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171 - Chapter 1180

1602 Chapters

제1171화 도준의 기다림

웃음꽃이 피는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 오직 하윤만은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분명 지난 일주일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틀만 지나면 도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시간이 유독 늦게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연습을 할 때마저 하윤은 계속 시계를 보며 겨우 오전을 버텼다.그 때문에 수연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하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선배, 혹시 오늘 저녁 데이트라도 해요? 왜 그렇게 시계에서 눈을 못 떼요?”“그런 거 아니야. 그냥 배가 고파서 그랬어.”하윤은 대충 얼버무렸다.하지만 수연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헤헤, 남편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아니야.”“못 믿겠는데요?”수연인 아니라 솔직히 하윤 본인도 믿지 못했다.도준이 보고 싶은 게 맞았으니까...이런 느낌이 들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정말 보고 싶었다.분명 수천수백 가지 이유를 대며 이 기회에 거리를 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도준의 품이 그립고 장난기 섞인 그의 목소리가 그리운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하루를 버틴 하윤은 집에 돌아갈 때는 아예 앞에서 걷고 있는 승우와 부딪힐뻔했다.승우는 얼른 하윤을 부축했다.“괜찮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윤은 바이올린을 등에 메고 있는 승우를 보더니 놀란 듯 물었다.“오빠가 어떻게... 어디 가는 거야?”승우는 싱긋 웃었다.“나 바이올린 선생님 자리 구했어. 내일부터 출근할 거야.”하윤을 한참 동안 입을 뻐끔거렸지만 축하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분명 전도유망한 천대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이제는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되었으니.승우는 하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됐어, 여기 서 있지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어머니가 무슨 음식 만들었는지 보자.”양현숙은 승우와 하윤이 즐겨 먹는 반찬 몇을 준비하고 시영이 좋아하는 작은 케익도 만들었다.그중 한 케익이 유난히 큰 탓에 시영과 하윤은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렸지만, 시영은 하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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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2화 비련의 주인공

끼익-오래된 문은 마찰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벌써 겨울에 들어선 밤공기가 순간 덮쳐오는 바람에, 하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하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엔진 작동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놀란 하윤이 곧장 차가 있던 쪽으로 달려 나갔지만 대문을 연 순간 어느새 멀리 가버린 차의 후미등만 보였다.하윤이 체념하지 않고 뒤를 따라가 봤지만 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하윤은 멍한 표정으로 차가 떠나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 왜 내가 나오자마자 떠나버리지?’‘설마 진짜 도준 씨였나?’‘계속 우리 집 아래에서 뭐 했던 거지?’‘나한테는 차갑게 대하더니 왜 또 여기엔 나타났지?’하윤의 마음은 전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이에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도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움츠러들었다.‘물어봐서 뭐 하게? 아빠의 죽음을 놓지 못하면서. 아빠를 죽인 사위를 엄마한테 받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됐어...’또 스스로를 설득한 하윤은 끝내 핸드폰을 다시 옷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었다.그 시각, 남자는 멀지 않은 골목의 나무 그늘 뒤에 숨어 있었다.만약 방금 전 하윤이 몇 발자국만 더 쫓았다면 그녀 마음을 어지럽혔던 차를 볼 수 있었을 거다.하윤이 한참 동안 망설이는 모습과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도준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심지어 하윤이 전화를 걸려고 망설일 때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어두운 액정에는 끝까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밤이 깊어지자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오직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는 바스락 소리만 들렸다.한편 승우는 2층 침실에서 두 남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각도에서 마침 두 남녀가 나무를 사이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분명 지척에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인연이 엇갈린 비련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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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3화 장모님의 도움

