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281 - 챕터 290

1602 챕터

제281화 사람을 빼앗다

민상철은 민도준의 허세 부리는 말투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시간 없으면 만들어 내!”버럭 소리를 지른 민상철은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민도준이 원체 말을 안 듣는 사람이라는 게 생각이 났는지 화를 가라앉히며 말을 보탰다.“너 백제 과학기술 단지 맡고 싶어 했잖아. 네가 내일 오면 그 건 고려해 볼게.”심심한 듯 라이터를 만지작대던 민도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가늘게 접었다. 하지만 장난기 섞인 껄렁한 목소리는 여전히 변함없었다.“오호, 우리 영감 오늘 무슨 일로 이렇게 시원시원하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지옥에 가 설명하기 어려울까 봐 선행이라도 베풀려고 그러나?”“너!”민상철은 일순 눈앞이 아찔해 났다.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화를 내지 않고 숨을 크게 돌린 뒤 목소리를 내리깔았다.“그건 너희 부모님이 일궈낸 피 같은 회사야. 너 설마 다른 사람 손에 넘길 생각이야?”민도준은 눈썹을 치껴올렸다. 그렇다고 민상철이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자기를 불러내는 게 대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기는 했다.이에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주먹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그래요. 할아버지 체면을 봐서 갈게요. 이번에 저한테 신세 졌다는 거 기억하세요.”“뚜뚜뚜-”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상철은 순간 화가 거꾸로 치밀어 올랐고 심장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그 시각 치솟아 오르는 심장박동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은 또 있었으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민혁이다.그는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로 방 안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도준 형, 지금 시간 있어?”“말해.”눈도 들지 않은 채 말하는 상대에 한민혁은 비좁은 문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와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그게 뭐냐면. 내가 애들 데리고 권하윤 씨 집 부근에서 수색해 봤는데 성은우는 못 찾았어.”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던 한민혁은 민도준이 화를 낼까 봐 한마디 더 보충했다.“그런데 이미 쥐새끼도 못 빠져나가게 경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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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다음에 보면 모른 척해

주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나무 그림자만이 바람에 날려 흔들거렸다.하지만 권하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하모니카가 놓인 모양을 확인하더니 차를 틀었다.느릿느릿 전진하는 와중에 그녀는 계속 주위의 경계를 살피며 뭔가를 찾았다.신호등을 하나하나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심장도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긴 도로를 온종일 주행했지만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그러던 중 양쪽 거리에 펼쳐진 녹색 풍경이 점차 호화로운 고급 빌라로 변화되면서 어느 낡은 도시지역에 도착했다.몇 개의 작은 골목을 지나자 앞길을 막고 있는 장터가 보였다.시장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름진 튀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데? 아마 여기겠지?’그제야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녁 식사 무렵이라 그런지 시장을 누비는 노인들 외에도 퇴근한 직장인과 하교한 학생들이 상가 앞에 모여들었다.권하윤은 어느새 그 틈에 녹아들어 장을 보는 듯 이리저리 둘러봤다.하지만 길지 않은 거리의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에도 주위에 익숙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설마 아직 안 도착했나?’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거리에서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건 너무 튀는 행동이었기에 권하윤은 작은 상가 앞에서 줄이라도 서야겠다고 결심했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호떡을 파는 작은 수레 하나가 눈에 들어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 앞으로 걸어갔다.노릇노릇 구워진 호떡 사이에서 좔좔 흐르는 속을 보니 저도 모르게 군침이 싹 돌았다.때문에 그저 앞에 서 있기만 하러던 권하윤은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앞에 줄을 선 학생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그러던 그때 옆에서 갑자기 나지막한 소리기 들려왔다.“하나요.”“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호떡 사장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권하윤은 흥분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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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더 드실래요?

