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121 - Chapter 1130

1602 Chapters

제1121화 도망쳤어

늦은 밤, 경성.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하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준에 대한 걱정일 뿐이다.그렇게 한창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자 곧바로 정신이 들었다.당연히 도준이라고 생각했지만 발신자는 다름 아닌 석지환이었다.‘전에 기분 전환하러 간다고 하고는 감감무소식이더니, 이제 괜찮아졌나?’“여보세요? 진환 오빠. 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에요?”전화 건너편에서 거친 숨소리만 들려올 뿐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한창 심호흡을 하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윤아, 너 지금 경성에 있는 거 맞지? 잠깐 만날 수 있어?”“네? 지금요?”하윤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지금 너무 늦은데, 내일 만나면 안 돼요?”“내일 나 경성 떠나. 윤아, 나 너한테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부탁인데, 한 번만 여기 올 수 없을까?”늘 후배들에게 다정하고 예의 바르기만 하던 지환이었는데.‘뭔 일인데 이렇게 초조해하지? 설마 뭔 일이라도 났나?’“그래요. 주소 보내줘요. 지금 바로 갈게요.”지환은 곧장 한 주택가의 주소를 보내왔다. 골목길이 어찌나 구불구불한지 내비게이션을 켜고 한참을 찾아야 했다.“지환 오빠?”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안쪽에서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 맞아?”“네, 저예요.”하윤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지환은 문을 열었다.이런 신중함에 하윤은 왠지 조금 불안했다.제가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그는 지환을 보며 하윤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그 시각, 해원.도준은 의사로부터 이식 수술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이식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환자가 이송된 병원의 의료 기술이 우리 병원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수술 후 치료를 매우 잘하여 환자분도 곧 깨어날 겁니다.”‘곽준호도 애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제대로 치료해 줬나 보네.’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잘 지켜봐요.”“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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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2화 주림과의 만남

‘주림...’도준은 눈을 가늘게 접더니 곧장 전화번호를 눌렀다.그 시각, 경성.하윤이 묵고 있는 집안의 유선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안내음이 들릴 때까지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도 그럴 게, 집주인이 집에 없었으니까....먹구름이 가득 낀 밤하늘은 내일의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듯했다.어두운 밤, 아늑해야 할 별장 분위기는 어딘가 스산해 보였다.하윤은 몸을 오소소 떨며 지환을 바라봤다.“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윤아,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누군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문 앞에 깡마른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남자는 문틀을 짚고 빨개진 눈으로 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윤아...”“주림 선배?”하윤은 어리둥절했다.“선배 병원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이...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주림은 입을 뻐금거렸다. 그 모습은 수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과 괴로움이 섞여 있었고 무언가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가 끝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여기서 주림을 보자 하윤은 순간 오늘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지환을 바라봤다.“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네가 본 그대로야. 내가 주림과 주림과 할아버님을 모셔왔어.”하윤은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애써 버텼다.“혹시... 도준 씨가 마련해준 병원 의술이 안 좋아서...”“아니야.”지환은 하윤을 바라봤다. 하윤의 모습은 마치 공은채의 배신을 직면하기 싫어하던 자신 같았다.하지만 오래 아프기보다는 잠깐 아픈 게 낫다는 생각으로 지환은 말을 이었다.“윤아, 너 설마 주림이 지금껏 아무 병도 없었다는 거 몰랐어? 주림과 할아버님이 민도준의 병원에 갇혀 있었다는 거 몰랐냐고.”하윤은 무의식적으로 도준의 편에 서서 말했다.“아니에요. 그때 내가 살인범 누명을 써서 주리 선배와 할아버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도준 씨가 두 분을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 준 거예요. 보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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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3화 진짜 범인

