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231 - Chapter 1240

1602 Chapters

제1231화 사람으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블랙썬 직원 중 시윤이 진짜 사모님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그 누구도 시윤을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그 덕에 아무 어려움 없이 도준의 방에 도착한 시윤은 대충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져 빛 한줄기도 들지 않는 방안은 컴컴하기만 했다.이에 시윤은 아무 생각 없이 불을 켰지만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도 그럴 게, 벽에는 온통 시윤의 사진뿐이었다.그녀가 소예리드 콘서트홀에서 연습하는 사진, 수아를 포함한 후배들과 쇼핑하는 사진, 밥 먹는 사진, 심지어는 숙사에서 잠을 자는 사진까지.그걸 본 순간 등골이 오싹해 시윤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그러자 더 많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귀국하여 공연하는 사진, 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심지어 더 무서운 건 경성에 돌아온 뒤 호텔에서 자고 있는 사진까지 있었다.물론 어젯밤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던 사진까지 말이다.시윤은 순간 호흡이 턱 막혀왔다.‘그러니까 결국은 한순간도 도준 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 없었다는 뜻이잖아.’이제는 겨우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전보다 훨씬 큰 다른 우리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순간 머리털이 곤두서며 수만 마리의 독사가 목을 감은 듯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시윤의 뒤를 따라오던 민혁이 시윤에게 들켰다는 걸 확인하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죽었다.’“저기, 시윤 씨, 오해하지 마요. 도준 형이 변태인 게 아니라, 걱정돼서...”“걱정이요?”시윤은 아직도 한기가 채 가시지 않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걱정한다는 게 나를 통제하면서 한편으로 대타를 키우는 거예요?”“아니에요, 도준 형이 한수진을 찾은 건...”“듣고 싶지 않아요.”시윤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지난 1년 동안 늘 도준의 감시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자유를 얻는 줄 알았는데, 사실 사생활도 없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 만나는 사람이 모두 도준의 감시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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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2화 도준의 비밀

시윤은 방 안에 있는 도준을 바라보며 충격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도준 씨가 한수진을 찾은 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곧바로 시윤은 수진의 귀에 걸린 이어폰을 주목했다.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탓에 수진은 한가한 듯 도준과 나석훈을 번갈아 보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나석훈은 도준의 대답을 들은 뒤 미간을 좁혔다.지난 반년 동안의 치료 덕에, 쉽게 최면에 들어야 하는데, 시윤이 돌아오고 난 뒤 최면에 드는 속도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심지어 오늘은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나석훈은 최면에 걸리지 않은 도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잠깐 끊고 갈까요?”그때 도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진의 팔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팔, 다쳤네?”수진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도준이 저를 보면서 얘기하자 이어폰을 뺐다.“민 사장님... 방금, 저한테 말한 거예요?”“붕대 풀어.”“네?”수진은 팔이 탈골되어 깁스를 한 채 목에 고정한 생태였다.그런데 깁스를 하는 과정에도 아파서 죽을 뻔했는데, 다시 풀라니?그럼 다시 병원에서 그 고통을 경험해야 할 게 뻔했다.결국 수진은 불쌍한 표정으로 애교를 부렸다.“민 사장님, 저 아파요.”“스스로 풀래? 아니면 내가 그 팔 부러뜨려 줄까?”도준은 더 이상 수진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있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싸늘함뿐이었다.이런 변화에 수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지난 반년 동안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만 되면 수진은 항상 이곳에서 도준과 만났다.물론 도준은 심리 치료사와 오가는 대호를 들려주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항상 집중하는 눈빛을 했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방해되지는 않았다.심지어 도준이 심리 치료사의 도움으로 이시윤을 잊고 그 사랑을 저한테 돌리고 있다고 믿었었다.그러면 제가 곧 시윤을 대체하고 도준의 여자, 심지어는 민 사모님이 될 거라고 꿈꿔 왔다.하지만 이 시각 갑자기 변한 도준의 태도에 수진은 그가 지금껏 저를 통해 보던 게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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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3화 시윤 씨가 다치니까요

