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 뜨지? 보아하니 눈이 쓸모없는 것 같으니까 눈알도 필요 없겠지? 내가 파내줄까?”웃음기가 섞인 그의 말투 때문에 남의 눈을 파는 일이 마치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들렸다.그제야 위험을 감지한 권하윤은 억지로 눈을 떴다.“무슨 말이요? 어디 해 봐요.”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만이었는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도준 씨가 누구랑 지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대는 그녀의 모습에 민도준은 피식 웃더니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의미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그만 해. 더 이상 아닌 척하면 재미없어.”권하윤은 그의 손을 피하고 싶었지만 꼭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자 짜증 났는지 아예 움직이는 걸 포기했다.“맞으면 어쩌게요? 저는 룰을 지켜야 하지만 도준 씨는 몇 명이랑 자든 자유라면서요?”분명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민도준은 순간 그녀가 기어오르는 것도 모자라 억지도 잘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고 보니 매번 혼나고 나면 또다시 고분고분 말을 잘 듣거나 불쌍한 척해댔잖아. 예전에는 왜 이런 성격인 줄 몰랐지?’그는 손등으로 권하윤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권하윤 씨 하나 상대하기도 벅찬데 다른 여자랑도 자면 나더러 죽으라는 건가?”바로 대꾸하려던 권하윤은 순간 그의 말속에 담겨 있는 중점을 캐치하고는 입을 다물었다.‘안 잤다고?’하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나왔다.“그날 분명 열을 식히러 간다고 했잖아요.”“믿지 못하겠으면 한민혁한테 물어봐.”‘한민혁 씨?’권하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그런 그녀의 눈빛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떴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 하윤 씨가 제일 잘 알잖아.”권하윤은 그제야 마지못해 인정했다.확실히 민도준이 이런 일로 그녀를 속일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수고스럽게 그녀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까
“하긴.”민도준은 모처럼 권하윤의 의견에 동의했다.곧이어 그의 커다란 손은 권하윤의 허벅지를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오더니 그녀의 가는 발목을 꽉 잡았다.그제야 그는 고개를 숙이며 욕망을 띤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이따가 이 다리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한 번 보여줘 봐. 만약 마음에 들면 자르지 않을게. 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자기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권하윤은 온 힘을 다해 민도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비록 약효가 이미 지나 아까처럼 죽을 것 같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막혀 있던 응어리가 내려가서인지 마음에서부터 전해지는 즐거움이 단순한 육체적인 즐거움을 뛰어넘었다.그사이 민도준은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권하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하윤 씨 신음 소리가 아까 약 먹었을 때보다 더 야하게 들리는 거 알아?”의식이 약간 흐릿해졌던 권하윤은 한참 뒤에야 그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민도준이 그녀의 입술을 짓씹어 대는 바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시 입을 열었다. 민도준은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웃었다.“계속 소리 내지, 왜 멈췄어? 나 하윤 씨 목소리 듣기 좋은데.”…….민도준이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결과 권하윤은 그의 어깨에 걸쳐진 채로 별장에 돌아왔다.오는 내내 그녀를 바로 씻겨줄 거라며 달래던 민도준은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는 듯했으나 한참 동안 목욕을 하고난 뒤 역시나 그녀를 침대로 끌고 올라가 다시 뒹굴기 시작했다.결국 몸이 불편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한꺼번에 몰아 하게 되었다.그날밤 누군가는 자고 싶어도 자지 못했고 누군가는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거실에서 공아름은 눈시울을 붉힌 채 눈을 떴다. 날은 점점 밝아왔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메이드들은 전전긍긍하며 감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더욱이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솔직히 방금 메이드 하나가 발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공아름이 던진 물건에 머리가 깨졌었
