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건 사람은 송연아와 친하게 지내는 의대 선배 심재경이었다. 심재경은 그녀보다 두 학번 높았는데, 해외 연수를 다녀온 덕분에 꽤 높은 명성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지금껏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그럼요. 무슨 일인데요?”“아주 중요한 환자가 갑자기 불러서 그러는데, 네가 대신 가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말이야.”송연아는 시계를 힐끗 봤다. 오늘은 외래 없이 오후 수술만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네, 저 시간 돼요.”“주소는 로즈가든 A동 306호야. 가서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돼, 그럼 경비가 문을 열어줄 거야.”“알겠어요.”“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치료할 때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거야.”“명심할게요.”전화를 끊은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로즈가든으로 향했다.로즈가든은 고급 주택구로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역시 경비가 막아서서 방문목적을 물었다.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그는 짧은 통화로 확인을 하고 그녀를 들여보냈다.송연아는 306호 앞으로 와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주러 나온 임지훈은 심재경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송연아는 심재경의 말을 통해 환자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꼈다.“심재경 선생님의 소개로 왔습니다.”임지훈은 송연아가 들고 있는 약품 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그럼요. 심 선생님한테서 다 들었어요. 비밀 유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임지훈은 심재경이 보낸 사람이면 실력은 보증할 거라고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송연아를 데리고 2층에 있는 한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침실은 커튼이 굳게 닫혀 있는 데다가 불을 켜지 않아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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