처음에 도준은 시윤을 찾아가려는 생각을 꾹 누른 채, CCTV를 볼 수 있는 권한만 얻어 시윤이 리허설하는 상황만 지켜봤었다.그러다가 임우진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게 된 었다. 그 순간 분노를 느꼈지만 도준은 역시나 본능을 누른 채 사람을 시켜 시윤의 숙소에 CCTV를 설치했고, 그녀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그러다, 세 번째, 네 번째...그렇게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도준의 광기는 점점 심해졌고, 눌러 참았던 충동이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았다.점점 원하는 게 많아지면서 소예리드로 가는 횟수도 점점 잦아졌다.하지만 너무 오래 참은 탓인지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소예리드만 다녀오면 기억의 공백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그건 도준 본인도 자기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가장 심각했던 때가 바로 6월 달이었다.그때 도준은 통제 불능의 변두리에 놓여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시윤을 다시 잡아와 곁에 묶어두고 싶다는 충동이 점점 강해져 통제할 수 없어졌고, 심지어는 팔다리를 부러트리거나 멍청하게 만들어 제 침대에만 묶어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하고 싶은 대로 하면 더 이상 애타게 어르고 달래지 않아도 되니까.하지만 시윤은 하필 연약하고 심술 궂어 조금이라도 심하게 대하면 울고, 아파도 울고, 속상해도 울어댔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그날, 도준이 사고를 낸 것도 고의였다. 시윤을 공제하지 못하다면 저를 묶을 수밖에 없었으니까.그리고 그 사고 이후, 최수인은 심리 치료사를 데리고 도준 앞에 나타났다.‘너 많이 아파.’‘더 이상 치료하지 않으면 너 이대로 망가져.’나석훈이 훌륭한 의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경계심이 많은 도준을 최면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남에게 감정을 전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리고 그 치료 주기를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로 정했고....여기까지 얘기하던 민혁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런 치료는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해요. 최면이 효과가 없어지면 도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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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4화 아니라면 떠나주세요

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시윤 씨, 제삼자인 제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다는 거 알아요. 돌아가신 분은 시윤 씨의 아버지이니 누구라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요.”시윤은 마음이 심란하여 멍한 눈으로 되물었다.“뭘요?”“만약 도준 형과 다시 시작하겠다면 여기서 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만약 아니라면 떠나주세요. 도준 형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시윤은 멍해졌다.“지금 그 말...”시윤의 눈빛에 민혁은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말했다.“희망이 있었다 사라지는 것보다 처음부터 없는 게 낫잖아요. 다시 그런 경험을 하면 도준 형 정말 지쳐버릴 지도 몰라요.”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긴, 내가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다면 도준 씨는 여전히 그 대단하신 민 사장님이었을 텐데.’그런데 시윤은 그런 그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또 떠나버렸다.행복을 얻어본 적 없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텐데...굳게 닫힌 문을 보며 시윤은 고통스러운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했다.그날 비행기에 오른 순간, 시윤은 사실 도준의 곁을 떠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었다.그녀로서는 절대 아버지를 죽게 만든 범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더러 그런 사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으니까.하지만 지금.시윤은 또다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갈등하기 시작했다.눈앞에 가끔은 가족과 다시 만나던 그날이 떠올랐고, 도준이 외롭게 밖에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고, 또 때로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대체 나더러 어떻게 선택하라고...’...그 시각 방 안.한참 동안 목이 졸린 수진은 끝내 기절해 버렸고, 그걸 본 나석훈은 다급히 수진의 호흡을 체키하고 나서야 식은땀을 닦으며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도준을 바라봤다.20여 년간 심리 치료사 일을 해오면서 그는 한 번도 도준과 같은 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민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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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5화 시윤의 선택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가고 있었다. 도준은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나서야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러다가 커다란 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순간 몇 초간 멈췄다.심리 치료사인 나석훈은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이건 이제 곧 일어날 일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나온 행동이다.이런 망설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정상적일 테지만 도준이 이런 행동을 보이자 나석훈은 얼른 노트를 꺼내 뭔가를 끄적이며 동그라미를 그렸다.그리고 나석훈의 노트가 닫히는 순간, 문도 열렸다.문밖은 아무도 없었다.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진작 짐작했다는 듯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나석훈도 밖을 두리번대더니 물었다.“오늘 한 사장님이 안 계시네요?”...한편, 민혁은 시윤을 차에 태운 채 엑셀을 밟으며 공항으로 향했다.그러는 와중에도 시윤을 위로하는 걸 잊지 않았다.“불안해할 거 없어요. 어머님 꼭 괜찮을 거예요.”사실 방금 전, 시윤은 해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하필 이승우가 출장을 간 탓에 동네에서 쓰러진 양현숙을 동네 주민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했던 거다.가는 길에 시윤은 가장 빠른 비행기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쉴 새 없이 시계를 확인했다.심지어 3시간이라는 비행시간 동안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하며 어머니에게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전화 통화를 할 수 없는 터라 3시간은 3년처럼 느껴졌다.너무 늦어 일찍 해원에 돌아오지 않는 저를 나무라기까지 했다.만약 공연이 끝나고 바로 돌아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해원에 도착하자마자 시윤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간호사님, 양현숙 환자분 병실이 어디 있나요?”간호사는 기록을 확인하다가 한참 뒤 대답했다.“입원 병동 6층 612호 병실입니다.”전속력으로 달려 병실에 들어간 시윤은 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양현숙을 보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시윤은 곧바로 병상 쪽으로 달려가며 흐느꼈다.“엄마, 미안해요. 미안해요.”“우리 딸, 왜 울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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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6화 너도 못 잊었잖아

