각했다. 물론 타고난 귀티와 흘러넘치는 카리스마는 숨길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은서는 민시후가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라고 여겼지만, 곽승재를 보는 순간 역시나 그가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곽 대표, 오랜만이네?”

민시후는 젠틀하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곽승재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은서를 힐긋거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냥 평범한 교통사고였는데 저분이 너한테 사기 치고 두둑이 챙기려고 했어.”

고은서는 민시후를 가리키며 거리낌 없이 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모님 말에 오해가 소지가 있으니 정정할게. 난 대놓고 빼앗으려고 했거든?”

민시후는 화를 내기는커녕 도발적인 말투로 곽승재를 자극했다.

“어이, 곽 대표, 판주에서 명운에 투자한다고 하던데 내가 먼저 따내고 말 거야. 귀국해서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해.”

곽승재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가당키나 할 것 같아?”

“아니면 나랑 내기할래? 만약 이 프로젝트를 따낸다면 그린 시티 부지도 양보해.”

곽승재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욕심이 과하군.”

민시후도 피식 웃었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고 있을게.”

곽승재는 그를 무시하고 고은서에게 말했다.

“타.”

말을 마치고 나서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마이바흐를 향해 걸어갔다.

비록 곽승재와 함께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의 차를 들이받고 뒷수습하러 본인까지 직접 등판한 이상 한발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차로 다가가 뒷좌석 문을 열려는 찰나 곽승재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운전기사처럼 보여?”

고은서는 고분고분 조수석에 앉았다.

차 안에서 곽승재는 시종일관 싸늘한 얼굴로 기분이 언짢다는 걸 대놓고 티를 냈다.

과거의 고은서라면 고마운 나머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감사 인사를 하며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할 말도 없어서 휴대폰만 내내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을 지켰다.

이때, 뒤에서 차 한 대가 바짝 따라오더니 클랙슨을 빵빵거리며 상향등을 껐다 켰다 했다.

백미러를 힐긋 쳐다보자 민시후가 사고를 당해 움푹 팬 외제차를 끌고 따라오고 있었다.

곽승재도 발견했지만, 속도를 올리거나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정속 주행했다.

신호에 걸리자 민시후는 조수석 옆에 차를 댔다.

이내 고은서를 향해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짓했고,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창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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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재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고은서는 이미 떠난 뒤였다.“곽 대표님, 사모님께서는 택시를 타고 먼저 가셨습니다.”기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곽승재는 얇은 입술을 깨물다가 기사에게 예원 별장으로 돌아가자고 했다.현관에서 고은서의 신발을 본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은서의 방문은 꽉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곽승재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다음 날, 곽승재는 헬스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이미숙은 아침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그는 식탁 앞에 가서 앉아 위층을 힐끗 보며 말했다.“깨워서 아침 먹으라고 해요.”이미숙이 깍듯이 대답했다.“도련님, 사모님은 이미 외출하셨습니다.”외출했다고?그는 어제 일부러 고은서에게 냉정해질 시간을 주었고 오늘 아침 그녀에게 무슨 상황인지 물을 생각이었다.그런데 아침 일찍 외출했다니.“어디로 간 거예요?”이미숙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아침도 드시지 않고 나가셨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미숙이 말을 보탰다.곽승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알겠어요. 볼일 보세요.”이미숙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곽승재는 주민기에게 연락했다.“어제 백유미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 조사해 봐요.”어젯밤 고은서의 반응은 너무 이상했다.비록 사과하라고 했을 때 내키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긴 했었다.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백유미를 보자 원수라도 본 듯이 군 걸까?곽승재는 자신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고은서가 백유미를 목 졸라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반응한 걸까?...고은서는 차를 타고 민시후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고은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화 속에서 그가 알려준 병실에 도착했다.민시후가 있는 곳은 VIP 병실이라 침실, 간호실뿐만 아니라 응접실도 있었고 응접실 안에는 초대형 TV, 정수기, 가죽 소파가 있었다.호텔 스위트룸에 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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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39화

