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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고은서는 당황했다.

할아버지가 준 200억은 민시후와의 협업에 사용할 예정이었고, 지난번 곽승재의 블랙카드는 한도를 다 써 버린 상태였다.

요즘 수중에 현금이 많지 않아서 이 돈만 들어온다면 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 같았다.

어쨌든 그 계획서는 더 이상 그녀에게 쓸모가 없으니 판주에서 쓸 테면 쓰라지.

하여 고은서는 태연하게 물었다.

“2천만 원만 더 주면 안 돼?”

“...”

곽승재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고은서, 그렇게 돈을 좋아하면서 전에는 왜 고고한 척 재산 한 푼도 필요 없다고 했어?”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곽승재는 그녀에게 카드 한 장을 던졌다. 생활비는 충분히 줄 테니 결혼으로 자신을 묶어두지 말라면서.

당시 고은서는 돈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의 카드를 거절했다.

그래서 결혼 후부터는 곽승재에게 줄 선물을 사거나 생활비 일부를 자신의 돈으로 충당했다.

아까워 죽겠네!

“이제라도 보상해 주는 게 어때?”

고은서가 떠보듯 묻자 역시나 곽승재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나랑 이혼할 건데, 내가 왜 너한테 생활비를 줘?”

사업가에겐 천성적으로 이익이 중요했기에 고은서도 더 따지지 않았다.

“그냥 2억으로 해.”

곽승재가 요구를 제기했다.

“앞으로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하고 계획서와 관련된 데이터 수정도 책임져.”

“곽승재, 나한테 돈 주기 싫은 거지?”

고은서가 화를 냈다.

“난 판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어. 판주 일에도 관여하지도 않을 거야!”

곽승재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규정을 어겨서라도 널 이 프로젝트에 투자자로 참여시킬 수 있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포기하면 나중에 할머니한테 부탁해도 소용없어.”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끼워준다니, 넓은 아량에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나?”

곽승재의 분노에 찬 서늘한 표정에 고은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성의는 도로 집어넣어. 내가 할머니한테 가는 건 고사하고, 당신이 애원하러 와도 판주에 안 들어갈 거니까!”

곽승재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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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 어게인, 비긴   제448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 어게인, 비긴   제447화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 어게인, 비긴   제446화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 어게인, 비긴   제445화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

  • 어게인, 비긴   제444화

    “곽승재보다 더 나쁜 놈이잖아!”고은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백유미가 약물 알레르기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곽승재는 그녀가 다친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온 닥터는 박지연의 상처를 봤으면서도 그녀를 혼자 병원에 보냈다.“네 시어머니도 너무해! 널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는 거잖아!”고은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자기 아들이 힘들까 봐 다친 며느리를 혼자 병원에 가게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아들 첫사랑한테는 친절하게 굴면서 며느리한테는 밥하라고 시키는 게 정말 시어머니가 할 짓이야?”이미 화를 냈던 건지 박지연은 오히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시어머니는 항상 날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셨잖아. 그런 사람이 내가 다쳤다고 해서 신경 쓸 리가 없지.”“더 나쁜 건 온 선생님이야! 네게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네 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무슨 일이든 너한테 얘기조차 안 하잖아. 이런 생활을 어떻게 견디는 거야!”고은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지연아, 너도 온 선생님 그냥 차 버려! 우리 둘이 지내면 되잖아. 남자는 필요 없어!”박지연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너도 알잖아. 속상하긴 해도 남편 얼굴만 보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단지 성격이 차갑고 딴짓 안 한다면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첫사랑이 작정하고 돌아왔잖아. 안 그래도 어중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인데 뭘 더 버티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네가 다친 이 며칠 동안 네 상태에 관해 물어본 적 있어?”“의사잖아. 얼마나 다쳤는지 알고 있으니까 물어봐도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 게다가 요즘 학회가 많아서 바쁘거든. 얼굴 마주 볼 시간도 별로 없어.”“결국 물어본 적 없다는 얘기네?”화가 난 고은서가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바빠서 다친 아내 상태를 물어볼 시간은 없으면서 첫사랑이랑 쇼핑하고 커피 마실 시간은 있나 보네.”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말을 밖으로 뱉은 고은서는 곧바로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이미 입 밖으

