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권하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가리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사실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 승현이가 그쪽이 영 별로라서 그래요.”“뭐? 그게 무슨!”강수연은 곧바로 얼굴을 찡그러며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어머님이 말하라고 했잖아요.”사뭇 진지해 보이는 권하윤의 표정에 강수연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여자로서 그녀도 이런 문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체면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아들의 이런 문제는 본인이 죽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진짜냐?”그녀는 오만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한껏 낮춘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어머님, 제가 이런 일로 어떻게 장난치겠어요?”권하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몇 마디 더 보충했다.“그런데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물어보지는 마세요. 만약 심리상의 문제인데 어머님께서 대놓고 물어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더욱 문제가 커지면 안 되잖아요.”권하윤이 민승현을 “생각해 주는” 모습을 보자 강수연의 표정은 그제야 조금 풀렸다. 하지만 걱정이 됐는지 신신당부했다.“이 일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너희 집 식구한테도 안돼!”“알겠어요. 그러면 아이에 관한 일은 어떻게…….”“급할 거 없어. 아직 젊으니까.”“알겠어요, 어머님.”권하윤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아들이 이런 문제가 있으니 강수연은 마치 큰 꼬투리라도 잡힌 듯 권하윤에게 예전처럼 막 대하지 못했다.“너 운전했지? 나 병원에 좀 데려다줘.”찻집 문을 나서는 순간 강수연은 어깨에 걸친 숄로 몸을 더욱 감싸며 물었다.사실 그녀는 운전기사더러 데려다 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들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봐 권하윤더러 데려다 달라고 하는 걸 선택했다.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허둥대는 예비 시어머니의 모습에 권하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길 건너편에 세워진 익숙한 차를 발견하고 표정이
골목 하나만 돌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민도준의 차는 점점 가까이 붙어오자 권하윤은 끝내 목숨을 내놓기라도 한 듯 포기했다. 하지만 때마침 내비게이션에 찍힌 병원 이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순간 희망이 보인 권하윤은 강수연이 보든 말든 상관하지도 않은 채 빨간 신호등이 걸린 틈에 민도준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그녀의 작전이 먹혀들었는지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다시 시동을 걸 때 뒤에 따라붙던 차량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형 마트 앞 주차장에 멈춰 섰다.그제야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병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그 시각, 민도준은 방금 받은 문자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우리 지금 비뇨기과로 갈 건데 도준 씨 차가 이런 곳에 나타났다가 만약 누구한테 발각되기라도 하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어떡해요.]‘하, 쪼그만 게 말은 잘한다니까. 혀를 잘라버려도 계속 이렇게 재밌을지 모르겠네.’민도준은 글로브 박스 안에 넣어두었던 가위를 꺼내 손가락에 낀 채 빙빙 돌렸다.메스 소재로 된 날은 유난히 날카로웠고 날 경계에는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건 오래된 핏자국이 말라붙은 거였다.그 핏자국을 본 순간 민도준의 눈은 마치 흥분에 젖은 듯 반짝거렸고 체내에 숨어 있던 잔인한 DNA가 기승을 부리며 날뛰었다.한편, 길 건너편에서 강수연은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백안에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눈을 가리고 턱을 스카프 안으로 파묻었다.“여기서 기다려.”“저…….”그녀는 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 문을 닫고 병원을 향해 걸어갔다.그 순간 권하윤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민도준에게 전화했다.몇 초간 울리는 연결음에도 그녀의 속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이윽고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그녀는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도준 씨?”“응.”느긋한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났다.하지만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병원 입구를 힐끗거리며 가장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갔어요?”“왜? 보고 싶어?”‘보고 싶긴!’너무 긴장된 나머
민도준은 역시나 남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뜨거운 손으로 권하윤의 서늘한 피부를 쓸어올렸다.“이 장소가 어때서?”그러면서 눈을 들어 비뇨기과라고 쓰여 있는 병원 간판을 힐끗 바라봤다.“다른 사람이 날 보면 오해할 수 있다며? 그러니까 하윤 씨가 마침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겠네.”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깼다는 걸 알아챈 권하윤은 눈앞이 캄캄해 났다.어쩌면 매번 민도준이 손해를 보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잊는지.강수연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먼저 민도준을 회유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두 손으로 남자의 손을 꽉 잡으며 입을 열었다 .“도준 씨가 남자답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뭐 있어요?”그녀는 한편으로 병원 문 앞을 힐끔거리며 민도준의 비위를 맞췄다. 손가락으로 그의 손목에 원을 그리면서 머리를 굴리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권하윤의 사람을 달래는 솜씨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몇 마디 말에 민도준마저 정말로 한 번만 용서해 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생각뿐이었다.민도준이 조금의 미련도 없이 손을 거둬들이자 권하윤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솔직히 민도준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할 줄 알았는데 그가 바로 물러나자 살짝 안도했다.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민도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래. 그만 놀릴게. 우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그의 섬뜩한 미소에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났다. 이윽고 마음속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뭐라고요?”그때 마침 싸늘한 빛이 반짝이더니 민도준의 손에 뭔가 나타났다.권하윤이 그 물건을 제대로 보기 전에 민도준이 그녀의 목을 잡는 바람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는 차가운 가위의 날을 권하윤의 얼굴에 대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착하지, 혀 내밀어.”이러한 상황에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권하윤의 항의에 민도준은 선심 쓰듯
