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131 - 챕터 140
693 챕터
제131화 관심해야 할 상대는 내가 아니야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바깥이 조용해지자, 배인호를 살며시 밀어냈다.“베란다 문이 안 닫혀요. 좀 닫아줘 봐요.”배인호가 “응”하고 대답하더니 그쪽으로 가서 검사했다.비는 계속 크게 내렸고 바람도 멈추지 않았다. 배인호가 베란다 문을 한번 쭉 검사하고 문을 닫았을 때는 이미 옷과 머리가 다 젖어 있었다.문이 닫히자, 바깥의 비바람 소리가 많이 작아진 것 같았다. 나는 배인호에게 마른 수건 하나를 건네줬다.“고마워요. 이걸로 머리 좀 닦아요.”배인호가 수건을 건네받더니 아무렇게나 머리를 닦았다. 그의 셔츠는 대부분 오른쪽이 젖어 있었다. 젖은 셔츠는 그의 어깨부터 등 허리까지 찰싹 붙어 있어 근육 라인이 살짝 보였고 머리를 닦을 때마다 근육이 따라서 움직였다.나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배인호가 머리를 다 닦으면 갈 줄 알았다.“혼자 살면서 왜 이 집을 선택한 거야?”배인호가 뜬금없이 물었다.“회사랑도 가깝고 큰아버지 집이랑도 가까워서요.”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근데 여기 안전도 그렇고 주변 시설도 별로인 거 같은데.”배인호는 이곳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그럼, 인호 씨는 왜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요?”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물었다.“너랑 똑같은 이유로, 회사가 가까워서.”배인호가 멈칫하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대화를 시작했으니 나는 이왕이면 내가 알고 싶은 일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다.“이쪽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주기가 얼마나 돼요? 언제 돌아갈 거예요?”나는 소파에 앉아 질문을 던졌다.배인호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담담하게 답했다.“아직 몰라. 내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지? 걱정하지 마. 껌딱지처럼 붙어있지는 않을 테니까.”나는 저도 모르게 한 마디 대꾸했다.“전에 나한테 껌딱지 같다고 했었는데.”분위기가 순간 껄끄러워지기 시작했고 공기도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예전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감정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배인호의 시선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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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서란과 사귀는 거 아니에요?
근무 시간이라 그런지 민예솔은 더 이상 나와 입씨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오후 내내 좋지 않았다.퇴근 후 차를 운전해 회사를 나가려는데 눈에 익은 빨간색 BMW가 보였다. 차에서 내린 서란은 옷차림이 꽤 밝았고 머리에는 도트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스타일리시했다.‘퇴사했는데 회사는 왜 왔지?’마음속에 의문이 들긴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내가 사는 단지로 돌아와 여느 때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고 하는 그때 누군가가 재빨리 잡아 세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천천히 열렸고 배인호가 차가운 안색으로 들어왔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본 것 외에 더 이상의 시선 교류는 없었다.배인호의 손에 식자재가 들려있었다. 식자재를 사 들고 오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약간은 가정적인 좋은 남자로 보이기까지 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몇 초 뒤 갑자기 세게 흔들렸다. 나는 황급히 손잡이를 잡아 평형을 잡았지만, 심장이 심하게 떨려왔다.“엘리베이터 고장 났나 보네.”배인호가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장 났다고요?”어이가 없었다.“서비스 센터 콜 해봐요.”이내 서비스 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에 조금 문제가 생겨 수리 인원을 연락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직원의 말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는 침묵에 잠겼다. 나와 배인호는 서로 할 말이 없었다.이 침묵은 나의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에 깨졌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이미 밥을 해서 먹었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요즘 내 배 속에서 꼬물꼬물하는 새로운 생명체 때문인지 자주 배가 고팠다.배인호가 나를 힐끔 쳐다봤고 나는 민망해서 머리를 돌렸다.“꼬르륵~”배가 다시 항의를 해왔다.“많이 배고파?”배인호가 허리를 굽히고는 바닥에 놓인 봉지를 열었다. 안에는 식자재 외에도 사과와 식빵이 들어 있었다. 배인호가 식빵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먼저 좀 먹어.”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빵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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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진짜 헌터는 서란이었어
저녁, 나는 배인호가 했던 말을 네 사람이 있는 채팅방에 보냈다.정아랑 애들은 명탐정이 되어 분석해 주었다.정아:「지영아, 배인호가 다른 사람한테 서란 연락처 알아내는 거 직접 봤다며? 그럼, 배인호가 먼저 쫓아다닌 거지.」민정:「그건 모르지. 연락처를 물었다고 해서 꼭 쫓아다닌다는 건 아니잖아. 배인호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건 맞지만 지영이를 속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정아:「젠장, 이 두 사람 진짜 뭐 하자는 거야. 머리 아프네.」세희:「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데, 서란은 단순한 캐릭터는 아니야...」정아:「그러니까! 보기에 그렇게 단순해 보이는 애들이 속이 더 구리다니까. 지영아 이미 이혼도 했겠다 더 이상 신경 쓰지 마. 앞으로는 서란이랑 배인호 만나지 않은 게 좋을 것 같아. 너랑 사주가 안 맞는 거 같아!」애들이 분석하는 걸 보며 머릿속에 이우범을 떠올렸다. 혹시 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우범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우범은 바로 받았다.“언제 시간 돼요? 물어볼 게 있어요.”내가 물었다.“지금요. 만나서 얘기할래요?”