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131 - Chapter 1140

1602 Chapters

제1131화 행복했던 추억

한때 집 앞 작은 화단에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이제는 온통 잡초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하윤의 어머니 양현숙이 정성껏 가꿨던 꽃들마저 모두 메말라 누렇게 변해 있었고 가지 위에 고작 누런 이파리 몇 개밖에 달려있지 않았다.하윤은 굳게 채워진 철문을 보면서 아쉬운 듯 밀었다.그때, 옆으로 손 하나가 쑥 나와 문을 열어주자, 하윤은 몸을 돌려 의아한 듯 도준을 바라봤다.이 집은 사실 오래 전에 경매로 팔렸다.‘공태준이 분명 본인이 사들였다고 했는데, 왜 도준 씨가 열쇠를 갖고 있지?’‘아, 하긴, 공씨 가문이 무너졌으니 도준 씨 마음대로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우리 가족을 장악했던 게 공씨 가문이었지만 결국은 모두 도준 씨 손에 들어갔던 것처럼.’철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하윤은 옛날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도어락에서 삐리릭,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문이 열렸다.하윤의 집은 민씨 저택이나 공씨 저택처럼 호화롭거나 널찍하지 않다. 그러나 2층으로 된 단독 빌라에 생활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특히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세 오누이가 받은 상장만 해도 진열대를 꽉 채웠다.이성호가 받았던 국제 트로피는 세 오누이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트로피들 때문에 모두 구석으로 밀려났다.심지어 넘쳐나는 옷가지들은 아래층에 궤짝을 만들어 넣었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레이스 식탁보가 펼쳐져 있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주위를 빙 둘러보던 하윤은 수납식 계단을 올라 제 방으로 가 문을 열었다.그 순간 마치 시공간의 문을 열기라도 한 듯 오래된 기억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조용한 방 안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언니, 나 그 치마 한 번만 입어 볼 게. 절대 더럽히지 않을게, 약속해.’‘윤이야, 오빠가 잘못했어. 다음 번에 닭강정 사줄게, 그러니까 화 풀어.’‘우리 딸, 내려와서 밥 먹어야지.’‘흥, 피아노는 열심히 치지 않더니 밥 먹으라는 소리에는 바로 반응하네.’하윤은 문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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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인생 왜 이런 거야?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서서 빌라를 나섰다.그때, 문 앞 차안에서 비몽사몽해 있던 민혁은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일어나더니 이내 차에서 내렸다.“어디 가요? 데려다 줄게요.”하윤은 무시한 채 민혁을 지나쳤지만 곧장 도준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타.”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도준의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턱에는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자라났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도준은 초라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성미가 더해졌다.‘그래. 이게 민도준이지. 어떤 상황이든 여전히 태산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하윤은 도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극단에 갈 거예요.”그로부터 30분 뒤, 차는 극단 앞에 멈춰 섰다.하윤은 아무 미련 없이 차에서 내리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민혁은 백미러로 도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도준 형, 오늘 조 국장 쪽에 가봐야 하는데...”“응,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차는 곧장 골든 빌라로 향했다. 한참 뒤 차에서 내린 도준의 얼굴에는 밤을 샌 흔적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민혁이 기운 없이 연신 하품을 해댔다.“차키 이리 줘.”민혁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차키를 도준에게 건넸고, 다음 순간 도준은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쌩하고 떠나버렸다. 그제서야 민혁은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걸 인지했다.‘그래, 뭐. 택시 타고 가면 되지.’하지만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주머니를 뒤진 순간, 뭔가 깨달은 듯 차 뒤꽁무니를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내 핸드폰과 지갑...”주차장에는 일순 민혁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자,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돈도 없는데 어디 가야지?’그렇게 한창 생각하고 있을 때, 민혁의 눈에 28층 버튼이 들어왔다.민혁은 갑자기 든 생각에 제 뺨을 찰싹 때리며 중얼거렸다.“어떻게 싸가지 집 비번을 안다고 그 집에 들어가 샤워하고 무전취식 하고 잠까지 잘 생각 할 수 있어? 이러면 안되지.”10분 뒤.삐리릭-민혁은 결국 가을의 집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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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무단침입

