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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작가: 류한나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화장을 한 후 아침을 먹고 민시후를 찾아가려 했다.

컴퓨터로 가보니 옆 포트에 꽂아 두었던 USB가 사라졌다.

고은서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어젯밤까지 자료를 저장해 두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고은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미숙에게 물었지만 이미숙은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길래 안 잠겨 있어서 들여다봤을 뿐 물건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곽승재가 내 방에 들어왔어요?”

고은서가 묻자 이미숙은 고은서의 진지한 표정에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들어갔어요. 사모님 방에 핸드폰이 있는 걸 보시고 외출 안 하셨다고 하셨어요. 사모님, USB가 중요한가요? 제가 찾는 걸 도와드릴까요?”

USB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결정적인 데이터가 많다는 게 중요했고, 만약 곽승재가 그걸 봤다면 며칠 동안 일한 게 헛수고가 된다!

“아뇨, 제가 직접 찾아볼게요.”

고은서는 곧바로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개자식, 전화를 안 받을 거면 휴대폰은 왜 써!

고은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대충 아침을 먹은 후 차를 몰고 GS그룹으로 향했다.

회사 로비에 도착한 고은서는 또다시 제지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런트에 새로 온 직원이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는 적당히 살가운 어투로 인사를 건넸다.

“사모님, 오셨어요. 바로 대표님 사무실로 모실게요.”

고은서는 의아했다.

“곽승재가 제가 오는 걸 알고 있어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연락은 받지 못했지만 사모님이 오시면 아무도 막지 말고 대표 사무실로 모시라는 규정이 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곽승재가 동의했다고? 게다가…

“저를 어떻게 아세요?”

직원이 답했다.

“저희가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GS그룹과 대표님 주변의 중요한 분들을 파악하는 거예요.”