양현숙의 도움으로 하윤은 결국 파격적인 변신을 하게 되었다. 몸에 딱 붙는 파란색 니트 원피스는 복잡한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마감이 잘 되어 하윤의 콜라병 몸매를 더욱 잘 부각했고, 그 위에 걸친 흰색 코트는 안에 입은 원피스와 무척 잘 어울렸다. 게다가 반짝이는 진주 귀걸이는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유난히 빛나 눈에 띄었다.양현숙은 그런 하윤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큰딸 진짜 이쁘네.”그 말에 시영이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엄마는 왜 언니만 칭찬해요? 나는?”그러자 양현숙은 얼른 손을 뻗어 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시영은 귀엽지. 너도 크면 언니처럼 예뻐질 거야.”아들딸을 돌아가며 한바탕 칭찬한 양현숙은 양쪽에 두 딸 손을 잡고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그들이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도준은 아직 오지 않았다.오히려 식당 매니저가 매우 열정적으로 메뉴를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이 몇 가지가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예요. 특히 랍스터 차우더 수프와 생선찜이 제일 잘 나가요... 그리고 디저트도 이 몇 가지가 잘 나가고요. 지금 주방에서 준비 중이니 이따가 올려드리겠습니다.”“사람이 다 모이면 주문할게요. 오기 전에 주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서요.”매니저는 바로 거절하는 양현숙을 향해 싱긋 웃었다.“네, 그럼 시간 나실 때 저 불러주세요. 먼저 접시 세팅 도와드릴게요.”시간이 일분일초 흘러 거의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도준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심지어 시영은 아예 침을 흘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디저트를 바라봤다.“엄마, 형부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양현숙은 음식을 먼저 먹으려는 시영의 손을 탁 내리치며 막았다.“배고파 죽을 것 같긴. 내가 볼 때는 그냥 입이 심심한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11시가 되자 매니저는 다시 다가와 질문했다.“지금 바로 음식 내올까요?”하윤은 텅 빈 핸드폰 액정을 보더니 이내 대답했다.“올려주세요.”이윽고 저를 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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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4화 어젯밤 그 사람 도준 씨 맞아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던 방이 순식간에 조용해지자 하윤은 다 식어버린 음식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바쁘면...”“안 바빠.”말하려던 찰나 돌아온 반박에 하윤은 무릎 위에 놓은 손을 꽉 그러쥐었다.“저 따로...”“오늘 오후 휴식이라 아무 일도 없잖아.”그럴싸한 변명조차 소용없어지자 하윤은 왠지 화가 치밀었다.‘저는 며칠 동안 아무 말 없이 사라졌으면서, 난 왜 변명도 못 대게 하는 건데?’결국 화를 참지 못한 하윤이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왜 안 바빠요? 안 바쁘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졌는데요?”말일 떨어지기 바쁘게 옆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남자는 손을 뻗어 하윤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려 놓았다.“지금 나 원망하는 거야?”이윽고 미련 가득한 듯 엄지손가락으로 하윤의 주먹만 한 얼굴을 문지르며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아니면 보고 싶었어?”도준의 장난기 섞인 말에 하윤은 제 말이 자기를 보러 오지 않은 도준을 탓하는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 순간 하윤은 도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원망하는 거 아니에요. 보고 싶어 한 것도 아니고. 도준 씨가 뭘 하든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하윤은 분명 진지하게 말했지만 분노가 섞인 두 눈은 아무리 봐도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그건 도준 앞에서 습관적으로 교태를 부릴 때마다 나오는 행동이라 하윤도 의식하지 못했다.도준은 그런 하윤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스르르 풀었다.“가고 싶으면 가도 돼.”가벼운 말투에 하윤은 순간 어리둥절해 고개를 돌렸다. 도준은 의자에 기댄 채 손으로 라이터를 돌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도준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만약 어제저녁 집 아래에서 사라지던 도준의 차를 보지 못했다면, 하윤은 아마 도준이 더 이상 저와 관계를 이어 나가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하지만 어제 하필이면 그런 경험을 한 탓에 하윤은 오히려 도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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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5화 보고 싶어서

또다시 쾌락에 홀려버릴까 봐 하윤은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뭐 하는 거예요?”도준은 저에게 밀려 문에 바싹 붙은 여인을 빤히 바라봤다. 발그스름해진 양 볼과, 놀란 듯 커진 두 눈, 비단결 같은 머리칼은 어느덧 헝클어져 허둥대는 주인처럼 여기저기 삐죽 튀어나왔다.손을 들어 하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자 자취를 감추고 있던 진주 귀걸이가 흔들거리며 제 존재를 드러냈다. 마치 주인의 곤란함을 눈치채지 못한 듯이.“일부러 꾸민 거야?”그 말에 하윤은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홱 돌렸다.“엄마가 꾸미라고 한 거예요.”“아.”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도준은 나른하게 말했다.“그럼 나중에 장모님하테 고맙다고 전해줘.”도준은 아까와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마치 지난 일주일간 거리를 둔 적 없다는 듯 또다시 장난기 섞인 말을 해대며 하윤의 반응을 살폈다.여유 넘치는 도준의 태도에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는 하윤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윤은 여전히 격렬하게 몸부림쳤다.“이거 놔요.”도준이 너무 꽉 조여 안지 않은 탓에 하윤은 도준의 품에서 마구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하윤이 화를 내기 전에 도준은 그녀를 제 품에 꼭 안으며 중얼거렸다.“조금만 더 안고 있다 놓아줄게.”꼭 붙은 몸 때문에 도준의 욕망이 확연히 느껴지자 하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그렇게 한창 끌어안고 있자 달아오르는 열기가 점점 사방으로 퍼졌고 하윤을 안고 있는 팔에는 점점 힘이 실렸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윤은 손을 그러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젯밤, 왜 왔어요?”“보고 싶어서.”별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말투에서 진지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다.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보고 싶다면서 내가 나오자마자 도망을 쳐?’순간 짜증이 밀려왔다.“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요.”도준은 피식 웃으며 도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왜 그렇게 성깔을 부려? 사실을 말해도 화내고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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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6화 그 사람이 절대 도준 씨가 돼서는 안 돼요

