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151 - Chapter 1160

1602 Chapters

제1151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요

멈칫한 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뜩 도준이 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인지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잠이 안 와요. 혹시 나 때문에 깼어요? 방해되니 전 객실에서 잘게요.”말을 마친 하윤이 막 일어서려고 할 때, 도준이 갑자기 팔을 뻗어 하윤을 제 품에 끌어안더니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이미 깼는데, 늦었어.”하윤은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그러자 곧장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왜? 내일 어머니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레어 잠이 안 와?”조롱 섞인 한마디가 하윤은 왠지 불편했다.“지금 제가 유치하다는 거예요?”도준은 하윤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려 장난치듯 말했다.“그럴 리가. 나도 내일 장모님 만날 생각에 흥분돼. 만약 나 마음에 안 들어 곤란하게 하면 어떡해?”도준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게 무색하게도 이 말에 하윤은 끝내 웃음이 터졌다.하지만 그 웃음도 곧장 거두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감히 그러지는 못할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도준의 눈에 짜증이 드리우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사실을 말한 거잖아요. 우리 같은 일반인한테 도준 씨는 높은 곳에... 아!”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준은 하윤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동작에 하윤은 순간 부끄러워졌다.“당장 내려줘요.”한참 동안 눈을 뜨고 있어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터라, 도준의 입고리가 미세하게 말려 올라간 것이 보였다.“이제 자기가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지? 앞으로 내 머리 꼭대기에 있어.”하윤은 그대로 멈춰 도준을 위에서부터 쭉 훑어봤다.사실 도준이 요즘 저에게 맞춰주고 참아주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한 건 아니다. 솔직히 순종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약 다른 모순이었다면 진작 도준에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죽은 건 아버지다.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며 딸 행사라면 꼭 참석하던 아버지.기억을 떠올리자 또다시 중력감이 가슴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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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2화 가족과의 재회

공항 게이트에 도착한 하윤은 가족을 놓칠세라 발끝을 쳐들고 목 빠져라 안쪽을 쳐다봤다.그러던 그때, 겨우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시선 속 여인은 열대여섯 살 돼 보이는 여자애의 손을 잡고 있었고, 동행한 젊은 남자는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환한 미소를 띤 채 걸어오고 있었다. 기댈 수 있는 목발조차 없이.그 순간 하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언니!”시영이 하윤을 보자마자 양현숙의 손을 뿌리치고 반갑게 달려왔다.제 품에 달려드는 동생을 안으며 하윤은 뒤로 두 발짝 밀려났지만 여전히 붉은 눈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너 그러다 언니 날려버리겠다?”“헤헤, 보고 싶어서 그러지.”“윤아.”그 뒤로 이승우와 양현숙이 곧장 따라왔다.방금 전 오빠가 정상적으로 걷는 걸 봤지만, 하윤은 여전히 걱정이 됐는지 승우를 잡은 채 이리저리 살폈다.승우는 그런 하윤에게 맞춰주기라도 하듯 빙글 돌면서 농담조로 말했다.“어때? 막 뛰기라도 해줄까?”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물을 글성거리며 웅얼댔다.“응, 뛰어봐. 지금 당장.”승우는 피식 웃으며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빠 체면 좀 지켜주라. 뛰는 건 돌아가서 보여줄게.”그때 그의 시선 속에 무시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외모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마저 사람을 압도했다.승우는 먼저 남자에게 걸어갔다.“해외에 있을 때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고마워요.”도준을 꺼리고 심지어 저와 도준이 만나는 것도 반대하던 오빠가 이토록 친근하게 굴자 하윤은 어리둥절했다.그때 도준이 나른한 눈빛으로 승우를 훑어봤다. 분명 아무 감정 없는 눈빛이었지만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승우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도준의 옆에 있으니 확연히 차이 났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도준을 볼 때 느끼는 압박감은 느끼진 않은 듯 부드럽지만 굳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도준은 싱긋 웃었다.“아, 형님이시죠?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이윽고 하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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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3화 호칭 변화