오늘, 해원의 하늘은 유독 흐릿한 데다, 비록 경성처럼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오한이 느껴질만큼 추운 날씨다.그 때문인지 엘리베이터에 오른 진가을은 몸을 오소소 떨었다. 벌써 새집을 구한 가을은 어제 밤새 새집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결국 그곳에서 하루 묵고 오늘에야 돌아오는 길이다.오늘 마침 스케줄이 없는 틈에 귀중품을 옮기고 저녁에 이삿짐 센터를 부를 생각이었다.하지만 집 문을 연 순간,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 순간 가을은 잔뜩 겁에 질렸다.‘안 그래도 요즘 사생팬이 연예인의 집에 숨어든다는 기사도 많던데, 설마 나도 재수없게 걸린 건 아니겠지?’소파 위에서 사람의 발을 보는 순간 가을은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신고하면서 문 앞에 두었던 꽃병을 손에 들고 슬금슬금 들어섰다.‘젠장, 감히 내 집에 기어 들어와? 경찰이 오기 전에 정당방위로 화나 실컷 풀어야겠어.’가을이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여자이기에 소파 위에 누워있는 남자의 등을 본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몸을 한껏 숙이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하나, 둘, 셋!’“이 때려 죽일 도둑놈아!”이윽고 가을은 꽃병을 세게 휘둘렀다. 맞으면 죽지는 않아도 머리가 깨질 정도로 센 공격이었다.다행히 산전수전 다 겪은 민혁은 기척에 깨어나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가을이 너무 세게 휘두른 탓에 꽃병은 민혁의 눈썹을 가격했고, 순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이런 젠장! 잘생긴 내 얼굴!”그제야 ‘사생팬’의 얼굴이 민혁인 것을 발견한 가을은 말까지 더듬었다.“왜... 그쪽이...” 그와 동시에 핸드폰 너머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들리십니까? 무슨 일로 신고하셨죠?”“어...”민혁은 순간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누구 전화예요? 저승사자한테서 걸려온 거예요? 그럼 나 좀 데려가달라고 해요!”...전화에 대고 대충 이유를 둘러댄 가을은 곧바로 사과하고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민혁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싶었는데, 저 때문에 피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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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생뚱맞은 커플을 응원했잖아

민혁은 솔직히 말했다.“그쪽 매니저가 알려주던데요.”‘매니저...’‘하긴. 예전부터 포주처럼 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가을은 뭔가 이상했지만 그날 밤 제가 민혁을 덮친 기억이 떠오르자 이내 생각을 털어버리고 떨떠름하게 말했다.“됐어요. 이 돈으로 병원 가서 치료받아요. 난 이삿짐센터 예약해서 이사해야 하거든요.”알겠다는 듯 대답한 민혁은 문 앞에 다다르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그, 저기 오늘 저녁 시간 있어요?”“왜요?”“저녁에 식사나 같이 해요. 혹시 양꼬치 좋아해요?”그 말에 가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저 같은 대스타랑 지금 양꼬치를 뜯자고요?”“싫으면 말아요. 갈게요.가을의 거절에 민혁은 바로 포기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마침 문이 닫기려는 순간, 안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더 맛있는 가게 알아봐요.”그제야 민혁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알았어요.”가을도 닫히는 문을 향해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저녁 6시.간단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하윤은 또 수아한테 붙잡혀 한창 동안 푸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극단을 나설 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수아는 여전히 슬픈 듯 중얼거렸다.“선배, 저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을 거예요.”하윤은 눈을 내리 깐 채 대답했다.“응.”‘나도 안 믿어.’그러던 그때, 수아는 갑자기 하윤의 팔을 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선배, 저기 봐요! 저 사람 민도준 아니에요?”그제야 눈치챈 듯 고개를 들었더니, 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도준이 하윤의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그 옆모습에 수아는 하트가 된 눈으로 흥분해서 말했다.“와, 진짜 잘 생겼네.”확실히 도준은 누구나 덮쳐 들게 할만한 얼굴을 갖고 있긴 하다.심지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려 간이고 쓸개고 모두 갖다 바칠 만큼 잘생겼다.수아는 도준의 실물을 보자 슬픔은 깡그리 잊고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그러면서 하윤을 다그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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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우리 그만 끝내요