샘플 채취 수, 시윤은 곧장 병실에 돌아가는 대신 복도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확실히 수아의 말대로 해원에는 벌써 꽃들이 피어 있었다.물론 많은 편은 아니지만 경성보다 일찍 따뜻하져 벌써 봄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방금 바삐 뛰어다닐 때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조용해지니 이제야 경성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시윤은 결국 그 문을 열지 않았고, 운명에 이끌린 듯 해원으로 돌아왔다.‘이게 우리의 바뀌지 않는 운명인가 보네...’“윤아.”시윤은 번쩍 정신을 차리며 돌아섰다. 승우도 어느새 샘플 채취를 마치고 돌아왔다.“오빠.”승우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마음 아픈 듯 말했다.“여위었네.”그 말에 시윤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뚱뚱해지면 쌤이 욕해.”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우를 빤히 바라봤다.“그러는 오빠야말로 멋있어진 것 같네. 혹시 형수는 언제 데려올 거야?”승우는 눈을 내리깔며 속내를 숨기려 했다.“급할 거 없어.”시윤이 떠난 1년 반 동안 승우는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예전에 바이올린 연습에 기울이던 노력을 모두 학생을 가르치는 데 기울였다. 심지어 전에 사용하던 연습곡도 리뉴얼하고 많은 기법도 새로 추가했다.그 뿐만 아니라 일전에 천재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덕에 많은 토크쇼에 초대되었고, 그 방송분이 공개되자 수많은 여자 후배들이 시윤에게 승우의 연락처를 물어보기까지 했다.심지어 수아는 잘생긴 것보다는 바이올린 켜는 남자가 좋다며 다리를 놔줄 걸 제안했지만 승우가 거절했다.물론 승우가 거절한 사람은 시윤의 후배뿐이 아니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시윤은 심지어 제 오빠가 이성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본 적이 없다.‘잠깐, 설마 오빠 남자가 취향인가?’승우는 갑자기 이상야릇해진 시윤의 표정을 보며 우스운 듯 물었다.“윤아, 너 표정 왜 그래?”시윤은 승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오빠, 저기 있잖아. 나 오픈 마인드라 형수는 여자가 아니어도 괜찮아.”그 말에 승우는 잠깐 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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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7화 친딸이 아닐 수 있어요

