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르기도 하고 오는 길에 유기견 한 마리가 있길래 치킨 사서 주려고 했는데 너도 먹고 싶다니 내가 살게.”내 웃음에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서란의 얼굴은 이미 붉게 타올랐다.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눈도 빨개졌다. 서란은 입술을 깨물기 참으로 좋아했다.“허지영!”배인호가 언짢은 듯 나를 불렀다. 내 말이 듣기 거북한 건 사실이었다.유정이 큰 소리로 말했다.“왜 서란을 개라고 욕해?!”내가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서란이라고 한 적 없어. 근데 너 굉장히 총명하다.”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먹방을 하며 좋아졌던 기분을 이 사람들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길 임신하면 기분이 좋아야 성격이 좋은 애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잘 먹고 잘 마셨으니, 집으로 가서 씻고 자려고 하는데 이우범이 문자를 보내왔다.「아직도 치킨 먹고 싶어요? 내가 사 갈게요.」이우범은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나:「아니에요. 아까 배불리 먹었어요. 고마워요!」이우범은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 제때 출근했다.곧 연휴라 회사에 연휴 공지가 떴다. 허성재는 연휴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회사 내 모든 사람에게 3일의 휴가를 주었다.큰아버지도 이번에 한국에서 가족 행사가 있어서 귀국할 예정이라 같이 가기로 했다.휴가 전날 퇴근하자마자 나는 짐을 싸고 큰아버지와 공항으로 향했고 밤 비행기로 귀국했다.몇 시간의 비행을 거쳐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륙 전 이 기사한테 연락을 해두었다. 이 기사는 아직 아빠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이 기사는 공항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큰아버지가 나오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잽싸게 내 손에 들린 짐을 받았다.“사모님.”“이제는 아가씨라고 불러요.”내가 웃으며 말했다.이 기사는 나와 배인호가 결혼한 뒤에 고용한 기사라 나를 계속 “사모님”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은 배인호와 이혼했으니 이
배인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현명함이라면 서란의 일에서 이렇게 흐리멍덩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다.나한테 시간을 주면 서란을 정리하겠다고 하고서는 계속 흐지부지 넘기려 했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일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모르는 일도 있다고.”배인호의 얼굴에 먹구름이 한 층 끼어 있었다. 마치 풀리지 않은 실타래를 쥐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았다.“그럼, 그게 뭔지 알려줘요!”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커졌다.“알려주면 오해가 다 풀리는 거 아니에요?”배인호의 입을 뗐다가 다시 닫더니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차갑게 웃고는 말했다.“허, 인호 씨, 서란을 정리한다고 전에 나한테 말했던 게 이렇게 정리하는 거였어요?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뒤로 서란이 먼저 연락한 거 나한테도 그렇고 외부에도 알린 적 없어요. 서란이 상처받을까 봐 불륜이라는 죄명을 혼자서 다 떠안겠다는 거잖아요.”“당신이 먼저 서란에게 반해서 이성을 잃고 억지로라도 가지려고 잘 만나고 있는 사람한테 헤어지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내가 오해하더라도 당신은 괜찮았던 거죠?”내가 계속 몰아붙였다.“그러고 이혼까지 했는데 왜 다시 못살게 구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진짜 내가 알던 그 배인호 맞아요?”나는 가끔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내가 환생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배인호에게 빙의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까딱하면 그는 배인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점령당했을 수도 있다.배인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나는 그의 턱선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란의 그 가식으로 뒤덮인 얼굴을 보면서 바비큐를 먹자니 너무 역겨웠다.손을 닦고 가려는데 서란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서란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와 배인호를 번갈아 훑어보았다.“지영 언니, 오늘 일 인호 씨는 모르는 일이에요. 제가 오자고 한 거예요
집에 돌아와 정아의 전화를 받았고 최신 정보를 가져다주었다.서란이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왜 입원했는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인호 씨는 병원에 같이 있고?”“맞아. 배인호가 세컨드 병원 데려다줬다 그러던데.”정아의 추측이 시작됐다.“어린 나이에 갑자기 입원은 왜?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내 눈까풀이 한번 세게 뛰었다. 내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말이다. 배인호가 전에 나한테 한 말 대로라면 아직 사귀기 전이기에 서란이 임신할 리가 없었다.“몰라. 알아서 하라 그래.”내가 대답했다.“맞아. 신경 쓰지 말자. 우리만 잘 지내면 돼.”정아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통화가 끝나고 생각이 붕 뜨는 느낌이었고 눈이 계속 떨리기 시작했다. 자꾸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나와 큰아버지는 내일 오후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성가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저녁이 되어 기선우가 문자를 보내왔다.「누나, 저 가족 모임 있어서 고향에 내려왔어요. 오늘 오후 차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내일 점심 같이 먹을까요?」나:「그래. 조심히 와.」다음 날 점심 나는 기선우를 만났다. 손에 들린 짐으로 봐서는 집에 들를 새도 없이 차에서 내려 바로 이쪽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우리는 근처 쇼핑몰로 향해 식당을 찾았다. 기선우의 말도 점점 많아졌고 내가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도 물었다.“선우야, 서란도 싱가포르에서 유학하는 거 알고 있어?”내가 갑자기 서란 얘기를 꺼냈다.기선우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친구한테 들어서 알아요. 하지만 자세히는 몰라요. 거의 연락을 안 해서.”“그래. 인호 씨가 돈 대주고 있거든.”나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내가 전해 들은 얘기가 있는데 먼저 연락한 건 배인호가 먼저 서란을 연락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서란이 먼저 연락했다던데, 알고 있었어?”내가 한 얘기를 듣더니 배인호의 안색이 살짝 변했고 눈빛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
