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1664 챕터

제291화 몸이 남아나지 않다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깃든 깊은 뜻을 알아듣지 못한 채 오직 그가 묵인했다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고은지 씨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거 부인하지 않네.’순간 번한 결말에 헛된 희망을 품은 자기 자신이 우스웠다.하지만 실망을 하고나니 어느새 머리도 맑아졌다.이윽고 눈을 들어 민도준을 볼 때 눈에는 몇 가닥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당연히 제가 가야 할 곳으로 물러나야죠. 그렇다고 도준 씨더러 양쪽 다 신경 쓰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한두 번은 괜찮겠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하다간 도준 씨 몸이 남아나지 않을까 봐 걱정돼요.”분명 가시 돋친 말이었지만 권하윤의 어조는 관심과 걱정이 가득했고 심지어 민도준의 어깨에 손까지 얹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그런 그녀의 행동에 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내 몸이 남아날지 아닐지는 하윤 씨가 시험해보면 되겠네.”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밤까지 엉겨 붙게 되었다.그 때문에 민도준의 등에는 권하윤이 “실수”로 긁은 손톱자국이 몇 가닥 보태졌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를 앙칼지다고 꾸짖기만 할 뿐 말리지는 않았다. 한참 지속된 행위에 어느새 비몽사몽 잠이 든 그때, 민도준이 권하윤을 흔들어 깨웠다.“일어나, 돌아가서 자.”“싫어요.”졸음이 몰려와 축 늘어진 권하윤은 휴게실 침대에 오히려 얼굴을 파묻었다.짙은 남색의 침대 시트 덕에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더 부각되었다.블랙썬의 휴게실 침대는 지금껏 민도준 혼자만 사용하던 거다. 그런데 오늘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권하윤이 누워있자 조금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다.나른한 몸이 또 작기는 얼마나 작은지 커다란 침대에 여백이 많이 남았고 쪼그리고 누운 모습은 마치 애완동물 같았다.하지만.민도준은 입꼬리는 차가운 곡선을 그렸다.‘애완동물이면 주인 즐겁게 해줘야지, 다른 들개를 끌어들이면 쓰나. 나한테 빌붙어서 밖에서는 다른 놈 끌어들이면 둘 다 때려죽이는 수밖에.’그는 손등으로 권하윤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하, 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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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나랑 같이 떠나자

전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하모니카 위에 백화점 이름이 적혀 있다는 거였다.그걸 보는 순간 권하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건…… 지난번에 분명 앞으로 다시 보지 못 할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라도 바뀐 건가?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나?’불길한 생각에 권하윤은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성은우가 적어준 주소는 오래된 쇼핑몰이다. 게다가 점심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하지만 서은우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에 권하윤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중 입구에 피아노가 놓여있는 의류 매점을 지나는 순간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바로 이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심플한 스타일의 옷을 위주로 하는 매장이었기에 권하윤은 아무렇게나 옷 두 벌을 골라 피팅룸으로 들어갔다.그렇게 고른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문틈으로 상황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을 때 역시나 누군가 피팅룸으로 다가왔다.캡 모자를 꾹 눌러쓴 채 얼굴 절반을 가리고 날카로운 턱만 드러낸 남자였다.그 순간 권하윤은 눈에 드리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은우야!”“윤아!”성은우 역시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을 살짝 들어 권하윤을 바라봤다.자기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 났다.하지만 지금은 옛 기억을 떠올릴 때가 아니었다. 성은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눈을 깜빡이며 고인 눈물을 겨우 날려 보내고 난 뒤 권하윤은 다시 그를 바라봤다.“경성을 떠난다며? 무슨 일 있는 거야?”성은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꾹 눌러쓴 모자를 살짝 들어 높은 콧대를 드러냈다.“나랑 같이 떠날래?”“응?”권하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내…… 내가 어떻게 떠나?”권씨 가문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오빠의 몸도 채 낫지 않아 권씨 가문에서 지원해 주는 의료진의 도움을 떠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가짜 신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아 잘못 움직였다가는 모든 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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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제 곁에 있어 줘요

