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은 눈썹을 치켜들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뭐라고?”“됐어.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화를 참는 것쯤은 당연히 해줘야지.”강세헌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재경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만 가지.”임지훈이 차를 몰고 멀어져갔다.심재경은 송연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마침 휴게실로 돌아가 송연아를 찾으려고 할 때, 그녀가 병원 안에서 걸어 나왔다.“연아야.”“선배, 저 이제 돌아가려고요.”미소를 짓는 송연아의 모습에 심재경은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네 어머니 심장 기증자 말이야, 내가 최선을 다해 찾아볼게.”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송연아는 몸이 흠칫 떨렸지만, 그래도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정말요?”심장이식은 기증자를 찾기 어렵기로 유명했다. 어떤 환자는 사망할 때까지도 기증자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감사해요, 선배.”송연아는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심재경은 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다. 만약 강세헌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꿈과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아니에요.”송연아는 송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심재경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심재경과 헤어진 후,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강세헌이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오은화는 처음보다 표정이 훨씬 풀린 송연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기분 좋아 보이네요.”“그냥 문득 아주머니랑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오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저는 뭐죠?”송연아는 신발을 갈아 신다가 말고 거실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혐오 섞인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튿날.송연아가 출근 준비를 할 때, 임지훈이 별장 앞에 나타났다.“송연아 씨, 저는 강 대표님의 비서 임지훈입니다. 잠깐 따라와 주시죠.”임지훈이 문밖에 있는 것을 본 송연아는 황급히 머리를 숙여 얼굴을 숨겼다. 지난번 심재경 대신 환자를 보러 갔을 때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이 사람이 강세헌의 비서라고? 그럼 설마 다친 사람이 강세헌이었던 건가?’“이쪽입니다.”임지훈은 송연아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답했다.“저 출근해야 해요.”이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녀는 강세헌을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괜히 대표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송연아 씨만 손해를 볼 거예요. 병원에서 잘리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오늘 하루를 위해 앞길을 망치고 싶으세요?”임지훈은 덤덤한 말투로 위협했다.송연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버지가 수술비만 내준다면 병원비와 간호인은 그녀의 월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병원 일이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했기에 결국 임지훈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그럼 잠깐 기다려 줄래요? 병원에 얘기는 해놔야 해서요.”송연아는 위층으로 올라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연습용 메스를 가방 안에 넣었다.송연아는 임지훈과 함께 클럽으로 왔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곳에 와본 적 없었다. 이곳에는 끈적하게 붙어 있는 남녀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때 모퉁이에 서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위층 VIP 룸에 강세헌 씨랑 장사하는 그 남자가 왔대. 소문으로는 완전 상또라이라고 하던데?”“아~ 저번에 상미 씨를 죽일 뻔했다던 그 변태?”“맞아 맞아, 그 사람이야.”“쯧쯧, 이번에는 또 누가 걸리려나. 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미 씨 말이야, 목숨을 겨우 건지기는 했지만 평생 임신을 못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지경이 된 거지?”송연아는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여자들의 수다에서 강세헌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손
조금 전 자신을 흔쾌히 변태에게 넘겨준 강세헌을 발견한 송연아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강세헌?”송연아는 강세헌을 손가락질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술 덕분에 담이라도 커졌는지 지금만큼은 그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야! 이 개새끼야!”강세헌의 표정은 완전히 굳었다. 임지훈과 오은화는 곁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송연아는 휘청휘청 안으로 들어와 강세헌의 멱살을 잡았다.“나라고 너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알아? 너 따위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아냐고?!”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송연아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송연아 씨, 당신 미쳤어요?”이는 송연아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것이 아닌 아무 남자나 따라간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송연아의 타협이었지 고집이 아니었다.솔직히 송연아가 고훈을 따라 나갈 때, 그는 약간 후회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송연아는 그의 서류상 아내였으니 말이다.“미친 건 당신이지.”송연아는 술김에 강세헌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자신을 골탕 먹인 못된 남자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강세헌은 싸늘한 표정으로 송연아의 손목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송연아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이거 놔. 이거 놔라고...!”쾅당!침실 문을 거칠게 걷어찬 강세헌은 송연아를 뿌리쳤다. 그러자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맨바닥에 무릎을 찍었다.“아!”송연아는 무릎을 감싸 안고 신음을 냈다. 순간 강세헌의 머릿속에는 그날 밤 들었던 신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는 최지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목소리였다.“강세헌 씨!”송연아는 머리를 들어 강세헌을 노려봤다. 그가 폭력을 쓸 정도의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덤덤한 표정을 일관했다.강세헌은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송연아 씨, 취한 거 아니었어요?”