“공…… 공아름 씨?”놀라움 뒤에는 강렬한 공포가 잇달았다.‘공아름이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지? 설마 내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라는 걸 알았나?’강민정이 별의별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공아름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메시지에서 민도준 씨와 권하윤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했던데 무슨 뜻이지?”“어…….”강민정은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아름이든 민도준이든 모두 그녀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만약 민도준이 그녀가 공아름한테 허튼소리를 지껄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한참 동안 계산기를 두드려 본 그녀는 아양 떠는 미소를 지었다.“공아름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뭔가 오해가…….”“아!”하지만 말이 끝나기 전 두피에 전해지는 고통에 그녀는 크게 소리질렀다.등 뒤에 서 있던 경호원이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고는 쉴새 없이 테이블에 박아댔다.“아…… 쿵…… 하지 마요…… 쿵…….”뜨거운 액체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자 강민정은 그제야 겁에 질린 듯 소리 질렀다.“말할게요, 말할게요!”경호원은 그제야 손을 놓더니 그녀를 공아름 앞으로 던져버렸다.강민정은 고아이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호의호식하며 걱정없이 자랐기에 갑자기 닥친 시련과 고통에 이내 흐느꼈다.“권, 권하윤이 민 사장님을 꼬셨어요. 그리고 두, 두 사람이…….”“두 사람이 뭐?”공아름의 말에 그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과장되게 말했다.“권, 권하윤이 민 사장님 방에서 밤새 있는 걸 봤어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분위기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지더니 공아름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걸 네가 어떻게 봤지? 너도 민도준 씨 침대에 기어오르려고 한 거 아니야?”“저…… 전 그런 적 없어요. 전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했지, 아니 물 마시러…….”공아름의 싸늘하고 음침한 눈빛에 놀란 강민정은 이내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하면 말할수록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민시영이 마침 뭐라고 더 말하려던 찰나 다급한 전화벨이 그녀의 말을 끊었고 액정에 표시된 이름에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응. 아름아, 무슨 일이야?”한참 동안 통화를 하던 민시영은 이내 권하윤을 향해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하윤 씨, 미안해요. 아름이한테 급한 일이 생겼는지 절 찾네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전 조금 앉아 있다가 갈게요.”“그래요.”민시영은 몇 걸음 걸어가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권하윤을 힐끗 살폈다.그 시각 권하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왠지 싸늘하고도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다.그때.“아가씨.”이미 문을 열며 민시영을 부르는 케빈의 말에 그녀는 이상함을 뒤로 한 채 차에 앉아 그곳을 떠났다.-공아름의 저택에 들어선 순간 민시영은 이미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직감했다.티테이블 위에 놓인 식어버린 죽은 그 앞에 앉아있는 공아름과 마찬가지로 서늘한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바닥에 널린 꽃병 조각을 지나 그녀 앞에 다가간 민시영은 이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아름아? 왜 그래?”그 말에 고개를 든 공아름의 눈은 이미 빨간 핏발이 서 있었다.“민도준 씨와 권하윤 무슨 사이야?”그녀의 말에 놀란 것도 잠시 민시영은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이렇게 물어본다는 건 아직 증거를 잡지 못했다는 거겠지. 그저 의심하는 단계인가보네. 그렇지 않으면 공아름의 성격에 벌써 하윤 씨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도 남았을 테니까.’“무슨 사이냐니?”민시영은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몇 초간 멈춰있다가 입을 열었다.“권하윤 씨가 승현이랑 약혼했으니까 도준 오빠한텐 제수씨지.”“그거 말고!”밤을 꼬박 새운 공아름은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그녀는 민시영의 팔을 꽉 잡으며 따져 물었다.“두 사람 부적절한 관계야? 민도준 씨가 그 여자 건드린 적 있어?”그 말에 민시영은 피식 웃으며 그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아름아, 그게 무슨
