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1604 챕터

제651화 대신 갈게

사실 권하윤은 산길을 오르는 사이 민도준의 신비로운 과거를 캐낸 다음 나무에 소원을 빈다는 핑계로 도준에게서 약속을 얻어낼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도 험난한 산길 때문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사실 오기 전부터 장욱은 산길이 험난해 오르기 어렵다고는 했지만 이건 보통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너무 어려웠다.발바닥 크기만 한 계단도 모자라 바람에 흔들대는 흔들다리를 보자 하윤의 가슴은 콩닥콩닥 쉴 새 없이 뛰었다.이에 발걸음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저기, 날도 어두워 월하노인이 있대도 진작에 퇴근했을 것 같은데 우리도 돌아가요.”도준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커다란 손으로 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가슴이 이렇게 콩알만 해서 어쩌려고 그래?”하윤을 등진 넓은 어깨가 살짝 앞으로 쏠리더니 허리를 활처럼 휜 도준이 입을 열었다.“업혀.”그 순간 잠시 멍해 있던 하윤은 잔뜩 흥분한 듯 당장이라도 도준에게 업히고 싶었지만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저 업고 가려고요?”하윤이 대시 확인하기도 전에 도준은 다리를 굽혀 앉아 하윤을 자기 등에 업었다.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하윤은 남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그때 도준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입을 열었다.“안 그러면? 하윤 씨더러 혼자 올라가라고 하면 월하노인이 아니라 저승사자를 먼저 만날 것 같은데 그럼 어떡해?”하윤은 더 이상 발아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자 잔뜩 긴장했던 몸도 나른해졌다.“좀 예쁘게 말하면 안 돼요?”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선이 높아지니 볼 수 있는 풍경이 더 많아졌다.이윽고 도준의 옆모습을 보니 언제나 오만하고 거칠던 사람이 한껏 자세를 낮춘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하윤은 자기 팔에 꽉 눌린 도준의 어깨를 힐끗 보더니 그의 팔에 들려 있는 자기 다리를 살짝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로 기댔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그때 하윤이 꿈틀대는 걸 느낀 도준이 입을 열었다.“나를 올라타고 있으니 아주 좋아 죽겠지?”분명 평범한 한마디였지만 도준의 말투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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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저한테 기회를 줄 수 있어요?

발이 땅에 닿을 때 하늘은 마침 노을로 붉게 물들어 나무에 걸린 수많은 붉은 실과 한데 어우러졌다.권하윤은 잔뜩 신이 나서 부업으로 나무 팻말을 판매하는 농민들한테서 팻말을 구입해 자기 이름을 쓰고는 도준에게 건넸다.그 눈빛은 너무 간절하여 입을 열지 않아도 뭔 말을 하려는 건지 설명해 주었다.살짝 교활함을 띠고 있는 눈빛은 어둑해지는 하늘보다 빨리 별빛을 반짝였다.하윤의 얼굴을 따라 내려가 보니 작은 나무 팻말 위에 적힌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보였다.[이시윤.]하윤은 표정을 감추고 있었지만 속은 조마조마했다.이 작은 팻말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또 하윤에게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다.왜냐하면 이건 그녀가 내디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남자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자 하윤은 또다시 불쌍한 눈빛을 내보내며 손바닥만 한 나무 팻말을 도준 앞으로 쑥 내밀었다.“여기까지 왔는데 적어요.”하윤도 소리 없는 가랑비가 만물을 적신다는 도리는 알고 있다. 때문에 일부러 이름은 말하지도 않고 그저 속으로만 천지신명께 부탁했다.끝내 도준이 하윤이 건넨 작은 나무 팻말을 받아들었다. 원래도 작은 팻말이 남자의 손안에 있자 귀여울 정도로 작아 보였다.도준은 작은 팻말을 받아쥐고는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재밌다는 눈빛으로 하윤을 바라봤다.그러더니 끝내 하윤의 기대에 찬 시선 속에서 붓을 들어 이름을 썼다.도준의 글자체는 주인을 닮아 자유분방했다.하윤이 작은 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소원 팻말을 받아쥐려고 했지만 손이 닿기 전에 도준이 팻말을 뒤로 뺐다.“갖고 싶어?”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묻는 도준의 말에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 팻말을 나무에 걸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테니까.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가 이름을 쓴 나무판자를 훑더니 손은 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자기한테 득 되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린다 이거야? 또 무슨 꿍꿍이지?”붉은 칠을 한 나무 팻말로 들어 올려 확인한 하윤의 얼굴은 잔뜩 찔려하는 모습이었다.하지만 눈 깜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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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뜻대로 되지 않다

