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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비긴의 모든 챕터: 챕터 31 - 챕터 40

449 챕터

제31화

곽승재는 소파에 서 있는 고은서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 이혼을 원한다면 성의를 보여!”그 말과 함께 그는 이혼 서류를 내려놓고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지난번 홧김에 이혼을 강행하지 않은 탓에 곽승재는 그녀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고 일은 점점 더 번거로워졌다.고은서는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내려와 합의서를 들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고은서, 허구한 날 말썽 좀 피우지 마. 매번 응석 받아줄 정도로 내가 인내심이 크지 않아.”곽승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그 말은 백유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를 돌아오게 하려고 자신이 벌인 짓이란 뜻인가?미친!“당신이 인내심이 있든 없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고은서가 도발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전까지 난 하루도 가만있지 않고 당신 후회하게 만들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곽승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든 채 자리를 떠났다!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김이 빠졌다.망할 곽승재, 한 번 더 믿어주면 어디가 덧나나.속에 꽉 찬 불만을 털어놓을 곳이 없던 고은서는 박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니까 곽승재는 양가 어른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혼 서류에 사인하겠단 거야?”불만 가득 털어놓는 그녀의 말에 박지연은 의아했다.“대체 왜? 네 말처럼 그 정도로 널 미워하면 아무리 네가 장난하는 거라도 흔쾌히 사인을 할 텐데?”“내 말이, 머리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고은서가 씩씩거렸다.“은서야, 혹시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 박지연이 은근한 말투로 묻자 고은서가 되물었다.“무슨 가능성?”“곽승재가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 게 아니니까 지금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거지!”“그럴 리가!”고은서는 조금도 믿지 않고 박지연에게 지난번에 곽승재가 화를 내며 자신을 충분히 괴롭히겠다고 한 말을 전했다.“내가 자꾸 이혼 얘기를 꺼내는 게 못마땅해서 괴롭히는 거야. 그래, 그런 거야.”고은서는 문득 곽승재같이 오만하고 건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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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L국을 언급하자 시간을 세어보던 고은서는 무언가 떠올랐다.“지연아, 너 휴가 낼 수 있잖아. 왜 온 선생님과 같이 안 갔어?”“나 시간 없어. 시댁 가정부도 일 있다고 휴가 내서 내가 매일 가서 청소하고 밥도 해주고 밤에는 어머님과 같이 운동도 해야 해.”“가정부가 휴가를 냈으면 임시 가정부 구하면 되지. 넌 L국에 가서 온 선생님 만나.”고은서가 말했다.“결혼할 때 신혼여행도 못 갔잖아. 지금이 그걸 만회할 좋은 기회야.”박지연은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역시나 거절했다.“됐어, 비자도 만료됐는데 다음에 가지 뭐.”“비자는 갱신하면 되고 정 안 되면 여행사에 신청해서 투어로 가면 되잖아. 좋은 기회인데, 온 선생님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박지연은 곧바로 마음이 동했다.“그럼 해볼까?”“당장 해!” 고은서가 재촉하자 박지연은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평소에는 나랑 남편에 대해 거의 물어보지 않더니 오늘 갑자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고은서는 차분하게 말했다.“내 결혼생활은 실패했으니까 절친한 친구라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게 잘못됐어?”“...”좀처럼 감정적으로 구는 고은서가 아니었지만 박지연은 그래도 설득당했다.“네 말이 맞아, 비자 갱신해야겠어.”“그래.”전화를 끊으며 고은서는 살짝 안도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전생에 온 의사는 L국에 출장을 갔을 때 첫사랑을 만났고, 이후 그 여자가 온 이사의 병원으로 전근해 오며 박지연과 온 이사의 결혼을 파탄 내는 이유가 되었다.이번에 박지연이 해외로 가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바꾸길 바랐다.알려줄 건 알려주고 욕도 실컷 한 후 고은서는 계속해서 투자계획서를 다듬었다.그녀는 빨리 마무리해서 민시후에게 넘기고 싶었다.데이터 분석은 지루했지만 데이터를 통해 기업의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보람찬 일이었다.또 한 번의 밤샘 작업 끝에 고은서는 마침내 계획서를 완성했다.