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이 말했다.“이쪽이 어제 당직을 선 최지현 선생이에요.”임지훈은 성큼성큼 걸어가 최지현의 명패를 확인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잠깐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최지현은 넋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어딜요...?”“아이고, 최 선생. 일단 빨리 따라와, 대표님이 기다리실라.”병원장은 최지현을 끌고 당직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병원 원장실이었다.강세헌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원장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창백한 안색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저 타고난 하얀 피부로 보였다. 병원 전체를 뒤덮은 소독수 냄새 덕분에 다행히 피비린내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강세헌은 그렇게 차가운 아우라를 뿜어내며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임지훈은 강세헌의 뒤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의 CCTV는 어젯밤 범인들이 일부러 고장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어제 당직을 선 최지현 선생님입니다. 제가 직접 병원장님과 당직 기록을 확인했습니다.”강세헌은 머리를 들어 최지현을 바라봤다. 최지현은 몸을 흠칫 떨며 생각했다.‘이 사람은 천주그룹 대표잖아?!’“어젯밤 저를 도와준 사람이 당신이에요?”강세헌은 최지현을 훑어보며 물었다. 감히 그를 직시할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네... 맞아요.”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세헌과 아는 사이가 되면 많은 편리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큰 고민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병원에서는 요즘 군병원으로 보낼 인턴을 선출하고 있었다. 인턴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면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경쟁력이 아주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군병원에 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요, 뭐든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물론 결혼도 포함해서요.”최지현을 마주하니 어젯밤 일이 다시 떠올랐던지, 강세헌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다.“아... 그게...”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에 최지현은
전화를 건 사람은 송연아와 친하게 지내는 의대 선배 심재경이었다. 심재경은 그녀보다 두 학번 높았는데, 해외 연수를 다녀온 덕분에 꽤 높은 명성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지금껏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그럼요. 무슨 일인데요?”“아주 중요한 환자가 갑자기 불러서 그러는데, 네가 대신 가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말이야.”송연아는 시계를 힐끗 봤다. 오늘은 외래 없이 오후 수술만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네, 저 시간 돼요.”“주소는 로즈가든 A동 306호야. 가서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돼, 그럼 경비가 문을 열어줄 거야.”“알겠어요.”“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치료할 때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거야.”“명심할게요.”전화를 끊은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로즈가든으로 향했다.로즈가든은 고급 주택구로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역시 경비가 막아서서 방문목적을 물었다.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그는 짧은 통화로 확인을 하고 그녀를 들여보냈다.송연아는 306호 앞으로 와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주러 나온 임지훈은 심재경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송연아는 심재경의 말을 통해 환자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꼈다.“심재경 선생님의 소개로 왔습니다.”임지훈은 송연아가 들고 있는 약품 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그럼요. 심 선생님한테서 다 들었어요. 비밀 유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임지훈은 심재경이 보낸 사람이면 실력은 보증할 거라고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송연아를 데리고 2층에 있는 한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침실은 커튼이 굳게 닫혀 있는 데다가 불을 켜지 않아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송연아는 머리를 숙인 채로 약품 상자를 정리했다. 동시에 의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상처 부위에 당분간은 물이 닿으면 안 돼요. 소독은 하루에 한 번 하시고, 옷은 넓게 입으세요.”송연아는 또 약을 내려놓으며 이어서 말했다.“이건 먹는 약이고, 이건 바르는 약이에요.”“네.”강세헌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짧게 답했다.송연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점심 11시가 되었다. 점심밥은 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병원장의 호출을 받고 원장실에 먼저 가게 되었다.“군병원 인턴은 최지현 선생으로 결정됐어.”병원장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송연아는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제가 가기로 한 거잖아요.”“송 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병원의 대부분 시설이 다 천주그룹에서 기증한 거야. 천주그룹의 강세헌 대표가 최 선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데, 나도 무언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강세헌의 이름을 들은 송연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얼마 전 강세헌의 법적 아내가 되었다. 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신문과 TV에서는 익히 본 적 있는 얼굴이다. 그런데 강세헌과 최지현은 도대체 무슨 사이란 말인가?송연아는 애써 마음속의 당황함을 참으며 차분하게 말했다.“그래요?”“너무 실망하지 마. 송 선생 실력 좋은 건 우리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병원장이 위로를 건넸다. 송연아는 젊은 의사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그도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송연아는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네, 알겠습니다.”강세헌은 다른 여자를 도와줄지언정, 갑자기 생긴 아내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저는 수술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송연아는 더 이상 만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병원장도 한숨을 쉬며 그녀를 잡지 않았다.오후에 잡힌 수술 일정을 전부 끝낸 송연아는 기진맥진한 채로 의자에 앉아