권하윤은 그제야 성은우의 행동은 자기와 선을 긋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민도준을 등지고 있는 성은우를 보자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 말없이 민도준과 성은우를 번갈아봤다.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데굴데굴 구르는 그녀의 눈동자는 존재감이 아주 컸다.그리고 역시나 민도준은 그걸 발견했다. 그는 성은우에게 가려진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머리통에 총 겨눠져 있는 거 느끼지 못했나? 할 말 있으면 유언이라도 남겨 내가 대신 전해줄게.”장난기 섞인 말투를 보아하니 그녀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성은우가 그녀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어떤 것이든 권하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이 시각, 매장에는 민도준 외에 유일한 출구를 막고 있는 로건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성은우가 무사히 빠져나가는 건 더욱 어려웠다.잠깐의 고민 끝에 권하윤은 자기의 다리를 꼬집으며 억지로 눈물을 짜냈다.“도준 씨, 저 무서워요.”말하는 동시에 그녀는 민도준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은우에게 자기를 잡을 기회를 주는 거였다.그런데 그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로건은 권하윤이 겁도 없이 성은우에게 등을 보이자 다급하게 주의를 주었다.“하윤 씨! 움직이면 안 됩니다!”“아!”눈 깜짝할 사이에 성은우는 팔로 그녀의 목을 둘렀다.협박이 담긴 동작에 권하윤은 마치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듯했다. 물론 머리에는 권총이 닿아 있었지만 말이다.“민 사장님, 저는 공씨 가문 가주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 길을 비켜주시죠.”성은우의 얼굴은 모자에 반쯤 가려졌지만 그의 살의는 감추지 못했다.물론 그 살의는 권하윤을 향한 게 아니라 민도준을 향한 거였다.하지만 민도준은 그의 협박에 신경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다.“길을 비켜주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그런데 내가 호의를 베풀면 그걸 갚을 능력은 되고?”그리고 그때 소음관을 장착한 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앞에 나타나더니 낮은 소리를 내며 권하윤의 귀 옆을 지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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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총을 겨누다

“지금?”민도준은 끝 음을 길게 끌었다. 그는 권하윤에게 일분일초가 지옥처럼 느껴질 걸 알았지만 일부러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새하얗게 질린 권하윤의 얼굴을 한참 동안 훑어보던 민도준은 그녀의 턱을 들어 자꾸만 피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권하윤의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을 남기더니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뭐가 그렇게 급해? 자꾸 그렇게 보채면…….”바싹바싹 타들어 가던 권하윤의 심장은 민도준이 잠깐 멈칫하는 순간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그녀가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을 그때, 민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날 원하는 것 같잖아.”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져 권하윤은 심장이 쪼그라들면서 숨이 막혀왔다.산소가 부족한 머리는 수치심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직 성은우를 어떻게 하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지만 생각했다.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로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짓이야?”고개를 돌려보니 성은우가 팔을 곧게 편 채 총구로 민도준을 가리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권하윤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그저 입만 뻐금거릴 뿐 성은우를 말려야할지 민도준을 말려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위험에 노출된 민도준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권하윤의 긴 머리카락을 돌돌 감으며 장난쳤다.심지어 큰 손으로 비단결 같은 그녀의 머리 사이를 누비며 느긋하게 행동하더니 성은우를 바라봤다.“왜? 설마 내가 총 쏘는 법도 가르쳐 줘야 해?”상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그의 말투는 극도로 모욕적이었다.이에 성은우는 총을 쥔 손에 힘을 주더니 점점 방아쇠를 당겼다.하지만 권하윤의 공포에 질린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몇 초간 침묵하더니 손의 힘을 뺐다.이윽고 총은 그의 손가락에서 팽글팽글 돌다가 손끝을 스치며 바닥에 떨어졌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권하윤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목구멍은 마치 커다란 돌멩이가 막고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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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집에 데려다줄까?

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민도준이 천천히 허리를 펴며 자기를 내려다보는 걸 바라봤다.“아직도 집에 가고 싶어? 데려다줄까?”농담 섞인 그의 말에 권하윤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민도준은 시계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내가 지금 블랙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자식이 나한테 총 겨눈 일만으로도 로건이 그 자식 죽이고도 남을 거야. 내가 돌아가면 며칠 데리고 놀 수는 있고.”이윽고 그는 시선을 권하윤에게로 돌리며 입꼬리를 올렸다.“돌아갈까? 말까?”바로 죽이거나 괴롭혀 죽이는 것 중에 선택하라는 뜻이었다.그의 물음에 권하윤은 마치 반으로 쪼개져 저울 위에 올려진 느낌이었다.한참을 침묵하던 그녀는 끝내 조금이라도 더 살아 있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적어도 살아 있으면 희망이라도 있을 테니까.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고통이 전해지자 권하윤은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바쁘다는데 제가 어떻게 붙잡고 있겠어요? 아니면 저도 같이 블랙썬으로 가는 게 어때요?”“오늘 왜 이렇게 치댈까?”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그의 말에서 동의하는지 아닌지 뜻을 알아내지 못하자 권하윤은 그의 옷깃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준 씨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죠.”민도준은 자기의 옷깃을 꼭 잡고 있는 권하윤의 손을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별장에서 기다려. 일 끝내고 바로 보러 갈게.”이건 권하윤이 원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당장 블랙썬으로 가 성은우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었지 별장에서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의미심장하게 그를 훑어보더니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그리고 한순간 권하윤은 장소를 빌려준 값을 손에 받아 든 사장님과 함께 그곳에 남아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봤다.-백화점을 떠난 권하윤은 차에서 안절부절못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성은우가 고문이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파고들었다.‘설마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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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너무 똑같아

