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1602 챕터

제311화 자기를 망치다

권하윤은 몸을 가누기 바쁘게 들리는 말에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웃었다.“그런 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도준 씨 같은 사람은 그냥 있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이 비위를 맞추며 들러 붙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오히려 염치 불문하고 다른 사람한테 들러 붙어야 하거든요. 그런 제가 염치를 차릴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그녀의 말에 민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껏 구겨진 눈매로 포악함을 내뿜고 있었고 위험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참지 못하고 권하윤에게 손을 대려던 찰나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손을 뿌리쳤다.“제수씨, 지금 나 일부러 자극하는 거야?”당장에 꼼수를 발각된 자각도 없이 권하윤은 대뜸 인정했다.“네. 제가 권씨 가문 여자인 이상 언젠간 희연 언니처럼 팔리듯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져야 할 텐데, 그 시기가 빨리 오든 늦게 오든 뭔 차이가 있겠어요. 차라리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제 손으로 미리 선택하는 게 낫죠.”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안은 무거운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민도준은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지금의 권하윤은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모든 걸 내건 듯 결연한 모습이었는데 그건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해탈함과 절망이 담겨 있었다.예전의 권하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민도준은 당연하듯 그녀가 일부러 또 가식적인 연기를 하며 도움을 청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평온한 겉과는 달리 강박적이면서도 공포를 띤 모습이었다.마치 아무나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위해 뭐든 다 할 것처럼 말이다.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바로 그의 안중에도 없던 그 개자식.두 쌍의 눈이 마주치는 동안 암류가 용솟음쳤다.그러다가 한참 뒤, 민도준이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옷 입어.”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권하윤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입은 뒤 그의 결정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권씨 가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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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다른 호칭으로 불러드릴게요

‘어젯밤…….’기억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몇몇 화면들이 눈앞에 떠오른 순간 권하윤 마음속의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눈 밑에 걸린 정서를 숨겼다.“그건 제가 열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돼서 헛소리 지껄인 겁니다. 잊어주세요.”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더니 권하윤의 고개는 강제로 들렸다.민도준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그녀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며 손가락은 그녀의 입술을 계속 매만졌다.그리고 이윽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그의 잇새로 흘러나왔다.“어쩜 헛소리도 그렇게 사랑스럽게 할 수 있지? 어디 다시 불러 봐.”퉁퉁 부은 입술이 꺼칠꺼칠한 손에 문질러져 아프기만 했지만 민도준은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듯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으며 억지로 벌렸다.만약 다른 호칭이었으면 바로 불러줬겠는데 오빠는 그녀의 가족이자 도피처였기에 이렇게 야릇하고 불순한 의도로 불러야 한다는 게 거부감이 들어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결국 한참 고민 끝에 그녀는 다른 호칭으로 대체했다.“자기야.”“식상해.”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음기 섞인 눈매로 자기를 바라보는 민도준을 보는 순간 권하윤의 마음속에는 원망과 한이 피어올랐다. ‘왜 이토록 내가 원하지 않는 일만 강요하는지…….’하지만 그녀는 끝내 분노를 삼키고 민도준을 올려다보며 뭔가를 암시하는 듯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이따가 밤에 다른 호칭으로 불러드릴게요.”몸을 바치더라도 오빠라고는 죽어도 부르려 하지 않는 고집에 민도준은 재밌는 듯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밤까지 기다릴 거 뭐 있어? 나 지금 시간 많아.”그의 말에 권하윤의 손은 뻣뻣하게 굳었다.열이 방금 내려 기운도 없는 데다 어제 미친 듯한 밤을 보내 또 관계를 했다간 정말 병원에 실려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그녀가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민도준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에 드리웠던 그녀의 손을 잡으며 주물럭거렸다.뼈마디가 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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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갑자기 들려온 구조 요청

