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1664 챕터

제301화 사랑하는 사람

권하윤은 입을 벌린 채로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말, 말하지 마요.’민도준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귓가에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계속할까?”권하윤은 그가 말이라도 할까 봐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양옆에 놓여 있던 긴 머리카락도 그녀의 동작을 따라 하늘거렸다.그제야 민도준은 그에게 상이라도 주듯 머리를 만지며 대충 대답했다.“성운우 킬러님이 말하길 예전에 다쳤을 때 여자 하나를 알게 됐는데 지금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가주님도 모른다면 됐어요. 제가 시간 날 때 대신 찾아주면 되죠.”말을 마친 민도준은 바로 전화를 끊고 막다를 골목에 몰린 이 새끼 여우를 제대로 혼쭐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때 공태준이 하필이면 다시 물어왔다.“혹시 2년 전 하모니카를 줬던 그 사람인가요?”하모니카라는 단어에 권하윤의 눈은 다시 당황함에 마구 흔들렸다.그리고 마침 그녀의 허리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호주머니 속에서 하모니카를 찾아낸 민도준은 눈을 접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때 전화 건너편에서 공태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사실 그때 그 일도 다 제 불찰이었어요. 2년 전 제가 운우를 경성에 보냈었는데 그때 사고가 있었거든요. 만약 은우가 실력이 없었더라면 중상을 입고 다시 돌아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만약 민 사장님이 은우 대신 그 여자분을 찾아준다면 기쁜 일이긴 하겠네요.”“…….”공태준의 말은 성은우가 다쳤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 주었고 권하윤이 지니고 있던 하모니카는 그의 말에 결정적인 증거까지 제공해 주었다.하지만 이건 성은우가 한 말이 모두 거짓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그는 2년 전 확실히 큰 부상을 당했었다. 하지만 그가 권하윤과 만난 건 경성이 아니라 공씨 저택이다.게다가 하모니카도 그때 준 것이다.어찌어찌해서 거짓말은 진실로 둔갑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권하윤은 이게 대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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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죽고 싶어?

공씨 가문 때문에 언제나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권하윤을 만나던 성은우는 처음으로 이렇게 똑바로 권하윤을 쳐다봤다.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고 찾아온 이 순간이 과분할 정도로 소중했다.웃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무표정으로 산 얼굴이라 굳었는지 아니면 웃는 방법을 잊었는지 입가에 걸린 미소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웠다.“괜찮아, 안 그래도 원래 죽을 목숨이었어.”나지막한 위로가 잇따랐다.“…….”하지만 그 말에 권하윤의 눈물은 더 심하게 흘러내렸다.‘안 돼. 이러면 안 돼!’감정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권하윤은 끝내 민도준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생각을 간파한 성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무 늦었어. 윤아, 너무 늦었어.”그는 공태준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가 의심하기 시작한 마당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때문에 권하윤이 모든 걸 고백한다 해도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더욱이 그는 처음부터 살 생각이 없었다.민도준의 말처럼 연약한 여자 하나 죽이지 못한다는 건 실수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실수했다고 해도 다시 기회를 찾으면 그만이니까.그게 아니라면 그가 죽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그가 죽으면 공태준도 권하윤이 민도준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될 테고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때문에 민도준이 두 사람의 관계를 물었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인이라고 말했다.민도준을 자극해 죽음을 자초하려는 것 외에도 한 번쯤은 마음이 품어오던 꿈을 이루게 하고 싶었으니까. 아무리 그게 가짜라도 말이다.이 시각, 성은우는 더 이상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고 권하윤을 탐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그대로 내비쳤다.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권하윤은 해원에 있을 때보다 많이 여위었고 명랑하고 맑기만 하던 얼굴에 고통이 맴돌고 있었다.사실 그는 말없이 도망친 그녀를 원망한 적 없다고, 그녀가 공씨 저택에서 도망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자기의 하모니카 실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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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그녀에 대한 조사