권하윤이 허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뜨거운 손바닥이 하윤의 차가운 볼을 어루만졌다.그 뜨거운 온도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잘 생각해야 할 거야. 지금 그 얘기 할 거야?”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도준이 눈빛과 말투에 섞인 싸늘함을 느끼는 순간 하윤은 상대가 하려는 말이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아직 닷새나 있는데 첫날부터 틀어지면 안 돼.’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하윤을 당황하게 했다. 이에 손을 뻗어 도준을 와락 껴안은 뒤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이렇게 중요한 걸 대충 대답하면 안 되죠. 적어도 며칠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죠…….”하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심지어 먹이의 유혹을 참지 못 하고 포획 틀 주위를 조심스럽게 어슬렁거리면서 유혹과 안전이라는 어려운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새끼 짐승 같았다.도준은 손가락으로 하윤의 머리카락을 쓸며 짙고 어두운 눈으로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그때 함참동안 마음을 추스른 하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손에 나무 팻말을 들고 있는 도준을 바라봤다.“그럼 그건…….”방금 전 상황 때문에 하윤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 하고 도준을 빤히 바라보며 작은 팻말을 처분할 권리를 도준에게 넘겼다.어제까지만 해도 날아갈 것처럼 좋아하던 여자가 잔뜩 겁을 먹은 걸 보자 도준은 끝내 자비를 베풀었다.그는 팻말에 빨간 실을 달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어디에 걸고 싶어?”하윤은 작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 곳을 가리키고는 이내 손을 거두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이름이 적인 팻말이 자기가 가리킨 나뭇가지에 걸린 걸 보자 마음이 따뜻해졌다.문제는 다음 순간 나뭇가지에 매단 팻말이 탁하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입꼬리를 말아 올릴 새도 없이 바닥에 떨어진 팻말을 보자 하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확인해 보니 빨간 끈이 끊어진 거였다.너무 오랫동안 이곳으로 여행 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낡은 끈이라 견고하지 않은 모양이었다.하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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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일출

민도준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권하윤은 고개를 번쩍 쳐들며 듣고 있다는 걸 표시했다.하지만 도준은 이번에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말해주기 시작했다.“몇 년 전 내가 민씨 저택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다른 세력과 한창 경쟁을 벌이고 있었거든. 그때 신변에 있던 스파이가 민용재와 함께 짜고 내가 광산에 있을 때 동굴을 막고 날 죽이려 했거든.”분명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하윤은 듣는 내내 가슴을 졸이며 온 신경을 도준의 말에 집중했다.“그래서요?”“그 광산이 개발되기 전에 사람들이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었거든 저승문이라고. 너무 위험해서 가면 죽을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었거든.”모래언덕과 절벽 위에 좀게 난 산길에서 조금이라도 잘못 주행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묘사에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심지어 듣는 내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도준의 팔을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가해졌다.“그래서요? 그곳에서 도망쳤어요?”“도망?”도준은 안정된 걸음걸이로 산길을 내려가면서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자기야, 그런 곳에서는 도망쳐도 소용없어. 그냥…….”‘남의 뼈와 피를 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어.’도준은 하윤이 너무 긴장하자 그다음 한 마디를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윤은 듣고 있다가 도준이 갑자기 말을 잇지 않자 재촉했다.“그냥 뭐요?”그때 손이 하윤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밤중에 귀신 이야기 듣다가 잠 못 자면 어쩌려고 그래?”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하지만 도준이 말하지 않아도 그다음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할지 짐작이 갔다.게다가 그런 위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자기 목을 끌어안고 있던 손이 더 조여오자 도준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랐다.“왜? 마음 아파?”“네.”하윤은 작은 얼굴을 도준의 목덜미에 비벼댔다.“고생했어요.”“말은 참 잘해.”그 말에 하윤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진심이거든요.”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하윤의 달리를 걸치고 있던 손이 야릇하게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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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애정