심재경은 송연아를 만나러 오는 길에 우연히 강세헌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최지현이 다가온 것을 보고 그는 차 문을 열며 말했다.“난 먼저 갈게.”심재경이 떠난 후, 최지현은 그의 자리로 와서 앉았다. 강세헌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속으로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강세헌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생각했을 때 도무지 그를 놓칠 수 없었다.병원장은 송연아의 능력을 오래전부터 인정해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병원의 인턴 기회를 그녀에게 넘겨준 건 당연히 강세헌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강세헌을 구워삶아 보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보낼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저 생각 정리 끝났어요.”최지현은 강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세헌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결정할 줄 모른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답을 기다렸다.“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강세헌이 결혼 얘기까지 꺼낸 걸 보면 어젯밤 큰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최지현이 가장 원하는 것이 결혼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욕심쟁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약간의 밀당을 하기로 했다.“그저 대표님이랑 평범한 친구가 되고 싶어요.”강세헌은 입술을 깨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확실해요?”최지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젯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기에 아직은 소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알겠어요. 지현 씨의 선택을 존중하죠.”...병원 안.송연아는 휴게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가기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강세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참에 공부를 더 할 수 있어서 나름 좋기도 했다.똑똑.누군가가 노크하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심재경이었다.심재경은 책을 읽고 있는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여기 숨어서 뭐 해?”“안 숨었거든요.”손연아는 책을 덮어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켰다.“선배는 휴게실에 무슨 일이에요
강세헌은 눈썹을 치켜들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뭐라고?”“됐어.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화를 참는 것쯤은 당연히 해줘야지.”강세헌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재경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만 가지.”임지훈이 차를 몰고 멀어져갔다.심재경은 송연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마침 휴게실로 돌아가 송연아를 찾으려고 할 때, 그녀가 병원 안에서 걸어 나왔다.“연아야.”“선배, 저 이제 돌아가려고요.”미소를 짓는 송연아의 모습에 심재경은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네 어머니 심장 기증자 말이야, 내가 최선을 다해 찾아볼게.”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송연아는 몸이 흠칫 떨렸지만, 그래도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정말요?”심장이식은 기증자를 찾기 어렵기로 유명했다. 어떤 환자는 사망할 때까지도 기증자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감사해요, 선배.”송연아는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심재경은 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다. 만약 강세헌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꿈과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아니에요.”송연아는 송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심재경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심재경과 헤어진 후,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강세헌이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오은화는 처음보다 표정이 훨씬 풀린 송연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기분 좋아 보이네요.”“그냥 문득 아주머니랑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오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저는 뭐죠?”송연아는 신발을 갈아 신다가 말고 거실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혐오 섞인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튿날.송연아가 출근 준비를 할 때, 임지훈이 별장 앞에 나타났다.“송연아 씨, 저는 강 대표님의 비서 임지훈입니다. 잠깐 따라와 주시죠.”임지훈이 문밖에 있는 것을 본 송연아는 황급히 머리를 숙여 얼굴을 숨겼다. 지난번 심재경 대신 환자를 보러 갔을 때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이 사람이 강세헌의 비서라고? 그럼 설마 다친 사람이 강세헌이었던 건가?’“이쪽입니다.”임지훈은 송연아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답했다.“저 출근해야 해요.”이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녀는 강세헌을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괜히 대표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송연아 씨만 손해를 볼 거예요. 