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은 혼자 낮은 소리로 되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렸다.재빨리 송연아 앞으로 가서 몸으로 송연아를 최대한 안 보일 수 있게 가려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사람 강세헌의 사람이예요. 미디브에 스카우트하러 왔대요.”고훈이 말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 왕호경이 있었다. 이때 제프가 송연아를 불렀다. “제인 씨, 왕 선생님이 진심으로 제인 씨 만나 뵙고 싶어 해요. 조금만 시간 내줄 수 없을까요?”고훈은 어안이 벙벙했다. 강세헌이 스카우트하려던 사람이 송연아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기가 막혔다.송연아는 제프를 보며 말했다. “낮에도 말했듯이 생각 없어요. 고민하고 싶지도 않고요.”말이 끝나자마자 송연아는 고훈과 같이 자리를 떠났다. 제프도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제프는 왕호경을 보며 말했다. “저에게 알려주셨던 얘기들은 다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승낙을 안 하네요.”왕호경은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왕호경의 눈이 반짝이더니 제프를 향해 말했다. “제가 봤을 때, 제프 씨도 적합한...”제프는 손사래를 치며 왕호경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저는 아니에요.”“하지만...”“아니라니까요?!” 제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왕호경은 풀이 죽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송연아에 이끌려 자리를 벗어난 고훈이 물었다. “반년 만에 영어를 이렇게 잘할 수 있어요?”송연아의 영어 실력은 듣는 사람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송연아는 별일 아닌 듯 대답했다. “원래 좀 했었어요.”송연아의 말에 할 말이 없었지만 고훈은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영어 외에 또 어떤 게 가능해요?”“불어, 독일어, 스페인어요.” 송연아가 대답했다. 고훈은 송연아 능력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알아요?”“배울 수밖에 없었어요.” 송연아는 대답했다. “배울 수밖에요?” 고훈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송태범의 목적을 생각하니 강세헌이 떠올랐고 갑자기 울컥했다. 송연아는
“어떻게...”고훈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송연아가 입을 였었다. “미디브 배후에 있는 투자자예요.”송연아의 말에 고훈이 대답했다. “네. 그래 보여요. 로픽도 유명한 재벌가예요. 19세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인류역사상 첫 억만장자예요. 지금까지 로픽 패밀리가 미국 석유를 독점한 기간이 85년이예요. 이 외에도 여러 분야에 나뭇가지처럼 많이 분포되어 있어요.”고훈은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들어 송연아에게 물었다. “이것을 나에게 보여준 이유는요?”고훈의 물음에 송연아가 대답했다.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미디브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요. 여기 일하는 분위기도 너무 좋고요. 오늘 미디브 앞에 있던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왕호경이에요. 제약 쪽 기업인이죠. 포부도 있고 꿈도 큰 사람이에요. 여기 온 이유가 아마 미디브 연구 성과가 전 세계에서 독점하는 것을 막기위해서...”송연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제 생각은 고훈씨가 미디브 배후에 있는 투자를 분산시킬 수 없을지 해서요. 이러면 한 곳에서 독점하는 것은 막을 수 있어요.”고훈은 바로 대답했다. “나는 안 돼요.”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강세헌은 가능하죠. 연아 씨가 모를 수도 있는데 연아 씨가 없어진 이후부터 강세헌은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일이 년만 더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어요.”고훈말을 들은 송연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연예인도 아닌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는 말이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아 씨가 강세헌 만나러 못 가니까 이 일은 나에게 맡기세요.” 고훈이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송연아는 자료를 건네며 말했다. 고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네요.”고훈은 송연아가 왜 외부에 본인이 죽었다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얘기를 하지 않는 데는 송연아만의 생각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한가지, 송연
송연아는 이른 아침부터 펼쳐진 황당한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송연아는 고훈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아침 사 왔어요. 이제부터 날마다 아침 배달하러 올게요.” 고훈은 묻지도 않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송연아는 하얀 레이스가 달린 빈티지 스타일의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있었다.발목까지 오는 치마 길이는 송연아의 배를 전부 감싸고 있었다. 송연아는 배를 만지며 고훈을 따라 주방으로 걸어갔다. “나에게 아침 배달할 시간에 귀국해서 강세헌이나 설득해요.”송연아의 말에 고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재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듣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같이 먹으면 갈게요.”송연아는 천천히 걸어와 의자에 앉아 고훈을 보며 말했다. “고훈 씨. 어린애 아니잖아요. 유치하게 행동하지 마세요.”고훈은 불쾌한 듯 대답했다. “뭐가 유치한데요?”고훈은 진짜 아침만 배달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딘가에서 여자들은 자상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이렇게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하는 행동들이 유치하다고요.” 송연아가 대답했다. 고훈은 눈을 깜박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오늘 아침이 입에 안 맞는다는 뜻이죠? 다음번에는 다른 메뉴로...”“고훈 씨...”“됐어요. 빨리 앉아 아침이나 먹어요. 저 비행기 시간 늦어요.” 고훈은 송연아 말을 끊었다. 송연아는 한숨만 내쉬었다. “한숨 자주 쉬면 태아에 안 좋아요. 빨리 밥이나 먹어요.” 고훈은 송연아를 재촉했다. “양치만 하고 올게요.” 송연아가 대답했다.....고훈이 귀국했다. 그리고 왕호경도 귀국했다. 고훈과 같은 비행기였다. 더 교묘한 것은 고훈이 강세헌 회사에 왔을 때 왕호경도 있었다.왕호경이 고훈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듯했다. 왕호경의 실행계획서는 이미 다 완성되었다.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왕호경은 인공심장 관련 지식과 개념을 많이 알게 되어 더 자신이 있었다. 그