고은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은 GS그룹 사람도 아니고, 곽승재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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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그룹 인턴십 계약서였다.“네 노력의 대가로 판주 투자은행에 인턴으로 갈 기회를 줄게.” 곽승재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신분을 내세워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고 모든 건 회사의 규정에 따라야 해.”고은서는 웃음이 났다.“내가 언제 판주에서 인턴 하겠다고 했어?”고은서가 인턴이라는 신분에 불만을 품은 거라고 생각한 곽승재는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GS그룹은 사람을 뽑는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서 기획서만으로는 정식 사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아. 네가 이 정도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한 달 안에 정직원이 되면 알맞은 부서로 보내줄게.”핀트가 안 맞는 말에 고은서는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나한테 어떤 직책을 줄 건데?”고은서가 먼저 물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비웃음이 살짝 묻어났지만 곽승재는 꿋꿋이 대답했다.“보통은 투자자 어시스턴트지만 능력이 뛰어나면 얼마든지 원하는 직책에 지원할 수 있어.” “그럼 내가 투자 이사 자리를 원한다면?”“고은서!” 곽승재가 경고 섞인 어투로 말했다.“왜 소리는 질러?”고은서의 작은 얼굴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당신이 줘도 내가 안 해! 내 허락도 없이 기획서를 봐 놓고 어디 인턴십을 주겠다는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어. 당신이 뭔데, 신이라도 돼?” “너!” 곽승재는 분노에 말문이 막혔다.보스와 고은서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본 주민기는 황급히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전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고은서, 그만 비아냥거려!” 곽승재는 화가 났다.“고작 인턴 자리라서 싫어? 그 기회를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드는 줄 알아!” “곽승재, 잘난 척 그만해!” 고은서는 무심하게 되받아쳤다.“처음부터 끝까지 난 판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내 USB를 몰래 훔쳐 간 건 당신이야!”묻지도 않고 가져간 건 도둑질이다. 훔친 것도 모자라 내용까지 봤다. 판주와의 싸움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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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 찾으셨어요?”주민기는 무고한 자신까지 피해를 볼까 봐 머리털이 곤두섰다.곽승재가 그에게 USB를 던졌다.“이 안에 있는 계획서 프린트해서 판주로 보내고, 통과되면 고은서에게 기준에 따라 보너스 주세요.”명운이 특별히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GS그룹이 판주를 인수한 이후 첫 번째 프로젝트인 만큼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명예를 지켜야 했다.하여 최근 투자자들이 열심히 계획서를 만들고 있고 회사에서도 이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보너스를 책정했다.그런데 고은서가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짧은 시간 안에 곽승재마저 인정할 만한 계획서를 만들 줄은 몰랐다.주민기는 마음속으로 몰래 감탄하며 USB를 받아 들었다.“네, 대표님.”...“은서 씨, 먹고 싶은 거나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시켜요, 예의 차리지 말고.”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클럽, 푹신한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민시후는 긴 다리를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았고 양옆으로 늘씬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있었다.이 느긋한 모습을 남들이 봤으면 업무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호화로운 생활을 자랑하는 줄로 알 것이다.“도련님, 사람들 좀 내보내도 될까요?” 고은서가 물었다.“안 돼요.”민시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은서 씨, 이 여자들이 나가면 우리 둘이 한 방에 남게 되는데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고은서가 말했다. “괜찮아요, 도련님께선 절 동성 친구로 생각하세요.”민시후는 건들거리며 대꾸했다.“안되죠, 어떻게 은서 씨처럼 예쁜 사람을 동성으로 대할 수 있겠어요?”고은서는 말을 멈추고 민시후 옆에 있는 두 미녀를 향해 말했다.“올 때 보니까 여기 스파가 있더라고요. 두 분은 나가서 전신 스파 좀 받고 오세요. 비용은 전부 도련님이 부담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두 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민시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은서 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만 가 봐. 누가 곽승재랑 부부 아니랄까 봐,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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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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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진 말로 밀어내려 했음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는 민시후의 모습을 보며 고은서는 감동했다.그만큼 민시후가 감정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고은서는 그가 가족과의 갈등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었다.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이어 남은 가족들까지 멀어지는 걸 고은서는 보고 싶지 않았다.민시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면 두 형제간의 다툼은 불가피할 것이다.그래서 고은서는 결국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민시후, 네 형이 나를 찾아온 건 맞아. 하지만 나한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오늘 너한테 얘기한 건 모두 내 결정이야. 예전에 내가 곽승재를 어떻게 쫓아다녔는지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아. 내 결정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를 강요할 수는 없어.”민시후는 고은서의 말을 이해했다.민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기사 보낼 테니 타고 가. 나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바래다주진 못하겠다.”말을 마친 민시후는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뭐 하려는지 바로 눈치채고 외쳤다.“민시후, 형 찾으러 가지 마. 내 결정은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어.”하지만 민시후는 대답 없이 그대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은서는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민시현의 번호가 없었던 고은서는 고민 끝에 송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서 씨?”송민준은 약간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고은서는 민시후가 민시현을 찾으러 갈 수도 있다고 하며 상황을 설명했다.“송민준 씨, 민시현 씨한테 민시후 좀 막을 수는 없는지 연락 좀 해주세요.”송민준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단호하게 답했다.“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릴게요. 소식 있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송민준은 약속대로 먼저 연락을 해왔다.“어제 시후는 아버지한테 불려서 북성으로 갔어요. 오늘도 해성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거예요. 은서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가 겉으로는 시후한테 엄한 듯해 보여도 속으로는 많

