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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이라는 죄로: Chapter 451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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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늦은 밤, 그린레이크.홀로 1층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유시아.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10시가 넘었음에도 임재욱은 돌아오지 않았다.심지어 전화 한 통도 없었다.허씨 아주머니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부엌에서 걸어 나왔다.우유를 테이블 위에 놓고 나지막이 입을 여는데.“아가씨, 인제 그만 올라가셔서 쉬세요.”“네... 고마워요...”유시아는 우유를 건네받고 한 모금 마시고는 덧붙였다.“아직 졸리지 않아서 그래요. 재욱 씨 오는 거 보고 자려고요.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재욱 씨 오면 제가 알아서 챙겨줄게요.”한사코 자기 뜻을 견지하는 유시아를 바라보며 허씨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 담요 하나를 가지고 내려왔다.유시아에게 담요를 건네주고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밤은 점점 깊어지고 텅 빈 거실은 유난히 쌀쌀했다.에어컨을 켜고 있음에도 한겨울의 추위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담요로 몸을 꼭 감싼 채 소파에 기대었다.시간이 흐를 수록 서서히 졸음도 밀려왔다.그렇게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그때 누군가가 얼굴에 뽀뽀를 하는 것처럼 간지러웠다.뒤로 살짝 피했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았다.그 사람이 유시아를 들어 안아 위층으로 향했다.유시아는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는데, 익숙한 그의 턱과 목젖이 보였다.자기도 모르게 두 팔로 남자의 목을 살포시 감싸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도 많이 늦었네요.”“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야근 좀 하고 왔어.”임재욱은 말하면서 침실로 들어와 그녀를 포근한 침대 위로 살포시 내려놓았다.이윽고 그 위로 확 덮쳐왔는데.“왜 아직 자지 않은 거야? 혼자서 밤새 드라마 보기로 한 거야?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유시아는 웃으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순간 갑자기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풍겨왔다.“소독수 냄새! 재욱 씨 몸에서 소독수 냄새가 진동해요.”순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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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유시아를 꼭 안고서 임재욱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했다.“내일 당장 혼인 신고하러 가자. 회사 일 마치는 대로 아주 보란 듯이 성대하게 결혼식도 올리고. 어때?”유시아는 겹겹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치하지만 진지하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약속해요.”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행동에 임재욱은 마냥 기쁘기만 하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살포시 걸었다.“약속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유시아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저는 절대 어기지 않을 자신 있어요.”“나도 마찬가지야.”말하면서 임재욱은 또 그녀의 손등에 뽀뽀했다.“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네가 나한테 프러포즈 할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오늘 밤, 잠 이루기는 틀린 것 같아. 내일 혼인 신고할 때 사진도 찍어야 할 건데, 우리 둘 다 다크서클 짙으면 어떡하지? 구청 직원분들한테 포토샵이라도 좀 해달라고 부탁해야겠어.”그러자 유시아는 고개를 들어 그의 턱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말했다.“재욱 씨는 어떤 모습이어도 멋있어요.”단 몇 마디 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마친 두 사람은 잠이 오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일찍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구청으로 달려갔다.뜨거운 여름은 연애하기 딱 좋은 계절인 것만 같았다.날이 뜨거운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달아오르니.일찍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청 앞에서 열 쌍이 넘는 커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다들 하나같이 서로에게 기댄 채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유시아는 임재욱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서서히 또 정신이 다른 데로 팔리기 시작했다.어젯밤 호텔 문 앞에서 정유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신서현에 대해서 또다시 언급했었던 정유라.‘신서현 씨는 이미 죽었는데...’‘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잖아... 근데 어떻게 재욱 씨 빼앗아 간다는 거지?’신서현 말고는 임재욱의 가슴을 흔들리게 할 여자가 없다.‘아니야, 정유라가 나한테 거짓말했을 거야.’‘구멍가게도 아니고 대우 그룹이 좀 커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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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유시아는 구청 밖에서 임재욱이 했던 ‘맹세’를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그 웃음 뒤에는 부러움도 깃들여 있다.역시나 그 어느 때라도 하느님은 임재욱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유시아에게는 지옥을 선물해 주었다.회가 거듭날수록 점점 더 잔인하고 끔찍한 지옥을.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지옥을. ...혼인 신고는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모든 절차를 끝내기까지 30분 정도밖에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구청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에는 혼인 신고서가 들어 있었다.어젯밤 잠은 설쳤으나 사진은 그나마 잘 나온 편이었다.