“얘기 다 했어?”고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어느 정도...”“그럼 꺼져!”강세헌은 낮은 목소리로 말 했지만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훈은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강세헌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세헌. 네가 없으면 일이 안 될 거라는 생각 따윈 집어치워. 이번 일은 내가 할 거야. 돈 많이 벌어. 나중에 죽은 후에 써보지도 못한 채 돈만 잔뜩 남아있게.”말이 끝나자마자 고훈은 사무실을 나갔다. 강세헌이 대꾸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강세헌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강세헌이 어떤 성격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무조건 가차 없이 공격당할게 뻔했다. 고훈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강세헌이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 안에서 강세헌은 손에 쥔 볼펜을 내려 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고훈의 말들이 신경 쓰였는지 마음이 심란해 보였다.강세헌은 내선 전화 버튼을 누르고 말해다. “진원우보고 들어오라고 해.”전화기 너머로 장 비서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원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강 대표님.”강세헌은 진원우가 들어오자마자 자료를 건네며 말했다. “로픽 패밀리를 조사해 봐. 사소한 것까지 전부.”진원우는 두 눈을 깜박이며 중얼거렸다. “저희와 비즈니스 관계가 없는데…”진원우는 회사 업무를 빠짐없이 전부 파악하고 있다. “토 달지 말고 해 .” 강세헌은 귀찮아하며 대답했다.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아니면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강현우는 자주 두통을 앓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참고는 있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빛에 비쳐 유난히 더 눈에 띄었다. 송연아가 죽은 후, 강세헌은 정서가 불안정해져 쉽게 화냈고 성격도 더 거칠어졌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송연아를 빨리 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진원우 머릿속에 맴돌았다.진원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훈은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몸을 돌렸고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뒤에서 남의 흉이나 보고 일부러 먹칠하고 헐뜯는 사람이 더 못된 사람 아니에요? 우리 강 대표님, 성격은 안 좋아도 고훈 씨 보다는 훨씬 더 남자다워요!”진원우가 강세헌의 심부름을 하러 가는 길에 회사를 나왔다가 듣게 되었다. 회사 대문을 이제 막 나왔는데 고훈의 터무니 없는 말들이 들려 말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던 것이다.고훈이 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훈 씨. 남자로 태어나서 입이 왜 이렇게 가벼워요. 비즈니스가 항상 강 대표님보다 안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아요?”고훈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무엇 때문인데요?”묻자마자 고훈은 후회했다.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본인이 강세헌보다 못났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물었던 말을 다시 번복하려 할 때 진원우가 먼저 대답했다. “고훈씨는 비열하고 옹졸해요. 무능하고 뻔뻔하면서도 교활하고 어리석어요.”고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진원우 씨! 머리에 똥만 들었어요?”“나는 고훈씨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드린 것뿐이에요. 머리에 똥이 들어가 있는 게 누군지 본인에게 물어봐요.” 진원우는 하찮은 표정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같이 한가한 인간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말을 끝내고 진원우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고훈은 갑자기 방금까지 했던 전화를 끊지 않은 게 생각났다. 진원우와 한 대화를 송연아가 들었을 생각을 하니 고훈은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천천히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보니 통화 중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방금 한 얘기들을 송연아가 전부 들어버렸다. 고훈은 송연아 앞에서 이미지만 더 깎이는 꼴이 됐다. 전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뺨을 여러 대 때리고 싶었다. 왜 하필 강세헌 회사 앞에
송연아는 어리둥절했고, 잠시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익명으로 보냈는데 진원우가 이렇게 빨리 회신이 올 줄은 몰랐다. 불현듯 진원우가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진원우는 강세헌을 도와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익명 메일 하나 정도 확인하는 것은 진원우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원우에게 자신이 송연아임을 알릴 수 없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에 또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도대체 누구예요? 내가 로픽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메일로도 진원우가 경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송연아가 보낸 자료도 쉽게 믿지 않았다. 어떻게 답장할지 몰라 당황해하던 송연아는 갑자기 고훈을 떠올렸다. [저 고훈이예요.]누군지 대답하지 않으면 끝까지 추적할 것 같았다. 진원우도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고훈이라는 말에 의외인 느낌도 받은 듯했다.송연아는 오늘 고훈이 강세헌을 만나러 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내용으로 또 한 통의 메일을 썼다.[오늘은 강세헌에게 로픽패밀리와 미디브연구센터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만났어요.]진원우는 메일을 보고 나서야 강세헌이 갑자기 로픽을 조사하라고 한 것이 이해됐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왜 직접 휘두르지 않아요?] 진원우가 물었다. [능력이 안 돼서요.]송연아는 고훈을 못 믿는 게 아니다. 단지 일 처리하는 능력은 확실히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송연아의 회신에 진원우는 소리내 웃었다.생각보다 고훈이 본인 주제 잘 알고 있는 듯했다.오늘 메일 내용은 진원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진원우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송연아는 TV를 보면서 안도의 숨을 연신 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얼렁뚱땅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배 속에 있는 아기도 엄마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조금 전까지 조용히 있다가 지금 다시 배 안에서 빠르게 움직였다.아기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배가 심하게 움직였다. 송연아는 자세를 고쳐 옆으로 누웠고 흉터가 있는 볼이 베개 아래에 파묻혔다.