“돌려보내. 그리고 커피 한 잔 타 줘.”강세헌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러고는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고 대표님이 만나주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강세헌이 비서를 힐끗 노려보자, 그는 머리를 숙였다.“데려와.”강세헌은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비서는 금방 커피와 함께 고훈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훈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그 여자 어디에서 일해?”강세헌은 커피를 들며 비서에게 나가라는 눈치를 줬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빛으로 고훈을 바라봤다.“내 꼴을 봐봐!”고훈은 자기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목에는 선명한 상처가 있었고, 손목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나 어제 과다 출혈로 죽을 뻔했다고!”강세헌은 고훈의 상처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어쩌다 다친 거야?”“그 여자 칼을 갖고 있었어. 칼을 어찌나 잘 쓰는지 순간 킬러한테 걸린 줄 알았다니까? 병원에 가니 의사가 조금만 더 깊이 그었으면 대동맥이 파열됐을 거래. 예쁜 여자랑 좀 즐겨보려다가 목숨만 잃을 뻔했지, 뭐. 그래서 그 여자 어디서 일하는데?”강세헌은 고훈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듣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는 천천히 등받이에 기대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여자를 찾아서 뭐 하게?”“당연히 복수해야지.”고훈은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송연아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강세헌에게 물으러 온 것이었다.“복수를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하아... 됐어. 내가 알아 할게. 나한테 걸리면 과장이 아니라 진짜 손목을 잘라버릴 거야.”고훈은 표독한 표정으로 말했다.병원.검사실에서 나온 송연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싸늘한 냉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저주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송닥, 오늘 최닥 송별회 하는 거 잊지 않았죠? 저녁 8시, 성한호텔 B동. 잊지 마요.”“네.”동료 한 명이 송
사람들 모두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냐며 의아했고 최지현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처음은 잘못 들었다고 해도 지금은?’최지현은 뭔가를 알아내려고 송연아와 강세헌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송닥, 무슨 일 있어요?”최지현은 떠보듯 물었다.송연아는 당장이라도 자신이 강세현의 와이프라고 밝힌 뒤 직접 해명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그 남자는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직장까지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할아버지가 급한 일 있으시다고 연락이 왔는데, 하필 마침 강 대표님도 일이 있으시네요. 참 이런 우연이, 하하.”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그녀의 모습에 강세헌은 한 방을 날렸다. “저희 할아버지한테서도 마침 연락이 왔는데, 혹시 어느 쪽으로 가세요? 같은 방향이면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강한 정신력으로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고, 중간에 테이블만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찻잔을 그의 얼굴에 내려치고 싶은 송연아였다.“대표님 정말 농담 잘하시네요. 저희가 어떻게 같은 길일 수가 있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말을 마친 송연아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나왔고 최지현은 불안한 눈빛으로 강세헌을 바라보며 물었다.“송닥이랑 아는 사이에요?”“몰라요.”강세헌은 싸늘한 말투로 그녀의 말에 답한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지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그를 이곳에 오라고 한 건 병원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모두가 그녀와 강세헌의 관계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데려다줄게요.”행여나 밖에서 송연아와 이야기를 나누진 않을까 걱정이 된 그녀는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 어쨌든 그날 밤은 송연아였으니까.호텔 밖으로 나온 강세헌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곳에 송연아는 없었다. 도망치듯 나온 송연아가 이곳에서 그를 기다릴 리가 없었고 그녀는 일찌감치 차를 타고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송연아는 몸을 돌리며 실수로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강세헌은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고 표정은 몹시 험악해 보였다.“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는 다급하게 설명하며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우려고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손목이 으스러질 정도의 큰 힘이 그녀를 덮쳤다.‘아파!’부러질 듯 아픈 느낌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고 강세헌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화냈다.“더러운 손 치워요!”말하면서 그는 송연아를 힘껏 밀쳤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반응을 못 한 탓에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캐비닛 모서리에 부딪혔다.극심한 통증에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아 손을 뻗어 만져보니 역시나 피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줍는 강세헌의 모습을 보았고 행동만으로도 그 물건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그는 상자 속의 내용물이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고 다행히도 튼튼한 상자 덕에 안에 있던 물건은 그대로였다.