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331 - Chapter 340

1602 Chapters

제331화 아수라장

“도준 오빠, 왜 이제야 왔어?”민시영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난 또 바람맞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그럴 리가. 다들 모여있는데 와야지.”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은 민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던져버렸다.“탕”하는 소리에 놀란 권하윤은 심장이 쪼그라들어 미처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민시영이 잿빛이 된 민승현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 거기 승현이 자리야.”아까 그들 넷만 있을 때 권하윤의 왼쪽에 민승현, 오른쪽에 민시영이 앉았었는데 민도준이 갑자기 나타나 민승현의 자리를 꿰차는 바람에 왼쪽에 고은지 오른쪽에 권하윤이 앉은 셈이었다.다행히 원형 테이블이라서 고은지 옆에 앉았다고 볼 수도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민승현만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민시영의 말에 민도준은 그제야 발견한 듯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이런. 진작 말해주지. 그랬으면 여기 앉지 않았을 텐데.”하지만 내뱉은 말과는 달리 일어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다행히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민승현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옆에 놓인 주먹을 그러쥐며 참을 뿐이었다.“자리가 뭔 대수라고. 형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그는 말을 마친 뒤 권하윤의 오른쪽으로 걸어갔고 민시영이 옆으로 자리를 내준 덕에 그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지금껏 잘 대처하기만 하던 민시영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오늘 이런 자리를 만든 걸 후회했다.하지만 애써 표정을 유지한 채 웨이터를 불러 민도준의 입맛에 맞을 요리를 몇 가지 더 주문했다.그리고 그 시각 민시영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사람은 또 있었다. 민도준이 곁에 앉은 뒤로부터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진 권하윤은 멍하니 테이블을 쳐다보며 민도준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섰다.하지만 민도준의 담배 연기가 하필이면 자꾸만 그녀 쪽으로 불어와 코끝을 자극하는 바람에 쉽게 무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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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빌려줘

다른 사람의 귀에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었지만 민승현의 귀에는 거슬리기만 했다.하지만 대놓고 반박하지도 못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권하윤은 민승현이 뭔가 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와 동시에 민승현의 성격상으로 당장이라도 약혼을 엎으며 날뛰어야 할 텐데 계속 참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어색함이 민시영한테까지 전해지자 그녀는 어두운 표정의 민승현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느릿느릿 음식을 짚는 민도준을 번갈아 바라봤다.“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권하윤에게 암시를 보냈다.이에 권하윤도 곧바로 그녀를 뒤따랐다.“시영 언니, 저도 같이 가요.”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화장실 안에서 민시영은 권하윤의 손을 잡은 채 따져 물었다.“하윤 씨, 오늘 승현이와 도준 오빠가 너무 이상하던데 혹시 눈치챈 거예요?”“저도 잘 모르겠어요.”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고개를 젓는 권하윤을 보자 민시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낮게 속삭였다.“내가 하윤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승현이가 도준 형보다 아직 젊다고 해도 민씨 가문 다섯째 도련님이에요. 도준 오빠 때문에 승현이와 틀어지는 것보다는 잘 달래서 다섯째 작은 사모님 신분이라도 유지하는 게 하윤 씨한테 더 유리하지 않겠어요? 하윤 씨만 원한다면 민씨 가문에서 자리 잡는 거 제가 도와줄게요.”말없이 민시영의 말을 듣고 있던 권하윤은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나요?”“솔직하게 말할게요. 며칠 전 고씨 가문 어르신이 왔었을 때 사실 오빠와 고은지 씨의 약혼에 대한 말이 오갔었는데 오빠가 거절하지 않았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화장실에 놓인 장식 암석 위로 흘러가는 물소리가 일순 멀어지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멍해지는가 싶더니 권하윤은 자신의 상황이 왠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이미 짐작했었는데 직접 듣고 나니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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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승현이가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뜨거운 열기가 몸에 닿자 권하윤은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허둥지둥하던 찰나 마침 민도준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어두운 빛을 마주친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민승현도 밖에 있어요. 우리 나가요.”몇 번 버둥댔지만 그녀는 민도준의 품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강박적인 힘에 눌려 그의 가슴에 바싹 붙었다.딴딴한 몸과 부드러운 몸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 심장이 쿵쿵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승현이가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내가 보냈던 문자 잊었어? 다음번에 꼭 그렇게 하다던 거.”“그건!”장난기 섞인 남자의 목소리에 권하윤은 수치스러운 동시에 화가 나 귓불까지 붉어졌다.“저를 꼭 이렇게 놀려야 속이 시원해요?”민도준은 그저 권하윤에게 가벼운 장난을 칠 생각이었는데 자기 품에 안겨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더 건드리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비좁은 공간과 희미한 불빛은 민도준의 짓궂은 면을 증폭시켰고 그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놀란 권하윤은 황급히 그를 밀어냈다.“이러지 마요.”“말 들어. 그래야 빨리 끝나지.”야릇한 손길에 권하윤은 진짜로 겁을 먹었다.그도 그럴 것이 민도준이 매번 흥이 날 때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만약 민승현 혹은 고은지가 기다리다 못해 그들을 찾으러 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던 권하윤은 작은 손을 민도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한껏 누그러든 태도로 그를 달랬다.“어제…… 저 아직도 아파요.”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권하윤의 태도에 민도준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정말 여우 맞네. 어쩜 이리 상황 파악이 빠르지?’“왜? 내가 어제 아프게 했다 이거야?”“네.”상대가 아까처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자 권하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가 잘못했네.”시원하게 사과하는 민도준을 보자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자기의 그런 예감이 들어맞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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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뭘 하는지 알잖아