계속 들려오지 않는 일순 불안해 난 권하윤은 핸드폰의 신호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때 조수석 문이 달칵 열렸다.“어, 누구…….”한마디를 채 내뱉지도 못한 채 나머지 말은 목구멍 안으로 사라졌고 물기 도는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민도준은 혼이 나간 듯 놀란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나 보고 싶다며? 기쁘지 않은가 봐?”잠깐 넋을 잃고 있던 권하윤은 한참이 지나서야 제 목소리를 되찾았다.“당연히 기쁘죠. 그냥, 너무 놀란 것뿐이에요…….”“음?”민도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뭐라도 할까 봐 그래? 하윤 씨 뭐 잘못한 것도 없잖아. 안 그래?”남자의 목소리는 권하윤의 나약한 심장을 고공으로 뿌렸다가 다시 가슴으로 처박았다.이에 권하윤은 자기와 성은우의 암호를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쉴 새 없이 최면을 걸었다.‘은우가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걸 보면 충분한 자신감이 있는 체 틀림없어. 도준 씨는 그저 내가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돼서 의구심에 따라온 걸 거야.’“왜 자꾸 절 놀래켜요?”권하윤은 그제야 입을 삐죽거리며 여상스럽게 애교부렸다.그런 그녀를 보던 민도준은 입가에 호를 그리며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그때 권하윤은 기회를 틈타 손에 쥐고 있던 호떡을 그의 앞에 건네며 입을 열었다.“아직 따듯해요. 드셔보세요.”마치 뇌물이라도 바치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얼른 먹어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더니 그녀의 손에 들린 호떡 두 개를 힐끗 바라봤다.“뭐야?”“호떡이요. 저 오래전부터 이거 먹고 싶었거든요.”권하윤은 비닐봉지를 풀어헤치며 말을 이어갔다.“여기 어렵게 찾은 거예요. 도준 씨 것도 하나 사서 블랙썬에 갖다주려고 했는데 여기서 마침 만났네요.”은연중에 자기가 왜 이곳에 있는지 설명한 그녀는 종이컵에 담은 호떡을 민도준 입가에 가져가더니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그를 다그쳤다.“얼른 입 벌려요.”따라 해 보라는 식으로 빨간 입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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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적게 입어