이우범이 시간 나면 지금 만나자고 했다.“그래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우범 씨는 이쪽으로 오는 게 불편하잖아요.”나는 다시 차키를 들었다.“어디예요?”반 시간 뒤, 나와 이우범은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마음속에 가득 찬 의문을 이우범과 같이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우범이 바로 대답해 주어 내 의혹을 풀어줬으면 싶었다.“우범 씨, 혹시 인호 씨가 얘기한 적 있나요? 처음에 서란 어떻게 쫓아다닌 건지?”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왜요?”이우범의 눈빛이 복잡해졌다.“갑자기 이 일은 왜 또 묻는 거예요?”나는 머리를 숙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냥 궁금해서요. 인호 씨가 얘기한 적 있어요?”이우범이 잠시 고민하더니 머리를 흔들었다.“자세히는 말한 적 없어.”이우범도 잘 모르는 듯했다. 내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를 떠보기 시작했다.“인호가 무슨 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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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밥을 챙겨주다니
“그래요, 갑시다.”내가 만나자고 했으니 데려다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이우범은 현재 병원에서 마련해준 기숙사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에둘러 가다 보니 반 시간은 더 걸렸다.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길에서 둘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내 기분도 별로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아파트 밑에 도착했지만, 그는 바로 올라가지 않았고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지영 씨, 만약 배인호가 당신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다시 받아줄 거예요?”이 질문은 배인호가 했던 질문과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아니요. 이미 받은 상처가 많아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아플 거예요.”이우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건 맞아요. 근데 만약 다 오해였다면 그래서 지영 씨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나는 응원할 거예요.”“응원한다고요?”그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내가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응원한다고?’이우범이 웃으며 말했다.“네. 근데 그전까지는 계속 쫓아다닐 거예요. 지영 씨가 자기 마음 확인할 때까지요.”이렇게 말하고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창문 너머로 이우범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조금 멍하니 있었다.‘이우범이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인가?’저번 생에 이우범은 서란을 위해서라면 배인호한테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0, 30년 되는 우정도 사라졌지만 전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나는 서란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혈투를 벌이는 건 원하지 않았다.오늘 밤도 머리가 복잡했고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튿날 휴가를 냈다. 이대로는 도저히 출근이 어려웠다.허성재는 이런 면에서 나한테 무척 관대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성장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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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내 앞에서 연기 좀 그만해
목 안이 한번 움직이더니 위에서 뭔가가 위로 솟구쳤고 나는 기를 쓰며 참았다.배인호는 내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자 나를 불렀다.“와서 밥 먹어. 배 안고파?”나는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나는 최대한 소리를 낮추고 변기를 내리는 소리로 구역질 소리를 감추려 하니 시원하게 토하지도 못하고 너무 괴로웠다.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배인호가 바로 문 앞에 서 있었다.“변태예요? 화장실까지 따라다니게?”켕기는 게 있는 나는 큰소리로 배인호를 나무랐다.배인호의 얼굴이 굳더니 차갑게 말했다.“가서 밥 먹어. 난 이만 가볼게.”그가 빨리 가기만을 기다렸던 터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인호가 집에서 나가고 나는 재빨리 그 카레 생선 요리를 던져버렸다. 나머지 요리는 다 내 입에 잘 맞았고 순식간에 다 비워버렸다. 식사를 마치고는 도시락을 정리했고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사랑의 쿠키? 쯧쯧, 배인호가 감동하겠네.”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머리를 돌렸더니 서란과 유정이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서란의 손에는 예쁜 박스가 들려져 있었다. 디저트를 담는 접시 같았다.유정이 서란을 칭찬하다가 나를 보고는 입을 닫았다.서란의 표정도 놀란 듯했다. 여기서 나를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듯한 표정이었다. 배인호도 여기 살고 있으니 말이다.나는 무표정으로 그 두 사람을 한번 쳐다보고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서란도 잠깐 망설이더니 따라서 들어왔다. 유정은 나를 한번 흘깃 째려보았고 서란의 표정은 복잡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곧 배인호에게 성가신 일이 일어날 것이다.“재수 없어. 왜 저 여자도 여기 사는 거야?”유정이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서란이 나를 한번 흘끔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엘리베이터가 내가 사는 층에 도착하니 서란의 안색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안 좋았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멍해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유정이 성질을 냈다.“젠장.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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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치킨 한 마리 뺏기
