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화

Author: 김세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사람들 모두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냐며 의아했고 최지현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처음은 잘못 들었다고 해도 지금은?’

최지현은 뭔가를 알아내려고 송연아와 강세헌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송닥, 무슨 일 있어요?”

최지현은 떠보듯 물었다.

송연아는 당장이라도 자신이 강세현의 와이프라고 밝힌 뒤 직접 해명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 남자는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직장까지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할아버지가 급한 일 있으시다고 연락이 왔는데, 하필 마침 강 대표님도 일이 있으시네요. 참 이런 우연이, 하하.”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그녀의 모습에 강세헌은 한 방을 날렸다.

“저희 할아버지한테서도 마침 연락이 왔는데, 혹시 어느 쪽으로 가세요? 같은 방향이면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강한 정신력으로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고, 중간에 테이블만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찻잔을 그의 얼굴에 내려치고 싶은 송연아였다.

“대표님 정말 농담 잘하시네요. 저희가 어떻게 같은 길일 수가 있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말을 마친 송연아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나왔고 최지현은 불안한 눈빛으로 강세헌을 바라보며 물었다.

“송닥이랑 아는 사이에요?”

“몰라요.”

강세헌은 싸늘한 말투로 그녀의 말에 답한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지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그를 이곳에 오라고 한 건 병원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모두가 그녀와 강세헌의 관계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데려다줄게요.”

행여나 밖에서 송연아와 이야기를 나누진 않을까 걱정이 된 그녀는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 어쨌든 그날 밤은 송연아였으니까.

호텔 밖으로 나온 강세헌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곳에 송연아는 없었다.

도망치듯 나온 송연아가 이곳에서 그를 기다릴 리가 없었고 그녀는 일찌감치 차를 타고 떠났다.

임지훈이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대표님.”

“이제 들어가 봐요.”

그는 최지현을 힐끗 보며 말하고선 곧바로 차에 올라탔고 최지현은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후회하고 있었다.

‘진작 알았다더라면 그때 바로 결혼했을 텐데, 언제쯤이면 날 바라보고 사랑해 줄까?’

그 시각 강씨 저택, 송연아는 일찌감치 도착했다.

강의건은 80여 세가 넘으셨고 세월의 흔적과 함께 동반된 주름은 깊고 차분해 보였다. 비록 두 눈은 젊었을 때만큼 밝게 빛나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온화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건 없어?”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제 적응됐어요.”

강세헌과의 결혼을 추진한 건 그녀의 아버지가 제안한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강의건이 가장 아끼는 손자가 강세헌이다.

손자를 아끼는 만큼 그가 좋아하지 않는 여자랑 결혼하는 걸 당연히 막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솔직히 친분으로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닐뿐더러 인맥을 동원해 강세헌 모르게 혼인신고까지 해버렸다.

강세헌 별장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도 모두 강의건의 제안이었고 그녀는 아직도 강의건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헌이가 힘들게 하는 건 없어?”

강의건은 자상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의건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한들 강세헌은 그의 친손자였기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없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침 강세헌이 돌아왔고 그 모습을 본 강의건이 입을 열었다.

“연아는 온 지 한참이나 됐는데 넌 왜 이제야 오는 거니? 너랑 연아 이제는 부부인데 밤늦게 같이 다녀야지.”

강세헌은 송연아를 힐끗 보고선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강의건도 그가 이번 결혼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 것이었다.

“연아는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 전 집사, 세헌이 방으로 데려가 줘.”

전 집사는 공손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말은 마친 전 집사는 송연아를 향해 손짓했다.

“사모님, 이쪽으로 가시죠.”

송연아는 조심스럽게 강세헌을 훔쳐봤다. 싸늘한 표정을 한 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송연아는 집사를 따라 자리를 떴다.

그렇게 방에는 강의건과 강세헌 단 둘뿐이었고 강의건은 간곡하고 무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시간도 꽤 지났고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됐잖니.”

지난 일이 생각난 강의건은 순식간에 눈빛이 어두워졌다.

