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201 - Chapter 210

1602 Chapters

제201화 충분히 향기로워

민도준에게 들킨 권하윤은 어색했는지 아예 국자를 집어 들고 국물을 홀짝거렸다.하지만 이미 배부른 민도준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입가를 닦았다.“다 먹었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나.”그의 말에 권하윤은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눈을 떼굴떼굴 굴렸다.“저 먼저 샤워하고 올게요.”“필요 없어.”민도준은 그녀의 등 뒤까지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채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충분히 향기로워.”그 말에 권하윤은 어깨를 움츠리며 당장이라도 고개를 땅에 박을 기세였다.그때 민도준이 옆에 있던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고개를 숙인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렇게 긴장해? 싫어?”“아니요.”시선이 허공에서 움직여댔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그녀가 마침 본인이 얼마나 프로패셔널한 사람인지 증명하려고 할 때 민도준이 긴 다리로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를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그 때문에 권하윤은 앞으로 휘청이며 민도준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그러자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급할 필요 없어. 먼저 대화나 하자고.”그의 말에 부끄러웠는지 권하윤은 벌떡 일어나며 웅얼거렸다.“무슨 얘기요?”“시영에 관한 얘기 어때? 지난번 계획이 틀어지고 걔가 또 하윤 씨 찾아왔었어?”“…….”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갛게 달아올랐던 권하윤의 얼굴이 점점 원래의 색을 찾았고 부드럽고 온화하던 분위기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잠시 침묵한 끝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민도준을 바라봤다.“왜 갑자기 그건 물어보세요?”민도준은 손을 권하윤의 다리 위에 올려놓더니 일정한 힘으로 그녀의 다리를 문질러댔다.“하윤 씨 시영이 말 듣고 내 심기 건드린 거잖아. 걔 성격으론 하윤 씨한테 전에 일에 대해 설명하고 또 다른 미끼를 던졌을 것 같은데.”두세 마디 말로 본인들의 대화를 대충 추리해 낸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마치 적이라도 만난 모습이었다.‘설마 내가 시영 언니랑 만난 거 알고 일부러 물어보는 건가?’그녀의 심장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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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재밌게 노세요

민도준의 말에 권하윤은 잠시 멍해졌다.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그의 말에 아무런 입장도 없는 권하윤은 하려던 말을 삼키며 보기 좋은 웃음을 지었다.“그래요. 조심해 가요.”“그래. 몸 괜찮아지면 문자 해.”흔들림 없는 권하윤의 표정에 민도준은 장난기 섞인 말투를 툭 내뱉었다.농담 섞인 말은 마치 냉수처럼 그녀의 머리 위에 쏟아졌고 두 사람은 그저 몸뿐인 관계라는 걸 낱낱이 보여주었다.권하윤은 갑자기 북받쳐 오는 감정을 겨우 목구멍으로 삼킨 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오늘 밤 재밌게 노세요.”“…….”살짝 올린 입꼬리는 마치 천근이라도 되는 듯 문이 닫히는 순간 이내 무너져 내렸고 아까까지만 해도 맛있다고 생각했던 수프는 이미 차갑게 식어 기름이 위에 둥둥 떠오른 바람에 역겨워 났다.권하윤은 숨을 깊게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음식을 모두 버렸다.손을 씻고 고개를 드는 순간 거울에는 새하얗게 질린 본인의 모습이 비쳐있었다. 그 모습에 권하윤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이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진짜 민도준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그녀는 휴지를 뽑아 젖은 손을 닦고는 물에 젖어 나른하게 된 휴지를 다시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민시영에게 문자를 보냈다.[만약 저 대신 거래 기록 하나만 지워주면 손잡을게요.]만약 민도준이 그녀에게 점차 흥미를 잃어간다면 그녀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때문에 그녀는 절대 민도준에게 본인과 문태훈이 거래한 걸 들켜서는 안 됐다.-“퍽.”“퍽퍽-”민도준은 링 위에 쓰러진 상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움직였다.땀방울이 그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주위에 무서운 기운이 감돌았다.“다음.”고개를 돌려 입에 낀 마우스피스를 뱉으며 내뱉은 그의 한마디에 아래에서 지켜보던 한민혁이 손을 휘휘 젓자 링 위의 남자가 밖으로 실려 나갔다.“도준 형, 벌써 일곱 사람 째야. 오늘 여기 더 이상 형과 스파링할 사람 없어.”그의 조심스러운 말투에도 민도준은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턱을 살짝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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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우리 도망쳐요