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하늘은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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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화장을 한 후 아침을 먹고 민시후를 찾아가려 했다.컴퓨터로 가보니 옆 포트에 꽂아 두었던 USB가 사라졌다.고은서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어젯밤까지 자료를 저장해 두었는데 어디로 갔을까?고은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미숙에게 물었지만 이미숙은 고개를 저었다.“아침에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길래 안 잠겨 있어서 들여다봤을 뿐 물건은 건드리지 않았어요.”“오늘 아침에 곽승재가 내 방에 들어왔어요?” 고은서가 묻자 이미숙은 고은서의 진지한 표정에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들어갔어요. 사모님 방에 핸드폰이 있는 걸 보시고 외출 안 하셨다고 하셨어요. 사모님, USB가 중요한가요? 제가 찾는 걸 도와드릴까요?”USB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결정적인 데이터가 많다는 게 중요했고, 만약 곽승재가 그걸 봤다면 며칠 동안 일한 게 헛수고가 된다!“아뇨, 제가 직접 찾아볼게요.”고은서는 곧바로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개자식, 전화를 안 받을 거면 휴대폰은 왜 써!고은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대충 아침을 먹은 후 차를 몰고 GS그룹으로 향했다.회사 로비에 도착한 고은서는 또다시 제지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런트에 새로 온 직원이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그리고는 적당히 살가운 어투로 인사를 건넸다.“사모님, 오셨어요. 바로 대표님 사무실로 모실게요.”고은서는 의아했다.“곽승재가 제가 오는 걸 알고 있어요?”직원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연락은 받지 못했지만 사모님이 오시면 아무도 막지 말고 대표 사무실로 모시라는 규정이 있어요.”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곽승재가 동의했다고? 게다가…“저를 어떻게 아세요?”직원이 답했다.“저희가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GS그룹과 대표님 주변의 중요한 분들을 파악하는 거예요.”고은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은 GS그룹 사람도 아니고, 곽승재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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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GS그룹 인턴십 계약서였다.“네 노력의 대가로 판주 투자은행에 인턴으로 갈 기회를 줄게.” 곽승재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신분을 내세워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고 모든 건 회사의 규정에 따라야 해.”고은서는 웃음이 났다.“내가 언제 판주에서 인턴 하겠다고 했어?”고은서가 인턴이라는 신분에 불만을 품은 거라고 생각한 곽승재는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GS그룹은 사람을 뽑는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서 기획서만으로는 정식 사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아. 네가 이 정도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한 달 안에 정직원이 되면 알맞은 부서로 보내줄게.”핀트가 안 맞는 말에 고은서는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나한테 어떤 직책을 줄 건데?”고은서가 먼저 물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비웃음이 살짝 묻어났지만 곽승재는 꿋꿋이 대답했다.“보통은 투자자 어시스턴트지만 능력이 뛰어나면 얼마든지 원하는 직책에 지원할 수 있어.” “그럼 내가 투자 이사 자리를 원한다면?”“고은서!” 곽승재가 경고 섞인 어투로 말했다.“왜 소리는 질러?”고은서의 작은 얼굴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당신이 줘도 내가 안 해! 내 허락도 없이 기획서를 봐 놓고 어디 인턴십을 주겠다는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어. 당신이 뭔데, 신이라도 돼?” “너!” 곽승재는 분노에 말문이 막혔다.보스와 고은서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본 주민기는 황급히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전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고은서, 그만 비아냥거려!” 곽승재는 화가 났다.“고작 인턴 자리라서 싫어? 그 기회를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드는 줄 알아!” “곽승재, 잘난 척 그만해!” 고은서는 무심하게 되받아쳤다.“처음부터 끝까지 난 판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내 USB를 몰래 훔쳐 간 건 당신이야!”묻지도 않고 가져간 건 도둑질이다. 훔친 것도 모자라 내용까지 봤다. 판주와의 싸움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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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대표님, 찾으셨어요?”