차 안.시영은 인형을 안고 하윤과 함께 뒤에 앉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대고, 양현숙은 지난번 ‘도망’ 사건을 경험한 뒤 여전히 도준을 대하기 조심스러워하는 탓에 세 사람 모두 뒷좌석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그 덕에 조수석에 앉게 된 승우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풀었다.“윤이한테서 들었는데 우리 집 민 사장님이 준비해 주셨다고 하던데. 어머니가 엄청 감사해하셨어요.”그 말에 잔뜩 긴장한 채 뒤에 앉아 있던 양현숙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우리 집은 가족의 추억이 배어 있어 다시 되찾을 수 있어 윤이 아비도 하늘에서 기뻐할 거예요.”이성호의 얘기에 분위기는 순간 무거워졌다.시영의 옆에서 인형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하윤은의 손은 순간 멈칫했다. 애써 슬픔을 숨기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왠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웠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이 도준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분위기가 약간 얼어붙었을 때, 도준은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보며 갑자기 싱긋 웃었다.“별말씀을요, 어머님.”말이 떨어지자 분위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리고 곧이어 폐부가 찢기는 듯한 하윤의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콜록, 콜록...”양현숙도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다. 얼굴이 새빨개져 대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그제야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어, 네, 어...”조수석에 앉은 승우도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윤도 한참이 지나서야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백미러로 유일하게 여유로운 도준을 흘끗 봤다. 할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이어진 여정에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 하윤은 짐을 나르는 틈에 도준에게 말을 걸었다.“왜 우리 엄마한테 어머님이라고 해요?”하윤을 도와 짐을 나르던 도준이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내 마누라 어머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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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4화 내 심기 거스르지 마

양현숙은 오랜만에 보는 딸과 집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그도 그럴 게, 딸과 결혼한 상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민도준이기 때문이다. 공씨 가문에 당한 경험이 없으면 모를까, 이미 호되게 당한 터라 양현숙은 재벌가라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도준은 공씨 가문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니.만약 억지로 하윤을 남으라고 한다면 오히려 하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겁부터 덜컥 났다.하지만 도준과 돌아갈 마음이 없던 하윤은 도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양현숙의 팔짱을 꼈다.“엄마,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 오늘 집에 묵을래요.”그러자 양현숙은 도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럼 오늘 저녁만 여기서 자고 내일 다시 갈래?”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은 눈동자로 하윤을 빤히 바라봤다.전에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도 집을 나가겠다고 하던 사람인데, 이제 가족까지 돌아왔으니 평생 이곳에 붙어 있으려 할 게 뻔했다.불안할 정도로 오랜 침묵이 흐르던 그때, 도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서 지내.”양현숙의 얼굴에 이내 웃음꽃이 폈다.“그럼 민 사장님도 돌아가서 일찍 쉬어요.”하윤도 오늘은 겨우 끝났다고 속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때, 도준이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여보, 나 바래다줘.”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이곳에 머물겠다고 한 탓에 마침 하윤은 솔직히 도준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 동안 핑계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때 양현숙이 하윤을 앞으로 밀었다.“얼른 가봐. 오늘 민 사장님 도움 많이 받았으니 네가 가서 바래다줘.”양현숙은 나이가 든 만큼 사상도 비교적 틀에 박혀 있어, 하윤이 이미 결혼했으니 당연히 부부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물론 전에 도준에 관한 무서운 소문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오늘 만나보고 나니 조금은 달랐다. 심지어 집도 찾아주고 오늘 돌아오는데 도움도 줬으니 고맙기까지 했다.미처 마음의 준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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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5화 도준의 외로움

