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261 - Chapter 270

1602 Chapters

제261화 미련을 버리다

“음?”민도준의 눈꼬리에는 약간의 흥미가 번졌다.“그러니까 정말로 나를 위해 죽으려 했다는 거야?”권하윤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만약 그녀가 맞다고 대답하면 민도준은 아마 지금 당장 다시 시연해 보라고 할 거고,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살 가능성조차 없을 테니까.민도준은 그녀에게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 듯 두 팔로 침대를 짚은 채 허리를 굽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그래?”“그게, 저, 저는 도준 씨한테 진심이에요. 도준 씨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권하윤은 그의 눈을 피하며 직접적인 대답마저 피했다.그런 그녀를 민도준은 몇 초간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이윽고 “그래”라는 짤막한 한마디를 남긴 채 몸을 일으켜 세웠다.권하윤은 그의 동작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든 채 그를 바라봤다. 뒤로 젖힌 머리 때문에 훤히 드러난 가는 목덜미가 약간의 가련한 기색을 띠었다.하지만 그녀를 내려보던 민도준은 지금껏 보여왔던 장난기 섞인 눈빛을 거둔 채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에 권하윤은 갑자기 당황했다. 마치 그가 이렇게 떠나가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느낌마저 들었다.이윽고 그가 문을 열려고 할 때 불안함이 극에 달한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를 불러세웠다.“도준 씨…….”문손잡이를 돌리던 손이 멈칫하기도 잠시 곧바로 미련 없이 문을 열었다.“잠깐만요.”시야에서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권하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잠깐만요.”복도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도 민도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긴 다리를 내디뎠다. 하지만 미련 없이 떠나던 발걸음도 권하윤의 비명에 우뚝 멈춰 섰다.너무 급하게 나온 나머지 신발도 신지 않은 권하윤은 맨발로 대리석 바닥을 밟고 있었다. 심지어 널찍한 환자복 때문에 더욱 가냘프게 보이는 것도 모자라 상처가 벌어졌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허리를 굽힌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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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불쌍한 척

권하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시선이 반 바퀴 빙 돌아 천장으로 향했다.“도준 씨? 왜…… 왜 갑자기…….”그녀는 믿기지 않는 득 고개를 든 채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지만 민도준은 그녀를 무시한 채 병실에서 나오는 간병인에게 말했다.“의사 좀 불러 줘요.”“네.”이윽고 권하윤을 고스란히 침대에 내려놓더니 움직이려 하는 그녀를 누르면서 한 번 째려봤다.“죽고 싶어?”그의 한마디에 권하윤 입을 꾹 다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 의사가 들어왔고 간병인이 그녀의 옷을 벗기는 순간 권하윤은 그제야 옷이 피에 흥건히 젖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조금 전 너무 급하게 달려 상처가 벌어진 듯했다.권하윤은 민도준을 힐끗 바라봤다.‘설마 이걸 보고 돌아왔나?’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흘러들었다. 홀가분해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무거웠고 시원하면서 짜릿했다.여의사는 붕대를 풀기 전 민도준을 힐끗 살피더니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할 수 없이 동작을 이어갔다.다행히 당처가 덧난 건 아니라서 의사는 권하윤의 상처를 간단히 소독하고는 새 붕대로 상처를 싸맸다. 격렬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의사는 떠나갔고 눈치 있는 간병인도 약을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병실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모든 의료진이 빠져나가자 병실 안 공기는 또다시 조용해졌다.무거운 공기에 당황한 권하윤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민도준을 몰래 곁눈질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하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뭐라도 말해보려고 머리를 굴리는 순간 민도준이 담배를 눌러 끄고는 그녀에게 다가왔다.이에 침대에 앉아 있던 권하윤은 다시 잔뜩 얼어붙은 채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였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은 담배 냄새가 잔뜩 묻은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자기의 눈을 피하느라 애쓰는 권하윤의 표정에 피식 웃었다.“불쌍한 척하는 연기에도 넘어가 줬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면 어쩌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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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게임 끝

