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우는 재빨리 다가가 설명했다. “이분은 제인입니다. 주치의예요.”강세헌은 제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날카로운 눈빛이 당장이라도 마스크를 벗겨 제인 얼굴을 보려는 것 같았다.강세헌은 왜 의사가 이렇게 당황해하는지 의아했다. 마스크, 스카프, 무엇인가 위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송연아는 담담한 척 일부러 악센트까지 넣어 예전의 영어 발음과 전혀 다른 말투로 말했다. “저는 Jan이예요. 한글로 제인. 저를 어떻게 부르든지 상관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 불면증이 이미 건강에 영향을 줬어요. 치료를 받아야...”“웁...”송연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은 송연아 얼굴의 마스크를 벗겼다. 순식간에 발생한 상황에 송연아는 다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세헌은 흠칫 놀랐다. 너무 못생겼다는 느낌밖에 없었다.주근깨가 얼굴 전체에 퍼져있었고 흐릿해 보이는 남색 눈동자, 빨간 립스틱은 입술 주위에까지 묻어있었다. 개미 다리만 한 가짜 속눈썹을 하고 있었고 콧등의 점에는 털이 한 가닥 자라 있었다. 몸에는 문신까지 있는 듯했다. 강세헌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강세헌 평생 이렇게 비참한 여자의 얼굴은 처음이다.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세헌 옆에 있던 진원우는 구역질이 나는 듯했다.세상에 이 정도로 못생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진원우는 두 눈을 의심했다. 송연아는 강세헌이 불쾌해하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사실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주고 싶었다. 모자를 벗으니 광택도 없이 메말라 있는 금빛 파마머리는 새 둥지처럼 부풀어 있었고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주치의 바꿔줘.” 강세헌은 뒤돌아서 진원우에게 말했다. 강세헌의 요청을 진원우는 충분히 동감할 수 있었다. “지금 바로 다녀...”“이 선생님은 능력이 대단한 분이세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마세요.” 송연아는 다시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꼈다. “저는 임산부예요. 병원에서 임산부는 특별 케어를 해주고
눈앞의 거만한 여자에 진원우는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아직도 일이 제대로 잘 안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또 약을 팔러 왔나...”진원우는 귀찮은 듯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약 파는 사람이면 당신은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스토커예요.” 구애린이 진원우 말에 대꾸했다. 진원우는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구애린은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자랐다고 했는데, 약을 판다는 뜻을 정확히 알고 있자 진원우는 상당히 의아했다. 그녀는 진원우의 의아함이 눈에 보였는지 바로 대답했다. “여기서 생활하기는 했지만 아빠 엄마 모두 한국분이에요. 제가 한국말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구애린은 본인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옆에 있는 강세헌의 눈치를 봤다. 그녀를 상대조차 하기 귀찮아하는 것이 강세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구애린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제가 동생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왜 항상 저를 볼 때마다 그런 표정 지어요? 제가 뭐 빚진 거라도 있어요? 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알겠어요. 저도 눈앞에서 사라져 드릴 수 있어요. 단 엄마 산소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주셔야...”구애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은 차에 탔다. 구애린은 강세헌 뒤를 쫓아가 계속 얘기하려 했지만, 진원우가 가로막았다.“어이. 좀 조신하게 있는 게 어때? 여자가 말이야.”진원우의 말이 구애린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듯, 구애린은 갑자기 크게 화를 냈다. “조신이요? 본인이나 조신하세요. 설마 숫총각은 아니죠?”진원우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미쳤나.”진원우는 살면서 훤히 밝은 대낮에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하는 경거망동한 여자는 처음봤다.“지금 누구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구애린은 진원우 팔을 잡아당기며 물었고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원우도 구애린의 이런 모습에 화가 나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놔. 안 놓으면 나도 가만 안 있어.”구애린은 진원우가 손찌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방법을 찾은 구애린은 자신만만하였고 더 이상 진원우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혼자 웃으며 뒤돌아섰다. 오늘 구애린에게는 수확이 없지는 않았다. 돌파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진원우 입장은 또 달랐다. 앞으로 걸으면서 구애린이 또 따라올까 봐 계속 뒤돌아봤다.다시 그녀에게 걸리면 인생이 끝장날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송연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는 제인 주치의예요. 환자에게 약물치료 해 드려야 하는데, 지금 시간 되나요?”진원우는 대답했다.“네. 가능합니다. 저희는 오스턴 호텔 909호에 있습니다.”송연아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울 앞에서 얼굴 상태를 보며 ‘빈틈’이 없음을 확인하고 현관을 나섰다. 오스턴 호텔.진원우는 강세헌 방으로 건너왔다. “대표님. 조금 있다가 제인 주치의가 와서 약물치료 해 드릴 겁니다.”강세헌은 창문 앞 소파에 앉아 다리에 노트북을 놓고 작업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메일 한 통 보내고 나서야 컴퓨터를 덮었다. 그리고 몹시 피곤한 듯 손으로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진원우는 구애린 때문에 강세헌 차를 타지 못했기에 강세헌이 로픽 패밀리와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었다.한참을 고민한 진원우가 물었다.“일이 잘 해결됐어요?”강세헌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어느 정도.”물론 상대방의 흠집을 잡고 있었지만 보자마자 칼을 들이밀며 위협하면 안 된다. 단단한 돌 두 개가 부딪히면 둘 다 망가지듯이 강한 자끼리 대책 없이 싸우면 쌍방 모두에게 손해였다. 자칫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게 더 유리할지 생각해야 한다. 적당히 둥글게 아니면 틀에 짜인 것처럼 아주 각지게, 둘 다 겸비해야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선만 잘 지키면 전반상황을 자연히 컨트롤할 수 있다.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 얘기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순조로웠어요?”진원우는 약간 의외