권하윤은 그제야 알아차렸다.“여고가 권씨 가문 핵심이었던 거였어요?”“답 찾았네. 혼자 잘 생각해 봐. 난 이만 갈게.”민도준이 떠난 뒤 권하윤은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그녀는 권씨 집안 사람이 아니라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가문에서 운영하는 여고에서 교육을 잠깐 받아봤지만 매번 1대1 수업을 진행했었다. 때문에 체계적인 학습을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교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그러고 보니 희연 언니는 체계적인 학습을 거쳤었지…….”그런 생각이 들자 권하윤은 준비를 끝마치고 권희연과 약속을 잡으려고 결심했다.하지만 전화를 한참 해도 받는 사람이 없어 끊으려던 찰나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희연 언니, 오늘 시간 있어? 좀 볼 수 있을까?”“읍…… 살려줘…… 읍…….”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권희연의 구조 요청에 권하윤은 화들짝 놀랐다.“희연 언니? 언니 지금 어디야? 왜 그래?”“…….”“여보세요?”권하윤이 다시 물어보기도 전에 전화는 바로 끊겼다.위험을 감지한 그녀는 곧바로 권미란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권희연이 위험하다는 말을 꺼내기 바쁘게 권미란의 엄숙하고도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네가 참견할 일 아니야.”“그런데 희연 언니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분명…….”“그만. 민씨 가문 어르신이 앓아누운 뒤로 그 집안 형제들이 호시탐탐 회사를 노리고 있는데 네 자리를 공고히할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해? 내가 그렇게 고생스럽게 너를 해원에서 구해왔는데 가문에 이런 식으로 보답하면 안 되지.”권미란은 마치 권희연이 어디로 갔고 그녀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이에 권하윤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내일 건강검진 받으러 집으로 와. 네 시어머니랑 얘기했는데 네가 임신하면 결혼식 바로 치르기로 했다. 약혼을 한지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 몸에 문제는 없는지 검사해 봐야 할 것 아니니.”이어지는 권미란의 말에 권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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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민도준의 여자

스틱스로 향하는 길에 권하윤은 진소희한테 전화로 스틱스의 상세한 상황을 물었다.그리고 알게 된 건 스틱스 건물의 30층 이하는 모두 VIP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층수가 높을수록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다르다는 거였다.게다가 30층 이상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그럼, 도준 씨는 30층 이상에 접근할 수 있나요?”“당연하죠! 듣기로 그중의 한 층은 도준 오빠를 위해 특별히 남겨둔 공간이래요. 전에 제가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데려가지 않더라니까요. 언니도 조심해요. 오빠가 그곳에 여자들을 숨겨놓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저를 데려가지 않았겠죠!”확신에 찬 진소희의 말투에 권하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도준 씨가 요즘 소희 씨 괴롭혔어요?”권하윤의 말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진소희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분노가 차 있었다.“간단히 비유하자면 언니가 지난번에 저를 봤을 때만 해도 제가 싱싱한 포도였다면 요 며칠 사이에 건포도가 됐어요!”권하윤은 이 모든 게 자기가 민도준 대타를 찾은 일 때문에 벌어진 거라는 걸 모르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하지만 스틱스가 만약 진소희의 말대로 관리가 삼엄하다면 그녀의 카드로 권희연이 있는 층까지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민도준의 이름을 빌리면 모를까…….’이 생각이 든 찰나 권하윤은 곧바로 차를 돌려 길가에 있는 옷 가게로 들어갔다.그리고 한참 뒤 다시 나왔을 때 여성스럽고 얌전한 투피스 스커드는 등이 푹 파인 긴 원피스로 바뀌어 있었고 마네킹 머리에서 벗겨낸 붉은색 가발이 머리에 쓰여 있었다.차로 돌아온 그녀는 화려하고 짙은 메이크업을 한 뒤 선글라스를 찾아 썼다.이 모든 걸 끝마칠 때까지 조수석에 앉은 로건은 아무것도 모른 채 목도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완성했는지 자기가 만든 목도리를 쫙 펴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던 그때.“로건 씨.”부름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아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권하윤을 보고 잠깐 멍해 있다가 더듬더듬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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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고발 당하다

블랙썬.“민 사장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사장님을 찾으러 오신 분을 이미 방까지 안내했습니다.”민도준은 상대의 말에 눈썹을 치켜뜨며 액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스틱스에서 걸려 온 전화인데.’“나를 찾으러 왔다고?”민도준이 이 일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웨이터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민 사장님의 경호원인 로건 씨가 웬 여성 한 분을 데리고 왔었는데 혹시 모르셨습니까?”“하.”상대의 말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이제는 내 이름을 내세워 사기를 치고 다니네? 정말 잠시도 쉬지 않는군.’긴 침묵에 전화 건너편 사람은 점차 불안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민도준이 이 일을 모른다면 그는 당장 그 여자를 쫓아내야 했으니까.한참 생각하던 그는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소리 냈다.“민 사장님?”“그냥 내버려 둬.”“아…… 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전화가 끊기자 방 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고은지는 민도준을 바라봤다.“계속 칠까요?”“응.”민도준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하지만 고은지는 바로 피아노를 치지 않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방금 전화는 누구예요?”여자의 물음에 핸드폰을 끈 그는 고개를 들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뭐라고?”“죄송합니다.”잠시 침묵하던 고은지는 몇 초의 망설임 끝에 짤막한 사과를 하고 손을 다시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렸다. 그때 리클라이너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민도준이 일어나 앉으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됐어, 그만 해.”고은지는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손을 흔들며 묵인한 민도준을 힐끗 본 고은지는 조용히 자기 물건을 챙겨 방을 나섰다.-그 시각, 권하윤은 자기가 들킨 줄도 모르고 스틱스 60층에 발을 디뎠다.진소희의 말대로 60층은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한 듯 뻥 뚫려 있었다.하지만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권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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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잔인한 공연