강세헌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묵묵부답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결혼하라고 결정한 건 다 널 위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원망하지 마. 어린 나이도 아니고 너도 이젠 가정을 이뤄야지. 연아 아버지 때문에 네가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알고 있는데 연아는 참 좋은 아이야.”

한숨을 쉬며 말하는 강의건의 모습에 강세헌을 미간을 찌푸렸다.

‘좋은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다녀?’

비록 강의건한테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반드시 이혼할 거라고 결심했다.

그를 바라보던 있던 강의건은 저도 모르게 또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강세헌은 침묵하는 일이 많아졌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 싫어했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말은 잘 들었기에 이런 상황에 더 몰아세울 수 없었던 강의건은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 쉬어.”

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침 전 집사도 돌아왔다.

“도련님.”

그는 눈길 한번 주고선 방을 나갔고 전 집사는 강의건한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저렇게 예쁜 여자랑 같은 방을 쓰는데 아무런 감정이 안 생기겠어? 남자라면 당연히 반응하겠지.”

전 집사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도련님이 어떤 성격인지는 회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일부러 같은 방 쓰게 했다는 걸 무조건 알 겁니다.”

“남녀가 서로 같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감정이 생기겠어? 밖에서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내 말을 들어야지.”

강의건도 마음속으론 강세헌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고 낮은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가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고 세헌이를 돌봐줄 수 있는 좋은 사람 찾아줘야지.”

“도련님도 회장님의 노고를 알 겁니다.”

전 집사는 강의건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송연아는 집사의 안내로 옛 저택에 있는 세헌의 방으로 왔고 전 집사가 떠나기 전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긴 도련님이 어릴 때부터 쓰던 방입니다. 중간에 한번 새로 인테리어 한 적 있어요.”

이곳의 스타일은 별장과 사뭇 달랐다. 블랙과 그레이색으로 인테리어 된 방은 따뜻함보다는 싸늘함이 감돌았다.

그녀의 시선은 무심코 선반에 꽂혔고 그곳에 놓인 정교한 상자에 시선을 뺏겼다. 한눈에 봐도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기에 이 방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만지려던 찰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싸늘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Comments (3)
goodnovel comment avatar
정순이
알것같으면서도 모른척 전개해가는 이야기스토리가 빠져들게하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정순이
남과녀의 가치기준은 무엇일가
goodnovel comment avatar
박여정
야새꺄 너도 결혼식날 여자랑 한건 마찬가지자나 둘이 서로 몰라봐서 글지 어디 내로남불이야
VIEW ALL COMMENTS

Related chapters

  • 미친 그날 밤   제11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송연아는 몸을 돌리며 실수로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강세헌은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고 표정은 몹시 험악해 보였다.“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는 다급하게 설명하며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우려고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손목이 으스러질 정도의 큰 힘이 그녀를 덮쳤다.‘아파!’부러질 듯 아픈 느낌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고 강세헌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화냈다.“더러운 손 치워요!”말하면서 그는 송연아를 힘껏 밀쳤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반응을 못 한 탓에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캐비닛 모서리에 부딪혔다.극심한 통증에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아 손을 뻗어 만져보니 역시나 피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줍는 강세헌의 모습을 보았고 행동만으로도 그 물건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그는 상자 속의 내용물이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고 다행히도 튼튼한 상자 덕에 안에 있던 물건은 그대로였다.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방금 이걸 깨뜨릴 뻔한 송연아를 생각 하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그는 충혈된 눈으로 싸늘하게 송연아를 노려봤다.“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송연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극심한 통증이 신경까지 건드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지만, 꾹 참으며 일어났다.“미안해요...”이 물건이 강세헌한테 매우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미안?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뻔뻔스러운 것도 모자라 대범하기까지 한 그녀의 행동에 강세헌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서서히 송연아를 향해 다가갔고 사람을 짓누르는 기세에 간담이 서늘해진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치며 벽에 부딪혔다.“다가오지 마요...”그는 손으로 있는 힘껏 그녀의 턱을 잡았다.뼈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아무런 소리도 지