권하윤의 마음은 그 말 한마디로 가벼워지기는커녕 더 움츠러들었다.“무슨 기회요?”“모르는 척하지 마.”민도준은 그녀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점점 떨어지는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하윤 씨에 관한 일 나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기회 한 번 더 준다고.”그의 손을 뿌리치려던 권하윤은 마치 혈도라도 막힌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솔직하게 말하라고?’만약 그녀가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에게 차려지는 건 기회가 아니라 죽음일 거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민도준이 느긋하게 몇 마디 보충했다.“솔직하게 말한다면 예전에 있었던 일 따져 묻지 않을게.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잘 생각해.”가벼운 말 몇 마디였지만 권하윤의 마음은 마치 돌멩이가 내려앉은 듯 무거웠다.일순 그녀의 얼굴을 새하얗게 질렸다.이 지경에 이르니 그녀는 모든 게 눈에 보였다.그녀와 민도준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신분, 지위 그리고…… 공은채.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민도준이 매년 한 달씩 시간 내어 해원에 그녀 보러 가곤 한다던 문태훈의 말도 뇌리를 스쳤다.맨 처음 들었을 때 권하윤은 솔직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엮인 그녀와 비교해 보니 모든 걸 제쳐두고 곁에 있어 주고 싶었던 공은채야말로 민도준의 진정한 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괴팍하고 숫기 없는 성격 때문에 남의 비위를 맞추지도 못했을 그녀를 만나기 위해 폭우를 맞으면서까지 해원에 갔다던 민도준, 그녀가 죽은 지금에도 여전히 공씨 가문과 친분을 유지하던 민도준, 이 모든 걸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의 감정은 그녀가 상상하는 이상일 거다.하지만 만약 그녀가 이성호의 딸이라는 걸 민도준이 알아버린다면 그녀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을뿐더러 공씨 가문처럼 그녀를 괴롭힐 게 뻔했다.이미 아버지를 잃은 지금 그녀는 다른 가족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이 모든 걸 생각한 권하윤은 완전히 냉정을 되찾더니 민도준의 눈길을 피한 채 어렵사리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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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서프라이즈

“하윤 언니~”진소혜의 활기찬 목소리가 조용하기만 하던 병실을 꽉 메웠다.그녀가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권하윤은 놀라기도 잠시 곧바로 은근한 기대를 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녀의 뒤를 살펴봤다.“여긴 어떻게 왔어요? 혼자 온 거예요?”“네.”진소혜는 친한 듯 침대에 걸터앉으며 헤실 웃었다.“감동했어요?”그녀의 말에 부풀었던 기대도 김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지만 권하윤은 싱긋 웃었다.“감동이네요.”하지만 진소혜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눈을 데굴데굴 굴렸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권하윤은 조용히 기다려 줬다.“저기, 하윤 언니. 언니 도준 오빠 제수씨 맞아요?”“네, 그렇죠.”“두 사람 혹시 그렇게 그런 사이예요?”훅 들어오는 물음에 권하윤은 목구멍으로 넘기던 침에 갑자기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해댔다.“왜 그렇게 묻죠?”진소혜는 입안에서 오물대던 포도 껍질을 내뱉더니 신맛 때문에 고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가 아니면 언니가 우리 오빠 대신 총 막아줬겠어요? 휴, 도준 오빠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사람의 이성까지 마비시킬 정도는 아닌데. 게다가 요즘…….”“요즘 뭐요?”뭔가 말하려던 진소혜는 권하윤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오늘 온 건 전 언제나 언니 편이라는 걸 말해주기 위해서예요.”권하윤은 갑자기 다른 데로 튄 진소혜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어이없는 듯 웃었다.“소혜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제야 진소혜는 삼키고 있던 분노를 표출하듯 입을 열었다.“아니, 사실 오늘 오빠랑 같이 언니 보러 오려고 했는데 오빠가 글쎄 안 온다고 버티는 거 있죠? 언니는 오빠를 위해 총도 막아줬는데! 저 이미 오빠랑 일방적으로 절교했어요.”“사실 민 사장님 탓은 아니에요. 우리…….”“오빠 탓 맞아요! 자기 탓이라며 땅굴 파는 것보다 다른 사람한테 책임 전가하는 게 훨씬 편하잖아요!”진소혜는 가슴을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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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대타를 찾다