하윤의 말 한마디는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완전히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심지어 제 어머니를 처음 볼 때 느꼈던 허황함과 평화로움도 함께 깨부쉈다.‘하긴 도준 씨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리가 없지.’때문에 이 순간 하윤을 놓아주겠다고 하는 것도 그저 도망치겠다는 하윤을 맞춰주는 것에 불과하다.‘이왕 놓아주겠다고 하니 차라리 길게 끌기보다 한번 아프고 마는 게 통쾌할지도 몰라...’하윤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저는 아빠를 협박해 죽게 만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도준 씨 말대로 도준 씨가 하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 그런 짓 하겠죠. 아빠가 죽을 목숨이었다는 게 어쩜 맞을지도요. 하지만 그 사람이 절대 도준 씨가 돼서는 안 돼요.”하윤은 아까보다 많이 차분해졌다. 때문에 지금 하는 말이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라 심사숙고 후 뱉은 말이라는 걸 증명했다.솔직히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하윤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어 계속 부인했었다. 그때는 확실히 충격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하윤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아버지를 마지막에 죽음으로 내몬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도준을 보는 하윤의 눈빛도 덤덤하고 평온했다.“만약 아직도 저한테 마음이 있다면 우리 이쯤에서 그만해요.”“...”도준은 혀끝으로 뺨을 꾹 밀며 분노를 참으려 했지만 눈에 드리운 포악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만하자고? 지금 나랑 그만하자고 한 건가?’‘그렇다면...’“여사님, 왜 문밖에 서 계십니까? 문 열어 드릴까요?”때마침 문밖에서 들려오는 매니저의 목소리에 하윤은 순간 뭔가를 눈치챘다.다급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더니, 문밖에서 얼마나 듣고 있었는지 양현숙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채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커다란 공포에 휩싸여 하윤은 한참 동안 입을 뻐끔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엄마...”양현숙은 하윤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그 말 진짜야? 민 서방이 네 아빠 그렇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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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7화 다 내 탓이야

검사 보고서를 가지러 간 승우는 누군가 이미 보고서를 가져갔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하윤은 아직 병실에서 어머니를 지키고 있으니 남은 사람은 도준밖에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복도 끝 창문 앞에 우뚝 서 있는 도준의 모습이 승우의 시선에 들어왔다.남자는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민 사장님.”승우가 먼저 소리 내 인사하자 도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하윤 씨는요?”“지금 어머니 곁에 지키고 있어요. 저는 보고서 가지러 왔고요.”그때 마침 도준의 손에 든 보고서를 본 승우가 눈빛으로 보고서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그건 제가 의사 선생님한테 건네줄게요.”하지만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니에요, 이따 의사를 병실로 부르면 그만이니까.”그제야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부탁드릴게요.”짧은 대화를 끝으로 뒤돌아 떠나려던 승우는 약 두 걸음 정도 걷고 내디뎠을 때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같이 병실 안 가 볼래요?”도준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 순간 병원에 오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던 하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이내 거절했다.“아니에요.”“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승우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의사도 있었다.“환자분 나이가 나이니만큼 뇌경색의 전조가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지며 부분적으로 막혀 혈전 용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네? 수술이요? 선생님, 수술 혹시 위험한 거 아니에요?”저 때문에 어머니가 이렇게 되자 하윤은 목소리마저 떨렸다.“이 수술은 위험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보호자의 간호가 관건이에요. 잘못했다간 뇌출혈과 마비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뇌출혈과 마비라니...’하윤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머니까지 잃을 수 없어...’승우는 하얗게 질린 하윤의 얼굴을 보자 얼른 앞에 막아서며 대신 대답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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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8화 이혼할 거예요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 환자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몇 시간 지나야 깨어날 수 있습니다.”하윤은 마침내 마음속의 큰 짐을 내려놓기라도 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괜찮으면 됐어, 괜찮으면 됐어...” 한편, 하윤이 얼굴을 가린 채 통곡하는 걸 보고 한 걸음 다가가던 도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다시 발길을 돌렸다....양현숙이 병실로 옮겨진 뒤, 하윤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몇 시간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두 눈이 빨갛게 부어 있는 하윤을 보자 승우는 곧장 식당에서 죽 한 그릇을 사 왔다. “윤아, 죽 좀 먹어. 이러다가 엄마가 깨어나기도 전에 네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아.”하윤은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았고 안달복달하며 말했다.“오빠, 엄마 왜 아직 안 께어나? 벌써 몇 시간이나 흘렀는데.”“의사가 방금 그러는데 조금 늦게 일어날 수 있대. 늦어도 6시간은 넘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넌 좀 쉬어. 이따가 엄마 깨어나시면 너 부를게.”“아니야. 나 여기서 엄마 지킬래!”하윤의 집요한 모습에 승우는 더 이상 말씨름을 하지 않고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그래, 같이 지키자. 엄마 반드시 깨어나실 거야.”양현숙은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천천히 깨어났다.양현숙을 계속 주시던 하윤은 그걸 바로 발견하고는 즉시 간호사를 찾으러 뛰쳐나갔다.“저기요, 간호사님! 저희 엄마 깼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에 도착한 의사는 정례적인 문의를 하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병상 옆에 서 있는 승우를 바라봤다.“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앞으로 잘 요양하세요. 퇴원은 회복 상태에 따라 결정할게요.”“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의료진이 나간 병실에는 ‘삐- 삐-‘하는 의료기구의 소리만 남았다.하윤은 구석에 서서 양현숙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엄마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마주할까 봐, 엄마가 원망할까 봐 두려워 벽에 기댄 채 손가락을 깨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때, 양현숙은 허약한 상태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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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9화 양현숙의 고집