“하윤 씨가 공씨 가문 사람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민시영은 디저트 하나를 포크로 집어 올리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권하윤을 바라봤다.그녀의 말에 권하윤은 우물거리던 동작을 멈추고는 과일 티로 입안의 느끼함을 눌렀다.“그럴 리가요. 제가 어떻게 해원에 있는 공씨 가문과 엮이겠어요.”“하긴.”여전히 변함없는 권하윤의 표정에 민시영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보아하니 문태훈이 또 더러운 수단으로 돈을 요구했겠죠.”민시영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 권하윤은 솔직히 그 돈의 행방을 숨기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때문에 그녀는 미리 생각해 둔 그럴싸한 핑계를 댔다.“사실 권씨 가문이 조 사장이 관리하는 홍옥정과 거래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곳을 드나드는 걸 문태훈 씨가 발견하는 바람에…….”말을 채 끝맺지는 않았지만 민시영은 바로 알아들었다.그녀는 공아름과 사이가 좋기에 문태훈이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권하윤의 그런 말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민씨 가문도 위험천만한데 권씨 가문도 좋은 곳은 아니네요. 요즘 권희연 씨가…….”민시영은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이내 주제를 전환했다.“하윤 씨가 민승현과 곧 결혼할 몸인데도 권 여사가 놓아주지 않는다니 놀랍네요.”그녀의 말에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민시영이 권씨 가문 내부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야망이 큰 사람이니 당연히 밖에서 들리는 소문을 모두 꿰뚫고 있을 테니까.'그런데 희연 언니 일이라니…….’지난번 병원에서 권희연을 봤던 일이 떠올라 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혹시 희연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요?”“정말 몰라요?”민시영은 흠칫 놀라더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권하윤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미안해요, 하윤 씨. 이 일은 하윤 씨 언니한테 직접 물어봐요.”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데 권하윤도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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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그날 욕실에 숨어 있던 사람이 권하윤이었어

“못 찍었다니요?”경성의 한 별장 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제 그년 뒤를 미행했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아무것도 못 찍을 수 있어요?”강민정은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자 전화 건너편에서 사립 탐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지막에 사람을 놓치는 바람에 못 찍었어요. 요즘 의뢰가 너무 많아 매일 쫓아다닐 수 없는데 다른 사람 알아봐요.”“뚜뚜뚜-”“여보세요? 이봐요!”상대가 정말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강민정은 미칠 지경이었다.민씨 저택에서 쫓겨난 뒤로 그녀는 반쪽짜리 민씨 집안 아가씨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고아로 전락했다.솔직히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녀는 자기가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게다가 언제나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주던 민승현마저 지금껏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자 가뜩이나 의지할 곳 없는 강민정은 점점 두려움에 시달렸다.그런데 이 모든 일을 벌인 사람은 자기 사촌 오빠를 차지한 채 민씨 집안 며느리 타이틀을 누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권하윤에 대한 원망만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그녀는 매일이다시피 권하윤의 흉측한 사진을 건져 그녀를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맹세했다.그리고 마침 어제 사립 탐정이 권하윤의 뒤를 따라붙었다는 연락을 받은 강민정은 설레는 마음에 계속 기다렸지만 끝내 상대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그것도 모자라 오늘 아침 더 이상 의뢰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을 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간 원망에 찬 강민정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안 하겠으면 말라지! 경성에 사립 탐정이 그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며칠 동안 강민정은 단숨에 여러 사립 탐정을 찾아다니며 권하윤이 바람을 피우는 증거를 찍어오면 2천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했다.이번에는 틀림없이 무언가를 건져낼 거라고 자신하던 그녀에게 들려온 건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의 연락뿐이었다. 일정이 빡빡하다는 핑계 아니면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는 핑계로 말이다.일련의 시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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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혀를 잘라버리다