내가 먼저 영상통화를 걸었고 기선우는 빨리 받았다.몇 달 사이에 해맑기만 하던 남자애가 성숙해진 듯 보였다. 머리는 짧게 잘랐고 회색 때 탄 재킷을 입고 있었다.선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누나, 막 퇴근해서 옷이 좀 더러워요. 인턴 기간이라 매일 공사장에서 인부들이랑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이럴 수밖에 없네요. 꺼리지 마세요.”“꺼릴 게 뭐가 있어?”나는 재빨리 대답했다.“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네. 깔끔하고 보기 좋다.”“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것보다 머리가 길면 일할 때 불편해서요.”기선우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일 갓 시작했을 때 옷차림이 일하러 온 것 같지 않다고 놀렸었거든요.”기선우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이것저것 말하다가 그가 물었다.“누나, 언제 귀국해요? 월급 나오면 조금은 집에 보내고 조금은 누나랑 밥 먹으려고 남겨뒀거든요. 아니면 작은 선물이라도 해드리고 싶어서요. 아직 너무 비싼 건 못 사드려요.”“아니야. 네가 번 돈은 일단 모아 둬. 가족들 쓸 수도 있고 결혼 때 보탤 수도 있는데 일단은 허투루 쓰지 말고 모아.”내심 감동스러우면서도 미안했다.“매달 조금씩 모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인턴 기간이라 얼마 안 되지만.”기선우가 대답했다.“어느 회사서 일해?”내가 물었다.“작은 부동산 회사에서 일해요. 아직은 공사장 뛰고 있지만 앞으로 조금씩 승진해야죠.”기선우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는 늘 낙천적이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의 이런 마음가짐이 좋았다.최근에 귀국한다 해도 아마 4월쯤일 것이고 곧이었다. 나는 기선우와 귀국하면 같이 밥 먹자고 약속을 잡았고 서란에 대해서도 직접 보고 물어보려고 했다.기선우는 많이 기뻐하는 듯 보였고 말투도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네! 그래요! 기다릴게요!”“그래, 그때 보자.”내가 부드럽게 대답했다.전화를 끊고는 다시 집을 나섰다. 낮에 너무 오래 자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아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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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가는 곳마다 마주치다
“배가 부르기도 하고 오는 길에 유기견 한 마리가 있길래 치킨 사서 주려고 했는데 너도 먹고 싶다니 내가 살게.”내 웃음에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서란의 얼굴은 이미 붉게 타올랐다.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눈도 빨개졌다. 서란은 입술을 깨물기 참으로 좋아했다.“허지영!”배인호가 언짢은 듯 나를 불렀다. 내 말이 듣기 거북한 건 사실이었다.유정이 큰 소리로 말했다.“왜 서란을 개라고 욕해?!”내가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서란이라고 한 적 없어. 근데 너 굉장히 총명하다.”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먹방을 하며 좋아졌던 기분을 이 사람들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길 임신하면 기분이 좋아야 성격이 좋은 애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잘 먹고 잘 마셨으니, 집으로 가서 씻고 자려고 하는데 이우범이 문자를 보내왔다.「아직도 치킨 먹고 싶어요? 내가 사 갈게요.」이우범은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나:「아니에요. 아까 배불리 먹었어요. 고마워요!」이우범은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 제때 출근했다.곧 연휴라 회사에 연휴 공지가 떴다. 허성재는 연휴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회사 내 모든 사람에게 3일의 휴가를 주었다.큰아버지도 이번에 한국에서 가족 행사가 있어서 귀국할 예정이라 같이 가기로 했다.휴가 전날 퇴근하자마자 나는 짐을 싸고 큰아버지와 공항으로 향했고 밤 비행기로 귀국했다.몇 시간의 비행을 거쳐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륙 전 이 기사한테 연락을 해두었다. 이 기사는 아직 아빠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이 기사는 공항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큰아버지가 나오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잽싸게 내 손에 들린 짐을 받았다.“사모님.”“이제는 아가씨라고 불러요.”내가 웃으며 말했다.이 기사는 나와 배인호가 결혼한 뒤에 고용한 기사라 나를 계속 “사모님”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은 배인호와 이혼했으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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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말할 수 없는 고충
배인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현명함이라면 서란의 일에서 이렇게 흐리멍덩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다.나한테 시간을 주면 서란을 정리하겠다고 하고서는 계속 흐지부지 넘기려 했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일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모르는 일도 있다고.”배인호의 얼굴에 먹구름이 한 층 끼어 있었다. 마치 풀리지 않은 실타래를 쥐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았다.“그럼, 그게 뭔지 알려줘요!”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커졌다.“알려주면 오해가 다 풀리는 거 아니에요?”배인호의 입을 뗐다가 다시 닫더니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차갑게 웃고는 말했다.“허, 인호 씨, 서란을 정리한다고 전에 나한테 말했던 게 이렇게 정리하는 거였어요?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뒤로 서란이 먼저 연락한 거 나한테도 그렇고 외부에도 알린 적 없어요. 서란이 상처받을까 봐 불륜이라는 죄명을 혼자서 다 떠안겠다는 거잖아요.”“당신이 먼저 서란에게 반해서 이성을 잃고 억지로라도 가지려고 잘 만나고 있는 사람한테 헤어지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내가 오해하더라도 당신은 괜찮았던 거죠?”내가 계속 몰아붙였다.“그러고 이혼까지 했는데 왜 다시 못살게 구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진짜 내가 알던 그 배인호 맞아요?”