강세헌이 토 나올 정도로 못생긴 여자 앞에서 옷을 벗을 생각을 하니 진원우는 저도 모르게 상상이 갔고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원우는 방문을 닫고 복도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지금 이 순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렇게 생긴 여자를 마주하면 불면증이 더 심각해질 것 같았다. 어쩌면 악몽을 꿀지도 몰랐다. 진원우는 건강한 자신에게 더없이 고마웠다. 방 안에서는 강세헌이 옷을 벗으며 못 생김의 극치를 보여주는 여자를 향해 물었다 “내가 벗는 거 보고 있을 거예요?”송연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의사들 앞에서 누구나 다 똑같아요.”강세헌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이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세헌은 자포자기한 듯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정갈한 쇄골과 건장한 가슴이 한눈에 들어왔다. 송연아는 눈을 피하며 속으로 욕했다. ‘강세헌, 미쳤어. 어떻게 여자 앞에서 이렇게 벗을 수 있어?’강세헌은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왜 다 똑같다면서요?”강세헌은 벗은 셔츠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 벨트를 풀며 욕실로 걸어갔다. 송연아는 욕실 안까지 볼 수가 없어 강세헌 뒤에 서서 말했다.“욕조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몸을 담그세요.”분위기가 확 달아올랐고 강세헌은 욕조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송연아는 욕실 문 앞에서 말했다.“몸의 힘을 빼시고 생각을 비우세요.”강세헌은 쉽게 힘을 뺄 수가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린 이유가 눈만 감으면 송연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송연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강세헌의 몸과 마음 곳곳에 퍼져 있었다.반 시간 후, 강세헌은 깨끗이 샤워하고 흰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송연아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침대에 누우세요.”강세헌은 침대로 향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만약 효과가 없으면 당신 병원에서 짤릴 거예요.”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 강세헌은 역시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재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백지가 되고 온몸이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서... 설마, 깬거야? 어떡하지?’도저히 어떻게 자신의 이 돌발적인 행동을 설명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뇌는 마치 망치에 세게 맞아 마비된 것처럼 멍해 있었다.‘너무 잘생겨서 참을 수 없었다고 해야 하나...?’강세헌의 손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감쌌을 때, 그녀는 머릿속으로 한바탕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강세헌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로, 입술을 포개왔다. 부드러운 것이 그녀의 입 속으로 파고들어 휘저었는데, 마치 그동안 갈망했던 욕구를 해소하는 듯한 거침없는 움직임은 그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가빠오는 호흡에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도대체 깬 거야, 안 깬 거야?’“연아야, 보고싶어...”세헌이 낮은 목소리로 뱉어낸 한마디를, 송연아는 똑똑히 들었다.송연아는 멈칫했다.‘내가 보고 싶다고?’투명한 눈물이 저도 모르게 두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강세헌의 얼굴에 떨어졌다.강세헌은 깬 것이 아니었다.아마도 꿈을 꾸는듯했다.연아는 그의 손을 붙잡아 내리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잠꼬대였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하고 조금은 아쉬워하면서.“그래도 기뻐요. 여전히 절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송연아는 그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깨끗이 닦아주고 정성스레 이불을 발끝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침실을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방문을 연 그녀는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진원우를 보았다.그는 강세헌의 둘도 없는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연아를 본 진원우가 급히 물었다.“대표님은 잠들었습니까?”연아가 머리를 끄덕였다.진원우가 연아의 입술에 립스틱이 어지럽게 지워진 것을 발견했다.이상함을 느낀 진원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한테 무슨 나쁜 짓을 한 건 아니겠지?’곧장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진원우를 송연아가 가로막았다.“방금 잠드셨으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진원우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대표님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죠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려는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얼굴이 점차 험상궂어지고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눈에 불이 일 것만 같다.“구애린, 미쳤어?”구애린이 의자에 앉아 여유만만하게 포도알을 먹으며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소리를 지르긴 왜 질러? 고작 옷 벗긴 거 가지고. 속옷도 남겨줬잖아?”“아, 물론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가위로 잘라버리든 아예 벗겨버리든 할거야.”“...”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지금 당장 풀어줘!”