하윤이 짐을 들고 도준의 옆을 지날 때, 허리가 덥석 잡혔다.이윽고 하윤의 머리에 입을 댄 채 웅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하윤은 그 호칭에 버둥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그러자 허리를 감쌌던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여보, 나 무시하지 마. 내가 다 보상해줄게.”“그래요. 그럼 우리 아빠 살려내요.”하윤은 아주 가볍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단호했다.“내가 필요한 보상은 그것뿐이니까.”다음 순간. 도준은 하윤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 힘은 마치 하윤을 제 품안에서 으스러뜨릴 것만 같았다.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침묵 끝에 하윤이 부서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도준 씨, 우리 그만 끝...”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도준이 하윤의 입술을 막으며 그녀의 숨결마저 앗아가 버렸다.심지어 품에 못 박아두듯 꽉 끌어안은 탓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그러다 겨우 떨어지더니 하윤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우리한테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어. 날 싫어하면 내 옆에서 날 죽여 복수할 기회를 엿봐야 하는 거 아니야?”창백한 하윤의 얼굴에서 유독 입술만 빨갛게 부어 더 눈에 띄었다.하윤은 고개를 저었다.“전 도준 씨 못 죽여요.”그 말에 날카롭던 도준의 눈매가 살짝 풀리더니 제 가슴을 미는 하윤의 잡아 입에 댔다.“나 사랑해서?”“네.”하윤은 도준을 사랑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사랑하지 않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그러니 얼른 도준한테서 도망쳐 원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그곳에서 시시때때로 저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상기시켜 줘야 했으니까.그러지 않으면 편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었으니까.도준도 하윤의 생각을 읽어냈기에 더욱더 하윤을 보내줄 수 없었다. 될 수만 있다면 하윤을 저에게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도준의 강렬한 눈빛에 하윤은 차갑게 말했다.“만약 저를 여기 붙잡아 두면,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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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공은채의 발악

곽씨 집안 사람들은 정계에 발을 담그고 있기에 공은채를 사립 병원 대신 국립 병원으로 데려갔다.때문에 의사부터 간호사까지 바쁜 나머지 아무리 개인 병실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은채는 사립 병원에서처럼 편안함을 누리지는 못했다.하윤이 병실에 들어갈 때만 해도 머리맡에 놓인 물병을 꺼내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었으니. 하지만 하윤을 보자마자 은채는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했다.“하하, 생각보다 늦게 왔네?”하윤은 얼른 은채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그녀 몸에 연결된 수많은 의료기기들을 둘러보더니 비아냥댔다.“그러는 너야말로 생각보다 냉정하네.”은채는 순간 싸늘한 눈빛을 내비치더니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왜? 내 심장을 도둑질해간 걸 알고 내가 무너지기라도 바란 모양이야?”말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제 심장이 바꿔치기 당했다는 걸 알자마자 은채는 자기가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해 그렇게 많은 조치를 취했는데도 결국 지고 말았다.심지어 의사로부터 앞으로 한달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판정까지 받게 되었다. 고작 한달! 그녀의 목숨은 앞으로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몇 년 동안 계략을 꾸며 모든 준비를 해둔 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분명 마지막 한 단계만 성공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는데!병상에 누운 은채는 독사의 눈빛으로 하윤을 노려봤다.“내가 널 참 쉽게 생각했나 봐. 평소에는 순진한 척 착한 척 굴더니, 나랑 가를 게 뭔데? 내 오빠가 널 좋아하는 마음 이용하고, 석지환이 너한테 느끼는 죄책감을 이용해서 같이 나를 상대했잖아.”하지만 하윤은 오늘 은채와 말다툼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더욱이 그런 일을 벌인 마당에 은채의 도발에 쉽게 넘어갈 리도 없고.때문에 아예 고개를 끄덕이며 쿨하게 인정했다.“맞다면 어쩔 건데? 네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뿐이야.”그 말에 은채는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그러면서 무슨 자격으로 피하자 코스프레를 하며 정의구현 하러 여기까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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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제 꾀에 넘어간 공은채