“저…….”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싸늘한 기운이 권하윤을 감쌌다.그제야 그 침묵 때문에 꼬리를 숨기려다 들킴 여우 신세가 됐다는 자각이 들었다.그녀가 묻지 않았던 건 성은우가 이미 민도준 쪽 사람이 뒤를 밟고 있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다.민도준은 재촉하지도 않고 여유로운 듯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아까만 해도 민도준에게 끌려 무릎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던 권하윤은 잠깐의 경악 뒤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그리고 작은 얼굴을 쳐들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사람을 보내 저 보호해 주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제저녁에도 갑자기 나타난 거잖아요.”말하는 동시에 손을 살살 움직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도준 씨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저 다 알아요.”그때, 옷깃이 살짝 흔들며 느끼지 못 할 정도의 작은 바람이 불었다.멀리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야시장의 불빛이 권하윤의 눈에 비쳐 반짝거렸다.그 모습은 마치 기름에 튀긴 길거리 음식처럼 해롭지만 유혹적이었다.두 쌍의 눈이 한참을 말없이 마주 보고 있었고 오래 지속되는 침묵에 권하윤의 호흡은 어느새 흐트러졌다.긴장과 불안 속에서 실낱같은 설렘이 억지로 밀려 들어오더니 갑자기 환한 야시장의 불빛이 커다란 손에 가려졌다.이윽고 권하윤이 놀라 입을 살짝 벌린 틈으로 남자의 말캉한 혀가 비집고 들어왔다.조금 전 보여줬던 침략적인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내일 민씨 저택 갈 때 안에 옷 적게 입어. 하기 편하게끔.”키스로 이미 뜨거워진 귀와 얼굴은 민도준의 말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하지만 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그녀가 그런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민도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그녀의 심장이 저릿해 날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살짝 웃었다.“점점 더 밝히네.”그리고 그는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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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똑 닮은 두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도준이 유유자적한 걸음걸이로 거실에 들어섰다.“이런, 다들 도착했네요.”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하나 남은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눈길을 돌려 주위를 훑던 그는 끝에 앉은 권하윤에게 시선이 멈췄다.그녀는 긴 머리를 어깨 뒤에 드리운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계속 흔들리는 귀걸이는 불안한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그제야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테이블을 툭툭 쳤다.“사람도 다 도착했는데 다들 수저 드시죠.”늦게 온 그가 오히려 건들건들한 태도로 주인행세를 하자 민상철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를 꾸짖었다.“고씨 집안 어르신들이 여기서 너 하나 기다렸는데 인사도 안 드려?”민도준은 눈을 들어 맞은 편에 앉은 고창호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아, 어르신도 계셨네요. 오랜만입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분명 의문구로 말을 끝났지만 그는 상대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계속 이어 나갔다.“어르신은 절대 저희 할아버지처럼 심장마비로 쓰러진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연회를 여네 마네 하며 고생을 사서 하지 마세요. 밥상머리에서 갑자기 병이라도 도져 봐요.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마저 죄인 되지 않겠습니까?”“…….”그의 말에 거실은 일순 적막이 흘렀다. 심지어 맨 끝에 앉은 권하윤은 눈앞이 캄캄해 났다.‘어떻게 이리 바람 잘 날 없지?’아니나 다를까 민상철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만약 고씨 집안사람들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상을 엎었을 기세였다.다행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고창호는 미소를 지으며 중재에 나섰다.“이런, 내가 눈치가 없었네. 상철 형님을 너무 오래 못 봐서 같이 먹고 즐길 생각으로 불쑥 찾아오다 보니 그 일을 잊었군. 그래도 같은 핏줄이라고 형님 생각해 주는 건 민 사장밖에 없네. 자, 내가 잘못했으니 벌주 한잔 마시지.”조그만 흠도 찾을 수 없는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다시 사르르 녹았다.그 시각 권하윤은 속으로 늙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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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그 여자가 아니야

고창호는 눈빛을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그렇네. 은지야, 얼른 민 사장한테 인사드려야지.”고은지는 그의 말을 따라 고분고분 민도준 쏙으로 걸어갔지만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몸을 약간 수그렸다.무뚝뚝한 얼굴에 괴팍한 성격, 그리고 그녀가 오늘 입고 있는 무채색 치마까지 더해지자 잒만 고인을 떠올리게 했다.민도준이 그녀를 훑어보고 있던 그때, 민상철이 입을 열었다.“안 그래도 내가 마침 과학기술 단지를 도준한테 맡길까 하는데, 앞으로 우리 두 가문이 더 가까워지겠군.”그리고 그는 잠깐 말을 끊더니 다시 이어갔다.“그런데 도준이는 아직 과학기술 단지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테니, 용재 네가 얘 좀 잘 가르쳐 봐.”민상철의 말을 듣고 나니 권하윤은 오늘 이 자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게 뭘 위해서인지 눈치챘다.마치 불과 물처럼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한 가지 일을 맡긴다는 건 그 둘에게 싸움을 붙이려는 뜻이나 다름없다.하지만 과학기술 단지의 핵심 기술은 모두 고씨 가문에서 제공하기에 민도준이 이 기회에 고은지와 관계를 확정 지으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역시 계략가네.’민도준이 공은채에 대한 감정, 과학기술 단지의 이익, 그리고 첫째네와 둘째네의 경쟁, 민상철은 이 모든 걸 한꺼번에 주무른 셈이다.‘인정하자. 도준 씨가 고은지 씨한테 흥미를 느끼는 건 당연해. 도준 씨는 언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돼 있어.’그리고 그게 누구든 권하윤은 아닐 거다.아무리 그녀가 민승현과 파혼을 한다 해도 예비 제수씨에서 아내로 된다는 건 넘기 힘든 강이니 말이다.더욱이 민씨 가문에서는 이런 추악한 일이 가문에 벌어지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을 거다.하물며 공은채와 이렇게나 닮은 고은지까지 나타났으니…….아무리 생각을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민도준이 고은지가 가까이하는 걸 거절하지 않고 민상철의 말을 듣는 걸 보고 있자니 권하윤의 마음은 씁쓸해 났다.이윽고 더 이상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그러던 그때, 민상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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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다른 여자를 선택하다