주민기는 무고한 자신까지 피해를 볼까 봐 머리털이 곤두섰다.곽승재가 그에게 USB를 던졌다.“이 안에 있는 계획서 프린트해서 판주로 보내고, 통과되면 고은서에게 기준에 따라 보너스 주세요.”명운이 특별히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GS그룹이 판주를 인수한 이후 첫 번째 프로젝트인 만큼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명예를 지켜야 했다.하여 최근 투자자들이 열심히 계획서를 만들고 있고 회사에서도 이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보너스를 책정했다.그런데 고은서가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짧은 시간 안에 곽승재마저 인정할 만한 계획서를 만들 줄은 몰랐다.주민기는 마음속으로 몰래 감탄하며 USB를 받아 들었다.“네, 대표님.”...“은서 씨, 먹고 싶은 거나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시켜요, 예의 차리지 말고.”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클럽, 푹신한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민시후는 긴 다리를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았고 양옆으로 늘씬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있었다.이 느긋한 모습을 남들이 봤으면 업무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호화로운 생활을 자랑하는 줄로 알 것이다.“도련님, 사람들 좀 내보내도 될까요?” 고은서가 물었다.“안 돼요.”민시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은서 씨, 이 여자들이 나가면 우리 둘이 한 방에 남게 되는데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고은서가 말했다. “괜찮아요, 도련님께선 절 동성 친구로 생각하세요.”민시후는 건들거리며 대꾸했다.“안되죠, 어떻게 은서 씨처럼 예쁜 사람을 동성으로 대할 수 있겠어요?”고은서는 말을 멈추고 민시후 옆에 있는 두 미녀를 향해 말했다.“올 때 보니까 여기 스파가 있더라고요. 두 분은 나가서 전신 스파 좀 받고 오세요. 비용은 전부 도련님이 부담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두 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민시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은서 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만 가 봐. 누가 곽승재랑 부부 아니랄까 봐,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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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민시후는 고은서를 비웃듯 바라보았다.“판주가 입찰도 안 했는데 명운이 그런 큰 먹잇감을 포기하고 우리랑 같이 일할 것 같아요?”“보통 상황이라면 안 되겠지만 누군가 밀어붙이면 또 모르죠.”“오호?” 민시후는 자세를 고쳐 앉고 흥미롭게 고은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고은서는 휴대폰을 열어 파일 하나를 꺼내 민시후에게 건넸다.“명운의 서인수 대표에요. 여러 경로를 통해 조금 알게 된 정보인데 그가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독점 제조법 외에도 처가댁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아내의 말은 무척 잘 듣는다더군요.”“은서 씨 말은 그 사람 아내를 통해 서인수를 설득해서 우리와 함께 일하게 하겠다는 건가요?”민시후의 말투는 한층 담담해졌고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기 직전이었다.고은서가 먼저 협업을 제안하길래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했는데 고작 이런 수작이라니.그는 고은서의 휴대전화를 밀어내며 말했다.“명운의 미래 상장에 관한 일인데 그 사람 아내도 성급하게 결정하진 않을 거예요.”고은서도 당연히 민시후의 조급함을 눈치채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도련님, 이것 좀 다시 봐요.”그녀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서인수 부부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이분은 서인수 씨 장모님인데 몇 달 전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뻔했을 때 간호사가 제때 응급조치를 해서 사모님이 무척 고마워하고 계세요.”민시후는 고은서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간호사가 제 친한 친구입니다. 이미 저를 대신해 사모님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내일 오전에 계획서를 들고 댁으로 찾아뵙기로 했어요.”고은서는 이렇게 말하며 간단한 제안서를 민시후에게 건네주었다.“너무 번거롭지 않게 간단하게 요약한 제안서를 만들었으니 한번 보세요.”민시후는 서류를 받고 조금은 놀란 모습이었다.“아침에 USB를 잃어버리고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거예요?”고은서는 솔직하게 답했다. “기회를 잡는 게 쉽지 않으니 당연히 놓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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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필요 없어요.” 