로건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도망치지 못하게 제대로 가뒀어요. 지금쯤 아마 전기구이가 다 됐을 거예요.”“전기요?”로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권하윤은 그게 고문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사람을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죽기보다 못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권하윤의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는 점점 무너졌다.일전에 민도준의 말을 듣고 성은우가 권하윤과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한민혁은 권하윤의 표정 변화에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이윽고 마음속에서 민도준이 이번에 제대로 된 연적을 만났다는 경고등이 번쩍거렸다.그는 눈알을 몇 번 굴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저기, 하윤 씨,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제가 도준 형 불러올게요.”부드러운 미소는 로건을 향할 때 인내심을 잃은 닦달로 바뀌었다.“다 처먹었으면 얼른 일어나!”하지만 로건은 조금 남은 도시락통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나 아직 배 안 부른데.”한민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로건의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고 싶었다.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던 순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민혁 형님, 여기 계시네요. 온종일 찾았습니다. 민 사장님이 형님 부르십니다.”“왜?”“사장님이 어디서 얻어왔는지 비싸 보이는 피아노 하나를 방으로 옮기겠다고 합나다. 그런데 우리가 뭘 알아야죠. 그러니 형님이 얼른 가보세요.”한민혁은 똘마니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피아노?”‘도준 형이 언제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설마 형님이 피아노도 쳐?”“어…….”말을 전하러 온 남자는 권하윤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얼버무렸다.“아마 고은지 씨가 쓰려는 것 같아요.”공기 중에 순간 어색함이 감돌았다.한민혁은 쓸데없는 물음을 물어본 자기의 뺨을 때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때문에 로건을 혼낼 겨를도 없이 이내 방을 빠져나갔다.“나가서 얘기해.”권하윤은 솔직히 한민혁에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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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도망칠 수 없다

특수 제작된 의자에 성은우는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양팔은 각기 의자에 묶여 있었다.게다가 다리를 따라 축 드리운 전깃줄까지 눈에 들어오자 권하윤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다행히 어두운 불빛 때문에 로건은 그녀의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여행객을 데리고 참관하는 가이드처럼 방안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하윤 씨, 이게 바로 기계 스위치에요. 누르면 전류가 1분간 흐를 거예요. 하지만 연속 누르면 안 돼요. 바로 콱 죽어버릴 수 있거든요.”하윤 씨라는 세글자를 듣는 순간 수그리고 있던 성은우의 고개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일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사인과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로건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제가 한 번 보여줄게요.”그가 빨간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권하윤은 즉시 그를 막았다.“잠깐만요!”“네?”로건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리며 약 2초간 멈칫하다가 뭔가 알아차린 듯 활짝 웃었다.“직접 해보시려고요? 이리 와 봐요.”“저…….”권하윤은 당연히 누를 리 없었다. 어떤 핑계를 댈까 생각하고 있던 그때 힘 있는 손 하나가 그녀의 앞을 쑥 지나 버튼을 눌러버렸다.잇따라 한껏 눌러 참은 신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성은우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까의 짤막한 신음을 끝으로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순간 권하윤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의 등 뒤에서 민도준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권하윤은 성은우를 걱정하면서도 갑자기 나타난 민도준에 겁을 먹어 한참 동안 입을 뻐금거리다가 끝내 그를 불렀다.“도, 도준 씨, 저 점심을 배달하러 왔다가 도준 씨가 바쁘다고 해서…….”찔리는 게 있는 듯 부연 설명을 보태다가 머뭇거리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대신 이어 나갔다.“오, 그러다가 심심해서 구경하러 왔어?”자기가 말하려던 말이 상대의 입에서 먼저 나오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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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마음 아프게 울다

