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Chapter 381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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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알거지가 되었을지도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사를 이층으로 가져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태준이 내려왔다. 그는 비록 다리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걸음이 느릴 뿐이었다. 박태준이 물을 마시며 물었다.“좀 이따가 신당동으로 돌아갈 거지?”“추가 근무 있어.”매주 월요일마다 박물관에서는 감정사들이 민간인 소유의 문화재 진위를 판별하고 보존 방안을 제시하는 특별 행사가 열린다. 신은지도 이 행사에 초청된 감정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은 이 행사를 위해 관계자들과 회의와 식사 자리가 잡힌 날이었다.박태준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주말인데.”“그러니까, 추가 근무.”“….”잠시 고민하던 박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할래?”“안 돼. 오늘 다 같이 회식하기로 했단 말이야. 선배들도 오는데, 빠질 수 없어.”문화재 감정 이력이 아무리 많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이 바닥은 좁은 사회였다. 어떻게든 서로 맞닿아 있는데, 이런 모임엔 빠지지 않는 편이 좋았다. “대신 아침은 같이 먹어줄 수 있어.”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11시였다.“아침은 무슨, 벌써 점심이야.”박태준은 이 상황이 불만스러웠지만, 그것을 신은지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 일에 진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어느 식당인데? 끝나면 데리러 갈게.”박태준이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은지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챙김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모르겠어. 이따가 나오면 연락할 게.”신은지가 반사적으로 거절할 뻔한 것을 참으며 말했다.대답을 들은 박태준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괜히 상처도 덜 아픈 듯한 느낌이 들었다.아직 약속된 시간은 아니었지만, 식사를 마친 신은지는 곧바로 떠나기 위해 채비를 했다. 오늘은 주말이라 차가 막힐 수도 있었고, 게다가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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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익숙한 뜨거움

강이연이 코웃음치며 말했다.“신은지면 모를까, 내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뭔데? 신지연, 우리 다 성인이야. 사람 두드려 팬다고 뭐가 해결돼? 설마 내가 그렇게 머리 없는 짓을 했겠어? 어른인데, 우리 좀 성숙하게 생각하자.”절호의 기회였는데, 강이연은 그때만 떠올리면 배가 아팠다. 머리 채를 잡을 거면, 그럴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바보도 아니고, 느닷없이 머리 채를 잡으면, 누가 의심하지 않겠는가? 그때 미리 심어 놨던 사람이 찍어 보내온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겁을 했던가? 강이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강이연은 당시 남포시에 있었기 때문에, 신은지의 DNA를 얻기 위해 필수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을 보내면 신은지의 의심을 살 게 뻔했기에 진유라와 신지연을 떠올렸다. 고심 끝에 강이연은 신은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신지연을 선택했다. 당시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진유라를 등돌리게 만들기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신지연과 신은지는 한때 같은 집에 살기도 했고, 오랜 시간 대립해 왔기에 이 상황에 더 적절히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강이연의 말을 들은 신지연은 경계가 조금 풀렸으나,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왜 그렇게 으쓱한 곳에 돈을 뒀어? 그냥 이체해 주면 될 것을.”그때 상황을 떠올린 신지연은 볼멘소리를 냈다. 그렇게 고립된 장소만 아니었다면, 그 험한 꼴을 당할 일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도 누구 하나 신고해 주는 사람이 없을 수가 있지? 범인이 떠나고 나서야, 신지연은 직접 경찰에 신고를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고를 넣으면 뭐 하는가? 카메라 하나 없는 곳인데. 결국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체하라고? 그리고 사이 좋게 남의 공모죄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아니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돈가방을 던져주길 바랐어? 현장 체포가 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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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만취