커플 셔츠로 맞춰 입은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아닌 찬란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구석 자리에 구청의 낙인까지 제대로 박혀 있었다.또 한 번의 결혼으로 두 사람 모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채 레스토랑으로 가서 축배를 들기로 했다.한껏 즐기고 나서 임재욱은 그녀를 데리고 임씨 가문 고택으로 향했다.혼인 신고를 했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임태훈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면 외면할지 임재욱은 이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냥 모든 절차를 일일이 밟고 싶었다.고택 안은 쓸쓸해 보일 정도로 넓은 편이다.평소에 임태훈과 임청아 두 사람만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주인보다 하인이 몇 배나 더 된다.그러나 오늘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다.하인은 두 사람을 안쪽으로 모시고 다과를 내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어르신께서 아가씨랑 싸우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엄청 화가 난 상태세요.”임재욱은 그 말을 듣고서 눈살을 찌푸렸다.“뭐 때문에 싸운 건데요?”그가 알기로 임태훈은 유일한 손녀를 끔찍이 여겨 평소에 못된 소리 한번 하지 않았었다.임청아가 한서준 좋다고 기어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임태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성대하게 약혼식까지 준비해 주었다.이쯤에서 만족할 법도 한 임청아인데, 대체 무슨 일로 싸웠는지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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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 익숙해진 임재욱이기에 임태훈은 두 사람을 강제로 갈라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임재욱의 뜻대로 하게 놔두는 것이다.아니면 그 불만이 화로 돌아온 임청아를 공격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다소 의외인 임태훈의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고마움은 표시했다.그와 동시에 임태훈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약속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시아랑 행복하게 지내면서 조만간에 꼭 증손자 안겨드릴게요.”말하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유시아를 바라보았다.예쁘고 작은 유시아의 얼굴은 이미 화끈 달아올라 먹음직스럽게 익은 복숭아와 같았다.저녁이 다가오자, 임태훈은 두 사람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그래도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니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저녁 내내 임청아는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하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위층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임태훈은 임청아에게 음식을 좀 가져다주라며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고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멋쩍게 웃었다.“참, 저놈의 성질머리는 평생 고칠 수 없을 것 같아.”그러다가 임재욱과 유시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덧붙였다.“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좀 수고해 줘. 청아 잘 부탁한다. 오빠인 네가 많이 참아주고 그래. 성질만 좀 더러울 뿐이지 심성은 착한 아이니 많이 보살펴주고 그래.”왠지 모르게 이제 곧 숨을 거두게 될 사람이 남기는 유언과 같았다.인제 제법 연세도 있으시고 반년 사이에 병원에도 자주 오고서 그러한지 미리 하는 당부하는 것 같기도 했다.건강이 최우선이라고 일단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면 그 뒤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린다.자기보다는 훨씬 젊은 임재욱이라 젊은이에게 굴복하고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젓가락을 들고 있던 임재욱의 두 손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얼어붙었다.“네, 그렇게 할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임태훈은 그제야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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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는 임재욱을 바라보며 유시아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아뿔싸! 오해하고 말았어!’“그런 거 아니에요.”유시아는 힘껏 발버둥 치고 나서 나지막이 말했다.“그냥 그때 그 상처...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해서 그래요.”만약 유시아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임재욱은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자기 몸에 그녀가 남긴 흔적이 있다는 것을.상처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리고 수시로 임재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유시아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으며 무의식중에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소현우까지 죽이면서 그녀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고.임재욱은 단 한 번도 유시아를 탓하지 않았고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조차 없었다.임태훈이 알고 나서 일을 크게 벌리며 서서히 임재욱의 권력 밖으로 나간 것뿐이다.살짝 달아오른 유시아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임재욱은 웃었다.그녀의 손을 잡고서 아주 정확하게 그 상처 위에 올려 놓았다.“아직 있어. 여기에.”따뜻하고 매끈한 피부 위에 살짝 위로 튀어나온 옅은 상처...유시아는 손끝으로 그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많이 아팠었죠?”그때 하얀색 타일이 모두 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피를 흘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고통에 겨워 얼굴이 일그러졌음에도 임재욱은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칼을 가슴팍으로 찔러 버리지 못한 유시아처럼.“시아야,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임재욱은 그녀의 손을 도로 떼어내면서 꼭 끌어안았다.이마에 뽀뽀를 하면서 거듭 강조했는데.“다 지나갈 거야. 시아야, 믿어줘...”