무거운 마음으로 허성재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아 퇴근 후 바로 회사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이우범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우범 씨가 웬일로?”내가 의아해서 물었다.“서란 심장병 때문에 입원한 거 알고 있어요?”이우범이 되려 나한테 물었다.“네, 근데 자세히는 몰라요.”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잘 알아요. 올라가서 얘기해요.”그가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이우범을 끌고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여는데 맞은편 문이 열렸다. 우지훈이 쓰레기봉투를 들고나오다가 나와 이우범을 보고는 티 나게 멈칫했다.“우범아, 너 지영 씨랑...”우지훈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지영 씨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이우범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도 우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우범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소파에 앉자, 이우범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란이 현재 입원해 있는 병원, 같은 의사 친구가 그 병원 심장외과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서란 얘기를 하더라고.”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서란이 선천성 심장병이 있는데 심장 이식이 필요하대.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조금 안정되면 독일에 있는 병원에 가서 장기 이식받을 수도 있고 인공 심장 선택할 수도 있대.”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가짜 같았다.서란이 갑자기 이렇게 심한 심장병에 걸리다니, 배인호의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게 이건가? 아닐 것이다. 서란의 심장병이 배인호 때문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면 그는 진짜 서란을 많이 사랑해서 무슨 일 생길까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다.순간 눈앞이 까매지면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눈이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했고 이우범의 목소리도 멀리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지영 씨, 괜찮아요?”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임신한 지 14주 차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요. HCG 수치도 낮고 태아
“별거 아니에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가 봐요. 얘기들 나누세요.”나는 태연하게 답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이어서 저녁 준비를 했고, 입맛이 없는지라 아주 간단하게 저녁상을 차렸다. 이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 다가가 인터폰을 보니 우지훈이었다. 만약 서란과 유정이었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우지훈이라 그냥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지영씨, 저희 쪽에 와서 같이 먹지 않을래요?”문을 여니 우지훈이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저도 이미 먹기 시작했거든요. 고마워요.”나는 정중히 그를 거절했다.“같이 먹어요. 원래는 인호가 저녁에 올 줄 알고 요리를 많이 준비했는데, 일 때문에 못 온다네요. 그 많은 요리를 낭비하기도 아깝고.”우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나는 낭비 좀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아니면——”“지훈 오빠, 저 여자는 왜 불러요? 그냥 우리끼리 먹어요, 괜히 밥맛 떨어지네.”유정이가 문 앞에 나타나더니, 경멸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참고, 담담하게 이 못난 광대를 바라봤다.“유정아, 지영 언니 몸도 안 좋은데 그렇게 말하지 마.”서란이 유정을 막아 나서며 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유정은 못마땅해하며 말했다.“란아, 저 여자 생각해서 말하지 마. 몸이 안 좋으면 뭐? 심장 안 좋은 것보다 더 심각하게? 저 여자가 너 화나게 해서 입원도 시켰는데, 저 여자 편들어서 뭐 해!”유정의 말을 들은 우지훈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서란의 심장병 발작이 지영씨랑 뭔 상관이야?”“당연히 상관있죠. 저 여자가 란이를 자극해서 심장 발작을 일으킨 건데 왜 상관이 없어요? 란이 평소에는 침착하고 화도 잘 안 내요. 그런 애가 갑자기 이렇게 될 수는 없죠.”유정은 흥분해서 말했다.나를 바라보던 우지훈의 표정은 의문 가득함에서 약간의 비난 섞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몇 마디 말로 나에 대한 인상이 금