박태준은 보통 기업인이 아니었다. 그는 재벌 중의 재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는 같은 업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계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은 뻔했다.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은지의 머리속에 과거 자신이 인스타그램에서 했던 발언이 떠올랐다. 이 시점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녀에게 이건 재앙이었다. 커리어가 끝장나는 소리였다.그녀는 재빨리 박태준에게 차 좀 멀리 세우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한참,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돌아오지 않자, 신은지는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데로 쏠린 틈을 타 얼른 밖으로 빠져나왔다.식당을 나오자마자, 신은지는 곧바로 박태준의 차 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박태준도 후방 미러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가 창문을 내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직전, 신은지가 그 옆을 막아섰다. “얼른 창문 다시 올려.”“….”박태준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다시 창문을 올렸다.“회식은 끝났어?”“아직, 한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신은지가 좀 전에 관장이 술을 더 시켰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여기서 어슬렁거리지 좀 마.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입술이 오므려졌다. 박태준은 이 상황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화를 표출하고 싶지는 않아 일단 참았다.“우리가 불륜이야? 왜 숨겨야 해? 연인 사이끼리 데리러 오고 하는 거지.”“오늘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누군지 알아? 다 내 선배들이야. 모두 이 바닥에서 한 이름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조차 이런 고급 외제 차 못 타고 다녀. 그런데 막내인 내가 아이바흐를 탄다? 어떻게 생각하겠어?”그녀는 이 분야에서 남들보다 경력도 나이도 어린 편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왕관 복원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에 얼굴을 내비치자, 동족 업계 사람들한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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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결혼한 사이

가만히 있던 신은지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신은지는 애써 분위기를 풀어 보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에이, 그런 농담 재미없어요.”신은지는 긴장과 함께 술기운이 올라오자, 점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촌스럽게 보였을 수도 있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예쁜 미모를 가진 신은지한텐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박태준의 와이프와 닮지 않았냐는 얘기에 쏠렸던 시선이, 다른 의미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박태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여러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제 와이프가 좀 많이 취해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요.”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박태준은 망설임 없이 신은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 저희 때문에 괜히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 같네요. 계산은 제가 하고 갈게요. 마음껏 드세요.”신은지를 품에 안은 박태준이,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다시 회복되었다.계산을 마친 박태준은 신은지를 차 조수석에 태웠다. 그런 다음, 안전벨트를 메주기 위해 몸을 숙였는데 마침 눈을 뜬 신은지와 마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아직 술이 덜 깼는지, 눈빛이 살짝 초점이 없어 굉장히 멍해 보였다. 무방비한 모습에 박태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은지야….”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박태준의 고개가 점점 신은지와 가까워졌다. 촉촉한 입술이 몇 번이고 맞닿았다.비좁은 공간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술 냄새와 함께 두 사람의 호흡이 섞여 들어갔다.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였다면 당황했을 신은지가 적극적으로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태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며 더 마음껏 키스를 쏟아부었다. 거의 이성을 놓은 듯, 여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입맞춤이었다. 신은지는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호흡을 멈춘 채 그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냈다. 그렇게 한참,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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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삭신이 쑤신다

상처에 아픔이 느껴졌지만, 박태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키스에만 열중하던 그의 입술이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처음엔 그녀의 볼이었다. 다정하게 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맞추는 것으로, 서서히 턱, 목덜미를 지나 마지막에는 쇄골까지 내려갔다.“읏….”신은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달뜬 신음을 흘렸다.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며,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그의 움직임이 지속될수록 그녀는 서서히 이성을 잃어갔다. 신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허리를 휘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더 좁혀지며, 박태준은 더 편하게 그녀를 탐해갔다. 그는 자세를 바꾸어, 이제는 위가 아닌 신은지의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박태준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또 한 손으론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녀를 자기 복부 위로 올라타게 했다. 신은지의 허리는 그의 두 손만으로 다 감싸질 정도로 가늘었다. 하지만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았던 신은지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박태준의 가슴 위로 쓰러진 채 숨을 들썩였다. 그녀는 상의가 짧고 바지 허리가 높은, 하이웨스트 룩을 입고 있었다. 그 탓에 이렇게 엎드려 있으면 상의가 위로 말려 올라가, 허리의 맨살이 노출되곤 했다. 신은지가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박태준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리면 당연히 맨살이 아닌 옷의 촉감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손에 닿은 건 부드럽고도 따듯한 신은지의 맨살이었다. 박태준은 알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 그는 이 고통이 상처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가 지금 미치도록 신은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충동이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박태준은 당장이라도 신은지와 한 몸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구석구석, 하나도 남긴 없이 탐하고 또 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참고 또 참았다.여자는 남자와 달리, 본능적인 것보단 감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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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진선호, 이 사기꾼