어두운 조명 때문에 방 안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고 바닥에 있는 안내 등이 없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안내 등이 가리키는 어둠의 끝에는 두 개의 대문이 있었는데 그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은 마치 한 쌍의 눈처럼 소리 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고객님.”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권하윤은 한참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스틱스의 직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혹시 누구를 찾으시죠?”상대는 권하윤을 위아래로 훑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의 물음에 정신을 가다듬은 권하윤은 일부러 패악스러운 말투로 따져 물었다.“내가 누구를 찾는지 당신이 뭔데 상관해? 비켜.”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알 수 없는 신분 때문에 상대는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객님, 안에서 하는 공연은 곧 끝날 예정이니 기다리셨다가 다음 공연을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공연?’권하윤의 마음속에는 일순 불안이 솟구쳐 올라 로건을 떼어놓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그러던 그때 그녀의 심부름을 했던 웨이터가 다가오더니 눈앞의 남자에게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매니저님, 이분은 60층 손님입니다.”그의 말에 매니저의 태도는 곧바로 공손하게 변했다.“죄송합니다. 공연을 보러 오신 거라면 저를 따라오세요.”매니저는 대문 대신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러면서 공연이 끝나가니 바로 자리로 안내해 주겠다고 설명을 덧붙였다.모르는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하는 중앙 홀과는 달리 그들이 들어간 곳은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매니저는 눈에 보이는 네 개의 방 중에서 비어있는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는데 유리로 된 방은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는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였다.방안에는 편안한 소파와 예쁘게 썰려 있는 과일들이 있었는데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권하윤은 사방이 검은 유리방 안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의아한 듯 매니저를 바라봤다.“공연을 볼 수 있다면서요? 공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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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호가호위

방 안에서 조 사장은 권희연의 머리채를 홱 낚아챈 채 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삼각형 눈에는 변태적 쾌감이 흘러나왔다.“하하하, 정조를 따지는 열녀 아니었나? 민도준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지 못하고 끝내 내 손에 오고 말았네! 깨끗한 척 고귀한 척 하더니 꼴 좋네!”힘껏 당겨진 머리 때문에 권희연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조 사장은 남자구실을 못 하게 된 뒤로부터 여자를 괴롭히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큰일을 계획하느라 권희연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마침 권미란이 다시 협력하자고 손을 내민 거다. 가문에서 하는 더러운 거래를 숨기기 위해선 뒷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권씨 가문에서 민도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자기와 민도준 사이에서 간을 보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조 사장은 권희연을 자기한테 주고 그가 어떻게 하든 그녀의 생사를 관계하지 않겠다는 권미란의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손을 잡았다.그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거고.지금껏 차지하고 싶었던 여자가 자기 앞에 엎드려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에 화가 난 조 사장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그리고 그 치욕스러움으로 생겨난 조급함과 분노를 당연하다는 듯 권희연에게 쏟아냈다.그는 가뜩이나 찢어진 권희연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더러운 년! 굴려질 대로 굴려지고 나서야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가 거지인 줄 아나!”“…….”권희연은 입술을 깨문 채 자꾸만 고이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조금만 참으면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을 거고 동생이 시가에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하지만 그녀의 그렁그렁한 눈말울은 조 사장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오히려 그의 변태적인 욕구를 자극했다.그리고 뭔가 하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병을 들고 권희연에게 다가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야?”“조 사장님, 드릴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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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허장성세

권하윤은 권희연을 둘러맨 로건과 함께 앞에서 걸어갔고 총을 든 조 사장은 그들을 말없이 뒤따랐다.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녀 앞에 일여덟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막아섰다.조 사장의 사람인 걸로 봐서 아까의 총성을 듣고 몰려든 듯했다.그들이 있는 한 기회를 봐서 도망치려던 권하윤의 계획도 실행할 수 없었다.일반 사람이라면 스틱스에 올 때 이렇게 많은 경호원을 데려오지 않을 텐데 민도준한테 당한 적 있는 조 사장은 또 불상사라도 있을까 봐 만반의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그렇게 그들은 무리를 지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엘리베이터와 가까워질수록 권하윤의 심장은 평온한 표정과 달리 미친 듯 뛰었다.‘왜 조 사장이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지? 설마 오늘 진짜로 도준 씨랑 맞서기라도 하려는 건가?’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아까 허장성세를 부렸다는 게 들통나고 말 거다.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몇 발짝은 마치 낭떠러지로 걸어가는 듯 무겁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방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권하윤은 겁을 먹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땀에 흠뻑 젖은 손을 들어 아무렇지 않은 듯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그녀의 태연한 행동에 조사장의 미간이 오히려 구겨졌다.‘설마 민도준이 정말 따라왔나?’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권하윤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 닫히는 문을 손으로 막으며 조 사장을 향해 미소 지었다.“들어오시죠.”하지만 조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어두운 눈동자로 권하윤을 빤히 바라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갑자기 일이 생겨 홍옥정에 가봐야 해서 민 사장은 다음에 만나 뵙도록 하지.”“대신 전해드리죠.”권하윤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하지만 아직은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닌지라 심호흡을 한 뒤 로건을 바라봤다.“로건 씨.”이름이 불린 당사자는 마치 머리가 백지장이 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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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노래 불러 봐