진소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때요? 비슷하죠? 지난번에 술 마시러 왔다가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간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오빠가 여기 알바하러 온 줄 알고.”그녀의 말에 권하윤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그렇게 비슷한 건 아니었다. 물론 생김새가 조금은 비슷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민도준이 위험하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고귀한 뱀파이어 같다면 눈앞의 남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 같았으니까.하지만 그래도 술을 따라주고 분위기도 띄워주는 것도 모자라 노래까지 할 줄 아는 건 좀 의외였다.남자가 옆에 앉아 따라주는 술을 권하윤은 거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앞모습보다도 남자의 옆모습이 민도준과 더 닮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술을 마시면 미실수록 점점 비슷해져 보이기까지 했다.‘이런 대타도 꽤 괜찮네. 진짜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대타도 건드리지 말란 법이 있나?’귀엽게 생긴 호스트와 한참 동안 노래를 부르던 진소혜가 자리에 돌아왔을 때 권하윤의 앞에는 이미 수많은 술잔이 놓여 있었다.“헐, 언니! 이거 도수 높은 거라서 퇴원하자마자 이렇게 마시면 안 돼요.”진소혜는 얼른 권하윤의 손에 들린 술잔을 빼앗았다.하지만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권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접으며 미소 지었다. 술에 취한 눈은 이미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새하얀 볼은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순수하면서도 야릇해 여자인 진소혜도 순간 얼굴을 붉혔다.이윽고 그녀는 옆에 권하윤 옆에 앉아 있는 대타를 가리키며 명령했다.“보지 마!”‘살짝 재미 보는 건 몰라도 진짜로 도준 오빠를 두고 바람이라도 피우면 안 되지. 아니지. 오빠도 하윤 언니를 두고 바람피우지 않았나?’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권하윤은 흐릿한 눈을 들어 옆에 있던 대타를 살피며 웅얼거렸다.“사실, 보는 건 괜찮잖아. 안 그래?”그 눈빛에 남자는 몸을 흠칫 떨었다. 스무 살밖에 안 된 그는 평소 나이 든 부인들만 상대하다 보니 권하윤 같은 여자한테 당연히 당해내지 못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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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도준 씨인가?

“노래?”남자는 목소리마저 아까와는 달리 낮고도 허스키했다.하지만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권하윤은 여전히 눈을 접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방금 나한테 노래 선물하겠다고 했잖아.”“음?”남자는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노래 좋아해?”이미 술에 취한 권하윤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응, 그쪽 노래 듣기 좋아.”‘오마이 갓!’진소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해 힐끔힐끔 피하면서도 권하윤이 오빠의 손에 죽기라도 할까 봐 용기 내어 소리쳤다.“하윤 언니! 앞에 있는 사람 누구인지 잘 봐요!”‘누구? 그 젊은 대타 아니야?’권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애써 초점을 찾았다. 하지만 상대방의 높은 키 때문에 그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상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윽고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명령했다.“고개 숙여 봐.”콧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발갛게 달아오른 양 볼과 초점을 잃어 애써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더해지자 얼어 있던 사람도 녹일 듯 귀여웠다.이에 남자는 끝내 고개를 숙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자, 봤어?”사실 이번에도 권하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흐릿해진 시야 때문에 안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머리까지 흐리멍덩해져 당장이라도 베개를 베고 누워 자고 싶었다.하지만 그녀가 눈을 스르르 감을 때 몸이 마구 흔들리더니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묻잖아. 제대로 봤어?”‘대타 주제에 센 척은!’“시끄러워.”권하윤은 불편한 듯 남자를 밀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나른해진 몸에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양손이 남자의 가슴 위에 닿았다.심지어 잠꼬대처럼 내뱉은 한마디를 끝으로 전원이라도 꺼버린 것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그리고 그녀의 몸이 뒤로 젖히는 순간 허리에 손 하나가 둘러졌다.이윽고 모든 힘이 빠져나간 몸이 남자의 팔에 힘을 실은 채 뒤로 젖혀졌다. 일순 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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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다른 사람 같다