“언니, 이젠 알겠죠? 배인호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란 걸요.”그녀의 얼굴은 더는 창백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운 넘치는 모습이었다.“이번에도 저 걱정한다고 바로 독일에 수술 일정 잡으러 갔어요. 당연히 모든 비용은 인호 씨가 지급하는 거고, 저와 같이 갈 거예요.”“그래서?”나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랑하는 그녀가 이해 가지 않았다.만약 배인호가 이혼을 제안했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 상황이었다면, 이 자랑이 나한테 먹힐 건데,현실은 내가 배인호를 찼고, 그가 누구와 함께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런데 서란은 왜 아직도 나한테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걸까?“그래서 언니가 제 행복을 깰 수 없게 만들 거예요.”서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고, 그녀는 약병을 올려다보았다.“지금, 태아 보호 중이에요?”그 순간 나는 강한 불안함을 느꼈다. 때마침 내 간병인은 과일 사러 나갔고, 이우범도 퇴근 후에야 나를 보러 올 수 있었다.전에는 내 임신 사실을 서란이 알고 있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보고 묻는 듯했다. 솔직히 이런 거 알아내는 것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나는 두말없이 손을 뻗어 벨을 누르려 했다.서란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내 손을 내쳤고,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었다.그다음 나는 그녀에게 밀려 침대에서 떨어졌고,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하반신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던 아이, 못 지키게 됐네요!”서란은 바닥에 웅크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뒤이어 유정이가 상황을 확인하러 문을 열고 들어왔고, 서란은 이미 휠체어에 다시 앉은 채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유정아, 지영 언니가 갑자기 침대에 떨어졌어. 빨리 의사 선생님 좀 불러줘. 나, 나 심장이 너무 아파...”“뭐? 또 아프다고? 얼른 가서 의사 선생님 부를게!”유정이는 아예 나는 신경도 안 썼고, 서란을 데리고 의
나는 아직 내 친구들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노성민한테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이우범에게 당부했으며, 그녀들도 아직 이 일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게다가 정아는 아직 임신 중이므로, 나는 그녀가 큰 충격을 받는 걸 원치 않았다.나와 이우범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간호사가 들어와 링거를 놔주었고, 문이 열리면서 그 사이로 배인호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왔지만 내 부모님은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고, 나도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간호사가 나간 후, 나는 이우범에게 물었다.“서란은 어떻게 됐대요?”“상황은 안정됐대요. 근데 당분간 독일에 갈 수 없어 아마 한동안 지켜봐야 할 것 같다네요.”이우범이 답했다.나는 머리를 끄덕였고, 일부 계획은 한국에 돌아간 후 다시 말하려고 더는 말 하지 않았다.이튿날 나는 퇴원 절차를 밟고 엄마 아빠와 같이 귀국했다. 퇴사 문제와 내가 살았던 집은 허성재가 나 대신 처리해 줄 것이다.비행기에 오르기 전, 이우범한테서 문자 한 통이 왔다.「저도 조만간 귀국할 거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요.」내가 답했다.「그래요.」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였다. 엄마는 부랴부랴 요리하기 시작했고, 아빠는 나와 같이 TV를 시청했다.아무리 웃긴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나는 전혀 웃기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가 있었다.잠시 후,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정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정아야, 혹시 아는 언론사 기자님 있으면 나 연락처 좀 알려줘.」정아는 내가 뭘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기자님의 연락처를 나에게 알려줬다. 기자님의 이름은 이훈이다. 그는 각종 연예계 뉴스나 사회 뉴스를 좋아했고, 전에 배인호의 수많은 스캔들 기사도 모두 그가 쓴 것이다.나는 기자님에게 배인호에 대해 폭로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서란의 심장이 안 좋다고 하니, 때마침 제대로 자극을 주고 싶었다.한참을 이야기 후, 나는 녹음본 하나를 이훈에게 전송했고, 그건 서란이 내 병실에 왔을 때 녹음한 것이었
그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본인 아이는 사랑할 것이다.나는 그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그한테 모든 사실을 말해주려 했지만, 결국은 말해주지 않았다. 만약 서란만 없었더라면 그 아이는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나는 다른 이유로 아이를 지키지 못한 건 받아들일 수 있어도, 서란이 밀어서 아이를 지키지 못한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너 10년 동안 나 사랑했다며? 근데 왜 내가 너 좋아하게 됐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이혼을 선택했어? 내가 뭘 해볼 기회라도 안 줬잖아. 내가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어? 아니면 불이라도 질렀어?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 건데!?”배인호는 빨개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배인호에게 말했다.“그렇게 아이를 사랑하면 서란한테 따져야죠, 걔가 죽인 건데.”배인호의 눈빛은 앞서 모습과 달라졌고, 목소리도 차분해졌다.“반년 뒤에, 만약 그때 가서 걔가 한 게 확실해지면 나 서란 가만 안 둘 거야.”“반년? 왜 반년을 기다려야 하죠?”나는 그가 시간을 또 미룬다고 생각했다.배인호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나를 바라봤고, 그 까만 눈동자 안의 분노는 조금은 사라진 듯했다.“걔 지금 일단 치료받아야 해. 상황 지켜보다가 수술 일정 잡고, 2차 이식 끝나면 서란과 나 각자 갈 길 가는 거야.”나는 이 문제의 포인트가 서란의 수술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뭔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니까 결국은 지금 서란 걱정한다는 거네요? 이런 원인 때문이라면 굳이 말 안 해줘도 돼요. 저도 바보가 아니니까.”나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이런 이유를 굳이 나한테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나 못 믿어?”배인호의 빨갛던 눈은 조금은 차분해졌지만, 아직도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그럼 왜 수술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말해줘요.”나는 계속해서 물었다.배인호가 말해주려던 찰나, 그의 전화가 울렸고, 힐끗 보니 서란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는 할 수 없이 일단 전화를 받았고, 전화에서 뭐라고 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