한참 동안 갈등한 끝에 하윤은 끝내 조수석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이제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도준이 뒷좌석으로 끌어가는 바람에 하윤은 순간 경계했다.“뭐 하려고 그래요?”그때 도준이 곧바로 뒷좌석에 앉더니 상냥하게 웃었다.“내가 앞에 앉았다가 그대로 엑셀을 밟고 자기 보쌈해 갈면 어떡하려고?”‘그런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잠시,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지금의 상황도 안전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했고, 고작 주택가 창문을 뚫고 나오는 따스한 조명만이 주위를 비춰주고 있었다.하지만 마침 차안을 비친 빛줄기마저 구석진 뒷좌석은 비추지 못했다.어둠 속, 남자가 점점 저를 덮쳐오는 바람에 하윤은 두 팔로 시트를 지탱한 채 점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좁은 차 안인지라 곧바로 문에 막혀버렸다.“너... 너무 늦었어요...”“응.”그때 도준은 조금만 더 가면 입술이 닿을 거리에 멈춰선 채 제 코끝으로 하윤의 코끝을 콕 눌렀다. 서로의 숨결이 뒤섞여 긴장감이 배로 되었을 때, 도준의 낮게 깔린 음성이 귀를 간지럽혔다.“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어떻게 해야 나 빨리 쫓을 수 있을지.”눈을 든 순간, 저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도준의 뜨거운 시선과 맞닿자 하윤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이대로 시간을 끌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윤은 잘 알고 있었다.결국 마지못해 깊은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눈을 꼭 감고 도준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포갰다.말캉하고도 살짝 차가운 입술은 마치 푸딩처럼 도준의 입술을 간지럽혔다가 이내 떨어졌다. 하지만 하윤이 멀어지려고 할 때, 도준은 하윤의 뒷목을 꽉 잡더니 제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도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버린 하윤을 보며 피식 웃었다.“지금 나랑 장난해?”말하는 와중에 꼭 붙은 입술이 자꾸만 스치는 바람에 간질거렸다.심지어 당장이라도 도준과 맞닿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간지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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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6화 가족과 보내는 밤

어느덧 어두운 밤에 녹아든 도준은 빛이 새어 나오는 집과 집 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들어가지 않는 여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하더니 기회가 주어졌는데 또 뭘 망설이는 거지?’그러던 그때, 문이 움직이더니 바닥을 비추고 있던 긴 불빛이 점점 좁아지더니 이내 어둠이 드리웠다...그러다가 문이 완전히 닫히려는 찰나, 다시 활짝 열리더니 집안의 불빛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이윽고 하윤이 눈 깜짝할 새에 도준의 앞에 다가와 그에게 외투를 건네주었다.“외투 도준 씨 거잖아요. 입어요.”그 말을 끝으로 하윤은 다시 쪼르르 집안으로 달려가 문을 닫았다.도준은 하윤의 온기가 남아 있는 외투를 손에 쥔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그 시각.하윤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문에 기댄 채 마음 약해진 자신을 탓했다.‘비바람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한테 내 동정 따위가 뭐 필요하다고.’그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자기 냄새 다 뱄어. 더 보고 싶어지라고 일부러 나 엿먹이는 거야?]문자를 본 순간 하윤은 더 짜증이 치밀었다.마음을 끊어내지 못하는 저 자신이 미웠지만 혼자 밖에 서있던 도준의 모습이 자꾸만 잊히지 않았다....늦은 밤.어떻게 잘지가 문제가 되고 말았다. 하윤은 어머니와 함께 자고 싶었지만 시영은 언니와 함께 자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은 왼쪽으로부터 양현숙, 하윤, 시영 이런 순서로 한 침대에 눕게 되었다.비록 좁았지만 마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어 하윤은 오히려 든든했다.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 할말도 많아 세 모녀가 함께 누운 방에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그때 마침 물 마시러 밖을 나왔던 승우가 방 안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셋이서 지금 나 혼자 왕따 시키는 거야?”혼자 외로워하는 오빠를 보자 하윤은 으쓱한 듯 웃어 보였다.“그러니까 누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래? 아까 어필했으면 다 같이 잤을 텐데.”옆에 있던 시영이 끼어들었다.“맞아. 침대는 자리가 없으니까 정 우리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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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7화 알고 있었어?