  • 미친 그날 밤   제12화

    강의건은 마음속으로 이미 계획하고 있었고 전 집사도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저번에 알아보라고 하셨던 심장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가 구급상자를 들고 오자 전 집사는 바로 입을 닫았다.소파에 앉아 있던 강의건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이쪽으로 따라와.”강의건은 서재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송연아는 구급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뒤따라 걸아갔다.강의건은 의자에 앉더니 슬픈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세헌이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서 내가 세헌이를 키운거나 다름없었어. 학창 시절에는 기숙사 생활했고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인수받으며 바쁜 생활을 보냈지. 그래서 집은 거의 안 와.”강세헌의 아버지는 그의 큰아들이었다. 자식 잃은 슬픔은 역시나 수십년이 지나도 치유되기 힘들었고 목소리에서 슬픔이 느껴졌다.강세헌이 돌아오기를 꺼리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강의건은 자신이 죽으면 강세헌이 둘째네 가족을 어떻게 대할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었다.강의건은 강세헌 옆에서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원한 감정이 사라지게끔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했다. 가족 사이에 서로 피 다투며 싸우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다.“할아버지.”송연아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송태범의 욕심 때문에 시집온 건 맞으나 강의건은 단 한 번도 그녀를 깔보지 않았고 줄곧 잘해줬다.강의건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짓했다.“네가 좋은 애란걸 알고 있으니까 이 결혼을 허락한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참 충직하고 착한 사람이었어. 네가 그런 사람 손녀니까 반드시 좋은 인품을 물려받았을 거로 생각해. 그래서 난 네가 옆에 남아서 세헌이를 돌봐줬으면 좋겠어.”“할아버지, 사랑하는 여자가 옆에 있는 게 세헌 씨한테 제일 좋지 않을까요...”송연아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으나 강의건 귀에는 강세헌을 떠날 핑계를 찾는 것처럼 들렸다.지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었던

  • 미친 그날 밤   제13화

    “원장님이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송연아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업계에서 낙오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의사로서의 직업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어. 다른 병원에서도 널 채용하지 않을 거야.”송연하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충격을 받아 주먹을 불끈 쥐고 물었다.“원장님, 전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없으면 안 됩니다.”“나도 잘 알지,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원장은 그녀의 직업정신과 기술을 매우 존경하고 인정하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고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이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네가 직접 강 대표를 만나서 사과해야 할 것 같아. 뭔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자리는 지켜야지.”원장은 충고의 말을 건넸고 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전...”그녀에 대한 편견이 사과만으로 해결될 리 없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다.어젯밤 그 물건을 망가뜨릴 뻔한 것 외에,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불만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어젯밤 있었던 일에 복수하면서 이혼을 유도하려는 생각인 듯 했다.“일단 알겠습니다.”“어떡할지 잘 생각해 봐.”송연아는 넋을 잃은 채 사무실에서 나왔다.강세헌의 최종 목적은 이혼이었기에 찾아가서 사과한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게 뻔했다.어젯밤 회장님 서류에 서명까지 했으니 지금 이혼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갑자기 헛구역질하면서 속이 안 좋아진 그녀는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고 다른 병원에 이력서를 넣으려다 이름만 보고 전부 거절한 걸 보고 업계에서 완전히 낙오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이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던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게 심재경밖에 없었고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연아야?”전화기 너머로 심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요?”그녀는 애써 밝은 척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고 심재경은 바로 답했다.“그래.”둘은 레스토랑에서 만나