“고개 돌려 봐.”허스키한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낮게 들려 보기 드문 온정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권하윤은 그 말에 불만인 듯 민도준이 했던 말로 대꾸했다.“도준 씨 얼굴에 해가 떠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왜 도준 씨를 봐야 하죠?”“지는 법이 없네.”다음 순간 도준은 재잘대는 하윤의 입을 그대로 막아버렸다.머리가 커다란 손에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데다 입술까지 눌리자 하윤은 순간 눈을 둥그렇게 떴다.눈앞에 먼 산에 걸린 태양보다 더 뜨거운 남자의 눈이 보인 순간 하윤은 앞으로 해돋이를 볼 때마다 도준을 생각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그 순간 따뜻한 햇빛이 하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이제 남은 날은 4일.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하윤은 깜빡 잠이 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때 머리가 어질해 났다.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듦과 동시에 표정이 어두워졌다.오후 3시였다.하루를 제대로 보내지도 못했는데 벌써 반나절이 넘게 지나갔다니.‘왜 자 버린 거야?’하윤은 침대에 엎드린 채 속으로 소리쳤다.밖에서 들어온 도준은 마침 침대에 엎드려 발을 퍼덕이는 하윤을 보고 피식 웃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안 답답해?”하윤은 여전히 팔과 다리를 퍼덕거렸다.“왜 저 깨우지 않았어요?”도준은 버둥대는 하윤의 가는 팔을 잡았다.“밖에 비가 저렇게 많이 오는데 나갔다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려고?”아니나 다를까 커튼을 걷어 보니 밖은 흐린 날씨 때문에 우중충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방 안에 있은 덕에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창가에 앉아 고개를 살짝 내밀어 확인하는 사이 하윤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어졌다.그때 도준은 시무룩해하는 하윤의 어깨를 손으로 내리눌렀다.“밥 먹으러 가자.”이곳은 도심과 거리가 먼 탓에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도 불편해 장욱이 사다 줬다.야채 볶음을 포함한 몇 가지 음식과 삼계탕이 있었는데 음식이 담백하고 신선했다.하지만 하윤은 많이 먹지 않고 도준을 위해 음식을 집어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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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가장 어려운 게 사랑이야