  • 어게인, 비긴   제770화

    민시후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고은서는 미소 지었다.“늘 생각해 온 일이야. 다만 ZY에서 프로젝트를 몇 개 더 완성하고 경험과 자금을 충분히 쌓은 후에 말하려고 했어.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명운도 상장을 앞두고 있고 제인 제약 계약도 체결되었잖아. 내 손에 새로운 프로젝트로 없으니 준비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아.”“잘됐네. 마침 백씨 가문 산업 중에 금융 관련 사업도 있었으니 이번 인수 절차가 끝나면 네가 이어받아서 함께 운영하면 되겠다.”민시후가 제안했으나 고은서는 정중히 거절했다.“백씨 가문 산업은 ZY 그룹 프로젝트야. 내가 혼자 독점하는 건 아닌 것 같아.”“백씨 가문을 파산시킬 수 있었던 건 네 덕이야. 난 그냥 인수를 도와주려고 한 거지 ZY 그룹에 합병시킬 생각은 없었어.”그 말에 고은서는 약간 감동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ZY 그룹에서 손을 댔으니 당연히 가져가야지. 이전에 약속했던 대로 비율에 따른 수익만 나눠줘.”고은서의 단호한 태도에 민시후는 한발 물러서며 인수가 완료된 후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이로써 두 사람은 잠정적으로 합의를 보았다.“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게 이것 때문이야?”이때 강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일렁였다.고은서는 반짝이는 강 건너편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민시후, 앞으로 한동안 많이 바빠질 거야. 그래서 일 외의 것에 신경 쓸 시간은 없을 것 같아.”“그래서?”민시후가 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고은서가 시선을 돌려 민시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답했다.“그래서 이전에 약속했던 건 지키지 못할 것 같아.”“잠시만이라는 거야? 아니면 이대로 끝이야?”민시후가 묻자 고은서가 잠시 멈칫하다 답했다.“이대로 끝내자. 우리 다시 친구 해.”“고은서, 며칠 전만 해도 나를 믿는다고,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민시후의 목소리에서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고은서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 어게인, 비긴   제769화

    고은서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고 되물었다.“내가 무슨 일을 숨기겠어.”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그럼 곽승재가 왜 계약 체결 현장에 안 왔는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판주 투자은행이 이번 계약에 끼어든 건 곽승재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민시후도 이 점을 못마땅해하며 신경 쓰고 있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을 달래길 바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 내가 곽승재를 생각하고 있다고 쳐.”고은서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고은서, 너!”민시후는 예상대로 화를 냈다.“왜 화를 내? 네가 먼저 얘기 꺼낸 거잖아.”고은서가 묻자 민시후는 말문이 막혔다.고은서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런 대답 듣기 싫으면서 왜 먼저 말을 꺼내는 거야? 말하고 나서 스스로 감당도 못 하면서 자업자득 아니야?”민시후는 고은서가 농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녀의 얼굴을 잡고 마구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민시후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은서야, 나 화난 거 아니야. 그냥 네가 곽승재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과거가 부러울 뿐이야.”‘그게 부러워할 만한 일인가?’고은서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과거는 많지만 아름다운 건 없었어.”고은서는 모든 복잡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털어내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생각하고 있던 건 곽승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마침 웨이터가 음식을 내오자 고은서가 다시 말했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먹자.”대화 이후 고은서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민시후는 고은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음식은 정교하고 맛있었고 강변 야경은 아름다웠다.두 사람은 와인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웨이터가 후식으로 디저트를 가져오자 고은서는 얼른 한입 베어 물었다.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맛이었다.“은서야, 나한테 할