강세헌은 계속된 불면증과 과도 복용한 수면제 때문에 두통이 심해졌다. 진원우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강세헌을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해 보니 역시나 수면제 부작용이었다. 의사는 계속 이렇게 과다복용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의사가 진정제를 놓자, 강세헌은 그제야 잠이 들었다. 진원우는 병원 복도에 나와 임지훈에게 전화했다. “대표님 지금 병원에 있어. 의사 선생님 얘기로는 수면제를 더 이상 복용하면 안 된대. 물리적인 방법으로 잠이 들어야 한대. 그런데 너도 대표님 성격 알잖아...”진원우는 혼자서 어떻게 할지 몰라 임지훈에게 전화해 상의하고 있었다. 진원우가 복도 창문 앞에서 전화하며 서성일 때 송연아가 걸어왔다. 흰 가운을 입고 있었고 모자는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최대치로 푹 눌러썼으며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병문 앞에 멈춰선 송연아는 유창한 영어로 진원우를 향해 말했다. “환자분 잠깐 검진이 필요합니다.”“나 지금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 진원우는 임지훈에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진원우는 송연아 앞으로 걸어와 물었다. “방금 검진 다 하지 않았나요?”“저는 수면 깊이를 측정하러 왔습니다. 병실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송연아가 대답했다. 진원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연아는 직업의 편리를 이용하여 순조롭게 병실에 혼자 들어갔다. 이 병원은 미디브 연구센터 소속 병원이다. 강세헌이 병원에 들어왔을 때 송연아는 이미 강세헌을 발겼했다. 단지 다른 의사가 담당하게 되어 송연아가 간섭할 수 없었다. 대신 추후 진료는 그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송연아가 하기로 했다. 사실 송연아는 수면 깊이를 측정하러 온 게 아니다. 강세헌은 오늘, 이 진정제를 맞고 하루 내내 푹 잘 수 있다. 단지 송연아는 이 핑계로 강세헌을 보고 싶었다. 송연아가 천천히 걸어와 강세헌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7개월 만이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송연아의 눈이 누워있는 강세헌 얼굴로 향했고 떨리는 눈빛은 벌써
진원우는 재빨리 다가가 설명했다. “이분은 제인입니다. 주치의예요.”강세헌은 제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날카로운 눈빛이 당장이라도 마스크를 벗겨 제인 얼굴을 보려는 것 같았다.강세헌은 왜 의사가 이렇게 당황해하는지 의아했다. 마스크, 스카프, 무엇인가 위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송연아는 담담한 척 일부러 악센트까지 넣어 예전의 영어 발음과 전혀 다른 말투로 말했다. “저는 Jan이예요. 한글로 제인. 저를 어떻게 부르든지 상관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 불면증이 이미 건강에 영향을 줬어요. 치료를 받아야...”“웁...”송연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은 송연아 얼굴의 마스크를 벗겼다. 순식간에 발생한 상황에 송연아는 다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세헌은 흠칫 놀랐다. 너무 못생겼다는 느낌밖에 없었다.주근깨가 얼굴 전체에 퍼져있었고 흐릿해 보이는 남색 눈동자, 빨간 립스틱은 입술 주위에까지 묻어있었다. 개미 다리만 한 가짜 속눈썹을 하고 있었고 콧등의 점에는 털이 한 가닥 자라 있었다. 몸에는 문신까지 있는 듯했다. 강세헌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강세헌 평생 이렇게 비참한 여자의 얼굴은 처음이다.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세헌 옆에 있던 진원우는 구역질이 나는 듯했다.세상에 이 정도로 못생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진원우는 두 눈을 의심했다. 송연아는 강세헌이 불쾌해하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사실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주고 싶었다. 모자를 벗으니 광택도 없이 메말라 있는 금빛 파마머리는 새 둥지처럼 부풀어 있었고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주치의 바꿔줘.” 강세헌은 뒤돌아서 진원우에게 말했다. 강세헌의 요청을 진원우는 충분히 동감할 수 있었다. “지금 바로 다녀...”“이 선생님은 능력이 대단한 분이세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마세요.” 송연아는 다시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꼈다. “저는 임산부예요. 병원에서 임산부는 특별 케어를 해주고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