한참을 생각한 권하윤은 끝내 공태준에게 전화하기로 결심했다.전에 하윤은 민도준이 자기 핸드폰에 도청 장치를 넣었다고 의심했기에 지금껏 마음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만약 전화를 걸었다가 위치를 노출하면 손해이니.때문에 도준이 식구들에 대한 태도가 어떤지 알아내기 전에 오빠의 위치를 노출하는 건 옳지 못하다.하지만 공태준은 원래부터 관계가 안 좋기에 어찌 되든 상관 없었다.생각을 마친 뒤 하윤은 살금살금 화장실 문을 닫고 수도꼭지를 틀고 전화를 걸었다.거의 전화를 건 찰나 연결되었다.“여보세요?”이렇게 빨리 받는 걸 보니 아마 하윤이 전화를 할 거라는 걸 미리 계산해 둔 모양이다.더욱이 하윤이 가족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아무리 도준을 사랑해도 자기 가족을 그한테 완전히 맡기지는 못한다는 것도 말이다.한참 동안 마음을 정리한 뒤 하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왜 찾았는데?”아주 카리스마 있는 물음이었다. 분명 전화를 건 사람은 본인이면서 오히려 상대를 추궁하면서 말이다.하지만 태준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사과를 했다.“미안해요. 방해하려던 의도는 없었는데.”“의도가 없었다고? 귀신을 속이지 그래?”하윤의 분노에 상대는 영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가볍게 웃었다.그 순간 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공태준도 정상은 아니네.’태준도 자기가 갑작스럽게 웃었다는 걸 알아챘는지 고개를 들어 먼 곳 나무 그늘에 가리워진 별장을 바라봤다.“저 이미 사람을 해외로 보냈어요. 공씨 집안사람이든 민 사장이든 윤이 씨 가족 해칠 수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해원에서 자리를 잡으면 바로 윤이 씨 가족도 데려와요.”하윤은 이렇듯 확정 짓는 듯한 태준의 말투를 가장 싫어한다. 이건 마치 그녀에게 돌아갈 길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했으니까.하지만 상대가 자기를 도와준다는 것 때문에 하윤은 화를 내지는 못 하고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야 몇 글자를 내뱉었다.“고마워. 다른 할 말 없으면 끊을…….”“강원의 경치는 아름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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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다른 사람이 좋아졌어?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무거운 시선에 권하윤은 어깨에 무거운 물건이 눌린 듯 저절로 안으로 굽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하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눈을 드는 순간 또다시 남자의 차가운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민도준의 시선은 하윤의 얼굴에 고스란히 떨어져 그녀의 눈에서부터 아래로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하윤은 말없이 훑어보기만 하는 도준의 시선을 참지 못해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그러다가 도준이 자기를 꾸짖을 거라고 생각하던 그때, 도준은 손으로 축축하게 젖은 하윤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밖에 나가고 싶다며?”하윤은 도준이 손을 든 순간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도준의 말을 듣고는 다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틈새로 상대를 바라봤다.“그런데 밖에 지금 비 오지 않나요?”“그쳤어.”도준의 말을 듣고 밖에 나가보니 역시나 아까까지 주룩주룩 비를 쏟아붓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갰다.하윤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산속 날씨는 참 빨리 변하네요.”“아무리 빨리 변한들 사람 마음만 할까?”도준의 말에는 약간의 조소가 담겨 있었다.이에 불안해 난 하윤은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 때 환심을 사려는 듯 말을 내뱉었다.“도준 씨에 대한 제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요.”“영원히?”도준은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사늘하게 말을 내뱉었다.“난 영원이라는 말은 믿지 않아.”하윤은 순간 멍해져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양옆에 축 드리운 손을 꼭 그러쥐었다 다시 펴더니 숨을 몇 변 들이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고백할 게 있어요.“응.”하윤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방금…… 저 공태준한테 전화했어요.”하윤은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도준의 낯빛을 살폈다. 그랬더니 역시나 알았다는 듯한 도준의 태도에 방금 화장실에서 했던 짓을 이미 들켰다는 걸 알아차렸다.그 순간 후회되면서 안도감이 들었다.그나마 지금이라도 말했으니 망정이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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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자극

턱이 꽉 잡힌 탓에 권하윤은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오싹한 웃음에 등골이 서늘해져 설명을 하려 했지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봐도 닷새가 지나면 곧바로 깔끔하게 헤어질 것만 같으니 사정하는 게 안 되면 자극적인 방법을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자 하윤은 이내 입을 삐죽거렸다.“도준 씨도 공태준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지 않으면 왜 계속 저를 해원으로 쫓아내는데…… 아, 아파요…….”턱이 꽉 잡혀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이 전해지자 하윤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하지만 속으로는 도준의 이런 반응에 몰래 기뻐했다. 불쌍한 척이 안되면 독점욕을 자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기쁨이 2초도 유지되지 않았을 때 도준이 하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꿍꿍이가 있는 듯한 표정을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 하고 그대로 드러나자 도준은 코웃음을 쳤다.“아주 발전했네. 자극요법도 쓸 줄 알고?”하윤은 그 말에 이내 모르쇠로 일관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아닌 척하지 마. 내가 하윤 씨를 곁에 두고 가족마저 모셔 왔으면 해서 그러는 거잖아?”도준이 너무 손쉽게 자기 목적을 까발리자 하윤은 순간 난감했다.이윽고 작은 발걸음으로 도준의 앞에 다가가며 낮게 중얼거렸다.“도준 씨한테는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겠네요.”하윤이 분위기를 보며 슬슬 기어오르려 하자 도준은 이내 손을 들어 하윤을 자기 몸에서 떼어냈다.“날 떠받들면 넘어갈 줄 알아? 솔직해져 봐.”여전히 꾸짖는 말투였지만 아까처럼 무섭지는 않았다.이에 하윤은 도준의 허리를 안지 못 하자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 부렸다.“범인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저 계속 세워둬서 힘들어요.”도준은 불쌍한 척하며 곁눈질로 그의 표정을 살피고 심지어는 껌딱찌처럼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는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그때 여전히 도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하윤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저 다리 아파요. 우리 저기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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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신명께 기도드리다