하윤의 울음은 한참 동안 지속됐다. 마치 그동안 받은 서러움을 한꺼번에 털어내기라도 하이.승우는 말없이 옆에서 티슈를 건네주었다가 하윤이 눈물을 닦은 티슈를 조용히 가져갔다.그러다 어느새 쓰레기통을 꽉 메운 티슈를 보자, 승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이제 늦었는데 우리 내일 다시 울까?”흐느끼고 있던 하윤은 그 말에 순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우는 것도 끊었다가 다시 울 수 있어? 오빠, 분위기 너무 깨는 거 아니야?”양현숙도 승우가 못마땅하다는 듯 끼어들었다.“저리가. 어쩜 애 달랠 줄도 몰라? 위로해 주면 되지 내일 울라는 건 또 뭔데?”집안 서열에서 항상 밀려나던 게 습관 됐는지 승우는 곧바로 사과했다.“네네, 다 제 잘못입니다.”하지만 승우의 말 덕분에 하윤의 울음도 쏙 들어갔다.승우는 붉게 물든 하윤의 눈시울을 보며 입을 열었다.“얼음찜질이라도 하지 않을래? 안 그러면 내일 퉁퉁 부을 걸.”내일 또 연습이 있다는 생각에 하윤은 양현숙더러 먼저 자라고 일러두고는 곧장 승우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쉽게도 냉장고에는 얼음이 없었지만 그나마 차가운 음료수가 있었다. 그마저도 승우는 하윤의 손이 시리기라도 할까 봐 대신 손에 쥐고 도와주었다.하윤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눈을 꼭 감고 승우의 보살핌을 마음껏 누렸다.스탠드 등의 따뜻한 조명 아래, 승우는 눈을 내리깐 채 부드러운 눈빛으로 하윤을 바라봤다.“내일 연습하지? 오빠가 데려다줄게.”하윤은 어느새 졸음이 쏟아졌는지 웅얼거리며 답했다.“아니야, 도준 씨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도준의 얘기가 나오자 승우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민도준이 너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던데.”“응.”만약 도준이 하윤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윤은 벌써 몇백 번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하윤의 망설임을 눈치챈 승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풀이 죽었는데? 전에는 민도준이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더니.”확실히 그랬을 때도 있었다. 물론 하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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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8화 비극뿐인 인생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승우의 목소리에 하윤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알았냐니? 오빠도 알고 있었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도준 씨 만난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도준 씨가 아빠 협박해서 죽게 만든 걸 알고 있었던 거야? 말 좀 해봐!”승우는 흥분한 하윤을 곧장 달랬다.“윤아, 우선 진정해. 나는...”이윽고 뭔가 망설이다가 끝내 다시 입을 열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민도준 만났다는 거 짐작은 했어...”방금까지 흥분해 있던 하윤은 순간 멍해졌다.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승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민도준에 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이미 만나고 있었잖아. 내가 말하면 네가 충동적으로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까 봐 말 안 했어.”하긴, 하윤이 처음 승우에게 도준에 대해 물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단단히 얽혀 있었다.그 기억을 떠올리자 하윤은 순간 목이 메었다.“그래서 공은채와 도준 씨의 일을 나한테 말한 거야?”“응.”승우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위험한 사람이니 피하라고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까지 했을 줄 누가 알았겠어.”저와 도준이 결혼할 거라고 통보하듯 말했던 장면이 떠오르자 하윤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이제야 그날 뭔가 말하려는 듯 계속 망설이던 오빠의 모습이 조금 이해가 됐다.도준이 은채의 일을 알게 되면 두 사람 사이가 곤란해질 거라던 오빠의 말이 곧이어 뇌리를 스쳤다.그 곤란할 거라는 상대는 하윤뿐만 아니라 도준도 해당하였던 거였다.‘그때부터 우리 결말은 이미 정해졌던 거였어.’흥분해서 잡았던 승우의 손을 놓으며 하윤은 잔뜩 상처받은 듯 중얼거렸다.“왜?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어?”“민도준이 너랑 결혼까지 했으니 당연히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고, 네가 억지로 떠나려 하면 다쳤을 거야. 윤아, 오빠는 네가 항상 무탈했으면 좋겠어.”그날과 거의 똑같은 말이었지만 지금 들으니 심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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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숨겨진 비밀

