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미친 그날 밤: Chapter 451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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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진원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경매행사 CCTV 영상은 왜 필요해요?”강세헌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원우를 힐끗 보더니 다시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강세헌의 눈빛 하나에 충분히 압박감이 느껴진다.진원우는 고개를 내렸고 더 이상 물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대답했다.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송연아가 죽은 후, 강세헌은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모든 신경을 일하는 데만 쏟고 있었고 언제부턴가는 불면증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강세헌은 예전에도 차갑고 이기적이었지만 지금은 더 말할 나위 없다.예전에는 외부 사람에게 차가웠지만 회사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따뜻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비서로 있던 임지훈도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강세헌이 무서워 나간 게 아니라 현재 그 누구도 강세헌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떠났다. 회사에서 강세헌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냉랭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강세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압박감이 되고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있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그런 강세헌 옆에서 일하는 것은 학대나 다름없었다.진원우는 강세헌이 왜 영상을 갖고 오라고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저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진원우는 다시 경매장으로 갔고 구진학이 마침 뒷문으로 나가고 있었다.진원우가 구진학보다 한발 늦었다.구진학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구진학은 송연아의 일을 덮어 주기 위해 미리 관리책임자에게 얘기해 혹시라도 누가 CCTV 영상을 달라고 하면 고장 났다고 말하라고 했다.구진학은 이곳의 단골이며 사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래서 이런 일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진원우는 영상을 손에 넣지 못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빈손으로 가고 있는 진원우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고 돌아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그러나 호텔로 돌아오는 것 외에 딱히 도망갈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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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몇 개 안 되는 글자가 강세헌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강세헌은 넋이 나간 채 한참 동안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봤다. 액정 화면이 어두워지면 다시 홈 버튼을 눌러 밝혔다. 그때마다 화면에 뜬 몇 글자가 더 똑똑히 보였다. 문자를 클릭하려는 손이 화면 가까이 갈수록 손가락은 더 심하게 떨렸다.강세헌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눌렀지만, 문자 수신함에는 방금 본 몇 글자 외에 다른 내용은 없었다.[송연아 살아있어.]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고 동공은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윙-이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또 진동이 울렸고 다시 한 통의 문자가 날라왔다.[송연아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709호로 와.]강세헌은 누군가 자신을 709호로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보낸 문자라 생각했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임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방을 나서고 있었다.송연아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강세헌은 냉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송연아가 죽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바보처럼 문자 한 통을 믿고 있었다. 강세헌은 방에서 나와 709호로 향했고 때마침 같은 층이어서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강세헌. 너 진짜 속네.” 고훈은 큰 소리로 웃었다.강세헌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덫에 쉽게 걸릴 사람이 아니다.그러나 이 순간 강세헌은 바보처럼 문자만 믿고 여기로 왔다.“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어.” 고훈은 배를 꿇어앉고 웃었다.강세헌은 얼굴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고훈을 보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송연아 일로 사람 놀리면 그때는 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말이 끝나자마자 강세헌은 뒤돌아섰다.고훈은 방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송연아는 죽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될 거야.”강세헌은 고훈의 말에 대꾸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고훈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강세헌. 나와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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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강세헌은 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보듯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죽는 것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강세욱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은 궁지에 빠진 쥐처럼 초라해 보였으나 강세헌에 대한 증오는 온몸으로 내 뿜고 있었다.강세욱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팔목 핏줄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튀어나와 있었다.