블랙썬.“민혁 형님, 안녕하십니까?”이른 새벽 한민혁이 방문에 들어서자 로건이 높은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그 소리에 깜짝 놀란 한민혁은 목을 손으로 슥 베는 동작을 하며 눈을 희번덕였다.“쉿!”“쉬 마려우십니까?”멍한 표정을 지으며 천진하게 물어보는 로건의 모습에 한민혁은 뒷목을 잡더니 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그가 이렇게 긴장한 건 연속 나흘 동안 민도준이 시킨 일을 조사했는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그 때문에 그는 며칠동안 민도준만 만나면 숨어다니곤 했다.그리고 오늘도 마침 도망가려고 준비하던 그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한민혁, 들어와.”‘하이고, 그럴 줄 알았다.’한민혁은 운명을 받아 들이리가도 한 듯 방에 들어서더니 고개를 숙인 채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도, 도준 형.”“요즘 아주 바쁜가 보네.”핸드폰을 힐끗거리며 내뱉은 민도준의 말에 한민혁은 그자리에 얼어붙어 울상을 지었다.“도준 형, 나 진짜 열심히 했어. 그런데 아무리 조사해도 그 돈이 어디 갔는지 나오지 않는다고.”민도준은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끗 바라봤다.“12시 전에 알아 와. 안 그러면 12시 후에 복싱장에서 봐.”죽은의 통첩을 받은 한민혁은 당장 달려 나가 고액의 보험을 살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영정사진은 어떤 거로 쓰라고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방금 받은 문자를 확인하기 바쁘게 정신 없이 민도준에게 달려갔다.“도준 형, 찾았어!”핸드폰 액정에 명확히 찍혀있는 돈의 행방을 보는 순간 민도준의 눈에는 웃음기가 언뜻 지나갔다.“해외라고?”“응. 어쩐지 찾아내기 어렵다 했어.”민도준의 위험한 눈빛을 감지한 한민혁은 식은땀을 닦으며 어색한 한마디를 던졌다.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도준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오늘 동림 부지는 네가 나 대신 가.”“뭐? 형은 어디 가려고?”한민혁의 말에 민도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거짓말쟁이의 혀를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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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이따 봐

“그게…….”권하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가리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사실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 승현이가 그쪽이 영 별로라서 그래요.”“뭐? 그게 무슨!”강수연은 곧바로 얼굴을 찡그러며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어머님이 말하라고 했잖아요.”사뭇 진지해 보이는 권하윤의 표정에 강수연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여자로서 그녀도 이런 문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체면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아들의 이런 문제는 본인이 죽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진짜냐?”그녀는 오만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한껏 낮춘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어머님, 제가 이런 일로 어떻게 장난치겠어요?”권하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몇 마디 더 보충했다.“그런데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물어보지는 마세요. 만약 심리상의 문제인데 어머님께서 대놓고 물어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더욱 문제가 커지면 안 되잖아요.”권하윤이 민승현을 “생각해 주는” 모습을 보자 강수연의 표정은 그제야 조금 풀렸다. 하지만 걱정이 됐는지 신신당부했다.“이 일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너희 집 식구한테도 안돼!”“알겠어요. 그러면 아이에 관한 일은 어떻게…….”“급할 거 없어. 아직 젊으니까.”“알겠어요, 어머님.”권하윤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아들이 이런 문제가 있으니 강수연은 마치 큰 꼬투리라도 잡힌 듯 권하윤에게 예전처럼 막 대하지 못했다.“너 운전했지? 나 병원에 좀 데려다줘.”찻집 문을 나서는 순간 강수연은 어깨에 걸친 숄로 몸을 더욱 감싸며 물었다.사실 그녀는 운전기사더러 데려다 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들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봐 권하윤더러 데려다 달라고 하는 걸 선택했다.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허둥대는 예비 시어머니의 모습에 권하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길 건너편에 세워진 익숙한 차를 발견하고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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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놀랐어?

