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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Author: 류한나
전미자는 구식 나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위로 화려한 차림의 여성 여러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

고은서가 힘차게 외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그녀를 본 전미자는 표정이 환해졌다.

“은서 왔구나!”

고은서와 곽승재가 함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고모님들 안녕하세요.”

곽승재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승재야, 넌 정말 효자구나. 항상 바쁘다고 하면서 안 오는 우리 집안 불효자들과 달리 매번 할머니를 찾아와주니!”

“그래, 아무리 바빠도 승재보다 더 바쁠 수는 없지. 그렇게 큰 GS그룹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시간을 내는데 그냥 우리 늙은이들이 싫은 거야!”

“역시 승재야. 능력도 있고 효성도 지극하고, 할머니는 복이 많으셔!”

고모들의 칭찬을 들으며 곽승재는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고 고은서를 흘깃 쳐다보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저도 평소에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은서가 곁에 있어 드리죠.”

‘은서’라는 두 글자가 곽승재 입에서 나오자 고은서는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

아무리 겉치레일 뿐이라도 한번도 이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고은서는 곽승재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듯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은 아무런 동요 없이 태연한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곽승재에게 말했다.

“은서가 좋은 애라는 걸 아니까 다행이네.”

“그래, 은서도 효녀지! 예쁘기도 해서 승재랑 천생연분이네!”

여자들은 고은서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칭찬이 쏟아지는 가운데 저쪽에 있던 당숙이 곽승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곽승재는 배려심 많은 남편처럼 고은서에게 말했다.

“할머니랑 잠깐만 있어, 다녀올게.”

이 정도 연기쯤이야, 고은서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은서랑 승재는 갈수록 사이가 좋은 것 같네!”

고모 중 한 명이 고은서에게 말했다.

“너랑 승재는 언제 아기 낳을 거야, 그래야 우리도 기운 좀 받지! 그렇죠 여사님?”

전미자는 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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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내 여보 맞잖아...”온승준은 박지연의 말을 듣자마자 휘청거리며 다가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여보, 나 무시하지 말고 나랑 얘기 좀 해...”술 마신 탓인지 힘이 무척 셌을 뿐만 아니라 몸을 박지연한테 전부 기대는 바람에 그녀는 황급히 옆에 있던 동료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얼른 좀 부축해 봐요. 지금 취했잖아요.”놀라움도 잠시, 동료들은 다가가 함께 온승준을 박지연한테서 떼어냈다.“지연아, 여보, 우리 집 가자...”온승준은 자신을 부축한 남자 의사의 어깨를 잡고 중얼거렸다.“나 무시하지 말아줘...”동료들은 그제야 온승준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는 걸 깨달았다.“교수님이 온 닥터랑 친하잖아. 교수님한테 연락해서 집 주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집 데려다주면 되잖아.”다른 한 의사가 제안했다.교수한테 전화하는 틈에도 온승준은 끊임없이 박지연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보라고 불렀다.“아. 나 알 것 같아요. 온 선생님이 우리 병원으로 이직해 온 게 지연 간호사님한테 반해서 아닐까요? 여보라고 부르는 거 봐서는 지연 간호사님한테 확실하게 마음을 빼앗긴 것 같은데요.”“전에도 몇 번이고 우리 간호사실을 지나다니던데 지연이 보러 온 거 아니야?”다른 간호사가 맞장구를 쳤다.“그렇네. 며칠 전에 온 선생님이 나한테 지연이가 어디 갔는지 물어보던데.”“나도 기억나. 온 선생님이 우리 병원으로 처음 온 날 구내식당에서 지연이한테 인사까지 했었잖아.”간호사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지연을 보면서 물었다.“수 간호사님, 온 선생님이랑 어떻게 알고 지낸 거예요? 수 간호사님 때문에 우리 병원에 온 거 맞죠?”박지연은 도리 머리를 하면서 부인했다.“그럴 리가요. 제가 이혼까지 했던 사람이라는 거 다들 알잖아요.”박지연이 이혼한 일을 확실히 여러 동료가 알고 있었다.심지어 상대방 탓이라고 같이 욕해준 적도 있었다.이레 병원에서 일한 지 몇 년 되기는 했으나 그녀의 남편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어게인, 비긴   제691화