“민…… 민 사장님?!”그제야 반응한 조 사장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뗐고 겨우 공기를 들이켜게 된 권하윤은 숨을 헐떡이며 기침을 해댔다.민도준이 온 걸 본 그녀는 조 사장 못지않게 놀랐다.때문에 표정도 덩달아 멍해졌다.민도준은 그녀의 빨간 가발과 아직 가시지 않는 얼굴의 붉은 기를 힐끗 보다가 야릇한 치마로 눈길을 돌리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그의 그런 의미심장한 표정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고 큰 재앙이 닥쳤다는 생각이 뇌리를 세게 때렸다.그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그녀가 자기 이름을 팔고 다니며 왕행세를 하고 다닌 일이 발각됐다는 뜻이었기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이에 민도준은 가볍게 피식 웃더니 다시 눈길을 조 사장에게로 돌렸다.이윽고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간 민도준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조 사장이 날 이렇게 보고 싶어 하는 줄 몰랐네. 이제 내가 왔으니 하고 싶은 말 해보시죠?”“…….”조 사장의 낯빛은 여러 차례 변하더니 끝내 핏기 없이 창백해졌다.세상을 발아래 두고 무시하는 듯한 민도준의 건방진 얼굴을 보자 그는 오늘 죽지 않더라도 죽기 직전까지 괴롭힘당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하지만 민도준에 대한 원한이 치밀어 오르더니 순간 혼자 온 민도준에 비해 사람도 있고 총도 있는 자기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커다란 손이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나도 좀 들어봅시다.”“그게…….”입을 열어 뭐라고 말하려 하던 찰나 어깨에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은 비명으로 변해버렸다.“아아!”부러진 팔이 아래로 축 늘어짐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흘러나왔다.하지만 민도준은 눈치채지 못한 듯 그의 빠진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농담을 던졌다.“왜 그래요? 오랜만에 만났다고 노래라도 한 곡조 뽑는 겁니까?”이윽고 그는 여전히 총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조 사장의 똘마니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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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복잡한 재벌들의 세상

민도준이 자기들의 말을 안중에도 두지 않자 현장에 있던 조 사장의 똘마니들은 순간 울컥했다.일촉즉발인 상황 속에서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하지만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지더니 경찰들이 나타나 사람들은 일순 얼어붙고 말았다.“움직이지 마! 무기 버리고 손들어!”그들이 아무리 법을 무시하며 산다고는 하지만 현행범으로 잡히는 건 골치 아픈 일이었기에 할 수 없이 총을 내려놓고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그때 놈들의 총을 회수한 경찰이 주위를 매의 눈으로 훑어봤다.“신고하신 분이 누구십니까?”“저요.”권하윤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민도준이 올 줄 모르고 그저 퇴로를 만들어 두려고 신고한 거다. 조 사장이 단념하지 않고 60층에 올라갔다가 뒤따라올까 봐. 그렇게 되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 닥친다 해도 눈앞의 곤란은 해결할 수 있었다. 조 사장이 아무리 난다긴다해도 경찰 앞에서 그들을 죽이지는 못할 테니까.그녀가 그렇게 승인하자 분노 섞인 눈빛들이 그녀를 당장 죽이기라도 할 듯 노려봤다.하지만 권하윤은 그들 시선을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며 미리 준비해 둔 말을 뱉어냈다.“저 사람들이 저를 저를 협박해서 강제로 잠자리를 가지려고 했어요. 이것 보세요. 이게 증거예요.”재생된 영상은 마침 조 사장네 똘마니들이 총을 들고 그들 앞을 막아서던 장면과 조 사장이 그녀의 목을 조르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증인과 증거가 버젓이 드러나자 팀장으로 보이는 형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연행해!”그리고 조 사장과 그 똘마니들에게 수갑을 채운 뒤 골치 아픈 듯 민도준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민 사장님.”그 시각 민도준은 이미 조 사장을 놓은 채로 손을 벌리며 좋은 시민의 모습을 연기했다.“전 피해자입니다.”자기를 피해자라고 말하는 민도준의 모습에 장 형사의 표정은 마치 똥이라도 씹은 표정이었다.경성에서 민도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면 간첩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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