그 말에 하윤은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주림의 팔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우리 아빠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빨리 말해봐요.”3년간의 세월이 흘러 주림의 눈에는 더 이상 성공에 대한 갈망이 없고 타버리고 남은 잿더미만 남은 듯 생기가 없었다.너무 오랫동안 말하지 않은 목소리마저 약간 갈라져 있었다.“교수님은... 공은채와 민도준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민도준의 이름을 듣는 순간 하윤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버리더니 무의식적으로 잡고 있던 주림의 팔을 놓고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도준 씨가 그럴 리 없어. 도준 씨는 우리 아빠 해친 범인이 아니야!”마지막에 이르자 하윤의 목소리는 귀청 째질 듯 날카로워졌다.지환은 무너져가는 하윤을 보더니 어깨를 토닥여주었다.“윤아, 우선 진정해. 주림 얘기 천천히 들어 봐야지. 우선 앉아.”하윤은 지환에게 끌려 의자에서 한참 동안 냉정을 되찾은 뒤 입을 열었다.“방금 도준 씨가 우리 아빠 죽게 했다고 했는데, 혹시 증거 있어요?”주림은 애써 침착한 척하는 하윤의 얼굴을 보며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꺼냈다.“그해 공은채가 나더러 교수님 술에 약을 타게 하고는 자기랑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꾸며 교수님도 속았어...”4년 전.공은채는 강의를 들을 때 ‘부주의로’ 손목에 그어진 자해 상처를 드러낸 적이 있다.그 계기로 이성호는 은채가 어머니와 빼닮은 외모 때문에 어려서부터 공천하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고, 성인이 된 후 점점 심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은채는 친아버지가 저한테 그런 짓까지 버리는 걸 참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털어놓았다.채영을 데리고 교장실에 가 억울함을 대신 호소하던 데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이성호는 평소 학생들을 엄격히 대하지만 사적으로는 매우 아끼기에, 은채의 일을 알게 된 후 도우려고 마음먹었다....여기까지 들은 하윤은 오빠가 왜 공천하가 공은채한테 이상한 짓을 했다고 말했었는지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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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4화 뭐가 진실이지?

하윤은 그때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애써 회상했지만 그때의 아버지는 크게 다라진 건 없었다.여전히 하윤과 승우의 학업에는 더없이 엄격했고 두 사람의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 없었다.하윤의 생일, 승우의 공연, 시영의 학부모회, 그리고 어머니와의 결혼 기념일까지...그저 가끔 혼자 멍 때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그때 분명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텐데.하지만 이게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하윤은 알고 있었다.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차마 아버지가 어떻게 생의 기로에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물었다.“공은채가 또 뭘 했어요?”주림은 눈을 감더니 목 멘 소리로 말을 이었다.“공은채의 계획대로 교수님은 은채와 단둘이 자주 밖에 나다녔어. 그러다 공천하한테 들키고 말았어...”결과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딸이 유부남인 교수와 만난다는 걸 안 공천하가 얼마나 화를 냈을지.특히 그때의 은채는 매번 돌아가신 어머니의 옷을 똑같이 입고 말투와 행동을 따라했으니.만약 보통 사람이었으면 공천하는 아마 상대방을 바로 죽였을 거다.하지만 이서호는 명망 높은 음악가이기에 그런 사람이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 그의 학생, 가족 심지어 학교까지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걸 염두에 두었다.때문에 결국 명예를 박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이성호가 사회의 버림을 받기를 원하지만 은채를 끌어들일 수 없었던 공천하는 이성호의 친구와 학생을 매수하였다...크나큰 이익 앞에 굴복해 목숨 바쳐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그렇게 여론이 움직이면서 이서호는 존경받는 음악가에서 순간 사람의 탈을 쓴 짐승으로 전락되었다....그날의 암담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하윤은 눈시울을 붉히며 주림을 가리켰다.“그래서 플래카드를 들고 아빠를 도왔던 게 아빠를 믿어서가 아니라 사실을 알아서였어요?”다년간 숨겨왔던 사실이 드러나자 주림은 끝내 무너지듯 하윤의 앞에 무릎 꿇었다. 심지어 한편으로 울면서 하윤의 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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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5화 떠날 기회