담배가 타들어 가며 빨간 불빛을 내뿜더니 곧이어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현장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었다.목적에 도달한 민상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우리 늙은이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다들 흩어져.”흩어지기 전 민상철은 민도준을 힐끗 바라봤다.“넌 오늘 늦었으니 고 어르신을 대신해서 은지나 데려줘.”마침 일어서는 순간 이 소리를 들어버린 권하윤은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그녀가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민도준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데려다주라고요? 저를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가벼운 말투는 곧바로 민상철의 화를 불러왔다.“행실 똑바로 해! 은지는 고씨 가문 둘째 아가씨야. 네가 밖에서 만나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참한 애 놀라게 하지 마!”약 2초간 멍해 있던 권하윤은 끝내 고개를 떨군 채로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묵묵히 밖으로 나갔다.그 모습을 본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하, 억울하긴 한가 봐.’눈길은 치맛자락 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발목에 멈춰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며 느긋하게 일어섰다.“요구가 참 많네. 그래요. 할아버지 말 들을게요. 제가 이렇게 효도한다니까요.”“…….”문밖.저택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민시영은 권하윤을 끌어당기며 나직이 몇 마디 위로를 건넸다.“과학기술 단지는 우리 가문 수익 중 3분의 1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파트예요. 도준 오빠가 거절하지 않은 건 고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고씨 가문 기술이 필요했던 걸 거예요.”“시영 언니, 그런 말 저한테 안 해도 돼요.”권하윤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게다가 그녀는 민도준이 고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한은.하지만 이런 말들을 민시영한테 말할 수는 없었다.민시영도 그녀가 자세한 얘기를 피한다는 걸 눈치채고 싱긋 웃었다.“하긴, 둘째 오빠 성격을 아니까 하는 말인데 결과가 빨리 정해지는 게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두 사람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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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재밌게 노네

“도착했네. 제수씨, 고생했어.”뒷좌석 문이 열리자 밤바람이 차 안으로 불어 들어왔고 권하윤의 마음도 덩달아 서늘해졌다.어슴푸레한 밤, 달빛을 밟으며 아파트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화기애애하고 어울렸다.그 두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권하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조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려던 그때 문자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주차할 곳 찾아 나 기다려.]‘기다리라고? 적어도 시간 단위로 끝내던 사람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한다고?’그녀가 아무리 그 시간과 여유가 있다 해도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먹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다.당연하다는 듯 문자를 무시한 그녀는 핸들을 틀었다.하지만 그녀가 그러기를 알기라도 한 듯 문자 하나가 더 도착했다.[도망치기 전에 다리 필요 없는 거로 간주할 게.]“…….”막 길목을 지난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다시 핸들을 꺾어 커피숍 앞에 주차했다.일 분, 일 초…… 끝나지 않는 기다림에 점점 답답해 난 권하윤은 결국 차 문을 열고 공기를 쐬었다.그리고 반 시간 뒤 끝내 차키를 뽑고 차에서 내렸다.“버블티 하나 주세요.”달짝지근한 액체가 씁쓸하던 혀끝을 감싸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버블티를 들고 차에서 한참 동안 멍때리던 권하윤은 점점 생각에 잠겼다.대타를 찾는 사람은 자기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민도준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가 고은지를 선택한 사실은 변함없었다.‘비슷한 사람에게조차 이렇게 대하는 데 공은채 본인에게는 어떻게 대했을까? 나 뭐로 비기지?’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쯤 기다렸을 때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하지만 권하윤은 고개도 쳐들지 않고 바닥난 버블티를 계속 빨아댔다.민도준이 차에 오르자 고은지가 차에 올랐을 때 나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분명 은은한 향이었지만 그녀의 코끝은 향기에 자극됐다. 서늘한 향기가 민도준의 몸을 감돌다가 공중에서 휘발되고 있다는 것마저 느낄 수 있었다.그때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뭘 그렇게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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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기분을 풀어주다