“우리가...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내는 동안, 네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지만 늘 내 마음에서 가장 좋은 남편이었어. 투어를 돌 대면 항상 엽서에 닭살 돋는 시구를 적어 줬었거든.”양현숙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눈을 반짝이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왠지 그 미소는 슬프기 그지없었다.“네 아버지 같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거 상상하기 힘들지? 그런데 젊었을 때 네 아버지는 늘 그랬어...” “네 눈에는 듬직하고 좋은 아버지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우리 집 아래층에서 꽃을 들고 나에게 손을 흔드는 젊은 남자애로 보여.”분명 양현숙의 어조는 차분하고 따뜻했지만 하윤은 눈시울이 시큰거려,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그때 양현숙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엄마도 다 알아, 엄마가 슬퍼할까 봐 말하지 않은 거. 엄마는 너 원망 안 해. 하지만 내가 어제 정말 죽였다면, 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을 거야, 그러면 아마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았을 거야. 윤아, 말해줘. 네 아버지가 나를 평생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내가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돼.” 하윤은 눈이 붉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말씀드릴게요. 사실 이 모든 건 공은채 때문이에요.”이어 하윤은 일의 자초지종을 양현숙에게 알려주었다.아버지가 어떻게 은채에게 속았는지, 어떻게 함정에 빠져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모두 다 설명했다.남편이 식구가 모르는 곳에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를 들은 양현숙은 입을 가린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이윽고 가족을 데리고 떠나려던 남편이 도준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는지 이불 위에 엎드려 오열했다.“여보, 왜 이렇게 모질게 굴어?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렇게 갈 수 있어... 당신 없이 나 어떻게 살라고...”양현숙 감정이 점점 격해지자 하윤은 눈물을 참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아버지도 그런 선택을 급하게 내리셨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분명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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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0화 뛰어내릴 수 있으면 뛰어내려

양현숙의 경악과 실망 섞인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도준의 차를 빙 돌아 밖으로 걸어 나갔다.하윤의 배척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성과 감성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말로는 다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눈빛에는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하지만 지금, 그녀는 마음속에서부터 도준을 배척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존재마저 배척하고 있다.그걸 인지한 도준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차 문을 열고 긴 다리로 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가자 곧바로 하윤을 따라잡았다.“이 시간에 택시 안 잡혀. 타.”도준에게 붙잡힌 순간 하윤은 미친 듯이 그를 두들겨 팼다.“놔요, 건드리지 마요!”심지어 행인들마저 그 광경에 잇달아 눈빛을 보냈다.다만 사람을 압도하는 도준의 기세에 눌려 앞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한 여자아이가 용기 내어 다가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말했다.“저기 혹시 도움 필요해요? 이 사람 아세요?”한 사람이 입을 열자 군고구마를 파는 할아버지도 따라나섰다.“그래요, 당신 그 처자 알아요?”“이 사람 제 마누랍니다. 아는 거 당연한 거 아닌가요?”그 말에 할아버지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정의롭게 나섰다. “아내라 해도 상대방 의견을 무시한 채 강요하면 안 되죠. 언니, 경찰에 신고해 드릴까요?”“...”주변에 사람이 몰려들자 도준은 하윤을 옆구리에 둘러메고 차 안으로 던져버리고는 엑셀을 밟으며 곧장 그 자리를 떠났다.오후 내내 울어 눈이 팅팅 부은 하윤은 도준을 차갑게 쏘아봤다.“제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요? 내려줘요!”도준도 더 이상 인내심이 없어진 듯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뛰어내릴 수 있으면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면 내가 마침 쇠사슬로 묶어 집에 가둘 수 있게. 그 상태에서 어떻게 도망가는지 두고 보다고.”하윤은 순간 얼어붙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저를 가둬놓고 싶어요?”“내가 자기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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