방 안.민도준은 창가 앞에 선 채로 손가락 사이에 반쯤 탄 담배를 낀 채 눈을 가늘게 접고 생각에 잠겼다.털어버리지도 않아 길게 붙어있는 재는 이미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는 걸 설명해 주는 듯했다.분명 대낮이었지만 차창 너머에는 어젯밤의 화면이 투영되었더니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입가에 잔머리를 붙인 채 환하게 웃고 있던 여자의 모습이 다시 재생되었다.지금껏 그의 앞에서 보여준 적 없는 그런 모습은 소탈하고도 매력적이었으며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에 몸을 빼앗긴 듯 낯설었다.긴 손가락을 튕기자 위태롭게 붙어 있던 재가 후두둑 떨어졌고 입가에서 뱉어낸 희끄무레한 연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눈동자 앞에서 흩터졌다.‘하, 재밌네.’“똑똑똑-”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보아하니 진소혜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모양이었다.한참을 꾸물대던 진소혜는 여전히 그녀를 무시하는 민도준의 등만 바라보며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왔어?”갑자기 적막을 깨는 목소리에 놀란 진소혜는 곧바로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울상을 지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오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난 하윤 언니가 기분이 꿀꿀해 보여서 기분 풀어주려고 했던 것뿐이야.”민도준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철 들었네.”칭찬 같지만 칭찬이 아닌 말에 진소혜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조용히 기다렸다.“네가 남을 위해 걱정을 덜어주는 살가운 성격인 줄 몰라봤네. 그렇다면 유심칩 복구하는 시간을 보름으로 줄이는 게 어때?”“보름?”말도 안 되는 요구에 진소혜는 꼬리라도 밟힌 듯 발끈했다.“그거 나 한 달 작업량이라고!”“열흘.”“열흘은 더 말이…….”“일주일.”반박은 오히려 명을 재촉하는 행동이라는 걸 파악한 진소혜는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그제야 민도준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주일 동안 수고해.”하지만 진소혜가 슬픔과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고 있을 때 민도준은 또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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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사적인 감정

권하윤의 말에 방 안은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민상철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그때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아주 배짱이 두둑하더구나.”민상철의 갑작스러운 말에 권하윤은 알아듣지 못한 척 되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연기할 필요 없다. 내가 너를 부른 건 네가 그나마 똑똑한 아이여서 직접 말할 거라고 생각해서 부른 거니까. 하지만 네가 만약 내 호의를 무시하면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겠구나.”민상철은 권하윤에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옆에 서 있던 집사를 불렀다.“장 집사, 끌고 나가.”‘데리고 나가도 아닌 끌고 나가라니.’만약 이대로 끌려 나간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순간 권하윤의 뇌리를 스쳤다 .이윽고 집사가 경호원을 불러오기 전에 그녀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할아버님.”그녀의 부름에 민상철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듯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잘 생각했지?”권하윤은 사실대로 말하려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아니지, 만약 정말 내 목숨을 노리는 거라면 이렇게 말장난하며 시간 끌 필요는 없잖아?’역시나 민상철의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외압을 가해 겁에 질려 진실을 토로하게 하려는 수법이라는 생각에 권하윤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전에 저희 언니와 민 사장님이 서로 왕래가 있어 공아름 씨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도 마침 공아름 씨가 저를 불러내 상황을 물어보다가 마침 민 사장님을 만나 함께 떠나던 참에 매복 공격을 당한 겁니다. 만약 할아버님께서 물어본 물음이 이 상처에 대한 거라면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이 말은 그녀가 충분한 고민 끝에 내뱉은 것이었다. 공아름이 민도준 때문에 권희연을 괴롭혔던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 데다 민도준이 공아름을 만나러 가서 뭘 했는지도 당장에는 알아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아마 이것이 바로 민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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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쓸어버린 건 오솔길뿐이 아니다