뼈마디가 선명한 민도준의 손은 무감각할 정도로 차가운 권하윤의 손등위에 올려졌다.남자의 뜨거운 체온이 차가운 손등으로 전해지는 순간 가식적인 그녀의 가면까지 타버렸다.“안 돼요!”결국 버튼이 눌러지는 순간 권하윤은 손을 빼 민도준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뜨거운 눈물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타고 후둑후둑 떨어졌다.“제발요, 누르지 마요.”처절하게 우는 그녀의 모습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눈물을 닦아주었다.거두지 않은 힘 때문에 여린 그녀의 피부가 쓸려 아프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녀를 달래는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왜 울어? 마음 아프게.”민도준은 권하윤을 지나 그녀 등 뒤에 있는 성은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러고 보니 두 사람 이런 점은 참 닮았단 말이지. 하나는 지금껏 실수 한 번 한 적 없던 킬러면서 힘없는 여자 하나 죽이지 못하고…….”이윽고 권하윤의 턱을 잡은 채 억지로 성은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며 말을 이어갔다.“하나는 분명 죽을뻔했으면서 눈물 흘리며 킬러 대신 사정하고. 하, 정말 재밌네.”“…….”권하윤은 눈물이 앞을 가려 흐릿해진 시선으로 성은우를 바라봤다.죄책감, 두려움, 걱정 등 많은 감정들이 점점 불어나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기에 눈물이 유일한 배출구로 되었다.그녀는 민도준이 의심한다는 걸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시간을 최대한 끄는 것 외에 다른 퇴로가 없었으니까.진작 함정에 빠졌기에 지금 도망치고 싶어도 늦었다.민도준의 속은 그녀가 헤아리기에는 너무 깊고 복잡했다.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는커녕 그의 모든 행동에 따른 의미가 뭔지도 알기 어려웠다.어떤 게 그녀를 이용하려고 한 행동이었는지 어떤게 진심이었는지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의 몸을 성은우쪽으로 돌렸다.억지로 성은우와 정면으로 서게 된 그때, 민도준의 위험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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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우리 연인이에요

그 시각, 권하윤은 마치 지배받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성은우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녀와 가족은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니 무슨 일을 당하든 그 결과는 본인이 감당하면 그만이지만 아무 관련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더욱이 성은우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니까.궁지에 몰리자 권하윤은 오히려 태연해졌다.그녀는 땅을 짚고 일어서면서 눈물을 닦았다.“뭘 듣고 싶어요?”순간 지금껏 보여줬던 부드럽고 연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낯선 눈빛만 남았다.민도준은 막이 한 층 드리운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으로 다리를 톡톡 두드렸다.“우선 두 사람의 관계부터 말하는 게 어때? 권씨 가문 아가씨인 하윤 씨가 어떻게 다른 성에 위치한 공씨 가문 킬러를 알게 되었는지.”‘올 게 왔구나.’권하윤은 눈을 질끈 감다가 다시 뜨더니 이미 절망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저…….”“우리 연인이에요.”권하윤은 멈칫하더니 성은우를 돌아봤다.드물게 얼굴을 훤히 드러낸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민도준을 바라보다가 권하윤을 바라볼 때 다시 부드러워졌다.이윽고 그는 하던 말을 반복했다.“우리 연인이에요. 2년 전 제가 다쳤을 때 윤이가 저 구해준 뒤로 사귀게 됐어요.”그의 말이 끝나자 공기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그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던 민도준이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놀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음?”그러고는 권하윤을 바라봤다.“제수씨, 사실이야?”지금 상황에서 권하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려고 그런 말을 한 성은우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2초간 망설이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공기는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그러니까 연인이 있으면서 나랑 잤단 말이야? 아, 아니지, 연인이 있으면서 내 동생이랑 약혼하고 나랑 바람피웠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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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증명을 요구하다

민도준은 품에 안긴 권하윤을 대충 주물럭거리더니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가주님, 바쁘세요?”“괜찮습니다.”“아-”민도준은 갈 곳을 잃은 듯 바삐 움직이는 권하윤의 얼굴을 꽉 잡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바쁘지 않다면 얘기 좀 합시다. 제 구역에 킬러를 보낸 건 대체 무슨 뜻이죠?”그의 말에 권하윤은 흠칫했다.성은우는 분명 그녀를 죽이러 왔는데 민도준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런데 곧바로 민도준을 죽이러 왔다는 게 자기를 죽이러 왔다는 것보다 죄가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보아하니 공태준이 직접 설명하게 하려고 하는 거구나. 설마 공태준이 성은우를 보낸 목적을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공태준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민도준의 추궁에 전화 건너편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하지만 공태준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제가 은우를 경성에 보낸 건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였어요. 혹시 은우가 민 사장님 심기라도 거슬렀나요? 그랬다면 대신 사과드리죠. 하지만 민 사장님을 암살했다는 건 없는 일입니다.”“그래요?”민도준은 끝 음을 길게 끌면서 성은우를 바라봤다.“가주님이 보낸 게 아니면 성은우의 단독 행동이라는 거네요? 부하 관리가 이렇게 소홀하다니 이 빚은 어떻게 갚을 예정이죠?”“…….”민도준의 말은 권하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공태준에게 넘기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구역에서 사람이 잡혔고 이미 손에 목숨을 쥐고 있으니 그가 단언하면 반박할 사람이 없는 건 확실했다.그때 전화 건너편에서 낮게 중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아름이 민 사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민 사장도 알고 있잖습니까. 민 사장님과 권하윤 씨의 사이가 너무 깊은 걸 그 애가 불안해해서 제가 걱정을 덜어주려고 은우를 보냈습니다. 아름이가 민 사장에 대한 마음을 봐서라도 너무 책망하지 마세요.”분명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부탁하는 입장이었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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