  • 어게인, 비긴   제768화

    멀지 않은 곳에서 민시후는 제인 제약의 담당자와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송민아는 다시 참지 못하고 물었다.“며칠 전까지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더니 오늘은 자신만만하네. 며칠 전 있었던 일은 용서한 거야?”고은서가 답했다.“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민시후는 원래 누명을 썼던 거니까.”송민아는 그 말을 듣고 장난스레 물었다.“고은서, 민시후랑 만나지 몇 달도 안 됐으면서 벌써 그렇게 믿는 거야?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네. 예전 같았으면 오빠와 가까워지려는 여자들한테 사람을 보내 협박하거나 돈을 줘서 쫓아냈을 거야. 만약 그때 내가 그날처럼 자극적인 장면을 목격했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도 안 돼.”고은서는 송민아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약간 찌릿했다.송민아가 민시후에게 보였던 모습은 예전에 곽승재를 대하던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송민아, 너 정말 민시후를 많이 좋아하는 구나.”“야, 그 말 좀 이상하다? 예전엔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좋아한 거지 지금은 아니야. 나 싫다는 사람 나도 싫어.”송민아가 확신에 차 말했다.“맞아. 네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민시후 손해지.”고은서가 웃으며 동조했다.“뭐가 그렇게 재밌어?”민시후가 다가오며 사랑이 흘러넘치는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았다.송민아는 눈치껏 자리를 피했고 고은서는 농담 섞인 말투로 답했다.“송민아가 널 포기한 건 네 손해라고 얘기하고 있었어.”민시후는 즉각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또 그 얘기가 나오는 건데? 몇 번을 말해. 나는 민아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품은 적이 없다니까? 그리고 송민아가 나를 포기하든 말든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날 포기한다면 그건 정말 큰 손해일 것 같아.”민시후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농담을 받아치는 대신 말했다.“민시후, T 국에서 내가 너한테 밥 두 번 사기로 했던 거 기억나? 아직 한 번이 남았잖아. 오늘 채울까?”“기억력 좋네. 난 네가 벌써 잊었을 줄 알았지.”“제인 제약과 일 마무리되면 바로 출발할까?”“그렇게

  • 어게인, 비긴   제767화

    민시현은 본인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시후는 집안의 막내에요. 어머니가 생전에 특별히 귀여워하셨죠. 그 결과 시후는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민시현은 느긋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시후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세상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서 은서 씨가 이혼하지 않았음에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은서 씨 결혼에 문제를 일으켰죠. 그건 저희 가문 잘못입니다. 우리가 시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으니까요.”민시현은 민시후를 나무라는 듯 보였지만 고은서는 그 말속에 자신을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음을 느꼈다.결혼 생활 중 민시후와 얽히며 아이까지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와 이혼한 고은서의 행동은 다른 사람이 보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다행히 당시 두 사람의 기사는 빠르게 막았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는 않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은서 씨 명성이 시후 때문에 손상될 뻔했습니다.”고은서는 민시현의 말에서 기사를 막은 것에 그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민시후를 이용해 신속히 이혼하고 해외로 나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민시후와 함께 호텔에 가던 모습이 노출될 뻔했고 결국 아이도 잃고 말았다.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기에 고은서는 더 이상 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민시현 씨, 이전 일들은 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와 민시후는 언제나 떳떳했습니다. 민시후는 항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결코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요.”민시현은 미소를 띠며 믿는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은서 씨가 시후를 그렇게 감싸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은서 씨를 무시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고은서는 반박하지 못했다.지금까지 그녀는 민시후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는

  • 어게인, 비긴   제766화

    “고마워, 승준 씨.”...다음 날 고은서는 MQ에 들렀다.여시은이 맞춤 주문한 향수가 모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여시은은 직접 상품을 수령하고 잔금을 지불했다.그녀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며 고은서와 유성준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최근 MQ 업무량이 급증하여 유성준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고은서가 여시은과 함께 식사하러 나섰다.식사 자리에서 여시은은 집들이 파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고은서에게 사과했다.그녀는 자신이 고용한 가사도우미들은 모두 새로 채용된 사람들이며 그렇게 쉽게 매수당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은서는 이 일이 여시은과 무관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 여시은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굴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맞춤 향수를 제작하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붙잡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여시은은 집주인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 곁에서 있으며 자리를 지켰다.‘서로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닌데 여시은이 정말 나를 중요하게 여기나?’“은서 씨, 민시후 씨 언제 시간 되시는지 한번 봐주세요. 꼭 식사 자리를 마련해서 정중히 사과드리고 싶어요.”여시은이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사실 시은 씨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굳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그러나 여시은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아니에요. 저희 집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제가 책임져야죠.”고은서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그럼 민시후한테 물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좋아요. 연락 기다릴게요.”여시은과 식사를 마친 고은서가 ZY 그룹으로 향하는 길에 송민준에게서 연락이 왔다.고은서는 조금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송민준은 그녀에게 찻집에서 만나자고 하며 누군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그 말에 고은서는 곧 누가 그녀를 찾고 있는지 짐작했다.곽승재가 준 자료에 따르면 민시현은 송민준을 통해 그 여자를 찾았다고 했다.