민도준이 이런 걸 조건이랍시고 내걸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권하유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민도준은 다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여유로운 듯 되물었다.“왜? 싫어?”여전히 아무 대답 없는 권하윤을 빤히 보던 그는 성은우 쪽으로 턱을 들더니 명령했다.“1분 지났어. 한 번 더 눌러.”“할 게요!”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권하윤은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그러자 로건은 자각적으로 몸을 돌려 벽을 마주했다/이제 방금 전류 때문에 잃었던 감각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던 성은우는 민도준의 다리 위에 앉은 권하윤을 보자 두 눈에 핏발이 섰다.“민 사장님, 우리 얘기 좀 합시다.”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권하윤의 가는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얘기? 나 지금 바쁜데. 그냥 말해.”성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었다.“민 사장님은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잖아요. 저처럼 어둠 속에서만 사는 개 때문에 윤이한테 상처를 입힐 가치가 없지 않나요?”자기를 비하하는 그의 발언에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권하윤의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그가 이렇게 말하는 건 민도준이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 권하윤을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그는 자기처럼 천박한 사람 때문에 언짢아할 필요 없다는 걸 애써 어필했다.하지만 잔인하고 대단하기로 유명한 성은우가 자기 품에 안긴 여자를 위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민도준은 혀로 볼을 꾹 밀며 화를 삭였다.“그러지 뭐. 성은우 킬러님이 나한테 할 말이 있다는데 시간은 줘야지 않겠어?”그는 권하윤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다가 톡톡 두드렸다.“밖에서 기다려.”하지만 권하윤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나가면 다시는 성은우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로건, 끌어내.”“하윤 씨, 나가시죠.”민도준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로건이 권하윤의 시선을 막아섰다.그러다가 여전히 버티고 서있는 그녀를 보고는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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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똑같은 사람

조사를 끝낸 비서는 자료를 들고 공태준을 찾아온 순간까지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듯 쉴 새 없이 눈을 비벼댔다.그 표정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싶었다.“가…… 가주님.”그의 떨리는 부름 소리에 의자가 빙 돌더니 공태준의 시선이 비서가 쥐고 있는 자료에 멈췄다.“이리 가져 와.”“어, 네.”잠시 뒤.종이의 가장자리는 손끝에 눌려 구겨졌고 고개를 숙인 탓에 눈에 드러난 모든 감정이 모두 가려졌다.그렇게 약 30초간 흘렀을 때 공태준의 목소리가 끝내 들려왔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비서도 아직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아마도 경성에 있는 권하윤 씨와 이시윤 씨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이건 많이 닮은 게 아니라 아예 똑같은 수준이었다.만약 옆에 권하윤이 어린 시절부터 겪은 기록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공태준은 아마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하지만 이시윤과 다른 건 권하윤은 어릴 적부터 가문의 영향으로 재벌가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거다.그리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권하윤과 민승현이 약혼했을 때 찍은 웨딩사진이 있었다. 외적으로 봤을 때 꽤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공태준은 믿기지 않는 듯 다시 한 장 한 장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이 자료들 모두 사실이야?”“저도 권씨 가문에서 이런 사람을 일부러 만들어 낸 건 아닌지 의심은 가지만 알아본 데 의하면 권하윤 씨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랍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경성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대외적인 활동도 끊긴 적 없다고 합니다.”한참을 설명하던 비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아마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겁니다.”하지만 공태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사진 한 장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었다.“문태훈 불러 와.”“아, 그렇네요. 문태훈 씨가 아름 아가씨와 함께 경성에 갔었으니 분명 권하윤 씨를 만난 적 있을 겁니다. 바로 불러오겠습니다.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히 움직였다.얼마 전 문태훈은 의식을 잃은 채 해원에 실려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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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꿈속에서 다른 남자를 부르다