말을 하려던 권하윤은 순간 목이 메어왔다. 민도준이 자기를 뭐라고 저장했는지 모르는 데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지라 순간 불안했다.때문에 몇 초간 머뭇거린 끝에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민 사장님한테 볼일 있거든요.”그 시각, 전화를 받은 여자는 [제수씨]라는 세 글자를 힐끗 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응? 도준 오빠가 언제부터 집안사람들이랑 이렇게 가깝게 지냈었지? 제수씨마저 아무 때나 전화 오고? 아니면 두 사람 혹시 업무적인 왕래가 있나?’생각할수록 답을 알 수 없자 여자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저기 혹시 급한 일이에요? 급하면 제가 바로 오빠 불러올게요.”“급한 일은 아니에요.”여자의 익숙한 말투에 권하윤은 마음이 무거워져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바쁘지 않을 때 다시 전화할게요.”“그래요, 그럼 뭐라고 전할까요?”“아닙니다. 고마워요.”-전화를 끊자마자 차폐실에서 나오는 민도준을 보자 여자애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갔다.“오빠, 방금 전화 왔었어.”“응? 네가 대신 받았어?”민도준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 모습을 본 순간 여자애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윽고 예전에 겪었던 일들이 머리 속으로 흘러들자 그녀는 이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뒤로 물러났다.“나, 나 일부러 받은 거 아니야. 오빠도 알잖아. 나 심심한 거 못 참는다는 거. 하하하…….”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던 그녀는 속으로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진소혜.”“나 다시는 안 그럴게.”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자기를 부르는 민도준의 소리에 진소혜는 억장이 무너졌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를 무시한 채 최근 통화기록을 뒤적거리더니 이름을 확인한 순간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 무슨 대화 했어?”“뭐?”갑자기 전환된 화제에 진소혜는 몇 초 흘러서야 반응했다.“뭐, 그냥 오빠한테 할 말이 있다던데?”그 말을 하고 난 뒤 진소혜는 민도준의 입가에 걸
권하윤이 안으로 들어가자 진소혜도 이내 뒤따랐지만 민도준이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문에 얼굴이 부딪치고 말았다.‘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려고 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그녀는 아픈 코를 부여잡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문에 바싹 붙어 안에서 오가는 대화를 엿들으려 할 때 마침 한민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소혜 씨, 칩을 꺼냈으니 차폐실에 가보세요.”“쉿. 급할 거 없어요.”진소혜는 문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저기, 도준 오빠와 하윤 언니는 대체 무슨 업무 왕래가 있는 거예요?”“네?”‘그걸 나더러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아마, 출입……국 무역에 관한 업무일 거예요…….”-방 안.권하윤은 사뭇 진지한 말투로 강민정이 공아름에게 모든 걸 고자질한 사실을 얘기했다.만약 그녀가 민도준의 다리 위에 앉아있다는 사실만 무시하면 꽤 무역 관련 보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이게 다 도준 씨 때문이니까 나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게 하면 안 돼요.”권하윤은 손가락으로 민도준의 단단한 가슴을 쿡쿡 찌르며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그러자 민도준은 자꾸만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눈썹을 치켜떴다.“할 거 다 했으면서 억울한 척하기는.”“매번 당하는 건 저였잖아요.”시무룩해서 불만 섞인 말투로 투덜거리던 권하윤은 남자의 눈빛에 이내 수그러들었다.“그럼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거예요?”남자의 긴 손가락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를 느긋하게 누볐다.“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그냥, 저 보호해 줘요.”권하윤은 말하면서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애교를 부렸다.‘하. 원하는 게 있으면 발톱을 숨긴 채 온갖 애교를 부리다가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발톱을 드러내고 하악질을 해대는 꼴이 딱 영락없는 고양이라니까.’민도준은 그녀의 애교에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듯 입을 열었다.“하윤 씨 평소에 잔머리 잘 굴리잖아. 내가 굳이 보호해 줄 필요까지 있을까?”“제가 언제 잔머리를 굴렸다고 그래요?”권하윤은 민도준의 다리 위에서 편한 자세로 바꿔 앉