오랫동안 내리쬔 햇볕이 비 때문에 습해진 공기를 건조하게 해주었다.그때 나무 그늘 아래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가주님, 방금 비가 와서 위험합니다. 뭘 원하시는데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남기가 말려댔지만 소용이 없었다.“괜찮아. 여기서 기다려.”태준은 돌계단을 밟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자학하는 듯 권하윤과 민도준이 함께 이 길을 가는 모습을 상상했다.‘두 사람이 함께 가면 혼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쉽겠지?’똑같은 나무 아래 다른 사람.태준은 나무 아래에 서서 빗물에 씻긴 나무 팻말들을 빤히 바라봤다.그 순간 나무에 매단 붉은 실들이 붉은 치마로 연상되면서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려던 찰나 시선이 가장 특이한 매듭을 한 붉은 실에 멈추더니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그 실과 연결된 팻말은 다른 것과는 달리 새것이라는 걸 이내 알 수 있었다.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오면서 팻말이 빙글 도는 사이, 그 위에 적힌 이름이 눈앞에서 휙 지나갔다.태준은 자기가 왜 이렇게 놀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까지 왔으면 당연히 소원을 빌고 팻말을 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하지만 특이한 매듭을 한 팻말은 자기에게 닥친 위험도 감지하지 못한 듯 흔들거리며 춤을 추는 듯했다.길고 고운 손가락이 그 팻말에 닿으려는 찰나, 태준의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저씨, 소원 팻말 하나 구매하실래요?”약 열한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여자애가 광주리에 가득 담은 팻말을 들어 올리며 공태준을 바라봤다.팻말을 팔기 위해 여자애는 열심히 소개했다.“하나 사세요. 이거 엄청 효과 있어요. 여기 소원 빌러 오는 커플들이 끊이질 않아요. 그러니 아저씨도 하나 써봐요.”태준은 멈칫하다가 손을 내렸다.“아니야. 아저씨가 같이 이름 쓰고 싶던 상대가 다른 사람이랑 이미 이름 적었거든.”하지만 여자애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태준을 설득했다.“월하노인은 누가 더 진심으로 소원을 비는지 확인하고 소원을 들어준대요. 여기까지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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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새것을 세울 수 없다

이 소식에 하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오빠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으니 민재혁이 회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민재혁이 다시 돌아오면 민도준에게 불리할까 봐 걱정이었다.하윤의 질문에 도준은 느긋하게 대답했다.“아마 그럴지도.”“그럼 어떡해요?”도준은 잔뜩 걱정하는 하윤의 표정을 보더니 뒤로 몸을 기댔다.“무서워할 거 뭐 있어? 다시 부러트리면 그만이잖아.”“…….”그 말을 들은 하윤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참, 이미 민용재의 죄증을 잡았는데 시영 언니가…… 그때 당한 일을 고백할 필요까진 없지 않나요?”민시영의 일은 홍보팀에서 나서서 잠재우지 않은 탓에 알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떼문에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재벌가의 세상에서 민시영이 받은 비난은 결코 적지 않다.그 말을 들은 도준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더니 손가락으로 하윤의 이마를 튕겼다.“미리 자백하지 않으면 영상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릴까?”하윤은 그제야 뭔가를 알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민용재가 없다 해도 아직 민재혁이 남아 있기에 만약 민시영이 미리 말하지 않으면 그녀를 상대하려는 목적이든 아니면 복수를 하려는 목적이든 그 영상은 세상에 폭로될 게 뻔하다.하지만 민시영이 직접 자기 상처를 대중 앞에 공개했기에 이런 상황에서 영상이 나오면 오히려 죄증밖에 되지 않는다.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새것을 세울 수 없다고, 민시영의 성격에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보아하니 시영 언니도 매력적인 껍데기 뒤에 항상 불같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네. 하루 만에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든 걸 보면.’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숨을 쉬었다 하는 하윤의 모습에 논담조로 말했다.“보살님의 동정심이 또 발동했나 보네?”하윤은 그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전 그저 고생했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민시영이 애초에 하윤에게 접근했을 때 목적이 있었지만 매번 모든 걸 솔직히 하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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