“그건…….”장 집사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더니 민상철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잘 모르겠습니다. 도준 도련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쉬운 것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만약 정말로 다섯째 작은 사모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오해를 사는 말은 쉽게 내뱉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그의 말에 조금 전 상황을 회상하던 민상철은 순간 심장이 쿡쿡 쑤셨다.“일부러 그 애를 보호하려고 그랬는지 누가 알겠나?”“허면 만약 도준 도련님과 다섯째 작은 사모님이 정말로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민상철은 일순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눈을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당연히 후환을 없애야지.”“그래도 도준 도련님 곁에 누군가 있어 주는 것도 어려운 일 아닙니까?”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장 집사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에 민상철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힐끗 째려봤다.“곁에 있어 줄 사람 하나 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도준이 걔만 정상적으로 굴면 경성에 그 애 짝으로 엮어줄 처자 하나 없을까?”“혹시 이미 점 찍어 둔 처자가 있으십니까?”“그래. 그 애가 계속 이렇게 미친 듯 날뛰게 굴 수는 없지 않은가?”“하지만 도련님이 아마도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걱정 가득한 장 집사의 말투에 민상철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도준이 걔가 공씨 가문의 그 명 짧은 계집을 마음에 두지 않았었나? 그러니 이번 사람은 그 애도 분명 마음에 들 거네.”-“아버님이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얼른 말해. 우리 승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더냐?”본채의 구석진 곳에서 강수연은 권하윤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대충 몇 마디로 얼버무린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수연은 그녀에게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두 말하라고 압박을 가했다.이에 권하윤은 없는 말을 지어내 그녀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님께서 승현을 무척 아낀다면서 장차 큰일을 할 손자이니 저더러 잘 보필하라고 하셨습니다.”“그래, 아주 좋구나.”강수연은 권하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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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어제는 다리 잘만 이용하더니

“올라와.”간단한 세 글자를 내뱉고 창가로 사라진 민도준의 실루엣에 권하윤은 잠시 고민하더니 빗자루를 문 앞에 세워두고 옷을 여미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그러면서 계단을 밟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조마조마함을 감추지 못했다.‘나한테 흥미 없어진 거 아닌가? 왜 갑자기 부르지? 설마…… 내가 고의로 접근했다고 생각해서 괴롭히려는 건 아니겠지?’수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바람에 그녀의 걸음은 점차 느려졌다.심지어 도둑처럼 살금살금 움직이기까지 하는 바람에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도준이 피식 웃었다.“외간 남자 꼬실 때는 다리를 잘만 이용하더니 지금은 부러지기라도 했어?”‘외간 남자를 꼬셨다고?’계단 맨 위층에 서서 놀려대는 민도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권하윤은 자기가 그를 꼬시러 일부러 접근했다고 오해라도 하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하지만 그렇다 한들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하게 그의 앞까지 다다른 뒤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모든 괴롭힘도 견뎌낼 것만 같은 고분고분한 모습은 하늘하늘 춤추던 어제의 모습과는 확연한 대비를 이루었다.이에 민도준은 재밌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담배를 끄더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듣기 좋은 말을 잘만 하던 모습은 어디 갔어? 이젠 말도 하지 못하나?”입 안에 머금고 있던 매캐한 연기가 고스란히 권하윤에게 뿌려지자 그녀는 불편한 듯 눈을 깜빡이며 입을 삐죽거렸다.“예전에는 도준 씨가 저 싫어하지 않으니 그런 말도 서슴없이 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저 싫어하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겠어요?”분명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이었지만 왠지 매정한 민도준을 나무라는 말로 들렸다.이에 재미를 느낀 그는 손을 풀면서 안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몇 걸음 걸어갔을 때 여전히 동상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왜? 내가 모셔 오기라도 해야 해?”하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권하윤은 자연적으로 따라나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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