방 안.순식간에 빈 세 개의 좌석을 보자 민승현은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물론 권하윤이 민시영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민도준도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한번 충격을 받은 머리는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밀회하는 장면을 그려내기 시작했다.‘설마 시영 누나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의식하지 않는 건가?’권하윤이 민도준의 품에 안겨 오던 장면을 본 뒤로부터 그의 가슴에는 마치 불덩이가 쌓인 듯 쉽게 꺼지지 않았고 오장육부도 매일매일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입을 열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것만 같아 참다못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만 고은지도 옆에 있었기에 대충 변명거리를 찾아 던졌다.“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제가 그쪽이라면 지금 가보지 않을 거예요.”거의 식사 내내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고은지가 갑자기 던진 말에 민승현은 잠시 멍 해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죠?”차가운 눈빛이 민승현에게 떨어지더니 잇따라 감정 하나 섞이지 않는 목소리가 민승현의 가슴을 후벼팠다.“우리 다 알잖아요. 두 사람 뭘 하고 있는지.”체면이 갈기갈기 찢어진 민승현은 순식간에 버럭 화를 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고씨 집안사람이 알긴 뭘 안다고. 그렇게 헛소리하면서 우리 집안에 발 들일 생각을 하는 거예요?”분노 가득한 그의 모습에도 고은지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당연하죠. 그래서 더 가보지 않는 거예요.”너무나도 냉정한 고은지의 반응에 민승현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저 창피한 일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들켰다는 것에 쪽팔리고 화가 났다.“그쪽은 언제 발견했는데요?”“방금요.”고은지는 말하면서 텅 빈 자리를 쓱 둘러봤다.하지만 발견했다는 건 어찌 보면 정확하지 못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민도준은 지금껏 숨길 생각조차 없었으니까.만약 그가 권하윤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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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약을 타다