병원에서 잘리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오늘 하루를 위해 앞길을 망치고 싶으세요?”임지훈은 덤덤한 말투로 위협했다.송연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버지가 수술비만 내준다면 병원비와 간호인은 그녀의 월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병원 일이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했기에 결국 임지훈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그럼 잠깐 기다려 줄래요? 병원에 얘기는 해놔야 해서요.”송연아는 위층으로 올라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연습용 메스를 가방 안에 넣었다.송연아는 임지훈과 함께 클럽으로 왔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곳에 와본 적 없었다. 이곳에는 끈적하게 붙어 있는 남녀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때 모퉁이에 서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위층 VIP 룸에 강세헌 씨랑 장사하는 그 남자가 왔대. 소문으로는 완전 상또라이라고 하던데?”“아~ 저번에 상미 씨를 죽일 뻔했다던 그 변태?”“맞아 맞아, 그 사람이야.”“쯧쯧, 이번에는 또 누가 걸리려나. 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미 씨 말이야, 목숨을 겨우 건지기는 했지만 평생 임신을 못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지경이 된 거지?”송연아는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여자들의 수다에서 강세헌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손
조금 전 자신을 흔쾌히 변태에게 넘겨준 강세헌을 발견한 송연아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강세헌?”송연아는 강세헌을 손가락질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술 덕분에 담이라도 커졌는지 지금만큼은 그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야! 이 개새끼야!”강세헌의 표정은 완전히 굳었다. 임지훈과 오은화는 곁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송연아는 휘청휘청 안으로 들어와 강세헌의 멱살을 잡았다.“나라고 너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알아? 너 따위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아냐고?!”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송연아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송연아 씨, 당신 미쳤어요?”이는 송연아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것이 아닌 아무 남자나 따라간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송연아의 타협이었지 고집이 아니었다.솔직히 송연아가 고훈을 따라 나갈 때, 그는 약간 후회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송연아는 그의 서류상 아내였으니 말이다.“미친 건 당신이지.”송연아는 술김에 강세헌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자신을 골탕 먹인 못된 남자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강세헌은 싸늘한 표정으로 송연아의 손목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송연아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이거 놔. 이거 놔라고...!”쾅당!침실 문을 거칠게 걷어찬 강세헌은 송연아를 뿌리쳤다. 그러자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맨바닥에 무릎을 찍었다.“아!”송연아는 무릎을 감싸 안고 신음을 냈다. 순간 강세헌의 머릿속에는 그날 밤 들었던 신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는 최지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목소리였다.“강세헌 씨!”송연아는 머리를 들어 강세헌을 노려봤다. 그가 폭력을 쓸 정도의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덤덤한 표정을 일관했다.강세헌은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송연아 씨, 취한 거 아니었어요?”
“돌려보내. 그리고 커피 한 잔 타 줘.”강세헌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러고는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고 대표님이 만나주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강세헌이 비서를 힐끗 노려보자, 그는 머리를 숙였다.“데려와.”강세헌은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비서는 금방 커피와 함께 고훈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훈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그 여자 어디에서 일해?”강세헌은 커피를 들며 비서에게 나가라는 눈치를 줬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빛으로 고훈을 바라봤다.“내 꼴을 봐봐!”고훈은 자기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목에는 선명한 상처가 있었고, 손목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나 어제 과다 출혈로 죽을 뻔했다고!”강세헌은 고훈의 상처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어쩌다 다친 거야?”“그 여자 칼을 갖고 있었어. 칼을 어찌나 잘 쓰는지 순간 킬러한테 걸린 줄 알았다니까? 병원에 가니 의사가 조금만 더 깊이 그었으면 대동맥이 파열됐을 거래. 예쁜 여자랑 좀 즐겨보려다가 목숨만 잃을 뻔했지, 뭐. 그래서 그 여자 어디서 일하는데?”강세헌은 고훈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듣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는 천천히 등받이에 기대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여자를 찾아서 뭐 하게?”“당연히 복수해야지.”고훈은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송연아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강세헌에게 물으러 온 것이었다.“복수를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하아... 됐어. 내가 알아 할게. 나한테 걸리면 과장이 아니라 진짜 손목을 잘라버릴 거야.”고훈은 표독한 표정으로 말했다.병원.검사실에서 나온 송연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싸늘한 냉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저주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송닥, 오늘 최닥 송별회 하는 거 잊지 않았죠? 저녁 8시, 성한호텔 B동. 잊지 마요.”“네.”동료 한 명이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