보고지를 받은 두 사람은 곧장 주치의를 찾아갔다.그러자 보고지를 건네받은 의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두 분 모두 환자분 자녀가 맞나요?”“네.”시윤은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왜 그러시죠? 혹시 저희 모두 맞지 않나요?”“아니요.”의사는 승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드님은 매치가 잘 되니 이 보고서를 들고 간호사를 찾아가세요.”본인은 매치율이 떨어진다는 말에 시윤은 이내 실망했다. 물론 저와 오빠 중 누가 이식해 주든 결과는 같을 테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미안한 만큼 뭐라도 해주고 싶었으니까.하지만 결과가 나왔으니 시윤은 이내 받아들인 채 승우와 함께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의사가 시윤을 불러 세웠다.“따님분은 잠시만요. 환자분에 관해 전할 말이 있습니다.”‘뭐지? 다 끝났다고 했잖아?’시윤은 의아했지만 의사에 대한 존중과 믿음으로 남게 되었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따님분은 어머니와 매치가 전혀 안 되는 거로 나옵니다.”“그게 뭐가 문제인데요?”“정상적인 자녀라면 어머니와 적어도 절반 정도는 일치하다고 나와야 하는데, 따님분 같은 경우는 완전히 불일치로 나옵니다. 따님분은 환자분 친딸이 아닐 수 있어요.”“네?”시윤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선생님, 이 보고 결과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제가 엄마 딸이 아니라니. 그럴 리 없어요.”의사는 견식이 많은지라 냉정하게 대답했다.“물론 따님분도 당연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겠죠. 하지만 양현숙 화자분이 따님분 친엄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말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시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작 한마디로 20여 년간 엄마로 알고 지낸 사람을 남이라고 단정 짓다니.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른 시윤은 겨우 다시 제 목소리를 찾았다.“그럼 제 오빠는요?”“오빠분은 양현숙 환자분과 모자 관계가 맞습니다.”벼락이라도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은 시윤을 보자 의사는 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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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8화 너 내 친딸 아니야

시윤의 표정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양현숙은 시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물었다.“물어봐, 뭐든 물어봐도 돼.”양현숙은 늘 그렇듯 다정한 말투로 말했지만 시윤이 오히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에 고개를 돌려 양현숙의 눈을 피하고 나서야 끝내 입을 열었다.“엄마, 저 엄마 딸 아니에요?”양현숙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듯 싱긋 웃었다.“우리 딸이 어떻게 엄마 딸이 아니야?”하지만 웃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는지 어조가 조금 느려졌다.“어, 그건 왜 묻는 건데?”말을 꺼낸 마당에 시윤은 결실이라도 내린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엄마 빈혈이래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이 필요해서 오빠랑 같이 샘플 검사하러 갔는데 의사가 저랑 엄마의 세포가 완전히 불일치 하대요. 보고서 상으로만 보면 모녀가 아니래요.”시윤은 제가 말하고도 황당했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20몇 년간 엄마라고 불렀는데 고작 보고서 한 장으로 모든 걸 말살하려 하다니? 게다가 엄마든 아빠든 그동안 나를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시윤은 제 말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하기라도 할까 봐 얼른 말을 보탰다.“그런데 보고서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저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도 몇 번 봤어요. 기계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한참 동안 말했는데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시윤은 눈을 들어 양혀숙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빨갛게 물들어 있는 양현숙의 눈시울을 보고 흠칫 놀랐다.“엄마, 왜 그래요? 혹시 제가 헛소리했다고 화났어요? 다 제 탓이에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소리 안 할게요.”시윤은 심지어 양현숙의 손을 저에게 갖다대며 때리라고까지 했지만 양현숙은 오히려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이미 알았으니 엄마도 속이지 않으마. 너 내 친딸 아니야.”“...”시윤은 순간 머리가 ‘펑’하고 터지는 것만 같았다.‘네가 엄마 딸이 아니라고?’‘그럼 나는 누구지? 내 엄마 아빠는 어디 있지?’양현숙의 목소리는 솜이라도 끼어 있는 듯 흐릿하게 시윤의 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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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9화 승우의 이상한 반응