민시영이 이렇게 말한 건 아까의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게다가 평소에도 가끔 농담을 섞어 말하는 터라 과하지도 실례가 되지도 않았다.하지만 말수가 적은 고은지도 웬 영문인지 입을 열었다.“부탁드립니다.”그 한마디에 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입 한번 여는 게 쉽지 않네.”문을 나서던 권하윤은 마침 그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이윽고 입꼬리를 올리며 문을 닫은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민도준의 시선을 막아버렸다.그 시각 이미 몇 걸음 걸어간 민승현은 꾸물대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그녀를 보자 참지 못하고 홱 잡아끌었다.“서둘러. 뭘 그렇게 꾸물대?”그는 권하윤을 잡은 채로 레스토랑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다급히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아까 전 권씨 저택 앞에서 기다릴 때도 귀찮고 조급했다면 지금은 조급할 뿐만 아니라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초조하고 두렵기까지 했다.하지만 그의 행동에 권하윤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그를 밀어냈다.“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으니까 여기에서 헤어져.”마지막 단계만 남은 계획이 이대로 무산되게 둘 수 없었기에 민승현은 당연히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안 돼. 너 무조건 나랑 같이 가야 해!”“나 희연 언니 보러 가겠다고 이미 말도 해뒀어. 너 혼자 돌아가.”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그녀를 보자 권하유은 그가 무슨 일을 꾸민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아 곧바로 몸을 틀었다.“안된다니까! 거기 서!”“민승현! 너 어디 아파?”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약효가 돌았는지 권하윤은 눈앞이 흐릿해졌다.게다가 머리는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무거웠으며 발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너 괜찮아?”민승현은 그 기회를 틈타 그녀를 걱정하는 듯 조수석에 밀어 넣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그 짧은 찰나 권하윤은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분명 네 팔다리가 몸에 붙어 있었지만 그녀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몸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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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내가 대신 잘 돌봐줄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마치 명을 재촉하는 부적처럼 육체의 고통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민승현에게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졌다.하지만 등이 밟힌 터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저 눈으로 곁을 힐끗거리며 민도준과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도준 형…… 콜록콜록…… 지금 뭐 하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마치 따져 묻는 듯 분노에 차 있었다.‘분명 나도 같은 민씨 가문 사람인데 왜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데!’만약 민승현의 앞에 있는 사람이 민씨 가문 다른 식구들이라면 그들이 가족의 정을 봐서라도 그의 설명을 들어줄 테지만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하필이면 민도준이었다.때문에 대답대신 돌아오는 건 발에 실린 힘이 더 강해진 것뿐이었다.그리고 곧이어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무리 그래도 지금껏 호의호식하며 도련님 대접을 받고 또 강수연이 아들이랍시고 매사 그를 위해 모든 일을 해결해 줘 왔기에 민승현은 이런 고통을 견딜 리가 없었다.이윽고 지독한 고통에 그는 끝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눈물을 흘렸다.“아! 아파! 이거 놔!”“어디가 아픈데?”민도준은 조금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의아한 듯 되묻더니 발로 민승현의 허리를 꾹 눌렀다.“여기?”“아! 살려 줘!”그러던 그때, 민승현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는 바람에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약병이 밖으로 빠져나왔다.곧이어 민도준이 병을 주워 들고 한참을 관찰하더니 아직 반 정도 남은 약을 보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 아직 많이 남았네? 이런 걸 떨어트리다니 낭비 아니야?”민승현은 상대가 뭘 하려는 지 깨닫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쯧.”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의 손이 그의 턱을 콱 잡았다.“읍!”짤막한 비명과 함께 턱이 빠지는 바람에 민승현은 더 이상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고통스러운 신음만 내뱉었다.이윽고 닫히지 않는 입안으로 약이 흘러 들어갔고 병이 바닥났다.그제야 민도준은 만족한 듯 일어서며 손을 툭툭 털더니 옆에 떨어진 민승현의 핸드폰을 발로 차버렸다.그리고 비로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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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파란

병원.“검사 결과 환자분께서 임신을 하기 위해 배란촉진제를 투여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성분을 봤을 때 국내에서 생산된 약이 아니라 부작용도 확인이 어렵고요. 게다가 곧바로 자극성 약물을 복용한 바람에 이상 반응이 생겨 자궁 경련을 유발한 겁니다.”한참 동안 설명하던 여의사는 안타까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확인된 성분만 봤을 때 임신을 촉진할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많고 환자분의 몸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성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 촉진제까지 먹었으니 목숨을 건진 게 천만다행이에요.”고통스러운 듯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평소와 달리 여의사의 질책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언제 깨어날 수 있나요?”“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약물을 함께 복용한 것에 대한 임상 사례가 없다 보니 환자분 몸이 버텨주는 데에 달렸습니다.”“음-”때마침 들려오는 권하윤의 신음소리에 민도준은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검사의 편리를 위해 이미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권하윤은 헐렁한 소매 사이로 가느다란 손목을 빼내 자기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고 머리는 어느새 베개에서 미끄러져 팔 안에 파묻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극도로 불안한 듯한 자세였다.분명 고통이 극에 달했을 법한데도 그녀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파도 조심성을 잃지 않는 모습.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운 몸 때문에 입까지 말라 침을 넘길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한참 지켜보던 민도준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민 사장님?”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권미란의 목소리에는 조심성이 가득 묻어있었다.그때 민도준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빙빙 돌리며 건방진 목소리로 대답했다.“권 여사님, 바쁘신가요?”-권하윤이 깨어났을 때 주위는 온통 캄캄했다.막 움직이려 했을 때 가슴에 가로 놓인 팔이 꽉 누르고 있어 꿈쩍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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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두 사람의 약혼