하윤의 울부짖는 소리는 자정에 들리는 슬픈 음악처럼 울러 퍼졌다.한참 뒤, 겨우 진정한 하윤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주림을 보면서 싸늘하게 말했다.“우리 아빠 해친 건 분명 선배와 공은채인데 왜 도준 씨한테 뒤집어 씌워요? 그렇게 하면 본인의 죄를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아니야. 나한테 증거가 있어.”주림은 눈물을 닦아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또 흐려졌다. 하지만 그걸 상관할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때 뉴스가 터진 뒤 교수님은 떠날 기회가 있었어.”이성호가 은채에게 휘둘렸던 건, 제 ‘잘못’ 때문에 제자가 목숨을 잃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가족까지 위험해지자 이성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때문에 뉴스가 터지자마자 가족을 데리고 멀리 떠나려고 했었다.“내가 교수님을 도와 도망칠 차량도 구해줬어. 그런데 떠나기로 결심한 날, 민도준이 교수님을 보자고 했다는 거야. 민도준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교수님은 자기가 나가지 않으면 가족한테 해가 갈까 봐 만나러 갔어. 그런데 그러고 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어.”주림은 눈물 범벅이 된 채 말을 이었다.“내가 그때 사진을 찍어 일기장에 꽂아뒀었어. 교수님은 민도준과 만나고 난 뒤 생을 포기했다고.”사진...‘공태준이 나한테 줬던 사진이 주림 선배가 찍은 거였어?’하윤은 가슴이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그 사진을 또 누구한테 보여줬어요?”주림은 고개를 저었다.“보여준 적 없어. 그런데 내가 공씨 저택에 가서 공은채와 싸우던 날 그 사진기를 잃어버렸어.”존경하는 교수님이 건물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접한 날 주림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심지어 그 일로 공씨 저택에 쳐들어가 공은채를 죽이려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집 문턱도 넘지 못하고 제 목숨마저 잃어버릴 뻔했다.‘그 사진기가 공태준 손에 들어 간 거고, 그 안에 있던 사진도 다 봤던 거네. 그리고 몇 년 뒤 그 사진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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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6화 돌아오면 안 돼요?

그 뒤의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심지어 집에 어떻게 왔는지 택시를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조차 하윤은 잊어버렸다.그저 귓가에 들리는 심장 고동소리가 너무 요란해 마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느껴졌다.집에 돌아와 문을 닫은 순간, 하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문을 기대 가쁜 숨을 한참 동안 몰아 쉬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어두컴컴한 방 안 구석에서 수많은 사람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옛날의 친구들... 아니, 친구라고 믿었던 자들이 어두운 곳에 숨어 제가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등 뒤에서 칼을 꽂을 것만 같았다.하윤은 미친 듯이 집 안 모든 불을 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문 뒤, 옷장 등 구석구석 살피며 숨어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그렇게 한바탕 방안을 샅샅이 뒤지고 나니 숨이 가빠졌다.하지만 하윤은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도준 씨한테 전화해야 해. 도준 씨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려줄 거야...’‘맞아, 전화...’‘어 핸드폰 어디 갔지?’핸드폰을 어디 뒀는지 기억도 안 난 탓에 하윤은 목표 없이 이곳저곳 마구 뒤져댔다.그러다 겨우 찾은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 여러 번 시도 끝에 겨우 도준에게 전화 걸었다.연결음이 들리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도준 씨...”“응.”도준의 목소리를 듣자 하윤은 눈물이 터져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지금 돌아오면 안 돼요?”“그래.”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하윤은 소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제 팔을 토닥이며 중얼거렸다.“도준 씨가 이제 곧 돌아올 거야. 돌아오면 모든 걸 말해 줄 거고. 주림 선배 말은 못 믿어. 지환 오빠 말도 믿을 게 못 돼. 다 공은채한테 속았던 사람들이잖아. 아직도 공은채 계략에 놀아날 수 있어. 공은채가 나랑 도준 씨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는 거야.”“그래, 그런 거야...”...새벽 3시.도준이 경성에 도착하자 한참을 기다린 민혁이 헐레벌떡 달려가 그를 맞이했다.“도준 형.”하지만 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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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7화 저 속이지 않을 거죠?