그의 집에 이렇게 당당히 경호원들의 제재를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아니면 친구밖에 없었다. 박태준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급히 팔에 얼굴을 비벼 시야를 가리고 있던 넥타이를 벗었다. 그런 다음 가장 먼저 신은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박태준, 자신이었다. 풀어 젖혀져 있는 셔츠와 결박되어 있는 손과 발, 아주 가관이었다. 박태준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한쪽으로 수갑을 풀며 한쪽으로 계속 밖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던 탓에 발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계속 울어대는 핸드폰까지, 그가 파악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수갑을 푸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제야 박태준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수갑은 진짜였던 것이다. ‘저번엔 잘 끊어지더니, 오늘은 왜 이러는 거야!’박태준은 자신이 진선호에게 또 속았음을 깨달았다.“망할 진선호!”박태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문 쪽에서 고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울리던 핸드폰 벨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핸드폰이 왜 여기에….”박태준은 긴장에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들어오지 마…!”다급히 외쳤지만,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결국 고연우에게 이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박태준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예의 밥 말아 먹었어? 들어오기 전에 노크할 줄 몰라?”고연우가 어색하게 말했다.“미안, 둘이 벌써 진도가 여기까지 나갔을 줄은 몰랐네.”그는 둘이 다시 만나고 있는 줄도 몰랐고, 함께 잘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을 줄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누구는 아직 서재에서 독방 신세인데 말이야…. 부럽다, 부러워.’그는 속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같은 여자라도 성향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걸 고연우는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 근시야. 어두워서 실루엣밖에 못 봤어. 하지만 아무리 너의 집이라도, 문은 닫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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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문제의 비석

그림 속 여자는 갸름한 턱선에 얇은 눈썹, 입꼬리가 올라간 웃상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 속에 담긴 강력한 야망이 인상을 어둡게 만들었다. 신은지가 그려낸 초상화는 작은 반점까지 보일 정도로 매우 생동감이 넘쳤다. 강태민이 미간을 찌푸린 채, 유심히 그림 속 여자를 바라봤다.“이건 젊었을 적 모습이지만, 오관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나이 오십 좀 넘었으니까, 여기서 주름만 좀 더 늘었다고 보면 돼요.”신은지는 남포시에서 스치듯 한미나의 옆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면은 아니었기에,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두려워 젊었을 적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초상화를 받아들인 강태민이 말했다.“딱히 인상이 없네요.”아직 조사가 덜 된 상태였기 때문에, 강태민은 당장 답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한테 그림 복원을 의뢰했던 사람도 이 사람이고, 절 만나겠다고 했던 사람도 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신은지가 남포시에 있을 때 알아본 바를 강태민에게 말했다.“전에 그 두 남자가 절 찾으러 왔을 때도 이 여자 이름을 댔었어요.”“그래서 따라 차에 탔던 거예요?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막 따라가다니,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줄 아세요? 만약….”강태민이 잠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아무리 복수가 중요하다고 해도, 자기 목숨보단 더 값질 순 없어요.”“좀 전에 하시려던 말씀, 뭐였어요?”신은지는 그가 머뭇거렸던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강태민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 이질적인 장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도 적혀 있지 않은 공백의 비석이었다. 신은지도 강태민을 따라 그 묘비를 살펴보았다.“뭔가 신분을 밝히기에 떳떳하지 못했던 걸까요?”신은지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보가 적혀 있어야 할 자리가 공백이라는 것 빼고는 특별할 게 없는 비석이었다. 하지만 신은지는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 더 가까이에 비석을 들여다보았다. “음? 비석에 뭔가 붙어 있어요.”“붙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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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잡힌 꼬리

가족란에 등록된 이름은 류정, 관계는 여동생, 전화번호는 010….결정적인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은지는 관리소를 나오기 전, 잊지 않고 서류를 사진으로 남겼다. 류정과 한미나가 동인인물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올해 6월 6일, 이 사람이 다시 방문할 때나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전까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신은지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본 강태민이 옆에서 말했다.“이 부분은 사람 시켜 좀 더 알아보도록 할게요. 아직 배후가 명확해지기 전까진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신은지도 그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알겠어요. 그럼 잘 좀 부탁드려요.”신은지와 헤어진 강태민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강태석을 만나러 갔다. 강태석의 집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별장으로, 지난 2년 사이에 새로 개발된 주택 단지였다. 다만 위치가 외진 탓에 입주율이 별로 높지 않아 조용했다. 육지한은 부드럽게 차를 세운 뒤, 경비실을 향해 걸어갔다.“어르신, 집에 계시죠?”경비원들은 단번에 육지한과 그의 옆에 함께 온 강태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강태민은 강씨 가문의 진짜 실세라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경비원들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계세요.”육지한이 강태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태민은 망설임 없이 운전석에 탑승해 별장 안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 모습을 본 경비원 한 명이 재빨리 무전기를 들었다. 별장 내부 인원에게 보고를 넣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때, 육지한이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어르신이 누군지 몰라요? 형이 동생을 좀 만나겠다는데, 그쪽이 중간에서 왜 끼어들어요?”육지한이 무전기를 빼앗으며 말했다.“저희도 당연히 이러고 싶지 않죠. 하지만 위에서 명령이 떨어진 이상, 아래 사람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저한테 딸린 식솔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좀 너그러이 넘어가 주세요.”경비원이 울상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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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너 들켰어