비서는 공태준의 말에 깜짝 놀랐다.어찌 됐든 문태훈은 그래도 가주 곁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버린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되물었다.“가주님 뜻은…….”“그래.”비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혹시 문태훈 씨를 의심하는 겁니까? 제가 다시 물어볼까요?”“필요 없어.”공태준의 말투는 무덤덤했다.“눈 한쪽이 멀었으니 이젠 쓸모없어졌어.”“네, 가주님.”비서가 나가자 공태준은 자료를 다시 펼치며 사진 속 익숙한 얼굴을 손으로 살살 매만졌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손끝이 아려오더니 작은 상처 사이로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얇고 부드럽기만 하던 종이가 살을 베어 가장 연약한 속살을 드러낸 거다.그 순간 그의 귓가에는 잔뜩 겁을 먹은 듯한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기억을 고스란히 접어둔 그는 엄지로 검지를 쓱 문질렀다. 일순 약한 통증이 점점 퍼져 가슴을 파고들었다.-블랙썬.연약한 여인은 몸을 한껏 움츠린 채 휴게실 침대에 누워있었고 꼭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이 계속 흘러 나와 붉은 뺨을 적셨다.“제…… 제발요…… 은우 죽이지 마세요…….”“…….”“민혁 형님, 하윤 씨 왠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로건은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와 마찬가지로 쪼그려 앉아 있는 한민혁을 바라봤다.그리고 그의 잇새로 흘러나오는 물음에 한민혁은 어이없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고맙네. 네가 말 안 했더라면 이상한 줄 몰랐겠어.”“하하, 그렇죠?”“…….”한민혁은 로건의 말에 대꾸하기도 귀찮은 듯 고개를 돌려 권하윤을 바라봤다.보아하니 열이 펄펄 끓는 것 같아 민도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권하윤이 하필이면 잠꼬대마저 성은우의 이름을 불러대는 바람에 한민혁은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만약 민도준이 이걸 들으면 또 발칵 뒤집힐 게 뻔했으니까.하지만 계속 시간을 끄는 것도 방법이 아니기에 한도준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민도준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이윽고 그는 심심한 듯 손장난을 치는 로건에게로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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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죽고 싶으면 도와줄게

권하윤의 열이 내려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입안은 씁쓸하고 눈가는 시큰거리고 머리는 터질 듯 아파 오더니 결국은 쓰러지기 전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은우…….’그녀는 이불을 들추며 일어났지만 눈과 머리가 어지러운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로 주저앉아 버렸다.하지만 곧 닥쳐올 고통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눈을 질끈 감은 그때 팔 하나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곧이어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죽기라도 하려고 그래? 여긴 침대지 옥상이 아니야. 뛰어내려도 죽지 못해.”권하윤은 그의 접촉이 역겹도록 싫어 몸을 버둥대며 빠져나오려고 애썼다.“은우는요? 저 은우 보러 갈래요!”민도준은 그의 저항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듯 그녀를 가볍게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는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보았다.“죽었어.”이윽고 손목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며 말을 이어갔다.“지금쯤이면 아마 저승 문턱을 넘었을 거야.”다시 침대에서 내리려던 권하윤은 일순 정지한 듯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들며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은 채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지금 저 놀리는 거죠? 은우 아직 살아있죠?”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손아귀로 그녀의 턱을 잡으며 위로 들었다.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아직 남아있는 미열로 붉게 물들었고 눈물에 젖은 눈동자에는 당황함이 담겨 있었다.그때 살짝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내 곁에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서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까? 내가 남의 사정 봐주는 사람으로 보여? 더욱이 상대는 내 구역을 침범한 개새끼인데?”“…….”권하윤은 민도준의 눈빛에서 장난기를 찾고 싶었지만 깊고 어두운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서늘함만 담겨 있었다.결국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한 그녀의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었다.“시신은 어디 있어요?”“시신? 개밥으로 줬어.”민도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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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아파도 계속