    고은서와 곽승재는 동시에 곽승연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주 긴장된 상태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부모님의 싸움 현장을 겪은 곽승연은 아직도 긴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그도 눈치 있게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녀는 곽승연 곁으로 다가가 웃어 보이며 그녀를 위안했다.“승연아, 우린 괜찮아.”“정말이에요?”곽승연이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곽승재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언니한테 장난 좀 친 것뿐이야.”곽승연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고은서 따라 부엌을 나왔다.“언니, 아까 오빠랑 뽀뽀 유희를 한 거예요?”곽승연이 갑자기 천진한 목소리로 물음을 제기했다.“...”고은서는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러니까 아까 곽승재가 나한테 키스하는 모습을 봤단 말이지? 곽승재는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전엔 화내며 가더니만 왜 갑자기 또 나한테 키스하고 난리야.’고은서는 이내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인했다.“승연이가 잘못 본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곽승연은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은서가 부끄러워서 답을 피할 뿐 절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고은서가 곽승연을 욕실로 들여보낸 뒤 곽승재도 부엌에서 나왔다.옷이 덜 마른 탓에 그는 옷소매를 위로 거두면서 굵은 팔뚝을 드러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어. 승연이는 내가 돌볼게.”“승연이 잘 부탁해.”곽승재는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 남기고는 캐리어를 들고 떠났다.고은서는 부엌을 힐끗 들여다보았는데 그릇은 이미 다 씻겨 있었지만 싱크대와 바닥은 물과 거품으로 가득했다.‘아줌마가 보면 곽승재 설거지했다고 감동할지 아니면 이 아수라장이 된 부엌을 보고 환장할지 은근히 기대되네.’...이튿날, 고은서가 눈을 떴을 때 곽승연은 이미 깨어 있었다.어제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했다.“언니,

  • 어게인, 비긴   제1038화

    면을 먹은 후 곽승연은 방금전보다 상태가 훨씬 나아진 듯했다.고은서는 그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보면서 화젯거리를 찾았다.단 한 번도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던 곽승재는 그릇을 거두더니 자연스레 설거지까지 해놓을 생각이었다.쨍그랑!고은서와 곽승연이 한창 재미나게 패드를 보고 있을 때 부엌에서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곽승연한테 소파에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한 뒤 부엌으로 걸어갔다.아니나 다를까, 그릇 조각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데다가 세제 덮개는 열려 있었고 싱크대와 곽승재의 손은 거품투성이였다.“세제를 물로 쓰는 거야?”곽승재는 평소에 당당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던 모습과 달리 약간 주춤하더니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처음 해보는 거라서 많이 따랐나 봐.”“더 따르지 그랬어? 그럼 안에 들어가서 수영해도 될 텐데.”“...”곽승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 작은 구멍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 딱 봐도 세제를 짜는 데 쓰이는 거잖아.”고은서는 덮개를 들고 곽승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부엌에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곽승재는 생활 지식이 결핍했던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땅에 있는 그릇 조각들을 주우려고 할 때 고은서가 황급히 제지했다.“잠시만! 빗자루로 쓸면 돼. 손으로 줍다가 상할 수도 있으니까. 또 손을 다쳤다고 이런저런 요구를 제기하면 그땐 정말 쫓아낼 거야.”곽승재는 반박하지 않고 빗자루를 들고 평소에 사인만 하던 손으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땅을 쓸기 시작했다.“당신이 청소할 줄 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지.”그 모습을 본 고은서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육현석은 각양각색의 음식을 다 할 줄 알던데 당신은 왜 이런 거야? 세제도 쓸 줄 모르고 아무리 집안 배경이 좋고 잘생겼다고 한들 이러고 누가 당신한테 시집을 가겠어.”고은서는 투덜거리면서 곽승재 손에 있는 빗자루를 빼앗으려 했다.그러나 곽승재가 그