진원우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구애린은 호통치는 진원우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그녀가 무고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지금 그렇게 꽁꽁 묶여있으면서 나한테 명령을 한다라... 아직 술이 덜 깼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널 굶겨 죽일 수도 있어.”“...”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진원우는 어쩔 수 없이 울분을 참으며 애써 웃었다.“난 애린 씨 오빠 친한 친구예요. 오빠를 봐서라도 날 놔주면 안 될까요?”구애린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좋아.”진원우가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어서 제 몸에 있는 밧줄을 풀어주세요.”구애린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다가와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우리 엄마 산소 어딨어?”“...난 몰라요.”“그럴 리가.”구애린은 터무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네가 강세헌 앞잡이인데 모를 리가 있나, 날 속이려고 들지 마.”진원우는 묵묵부답이었다.속으로 그는 생각했다.‘구애린 이 애가 이렇게 영리했던가?’“알고 싶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으면 되잖아요. 저는 정말 모릅니다.”진원우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 죽을 때까지 그녀의 목줄에 잡혀있을 거라는 것을.“그렇다면 할 수 없지.”구애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뼉을 세 번 쳤다.곧이어 방문이 열리며 세 명의 온몸에 문신이 덮인 건장한 남자가 들어왔다.건장한 체격에 불이 이는듯한 눈빛까지 겉모습만 봐도 거칠고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아까 봤던 남자들이 우르르 집안으로 밀려들었다.구애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명령했다.“하... 이 새끼 조져버려!”사내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진원우의 왼쪽 눈을 향해 한 남자의 주먹이 날아왔다.미처 피하지 못하고 맞아 고꾸라졌던 그는 잽싸게 뒤에 있던 의자를 잡고 눈앞의 남자를 향해 내리쳤다. 의자에 맞은 남자가 머리를 부여잡았고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이때 다른 한 남자가 뒤에서 기합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진원우가 민첩하게 옆으로 피했고 몸을 돌려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남자가 주춤하는 기회를 틈타 진원우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고훈이 미국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송연아였다. 한참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마침 송연아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세상에, 연아네 집에 왜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 있지?’고훈이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고훈을 송연아가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늦은 시간에 웬일로 오셨어요?”고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송... 송연아 씨 맞아요?”송연아가 도어락을 열며 맞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훈은 송연아를 뒤따라 집에 들어왔다.“왜 이렇게 분장한 거예요? 귀신이라도 본 줄 알고 놀랐잖아요.”연아가 대답했다.“강세헌이 알아볼까 봐요.”강세헌이 미국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고훈이 바로 물었다.“만났어요?”“만났죠.”모자와 마스크를 차례대로 벗으며 연아가 대답했다.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분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 분장은 하는데도 지우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런 송연아를 고훈이 화장실 입구까지 졸졸 따라왔다. 문에 기대서서 거울에 비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고훈이 물었다.“대화는 했어요?”송연아는 거울을 유심히 보며 클렌징워터를 묻힌 패드로 얼굴을 닦았다.“전 지금 강세헌의 주치의예요.”“강세헌이 아파요? 혹시 불치병?”
진원우가 눈썹을 찌푸리며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웃긴 왜 웃어?”고훈이 그의 왼쪽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너 왜 판다가 됐냐? 그것도 외눈박이?”진원우가 파랗게 멍든 왼쪽 눈을 손으로 급히 가리며 고훈을 째려보았다.“전에 도움받은 것이 있으니, 오늘은 봐준다. 더 놀리면 나도 참지 않아.”“내가 널 도와줘?” 고훈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내가 진원우를 도와줬다고?’그러나 그런 기억은 없었다.“너 혹시 잘못 기억한 거 아냐...?”“됐어. 비웃은 거 뭐라 안 할 테니까 이제 쌤쌤이야. 꼴값 떨지 말고 비켜.”말을 마친 진원우가 강세헌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고훈은 본인도 믿기지 않았다.진원우가 고운 구석이 어디 있다고 자신이 선의를 베풀겠는가.“벌써 7시네.” 시계를 힐끗 본 고훈이 급히 호텔을 빠져나왔다.송연아에게 서둘러 가야 했기에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지난번 서양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보이던 그녀를 위해 고훈은 특별히 한식을 샀다.그가 부랴부랴 송연아네 방에 도착했을 때, 송연아는 이미 외출하려던 차였다.“밥은 먹었어요?” 그가 물었다.송송연아가 그의 얼굴을 한번, 손에 든 음식을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 “먹었어요.”사실 송연아는 공복이었다.병원에 가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조금 사 먹으려던 생각이었다.그러나 고훈이 자신을 위해 본인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했기에 거짓말을 했다.고훈의 얼굴에 조금의 실망감이 내비쳤다.“아침에 진원우를 봤는데 뭘 하고 다니는지 눈이 맞아서 파랗게 됐더라고요. 이것저것 말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려서. 내일은 더 일찍...”“고훈 씨, 제가 말했잖아요. 이럴 필요 없다고.”거절하려는 송연아를 보고 고훈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연아 씨 몫이고, 연아 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건 제 몫이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송연아는 어쩔 수 없었다. “전 이만 늦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