강세욱은 같은 강 씨인 강세헌의 잘난 모습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 비참함을 느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세헌에게 또 졌다. 그것도 너무 확실하게 졌다.  바닥에서 일어난 강세욱은 흉악한 얼굴을 하며 강세헌에게 말했다. “강세헌. 너는 나를 못 죽일 거야. 그렇지? 넌 남자도 아니야. 능력이 있으면 한번 죽여 봐. 내가 널 함부로 무시 못 하게.”강세욱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세로 강세헌을 향해 뛰어가려 했다.그러나 한 발짝 떼기도 전에 옆 간호조무사들에 의해 제지당했다.병원장은 강세욱을 보며 말했다. “오늘 주사를 아직 안 맞았네요.”강세욱은 몸부림쳤다.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병원에 갇힌 이후 강세욱은 하루에 한 번 주사를 맞고 있었다.이 주사는 온몸의 근육을 축 늘어지게 함으로써 힘이 없어 자살 시도조차 못 하게 한다.주사를 맞자마자 강세욱은 바닥에 축 널브러졌다.도망갈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힘도 없거니와 몸에 위치추적기가 장착되어 있어 도망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이 상황은 강세욱이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강세욱이 고개를 들어 강세헌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강세헌. 너도 나를 이기진 못했어. 안 그래? 송연아도 죽었고 너도 평생 힘들겠지? 하하...”강세욱은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계속 말했다. “나는 심지어 심재경 결혼식까지 가서 웨이터에게 쪽지를 전달하라고 부탁했어. 송연아를 어떻게든 옥상으로 유인해서 내가 잡고 있어야 했거든. 근데 역시 송연아! 쪽지에 안 속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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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진원우는 강세헌쪽을 향해 곁눈질했다. 구애린이 사무실로 쳐들어온 것에 대해 강세헌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엄마를 두고 있는 강세헌 동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세헌은 덤덤했고 심지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진원우는 아무 말 없이 분위기만 살폈다.강세헌의 무정함에 진원우도 놀랐다. 사실 구애린을 여동생으로 받아들이면 적어도 강세헌에게 친척이 생겨 혼자가 아니기에 충분히 인정해도 된다고 진원우는 생각했다.“강세헌 씨죠? 제가 조사를 해 봤어요. 사진도 봤었고요. 임옥민 씨가 어머니 되시죠? 물론 저의 어머니이기도 하죠. 어머니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가서 절이라도 하려고요.” 구애린은 강세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기세가 등등했고 강세헌이 알려주지 않으면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세헌은 고개를 들어 장 비서를 보며 말했다. “경호원 불러.”장 비서는 마음속으로 내심 기뻤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네. 알겠습니다.”“뭐 하는 거예요?” 구애린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한 듯 물었다. “저는 임옥민 씨의 딸입니다!”구애린 말에 장 비서가 끼어들었다. “당신이 누구든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온 것은 잘 못 된 거예요.”이때 경호원들이 사무실에 도착했고 장 비서는 가차 없이 말했다. “끌고 나가세요.”송연아가 죽은 후, 장 비서는 강세헌 옆에 그 어떤 여자가 오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장 비서는 자신이 송연아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일단 여자만 나타나면 경계하고 쫓아내고 싶어 했다. 구애린은 경호원들에게 제압됐다. “... 강세헌 씨!” 구애린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밖에서 소리쳤다. “엄마는 당신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독점할 생각 하지 마세요!”경호원들이 구애린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사무실도 쥐 죽은 듯했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강세헌은 불쾌한 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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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구진학은 구애린에게 반찬을 올려주며 말했다. “빨리 밥 먹어.”구진학은 송연아에 대해 구애린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송연아는 너무 많은 사람이 본인을 아는 것을 달가워 않는다. 그래서 딸인 구애린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구애린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빠. 알려주세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너는 강세헌을 보고 어땠어? 어떤 사람 같아 보여?”구진학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고 구애린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물음에 한참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신은 강세헌에게 우수한 피지컬과 외모를 줬지만, 그에 반해 최악의 성질머리를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은 늘 공평하다고 하죠.” 구애린의 대답에 구진학은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뭐가 그래서예요?” 구진학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구애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구진학은 구애린이 강세헌을 만난 후, 혹시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현재 구애린 표정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구애린은 오로지 임옥민의 산소를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구애린의 모습에 구진학도 한시름 놓았다. 구애린은 친딸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도 효녀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빠. 나와 강세헌은 혈연관계가 있는 오빠와 동생이에요. 강세헌이 아무리 잘 생겨도 좋아할 일은 없어요. 아빠. 정신 차려요!”구애린은 두 살 때쯤 입양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돼 그 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게다가 구진학과 임옥민은 구애린을 친자식으로 여기며 키웠다. 구진학은 한 번도 구애린 앞에서 입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구애린도 자신이 구진학과 임옥민의 친딸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가 멍청했어. 내가 멍청했어.” 구진학은 얼버무리며 말했다. “점심에 마신 술이 저녁이 다 돼도 안 깨네.”“아빠.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것은 알아요. 