하윤의 말을 들은 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위로했다.“다 지난 일이야. 너도 민도준과 결혼했으니 지난 일은 잊어.”하지만 하윤은 이 일을 끝까지 파고들기라도 하려는 듯 끊임없이 질문했다.“오빠는 도준 씨가 아빠 만났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혹시 아빠가 말했어? 아빠가 다른 말은 안 남겼어?”고요한 자정, 하윤의 거친 숨결은 유난히 또렷햇다.그때 몇 초간 침묵하던 승우가 고개를 저었다.“없어. 그냥 공은채한테 미안하고 우리한테 미안하다고만 하고 뛰어내렸어.”‘공은채한테 미안하다고...’‘하긴, 도준 씨한테서 공은채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모든 게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셨겠지. 모든 게 그날 술 마시고 실수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셨겠지. 본인은 그저 희생양이었다는 것도 모르고.’역시나 아무런 반전 없는 사실에 하윤은 어떤 기분인지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도준이 어떤 사람인 줄 안 이상, 다른 사람한테서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걸 들어도 믿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민시영도, 민상철도 모두 도준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었다.하윤은 지금껏 본인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윤의 존재는 도준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도준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맞았다.몸도 마음도 지친 하윤은 더 이상 얘기할 마음도 사라졌는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그만 방에 돌아갈게. 오빠도 일찍 자.”말을 마친 하윤은 이내 뒤돌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스탠드의 불빛 아래에서 승우는 하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봤다.새벽이 되었을 때 승우는 안방대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이윽고 방 문을 잠그고 굳게 닫혀 있던 제 옷장 문을 열었다.오랫동안 열지 않은 탓에 문을 여는 순간 곰팡내가 얼굴을 덮쳐왔다. 승우는 쌓여 있던 옷을 헤집어 내고 느슨한 판자를 열어 안에 놓여 있던 상자 하나를 꺼냈다.상자를 열자 아가자기한 물건들이 안에 놓여 있었다. 잘 포장되어 있는 물건들은 한눈에 봐도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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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0화 지하늘의 꿍꿍이

그 시각, 옆방.지하늘은 가을을 억지로 끌고 와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했다.“가을아, 유 대표님한테 술 한잔 따라 봐.”“나 내일 스케줄 있어서 많이 마시면 안 돼요.”귀찮은 듯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유민철은 미간을 팍 구겼다.“가을 씨가 바쁘다면 오늘 그만둡시다.”“어? 잠깐만요. 그만두다니요. 저희 가을이 좀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래요. 조금 있으면 바로 괜찮아질 거예요. 우선 제 잔부터 받으세요.”말 몇 마디로 분위기를 푼 하늘은 곧바로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가을을 나무랐다.“스케줄은 무슨! 너 요즘 계약 줄줄이 파기되고 공연도 다 취소됐어! 회사에서도 너 이제 포기했는데 아직도 살 궁리를 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나중에 광고 위약금 나오면 어떡할 건데?”“말해두는데, 유 대표님은 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분이셔. 이번에 여우 주연상 탄 그 배우도 전에 스캔들 크게 터졌는데 모두 유 대표님이 손써서 처리해 준 거라고. 유 대표님이 나서면 네 스캔들도 바로 사그라들 거야. 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포기할 거야?”그 말에 가을은 테이블 아래에 드리운 손을 꽉 그러쥐었다. 확실히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을은 많은 노력을 했다. 만약 실력이 부족해서 연예계에서 퇴출 당하면 인정할 테지만, 누명을 쓰고 앞날을 망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광고 위약금까지 한꺼번에 떠안아야 하니 더욱 안될 일이었다...결국 가을은 현실에 타협한 듯 입을 열었다.“술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어요. 그런데 잠자리는 절대 안 돼요!”그 말에 하늘은 눈알을 굴리더니 곧바로 대답했다.“누가 너더러 잠자리를 가지랬어? 유 대표님 그런 분 아니야. 아까 네가 술 안 마시겠다고 하니까 바로 가겠다고 하시는 거 못 봤어?”하긴, 전에 만났던 주승범에 비하면 유민철의 평판은 줄곧 좋았다. 물론 바람기가 있다는 소문은 따라다녔지만 누구를 강요했다는 소문은 한 번도 난 적이 없다.하지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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