  • 어게인, 비긴   제1037화

    “오빠요.”곽승연이 답했다.‘아마 어머니한테서 승연이가 내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겠지.’고은서는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얼른 손 씻고 밥 먹자.”“네.”곽승연은 손 씻으러 가고 고은서는 물을 따르러 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고은서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오빠일 거예요. 방금 언니 집에 있다고 했는데 금방 오겠다고 했어요.”손 씻고 나온 곽승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언니, 나 혹시 뭐 잘못했어요?”곽승연은 두 사람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전에 만날 때마다 서로 모순이 생겨 다툰 것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고은서가 자신을 탓하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곽승연의 생각을 알아차린 고은서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아니. 승연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 오빠도 승연이가 걱정되어서 보러 온 걸 거야. 먼저 먹고 있어. 언니가 문 열게.”“네.”곽승연은 이내 식탁 앞에 앉고 고은서는 문을 열어주러 갔다.아니나 다를까 곽승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금방 출장을 마치고 온 그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외투를 팔에 걸치고 있었는데 약간 피곤해 보였다.“승연이 여기 있어?”“응. 들어와.”고은서는 이내 들어오라고 옆으로 비켜주면서 답했다.곽승연은 그를 보자마자 오빠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고은서한테로 돌리면서 기뻐하며 말했다.“언니, 쫄면 너무 맛있어요. 저 이렇게 맛있는 쫄면은 처음이에요.”“언니가 한 게 맛있는 게 아니라 승연이 네가 너무 배고파서 뭐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는 거야.”음식 냄새를 맡은 곽승재도 저도 모르게 배가 고파 났다.그러나 식탁 위에 놓인 면을 보면서 차마 자기도 먹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면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곽승재를 보면서 말했다.“마침 한 그릇 남았는데 배고프면 먹어.”원래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이혼한 이후로 고은서가 해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전미자의 부탁으로 그를 보

  • 어게인, 비긴   제1036화

    호전된 곽승연이 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았던 서연정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알겠어. 울지 마. 그럼 오늘은 돌아가지 말고 언니 집에 있자.”고은서는 곽승연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그녀를 달랬다.“그래그래. 오늘은 언니랑 같이 있자.”곽승연은 그제야 서서히 진정되는 듯했다.“은서야, 그럼 승연이를 부탁할게.”서연정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서연정이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위안이 될 것 같지 않았다.“괜찮아요, 어머니. 승연이는 제가 잘 돌볼게요.”서연정은 곽승연을 안고 한참 동안 달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뒤돌아 떠났다.서연정이 배웅해 준 후 고은서는 곽승연 곁에 다시 앉았다.그녀는 잠이 깼는지 혼자 소파에 앉아 인형을 안고 멍때리고 있었다.“승연아, 배 안 고파? 언니가 밥해줄까?”“배 안 고파요.”곽승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러나 이내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뭐 먹고 싶어? 만두? 면? 아니면 죽?”“다 돼요.”곽승연은 어색한지 얼굴이 빨개졌다.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그럼 언니가 먹을 것 좀 해올게. 언니 집에서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돌아봐.”곽승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서는 냉장고에서 여러 가지 채소와 계란을 꺼내 쫄면과 스크램블을 요리할 생각이었다.전에 곽승재의 관심을 얻기 위해 요리를 배우면서 시간 날 때마다 밥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었다.하지만 곽승재는 무심하게도 거의 집에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가끔 그녀가 해준 밥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칭찬이라곤 해주지 않았다.그러나 예전의 고은서는 그가 자신이 해주는 밥을 먹어주기만 해도 흥분해 하며 좋아했다.‘전에는 정말 왜 그랬지? 곽승재가 없으면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했는지 몰라. 그런