하지만 꼭 몸조심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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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송연아의 대답은 구진학의 기대와 달랐다. “저도 방법이 없어요.”실제로 별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송연아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 항상 강세헌 입장에서 생각하며 강세헌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본인 혼자만의 부모님이길 바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송연아 본인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송연아는 강세헌이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임옥민이 구진학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긴 이유는 구진학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고 임옥민의 목숨을 살려 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구진학에 대해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진학이 임옥민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데려가지 않았다면 구진학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구진학은 실망한 듯 말을 이었다.“연아 씨...”“연아 씨도 아시다시피 강세헌은 내가 본인 어머니를 해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게 산소에 대한 정보를 숨겼죠. 강세헌은 강단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연아 씨도 잘 알겠죠.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에게서 답변을 바라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구진학은 말을 마치고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강세헌은 확실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강세헌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휴...”구진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죽기 전에 애린 엄마에게 인사하러 가야 하는데... 이것도 내 욕심이겠죠?” 구진학은 송연아가 조금이라도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계속 말했다.구진학은 강세헌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진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송연아는 고개를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진학은 미안한 듯 손짓하며 말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아니에요.” 송연아는 대답 했다. “휴... 계속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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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이름: Jane(제인)나이: 30출생지: 한국송연아는 일부러 나이를 수정했다. 이름도 현지 생활을 위해 이곳에 와서 새로 지었고 실명도 감출 필요가 있었다.그 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다야?”왕호경은 다급한 듯 대답했다. “응. 정보가 없어.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여자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 확인된 내용들은 자료에 있는 게 전부야. 하지만 네가 허락만 하면 내가 직접 미국에 가서 제인을 만나 볼 거야.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이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면 무조건 귀국하려고 할 거야.” 강세헌은 바로 거절했다. “관심 없어.”“장 비서. 손님 가신대.”강세헌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관심 두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추가로 해봤자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호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 대표. 연아 씨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강세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고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기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화산처럼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왕호경은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송연아 이름을 쉽게 입에 올린다는 것은 강세헌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 나 이무 말 안 했어.” 말이 끝나자마자 왕호경은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왕호경은 얼굴의 식은땀을 닦으며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 송연아는 의사다. 그래서 일부러 송연아를 언급해 강세헌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됐다. 왕호경이 사무실을 나간 후, 강세헌은 이미 송연아라는 세글자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오늘도 강세헌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조차 소용이 없었다. 초기에는 수면제 한 알로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여섯 알을 먹어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강세헌은 수면제 한 움큼을 잡고 몇 알인지 정확히 세지도 않은채 입으로 넣고 물을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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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왕호경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송연아와 제프의 사이가 좋기는 하지만 제프가 먼저 밥 먹자고 제안한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때부터 의아했었다. 오늘의 밥 한 끼가 예사롭지 않을 거라는 느낌에 송연아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지 않았다. 왔던 길 그대로 뒤돌아 걸었고 제프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급한 일이 있어 약속 못 나갈 것 같아요.」송연아는 혼자서 낯선 나라의 번화가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베이지색 원피스에 같은 계열의 카디건을 걸쳤고 스카프가 머리부터 얼굴 그리고 목까지 감싸고 있었다. 송연아는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이다.송연아는 걸음 속도를 늦춰 거리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었다. “맞아. 