신은지는 가는 길 내내 계속 그 무덤에 대해 생각했다. 단순히 이름이 같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엄마의 무덤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세웠을까? 무슨 목적으로?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신은지는 차를 멈추고 다시 한번 서류를 쳐다보았다. “류정….”그런데 이때 갑자기 박태준한테서 연락이 왔다.“응.”“어디야?”박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거야 당연히….”신은지가 막 답을 하려던 찰나, 전화 너머 진유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지야, 너 들켰어. 이 나쁜 놈이….”진유라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췄다. 박태준이 맞은 편에서 테이블 위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엔 온갖 케이크와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진유라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말을 고쳤다. 뇌물을 받아먹은 대가였다.“박태준 씨한테 속았어.”진유라는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어딘데?”신은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위치 보내줄게.”신은지에게 위치를 보내 준 다음, 진유라는 다시 박태준을 노려보았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함부로 거짓말할 얘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괜히 애 잡지 마시고….”정말 예정에 없었던 일이었다. 진유라는 그저 친구 면접에 따라왔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신은지가 그녀의 이름을 대고 거짓말했을 줄은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알았더라면 미리 대비라도 했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협조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역시 사업가는 입이 청상유수라고, 함부로 믿는 것이 아니었다.“가보세요.”박태준이 차갑게 말했다.“….”진유라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비록 그녀도 여기에 남아 병풍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자기 발로 가는 것과 쫓겨나는 것은 달랐다.“화장실 들어갈 때 얼굴이 다르고, 나갈 때 얼굴이 다르다고…. 아까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같이 차 마시자고 하더니,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자리에서 일어난 진유라가 코웃음을 치며 그를 바라봤다.“연기자 하셔도 되겠어요. 얼굴 바꾸는 실력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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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결혼기념일

신은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6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단오절? 그건 좀 더 빨랐나?”박태준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우리 혼인 신고한 날이잖아.”그러자 신은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우리 이혼한 거 아니었어?”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신은지도 아차 한 기분이 들었다. 이혼한 것도 맞지만, 최근에 다시 합친 것도 맞기 때문이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딱히 비꼬는 말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부부의 연을 맺고 3년, 그동안 박태준은 한 번도 결혼기념일을 챙긴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혼인신고 날짜도 기억 못할 줄 알았다.“당연하지. 그걸 어떻게 잊어?”박태준이 삐진 듯, 심통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왜 전엔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어?”결혼한 상대를 마음에 두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신은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3년 내내 데이트는 물론이고 단둘이서 식사한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매년 사람 시켜서 선물 보내 줬잖아.”신은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언제?”신은지는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박태준은 그녀를 항상 차갑게 대했지만,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아낌없이 지원해 줬었다. 그 덕분에 결혼생활 내내 그녀는 부족함이 없이 생활했었다. 계절마다 매장에서 새 시즌을 준비하듯, 새로운 옷들이 드레스룸을 채웠었다. 그러다 문득, 유독 6월에만 드레스룸이 두 번 바뀌었던 것이 떠올랐다. 당시 이 부분이 의아하긴 했으나, 딱히 전달받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 지나갔었다. 거기에 선물이 포함되어 있었을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막상 넌 리액션도 없고, 선물은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드레스룸에 방치되었다고 하지,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그녀의 입장에선 억울했다. 옷이 한두 벌도 아니고, 매번 바뀌는데 어떻게 다 확인한단 말인가?“말없이 보내면 내가 어떻게 알아? 최소한 쪽지라도 보냈어야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대신 말 전달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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