권하윤의 숨결은 미세하게 떨렸다.“그 돈은 해외로 송출한 거 맞아요. 그런데 도준 씨가 생각한 그런 게 아니라 물건을 구매한 거예요.”“응?”민도준은 두려움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 드는 권하윤의 눈가를 한참 구경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물건이길래 그런 수고를 자처했을까?”“제가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잖아요. 직접 보여줄게요. 어때요?”권하윤은 상의하는 말투로 간절히 말했다.민도준은 좋은지 나쁜지 대답하는 대신 그녀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빤히 쳐다봤다.이런 반응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빗나갔다.그는 권하윤이 애교를 부리거나 불쌍한 척할 거라고 생각했지 이토록 차분하게 설명할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심지어 시간을 끌지도 않고 직접 보여주겠다고까지 하다니. 순간 그도 권하윤이 숨겨둔 카드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일분일초가 흐르는 동안 권하윤은 강수연이 병원에서 나왔는지 확인해야 하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위험도 경계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일 분은 마치 일 년처럼 느껴졌다.한참이 지나서야 민도준은 그녀의 입가에 대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았다.“그래. 오늘 마침 시간이 남아도는데 천천히 놀아보자고.”겨우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낸 권하윤은 마치 큰 고비를 넘긴 듯 심호흡을 하더니 맥없는 목소리로 상의했다.“그럼 혹시 별장에서 기다리면 안 돼요? 제가 먼저 어머님 본가에 모셔다드려야 해서.”권하윤의 말에 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코를 잡고 흔들었다.“나 떼어내려는 수작이었어? 참 피곤하지도 않나 봐?”한차례의 수난을 겪고 나서인지 권하윤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기진맥진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반쯤 포기한 듯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만약 기다리지 못하겠다면…….”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은 그때 민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포개졌다. 권하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펴댔다.강수연이 병원에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만약 이 장면을
마침 퇴근 시간대라 그런지 길은 여느 때보다도 더 막혀 권하윤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녀는 계속 핸드폰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시간을 체크했고 민도준이 그녀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전화라도 해 올까 봐 마음속으로 전화 받을 준비를 했다.하지만 웬일인지 핸드폰은 내내 조용하여 오히려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그 때문에 별장에 들어설 때 그녀는 잔뜩 위축되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섰다.정원을 지나 불이 켜진 거실이 눈에 들어오자 권하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그 시각 긴 다리를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로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있던 민도준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왔어?”권하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길이 너무 막혀서…….”“쓸데없는 얘기는 할 필요 없어.”민도준은 핸드폰을 옆으로 던지더니 잔뜩 얼어붙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손에 든 그 물건부터 뭔지 말해 봐.”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에 든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그제야 권하윤은 말없이 물건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뒤로 물러났다.‘설마 나더러 직접 열어보라는 건가? 뜸 들일 줄도 아네.’민도준은 피식 웃었다.하지만 그녀의 그런 동작은 성공적으로 민도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권하윤이 대체 무슨 물건을 가져왔을지 당장 보고 싶었다.그는 손끝으로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연 뒤 느긋하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미소를 거둔 채 무표정한 얼굴로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바라보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양옆에 놓인 손을 그러쥐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만약 이 물건이 민도준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권하윤은 고비를 넘길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그녀는 자기가 직면하게 될 미래가 어떤 것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그때 민도준이 말없이 상자를 닫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가 그의 주위에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기분을 알 수 없는 그의 목소리