골목 하나만 돌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민도준의 차는 점점 가까이 붙어오자 권하윤은 끝내 목숨을 내놓기라도 한 듯 포기했다. 하지만 때마침 내비게이션에 찍힌 병원 이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순간 희망이 보인 권하윤은 강수연이 보든 말든 상관하지도 않은 채 빨간 신호등이 걸린 틈에 민도준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그녀의 작전이 먹혀들었는지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다시 시동을 걸 때 뒤에 따라붙던 차량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형 마트 앞 주차장에 멈춰 섰다.그제야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병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그 시각, 민도준은 방금 받은 문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우리 지금 비뇨기과로 갈 건데 도준 씨 차가 이런 곳에 나타났다가 만약 누구한테 발각되기라도 하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어떡해요.]‘하, 쪼그만 게 말은 잘한다니까. 혀를 잘라버려도 계속 이렇게 재밌을지 모르겠네.’민도준은 글로브 박스 안에 넣어두었던 가위를 꺼내 손가락에 낀 채 빙빙 돌렸다.메스 소재로 된 날은 유난히 날카로웠고 날 경계에는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건 오래된 핏자국이 말라붙은 거였다.그 핏자국을 본 순간 민도준의 눈은 마치 흥분에 젖은 듯 반짝거렸고 체내에 숨어 있던 잔인한 DNA가 기승을 부리며 날뛰었다.한편, 길 건너편에서 강수연은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백안에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눈을 가리고 턱을 스카프 안으로 파묻었다.“여기서 기다려.”“저…….”그녀는 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 문을 닫고 병원을 향해 걸어갔다.그 순간 권하윤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민도준에게 전화했다.몇 초간 울리는 연결음에도 그녀의 속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이윽고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그녀는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도준 씨?”“응.”느긋한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났다.하지만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병원 입구를 힐끗거리며 가장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갔어요?”“왜? 보고 싶어?”‘보고 싶긴!’너무 긴장된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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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살살할게

민도준은 역시나 남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뜨거운 손으로 권하윤의 서늘한 피부를 쓸어올렸다.“이 장소가 어때서?”그러면서 눈을 들어 비뇨기과라고 쓰여 있는 병원 간판을 힐끗 바라봤다.“다른 사람이 날 보면 오해할 수 있다며? 그러니까 하윤 씨가 마침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겠네.”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깼다는 걸 알아챈 권하윤은 눈앞이 캄캄해 났다.어쩌면 매번 민도준이 손해를 보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잊는지.강수연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먼저 민도준을 회유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두 손으로 남자의 손을 꽉 잡으며 입을 열었다 .“도준 씨가 남자답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뭐 있어요?”그녀는 한편으로 병원 문 앞을 힐끔거리며 민도준의 비위를 맞췄다. 손가락으로 그의 손목에 원을 그리면서 머리를 굴리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권하윤의 사람을 달래는 솜씨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몇 마디 말에 민도준마저 정말로 한 번만 용서해 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생각뿐이었다.민도준이 조금의 미련도 없이 손을 거둬들이자 권하윤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솔직히 민도준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할 줄 알았는데 그가 바로 물러나자 살짝 안도했다.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민도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래. 그만 놀릴게. 우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그의 섬뜩한 미소에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났다. 이윽고 마음속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뭐라고요?”그때 마침 싸늘한 빛이 반짝이더니 민도준의 손에 뭔가 나타났다.권하윤이 그 물건을 제대로 보기 전에 민도준이 그녀의 목을 잡는 바람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는 차가운 가위의 날을 권하윤의 얼굴에 대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착하지, 혀 내밀어.”이러한 상황에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권하윤의 항의에 민도준은 선심 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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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숨겨둔 카드