  • 어게인, 비긴   제1035화

    서로 다투던 광경이 떠올랐는지 평소엔 온화하고 담담해 보이던 서연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승연이는 우리가 밥 먹을 때부터 정원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아마 애 아빠가 상을 엎는 소리가 하도 커서 놀랐던 것 같아.”서연정은 말하면서 곽승연을 바라보았다.“내가 정신 차리고 승연을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사라진 후였고.”하인들도 곽승연이 어디 갔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은 탓에 나중에 CCTV 동영상을 돌려보고서야 그녀가 뒷문으로 달려 나간 걸 발견했다고 한다.그리고 하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찾아보았지만 곽승연은 보이지 않았고 고은서가 전화했을 땐 마침 신고하려던 참이었다고 설명을 보탰다.그녀는 서연정이 얼마나 다급해하고 절망스러워했는지 상상이 갔다.“저도 오늘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고 또 마침 도우미 아줌마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집이 비어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승연이를 더 빨리 만나서 어머니한테 연락드릴 수 있었을 텐데.”“아니야,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급한 마음에 승연이 해성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너 아니면 승재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서연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고은서는 피곤해 보이는 서연정을 보며 물었다.“어머니, 곽 회장님과 사이가 그토록 좋지 않은데 왜 이혼하고 승연이를 혼자 데리고 살지 않는 건가요? 아무리 어르신들의 약속을 대신 지켜드리기 위해 이혼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할머니께선 어머니가 행복하게 사는 게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혼하신다고 해도 절대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자기보다 어른인 데다가 예전엔 시어머니였던 사람을 이혼하라고 달래는 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서연정이 이미 벼랑 끝에 맞닿은 결혼생활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서연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혼하든 말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나마 이혼하지 않으면 GS그룹

  • 어게인, 비긴   제1034화

    “몰라요. 엄마 아빠가 싸워서 무서워서 오빠랑 언니 찾으러 온 건데 다 집에 없었어요...”곽승연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고은서는 아무 말도 없이 혼자 달아나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냐고 그녀를 꾸짖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시간은 저녁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서연정은 아마 곽승연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미친 듯이 찾고 있을 것이다.고은서가 전화를 걸자마자 서연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승연이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아. 혹시 너한테 간 거니?”“어머니, 먼저 진정하세요. 승연이는 제가 데리고 있어요.”고은서가 그녀를 위안했다.서연정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고은서는 전화를 끊고 곽승연 곁에 앉아 물었다.“승연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차엔 어떻게 오른 거야?”곽승연은 인형 호주머니에 넣어둔 용돈으로 택시를 타고 온 거라고 사실대로 답했다.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교육했다.“다음부턴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언니한테 전화해. 이렇게 함부로 뛰쳐나왔다가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곽승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혼자 밖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은 탓인지 눈에 띄게 피곤해 보였고 아직 조금 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고은서는 계속해 비난하는 대신 그녀를 꼭 껴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덕분에 긴장이 풀린 곽승연은 스르르 잠에 들었다.반 시간 후, 밖에서 서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눈가가 빨개진 서연정은 소파에 누워 잠든 곽승연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녀가 다친 곳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곽승연이 괜찮다는 걸 확인한 서연정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옆에 있던 고은서는 그녀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어머니, 승연이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서연정은 종이로 눈물을 닦으면서 연시 고맙다고 인사했다.“은서야, 정말 고마워.”고은서는 서연정

  • 어게인, 비긴   제1033화

    송민준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답했다.“딱히 무서운 건 아니에요. 그저 별로 안 친한 사람이랑 함께 걷는 게 어색해서요.”“은서 씨,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제가 낯설게 느껴지나요?”송민준이 웃으면서 물었다.그는 전에도 비슷한 물음을 제기하면서 고은서를 싫어했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비록 항상 온화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지만 차마 민시후처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죄송해요.”다행히 송민준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사과할 필요 없어요. 따지고 보면 제 탓이죠. 나중에 민아한테 은서 씨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을 잘 물어보고 배워야겠네요.”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다.“그보다 요즘 곽 대표님이 전에 농장에서 은서 씨랑 여시은 씨가 물에 빠진 일에 관해 재조사하고 있다던데요.”‘확실히 재조사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는데 송민준은 또 어떻게 안 거지?’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송민준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저도 현장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알아봤더니 곽 대표님께서 재조사하고 있더군요.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되는데 왜 갑자기 재조사하게 된 거죠? 그 후로 무슨 다른 일이 더 있었나요?”고은서는 부인하지 않았다.“여 대표님께서 제가 여시은 씨를 밀었다고 오해하고 계시잖아요. 곽승재는 그저 제가 아무 죄도 없다는 걸 증명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예요.”“당시 오해라고 현장에서 이미 다 설명하고 끝난 일이 아닌가요?”송민준한테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은서는 자신을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모호한 답을 내뱉었다.“또 새로운 오해가 생겨서야.”송민준도 눈치 있게 더는 묻지 않았다.끝내 고은서는 송민준의 차에 앉아 회사로 돌아갔다.주차장에서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면서 송민준한테 인사하고는