유시아는 그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다음날, 임재욱은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같이 아침을 먹었다.이윽고 임재욱은 출근하러 가고 유시아는 이채련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혼인 신고한 소식도 알릴 겸.유시아를 병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아침 회의가 있다면서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하고는 차를 돌렸다.바쁘다고 하는 그를 강제로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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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그래.”이채련은 유시아를 꼭 안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아야, 꼭 행복해야 해. 꼭 행복하도록 해.”병원에서 나온 유시아는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이채련 주치의 말에 따르면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많아야 2, 3개월이라고 했다.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 겨우 먹는다고 한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토해내고 있는 이채련은 지금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인제 더 이상 없고 진통제로 환자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하는 게 전부다.생명이 한계에 다 이르고 있으니, 유시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그중에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나마 건강한 몸을 소중히 잘 아끼는 것이다.적어도 유시아에게는 더 스케치 화실이 있으니 말이다.화실에 이르렀을 때 수업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안내 테스크 직원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시아쌤, 일찍 오셨네요?”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토실이 보려고 일찍 왔어요.”말하면서 그녀는 포장해 온 밀크티를 직원에게 건네며 덧붙였다.“자, 이건 오늘의 보너스예요.”안내 데스크 직원은 갑작스러운 밀크티에 감동이라도 한 모습을 보였다.“어머, 보너스도 있고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유시아는 웃으며 뜸을 들였다.“좋은 일이 있긴 한데, 조금 지나서 나중에 다시 알려줄게요.”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더 스케치 화실 직원들에게 선물을 돌릴 생각이다.위층으로 올라간 유시아는 먼저 재무 사무실로 가서 토실이를 보았다.새로 사 온 옷을 입히고 사료도 먹이고 기분이 한껏 좋아져 사진도 찍어 주었다.그렇게 토실이와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수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교한 학원들이 잇따라 화실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수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퇴근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임재욱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오늘 저녁에 손님과 식사 자리를 가져야 한다면서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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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시아쌤, 왜 그러세요?”강시호의 목소리에 유시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숙여 강시호의 커다란 두 눈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올렸다.“별거 아니야. 그냥 선생님 아는 분도 시호랑 같은 예운 별장에서 살고 있는 게 생각나서.”“그럼, 가시는 김에 그 친구분 만나러 가보는 것도 좋겠네요.”유시아는 천진난만한 강시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근데, 안 계셔.”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니.신서현의 영혼은 이미 천국으로 올라갔을 것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이 세상에 남겨 임재욱의 기억 속에 뿌리를 박았을 것이다.퇴근 시간이라 길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차들로 북적거렸다.그렇게 한참을 달려 택시는 마침내 별장 입구 앞에 세워졌고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유시아는 강시호를 데리고 차에서 내려 별장 입구에서 체크하고 바로 별장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문득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강시호의 집과 임재욱의 별장이 바로 잇따라 있다는 것이다.그 말인즉슨, 두 집은 이웃사촌이라는 것이다.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임재욱의 마이바흐가 별장 정원에 세워져 있었고 별장 안은 심지어 조명이 켜져 있었다.‘재욱 씨가 여기에 있어!’혼인 신고를 한지 이제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오후에 심지어 손님과 식사 자리를 가져야 한다며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곳으로 달려와 전 애인을 떠올리고 있다.유시아는 문 앞에 서서 별장 창문을 뚫고 나온 희미한 불빛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후회하고 있는 거야? 내가 싫은 거야? 그래서 또다시 신서현 씨를 찾아온 거야?’‘이럴 거면 내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매몰차게 거절하지 그랬어...’‘왜 혼인 신고까지 하고서 이렇게 날 속이는 거야...’‘왜 구청 앞에서 그런 맹세까지 하고서 날 아프게 하는 거야...’‘도대체 왜...’“시아쌤...”강시호는 유시아의 손을 잡고 살며시 흔들었다.“시아쌤, 왜 가다가 멈춰 선 거예요?”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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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임재욱을 굳게 믿고 지나간 모든 원한을 내려놓고 그와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지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아니, 어쩌면 임재욱의 인생에 있어서 유시아는 평생 조연밖에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자기의 처지가 하도 처참해서인지 유시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실소해 버렸다.‘역시나 하느님은 날 봐주려고 한 적이 없어.’‘도대체 얼마나 더 행복해지려고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 건지.’