    그 누구도 일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대부분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는 회식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온승준과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다.그러나 함께 술을 마시면서 게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승준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고기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술 게임도 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누구도 그를 끼워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그는 전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온승준에 관해 다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있는 한 계속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져 차마 편히 놀고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온 닥터, 우린 이미 이런 시끄러운 분위기가 익숙해서 괜찮은데 온 닥터는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어.”또 다른 의사 한 명이 말했다.온승준은 그저 사람과의 교재를 싫어할 뿐 바보는 아니었기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꺼려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박지연을 보았는데 그녀는 동료들과 한창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술 마신 탓에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유독 시선이 자꾸 갔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 그와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온 닥터, 안 마실 거야?”술을 권하는 사람이 물었다.“그만 권해. 온 닥터 집도의여서 술 함부로 안 마신단 말이야. 24시간 동안 정신이 말짱해야지.”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대신 설명해줬다.“그러면 여기 계속 있지 말고 돌아가서 쉬어. 여기 계속 있어 보았자 분위기만 망치잖아.”방금전의 의사가 술기운에 저도 모르게 속심말을 내뱉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치 있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옳았다.그러나 온승준은 천천히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마실게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을 쩍 벌렸다.‘그렇게 도도하게 굴던 온 닥터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랑 술을 마신다고?’“그래,

  • 어게인, 비긴   제690화

    여재훈은 예의상 고은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반면 곽현수는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녀와 손잡고 있는 곽승연을 보는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승연아, 낯선 사람과 함부로 손잡고 있으면 어떡해!”깜짝 놀란 곽승연은 눈에 띄게 긴장해 했다.고은서는 황급히 곽승연을 안아주면서 말했다.“곽 대표님,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세요. 승연이가 놀랐잖아요.”“버릇없는 년. 내가 내 딸이랑 얘기하는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곽현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곽 대표님, 어린 애들한테 이렇게 엄숙할 필요는 없잖아요.”여재훈이 온화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맞아요, 아저씨. 은서 씨도 그저 승연이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여시은도 옆에서 여재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곽현수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승연아!”바로 이때 서연정이 황급히 달려왔다.그녀는 곽승연의 상태를 확인한 후 곽현수를 향해 말했다.“승연이 상태가 요즘 불안정하니까 다음부터 말할 때 주의하도록 해요.”“당신이 여긴 왜 있는 거야?”곽현수가 덤덤하게 물었다.서연정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은서랑 같이 밥 먹으러 왔어요.”곽현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옆에 있는 여재훈과 여시은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이분은 여재훈 여 대표님이야. 그리고 옆엔 딸 여시은이고.”“제 부인이랑 딸입니다.”그는 다시 몸을 돌려 여씨 부녀에게 서연정과 곽승연을 소개해줬다.“안녕하세요, 아주머니.”여시은이 달달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서연정도 단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사모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식사 같이하시죠.”여재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아주머니, 해성에 온 지도 꽤 되는데 언젠가 한 번 뵈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여시은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고맙지만 다음 기회에 같이 식사하도록 하죠. 승연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데리고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서연정이