  • 미친 그날 밤   제14화

    임지훈도 잘 몰랐다. 그 역시도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식사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공교롭게 그 레스토랑이 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몰랐을 것이다.“심 선생님 불러서 여쭤보실래요?”임지훈이 제안하자 강세헌은 담담하게 응했다.전화를 건 지 20여 분이 지나자 심재경이 회사에 도착했고 들어오자마자 말했다.“마침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너 송연아랑 아는 사이야?”심재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은 그의 말을 잘랐고 할 수 없이 심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지, 내 후배야. 저번에 널 치료했던 사람도 연아야.”갈색 소파에 기대있던 강세헌은 의외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에 잠겼고 심재경은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세헌아, 연아한테 좀 잘해줄 수는 없어?”강세헌은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아 미간을 찌푸렸다. 신경 안 쓰는 듯 마음대로 행동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 깊다는 걸 강세헌과 친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그는 심재경과 송연아가 친하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고 자신이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이렇게 편들어 주는 거야? 둘이 무슨 사이야?”“그냥 선후배 사이지. 우리 같은 의대 출신이야. 걔네 아빠가 내연녀를 먹여 살린다고 가족들한테 못되게 군다고 하더라. 그래서 학교 다닐 땐 알바하면서 등록금 냈다던데 참 불쌍한 아이야.”심재경은 이 기회를 틈타 송연아의 딱한 사정을 말했고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랬다.“그래서 더 정이 갔던 거야.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어머니도 있고 수술비도 어마어마할 텐데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라. 걔 일자리까지 잃으면 진짜 버틸 수 없어.”심재경은 최선을 다했다.“무슨 일로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내 체면 한번 좀 살려줘라?”강세헌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딱한 사정에 마음이 조금 흔들린 듯했다. 하지만 그게 그녀를 용서할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그는 한껏 더 나태해진 자세로 기대앉아 비아냥대며 말했다.“용서할 수는 있는데,

  • 미친 그날 밤   제15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고 어젯밤 난폭했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용기를 내어 방 안으로 걸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은화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퇴근하셨네요?”송연아는 인사하며 안을 훑어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으나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대표님 안에 계세요.”송연아는 신발을 갈아신고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강세헌은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대표님?”결혼하기 싫다며 티 낼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가 변하니 밀당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송연아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간곡하게 부탁했다.“일부러 건드린 게 아니라 정말 실수였어요. 죄송해요.”“설마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강세헌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언제부터인지 굽신거리는 송연아의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고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이 사실을 송연아가 알게 된다면 그를 변태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그러나 현실은 생존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려야 하는 불쌍한 신세였다.송연아는 넋을 잃은 채로 그를 바라보다 일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비위를 맞췄다.그녀는 물 한 잔을 따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강세헌을 보며 말했다.“강 대표님, 넓은 아량으로 저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억지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세헌은 비웃으며 말했다.“웃는 게 참 못생겼네요.”긴장을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으나 강세헌 앞에서는 도저히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강세헌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정말 너무 죄송해요.”“사과하려면 성의를 보여야죠.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던가?”

  • 미친 그날 밤   제16화

    송연아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큰 뱀 두 마리에 몸이 칭칭 감겨 숨 쉴 수 없는 상태였고 질식하기 직전 한 줄기의 빛이 보여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살았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눈을 뜨자 웬 남자가 가운이 반쯤 벗겨진 채 앞에 서 있었고 기세등등한 모습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듯 했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송연아는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렸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막 잠에서 깬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했고 약간의 떨림도 느껴졌다.일부러 잡아당길 때는 언제고 놀란 척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세헌은 헛웃음이 나왔다.“남자가 많이 고픈가봐요? 자는 척 연기까지 하고.”송연아는 숨이 막혀왔으나 강력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니거든요!”강세헌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정말요?”그는 서서히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갔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덮쳐버릴 것 같았다.송연아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뻗어 막았다.부드러운 손은 강세헌의 가슴에 닿았고 살이 맞닿는 느낌에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하얀 피부에 가늘고 굴곡이 선명한 손은 매우 예뻤다.손바닥의 온도는 피부를 뚫고 혈액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강세헌은 저도 모르게 흥분됐고 이 모든 게 송연아 때문이라며 그녀를 탓했다.“남자 없이 못 사나봐요? 일부러 절 자극하는 거예요?”송연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참 뻔뻔하네요!”“뻔뻔하다고요? 당신이 먼저 절 만졌잖아요.”꿈속 상황에 겁이 났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팔을 뻗었고 마침 그 손이 가슴에 닿았다.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송연아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이 그의 가슴에 있다는 걸 알아챘고 단단하고 뜨거운 느낌에 깜짝 놀라 손을 거뒀다.손바닥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있었다.그녀는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랐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달콤하고 매혹적인 그녀의 향기는 사람을 유혹했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