  • 어게인, 비긴   제765화

    지난번에 이미 명확히 온승준의 마음을 거절했었기에 박지연은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런 말을 하지 마. 우리 사이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 당신이 나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좋아한다는 감정보다는 나한테 익숙해져서 그래. 다른 사람과 새롭게 맞춰가는 게 더 귀찮고 번거로울 테니까.”온승준은 본능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사실 박지연이 곁에 있는 게 익숙해져 다른 사람을 찾기 싫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게다가 박지연은 그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이혼 후 당신이 부적절한 행동을 많이 해서 나한테 많은 폐를 끼쳤어. 앞으로는 주의 좀 해줘. 당신 때문에 현석 씨가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해.”그 말을 들은 온승준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박지연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녀는 늘 상대방을 위해 모든 걸 배려하고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온승준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그 문제의 원인이 될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승준 씨, 나도 당신한테 사과할 게 있어.”박지연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예전에 당신한테 결혼을 제안했을 때 당신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먼저 물어봐야 했어. 유혜린 씨가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사실에 자극받아 나랑 급하게 결혼하는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그 결혼 하지 않았을 거야.”박지연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2년 넘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유혜린 씨도 돌아왔고 아직 당신한테 마음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행복하길 바라.”“그 소식에 자극받아서 너랑 결혼한 거 아니야.”온승준은 드디어 말할 기회를 찾았다.“당시 유 닥터랑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어. 유 닥터한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만약 L 국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유 닥터를 기억조차 못 했을 거야. 당신과 결혼한 건 정말로 당신을 좋아했기 때문이야. 당신의 밝음과 용기가 참 매력적이었어.”박지연은 그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사

  • 어게인, 비긴   제764화

    의논 끝에 이 임무는 온승준이 담당한 인턴에서 맡겨졌다.그녀는 온승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온승준은 오늘도 야근 중이었다.그는 사무실에서 진단서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는데 퇴근 후 쉬러 가야 했을 인턴이 그를 다시 찾아왔다.망설이며 말하려다 마는 표정을 하는 설민희를 보고 펜을 쥐고 있던 온승준이 물었다.“저한테 볼일이라도 있나요?”설민희는 헛기침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용감히 완수하기로 했다.그녀는 단톡방의 한 사진을 온승준에게 열어 보여주며 용기 내 말했다.“온 선생님, 외과 간호사님한테 들었는데 수간호사 박지연 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대요.”갑자기 들은 소식에 충격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사진을 보고 자극을 받은 건지 온승준 손에 들려있던 펜촉이 힘에 눌려 부러졌다.설민희는 숨을 죽이며 조금 전까지 평온하던 온승준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멍해진 모습에 눈치만 살폈다.온승준은 이미 넋이 나간 채 자신이 들은 사실과 본 사진을 부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설민희는 대충 답을 알겠다는 듯 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한편 박지연은 육현석과 사귀기로 했다는 사실을 고은서에게 알렸다.고은서는 몹시 놀랐지만 그보다 더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줬다.고은서와 잠시 장난을 주고받은 후 박지연은 전화를 끊었다.조금 전 육현석이 날아갈 듯이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인스타에 올릴 거라며 사진을 찍자고 고집부리던 행동을 떠올리자 박지연은 마음이 달콤해졌다.박지연은 사랑 앞에서는 항상 용감했다.그녀도 육현석에게 호감이 있었기에 용감히 그 마음에 응해보기로 했다.만약 서로 맞지 않으면 헤어지면 될 일이고 적어도 용기 내 함께 해 봤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었다.인생은 짧다.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자신을 괴롭힐 필요도 과거의 실패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잠시 생각을 하던 박지연은 육현석과 손을 맞잡을 사진을 꺼내 보며 이번엔 자신도 당당히 인스타에 공개하기로 했다.사진과 함께 올릴 멘트를 작성하던 중 옆에 있던 간호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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