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방금 이걸 깨뜨릴 뻔한 송연아를 생각 하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그는 충혈된 눈으로 싸늘하게 송연아를 노려봤다.“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송연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극심한 통증이 신경까지 건드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지만, 꾹 참으며 일어났다.“미안해요...”이 물건이 강세헌한테 매우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미안?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뻔뻔스러운 것도 모자라 대범하기까지 한 그녀의 행동에 강세헌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서서히 송연아를 향해 다가갔고 사람을 짓누르는 기세에 간담이 서늘해진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치며 벽에 부딪혔다.“다가오지 마요...”그는 손으로 있는 힘껏 그녀의 턱을 잡았다.뼈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아무런 소리도 지
강의건은 마음속으로 이미 계획하고 있었고 전 집사도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저번에 알아보라고 하셨던 심장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가 구급상자를 들고 오자 전 집사는 바로 입을 닫았다.소파에 앉아 있던 강의건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이쪽으로 따라와.”강의건은 서재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송연아는 구급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뒤따라 걸아갔다.강의건은 의자에 앉더니 슬픈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세헌이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서 내가 세헌이를 키운거나 다름없었어. 학창 시절에는 기숙사 생활했고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인수받으며 바쁜 생활을 보냈지. 그래서 집은 거의 안 와.”강세헌의 아버지는 그의 큰아들이었다. 자식 잃은 슬픔은 역시나 수십년이 지나도 치유되기 힘들었고 목소리에서 슬픔이 느껴졌다.강세헌이 돌아오기를 꺼리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강의건은 자신이 죽으면 강세헌이 둘째네 가족을 어떻게 대할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었다.강의건은 강세헌 옆에서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원한 감정이 사라지게끔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했다. 가족 사이에 서로 피 다투며 싸우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다.“할아버지.”송연아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송태범의 욕심 때문에 시집온 건 맞으나 강의건은 단 한 번도 그녀를 깔보지 않았고 줄곧 잘해줬다.강의건은 걱정하지 말라며 손짓했다.“네가 좋은 애란걸 알고 있으니까 이 결혼을 허락한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참 충직하고 착한 사람이었어. 네가 그런 사람 손녀니까 반드시 좋은 인품을 물려받았을 거로 생각해. 그래서 난 네가 옆에 남아서 세헌이를 돌봐줬으면 좋겠어.”“할아버지, 사랑하는 여자가 옆에 있는 게 세헌 씨한테 제일 좋지 않을까요...”송연아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으나 강의건 귀에는 강세헌을 떠날 핑계를 찾는 것처럼 들렸다.지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었던
“원장님이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송연아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업계에서 낙오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의사로서의 직업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어. 다른 병원에서도 널 채용하지 않을 거야.”송연하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충격을 받아 주먹을 불끈 쥐고 물었다.“원장님, 전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없으면 안 됩니다.”“나도 잘 알지,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원장은 그녀의 직업정신과 기술을 매우 존경하고 인정하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고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이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네가 직접 강 대표를 만나서 사과해야 할 것 같아. 뭔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자리는 지켜야지.”원장은 충고의 말을 건넸고 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전...”그녀에 대한 편견이 사과만으로 해결될 리 없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다.어젯밤 그 물건을 망가뜨릴 뻔한 것 외에,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불만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어젯밤 있었던 일에 복수하면서 이혼을 유도하려는 생각인 듯 했다.“일단 알겠습니다.”“어떡할지 잘 생각해 봐.”송연아는 넋을 잃은 채 사무실에서 나왔다.강세헌의 최종 목적은 이혼이었기에 찾아가서 사과한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게 뻔했다.어젯밤 회장님 서류에 서명까지 했으니 지금 이혼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갑자기 헛구역질하면서 속이 안 좋아진 그녀는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고 다른 병원에 이력서를 넣으려다 이름만 보고 전부 거절한 걸 보고 업계에서 완전히 낙오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이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던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게 심재경밖에 없었고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연아야?”전화기 너머로 심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요?”그녀는 애써 밝은 척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고 심재경은 바로 답했다.“그래.”둘은 레스토랑에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