  • 어게인, 비긴   제1032화

    “이런 일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여씨 가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문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 우린 그냥 자기 일에 몰두하면 돼.”고은서가 송민아를 위안했다.“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여시은은 왜 강성에 있는 그 큰 회사를 내버려두고 해성에서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거야? 경쟁자가 하나 더 많아졌잖아.”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고은서도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나를 노리고 이러는 건가? 그런데 곽승재가 아직 나한테 미련이 남았다는 이유로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다고?’“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실력도 만만치 않잖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송민아가 도리어 고은서를 위안했다.고은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서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송민아는 이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고은서는 이 기회에 쇼핑백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이거 네 오빠한테 대신 전해줘. 아줌마가 며칠 전에 세탁소에서 가져왔는데 계속 잊어버리고 미처 가져다주지 못했어.”“우리 오빠 외투가 왜 너한테 있는 거야?”송민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고은서는 이내 그녀의 이마를 콕 찌르면서 답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날 바에서 있었던 일로 경찰서로 갔었잖아. 그런데 나오는 길에 날씨가 하도 추워서 나한테 빌려준 거야.”송민아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두 사람이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지. 옷은 네가 직접 돌려줘. 요즘 들어 바쁜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니까.”“그냥 네가 가지고 있다가 시간 될 때 나 대신 돌려줘.”“고은서, 우리 오빠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거야?”“맞아.”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날 좋아하는 건 둘째 치고 나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거든. 난 상사만 되고 싶을 뿐 네 형수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일도 없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거야.”“...”송민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외투에 관한 소식

  • 어게인, 비긴   제1031화

    박지연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아무리 곽승재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러는 건 무의미한 행위잖아. 널 괴롭혔다고 곽승재가 여시은을 좋아하게 될 것도 아닌데.”고은서도 여시은의 속셈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날 화풀이 상대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약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괴롭힘당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위선적인가 하면 또 진실한 면도 있단 말이지. 이젠 내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차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니까.”“미리 준비해 둔 녹음 필에는 별로 쓸만한 내용이 녹음된 거 없어?”“없어.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나를 경계하더라고.”“듣고 나니까 여시은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운데.”박지연은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어루만졌다.“생긴 건 천진난만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큰 부잣집 아가씨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암흑 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여시은은 처음부터 오냐오냐하게 큰 순진한 여자애의 모습으로 고은서에게 다가갔다.사실 전에 민시후가 여씨 가문과 같은 부잣집에서 자란 아가씨치고는 여시은이 너무 수상할 정도로 천진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주 지당한 말이었다.민시후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고 여시은 또한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은서야, 전에 절에 가서 보살님한테 빌 때 너 다른 생각한 거 아니야? 간절하게 빌었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런 사람들이 계속 네 주변에 꼬이는 거야?”박지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아마 내가 필연코 넘어야 할 고비인가 봐. 넘고 나면 내 인생도 조금이나마 편해지려는지.”고은서도 따라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너 고은서 맞아? 왜 갑자기 인생의 의미를 다 꿰뚫어 보기라도 노인처럼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박지연이 그녀를 힐끔 보면서 장난삼아 물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곽승재는 며칠 동안 라이트문에 나타나지 않았고 고은서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다.반면 마재경과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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