나는 가끔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내가 환생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배인호에게 빙의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까딱하면 그는 배인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점령당했을 수도 있다.배인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나는 그의 턱선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란의 그 가식으로 뒤덮인 얼굴을 보면서 바비큐를 먹자니 너무 역겨웠다.손을 닦고 가려는데 서란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서란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와 배인호를 번갈아 훑어보았다.“지영 언니, 오늘 일 인호 씨는 모르는 일이에요. 제가 오자고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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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살인자로 몰아가다
집에 돌아와 정아의 전화를 받았고 최신 정보를 가져다주었다.서란이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왜 입원했는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인호 씨는 병원에 같이 있고?”“맞아. 배인호가 세컨드 병원 데려다줬다 그러던데.”정아의 추측이 시작됐다.“어린 나이에 갑자기 입원은 왜?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내 눈까풀이 한번 세게 뛰었다. 내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말이다. 배인호가 전에 나한테 한 말 대로라면 아직 사귀기 전이기에 서란이 임신할 리가 없었다.“몰라. 알아서 하라 그래.”내가 대답했다.“맞아. 신경 쓰지 말자. 우리만 잘 지내면 돼.”정아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통화가 끝나고 생각이 붕 뜨는 느낌이었고 눈이 계속 떨리기 시작했다. 자꾸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나와 큰아버지는 내일 오후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성가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저녁이 되어 기선우가 문자를 보내왔다.「누나, 저 가족 모임 있어서 고향에 내려왔어요. 오늘 오후 차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내일 점심 같이 먹을까요?」나:「그래. 조심히 와.」다음 날 점심 나는 기선우를 만났다. 손에 들린 짐으로 봐서는 집에 들를 새도 없이 차에서 내려 바로 이쪽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우리는 근처 쇼핑몰로 향해 식당을 찾았다. 기선우의 말도 점점 많아졌고 내가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도 물었다.“선우야, 서란도 싱가포르에서 유학하는 거 알고 있어?”내가 갑자기 서란 얘기를 꺼냈다.기선우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친구한테 들어서 알아요. 하지만 자세히는 몰라요. 거의 연락을 안 해서.”“그래. 인호 씨가 돈 대주고 있거든.”나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내가 전해 들은 얘기가 있는데 먼저 연락한 건 배인호가 먼저 서란을 연락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서란이 먼저 연락했다던데, 알고 있었어?”내가 한 얘기를 듣더니 배인호의 안색이 살짝 변했고 눈빛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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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쓰러지다
무거운 마음으로 허성재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아 퇴근 후 바로 회사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이우범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우범 씨가 웬일로?”내가 의아해서 물었다.“서란 심장병 때문에 입원한 거 알고 있어요?”이우범이 되려 나한테 물었다.“네, 근데 자세히는 몰라요.”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잘 알아요. 올라가서 얘기해요.”그가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이우범을 끌고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여는데 맞은편 문이 열렸다. 우지훈이 쓰레기봉투를 들고나오다가 나와 이우범을 보고는 티 나게 멈칫했다.“우범아, 너 지영 씨랑...”우지훈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지영 씨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이우범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도 우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우범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소파에 앉자, 이우범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란이 현재 입원해 있는 병원, 같은 의사 친구가 그 병원 심장외과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서란 얘기를 하더라고.”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서란이 선천성 심장병이 있는데 심장 이식이 필요하대.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조금 안정되면 독일에 있는 병원에 가서 장기 이식받을 수도 있고 인공 심장 선택할 수도 있대.”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가짜 같았다.서란이 갑자기 이렇게 심한 심장병에 걸리다니, 배인호의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게 이건가? 아닐 것이다. 서란의 심장병이 배인호 때문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면 그는 진짜 서란을 많이 사랑해서 무슨 일 생길까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다.순간 눈앞이 까매지면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눈이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했고 이우범의 목소리도 멀리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지영 씨, 괜찮아요?”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임신한 지 14주 차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요. HCG 수치도 낮고 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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