  • 어게인, 비긴   제443화

    박지연의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졌다.그녀는 팔을 살짝 뒤로 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요리하다가 실수로 데었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검진받으러 왔다며? 같이 있어 줄게.”고은서는 직감적으로 박지연과 온 닥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대화하기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기에 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에 따랐다.고은서는 잘 회복하고 있었다.전에 옥상에서 떨어지며 생긴 부상도 별 탈 없이 회복 중이었다.“아직 밥 안 먹었지? 같이 뭐라도 좀 먹을까?”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도 거절하지 않았다.“식당에 가자. 당직이라서 얼른 가봐야 해.”“그러자.”병원 식당은 환한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곳곳에 식물들이 배치되어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병원 환경 좋네.”고은서가 칭찬하자 박지연이 답했다.“평소에는 이렇게 깔끔하지 않아. GS 그룹에서 병원에 새 건물 몇 개 지어준다며 시찰 나온 사람들이 있어서 환경이 좀 나아진 거야.”‘GS 그룹에서 병원에 새 건물을 지어준다고?’“네 덕일지도 몰라. 너 전에 여기 입원해 있을 때 곽승재가 자주 왔었잖아. 병원 측에서도 그 틈에 후원을 요청하기도 쉬웠겠지.고은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전에 병원장이 곽승재와 관련된 일은 간섭하지 말라고 했던 지시가 생각났다.‘후원 때문이었네.’박지연이 식판을 두 개 받아 와서 조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지연아, 이제 말해줄 수 있지 않아? 온 선생님이랑 무슨 일 있었던 거야?”고은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전에 온 선생님께서 해외에서 만났던 그 여자가 같은 병원에 온 거야?”박지연은 부인하지 않았다.그녀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보름 전에 발령받아서 왔어. 전에 오기로 했던 사람이 국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 여자로 교체됐다고 하더라고.”고은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온 선생님께서 이 사실을 계속 너한테 숨겼던 거야?”박지연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 어게인, 비긴   제442화

    그 사람은 바로 박지연의 남편 온 닥터 였다.온 닥터 옆에는 가녀린 여자 한 명도 함께였다.그 둘은 캐주얼한 차림에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있었는데 어디론가 함께 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지연이가 선생님께서 많이 바쁘시다고 했는데...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바쁘다던 사람이 왜 다른 여자와 카페에 나타난 거지?’고은서는 비록 그 여자를 본 적 없었지만 여자의 직감으로 고은서는 그 여자가 온 닥터의 첫사랑일 것으로 생각했다.‘지연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신호등이 깜빡이고 있어 고은서는 생각을 이어 나갈 겨를 없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사진 한 장을 찍었다.뒤차의 재촉에 서둘러 출발하면서 고은서는 백미러를 통해 함께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이전에 박지연이 온 닥터에게 물었을 때, 그의 첫사랑은 같은 병원으로 발령받지 않았다고 했었다.‘온 선생님께서 거짓말하신 건가? 아니면 내 직감이 틀린 걸까? 평범한 동료나 친구인 걸까?’두 사람은 단지 카페에서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을 뿐 특별히 친밀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후 박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다행히 그녀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지연아, 병원에 있어? 재검진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병원에 있긴 한데 당직이라 어려울 것 같아.”“요즘 별일 없지?”고은서는 박지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힘없이 느껴졌다.두 사람은 고은서가 외할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 연락한 적이 없었다.박지연은 고은서가 이혼했단 사실도, 요양 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그간 있었던 일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평소 박지연답지 않은 행동이었다.“무슨 일 있을 게 뭐가 있어.”고은서는 통화만으로 박지연의 기분을 가늠하기 힘들었다.“만나서 얘기하자.”전화를 끊은 고은서가 병원으로 향했다.박지연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몇몇 간호사들이 고은서를 알아보고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지난번

  • 어게인, 비긴   제441화

    원지훈은 굽히지 않고 손을 뻗어 찻잔을 내팽개쳤다.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고은서는 그를 흘깃 보더니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내 목적이 뭔지 너도 잘 알겠지. 협조해. 이 위기에서 널 구해줄게. 네 삶은 지금보다 더 빛나게 될 거야.”원지훈은 고은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미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는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서가 웃으며 말했다.“지훈 씨, 똑똑한 사람이잖아. 아니면 백유미도 지훈 씨를 선택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상태로 고은혜는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을 거야. 물론 회사도 지키기 어렵겠지. 백유미가 지훈 씨가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한 신뢰도 깨져서 앞으로 도움은 기대할 수 없겠지. 정말 이대로 모든 걸 잃고 싶어?”원지훈은 잠시 망설였다.그동안 풍족하게 살며 누렸던 시간이 너무나도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얼마 못 누리고 이 모든 게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하지만 고은서를 믿어도 될까?’고은서는 원지훈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말했다.“지훈 씨, 우리 사이에는 이익 관계가 없잖아. 지훈 씨가 고은혜에게 실질적인 행동을 해서 피해준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내 목표는 오직 백유미뿐이지 지훈 씨랑은 상관없어.”이어 고은서가 말을 이어가며 원지훈을 설득했다.“지훈 씨, 당신은 잃을 게 없어. 이번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당신은 백유미의 버린 패가 될 뿐이야. 나랑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아?”원지훈이 그녀의 말에 흔들렸다.“뭘 원해요?”“걱정하지 마.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요구하지 않을 테니까.”고은서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어. 이틀 동안 시간 줄 테니 잘 생각해 봐. 이건 선착금이야. 내 제안을 받아들이든 말든 이 돈은 갚지 않아도 돼.”원지훈은 아직 백유미와 완전히 틀어진 상태가 아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돌아설 가능성도 있었다.하여 고은서는 바로 목적을 밝히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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