고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친구를 사귄다는 태도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은서 씨, 생각보다 꽤 똑똑하네요.”고개를 든 민시후는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고은서는 칭찬으로 여기고 답했다.“도련님 칭찬 감사합니다.”민시후도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기획서를 고은서게 다시 건넸다.“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다음 날, 고은서는 일찍 일어나 적당히 화장을 하고 화장을 곱게 하고 서인수의 집으로 향했다.서씨 가문은 도시의 고급 동네에서 작은 마당과 화단이 있는 별장에 살고 있었다.고은서가 도착했을 때 도아름은 어머니와 함께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에 있었다.고은서는 당당하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한 후 가져 온 선물을 건넨 다음 서두르지 않고 할머니와 함께 잠시 볕 쪼임을 하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식사 후에야 고은서는 본론에 들어갔다.“사모님,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명운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여러 군데 있는 걸로 알지만 저희 미래가 가장 좋은 선택지일 겁니다.”고은서는 생각을 전하며 계획서를 건넸다.“투자 금액과 지분율을 보면 저희의 성의를 알 수 있을 겁니다.”도아름도 시장 상황을 이해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료를 넘겨보았다.“이 문제는 나중에 남편이랑 주주들과 상의해서 이틀 안에 소식 전해드리죠.”거절하지 않은 것 자체가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고은서는 도아름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맙긴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지연 씨 친구면 당연히 도와야죠.”도아름은 당당하고 유능하며 성격도 솔직했다.사업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고은서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그럼 지연이가 돌아오면 저도 밥 얻어먹으러 올게요!”“좋아요!”도아름과 작별 인사를 나눈 고은서는 민시후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상황을 알리며 관련 서류와 계약서를 제때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일을 마친 고은서는 예원 별장으로 돌아갔다.도아름이 도와준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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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스피커 모드였던지 곧이어 반대편에서 할머니의 속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은서야, 승재 그 자식 때문에 화가 나서 할머니랑 시간도 보내기 싫은 거니?”할머니의 그런 말투를 당해내지 못한 고은서가 서둘러 말했다.“전 당연히 할머니랑 있는 게 좋죠.”“그럼 그렇게 해, 내일 너희한테 기사 보내마.”고은서의 다음 말을 할 틈도 없이 전미자는 이미 통화를 끝냈고 그녀의 목소리 톤은 한결 가벼워졌다.“...”다음 날 오후, 고은서는 운전기사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차에 가서 문을 열어보니 곽승재도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서늘한 눈매와 인상적인 분위기가 마치 금융 잡지의 표지 모델처럼 보였다.문을 여는 소리에 곽승재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개자식, 분명 자기 기사도 있으면서 굳이 할머니 차를 타겠다고!고은서는 그와 같이 앉고 싶지 않아 문을 닫고 조수석에 앉으려 했다.“심술부리지 마,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곽승재의 말투가 살짝 가라앉았다.분명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녀의 생각은 또 어떻게 읽었을까.운전기사가 자신을 돌아보자 고은서는 자신의 행동이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삐죽거리며 뒷좌석에 올라탔다.이동하는 동안 고은서는 곽승재와 말을 섞지 않고 휴대폰만 보았고 곽승재 역시 그녀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 컴퓨터만 바라봤다.차는 한참을 달렸고 운전자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고은서는 몸이 앞으로 쏠리며 앞좌석에 이마를 부딪칠 뻔했다.“조심해.”곽승재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기자 고은서는 흔들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도련님, 사모님 죄송합니다. 방금 누가 끼어들어서.” 운전기사는 서둘러 사과했다.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은서는 이미 그의 가슴에 반쯤 기대고 있었다.그녀는 오늘 베이지색 프릴이 달린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의 각도에서 그녀의 하얗고 섬세한 쇄골과 특정 부위가 은근히 보였다.