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집 앞 작은 화단에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이제는 온통 잡초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하윤의 어머니 양현숙이 정성껏 가꿨던 꽃들마저 모두 메말라 누렇게 변해 있었고 가지 위에 고작 누런 이파리 몇 개밖에 달려있지 않았다.하윤은 굳게 채워진 철문을 보면서 아쉬운 듯 밀었다.그때, 옆으로 손 하나가 쑥 나와 문을 열어주자, 하윤은 몸을 돌려 의아한 듯 도준을 바라봤다.이 집은 사실 오래 전에 경매로 팔렸다.‘공태준이 분명 본인이 사들였다고 했는데, 왜 도준 씨가 열쇠를 갖고 있지?’‘아, 하긴, 공씨 가문이 무너졌으니 도준 씨 마음대로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우리 가족을 장악했던 게 공씨 가문이었지만 결국은 모두 도준 씨 손에 들어갔던 것처럼.’철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하윤은 옛날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도어락에서 삐리릭,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문이 열렸다.하윤의 집은 민씨 저택이나 공씨 저택처럼 호화롭거나 널찍하지 않다. 그러나 2층으로 된 단독 빌라에 생활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특히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세 오누이가 받은 상장만 해도 진열대를 꽉 채웠다.이성호가 받았던 국제 트로피는 세 오누이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트로피들 때문에 모두 구석으로 밀려났다.심지어 넘쳐나는 옷가지들은 아래층에 궤짝을 만들어 넣었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레이스 식탁보가 펼쳐져 있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주위를 빙 둘러보던 하윤은 수납식 계단을 올라 제 방으로 가 문을 열었다.그 순간 마치 시공간의 문을 열기라도 한 듯 오래된 기억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조용한 방 안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언니, 나 그 치마 한 번만 입어 볼 게. 절대 더럽히지 않을게, 약속해.’‘윤이야, 오빠가 잘못했어. 다음 번에 닭강정 사줄게, 그러니까 화 풀어.’‘우리 딸, 내려와서 밥 먹어야지.’‘흥, 피아노는 열심히 치지 않더니 밥 먹으라는 소리에는 바로 반응하네.’하윤은 문득 고개
Last Updated : 2024-04-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