격렬한 반항으로부터 점점 무감각해진 권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절망에 빠진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땀에 젖은 머리는 계속 움찔거리며 쉬지를 못했다.허리를 조여오는 감각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허리를 끊어버릴 것만 같았고 몸에 전해지는 고통도 가슴의 고통을 덮지 못했다.그렇게 흐리멍덩해진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쏴-”샤워기의 뜨거운 물이 그녀의 몸에 흩뿌려질 때 침대 시트에 쓰려 빨갛게 된 등줄기가 움츠러들었다.하지만 그걸 끝으로 그녀는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씻겨져 다시 침대로 옮겨졌다.광란 뒤에 찾아온 평화는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길 속에서 남겨진 잿더미 같았다.잠시 지속된 고요함은 바람과 풀의 움직임에 쉽게 깨졌고 날숨 한 번으로 잿더미가 된 심장이 흩날리듯 움직이며 어둠만 남은 이 순간을 상기시켰다.한참의 침묵 끝에 나직한 목소리가 침대에서 울려 퍼졌다.“저 집에 갈래요.”담배를 쥔 민도준의 손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입가에 갖다 댔다.“내일 가.”“저 집에 갈래요.”권하윤은 그를 등진 채 한 번 또 한 번 중얼거렸다.“저 집에 갈래요.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어요.”새벽 3시.어둡고 고요한 밤, 검은색 부가티가 바람을 가르며 길 위를 질주했다.조수석에 앉은 권하윤은 자기 것이 아닌 외투로 몸을 두른 채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뒷모습만 남겼다.모퉁이를 돌 때 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얇은 몸뚱아리를 한껏 움츠린 채 조용하게 앉아 있는 그녀를 본 순간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 섞인 미소가 번졌다.‘진짜 죽어버리면 신경 쓸 필요도 없겠는데.’길게 이어진 침묵 속에서 차는 끝내 목적지에 도착했다.죽어도 집에 오겠다며 길길이 날뛰던 그녀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도착하기 무섭게 도망치듯 달려 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차가 멈춰 선지 한참이 지났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민도준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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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어떤 오빠를 말하는 거야?

창가에서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민도준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한민혁은 계속 애원할 뿐이었다.“여기가 하윤 씨 집이 아니면 누구 집이에요? 그렇다고 우리 집에 데려갈 수는 없잖아요. 더 이상 주사 안 맞으면 그때는 진짜 시체를 집으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여전히 협조하지 않는 권하윤의 모습에 한민혁은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강요할 수는 없어 민도준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창가에 있어야 할 사람이 말도 없이 침대 옆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하마터면 바늘로 자기 입을 찌를 뻔했다.“도준 형?”민도준은 아무 말 없이 헛소리하는 여인을 빤히 내려봤다.그녀는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가냘픈 목소리로 끊임없이 한마디를 반복했다.“여기 우리 집 아니야, 우리 집 갈래…….”너무 오래 울어 그런지 그녀의 눈꼬리는 피가 난 것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너무 짓씹어 대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계속 애절한 한마디를 뱉어냈다.한참을 듣고 있던 민도준은 허리를 숙여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덮었다.이마를 따라 뒤로 쓸어내리는 힘은 그나마 부드럽다고 할 수 있었다.그러다가 권하윤의 울음소리가 조금 약해졌을 때쯤 사람을 현혹하는 듯 달콤하고 낮은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어디 가고 싶어?”이 물음을 들은 한민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도준 형 귀가 잘 안 들리나? 아까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온종일 중얼거린 사람한테 어디 가고 싶냐니?’역시나 권하윤은 아까의 말을 반복했다.“집에 갈래, 집에 갈래…….”“어느 집?”퉁퉁 부은 눈꺼풀이 가는 틈을 만들며 조금씩 떠졌다.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어지럽기만 했다.하지만 이마 위에 덮인 손은 그녀에게 가족의 사랑을 받던 그때로 돌아갔다는 착각을 심어주었다.힘없는 손을 들어 상대의 따뜻한 손끝에 닿는 순간 권하윤은 무너지듯 펑펑 울기 시작했다.“오빠, 집에 데려가 줘…… 오빠 제발…….”오빠라는 두 글자를 듣자 한민혁은 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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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이젠 만지지도 못해?