민혁을 쫓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선 도준의 머릿속에 계속 민혁의 말이 맴돌았다.‘하윤 씨도 일반 사람인데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버티는 게 쉽지 않을 거야.’삐리리-문이 열린 순간 보이는 환한 거실에 도준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그 순간 소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도준의 시선에 들어왔다. 하윤은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소파와 티 테이블 사이의 작은 틈에 앉아 등을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제 갓 알을 까고 나온 어린 새 같았다.도준이 한참 동안 바라봤지만 하윤은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잠든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가 안으려 했던, 하윤은 놀란 듯 눈을 떴다.고개를 쳐들자 보이는 두 눈은 이미 새빨개져 있었고 얼굴에 있는 눈물 자국도 마르지 않았다.도준을 보자 잠깐 경계하나 싶더니 약 2초간 멈칫하다 이내 억울하고 서러운 듯 입을 열었다.“왜 이제야 왔어요?”도준은 목이 메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윤을 보자 가슴이 무거워 났다.“일어나.”너무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은 탓에 다리가 저린지 하윤은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그러고는 도준을 붙잡고 쉬지 않고 조잘댔다.“저 주림 선배 봤어요. 그런데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글쎄, 아빠가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 도준 씨를 만나고 나서 죽었대요. 도준 씨 협박 때문에.”하윤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그럴 리가 없잖아요. 웃기지 않아요?”하윤은 도준의 팔을 힘껏 흔들면서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은 무서울 정도로 시뻘게져 있었다.충격을 먹은 하윤을 보자 도준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달랬다.“자기 많이 피곤했겠어, 얼른 자.”“저 하나도 안 피곤해요.”하윤은 도준의 목에 팔을 감싸며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얼른 말해봐요. 웃기지 않아요? 진짜 너무 웃기다. 그쵸?”이 순간, 하윤은 마치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위태로웠다.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지면 그대로 벼랑아래로 추락할 것처럼.도준이 말을 하지 않자 하윤은 더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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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8화 어쩔 수 없는 선택

하윤이 말한 모든 건 그저 사막 위에 뜬 신기루에 불과했다.분명 모두 거짓이지만 너무 목 마른 나머지 그런 희망이라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떨리는 하윤의 등을 계속 토닥였다.너무 오래 울다 지친 걸까? 아니면 이 따뜻한 온기가 너무 그리웠던 걸까? 하윤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하지만 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자다가 아버지가 투신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경성에서 있었던 간 떨어지는 경험들이 꿈에 나타났으니까.몇 시간 자지도 못했지만 깨어났을 때 하윤은 온 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숨을 헐떡이며 눈을 뜬 하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도준이 등을 토닥였다.“악몽 꿨어?”“네.”그래도 잠을 자서인지 하윤의 정신은 어젯밤처럼 날카롭지는 않았다.이윽고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일어났다.“저 세수하고 올게요.”하윤이 화장실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준도 따라 들어왔다.이곳 세면대는 하윤의 요구대로 두 사람이 나란히 씻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심지어 양치 도구까지 모두 커플로 되어 있었다.분명 훈훈해야 할 장면이지만, 무겁게 깔린 침묵 때문에 이상하리만치 괴이했다.도준은 본인 스타일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여성스럽고 귀여운 수건을 도로 원위치에 걸어두고는 입을 열었다.“밖에서 기다릴게.”말을 마친 뒤 그는 그대로 문을 나섰다.사실을 맞이해야 할 때가 오자 하윤은 오히려 조급해지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도준은 늘 내뱉은 말은 지키기에 어젯밤 모든 진실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어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세수를 마친 하윤은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호흡을 가다듬고 침실 문을 열었다.도준은 거실 소파에 기댄 채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있었다. 길게 붙어 있는 재를 보면 도준이 한참 동안 담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윤이 말끔하게 준비하고 나온 걸 보자 도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빛으로 제 옆을 가리켰다.“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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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9화 모든 게 가짜였어