하윤은 덤덤하게 말했다.“날 자극해도 소용없어. 도준 씨가 들어오면 네가 한달도 채 버티지 못할까 봐 그러는 거니까.”은채는 입안에서 퍼지는 피비린내를 삼키고 애써 입을 열었다.“네가 바라던 바 아니야?”은채가 죽는 마당에 이유라도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안 하윤은 이내 뒤돌아 문을 열었다.벽에 기대 기다리던 도준은 하윤을 보자 곧바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화 다 풀렸어?”“공은채가 만나재요. 둘이 대화 나눠요.”도준의 손길을 피한 하윤은 말을 마치자마자 떠나려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움직이려던 찰나, 도준이 하윤의 어깨를 꽉 잡으며 허리를 숙인 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난 다른 여자랑 단둘이 있는 거 싫어. 그러니까 옆에서 감시해.”그렇게 하윤은 또다시 병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도준이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말을 꺼내려던 은채는 뒤따라 들어오는 하윤을 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아냥거렸다.“왜? 이제 남은 거라곤 유언을 말할 일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뭐 하러 외부인까지 들여?”도준은 의자를 끌어와 하윤을 앉히고는 눈을 들어 은채를 바라봤다.“여기 있는 외부인은 너뿐이야.”은채는 약 2초간 멈춰 있다가 되물었다.“나뿐이라고? 그럼 이성호를 협박해 죽게 만든 범인은 뭔데?”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병실에는 적막이 드리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은채를 보는 도준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 나왔다.하지만 도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하윤이 제 어깨 위에 놓인 도준의 손을 꼭 잡으며 은채를 바라봤다.“내 아빠를 죽인 건 너잖아. 죽어가면서까지 이렇게 버둥대는 거 추해.”분명 하윤이 공은채 앞에서 일부러 보여주기식으로 행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동안 냉대를 받던 도준의 마음은 하윤이 손을 잡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심지어 하윤의 손을 꽉 잡으며 나른한 말투로 말했다.“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 몰라? 나를 걱정할 시간에 마지막 한달 간 어떻게 버틸지나 걱정해.”도준이 저를 협박한다는 걸 눈치챈 은채는 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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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직접 복수해봐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속였냐고? 그냥 네 연기에 맞춰줬을 뿐이야. 아직도 본인이 대단한 줄로 착각하나 보네?’은채는 칼끝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도준을 바라봤다.그 순간, 지난 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눈앞을 스쳐 지났다.지금껏 은채는 도준 어머니가 남긴 심장과 문을 사이두고 들려줬던 피아노 연주로 도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도준이 순순히 제 약혼자 신분으로 저를 도왔다고 생각하면서.심지어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뛰어난 외모와 똑똑한 머리 덕에 그 어떤 남자도 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자부해왔다.그러다가 계획을 실행하면서 은채의 주위에는 점점 남자들이 많아졌고, 그 때문에 싸우는 횟수가 늘어났고 도준의 태도도 점점 나빠졌다.하지만 그럴수록 은채는 더 마음이 놓였었다. 제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엮이는 걸 덤덤히 받아들이면 오히려 더 이생했을 테니까.그렇게 마지막 이별이 다가왔을 때, 은채는 공씨 가문만 무너뜨리면 도준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그때 도준은 마치 믿지 않는 다는 듯 농담삼이 이렇게 말했었다. ‘하, 그래.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고려해 볼게’ 라고....지나온 나날을 회상해 봐도 실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은채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봤기에 남자의 사랑 따위는 믿을 게 못된다는 신념을 늘 지키며 계획대로만 움직였는데.주림도 그 계획에 놀아났고, 석지환도 그랬고, 공천하마저 그랬다.언제나 은채가 연기를 하면 다른 사람은 깜빡 속아 그녀의 손에 놀아났는데, 오늘날 그 배역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기억을 되짚던 은채는 갑자기 도준을 바라봤다.그러다가 반쯤 미치기라도 한 듯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민도준, 어머니 심장을 정말 신경 쓰는 거 맞아?”“...”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생각하는 만큼 신경 쓰는 건 아니야.”그 대답에 하윤이 오히려 놀란 듯 도준을 바라봤다.사실 하윤도 은채와 똑 같은 생각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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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공은채의 처참한 최후