임재욱이 그녀에게 준 신혼 선물은 참으로 특수했다.그리고 문득 정유라가 해줬던 말도 떠올랐다.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여자라고 했던 깊은 뜻이 담겨 있던 그 말....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별장 출입문이 그제야 안에서 밖으로 열리기 시작했다.임재욱은 자기 차에 올랐고 습관대로 차 조명을 켰다.순간 눈부신 하얀 불빛에 유난히 가냘파 보이는 여인의 그림자가 비쳤다.‘유시아?’임재욱은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시아야...”유시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팔을 살며시 잡아당겼는데, 작은 손은 더없이 차가운 것이 온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다급한 마음에 다시 유시아의 이마를 만져 보았는데, 열이나 얼굴은 좀 뜨거웠다.“시아야, 네가 왜... 네가 왜 여기에 있어?”“나... 안 들어갔어요. 들어갈 자격이 없는 걸 알고 단 한 걸음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밖에서 재욱 씨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그를 향해 웃었다.“재욱 씨, 우리 집이 싫어요? 들어오기 그렇게 싫어요?”이때 별장 2층에서 그녀가 지냈던 침실 조명이 밝게 켜졌다.누군가가 안에서 커튼을 거두었고 잠옷을 입은 채 머리까지 풀어 헤쳤다.젊은 여자가 지금 창문 앞에 서서 조용히 유시아를 내려다보고 있다.“재욱 씨, 왜 집에 오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 결혼했어요. 결혼하고 우리 둘만이 집이 생겼는데, 왜 오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이 시간까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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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시아야.”임재욱은 그녀의 어깨를 꼭 잡았다.“이제 막 집에 가려고 했었어...”어두운 불빛 아래서 유시아는 참담하게 웃었다.“재욱 씨, 여기가 재욱 씨 집이잖아요. 아니에요?”그가 사랑하는 신서현이 이곳에 있으므로 그의 마음도 이곳에 있는 격이다.“난 단 한 번도 널 버리려고 한 적이 없어. 시아야, 제발 날 좀 믿어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시연이가 자기 언니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이곳에서 좀 지내겠다고 해서 그런 거야. 신씨 가문 사람들을 내가 챙기지 않으면 다들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야.”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유시아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할 예정이었다.“신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소현우 어머니까지 내가 챙기고 있잖아. 가장 좋은 병원으로 모셔다드리고 가장 훌륭한 의사까지 안배해 드리고 가장 좋은 약도 써 드리고 있잖아...”“어머님에 대해서 내가 언제 재욱 씨 속인 적 있어요?”반문하면서 유시아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그의 옷깃을 잡았다.눈물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흘리기 시작했다.“어머님께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재욱 씨가 나한테 한 일은 도가 지나치잖아요. 남운대에서 돌아온 뒤로 바보처럼 재욱 씨의 모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너무 아프고 비참해요. 만약 엉겁결에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렇게 속일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난 여전히 바보처럼 ‘조심해서 일찍 들어와요’라고 하겠죠?”임재욱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한참 동안 지그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널 속인 건 널 위해서 그런 거야. 그 사람들한테 영향받지 말라고.”신서현, 이 이름 석 자는 유시아에게 있어서 악몽이자 벗어날 수 없는 그늘이다.만약 가능하다면 임재욱은 그녀가 평생 이 이름을 떠올리지 말았으면 한다.“그렇군요. 고마워요.”유시아는 말을 마치고 손을 내밀어 차 문을 열었다.차가운 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자, 임재욱은 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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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역시나 운명은 두 사람과 아주 큰 장난을 쓰고 있었다.믿음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세워지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어렵게 세워진 믿음은 와르르 무너지기 여간 쉽지 않다.적어도 지금으로서 유시아는 다시 그를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임재욱은 침대 머리에 가만히 기대어 서서히 초점을 흩트렸다.보고 있는 것은 없으나 마음속은 꽉 채워진 채, 때론 또 엄청 텅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유시아가 잠을 설칠까 봐 임재욱은 홈닥터에게 수면제 성분이 들어가 있는 약도 좀 첨부해 달라고 부탁했다.하여 유시아는 밤새 아주 잠을 깊이 잤다.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어느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밤새 꿈도 꾸지 않고 푹 잔 것이 컨디션도 제법 좋아진 것만 같았다.고개를 돌려보니 자기를 마주한 채 자는 임재욱이 보였다.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임재욱의 얼굴에 비치자, 그의 이목구비는 더더욱 또렷하게 보였고 천금으로 살 수 없는 예술품과 같았다.유시아의 허리를 꼭 안고 있는 그는 마치 그녀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손을 내밀어 그의 팔을 떼려고 했으나 결국 인기척에 그가 깨나고 말았다.“자기야...”눈을 천천히 뜨고 잠결에 유시아를 부르며 이마에 뽀뽀까지 했다.“잘 잤어?”‘자기야’라는 호칭에 유시아는 순간 당황했다.순간 유시아는 어젯밤에 있었던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했고 가능하다면 기억이 삭제되었으면 했다.그렇게라도 계속 자신을 속여 이 남자의 부드러움에 몸을 푹 잠기고 싶었다.하지만 기억은 생생하고 잊히지 않았다.어젯밤의 기만이 실마리가 되어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불쾌함을 일일이 끄집어냈다.“왜 그래?”임재욱은 말하면서 조금 더 다가가 턱으로 그녀의 이마를 비볐다.“열은 다행히 내렸네. 자기야, 좀 어때?”“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말함과 동시에 유시아는 그의 팔을 허리에서 떼어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수도를 켜자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했다.한 손으로 세면대를 짚은 채 정신을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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