민도준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사실 그녀는 애초에 아무 물건이나 사들여 돈의 행방을 증명하려는 생각뿐이었다.지난번 민시영도 말했다시피 거래 기록을 숨길 수는 있어도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 않으면 민도준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다.때문에 그녀는 이왕이면 민도준에게 서프라이즈를 안겨줄 생각을 했고 우연히 이 물건을 고르게 된 거다.사실 예전에 아버지를 따라 전국각지를 돌아다닐 때 그녀는 해외의 벼락시장이나 골동품점을 자주 들렀었다.그러던 중 어느 날 해외의 한 외진 골동품점에서 이 기린(麒麟) 모양의 조각품을 발견했었다.해외에서 골동품점에서 동양의 물건을 발견한 건 흔하지 않은 일인 데다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구매하려고 했는데 몇십억이나 되는 가격에 놀라 그녀는 다시 그자리에 물건을 내려놓았었다.그리고 며칠 전 권하윤은 민도준에 관해 이것저것 조사하던 중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민도준이 마침 기린(麒麟) 모양의 열쇠고리를 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 때문에 그녀는 민시영에게 부탁해 예전에 갔었던 그 골동품점에서 조각품을 구매해 온 거다.솔직히 민도준이 부모님에 대한 태도만 보면 이 물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 알았었다. 심지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결과라도 생각했지만 그가 계속 이 물건을 찾고 있었을 줄이야.순간 이상한 느낌이 권하윤의 뇌리를 스쳤고 이 물건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권하윤은 조용한 거실에 앉아 속으로 민도준의 다음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의 관심은 온통 조각품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긴 손가락으로 한참 동안 조각품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한 부위를 만지는 순간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그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왜 그래요?”살짝 떨리는 불안한 목소리에 민도준은 그제야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소파에 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권하윤을 힐끗 보더니 자기가 그녀를 한참
권하윤은 한민혁을 본 순간 곧바로 버둥대며 민도준의 무릎 위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민도준은 일부러 그녀의 뜻을 왜곡하며 오히려 꽉 끌어안은 채 그녀의 허리를 툭 쳤다.“움직이지 마. 이따 같이 있어 줄 테니까.”그의 말에 권하윤은 말문이 막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한민혁 역시 그녀 못지않았다.‘심기를 건드리는 사람마다 사정 없이 죽이던 도준 형은 어디 갔지?’“나는 왜 불렀어?”한참을 꾸물대던 한미혁이 겨우 한마디를 내뱉자 민도준이 턱으로 티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가져가.”뜬금없는 그의 명령에 한민혁은 상자를 집어 들더니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것을 열어봤다.“헐! 이건…….”잔뜩 놀란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민도준을 바라봤지만 상대의 눈빛에 이내 입을 다물며 마른 침을 삼켰다.“같이 안 가?”“안 가.”민도준은 자기 품에 안겨 조심스럽게 그와 한민혁의 표정을 관찰하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야릇하게 웃었다.“오늘 우리 제수씨랑 같이 있어 주기로 했거든.”“…….”‘헐, 끝났네. 이젠 아예 일도 내팽개치다니.’한민혁은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그가 떠나는 순간 공기는 다시 무거워졌다.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권하윤은 자기만 모르는 무슨 사연이 있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그를 떠봤다.“도준 씨, 급한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 다음에 다시…… 아…….”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도준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고 갑자기 위로 붕 뜬 권하윤은 놀란 나머지 무의식중에 다리를 상대의 허리에 둘렀다.민도준은 휘청거리는 그녀의 등을 받쳐주는 대신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제대로 잡아. 떨어지면 난 상관 안 해.”침실에 도착하기 바쁘게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권하윤은 침대 시트 위에서 몇 번 튕겨 오르더니 끝내 멈췄다.하지만 울렁거리던 속이 겨우 괜찮아 질 때쯤 민도준의 뜨거운 몸이 그녀를 덮쳐
이미 가려고 결심했던 민도준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불쌍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권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대체 어떻게 하면 매번 잘못을 저지르고 오히려 본인이 억울해할 수 있지?’민도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끝내 침대 곁으로 다가가 불룩 튀어나온 덩어리를 툭툭 쳤다.“나와.”그의 말에 이불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곧바로 볼록한 머리가 쏙 나왔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민도준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나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혼자서 들어갔다 나왔다 재밌게 노네.”그의 말에 권하윤은 순간 화끈 달아올랐다.“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응?”민도준은 두 손으로 침대를 짚은 채 고개를 숙여 권하윤을 바라봤다.“왜? 이젠 나한테 흥미를 잃은 거야?”갑자기 그가 다른 여자와도 이렇게 지냈을 거라는 생각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괴상야릇한 말투가 튀어나왔다.“전 그런 말 안 했어요.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싫증 날 때도 있어요.”그녀의 말에 민도준은 혀로 볼을 꾹 밀었다.‘내가 싫증 난다 이 말인가? 이젠 아주 기어오르네.’“일어나서 옷 입어.”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민도준의 행동에 권하윤은 잠시 멈칫했다.“어디 가려고요?”“재밌는 곳.”민도준의 온화하고 상냥한 표정에 그가 화난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자 권하윤은 안심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블랙썬.민도준이 권하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민혁은 지하실에서 강철 톱날로 무언가를 자르고 있었다.“도준 형, 안에 정말 뭔가 들어있는 게 확인돼서 지금 애들 시켜서 잘라 보라고 했어. 곧 있으면…….”민도준을 본 순간 반갑게 다가가며 말하던 한민혁은 그의 뒤에 있는 권하윤을 보자 하던 말을 멈췄다.“어, 하윤 씨도 있었네요.”“거기 서서 뭐해? 얼른 들어오지 않고.”잔뜩 경계한 그와는 달리 민도준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권하윤을 향해 손을 저으며 그녀를 불러왔다.그의 부름에 멈칫하기도 잠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던 권하윤은 그들이 자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