  • 어게인, 비긴   제689화

    고서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세요.”“승연이 상황에 관해서 너도 전해 들었을 거라 믿어. 지금 승연이가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향을 찾아야 하는데 승재 할머니 말씀으로는 네가 퍼퓸 제작에 능하다고 하던데 혹시 너한테 부탁해도 될까 해서.”서연정은 국내외에도 많은 퍼퓨머가 있긴 하나 곽승연이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싫어해서 다른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보태면서 부득이하게 고은서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했다.전에 곽씨 가문 본가에 갔을 때 곽승연 상태와 퍼퓸 제작에 관한 일을 곽승재한테서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때 당시는 곽승연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던지라 그녀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거절했었다.“어머니, 제가 한번 해볼게요.”“은서야, 고마워.”서연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고은서는 그녀를 보며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가슴이 찡해났다.“하지만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저도 꼭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가 없어요.”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고은서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은서야. 내 부탁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걸. 승연이 상태는 나도 잘 알고 있어. 결과가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정말 고마워.”서연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내일부터 시간 내서 승연이가 무얼 좋아하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원래도 까다로운 퍼퓸 제작이 이번엔 더 힘들 것 같았다.‘천천히 해야지.’“은서야, 잘 부탁해. 기사님한테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게 기다리라고 할게.”“괜찮아요.”고은서가 말을 계속 이어가려고 할 때 서연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넌 승연이를 도와주는 것 외에 일도 해야잖니. 기사님이 데려다주고 하면 너도 차에서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잖아.”그녀의 말에 고은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운전하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은

  • 어게인, 비긴   제688화

    육현석이 혼자 추측하기 시작했다.“혹시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서 백유미를 이용하려고 놓아준 거야?”“너랑 상관없는 일은 모르고 있는 게 나아. 쓸데없는 추측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곽승재가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서류 하나를 들면서 말했다.“...”육현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고은서와 서연정은 전에 약속한 찻집에서 만났다.웨이터를 따라 위로 올라가 보니 은은한 차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여러 향초도 켜져 있었고 내부는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송민준을 만날 때 갔던 찻집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는데 아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은서야, 왔어?”서연정이 그녀를 보며 인사했다.“어머니.”고은서는 인사하면서 곽승연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열심히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승연이가 요즘 많이 나아졌어. 너한테 주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했는데 직접 전해주는 게 더 예의인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서연정이 앞서 설명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곽승연은 다도 전문가들이 차를 올려줄 때도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미안, 은서야. 승연이 아직 다른 여자애들처럼 너랑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진 못해.”서연정이 웃으면서 사과했다.“상태가 좋았다가 나빴다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그저 환자로만 보거든. 승연이는 또 그걸 싫어하고. 그래서 애가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지금은 주동적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돼.”아이패드를 들고 조용하게 앉아있는 곽승연은 나긋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가녀린 몸매와 창백한 얼굴빛을 외에는 전혀 자폐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괜찮아요, 어머니. 저는 승연이가 그저 평범한 여자애처럼 보여요. 조용하고 귀엽잖아요.”“고마워, 은서야.”서연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승연아, 언니한테 줄 물건이 있다며? 언니 지금 여기 왔어

  • 어게인, 비긴   제687화

    육현석은 곽승재의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큰 타격을 받은 모양이다.육현석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달랬다.“형, 형수님이 실망한 것도 사실 당연한 일이잖아. 전에 백유미를 감방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어긴 사람이 형이 맞잖아. 심지어 지연이도 화를 내면서 또다시 형이랑 형수님이 재혼하는 걸 도와주면 나랑 절교하겠다고 했단 말이야.”육현석은 무척 난감해했다.한쪽은 제일 친한 형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그에게 있어서 누굴 도와줄지 선택 내리기 너무 어려웠다.“형수님 형한테 정말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쯤에서 그냥 내려놓는 건 어때?”육현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열었다.곽승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너도 민시후가 고은서한테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 하려고 그러는 거야?”“그럴 리가! 형수님처럼 훌륭한 사람한테 민시후가 뭐야.”육현석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그런데 왜 백유미를 이대로 놓아주는 거야? 혹시 아버님이랑 백승엽이 백유미를 놔주라고 형을 협박한 거야?”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현석아, 전에 은서가 임신했던 아이가 내 아이래.”곽승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화제를 바꾸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왜 갑자기 이 말을 꺼내는 건지 약간 의문스럽긴 했지만 티 내지 않고 그의 말에 답했다.“내가 전에도 형수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민시후랑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을 거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나한테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저 민시후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는 거라고만 생각하면서 믿지 않았어.”곽승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주민기한테 조사하라고 맡기고도 그 결과를 확인해 보지 않았어. 고은서 말이 맞아. 난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치는 사람이야. 증거 있는 일만 믿으면서 단 한 번도 고은서를 믿어준 적이 없어. 그래서 고은서도 내가 자신을 위해 변할