권하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민도준이 입을 열었다.“설마 내 그 동생이야? 아니면 다른 사람?”다른 사람이라는 단어를말 할 때 민도준의 어조는 뭔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 의미심장했다.그리고 권하윤은 왠지 그 다른 사람이 바로 성은우를 가리키는 거라고 느껴졌다.‘설마 나랑 은우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걸 알았나? 에이, 설마. 알아냈다면 내가 이렇게 무사히 앉아있지 못했을 거야.’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권하윤은 과감하게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승현은 제 약혼남이에요. 약혼남한테 이런 이벤트정도 해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오, 그렇긴 하지.”민도준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러고 보니 잊을뻔했네. 요즘 임신 준비한다고 했지? 걔 애라도 낳아주게?”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반박하기도 그렇고 더욱이 화가 나 있었기에 권하윤은 이내 코웃음을 쳤다.“당연하죠. 안 그러면 뭐 다른 사람의 애를 낳아주겠어요?”앞뒤 가리지 않고 질러버린 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를 비웃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허리를 툭툭 쳤다.“얼른 운전해.”이런 반응은 오히려 의외였다.그제야 권하윤은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하긴, 내가 애를 낳든 말든 도준 씨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일순 가슴이 답답했지만 한참을 운전하고 나서야 권하윤은 민도준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곧바로 고개를 돌려 물으려 할 때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블랙썬으로 가.”‘진짜 블랙썬으로 가는 거네.’권하윤은 소리 없이 입을 삐죽거렸다.그 뒤로 블랙썬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도착했어요. 안까지 마중하지는 않겠어요…….”“주차장으로 가.”권하윤은 그의 당연한 듯한 어투에 울컥했다.‘설마 날 운전기사로 보고 있잖아!’이윽고 그녀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 몇 걸음 더 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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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미끼를 내던지다

그 뒤로 권하윤의 목소리는 모두 남자의 손에 갇혀 새오 나오지 못했다.장소에 대한 불안함과 갑자기 민친 듯 달려드는 민도준에 대한 두려움이 한데 겹쳐 생리적인 눈물이 끝내 폭발했다.작은 흐느낌 소리가 흔들리는 차체 때문에 흩어져 가련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오늘 민도준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밖을 힐끗거리더니 권하윤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며 그녀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때 갑자기 멀리서 불빛이 구석을 비춰왔고 가뜩이나 잔뜩 긴장했던 권하윤은 마치 뭍에 꺼내진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다가 끝내 힘이 빠져 의식을 잃었다.다행히 주차 구역을 찾는 차였기에 주위를 대충 살피다가 자리가 없자 바로 떠나버렸다.민도준은 눈물범벅이 된 권하윤을 힐끗 보더니 더 이상 계속하지 않고 옷을 입혔다. 그러고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그녀를 차에서 안아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안.민도준은 뭔가를 발견한 듯 한 곳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하, 역시나.’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그의 의미심장한 미소도 함께 문 사이로 사라졌다.점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던 구석진 곳의 검은 그림자는 가죽장갑을 낀 손을 꽉 그러쥐었다.-정신을 차린 권하윤이 가장 먼저 한 건 자기 몸을 검사하는 거였다.그리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무서워?”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누워있는 맞은 켠 소파에 앉은 민도준을 발견했다.하지만 아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그와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아 자기를 덮고 있던 외투를 걷어내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런데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남자의 두 팔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화났어?”이윽고 남자는 그녀를 자기 쪽으로 돌리며 그녀의 코를 쥐고 흔들었다.“아까는 장난친 거야. 화내지 마. 응?”권하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에 반해 민도준은 사람 하나 괴롭혀 죽여야만 끝내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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