  • 미친 그날 밤   제17화

    강세헌은 어제 그녀의 방에서 잠을 잔 게 아니었다. 손댄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방안은 가지런했다.송연아는 샤워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고 그곳에 그녀가 설 위치는 없었다.송연아는 실망한 채 몸을 돌렸고 병원에서 나온 뒤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그녀는 자신한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그날 밤, 그녀는 블루브릿지에 도착했다.입구에 서서 막 들어가려던 찰나 최지현을 발견했다.왜 여기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강세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송연아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최지현은 룸으로 들어갔고 상대는 강세헌이 아니라 대학 시절 최지현한테 구애했던 재벌 2세였다.비록 돈은 많았지만 외모가 별로인 탓에 최지현은 줄곧 그를 거절했었다.‘최지현이 왜 저 사람을 만나는 거지?’호기심이 생긴 송연아는 둘이 어떤 사이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녀는 살금살금 다가가 열린 문틈 사이로 재벌 2세가 다정하게 최지현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상하게도 최지현은 거절하지 않았다.송연아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강세헌과 사귀는 사이 아니었나? 설마 바람피우는 건가? 강세헌이 발견하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그때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주혁아, 우리 이제 헤어지자.”그 말을 들은 주혁은 표정이 굳어졌다.“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너 설마 다른 남자 생겼어?”최지현은 다급하게 설명했다.“그런 거 아니야. 그냥 서로 잘 안 맞는 것 같아서.”주혁은 어이가 없었다.“내 돈은 펑펑 잘만 쓰더니만 갑자기 안 맞는 것 같다고?”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은 더 옹졸해 보였고 주혁은 단호하게 말했다.“난 절대 너랑 못 헤어져.”최지현은 주혁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강세헌이 떠올랐다. 강세헌한테 들키기 전에 하루빨리 토 나올 정도로 못생긴 주혁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최지현은 그가 이별에 쉽게 동의하지

  • 미친 그날 밤   제18화

    전화를 끊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탁자 위로 던졌다.펑 소리가 났다!송연아는 깜짝 놀랐지만 조용히 서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누구든지 자신의 여자가 전 남친과 얽혀 있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강세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그게 ...”그녀가 말을 하려 했다.강세헌은 분노에 휩싸여 송연아를 쳐다보는 것조차 불쾌했다.그는 진정이 되지 않아 이를 갈았고 눈에는 분노가 꽉 차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은 자기 여자의 이러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여기에 있으면 계속 방금 들었던 불쾌감이 떠올랐던지 그는 밖으로 나갔다.송연아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따라 나가며 불렀다.“강 대표님...”강세헌은 분노에 불타며 말했다.“꺼져!”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강세헌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오늘 같은 일을 당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가지 않았다.오늘 여기 온 이유가 강세헌에게 계속 의사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안 된다는 걸 느끼고는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문 앞에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고훈은 여기에 놀러 왔는데 강세헌과 마주치자 웃으며 인사를 했다.“강 대표...”강세헌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곧장 차에 탔다.강세헌은 성질이 나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기에 고훈은 개의치 않았다.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송연아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지만 고훈이 강세헌과 웃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만 보았다. 송연아의 가슴은 순식간에 조여 왔다.지난번에 강세헌이 바로 이 남자를 이용하여 송연아를 망치려고 했었다.‘그렇다면 강세헌이 또 같은 수작을 부리려고 고의로 나를 여기로 오라고 한 건가?’순간, 그녀는 강세헌을 죽이고 싶었다!‘이 남자, 정말 나쁜 놈이다. 아니, 그냥 짐승이다!’‘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토록 짓밟을 수가 있지?’송연아는 뒤돌아서서 숨을 곳을 찾으

Latest chapter

  • 미친 그날 밤   제1265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 미친 그날 밤   제1264화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 미친 그날 밤   제1263화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 미친 그날 밤   제1262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 미친 그날 밤   제1261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 미친 그날 밤   제1260화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 미친 그날 밤   제1259화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 미친 그날 밤   제1258화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 미친 그날 밤   제1257화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