한민혁이 아래층에서 졸고 있을 때 갑자기 계단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민도준의 소리였다.그가 내려오는 걸 보자 한민혁은 벌떡 일어났다.“약 바꿀 때 됐어?”“빨리 바꿔.”“알았어.”그가 약을 바꾸고 다시 내려왔을 때 민도준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이 집의 주인 같았다.속으로 혀를 끌끌 찬 한민혁은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이번에 바꾼 게 마지막이야. 더 시킬 일 없으면 나 먼저 블랙썬으로 돌아갈게.”그때, 연기가 민도준의 입가에서 새어 나와 주위에 천천히 흩어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블랙썬은 잠시 다른 애들한테 맡기고 넌 며칠 동안 해원에 좀 다녀 와.”“뭐?”한민혁은 어안이 벙벙했다.“해원? 거긴 공씨 가문 구역이잖아. 혹시 해원에 사업 확장하려고?”민도준은 귀찮은 듯 그를 힐끗 바라봤다.“사업 확장 건을 너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야? 길가에서 구걸이라도 하게?”“…….”“그러면 왜 그러는데?”민도준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공시 가문 움직임 잘 관찰해. 특히 공태준.”한민혁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린 듯 위층을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민도준을 바라봤다.“혹시 하윤 씨와 공시 가문을 의심하는 거야?”민도준이 부인하지 않자 한민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그런데 하윤 씨에 대해 조사할 때 계속 경성에 있었던 거로 나왔었잖아. 이상한 점 없었는데?”“보아낼 수 있는 문제가 진자 문제겠어?”한민혁은 순간 막막했다.하지만 담배를 눌러 끈 민도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내가 지금 꾸물대는 널 죽이고 싶다는 거 너도 눈치채지 못했잖아. 이런 게 진짜 문제 아니겠어?”한민혁은 몸을 흠칫 떨더니 벌떡 일어났다.“알았어! 무조건 임무 완수할게!”-다음 날 아침.권하윤이 깨어났을 때 눈꺼풀이 무겁다 못해 제대로 떠지지 않았고 앞도 흐릿해 몇 번이고 문지르고 나서야 겨우 떴다.흐릿하던 초점이 점점 맞춰지고 나서야 그녀는 자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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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마음대로 해요

지금 이 순간 권하윤은 아까와는 달리 고분고분해졌고 목소리도 한껏 부드러워졌다.“저 할 말이 있어요.”민도준은 그녀의 재밌는 변화에 손의 힘을 빼며 그녀의 턱을 문질렀다.“왜? 벌써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철 들었네.”권하윤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도준 씨 말대로 도준 씨와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이런 것도 알지 못하면 바보죠.”몇 초간 그녀를 바라보던 민도준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자기 다리를 가리켰다.권하윤은 역시나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위에 앉더니 예전처럼 고개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그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보니 눈을 내리깐 권하윤의 얼굴이 보였고 그 아래로 내려가자 헐렁한 옷깃에 살짝 가려진 가는 목덜미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 빨간 키스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민도준은 키스 마크를 손으로 살살 긁으며 입을 열었다.“말해 봐, 무슨 말이 하고 싶어?”“저 권씨 가문을 갖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흥미를 느낀 민도준은 그녀의 목덜미를 손으로 받쳐 들며 빤히 바라봤다.“하, 의외로 야심가였네.”권씨 가문은 물론 민씨 가문보다는 한참 뒤떨어진 데다 명문가 중에서도 끝자락에 속한다지만 작은 가문은 아니다. 게다가 경서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친 유서 깊은 가문이기에 하루 아침에 흔들 수 있는 게 아니다.만약 다른 사람이 권하윤의 말을 들었다면 반드시 그녀가 미쳤다고 비웃을 게 뻔하다.하지만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은 민도준이다. 이 세상의 일은 그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에 달렸지 할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를 따지는 건 오히려 그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그가 아무리 권하윤을 비웃는다 해도 그건 할 수 없는 허황한 꿈을 꾸는 그녀를 비웃는 게 아니라 그저 그렇게 수고스럽게 그녀를 위해 권씨 가문을 빼앗는 게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거다.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기에 권하윤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았다.이윽고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부탁했다.“어렵다면 됐어요. 그저 도준 씨가 도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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