  • 어게인, 비긴   제686화

    “누가 얌생이라는 거야?”“T국에 있을 때 분명히 나도 고은서를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소식을 숨겼잖아. 이게 얌생이가 아니고 할 짓이야?”민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내 아내에 관한 소식을 왜 너한테 알려줘야 하는데?”곽승재가 화를 내며 말했다.“두 사람이 이혼한 지 언젠데 아직도 아내 타령이야. 곽승재, 아내라는 호칭 적당하게 부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너 대신 창피해지려고 하니까.”민시후가 비아냥거리며 반박했다.“너!”곽승재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민시후, 네가 환자라고 내가 널 못 팰 것 같아?”“당신이 뭔데 민시후를 패?”바로 이때, 고은서가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그녀는 민시후 앞에 막아서며 한기가 서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곽승재, 여기 블랙박스 있는 거 안 보여? 함부로 행동하지 마.”고은서의 말이 비수가 되어 곽승재의 마음을 찔렀다.그는 순간 가슴이 찢기는 듯했다.옆에 보고 있던 주민기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그러나 고은서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주민기 씨, 건망증이세요? 뇌 건강에 신경 좀 쓰시는 게 좋겠네요. 곽승재한테서 돈 받으면서 편드는 건 이해하겠지만 저도 스스로 볼 줄 알거든요. 그러니까 대신 설명해줄 필요 없어요.”주민기는 억울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그냥 사무실에 계시면 될 걸 왜 굳이 나와서 사모님을 기다리려는 거야. 난 부득이하게 따라 나온 것뿐인데. 게다가 사모님한테 잘 보이기는커녕 민시후 때문에 도리어 화내는 모습만 보이게 되었잖아.’그에게 있어 더 절망적인 건 고은서가 민시후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었다.주민기는 미래의 속상해하는 곽승재의 모습과 힘든 자신의 앞날이 벌써부터 무서워 났다.‘대표님이 기분 나빠하면 내 일상도 함께 힘들어지는데. 난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인데 왜 하늘은 계속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야. 벌써부터 힘이 빠져.’주민기가 한창 생각

  • 어게인, 비긴   제685화

    민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해외에서 혼자 지내며 꽤 많은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고은서는 민시후를 다시 보게 되었다.비록 지난 생에서 앞으로 그가 이루어낼 성과가 작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 그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정말 믿음이 가지 않았다.미래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고은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그냥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쯤으로 여겼을 것이다.“고은서, 나는 단 한 번도 내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적이 없어. 이제 알게 되었으니 날 책임 져야 해.”민시후는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고은서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답했다.“져야 할 책임이 너무 커서 감당 안 되겠는데?”“그럼 내가 너 책임질까?”민시후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을 어머니의 묘비 앞에 데려간 이유를 알았다.그는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며 자신에게 진지함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고은서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구애받았지만 그녀는 곽승재에게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녀는 최선을 다해 곽승재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고 살았었다.잠시 생각하던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말했다.“다음 주 우리 삼촌 생일인데 부상이 다 나으면 나랑 같이 갈래?”그 말에 민시후는 얼굴이 밝아지며 말했다.“지금이라도 갈 수 있어. 믿지 못하겠으면 두 바퀴 뛰어서 보여줄까?”말을 마친 민시후가 날뛰려 했지만 고은서가 얼른 제지했다.“됐어. 얼른 앉아.”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민시후, 여기서 몇 바퀴 돌다가는 구급차 불러야 할 거야.”민시후는 고은서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그래. 알았어. 얌전히 앉아 있을게.”병동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 오른 고은서는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민시후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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