놀란 듯 허둥대는 은채의 얼굴에서 하윤은 본인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만약 도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하윤도 은채처럼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을 거다.그리고 그 모든 근원은 공은채고.주사기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하지 않은 탓에 은채는 극도로 불안했다.그러다가 주삿바늘이 링거 호스에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자 결국은 하윤에게 협상이라도 제안하는 듯 말을 꺼냈다.“혹시 네 아빠에 관한 일 알고 싶지 않아? 네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냐고!”하윤의 순은 그 말에 멈칫했다. 하지만 남자의 커다란 손이 하윤의 손을 감싼 채 호스에 바늘을 찔러 넣더니 엄지로 주사기를 꾹 눌렀다.그 순간 은채는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그건 아파서 나온 비명이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나온 비명이었다.“이거 뭐야? 나한테 뭘 논 거야?”“이제 곧 알게 될 거야.”도준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하윤의 어깨를 감쌌다.“이제 집에 가자.”이윽고 은채의 추궁을 무시한 채 하윤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문이 닫히기 1초 전, 병실에서 은채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난 오늘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는 걸로 끝났지만, 민도준 당신은 나보다 더해! 반드시 나보다 몇 백배는 더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두고 봐!”너무 악랄한 저주에 하윤은 무의식적으로 도준을 흘긋거렸지만, 오히려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었다.“왜? 저 말이 진짜 이뤄지기라도 바라는 거야?”그 말에 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도준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정작 하윤의 손을 놓친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느긋하게 하윤을 뒤따랐다.차 안에 도착한 하윤은 운전석에 앉은 도준을 보며 물었다.“아까 그 병안에 있는 게 대체 무슨 약이에요?”“좋은 약.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 아, 식물인간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의식은 또렷할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러니까 공은채가 정신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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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애초에 나를 왜 받아줬어요?

알록달록한 불빛과 쌩쌩 오가는 차 덕에, 해원의 밤은 조금도 외롭지 않다. 집집마다 켠 등불도 번화한 도시에 아름다움을 선사한다.하지만 그 집안에 있는 사람이 울고 있는지 기뻐하는지 관심 갖는 이는 아무도 없다.골든 빌딩 주차장에 도착한 차를 보자 하윤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나 집 못 가게 하는 거예요?”도준은 그런 하윤을 돌아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얼굴에 손이 닿기도 전에 하윤은 피해버렸다.이에 도준은 손을 거두고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냈다.“오늘 나한테 물어볼 말이 많을 것 같아서. 다 물어보면 데려다 줄 거야.”그 말에 하윤은 침묵했다.공은채의 일 때문에 확실히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니까.하윤은 도준에게 피치못할 사정으로 저를 받아준 건지, 진심으로 사랑해서 받아준 건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으니.고은지가 말했다시피 도준 같은 남자는 상황에 순응해서 여자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랑이나 다름없다.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도준이 놓칠 리 없으니까.솔직히 처음에는 도준이 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은채의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하윤은 자기가 한 번도 도준을 제대로 안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생각해보니 본인 역시 도준에게는 그저 바둑알에 불과했다.민시영이 저를 꼬드기다 실패해 오히려 도준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심지어 공은채가 하윤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할 때부터 모든 게 도준의 계획대로 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도준은 은채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하윤이 고통스러워하고, 바둑판에서 아득바득 애쓰며 원맨쇼를 하고 있는 모습을 빤히 비켜봤으니까.‘만약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면 그때 그 시험 훈련은 뭐지?’‘내가 저 때문에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얼마나 저를 떠날 수 없었는지 분명 알고 있었으면서. 바보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슬퍼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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