알 것 같아.” 고훈은 휴대전화를 보며 걷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쳤다. 사과하려고 뒤돌아 고개를 들어보니 못생긴 그 여자였다. 그러나 스카프로 얼굴의 흉터를 감추고 있어 이마와 눈썹만 보였고 불현듯 누군가를닮은 것 같은 느낌에 고훈은 흠칫 놀라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송연아는 재빨리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걸어갔다. 고훈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뒤따라갔다. “여보세요. 저기 못생긴 여자. 왜 도망가요? 내가 어디 잡아먹기라도 하나요?”송연아는 머리를 숙인 채 대꾸하지 않았다. 고훈은 송연아 팔을 잡으며 멈춰 세우려 했다. “지난번에 제 신 망가뜨린 거 배상하세요. 안 그러면 못 보내요.”고훈은 송연아 팔을 더 힘껏 잡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고 송연아 얼굴을 가렸던 스카프가 어깨로 흘러 내려왔다. 송연아의 흉터를 본 고훈은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흉터 모양이 너무 흉악했고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송연아는 고훈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얼굴을 가렸다. 고훈은 송연아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별다른 뜻은 없어요. 이렇게 해외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고향 친구 같아 반가워서 그래요.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는 전부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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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고훈은 송연아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며 물었다. “제인?”고훈은 내심 기뻤다.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 미디브연구소에서 일하는 것도 몰랐고요. 안 그래도 지금 대책이 없어 어떡하나 했는데.”송연아는 고훈의 눈썰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송연아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고훈은 강세헌이 인공심장에 투자하기 위해 미디브 사람을 스카우트할 거라는 정보를 들었다. 강세헌이 하는 일은 실패한 적이 없다. 그래서 고훈은 강세헌 보다 한발 앞서 사람을 데려가야 했다. 고훈은 직접 투자해 인공심장을 연구할 계획이었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었다.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조차 없으면서 무턱대고 멍청하게 여기로 왔다가 대문 앞에서 제지당했다.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송연아를 본 것이다. 고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송연아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나 따라와요.”송연아는 아무 말 없이 옆 난간을 꽉 잡고 있었다. 고훈이 고개를 돌려 송연아를 바라봤다. 눈과 이마만 보였지만 저도 모르게 송연아를 떠올렸다. “송연아?”마음속으로 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고훈이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송연아는 깜짝 놀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송연아는 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송연아의 경황실색한 모습에 고훈은 어리둥절했다. 송연아의 당황함과 두려움이 고훈의 눈에 그대로 보였다. 고훈의 이런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 도대체 누구예요?” 고훈은 송연아 마스크를 내리고 목과 얼굴의 흉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 흉터는... 화상흉터였다!송연아가 어떻게 죽었는지 떠올려 보면 화상과 연관이 있다. 화상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었다. “혹시...?”고훈은 눈앞의 광경에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상흉터가 확실했다.“살아 있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영어로 낮게 대답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송연아는 말이 끝나자마자 잡힌 팔을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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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고훈은 혼자 낮은 소리로 되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렸다.재빨리 송연아 앞으로 가서 몸으로 송연아를 최대한 안 보일 수 있게 가려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사람 강세헌의 사람이예요. 미디브에 스카우트하러 왔대요.”고훈이 말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 왕호경이 있었다. 이때 제프가 송연아를 불렀다. “제인 씨, 왕 선생님이 진심으로 제인 씨 만나 뵙고 싶어 해요. 조금만 시간 내줄 수 없을까요?”고훈은 어안이 벙벙했다. 강세헌이 스카우트하려던 사람이 송연아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기가 막혔다.송연아는 제프를 보며 말했다. “낮에도 말했듯이 생각 없어요. 고민하고 싶지도 않고요.”말이 끝나자마자 송연아는 고훈과 같이 자리를 떠났다. 제프도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제프는 왕호경을 보며 말했다. “저에게 알려주셨던 얘기들은 다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승낙을 안 하네요.”왕호경은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왕호경의 눈이 반짝이더니 제프를 향해 말했다. “제가 봤을 때, 제프 씨도 적합한...”제프는 손사래를 치며 왕호경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저는 아니에요.”“하지만...”“아니라니까요?!” 제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왕호경은 풀이 죽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송연아에 이끌려 자리를 벗어난 고훈이 물었다. “반년 만에 영어를 이렇게 잘할 수 있어요?”송연아의 영어 실력은 듣는 사람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송연아는 별일 아닌 듯 대답했다. “원래 좀 했었어요.”송연아의 말에 할 말이 없었지만 고훈은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영어 외에 또 어떤 게 가능해요?”“불어, 독일어, 스페인어요.” 송연아가 대답했다. 고훈은 송연아 능력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알아요?”“배울 수밖에 없었어요.” 송연아는 대답했다. “배울 수밖에요?” 고훈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송태범의 목적을 생각하니 강세헌이 떠올랐고 갑자기 울컥했다. 송연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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