권하윤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이내 부정했다.‘아니야, 아닐 거야. 권미란이 이렇게 쉽게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말했을 리 없어.’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눈을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희 어머니랑 무슨 대화 했는데요?”“맞혀봐.”“설마 우리의 일은 아니겠죠?”“음흠.”씩 웃으며 말하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혀왔다. 그녀는 심지어 권미란이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권희연을 열심히 교육하여 소문까지 만들어 냈는데도 민도준을 꿰어내지 못했는데 오히려 가짜인 그녀가 민도준의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것보다도 권미란이 이제 자기와 민도준의 관계를 알았으니 자기를 이용해 민도준에게서 이것저것 떼어내려 할 거라는 게 더 걱정스러웠다.권미란의 손에 가족이 잡혀 있는 이상 그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이것 또한 그녀가 민도준과의 관계를 권미란한테 들키지 않으려 애쓴 이유다.자유를 얻기 전에 그녀가 쥐고 있는 패는 오히려 권미란이 그녀를 부려 먹을 이유가 될 테니까.권하윤의 저촉된 정서를 단번에 눈치챈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장난쳤다.“어린 나이에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아는 게 그렇게 무서워?”“그게…….”잠깐 머뭇거리던 권하윤은 끝내 입을 열었다.“권씨 가문에서 저를 내세워 도준 씨한테 뭐라도 뜯어낼까 봐 그래요.”그녀의 대답이 재밌었는지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문지르더니 웃음기 섞인 낮은 목소리를 뱉어냈다.“하윤 씨도 그랬으면서 권씨 가문 하나 늘어난다고 달라질 것 없어.”“…….”그의 말에 놀란 권하윤은 호박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런 그녀의 멍한 표정이 귀여웠는지 민도준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마구 흐트러뜨렸다.“됐어, 놀란 것 좀 봐. 이제 놀리지 않을게.”그러더니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그저 하윤 씨가 마음에 들었다고 알아서 하라고 했어.”“그것뿐이었다고요?”“당연히 아니지. 그 외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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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울며불며 난리 쳐 봐

꾹 눌린 머리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민도준의 가슴에 얼굴을 바싹 붙인 채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 우리의 관계는 도준 씨가 결정한다던 말 잊지 않았어요.”서늘하고도 약한 기류가 남자의 턱에 흩뿌려져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졌다.“음?”살짝 올라간 말꼬리는 약간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그러니까 그 말은 고은지 씨를 동정한다는 뜻인가?”“저한테 다른 사람을 동정할 자격이 있기나 한가요?”‘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을 동정한다니 우습네.’“그래?”민도준은 말끝을 늘어트리며 권하윤의 등에 놓인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나랑 헤어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고은지 씨를 동정하는 것도 아니면…… 내가 고은지 씨랑 결혼하는 게 싫은 거야? 응? 제수씨?”등에서 느껴지는 힘이 분명 부드러운 편이었지만 권하윤은 매우 불편했다.이윽고 민도준이 물어보는 순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부인했다.“아니요. 도준 씨가 누구랑 결혼하든 도준 씨 자유죠.”“음, 내 자유인 건 맞지.”“…….”“그런데 하윤 씨가 만약 울며불며 난리 치면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있는데.”허리에 닿은 손이 주물럭거리는 사이 권하윤의 눈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제 주제는 누구보다도 잘 아니 두 분 절대 방해 안 해요.”권하윤이 말을 꺼내자 공기는 순간 고요해지더니 한참 뒤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주제를 잘 안다면 다행이고. 이번 달 말 나랑 고은지 씨랑 약혼할 건데 할아버지가 나더러 날짜를 고르라고 하네. 하윤 씨도 나를 도와 날짜 좀 골라주는 건 어때? 23일과 30일 중 어느 날이 좋을까?”그녀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순간 민도준의 농담 섞인 말에 고은지와 결혼하지 말라고 대답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날짜까지 정해졌는데 당연히 그녀의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여상스러운 말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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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합작

“네?”너무 놀란 나머지 권하윤은 순간 심란해졌다.“해외라고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죠?”권미란은 그녀의 예의 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이어 그녀에게 맡길 일을 생각해서 꾹 눌러 참았다.“전에 모셔 온 의료진들이 말하길 너의 오빠 다리가 완전히 감각을 잃은 건 아니라더구나. 해외 실험실에서 치료받다 보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했거든.”오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말에 권하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권미란이 자기 오빠에게 좋은 치료환경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아마 그녀가 민도준이라는 뒷배를 두면 자기의 공제를 벗어날까 봐 오빠와 접촉하지 못하게 격리해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거다.오빠가 불편한 몸으로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권하윤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이윽고 눈을 내리깔며 애써 감정을 숨긴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바쁘신 와중에 저희 가족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알면 됐다.”권미란은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그녀가 여전히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확인했는지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아졌느냐?”권하윤은 민도준이 대체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민 사장님이 너한테 약까지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잠깐 멈칫한 권하윤은 그제야 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했을 거라는 걸 알아채고는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네,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민 사장님은 승현이의 형이신데 그런 일을 하다니. 다행히 가정의가 저한테 놓은 주사와 배척반응을 일으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녀의 말에 권미란은 난감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의 뜻을 내비쳤다.“물론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민 사장님이 너를 마음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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