“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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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고은서는 당황했다. 할아버지가 준 200억은 민시후와의 협업에 사용할 예정이었고, 지난번 곽승재의 블랙카드는 한도를 다 써 버린 상태였다.요즘 수중에 현금이 많지 않아서 이 돈만 들어온다면 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 같았다.어쨌든 그 계획서는 더 이상 그녀에게 쓸모가 없으니 판주에서 쓸 테면 쓰라지.하여 고은서는 태연하게 물었다.“2천만 원만 더 주면 안 돼?”“...” 곽승재가 그녀를 올려다봤다.“고은서, 그렇게 돈을 좋아하면서 전에는 왜 고고한 척 재산 한 푼도 필요 없다고 했어?”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곽승재는 그녀에게 카드 한 장을 던졌다. 생활비는 충분히 줄 테니 결혼으로 자신을 묶어두지 말라면서.당시 고은서는 돈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의 카드를 거절했다.그래서 결혼 후부터는 곽승재에게 줄 선물을 사거나 생활비 일부를 자신의 돈으로 충당했다.아까워 죽겠네!“이제라도 보상해 주는 게 어때?” 고은서가 떠보듯 묻자 역시나 곽승재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나랑 이혼할 건데, 내가 왜 너한테 생활비를 줘?”사업가에겐 천성적으로 이익이 중요했기에 고은서도 더 따지지 않았다.“그냥 2억으로 해.”곽승재가 요구를 제기했다.“앞으로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하고 계획서와 관련된 데이터 수정도 책임져.”“곽승재, 나한테 돈 주기 싫은 거지?” 고은서가 화를 냈다.“난 판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어. 판주 일에도 관여하지도 않을 거야!”곽승재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규정을 어겨서라도 널 이 프로젝트에 투자자로 참여시킬 수 있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포기하면 나중에 할머니한테 부탁해도 소용없어.”“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끼워준다니, 넓은 아량에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나?”곽승재의 분노에 찬 서늘한 표정에 고은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성의는 도로 집어넣어. 내가 할머니한테 가는 건 고사하고, 당신이 애원하러 와도 판주에 안 들어갈 거니까!”곽승재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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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전미자는 구식 나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위로 화려한 차림의 여성 여러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할머니!” 고은서가 힘차게 외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그녀를 본 전미자는 표정이 환해졌다.“은서 왔구나!”고은서와 곽승재가 함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할머니, 고모님들 안녕하세요.”곽승재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승재야, 넌 정말 효자구나. 항상 바쁘다고 하면서 안 오는 우리 집안 불효자들과 달리 매번 할머니를 찾아와주니!”“그래, 아무리 바빠도 승재보다 더 바쁠 수는 없지. 그렇게 큰 GS그룹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시간을 내는데 그냥 우리 늙은이들이 싫은 거야!”“역시 승재야. 능력도 있고 효성도 지극하고, 할머니는 복이 많으셔!”고모들의 칭찬을 들으며 곽승재는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고 고은서를 흘깃 쳐다보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저도 평소에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은서가 곁에 있어 드리죠.”‘은서’라는 두 글자가 곽승재 입에서 나오자 고은서는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아무리 겉치레일 뿐이라도 한번도 이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듯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은 아무런 동요 없이 태연한 표정이었다.할머니는 조용히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곽승재에게 말했다.“은서가 좋은 애라는 걸 아니까 다행이네.”“그래, 은서도 효녀지! 예쁘기도 해서 승재랑 천생연분이네!”여자들은 고은서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칭찬이 쏟아지는 가운데 저쪽에 있던 당숙이 곽승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곽승재는 배려심 많은 남편처럼 고은서에게 말했다.“할머니랑 잠깐만 있어, 다녀올게.”이 정도 연기쯤이야, 고은서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은서랑 승재는 갈수록 사이가 좋은 것 같네!”고모 중 한 명이 고은서에게 말했다.“너랑 승재는 언제 아기 낳을 거야, 그래야 우리도 기운 좀 받지! 그렇죠 여사님?”전미자는 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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