몇 년 전, 이성호한테 그런 사고가 났을 때 양현숙은 암시했던 적이 있다.‘만약 네가 내 친자식이 아니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을 텐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떠나.”그때 시윤은 이렇게 대답했었다.“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만약 혼자 도망가서 다시는 가족들 못 보면 제 인생도 희망이 없어지잖아요. 엄마, 저 꼭 식구들 데리고 해원 벗어날 거예요.’사실 그때 이미 모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그 시각, 아이처럼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은 어머니를 보며 시윤은 자책하던 마음마저 사라졌다.본인이 양현숙의 친딸인지 아닌지는 사실 별 의미 없었다. 그동안 양숙이 저를 친딸처럼 키워준 덕에 원래 보육원에서 자라야 할 그녀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보배로 자라왔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더 바랄 것도 없다.시윤은 먼저 양현숙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지난 20여 년간 우리 가족이 저를 얼마나 아껴주고 사랑해 줬는데요. 친딸로 키워준 게 아니라, 후원해 주었다 해도 저 절대로 우리 가족 안 버려요! 엄마는 영워한 제 엄마예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 앞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어느새 돌아왔는지 승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승우 손에 든 죽은 바닥에 떨어져 김을 폴폴 풍기고 있었고, 승우는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 시뻘게져서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심지어 늘 듣기 좋던 맑은 목소리에 모래라도 섞인 듯 많이 갈라져 있었다.“엄마, 방금 뭐라 했어요? 윤이가 엄마와 아빠가 낳은 딸이 아니라니요?”양현숙은 너무 큰 반응을 보이는 이승우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윤이 네 아빠랑 내가 낳은 딸이 아니야. 그런데 그동안 함께 지내왔으면 내 딸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앞으로도 동생 예뻐해야 한다, 알았지?”늘 다정한 성격을 갖고 있는 데다 시윤을 아끼던 승우라면 당연히 이 말에 두말없이 승낙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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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0화 승우의 비밀

시윤이 왜 미안한지 되물을 새도 없이 승우는 몸을 돌려 황급히 병실을 떠났다.시윤은 그런 승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오빠가 왜 갑자기 저러지?’한편 승우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 미친 듯 상자를 뒤져 편지를 찾아 꺼내 들었다.새빨갛게 충혈된 데다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 속에 적인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승우의 심마로 되어 보지 않아도 줄줄 외울 수 있었다.[여보, 승우가 윤이한테 남매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듯하오. 혈육을 나눈 남매 사이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니 큰 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꼭 윤이에게 전해주오...]바로 이 말 때문에 승우는 이 편지를 따로 꽁꽁 숨겨두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밤마다 이 편지를 어머니에게 들키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다.특히 시윤이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오빠가 저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는지 느끼고 역겨워하는 모습.심지어는 이 편지를 손에 들고 역겹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빠가 나한테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 생각해도 역겨워요.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그때 교통사고로 확 죽어버리지 그랬어요.’ 라는 말을 퍼붓는 꿈을 꿀 때면 너무 고통스러웠다.시윤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심지어 아버지도 모두 함께 서서 차갑고도 경멸에 찬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꿀 때면 승우는 설명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매번 그의 심장은 낱낱이 파헤쳐져 그 속에 숨어 있는 기형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요 몇 년뿐만 아니다.솔직히 동생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승우는 이런 날이 올까 봐 늘 불안해했었고, 그래서 더 좋은 오빠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심지어 시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에도 오빠의 입장으로 조언도 해주고 위로도 해줬다.그런데 그간의 모든 게 갑자기 무의미해졌다.그와 시윤은 피를 나눈 남매가 아니다.그러니까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내어 다가갔더라면 뒤의 모든 게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뜻이었다.승우는 편지를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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