권하윤의 숨결은 미세하게 떨렸다.“그 돈은 해외로 송출한 거 맞아요. 그런데 도준 씨가 생각한 그런 게 아니라 물건을 구매한 거예요.”“응?”민도준은 두려움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 드는 권하윤의 눈가를 한참 구경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물건이길래 그런 수고를 자처했을까?”“제가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잖아요. 직접 보여줄게요. 어때요?”권하윤은 상의하는 말투로 간절히 말했다.민도준은 좋은지 나쁜지 대답하는 대신 그녀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빤히 쳐다봤다.이런 반응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빗나갔다.그는 권하윤이 애교를 부리거나 불쌍한 척할 거라고 생각했지 이토록 차분하게 설명할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심지어 시간을 끌지도 않고 직접 보여주겠다고까지 하다니. 순간 그도 권하윤이 숨겨둔 카드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일분일초가 흐르는 동안 권하윤은 강수연이 병원에서 나왔는지 확인해야 하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위험도 경계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일 분은 마치 일 년처럼 느껴졌다.한참이 지나서야 민도준은 그녀의 입가에 대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았다.“그래. 오늘 마침 시간이 남아도는데 천천히 놀아보자고.”겨우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낸 권하윤은 마치 큰 고비를 넘긴 듯 심호흡을 하더니 맥없는 목소리로 상의했다.“그럼 혹시 별장에서 기다리면 안 돼요? 제가 먼저 어머님 본가에 모셔다드려야 해서.”권하윤의 말에 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코를 잡고 흔들었다.“나 떼어내려는 수작이었어? 참 피곤하지도 않나 봐?”한차례의 수난을 겪고 나서인지 권하윤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기진맥진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반쯤 포기한 듯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만약 기다리지 못하겠다면…….”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은 그때 민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포개졌다. 권하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펴댔다.강수연이 병원에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만약 이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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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큰 도움을 주다

마침 퇴근 시간대라 그런지 길은 여느 때보다도 더 막혀 권하윤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녀는 계속 핸드폰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시간을 체크했고 민도준이 그녀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전화라도 해 올까 봐 마음속으로 전화 받을 준비를 했다.하지만 웬일인지 핸드폰은 내내 조용하여 오히려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그 때문에 별장에 들어설 때 그녀는 잔뜩 위축되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섰다.정원을 지나 불이 켜진 거실이 눈에 들어오자 권하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그 시각 긴 다리를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로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있던 민도준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왔어?”권하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길이 너무 막혀서…….”“쓸데없는 얘기는 할 필요 없어.”민도준은 핸드폰을 옆으로 던지더니 잔뜩 얼어붙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손에 든 그 물건부터 뭔지 말해 봐.”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에 든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그제야 권하윤은 말없이 물건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뒤로 물러났다.‘설마 나더러 직접 열어보라는 건가? 뜸 들일 줄도 아네.’민도준은 피식 웃었다.하지만 그녀의 그런 동작은 성공적으로 민도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권하윤이 대체 무슨 물건을 가져왔을지 당장 보고 싶었다.그는 손끝으로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연 뒤 느긋하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미소를 거둔 채 무표정한 얼굴로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바라보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양옆에 놓인 손을 그러쥐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만약 이 물건이 민도준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권하윤은 고비를 넘길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그녀는 자기가 직면하게 될 미래가 어떤 것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그때 민도준이 말없이 상자를 닫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가 그의 주위에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기분을 알 수 없는 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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