민도준이 원하는 대로 침대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권하윤은 며칠간 이것저것 찾아보며 “학습”을 해댔다.하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민도준은 그녀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한민혁에게 슬쩍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민도준이 요즘 엄청 바삐 보내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아주 건강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했다.가뜩이나 “학습”에 흥미가 없던 차에 민도준이 바쁘다는 소식을 듣자 권하윤은 얼씨구 좋다는 식으로 “공부”를 내팽개쳤다. 공아름 쪽도 별 움직임이 없는 것 같으니 보호해달라고 민도준을 귀찮게 굴 필요도 없었다.그리고 오랫동안 권희연을 만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권씨 저택에 들으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가 반쯤 도착했을 때 갑자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 누구시죠?”“권하윤 씨, 저 공아름이에요.”공아름이라는 세 글자에 권하윤의 심장은 쪼그라들었다.“공아름 씨가 웬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주셨죠?”“제가 오후에 민씨 집안사람들과 같이 리조트로 갈 생각인데 하윤 씨도 같이 가요.”권하윤은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물론 이번 한 번은 거절할 수 있었지만 공아름이 그녀를 시험하려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뒤로도 이런 전화가 끊이지 않을 게 뻔했다.게다가 너무 티 나게 굴면 오히려 의심받을 거라던 민시영의 말이 생각나 그녀는 일부러 기쁜 듯 대답했다.“어머, 저도 초대해 주시는 거예요? 고마워요. 그럼 리조트 위치 알려줄래요?”흔쾌히 승낙하는 권하윤의 반응에 공아름은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메이드한테 일러둘 테니 곧 연락 갈 거예요.”“그래요. 꼭 갈게요. 전화까지 해서 직접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공씨 가문의 리조트라니 기대되네요…….”공아름은 권하윤의 수다에 짜증이 났는지 바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됐어요. 전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전화 기다려요.”하지만 전화를 끊는 순간 의심이 반으로 줄었다.권씨 가문에 관한 소문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모든 여자가 남자
민지훈은 권하윤과 민도준의 사이를 알고 있었기에 대답 없는 권하윤을 보자 곧바로 농담조로 말했다.“형이 정 보고 싶다면 못 만날 것도 없죠.”그의 말에 권하윤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보고 싶다니요. 저 화장실 잠시 다녀올게요.”이곳의 화장실은 통나무집 모양으로 되어 있어 무척 정교했다.하지만 권하윤은 그걸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이상한 점을 모두 상세하게 써서 전송했다.하지만 장편으로 된 문장을 보내려니 또 지난번처럼 무시당하거나 민도준이 보지 못 할까 봐서 걱정이었다. 게다가 그가 공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지금 전화를 할 수도 없었기에 급한 마음에 제자리를 뱅뱅 맴돌았다.그 시각, 리조트의 반대편 사격장.“슉-”“역시 민 사장님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던 화살이 정중앙에 꽂히자 주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하지만 민도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듯 활을 옆에 던져버렸다.“살아 있는 사냥감이 아니라서 재미없네요.”‘살아 있는 사냥감…….’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때 프로젝트 매니저인 주상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여긴 살아 있는 사냥감이 없어요. 기회가 되면 해원에 있는 사격장으로 오세요. 그곳엔 뭐든 있으니 제대로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그래요.”민도준의 긍정적인 대답에 주상현은 겨우 이대로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그를 바라보봤다.“아니면, 주 매니저님이 희생하시는 게 어때요?”갑자기 들려오는 충격적인 한마디에 주상현은 뻣뻣하게 굳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그 모습에 벤치에 앉아 휴식하던 민도준이 활짝 웃었다.“농담이에요. 뭘 또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농담이라고? 진짜 안 해본 것도 아니면서 농담이라면 누가 믿을까?’민도준 때문에 잔뜩 겁을 먹은 주상현은 주르륵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대충 닦더니 아부 섞인 웃