하윤은 눈시울이 뜨거워 났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도준을 가리켰다.“혹... 혹시 공은채가 그렇게 전하라고 시켰어요? 왜 공은채를 도왔어요? 사랑하지 않았다면서, 왜 도와줬어요?”도준도 따라서 일어났다. 하지만 도준이 일어나자 하윤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부릅뜬 하윤의 눈은 시뻘게져 있었고 분노 외에도 속상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도준이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뻗은 순간, 하윤은 바로 피해버리더니 원수 보듯 도준을 노려봤다.그러자 도준은 혀를 입안에서 굴리더니 다시 손을 거두었다.“공은채의 복수 대상은 공씨 가문이었어. 나도 마침 그걸 원했고.”도준은 하윤의 눈을 보면서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그때 그 폭동 이후, 공태준은 공은채의 심장과 맞는 이식 상대를 찾다가 내 어머니를 찾아냈거든. 심지어 거이 죽어가는 내 어머니 심장을 더 오래 보존하겠다고 금지된 약물도 사용하면서 일주일이나 더 살려두었어. 그렇게 마음대로 살려두더니, 이식 수술은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해서 그대로 돌아가셨어.”하윤은 순간 심장이 쥐어 짜지는 듯 아팠다. 진명주가 임종을 맞이하면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도준의 성격상 그런 공씨 가문을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 하지만 도준은 그때 마침 경성에서 제 가족들과 싸우고 있었기에 공은채를 이용할 기회를 쉽게 놓쳤을 리 없다.그러고 보면 공은채든 민도준이든 모두 뼛속까지 똑 같은 부류다.그걸 인지한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그건 하윤이 잡고 있던 유일한 동아줄이자 마지막 생명줄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윤은 그대로 뒤돌아서 나갔다.‘이 사람을 떠나야 해. 공은채와 관련 있는 이 사람을 떠나야 해.’그때, 도준이 하윤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이거 놔요!”하윤은 마구 버둥댔지만 도준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심지어 얼마 못 가 다시 소파 위로 돌아왔다.“우선 다 들어.”하윤은 더 이상 들을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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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0화 우리 이혼해요

‘모든 게 다 가짜였어. 모두 가짜였어...’하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모두 가짜였어. 모두 가짜야...”도준은 점점 창백해지는 하윤을 보자 얼른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뭐가 가짜인데?”하지만 하윤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심지어 이제 막 뭍 위로 건져낸 물고기처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굴었다.도준은 손으로 하윤의 턱을 힘껏 쥐어 입을 벌리게 하고는 그녀가 숨을 고르기를 기다렸다.그러다가 낯빛이 조금 괜찮아지자 차가운 하윤의 얼굴을 비벼 온기를 나눠주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괜찮아졌어?”하윤은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했으나 마치 도준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이윽고 손을 뻗어 도준의 깊은 아이홀과 눈을 만졌다.‘언제부터였을까? 이 차가운 눈동자 속에 내가 있었던 건? 이젠 나만 있네.’차가운 손끝이 점차 내려가며 도준의 입술을 만졌다.‘기억 속에 늘 세상 만사를 비웃는 것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웃음도 없어진 채 나만 주시하고 있어. 이런 느낌 참 좋았는데.’결국 하윤은 천천히 도준의 턱을 매만지더니 저를 빤히 보는 도준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이혼해요.”...도준의 목울대는 몇 번 꿀렁이더니 제 턱에서 떨어지려는 하윤의 손을 낚아챘다.“안돼. 그것만은 안돼.”하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도준은 저를 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하윤을 보며 웬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밖에는 언제부턴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눈마저 실내에서 오가는 가벼운 말보다 차갑지는 않았다.도준은 손을 뻗어 하윤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잊었어? 우리 결혼했어. 자기는 내 와이프고,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해.”“그럼 이혼해요.”“안돼.”둘은 순간 교착 상태에 빠졌다.하지만 하윤은 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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